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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문화예술인/장흥현대문인

[장흥문인]소설가/ 미백 이청준(李淸俊 1939~2008)

by 장흥문화원 관리자 2018. 5. 16.

 

◎ 인적사항

이청준(李淸俊, 1939년 8월 9일 ~ 2008년 7월 31일)

1939년 출생(장흥군 회진면 진목리)

2008년 7월 31일(68세) 작고

 

◎ 학력

1948년 대덕동초등학교 입학

1957년 전라남도 광주서중학교 졸업

1960년 전라남도 광주제일고등학교 졸업

1966년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 졸업(학사)

 

 

◎ 수상연보

1965년 《사상계》 신인문학상, 「퇴원」

1968년 4월 9일 - 단편소설 「병신과 머저리」로, 사상계사 제정 '동인문학상' 수상

1969년 「매잡이」로 대한민국문화예술상

1976년 1월 17일 - 중편소설 「이어도」로 한국일보사 제정 '창작문학상' 수상

1976년 10월 17일 - 중편소설 「잔인한 도시」로 문학사상사 제정 '이상문학상' 수상

1979년 9월 22일 - 중편소설 「살아있는 늪」으로 중앙일보사 제정 '중앙문화대상' 수상1985년 11월 29일 - 중편소설 「비화밀교」로 한국문예진흥원 제정 '대한민국문학상' 수상1990년 9월 21일 - 장편소설 「자유의 문」으로 문학과 지성사 제정 '이산문학상' 수상

1994년 12월 2일 - 장편소설 「흰옷」으로 대산재단 제정 '대산문학상' 수상

1998년 3월 1일 - 중편소설 「날개의 집」으로 21세기문학사 제정 '21세기문학상' 수상

2003년 10월 10일 - 제17회 인촌상

2004년 제36회 대한민국문화예술상

2005년 7월 7일 -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선출

2007년 6월 1일 - 호암 예술상

2007년 6월 12일 - 제비꽃 서민소설상

2008년 금관문화훈장

 

 

 

◎ 작품 활동

1965년 단편 「퇴원(退院)」이 제7회 《사상계》 신인상에 당선됨으로써 문단에 등장했다. 그 후에 발표한 작품은 단편 「임부(姙婦)」, 「줄」, 「무서운 토요일(土曜日)」, 「바닷가 사람들」, 「굴레」, 「병신과 머저리」, 「별을 보여 드립니다」, 「공범(共犯)」, 「등산기(登山記)」, 「행복원(幸福園)의 예수」, 「마기의 죽음」, 「과녁」, 「침몰선(沈沒船)」, 「석화촌(石花村)」, 「보우너스」, 「개백정」, 「꽃과 뱀」, 「가수(假數)」, 「가학성훈련(加虐性訓練)」, 「들어보면 아시겠지만」 등 20여 편에 이르며 1960년대에 등장한 작가들 가운데 가장 왕성한 작품활동을 보여 주었다. 중편으로는 「매잡이」, 「꽃과 소리」, 소문의 벽(壁)」, 「쓰여지지 않는 자서전(自敍傳)」, 「원무(圓舞)」, 「이제 우리들의 잔(盞)을」, 「조율사(調律師)」 등이 있으며 연작 소설집인 『자서전들 쓰십시다』와 『서편제』가 있다.

이청준의 소설은 크게 두 가지 경향으로 양분된다. 첫째는 역사·사회적인 맥락 속에서 지식인 인물들의 관념적인 대화구도를 중심으로 정치권력의 문제를 탐구함으로써 지적인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고, 둘째는 가족과 고향의 세계를 서정적으로 그려내고 있다는 것이다.

 

 

◎ 작가연보

-1939년 8월9일 전남 장흥군 대덕면 진목리(현 회진면 진목리) 출생

-1960년 광주 제일고등학교 졸업, 서울대 문리대 독문과 입학

-1965년 단편 「퇴원」으로 《사상계》 신인문학상 당선

-1966년 서울대 독문과 졸업, 〈사상계〉 입사

-1967년 〈여원〉사로 직장 옮김, 「병신과 머저리」로 동인문학상 수상

-1968년 10월 남경자와 결혼, 〈아세아〉 창간 참여

-1969년 단편 「매잡이」로 대한민국문화예술상 신인상 수상

-1971년 9월 첫 창작집 『별을 보여드립니다』(일지사) 출간, 월간 《지성》 창간 참여

-1972년 창작집 『소문의 벽』(민음사) 출간, 「석화촌」이 청룡영화제 최우수작품상 수상

-1973년 『조율사』(삼성출판사) 출간

-1974년 장편 「당신들의 천국」 《신동아》 연재, 중편 「이어도」 《문학과지성》 연재

-1975년 중편 「이어도」로 한국일보 창작문학상 수상

창작집 『가면의 꿈』(일지사), 『병신과 머저리』(삼중당 문고판) 출간, 『씌어지지 않은 자서전』 일본 출간

-1976년 장편 『당신들의 천국』(문학과지성사), 창작집 『이어도』(서음출판사) 출간

-1977년 창작집 『자서전들 쓰십시다』(열화당), 『예언자』(문학과지성사) 출간

-1978년 중편 「잔인한 도시」로 이상문학상 수상산문집 『작가의 작은 손』(열화당), 창작집 『남도 사람』(예조각), 창작집 『백조의 춤』(여학생사), 장편 『이제 우리들의 잔을』(예림출판사), 『잔인한 도시』(홍성사) 출간

-1979년 단편 「살아 있는 늪」으로 중앙문예대상 예술 부문 장려상 수상.

장편 『춤추는 사제』(홍성사), 창작집 『선학동 나그네』(문학과지성사) 출간

-1980년 창작집 『살아 있는 늪』(홍성사), 『매잡이』(민음사), 『낮은 목소리로』(도서출판 문장), 콩트집 『치질과 자존심』(도서출판 문장) 출간

-1981년 외동딸 은지 출생

창작집 『잃어버린 말을 찾아서』(문학과지성사), 장편 『낮은 데로 임하소서』(홍성사) 출간

-1982년 창작집 『시간의 문』(중원사) 출간

-1983년 창작집 『제3의 현장』(동화출판공사) 출간

-1985년 창작집 『비화밀교』(나남), 『씌어지지 않은 자서전』(중앙일보사), 산문집 『말없음표의 속말들』(나남) 출간

-1986년 중편 「비화밀교」로 대한민국문학상 우수상 수상 한양대 출강

-1987년 『겨울광장』(한겨레) 출간

-1988년 창작집 『벌레 이야기』(심지), 『아리아리 강강』(우석), 『이교도의 성가』(나남) 출간

-1989년 장편 『자유의 문』(나남) 출간

-1989년 「자유의 문」으로 이상문학상 수상

창작집 『키 작은 자유인』(문학과지성사), 『이제 우리들의 잔을』(동아) 출간

-1991년 작가·작품론 모음인 『이청준론』(삼인행) 출간창작집 『새가 운들』(청아출판사), 『젊은 날의 이별』(청맥), 장편 『인간인』 1·2(우석) 출간

-1992년 작품집 『별을 보여드립니다』(중원사), 『가해자의 얼굴』(중원사), 『누군들 초장부터 꾼으로 태어나랴』(성훈출판사) 출간

-1993년 「서편제」가 임권택 감독에 의해 영화화돼 대종상 최우수작품상 수상『서편제』(열림원) 출간

-1994년 장편 『씌어지지 않은 자서전』(장락), 『춤추는 사제』(장락), 에세이집 『사라진 밀실을 찾아서』(월간 에세이), 동화책 『바람이의 비밀』(삼성출판사) 출간 「흰옷」으로 대산문학상 수상

-1996년 장편 『축제』(열림원), 판소리 소설 『토끼야, 용궁에 벼슬가자』(열림원), 『놀부는 선생이 많다』(열림원) 출간

-1997년 소설선집 『눈길』(문지스펙트럼), 동화 『뻐꾸기와 오리나무』(금성출판사), 동화 『할미꽃은 봄을 세는 술래란다』(열림원), 동화 『한국전래동화』 1·2(파랑새) 출간

-1998년 열림원에서 이청준 문학전집 출간 시작(2005년까지 총 25권 발간)「날개의 집」으로 21세기 문학상과 성옥문학상 예술 부문 수상. 순천대학교 석좌교수 임명

-1999년 『가위 밑 그림의 음화와 양화』(열림원), 『오마니』(문학과의식사) 출간

-2000년 장편 『인문주의자 무소작씨의 종생기』, 창작집 『목수의 집』(이상 열림원), 청소년용 선집 『선생님의 밥그릇』(다림) 출간

-2001년 산문집 『야윈 젖가슴』(마음산책), 동화집 『떠돌이개 깽깽이』(다림) 출간

-2003년 제17회 인촌상 문학부문 수상『당신들의 천국』 100쇄 돌파장편 『신화를 삼킨 섬』(열림원), 산문집 『그와의 한 시대는 그래도 아름다웠다』(현대문학), 동화집 『숭어 도둑』 (디새집) 출간

-2004년 제36회 대한민국문화예술상 수상, 산문집 『아름다운 흉터』, 『인생』(열림원), 소설집 『꽃 지고 강물 흘러』(문이당), 동화 『동백꽃 누님』(다림), 『새 소리 흉내쟁이 요산 아저씨』(두산동아) 출간

-2005년 산문집 『머물고 간 자리, 우리 뒷모습』(문이당) 출간, 예술원 회원 선출

-2007년 폐암 선고, 제17회 호암 예술상, 제1회 제비꽃 서비 소설상 수상, 소설집 『그곳을 다시 잊어야했다』(열림원) 출간

-2008.7.31. 타계

 

 

 

 

◎ 작가 해설

 

 

이 시대의 가장 지성적인 작가 이청준

 

박재희(순천대)

 

미백(未白) 이청준은 1939년 8월 9일 전남 장흥군 대덕면 진목리에서(현 회진면 진목리) 아버지 이남석(李南石)과 어머니 김금례(金今禮)의 5남 3녀 중 4남으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나기 전까지 주로 ‘참나무골’이라 불렸던 진목리는 유독 고향을 테마로 한 작품을 많이 남겼던 이청준에게 ‘애증’이 함께하는 ‘어머니’로서의 땅, ‘삶과 문학의 바탕이되는 곳’, ‘떠돎의 첫 행로가 시작된 곳이자 그것을 마감할 귀향지’이기도 했다. 그는 이곳에서 중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광주로 떠날 때까지 12~13년 동안의 유소년시절을 보내게 된다.

1944년 여섯 살이 되던 해에 세 살짜리 막내 동생이 홍역으로 죽고, 반년 뒤에 다시 맏형이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난다. 그로부터 2년 뒤에는 맏형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부친마저 타계하고 만다. 아직 어린 나이에 불시에 겪어야 했던 죽음과 불행한 가족사가 작가에게 미친 영향이 어떤 것이었는지 짐작하기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작가는『가위 밑 그림의 음화와 양화』 속에서 당시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된 심경을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다.

 

“그리고 그 아버지의 얼굴이 없는 모습은 언제부턴가 내겐 가위눌림 속에서 아무리 눈을 떠서 윗모습을 보려 안간힘을 써대도 언제까지나 반 조각의 모습 밖에 보이지 않는 안타까운 설잠 속의 그것이 되고 만 것이다. 그것도 아마 영원히 잠을 깨지 못할, 그래서 끝끝내 모습을 찾아낼 수 없는 필생의 가위눌림, 그 가위눌림 속의 답답한 모습으로 남게 될 것이 분명한.”

 

이렇듯 가족의 잇따른 죽음은 당시뿐만 아니라 작가의 이후의 삶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특히 음악과 문학을 좋아했던 맏형의 존재와 죽음, 그리고 그가 남긴 유품들은 이청준의 작가로서의 이후 행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족보에는 ‘종청(種淸)’으로 올라 있는 작가의 이름을 ‘청준(淸俊)’으로 지어준 것도 맏형이었다.

1948년 이청준은 10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대덕동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입학이 학령보다 늦어진 것은 해방직후의 어지러운 상황 때문이었다. 그는 입학 전까지 인가가 나지 않은 곳을 포함해 모두 여덟 군데의 학교를 이리저리 옮겨 다녀야만 했다. 이러한 연유로 입학 전에 이미 한글을 깨치기 시작한 작가는 2,3학년 무렵부터 소설읽기에 열중한다. 이때 읽은 소설들은 『흙』 『찔레꽃』 『불쌍한 사람들』 등 대부분 맏형이 다락에 쌓아두었던 것들이었다. 이 시절 그는 형이 살아생전 책 속에 남긴 메모와 독후감, 일기장 등을 읽으며 죽은 형과의 정신적인 만남을 가지는 한편, 허기가 밀려오면 보리밭 터에 나가 연을 날리고는 했다. 그러던 중 1950년 가을, 그 유명한 ‘전짓불 체험’을 하게 된다.

 

아직도 고향에서 공부를 하려면 청준이처럼 하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초등학교 시절 이청준은 공부를 아주 잘 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상급학교에 진학할 형편이 아니었던 그는 친척 형이자 초등학교 스승이기도 했던 이종남 선생과 교장 선생의 도움을 받아 1954년 우수한 성적으로 광주 서중에 입학할 수 있었다. 입학과 동시에 광주에서 처음 몸을 의탁하게 된 곳은 외사촌 누님댁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신세를 지게 된다.

『키작은 자유인』에는 이 무렵에 작가가 겪었던 일들 중 지금은 너무나도 유명해진 ‘게자루’ 이야기가 나온다.

 

“1954년 4월 3일 오후, 고향 마을 산모퉁이의 한적한 바닷가 개펄 바닥. 어머니와 나는 나란히 썰물 진 개펄을 헤매며 게를 잡고 있었다. 나는 그해 이른 봄 광주의 한 중학교 입학시험에 합격하여 개학날이 이틀 뒤로 다가와 있었다. 내일이면 나 혼자 고향집과 어머니를 떠나 광주의 한 친척집으로 더부살이를 가야 했다. (…) 산비탈을 스쳐 지나가는 솔바람 소리에도 가슴이 메어오고, 먼 수평선 위로 흐르는 흰 구름덩이까지 공연히 눈물겹기만 하던 한나절, 어머니와 나는 그 막막하고 애틋하고 하염없는 심사 속에 짐짓 더 열심히 게들만 좇고 있었다. (…) 그러나 막상 그 집에 도착하고 보니 게자루는 이미 아무 소용도 없는 꼴이 되어 있었다. (…) 나는 그 게자루가 그토록 초라하고 부끄러울 수가 없었다. 그것이 내 남루한 몰골이나 처지를 대신하고 있기라도 하듯이 그 외사촌네 사람들 앞의 자신이 그토록 누추하고 무참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하여 그 누님이 코를 막고 당장 그 상한 게자루를 쓰레기통에다 내다 버렸을 때, 나는 마치 그 쓰레기통 속으로 자신이 통째로 내던져 버려진 듯 비참한 심사가 되고 있었다.”

 

이청준은 후에 그때 쓰레기통에 버려졌던 게자루가 그의 삶을 이끌어갈 숙명의 씨앗자루였다고 회고한다. 중학교 3학년이 되던 해부터는 외사촌 집에서 나와 독립, 자취 생활을 시작한다. 이 시기에 그는 고향마을에서의 가난을 의식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고향에 대한 탈향의 욕망을 느끼며, 장차 도회의 생산적인 의식층으로 당당히 성장할 것을 다짐하게 된다.

 

“두고 봐라. 나도 이제부턴 이 누추한 시골내기 티를 깡그리 벗으리라. 이를 악물고 너희와 함께 할 수 있는 부끄러움 없는 삶의 길을 열심히 배우고 익히리라. 너희 속으로 함께 섞여들어 그 유족하고 자랑스런 도회인의 삶의 길을 떳떳하게 살아가리라.”

 

이청준은 생전 한 대담에서 시골에서 태어나 살다 도회지로 옮겨오면서 갖게 된 어떤 절망과 동경 같은 것이 문학을 하게 된 동기였다고 말하기도 했다. 도회지 속 현실에 끼어들지 못하니 말로라도 끼어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문학의 동기를 이뤘다는 것이다.

이 무렵, 시골뜨기 이청준에게 각별한 관심과 사랑을 보내준 사람이 광주서중 교장 강봉우 선생이다. 그는 이청준이 평생 스승으로, 삶의 모델로 삼으며 존경한 사람이기도 하다.

집과 고향을 떠나 객지의 친척집에 기숙하며 힘든 시간을 보냈음에도 이청준은 입학 당시와 다름없는 좋은 성적으로 광주 서중을 졸업하고 1957년 광주일고에 입학한다. 그리고 고등학교 1학년이던 그해 겨울, 고향집이 남의 손에 넘어가고 식구들이 뿔뿔이 흩어졌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방학을 맞아 사정을 알아보기 위해 고향에 내려갔던 그는 홀어머니와 함께 이미 남의 집이 된 옛집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돌아온다. 우리 문학사에 길이 남을「눈길」은 이때의 체험이 모태가 되어 쓰여진 작품이다.

이후 가정교사 생활 등으로 힘들게 학업을 계속하면서도, 고등학교 3학년 때 최초로 치러진 직접선거를 통해 학생회장이 된다. 이청준은 자신의 의지로 출마했고 당선됐지만, 이 일을 계기로 ‘정치혐오증’을 갖게 되었고, 결국 법대가 아닌 문학과 진학을 결심한다. 이유는 문학의 세계가 잔인하고 부도덕한 일면적 현실과는 달리 그에게는 전면적인 진실을 열어줄 거라고 막연히 느꼈기 때문이다. 이후 그는 오래도록 고향에 발길을 하지 않는다.

 

남도의 끝자락, 장흥의 시골 진목리에서 광주서중에 입학함으로써 이미 하나의 신화를 만들었던 이청준은 1960년 마침내 서울대학교 문리대 독문과에 입학한다. 독문과 재학시절, 그는 주로 토마스 만, 카프카, 헤세, 헤밍웨이, 포크너, 지드 등의 작품을 읽으며 문학수업을 하게 된다. 대학 입학과 동시에 겪었던 4·19와 5·16의 경험은 이후 『씌여지지 않은 자서전』이나 『조율사』 등에 그 정신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예술가의 이력이 시작되는 가장 예민한 시기에 극과 극의 체험을 한 그는 4·19를 60년대 세대에게 고유한 낭만주의 체험으로 규정한다.

 

“지금 3,40대들은 그런 낭만주의 체험 없이 광주사태나 이쪽부터 겪었으니…, 그들이 좀 더 거슬러 가 봐야 유신압박부터이지만, 우리는 유신 이전에 거대한 소망의 실현을 꿈꾼 세대거든.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한 순간, 순식간에 찾아온 그야말로 어처구니없는 상실감은 기가 막힌 거 아녜요?”

 

4·19혁명에서 자유의 단초를 봤다면, 연이어 일어난 5·16군사쿠데타를 통해서 절망의 현실을 경험한 셈이다. 그런 맥락에서 「퇴원」「병신과 머저리」「매잡이」같은 작품은 정치의식과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대신 그의 작품은 환자들의 고통에 주목하고 상처를 위무하는 쪽으로 기운다.

이 무렵 그는 이불이 없어서 입주가정교사도 못할 정도로 형편이 딱했다. 이청준은 당시를 한발만 잘못 디디면 떨어지고 말 벼랑 끝에 선 상황이었다고 말한다. 결국 가난과 배고픔을 견디다 못한 그는 1962년 육군에 입대하여 64년에 제대한다. 그가 입대하면서 친지에게 맡겼던 짐들이 제대 후 모두 사라져버린다. 사진이나 비망록 등 젊은 시절 그의 정신적 편력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를 다시 되찾을 수 없게 된 것이다. 후일 그는 잃어버린 짐보따리와 함께 사라진 그 시절의 시간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하긴 그로부터 서너 해 동안은 그 짐보따리 하나 간수할 길이 없었듯 내 모든 것을 잃고 만 때였으니까. 내 젊은 시절 가운데에서도 가장 견디기 힘든 악몽의 세월이었으니까.”

 

그러나 제대 후 복학을 하고도 그의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고 거처가 마땅치 않았던 그는 밤이면 당시 문리대 본관 4층에 몰래 숨어들어가 자곤 했다. 이때 수위가 휘두른 전짓불은 6?25때 겪은 전짓불의 체험과 함께 그의 정신에 뚜렷이 각인된다.

 

1965년 대학 4학년 재학 중에 『사상계』 신인 문학상에 「퇴원」이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하게 된다. 이 작품은 친구의 죽음이 동기가 되어 쓰여진 것으로 이 데뷔 작품 이전에 숱하게 작품공모에 응모했으나 번번이 낙방한 경험이 있었다. 당시 문학상 심사위원이었던 정명환, 김성한, 오상원, 오영수, 선우휘는 「퇴원」을 당선작으로 선정한 이유를, “매우 예민한 감수성과 재치있는 관찰과 그리고 삶의 어떤 양상을 기존적 사고방식 밖에서 다루려는 의욕을 지닌 이 애매성 속에 풍요한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때의 인연으로 이청준은 1966년 졸업과 동시에 《사상계》사에 입사한다. 이 해에 하나 남은 형마저 사망하게 된다. 형의 장례비가 없어 곤경에 처했던 이청준은 우연히 소설가 박태순에게 온 원고청탁을 넘겨받아 그것을 써서 위기를 해결하게 된다. 이때 쓴 작품이 「병신과 머저리」이다. 그는 이 작품으로 이듬해인 1967년 동인문학상을 수상하고, 직장을 월간 《여원》으로 옮긴다.

1968년 10월에 서울대 독문과 스승인 강두식 교수의 주례로 부인 남경자와 결혼을 하여 약수동 근처에 20만원짜리 전세방을 얻어 작은 보금자리를 마련한다. 강두식 교수와는 사제지간의 정을 넘어서 부자지간처럼 가깝게 지내게되는데, 그와의 인연은 「세상에서 가장 비싼 소철분 이야기」속에 담겨 있다. 이해에 월간 《아세아》 창간에 참가하게 된다. 이후 그가 창간에 간여했던 잡지로는 『지성』, 『소설문예』등이 있다. 그러나 이 잡지들은 오래가지 못했고 그로 인해 잡지 창간과 관련된 웃지 못할 일화를 남기게 된다. 『문학사상』이 창간될 때 누군가 그를 보자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청준이 잡지 만들면 다 망한다고 그러던데 그 망한 얘기 좀 들어야 하겠다.”

결혼은 의지할 데 없이 혼자 낯선 도시를 떠돌던 이청준에게 보다 안정된 생활을 가능하게 했다. 살림살이가 나아진 것은 없었지만 줄곧 혼자 떠돌던 그에게도 가정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만큼 그의 창작활동도 아내의 따뜻한 내조 속에 더욱 활발해졌다.

 

1969년에는 단편 「매잡이」로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신인상을 수상하고, 김수용 감독에 의해 영화화된 「병신과 머저리」가 제6회 청룡영화상 촬영상을 수상한다. 1970년 최초로 북아현동에 당시 돈으로 78만원 상당의 13평짜리 아파트를 매입하게 된다. 이때 이청준이 스스로를 “자기 신앙의 신전을 지닌 당당하고 자랑스런 사도”로 표현한 점에 비추어, 그때까지의 셋방살이가 무척 고단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1971년 잡지 『지성』 창간에 참가하고 이 해 9월에 중·단편 20편을 수록한 첫 창작집 『별을 보여드립니다』를 일지사에서 출간한다. 후일 그는 이 창작집에 대해서, 언제 다시 책을 낼지 몰라서 가능하면 작품을 많이 수록했는데, 지금 같으면 세 권도 가능한 양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그의 걱정과는 달리 두 번째 창작집 『소문의 벽』이 이듬해인 1972년 민음사에서 발간된다. 이 무렵 등단 직후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던 소설가 박완서는 이 작품집들을 만났던 당시를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

 

“그때 내 손에 들어온 것이 그의 빼어난 단편이 무려 20편이나 수록된 중후하고 품격 있는 책 『별을 보여드립니다』였다. ‘훌륭한 단편이라는 건 바로 이런 거로구나’ 이렇게 스스로 깨쳐가며, 감동도 하고 감탄도 해가며 이 책을 읽고 또 읽었다. 그가 초대해 준 세계에 들어가서 배회하는 사이에 개인적인 욕망으로 인한 불안감은, 그때까지 주부로서의 편안한 일상을 지켜준 담 밖의 세상에 대한 눈뜸과 불안감으로 이어졌다. 『별을 보여드립니다』와 거의 동시에 읽게 된 『소문의 벽』은 다 치유된 줄 안 나의 정신적인 상처까지 건드리면서 나를 소름돋게 했다.”

 

이 해에는 또 단편 「석화촌」이 영화화되어 청룡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한다.

1973년 「떠도는 말들」을 시작으로 이른바 『언어사회학 서설』의 작업이 이후 81년 「다시 태어나는 말」에 이르기까지 8년간에 걸쳐 이루어진다.

1974년 AID아파트 입주권이 당첨된다. 이 해에 실존인물 조창헌을 모델로 한 소설 『당신들의 천국』의 집필을 시작한다. 소설의 주인공 조백헌의 실제모델이었던 조창헌 원장은 막상 소설이 발간되자 간척사업 등 소록도 문제가 사회적으로 관심을 받게 되면서 병원에서 쫓겨나 강원도 정선과 대전, 밀양 등지에서 규폐증 환자를 돌보게 된다. 소설의 100쇄를 맞아 두 사람이 함께 자리를 했을 때 조원장은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소록도를 ‘죽음의 섬’으로 보지 않은 사람이 바로 이 선생이었어요. 이 사람이 진실하게 이야기를 그릴 수 있다면 ‘10만 나환자를 살리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후에 작가는 이 작품의 뒷배경에 70년대의 억압적인 독재정치가 있었노라고 회고한다. 이 작품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방대한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스테디셀러이며 우리 시대의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1975년 창작집 『가면의 꿈』을 일지사에서,『병신과 머저리』를 삼중당에서 문고판으로 간행한다. 이 해에 중편 「이어도」로 한국일보 창작문학상을 수상하고 장편 『씌여지지 않은 자서전』이 일본의 태류사에서 일역 출간된다. 이 무렵 작가는 1960년 이후 처음으로 고향을 방문하여 자신의 삶과 문학의 정신적 근원지를 새삼 확인한다. 그 전에 두 번 정도(62년 입대 당시와 66년 그의 형이 타계했을 때) 고향 마을 가까이까지 간 적은 있었지만 본격적인 고향방문은 이때를 기점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이후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고향 방문은 「서편제」, 「눈길」 등 남도소리와 어머니의 세계를 바탕으로 한 소설작업으로 이어지게 된다.

1976년 본격적인 고향 방문을 계기로 쓰기 시작한 「서편제」, 「눈길」 등을 발표하고, 작가 이원수를 모델로 한 작품 『꽃동네의 합창』을 출간한다.

1977년 작품 「눈길」은 문우 나한봉이 그 작품은 작가가 쓴 것이 아니라 고향과 어머니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할 만큼 고향에 크게 빚진 작품이다. 이청준은 2002년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이 작품을 『당신들의 천국』과 더불어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 중 하나로 꼽았다. 작가 스스로 ‘소설 안으로 내 자신이 들어갔다 나온 느낌이 가장 강렬하게 드는 작품’이라 평했던 「눈길」은 작가의 실제 체험이 토대가 되어 쓰여졌다. 소설 속에서 이미 남의 집이 된 옛집에서 낡은 옷궤 하나를 의지삼아 아들과 함께 하룻밤을 지낸 어머니는, 이른 새벽 먼 도시로 아들을 떠나보낸 뒤 홀로 걸어 돌아오던 눈길의 정경을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이야기를 한들 네가 어찌 다 알아들을 수가 있겄냐……. (…) 그래 그 운전사란 사람들은 어찌 그리 길이 급하고 매정하기만 한 사람들이더냐. 차를 미처 세우지도 덜하고 덜크렁덜크렁 눈 깜짝할 사이에 저 아그를 훌쩍 실어 담고 가버리는구나. (…) 그 허망한 마음을 어떻게 다 말할 수가 있을 거나……. (…) 눈길을 혼자 돌아가다보니 그 길엔 아직도 우리 둘 말고는 아무도 지나간 사람이 없지 않았겄냐. 눈발이 그친 그 신작로 눈 위에 저하고 나하고 둘이 걸어온 발자국만 나란히 이어져 있구나. (…) 신작로를 지나고 산길을 들어서도 굽이굽이 돌아온 그 몹쓸 발자국들에 아직도 도란도란 저 아그 목소리나 따뜻한 온기가 남아 있는 듯만 싶었제. (…) 하다보니 나는 굽이굽이 외지기만 한 그 산길을 저 아그 발자국만 따라 밟고 왔더니라. (…) 울기만 했겄냐. 오목오목 디뎌 논 그 아그 발자국마다 한도 없는 눈물을 뿌리며 돌아왔제. 내 자석아, 내 자석아, 부디 몸이나 성히 지내거라. 부디부디 너라도 좋은 운 타서 복 받고 살거라……. (…) 더구나 동네에선 아침 짓는 연기가 한참인디 그렇게 시린 눈을 해갖고는 그 햇살이 부끄러워 차마 어떻게 동네 골목을 들어설 수가 있더냐. 그놈의 말간 햇살이 부끄러워져서 그럴 엄두가 안 생겨나더구나. 시린 눈이라도 좀 가라앉히자고 그래 그러고 앉아 있었더니라…….”

 

이청준은 「눈길」과 「선학동 나그네」를 일기장과 같은 스스럼없는 자기진술 위에 기초한 작품으로 평가한다.

1978년 「잔인한 도시」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하고, 이어 1980년에 「살아있는 늪」으로 중앙문예대상 예술부문 장려상을 수상한다.

1981년 활발한 창작활동을 펼치는 와중에 뒤늦게 외동딸 은지를 얻는다. 이 해 실존 인물 안요한 목사를 모델로 한 소설 『낮은 데로 임하소서』를 출간한다. 한편 「서편제」를 비롯한 남도소리의 세계를 통해 존재적인 삶을 탐구한 연작과, 「떠도는 말들」을 시작으로 관계적인 삶을 탐구한 연작의 종합점을 제시하고자 『잃어버린 말을 찾아서』를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한다.

1982년 『과녁』이 문학예술사에서, 『시간의 문』이 중원사에서, 『여름의 추상』이 한국문학사에서 각각 출간된다. 이 해에 희곡『제3의 신』을 현대문학사에서 간행한다.

1984년 세계의문학에서 『가위 밑 그림의 음화와 양화』를 출간한다. 아버지의 세계가 드물게 작품 소재로 등장하는 연작소설집이다.

1985년 작품집 『비화밀교』가 나남에서 출간된다. 『비화밀교』는 밀도 높은 작품을 꾸준히 발표했던 80년대 전반을 결산하는 작품집으로 평가된다. 1980년 5월 지배 권력은 광주에서 무지막지한 폭력을 자행한다. 그 광주를 염두에 둔 이청준은 80년대에 제일 중요한 것이 죄의식이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엄청난 악당으로부터 집단적으로 폭력을 당하고 있는 모습을 눈 뻔히 뜨고 속수무책인 채 보고 있는 것은 고문인데, 죄의식은 그 고문으로부터 증폭되었다는 것이다.

“광주는 한마디로 정의든 저주든 도대체 온전한 사람의 말로는 한동안 소설을 쓸 수도 생각할 수도 없게 했으니까.”

 

『비화밀교』는 인간의 존엄성과 집단 무의식, 용서를 테마로하는 소설로 그는 이 작품으로 1986년 대한민국문학상을 수상하게 된다. 또한 이 해부터 한양대학교에 교수로 강단에 서지만 2년 만에 그만두게 된다. 그는 어느 자리에선가 대학교수직을 그만둔 이유로 80년대 중·후반의 혼돈스러운 사회상황과 학내상황으로 인한 지식인으로서의 고민 때문이었음을 고백한 바 있다. 『가위 밑 그림의 음화와 양화』에는 당시 작가의 심중을 짐작하게하는 A교수의 일화가 실려 있다.

 

“그때 내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던 셈이지. 한 일이 있다면 차가 멈춰 설 때마다 학생들과 경찰 책임자 사이를 오가며 학생들의 무사 귀교를 책임진다는 메모 각서나 써준 게 고작이었어. (…) 학생들은 나를 구제 불능의 기성인시하거나 잘해야 별볼일 없는 국외자 취급인 데 반해 경찰 쪽은 한사코 초록은 동색 격으로 학생들과 한 무리 취급이었거든. (…) 문제는 애초 그 끼어 설 자리가 없는 곳에, 있어선 안 될 자리에 내가 우습게 끼여든 것이었지. 그날의 곤욕도 결국은 제자리가 없는 어정쩡한 국외자로서 의당히 당해야 할 것이었구.”

 

1990년 『자유의 문』으로 이산문학상을 수상하고 문학과지성사에서『키작은 자유인』을 출간한다. 『비화밀교』가 80년대 전반을 결산한다면 『키작은 자유인』은 후반을 결산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1991년 중편 「이어도」와 「예언자」가 프랑스 악트 쉬드 사에서 불역 출간된다. 이때 악트 쉬드사는 전 작품 번역 대행 계약을 맺고 이후 이청준의 많은 소설이 여러 나라에서 번역 출간된다. 그 이후 번역 출간된 내역은 다음과 같다.

 

1992년 『자유의 문』, 일본, 백서방

1993년 『당신들의 천국』, 프랑스, 악트쉬드

『예언자』, 터키, llestisim

1994년 『서편제』, 일본, 조천서방(早川書房)

1998년 『예언자』, 콜롬비아(스페인어 번역판)

『이청준 단편집』『불의 여자』, 오스트리아, Residenz

1999년 『제3의 현장(그대 다시 노래하지 못하네)』, 프랑스, 『예언자』, 미국, 『토끼야 용궁에 벼슬가자』, 독일

2001년 『흰옷』, 프랑스(대산문화재단 지원)

2002년 『제3의 현장』, 이탈리아, 오바라오출판사(아시아문학시리즈)

2003년 『당신들의 천국』, 스페인(대산문화재단 지원), Trotta(한국문학시리즈)

2004년 『현대 한국단편 문학선(「눈길」 수록)』, 이스라엘(대산문화재단 지원)

『당신들의 천국』, 미국(대산문화재단 지원)

『당신들의 천국』, 중국

『이어도』, 터키, Everest

『이청준 단편집』, 스페인, Trotta

2005년 『예언자』 『이어도』, 이탈리아, 오바라오출판사

『흰옷』, 독일, Indicium

『서편제』 『소문의 벽』 『놀부는 선생이 많다』, 독일, Peperkorn

 

이 외에도 『잔인한 도시』 『비화밀교』 『축제』 『이청준 소설선』 『잃어버린 말을 찾아서』 『심청이는 빽이 든든하다』 등 다수의 작품이 독일어로 번역, 출판되어 있다.

 

1992년 『아리아리 강강』제2부의 발표와 함께, 1988년에 발표한 1부와 합쳐 『인간인』이라는 제명으로 간행된다. 88년에 상재한 제1부도 2부를 상재하면서 개고한다. 이청준은 개고의 이유를 ‘화자의 과다한 정보독점으로 인한 불필요한 혼란과 짜증을 줄이기 위해서’라고 밝힌다. 2부의 초고는 89년에 쓰여졌으며 무려 9년간의 대장정 끝에 이루어진 역작이다. 이때 이청준은 권력의 정체를 보다 섬세하고 본격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정치소설의 창작을 꿈꾸게 된다. 그는 그 의미가 상당히 우회되어 있긴 하지만, 『소문의 벽』, 『당신들의 천국』, 『시간의 문』까지도 그 계열의 단초로서 보고 있다.

1993년 「서편제」가 임권택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어 100만이 넘는 많은 관객의 호응을 얻으며 대종상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하게 된다. 「서편제」는 1976년 『뿌리깊은 나무』에 처음 발표된 단편으로 연작소설집 『남도사람』에 수록되어 있는 작품이다. 한과 소리, 억압과 예술에 대한 주제를 다룬 총 8편으로 구성된 연작소설집 『남도 사람』중 제일 먼저 창작되었다. 임권택 감독이 영화화한 내용은 연작소설집인 『남도 사람』 전체의 줄거리를 보여준다.

1994년 말년에 치매에 걸려 고생하던 어머니가 95세를 일기로 타계한다. 노모 앞에 하얗게 센 머리를 보이기가 송구스러워 그 마음을 아호[未白]로나마 면해보려 했던 작가에게 어머니는 문학인생의 ‘중심모티브’이자 ‘자양분’이었다.

 

“내 삶과 문학에 대한 은혜를 따지면야 그 삶을 주고 길러준 고향과 그 고향의 얼굴이라 할 어머니를 앞설 자리가 없다.”

 

어머니의 장례 직후 임권택 감독의 권유로 영화작업과 동시에 집필하기 시작한 소설 『축제』에는 그런 어머니에 대한 작가의 마음의 빚이 담겨 있다.

 

“내 어릴 적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는 당신 사후에도 계속 어머니 안에 계셨다. 나는 어머니에게 늘 아버지를 함께 느꼈다. 온화한 모정과 함께 남정의 대범함과 냉엄스러움을 느꼈다. 그 어머니는 내게 어머니이면서 아버지였다. 글쟁이가 되고 나서 나는 그런 아버지 같은 어머니, 당차고 비정스럽고 모진 어머니의 이야기를 여러 번 글로 썼다. (…) 그러나 내가 그 ‘어머니’의 사연을 다시 취해 쓴 것은 이것으로 내 ‘어머니 이야기’의 결산편을 삼고 싶어서였다. (…) 한마디로 지난 일년 반 동안은 글을 썼다기보다 ‘노인’을 씻겨 드리는 굿판 삼아 그것을 되세워 일으켜서 가다듬고 기구하고…….”

 

장편 『씌어지지 않은 자서전』과 『춤추는 사제』가 장락에서 출간되고, 12월에는 장편 『흰옷』으로 대산문학상을 수상한다.

1995년 『뻐꾸기와 오리나무』, 『할미꽃은 봄을 세는 술래란다』, 『한국전래동화 1·2』를 잇따라 내놓으면서 동화작가로도 활발하게 활동하며 그에 걸맞는 명성도 얻게 된다.

1996년 장편 『축제』가 영화개봉과 함께 열림원에서 출간된다. 이 작품은 발간 직후 죽음의 축제성을 예술미학으로 복원시켰다는 평을 듣는다. 이청준은 어머니의 죽음을 떠올리게하는 이 작품의 제목이 ‘축제’인 이유를 ‘치매로 주위사람들에게 불편을 끼치던 노인이 돌아가셨기 때문에 호상이라는 의미로 생각할 수도 있고, 노인을 돌본 주변인들의 정성을 기린다는 뜻도 있다’며, ‘죽음을 통해 드러나는 삶의 영속성을 강조하고 죽음이 또 다른 시작을 상징한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판소리 소설 『토끼야, 용궁에 벼슬가자』, 『놀부는 선생이 많다』를 간행하는 한편, 『당신들의 천국』을 문학과지성사 소설명작선으로 출간한다.

1998년 이청준 문학전집이 열림원에서 출간되기 시작하며 이청준 문학 30여년을 묶는 작업이 본격화된다. 이 해에 문학전집으로 나온 것은 『서편제』, 『조율사』, 『낮은 데로 임하소서』, 『제3의 현장』, 『자유의 문』, 『소문의 벽』, 『이어도』 등 7권이었다. 『날개의 집』으로 21세기문학상을 수상한다.

1999년 순천대학교 문예창작학과의 석좌교수로 임명된다. 한양대에서의 대학교수 생활 이후 여러 대학에서의 초빙에 응하지 않았던 그가 순천대의 적극적 요청을 수락한 것은 순천대학이 그의 고향 장흥과 가장 가까운 대학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순천에는 그의 돌아가신 형님의 장조카 가족이 살고 있어서 그들과 자주 만나볼 수 있게 된 것도 그의 결심의 또 다른 이유였으리라. 노년에 가까워지면서 고향과 혈친에 대한 그리움이 그를 다시 고향 근처 대학의 석좌교수로 자리잡게 한 셈이다. 그는 이 대학에서 매학기 2∼3회 이상의 특강을 실시하였고 특강이 끝난 후 장조카 가족 혹은 부인과 동반하여 고향을 자주 방문하기도 하였다.

2000년 『당신들의 천국』이 대산재단의 창작 번역지원 대상에 최종 포함된다. 대산재단의 한국문학 번역지원 대상작 영어권에 포함된 것이다. 열림원에서 장편소설 11권, 중·단편소설 10권, 연작소설 3권, 산문집 2권, 동화집과 별권 각 1권 등 모두 28권으로 기획된 이청준 전집 중 『당신들의 천국』과 중·단편소설집 『눈길』등이 먼저 출간된다. 『당신들의 천국』은 1976년 첫 간행된 이래 세대를 뛰어넘어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현대의 고전이다. 소설집 『눈길』에는 표제작과 「해변아리랑」 「새가 운들」 「귀향 연습」 「여름의 추상」 등 모두 8편의 중·단편이 실렸다. 이어서 『자서전들 쓰십시다』 『시간의 문』이 각각 출간된다. 『시간의 문』에는 66년 발표된 「줄광대」를 시작으로 94년에 나온 「불 머금은 항아리」에 이르기까지 30여년에 걸쳐 씌어진 7편의 중·단편이 실렸다. 이로써 2000년 말까지 정리되어 나온 이청준 문학전집은 모두 12권이 됐다. 12월 말, 『낮은 데로 임하소서』가 출간 20년 만에 100쇄를 돌파, 출판계에 화제가 되었다. 이 작품은 1981년 홍성사의 〈믿음의 글들〉 시리즈 제1권으로 출간된 후 그때까지 30만부가 팔린 대표적인 스테디셀러로서 100쇄는 일반 종교서적에서는 보기 드문 기록이다.

2001년 〈이청준 문학전집〉 중 장편소설 『인간인 1·2』가 출간된다. 194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해남 두륜산 대원사에서 벌어진 일을 그린 『인간인』은 이청준의 후기문학세계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이 해에 이청준은 국어교과서 저작권료를 가장 많이 받는 소설가로 발표된다. 국어교과서에 작품이 실린 작가 중 수필가 피천득과 소설가 이청준이 최다 저작권료 수입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는데, 2000년 1학기 분 저작권료 1위는 이청준(선학동 나그네)으로 623만 7000원을 받게 된 것이다.

〈이청준 문학전집〉 중 장편소설 『씌어지지 않은 자서전』과 중·단편소설집 『별을 보여드립니다』가 출간된다. 『씌여지지 않는 자서전』은 잡지사 기자인 주인공 이준을 통해 소설가에게 소설은 어떤 의미인지 보여주는 작품이다. 또한 중·단편소설집 『별을 보여드립니다』에는 마음 속 별을 꿈꾸며 사는 천문학도의 이야기인 표제작 「별을 보여드립니다」를 필두로, 알 수 없는 사연을 간직한 채 비행기 추락으로 사망하는 조종사 이야기인 「마스코트」, 정년퇴임한 초등학교 교장이 외로움과 무기력에 빠지는 「대흥부동산공사」 등 10편이 실렸다. 또한 작품을 통하지 않은 발언을 자제해 온 이청준이 7년만에 펴낸 산문집『야윈 젖가슴』이 마음산책에서 출간된다.

 

2002년 이청준 문학전집의 스물한 번째 책 『춤추는 사제』가 출간된다. 이 작품은 1977년부터 월간 『한국문학』에 1년간 연재됐던 장편소설로 백제유민의 이야기를 현재적 삶과 연결시켰다. 문학평론가 김병익은 이 소설에 대해 “백제 유민으로서 호남인의 정치적 좌절감을 그린 작품”이라고 평한 바 있다.

2003년 1974년 『신동아』에 연재되기 시작했으며, 문학과지성사가 1976년 단행본으로 간행한 뒤 27년간 꾸준하게 읽혀온 『당신들의 천국』이 100쇄를 돌파한다. 문학과지성사가 발행하는 계간 『문학과사회』 봄호는 『당신들의 천국』 100쇄 발간을 기념해 작가와의 대담, 비평 모음, 작가의 신작소설 「꽃 지고 강물 흘러」 등을 특집으로 게재했다. 문학과지성사 측은 “이 작품은 정치적 테마를 담고 있으면서 자유와 이상을 형이상학적으로 풀어낸 것이 시간이 지났어도 계층의 구매 없이 지속적으로 읽히는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1998년 『조율사』 『낮은 데로 임하소서』 『소문의 벽』 『서편제』로 시작된 〈이청준 문학 전집〉이 2003년 『흰옷』 『축제』를 끝으로 11종 12권, 중·단편소설집 10권, 연작소설집 3권 등 모두 24종 25권으로 마무리되었다. 1965년 『사상계』에 단편소설 「퇴원」을 발표하며 등단한 이청준은 토속적 민간신앙의 세계에서 산업사회의 인간소외 문제에 이르기까지 38년간 다양한 작품세계를 펼쳐 보여왔다. 이는 〈이청준 문학전집〉의 편집위원들이 밝힌 발간사를 통해 좀더 구체적으로 확인된다.

 

“소설적 진실이 동시대 현실을 꿰뚫어 보는 작가정신의 치열함을 통해서만 획득되며, 또 그것이 작가가 자신이 택한 장르에 대한 철저한 자의식을 전제로 할 때에만 가능한 것이라고 할 때, 지난 30여 년 동안 치열한 산문정신으로 창작된 이청준의 소설들은 개화기 이래 수용된 서구 소설 장르의 한국적 갱신의 과정이라고 보아도 결코 손색이 없다. 본 편집위원들이 30여년 넘게 축적되어 온 이청준 문학을 전집으로 발간하게 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의 소설의 전체적 이해를 통해서 지나온 우리 현대소설의 궤적을 추적하고, 그 위에서 새롭게 전개될 우리 소설의 나아갈 방향이 모색되기를 바라는 바다.”

 

〈이청준 문학전집〉 완간을 기념하는 심포지엄이 5월 20일 오후 1시 30분 세종문화회관 컨퍼런스 홀에서 ‘이청준 소설의 넓이와 깊이’라는 제목으로 열린다. 권택영 경희대 교수가 ‘이청준 소설의 전개와 문화적 효용성’, 정과리 연세대 교수가 ‘이청준, 한국문학, 세계문학’, 권오룡 교원대 교수가 ‘이청준 소설의 정치적 무의식’, 장경렬 서울대 교수가 ‘이청준 소설의 서사전략’을 주제로 논문을 발표한 뒤 토론을 벌였다. 이청준은 전집 발간을 위해 수록작 전체를 새롭게 교정, 보완했고, 작품의 뒷이야기와 작품 형성과정을 볼 수 있는 창작노트도 이날 공개했다.

이 해에 제17회 인촌상을 수상하고, 김선두 화백이 그림을 그린 산문집 『그와의 한 시대는 그래도 아름다웠다』를 출간한다. 이 산문집은 작가가 돌, 나무, 강물의 이름을 빌려 자신의 삶과 문학세계를 돌아본, 이청준의 문학과 삶의 궤적을 보여준 기록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가 유년시절을 바탕으로 쓴 동화 『숭어도둑』은 작가의 유년시절을 감싸고 도는 훈훈한 자연의 냄새와 인간의 정을 담았는데, 출간 1개월 만에 1만부가 팔리며 출판가에 잔잔한 파문을 불러 일으켰다.

이청준 문학의 한 전환점이되는 『신화를 삼킨 섬 1·2』가 출간된다. 『신화를 삼킨 섬』은 “꿈(이념)과 힘의 질서가 지배하는 현실세계와 그를 밑받침하는 역사적 정신태의 한계”를 넘어 “그 현실과 역사의 유전적 침전물로서의 태생적 정서가 담겨 있을 넋(종교성과 맞먹을 우리 신화와 신화적 서사)의 차원”을 주제로 한다.

2004년 동화집 『새소리 흉내쟁이 요산 아저씨』와 이청준의 유년시절 이야기가 한 편의 아름다운 동화처럼 잔잔하게 펼쳐지는 산문집 『아름다운 흉터』가 출간된다. 나한봉은 이청준의 작품에 대해 “이청준을 우리시대의 이야기꾼으로 키운 것은 그의 유년시절 고향마을과 마을 사람들, 그리고 어머니였다”고 말한 적이 있다. 『아름다운 흉터』는 그 유년의 아름다운 추억과 삶이 담긴 산문집이다. 이 산문집에 이어 삶과 세상 풍물의 표정들을 모은 산문집 『인생』이 출간된다. 이 산문집은 절판된 산문집 『작가의 작은 손』 『말없음표의 속말들』 등에 수록됐던 글 중 몇 편을 골라 「지울 수 없는 것들」 「함께 살아가기」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의 소제목으로 나눠 실었다.

동화집 『동백꽃 누님』이 김은정의 그림과 함께 출간된다. 이 동화집에서 이청준은 마치 할아버지가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듯 자신의 어린 시절의 추억담을 풀어놓고 있다. 또한 소설가, 시인, 화가의 눈으로 고향을 읽어보려는 의도를 갖고 동향 후배인 시인 김영남, 화가 김선두와 함께 산문집 『옥색바다 이불삼아 진달래꽃 베고 누워』를 펴낸다.

2000년 여름에 출간한 『목수의 집』이후의 작품들을 묶은 『꽃 지고 강물 흘러』를 출간한다. 이 작품집에는 『오마니!』 등 중·단편 6편이 실려 있다. 이 해에 문화관광부에서 문화예술발전 유공자에게 표창하는 제36회 대한민국문화예술상을 수상한다.

2005년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으로 선출된다.

2006년 『선학동 나그네』가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작품인 〈천년학〉으로 영화화된다. 이청준은 이 영화의 개봉에 즈음하여 행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원작을 쓰던 당시의 심경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천년학〉의 단편들을 쓰던 1970년대말은 워낙 말이 막혀 있던 시대라서 그런 억압을 벗어버리는 방편으로 판소리 쪽으로 도망갔습니다. 아무리 억압해도 무너지지 않는 존엄성 같은 게 있다는 생각도 했고, 모든 것이 정치화돼 나 자신 정서가 굉장히 메말랐다는 생각 때문에 정(情)의 씨앗자루를 남긴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이 무렵 동경대학교에서 ‘화해와 공생’을 테마로 이청준 문학을 조명하는 심포지움이 개최된다.

2007년 호암상 수상. 이청준의 작품세계는 우리의 삶을 억압하는 각종 폭력성과 그에 맞서는 자유로운 인간정신 사이의 대결을 다양한 형식으로 펼쳐 보인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호암상의 수상 소감에서 “저는 이 상으로 큰 격려를 받습니다. 우리 자신의 능력과 성취에 대한 바깥 세계의 평가라 할 노벨상은 우리가 원하든 아니든 우리 문학의 한 가지 숙제가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상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저는 늘 마음 한 구석이 빈 듯한 씁쓸한 느낌이곤 했습니다. 오늘 이후 저는 더 이상 그런 기분을 지니지 않으려 합니다. 저 또한 여기서 한 걸음이라도 더 나아가려 신명을 다하겠지만, 우리 문학 스스로 이 상의 내실을 거기까지 다져 채우고 그 위상과 긍지를 거기까지 높이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라고 했다.

이창동 감독이 「벌레 이야기」를 〈밀양〉으로 영화화하고, 이 영화의 주연 여배우 전도연이 칸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게 된다. 영화 제작에 맞춰 단행본이 새로 발간됐지만,「벌레이야기」는 1985년 계간 『외국문학』 여름호에 처음 발표된 단편소설이다. 1988년에 단행본으로, 2002년에는 〈이청준 문학전집〉의 한 권으로 같은 제목의 책이 출간됐다. 전체 20여 쪽에 불과한 이 소설에서 작품의 영감을 얻은 이감독은 풍부한 상상력으로 살을 입혀 2시간이 넘는 영화를 만들어냈다. 소설에는 ‘밀양’의 ‘밀’자도 안 나올 정도로, 영화의 구성과 등장인물은 소설과 매우 다르다. 이청준은 이 작품을 쓰게 된 계기를 작가서문을 통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작품을 쓰기 얼마 전 서울의 한 동네에서 어린이 유괴살해 사건이 있었다. 범인은 결국 붙잡히고, 재판을 거쳐 사형수로 집행을 기다리는 신세가 됐지만, 아이를 잃은 부모의 슬픔과 고통은 굳이 이를 바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범인이 형 집행 전 마지막 남긴 말이 ‘나는 하나님의 품에 안겨 평화로운 마음으로 떠나가며, 그 자비가 희생자와 가족에게도 베풀어지기를 빌겠다’는 요지였다. 기억이 정확하지 않겠지만, 내게는 그 말이 그렇게 들렸고, 그것은 내게 참혹한 사건보다 더 충격이었다.”

 

영화개봉 후에 행해진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는 작품창작의 의도를 좀더 분명하게 밝히기도 했다.

 

“「벌레이야기」는 광주사태 직후였는데 당시 정치상황이 너무 폭압적이어서 폭력 앞에서 인간은 무엇인지를 생각해봤습니다. 그런데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을 때 피해자는 용서할 마음이 없는데 가해자가 먼저 용서를 이야기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그럴 때 피해자의 마음은 어떨까요. 그런 절망감을 그린 것입니다.”

 

동경대학교에서 2006년 심포지엄을 토대로 UTCP Bulletin(v.9) 이청준 특집호 『한(恨)과 미(美)와 공생(共生)』을 간행했다. 이 책은 동경대학교에서 한글로 발간한 첫 학술지라고 한다. 「눈길」로 제비꽃 서민소설상을 수상한 뒤, 이 해 7월 폐암진단을 받고 투병생활을 시작한다. 그는 투병중에도 새 작품집 『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열림원)를 발간하고 단편 「이상한 선물」을 계간 『문학의 문학』가을호(창간호)에 발표하기도 하였다. 작품집 발간 당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청준은 투병중의 일상과 작품집 발간의 소회를 다음과 같이 전했다.

 

“아침에 항상 ‘일용할 양식’이 아니라 ‘일용할 건강’을 달라고 기도하고, ‘건강이 허락됐구나’하며 감사한다. 그 다음부터는 될 수 있으면 기분이 가라앉지 않도록 하려고 애쓴다. 병이라는 게 실제 몸으로 받는 벌도 벌이지만 정신적으로 겪는 것은 표현하기도 어려울 정도여서 친구들한테 담배를 끊으라고 권하고 있다.”

 

“물이 차면 비우고 또 차는 물레방아처럼 소설이 쌓여 작품집으로 묶으려다, 한 편쯤 모자라겠다 싶어 초고 하나 써놓고 다듬는 중에 ‘그것까지 하려고 하느냐’는 듯 병원에서 오라고 해서 중단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중단해 놓으면 이도저도 아니겠다 싶어서 그 마무리를 지으려고 했다.”

 

한번 주사 맞고 1주일 쉬고, 또 한 번 주사 맞고 2주일을 쉬는 방식으로 항암제를 맞는 것을 네 번 반복하고 나온 것이 그의 마지막 작품집이었다. 그럼에도 당시 이청준은 ‘10년만 더 있으면 자기 정립을 마치고 좀 더 깊게 영근 이야기를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시간이 너무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또한 자신의 소설쓰기를 돌아보며, ‘하기 힘들다지만 지내놓고 보니 문학은 좋은 직업이었다. 다시 한 번 이 같은 자리(기자간담회)가 마련되길 기원한다’며 마지막까지 창작의지를 놓지 않았다.

2008년 5월, 이청준은 암과의 힘든 싸움을 벌이는 와중에 그보다 몇 달 앞서 유명을 달리한 장조카의 식구들을 서울로 불러 함께 식사를 하고 가족사진을 찍는다. 당시를 추억하며 장조카의 큰딸이 쓴 글속에는 작가 이전에 한 집안의 큰 어른으로서 그의 인간적인 면모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처음이었다. 꼭 잡은 손에서 할아버지의 따스함이 채 가시기도 전에 ‘힘을 내서 살아라. 내가 너희 곁에서 힘이 되어 주어야하는데, 이렇게 아파서 미안하다.’고 말씀하셨다. 병마와 싸우며 극한의 고통을 느끼셨겠지만, 그 역시 담담하게 이겨내면서 자신을 추스르고, 앞으로 살아갈 우리에게 힘을 주셨다. 할아버지는 평생 우리를 위해 사랑을 베풀어 주셨으면서, 더 주지 못해 미안하다던 분이셨다.”

 

2008년 7월 31일 1년여의 힘든 투병생활 끝에 삼성서울병원에서 별세, 고향 진목리 그가 생전에 몹시도 그리워했던 어머니의 무덤 옆에 안장된다.

2009년 이청준 추모 학술대회 개최-이청준 문학을 조명하다

2010년 이청준 문학자리 조성-지인, 독자의 모금으로 작가의 묘소에 문학자자리 조성

제1회 이청준 문학제 개최-이청준기념사업회 창립

2016년 이청준전집 34권 완간(문학과지성사)

2019년 제10회 이청준문학제 개최(매년 10월에 작가의 고향인 장흥에서 문학제 개최)

 

 

 

◎ 이청준 작품의 세계 각국 언어, 번역서 목록

 

일본 『씌어지지 않는 자서전』

일본 『자유의 문』

일본 『서편제』

미국 『당신들의 천국』

프랑스 『이어도』, 『예언자』

프랑스 『당신들의 천국』

터키 『예언자』

스페인 『예언자』

프랑스 『제3의 현장』

미국 『예언자』

오스트리아 『불의 여자』

독일 『비회밀교』, 『판소리동화』

독일 『토끼야 용궁에 벼슬가자』

프랑스 『흰 옷』

이탈리아 『제3의 현장』

독일 『잔인한 도시』

스페인 『당신들의 천국』

미국 『이어도』

터키 『이어도 』

오스트리아 『불의 여자』

콜럼비아 『당신들의 천국』

프랑스 『그 노래 다시 부르지 못하네』

독일 『놀부는 선생이 많다』

스페인 『비화밀교』

이탈리아 『그 노래 다시 부르지 못하네』

독일 『흰 옷』

프랑스 『당신들의 천국』

스페인 『당신들의 천국』

중국 『당신들의 천국』

미국 『당신들의 천국』

미국 『병신과 머저리』

독일 『비화밀교』

일본 『서편제』

스페인 『서편제』

독일 『소문의 벽』

독일 『심청이는 빽이 든든하다』

일본 『씌어지지 않는 자서전』

프랑스 『예언자』

미국 『예언자』

콜롬비아 『예언자』

터키 『예언자』

터키 『이어도』

독일 『잔인한 도시』

이탈리아 『제3의 현장』

독일 『축제』

프랑스 『흰옷』

독일 『흰옷』

 

  

 

[책소개]

<당신들의 천국>

한국 소설의 거장 이청준, 그 문학세계의 정점!이청준 문학의 요체로 알려진 개인과 집단, 자아와 세계의 갈등을 인상적으로 보여주는 장편소설 당신들의 천국. 지난 2008년에 타계한 소설가 이청준이 일궈놓은 40년 문학의 총체를 보전하고 재조명하기 위해 새로운 구성과 장정으로 준비한 이청준 전집시리즈의 열한 번째 책이다. 19744월부터 197512월까지 신동아지에 연재되었던 이 작품은 소록도를 배경으로 권력과 자유, 개인과 집단, 사랑과 공동체 문제를 심도 있게 탐구했다.

아름다운 풍광의 소록도에서 투병하는 주민들의 삶과 다양한 이해관계가 펼쳐진다. 나환자들이 모여 사는 소록도에 낙토 건설을 명분으로 부임한 의사 조백헌 원장과 이를 끊임없이 견제하는 이상욱 보건과장의 대립이 이야기의 큰 줄기를 이루고 있다. 419 혁명에서부터 경제개발 독재시기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경제 안정과 물리적 삶을 위해 정치적 자유와 정신적 삶을 포기하게 만든 당시의 사회를 강도 높게 비판한다.

<눈길>

청소년들이 읽어야 하는 한국 대표 작가들의 중요 작품들을 엄선하여 모은 소설 선집 사피엔스 한국문학 중.단편소설시리즈. [눈길], [서편제], [벌레 이야기] 등 인간의 내면과 사회에 대한 깊은 성찰을 끊임없이 이어간 작가 이청준의 단편 세 편이 실려 있다.작품의 최초 발표본과 작가 생애 최후의 판본, 그리고 가장 최근에 발간된 비판적 판본 등을 참조하여 텍스트에 최대한 정확성을 기했으며, 작품 읽기에 쉽게 몰입할 수 있도록 작품의 표기를 다듬고, 지금은 쓰이지 않는 낯설고 어려운 낱말이나 난해한 구절 등에는 풀이를 두어 작품 감상에 부족함이나 애매함이 없도록 하였다. 최대한 편리한 독서를 위해 깔끔한 디자인으로 구성하였고, 실질적인 작품 해석, 창의적인 작품 감상을 돕도록 작품의 핵심 내용을 담아 최고의 일러스트를 제공하고 있다.

<선학동 나그네>

살아 있는 늪이 적당치 못한 자리에서 느끼는 수모의 감정을 다룬다면, 빈방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못했다는 부끄러움의 감정을 다룬다.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못했다고 느낀다는 점에서 이들의 수치는 이청준이 정의한 의 다른 이름이다. 선학동 나그네에서 환기되는 의 감정 역시 예술을 신성화하기 위해 동원되는 특권적 감정이기 이전에 자신의 마땅한 자리를 찾기 위해 고투하는 보편적 인간의 불행한 의식과 맞닿는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이청준 소설이 치열하게 탐구한 것은 이 같은 인간의 불행한 숙명에 관한 것이다. 이청준에게 소설 쓰기란 현실에서의 어떤 패배를 극복하기 위한 가장 적극적인 시도였던 셈이다. _조연정, 작품 해설 불행한 인간의 자기 증명에서

 

“원장님 말씀대로 이 섬 안에서는 모든 일이 입으로 말해지는 것과 실제 행동 사이에 거리를 가지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게 오히려 상식이 되고 있는 편이구요.”

이청준-'당신들의 천국' 中

 

 

관련기사

http://www.joongdo.co.kr/main/view.php?key=20180424010010482

장흥군청

http://www.jangheung.go.kr/tour/active_theme/literature_travel/house_born/hsw

 

업데이트 202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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