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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문화예술인/장흥현대문인

[장흥문인]「평등」의 세상, 「믿음」의 세상을 기도하는수필가 최수권(1949~)

by 장흥문화원 관리자 2018. 6. 19.

 

◎ 인적사항

최수권(1949~ )

1949년 출생(장흥군 장흥읍)

 

◎ 학력사항

장흥중고등학교 졸업 16~17회

 

◎ 문학활동

《문학세계》에 수필 「놋화로」가 당선되어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문학세계 문인협회〉 회장 역임

 

◎ 작품연보

『영원한 고향』(1987, 우정문화사,)

『삶이 있는 장터』(1991, 대흥,)

『도시의 노을』(1992, 전자신문사,)

『외로울 줄 아는 행복』(1996, 천우,)

『마음의 경제 휴먼 네트윅』(2007, 솔과학,)

『가정은 성공의 터전』(2008, 솔과학,)

 

 

혼자라는 것은 스스로를 깊은 나락으로 밀려들게 합니다.

긴 긴 겨울밤 휑한 대기로 퍼지는 개짖는 소리가 문풍지를 울리고 들어와 나를 더욱 떨리게 합니다. 유년의 겨울, 남외리 겨울은 그렇게 길게 길게 지나고 있었

습니다.

<외로울줄 아는 행복>중에서

 

장흥의 중심가 기양리 남동리 동동리 예양리 그리고 남외리 이곳 주민들 치고 남외리의 토박이인 재주꾼, 의리있고 활달한 최동희 씨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

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인물이 인민재판의 희생물로 등장하자 아연한 감을 거두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대다수의 군중들은 해방 이전 이후의 장흥에서 일어났

던 많은 사건들을 소상히 알고 있지 못하고 있었다. 또한 최씨가 어떻게 우익의 괴수인지를 잘 모르고 있었다.

장흥에는 유달리 식자들이 많았다. 왜정시대에 벌써 일본유학을 마친 젊은 청년들이 도내의 어떤 읍이나 군보다 많았다. 그러기에 정치나, 사상 이념 같은 문제

가 활발히 개진되었으며, 해방 이후에 어떤 지역보다 좌 우 극단의 대립이 심했던 지역이었다.

상체를 결박당한 채 서 있던 최동희가 누군가를 불렀다.

'자네 뒤로 빠져봤자 내가 알고 있어. 그래도 나는 인자 죽은께 뒤탈 없을 것이여. 그러니께, 내 여그 묶은 것만 풀어주라고, 죽더라도 사지나 편하게 죽고 잡

."

"고맙네. 내가 귀신이 되드라도 자네는 피해 감세."

최동희의 달관한 듯한 말에 사내는 부르르 진저리를 쳤다.

최동희는 오미터쯤 앞에서 소총을 거총하고 있는 무리들을 향해서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어이, 주눅들지 말고 얼렁들 쏘소. 나도 시원하게 죽을라네."

그리고 최동희는 두손을 번쩍 들었다.

"대한민국 만세!""대한민국 만세!""대한민국 만세!"

칠거리의 광장은 군중들의 숨소리마저도 정지시키고 있었다.

무서운 침묵이 대지를 뒤덮고 있었다. 광장의 시계는 10시를 지나고 있었다.

8월의 더위와 , 두 사람이 애매하게 죽어간 답답중에 그래도 최동희의 용감한 만세는 두고두고 청량한 기억으로 살아있을 것 같았다.

<팔월의 칠거리>중에서

 

 

관련기사 http://www.jh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54978

 

 

업데이트 202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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