장흥문화원

 

시인 위선환

  “1941년 전남 장흥 출생. 1960년에 서정주, 박두진이 선(選)한 용아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등단하였다. 1970년 이후 30년간 시를 끊었고, 1999년부터 다시 작품을 쓰면서, 2001년《현대시》에 「교외에서」외 2편을 발표한 것을 시작으로,「나무들이 강을 건너갔다」(2001, 현대시),「눈 덮인 하늘에서 넘어지다」(2003, 현대시),「새떼를 베끼다」(2007, 문학과지성사),「두근거리다」(2010, 문학과지성사), 「탐진강」(2013, 문예중앙) ⌜수평을 가리키다⌟(2014, 문학과지성사) 등 시집을 냈다. 현대시작품상, 현대시학작품상을 수상했다

 

〔책 소개〕 
  
     <새떼를 베끼다>
     시집『새떼를 베끼다』에서 위선환 시인은 “맞부딪친 새들끼리 관통해서 새가 새에게 뚫린다” “공중에서는 새의 몸이 빈다고, 새떼도 큰 몸이 빈다고, 빈 몸들끼리 뚫렸다고, 그러므로 空中이다” 라고 노래한다. 이것은 무엇인가? 맞부딪치면 새가 죽거나 다쳐야 하는데 시인은 그것을 '관통' 혹은 '뚫림'이라고 말한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 바로 새들이 '빈 몸'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빈 몸이기 때문에 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래서 새들이 나는 세계를 '空中'이라고 한 것 아닌가? 공허함으로 움직인다는 논리는 동양의 공(空)사상에 다름 아니다. 서양의 사고방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다. 이런 세계는 온전한 삭힘이 전제 되어야 가능한 것이다. 이 삭힘은 시에서 단순한 조탁과는 다르다. 우리가 말하는 장인이란 단순한 조탁에 능한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장인이란 언어나 세계를 삭히고 삭혀서 그것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이럼 점에서 위선환 시인은 장인이다. 어떻게 새떼를 베낀다는 상상이 가능할까? 시인의 삭힘의 결과가 아닐까? 이런 삭힘의 시는 고정된 하나의 완벽한 형태보다는 다른 그 무엇으로 변형이 가능한 무한한 가능성 혹은 열린 상상력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위선환 시인의 시에서 발견한 것이 바로 그러한 시적 언어 혹은 구조의 열림이다.

    <두근거리다>
    시집『두근거리다』는, 더욱 심화된 ‘깊이’와 ‘높이’의 서정성으로부터 시작한다. 응시와 성찰로 대체될 수 있는 이 단어들은 이내 번지고 스며들어 시를 읽는 사람을 단번에 압도한다. 이것이 기존의 서정시와 위선환 시의 차별점이다.
    두근거림은 살아 있음의 증거이다. 여기서 살아 있음은 생체적인 의미인 동시에 비유적인 인간의 조건을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심장이 두근거리지 않고는 숨쉬며 살아 있을 수 없으며, 살아 있건만 어떤 현상에 두근거리지 않는 사람을 도저히 ‘살아 있다,’라고 이르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위선환의 시는 이러한 언어의 도식을 넘어서서 ‘두근두근거리다’ 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기표와 기의의 기묘한 합의를 얻어내어 순식간, 생이 가지고 있는 ‘아뜩한 높이’와 비밀을 획득한다. 두근거리는 것은 살아 있음의 조건이자, 그 ‘투쟁의 전리품’이다. 의성어이자 의태어 ‘두근거리다’란 동사의 심장은 바로 이것이다. 여기에 “아뜩한 높이”가 포함되면 우리는 꿈을 꾸기 시작한다. 그 꿈은 “새”이면서 동시에 “빛기둥”이고 “구름”이며 묻어날 만큼 시퍼런 하늘이다. 이제 시인은 독자를 자신의 근원적 허무에 포함시킬 뿐 아니라, 그 허무와 적막 너머 환희의 곳으로 데려간다. 그 날갯짓은 우리가 보고 듣고 만질 수 없는 그러나 느끼는 세계의 가능성에 다름 아니다

    <수평을 가리키다>
  시집『수평을 기다리다』를 읽는 가장 타당한 방법은, 역사적 사실을 비롯한 개별적 사건들이 스스로를 극복하는 의미로 전환된 그 순간에 집중하기보다 사건의 지속 그 자체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일 것이다. 우연성에 기대어 생성되는 결과물로 이루어지는 아이러니의 세계를 꿈꾸었던 로티R.Rorty의 말대로 우리가 접속을 통해 만들어지는 자유로운 확장의 세계를 따라가 본다면, 진리는 자연스럽게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표제작 「수평을 가리키다」에 명확히 드러나 있는 것처럼 '수평의 모습'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 작품 속에는 '새벽별, 폐선, 개펄, 노을, 풀벌레, 흰 소, 천둥, 물고기' 등 수많은 시적 대상물이 등장한다. 그러나 이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대상들은 그 자체로는 어떤 의미도 갖지 않는다. 심지어 그것을 호명하고 있는 화자와도 어떤 관계를 맺고 있지 않다. 하지만 이 대상들이 우리가 살펴본 시인의  특징을 따라 무한대로 접속되고 반복되면 놀랍게도 "나와, 우리," 가 모두 "수평"으로 만날 수밖에 없는 곳에 이른다. 모든 대상들이 현실의 위계를 벗어나 자신의 모습 그대로 나란히 놓이게 되는 이 지점은 최근의 시문학이 만들어 낸 가장 아름다운 장면 중의 하나이다

    <탐진강>
  연작시집 『탐진강』은 고요하게 빛나는 언어로 서정시의 진경을 펼쳐온 위선환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이다. 시인이 1999년 5월부터 2013년 4월까지, 15년간 써 내려온 「탐진강」연작을 엮은 것이다. 시인은 서문에서 “시를 끊고 지낸 30년의 간극”을 잇기 위한 시들이라 밝히고 있다.
   강이 사람을 기르지만, 사람 또한 강을 기른다. “그 강은 모든 사람이 저마다 기르는 모든 사람의 강이다.” 강은 어떻게 길러지는가. 삶의 “가파르고 비좁고 이리저리 굽은 골목길을 걸어 내려”가면 길의 끝이다. “길의 끝에는 강이다.” 모나고 거친 삶의 길을 지나 강에 도착한 사람들이 강에서 만난다. 그 강에서 사람들은 아픈 속내를 털어놓는다. 사람도 울고, ‘강도 목메어 운다.’ 이를 두고 정상철은 해설에서 “강물과 함께 흐르는 온갖 것들이 만나 관계를 맺으며 서로가 서로를 받아들이다가 몸살을 앓는 과정에 대한 기록”이며 “그 강과 관계 맺은 모든 생명들은 유순해진다”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기르는 것은 몸살을 앓는 강이며, 한 생을 앓는 ‘너’와 ‘나’가 그 강을 사이에 두고 만난다.
  「탐진강」 연작은 시인 대신 투신했던 언어에게 바치는 애도이며, ‘언제나 아프던’ 사람(시인인 동시에 모든 사람)에게 치유로 작용하는 강의 노래이다. 그곳에서 아팠던 한 사람은 자신의 언어를 버리고 벙어리가 되어 떠났지만, 다시 돌아와 시에게 용서를 구했다. 용서의 말을 듣는 강은 벙어리라 말이 없다. 다만 모든 것을 포용하며, 기억하고, 함께 운다. 그것이 사람에게 위로가 된다.

 

자갈밭 / 위선환


  동강(東江)의 자갈밭에 비비새가 누워 있다

  주둥이가 묻혔다 자갈돌 몇 개가 바짝 틈새기를 좁혀서 비비새의 부리를 물고 있다

  꽉 다문 틈새기, 의 저 힘이

  비비새 아래로 강물을 흐르게 했을 것이다 비비새를 강물 위로 날게 했을 것이다

  흐르는 힘과 나는 힘이 오래 스치었고 스미어서

  강 밑바닥을 훤히 비치게 했고, 다음 날은 더 깊이 비비새를 비쳐서

  강물 속으로 날아가는 비비새가 보였고, 비비새가 씻기었고 비비비, 강물이 지저귀기 시작했고 

  비비새의 창자 속으로 강 울음소리 같은, 긴, 시푸른, 쓴, 죽음이 흘렀고

  지저귀다 목이 쉰 강의, 더는 울지 못하는 비비새의. 혓바닥 끝에다 독을 적셔 말렸고

  지금은 그 주검이 부리를 내밀어 완강하게 자갈 틈새기를 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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