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문화원

시인 문인호(1943~)

 

 

 

경력사항

국어국문학사

문학평론, , 아동문학 등단

학국문협, 국제펜본부, 현대시인협 회원

공무원문학, 문학춘추, 서석문학, 편집위원 역임

광주문협 부회장, 전남문협 운영위원 및 이사, 무등문학 회장 역임

‘12년도 문화체육관광부, ’15년도 한국예술인복지재단 파견작가

현 현대문예 부주간, 동산문학 편집위원, 및 심사위원

박용하 제20회 백일장. * 419 50주년 전국백일장대회, * 함평나비축제 전국학생백일장 심사위원 외.

광주예총상, 광주문학상 외 다수

저서 내 언어의 화려한 외출6

 

약 력

한국문협, 국제펜본부회원

광주문협 부회장 역임

수상 : 광주문학상 외

저서 : 『내 언어의 화려한 외출』외 6권

   

 시인에게
        문 인 호

한 자루의 연필이라도
심지 곧게 세우면
천 자루 칼도 녹여내고
심지 한 번 더 세우면
천 년의 세월도 더 정의로우리

천 자루의 칼로도
연필 심지 하나 자를 수 없다는
곧음의 진리가
눈 떠 있는 세상이라 믿는다면
빈손이라도 꽃은 들리리

시인들이여
양지의 고요를 깨뜨려라
찬바람 몰아친 음지에 귀 기울이고
깃발보다 낮을지라도
곧은 심지 세운 연필이 되어라.


                                    -전남일보 원고

 

 

 


                                  1

 시가 다른 갈래와 다른 점이 있다면 작은 물음에서 사물의 근본적 핵심을 미적 감각으로 육화 시키는 상상력의 발로에 있음이다.
 시인을 통하여 하나의 사물이 이루고 있는 지적 이미지야 분별력이 조금만 있다면 알아차릴 수 있지만 일단 시적 대상이 된 사물은 지적 이미지의 질서를 파괴하는 신이 <新異>함을 갖는 심안心眼과 영안靈眼의 깨어남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시의 언어는 명료한 과학적 언어보다 더 명료하고 분별력을 요구받지 않는 대신 일상어에서 요구되는 질서 너머의 또 다른 질서가 모색되어 짐으로써 사람들의 심미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그 목적이 있다 하겠다.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심미적 욕구’는 표현론적 관점에서나 효용론적 관점에서 대상에 대한 철저한 탐닉과 이를 통한 세계와 관계 지어지는 이미지들이 확장되는 과정에서 시대의 현상이 반영되고 갈등관계가 완화되어지는 과정에서 얽히고설킨 긴장의 고삐가 풀리는 카타르시스를 말한다.
 시는 어떤 것인가? 라고 묻는다면 흔히 세계의 자아 화라고 배워왔고 읽혔다. 종속이 아닌 일체로서의 구조를 말한다.
 이입된 사물의 이미지를 시라는 갈래를 통하여 자아화가 될 성 십지는 않아서인지 독자는 동일화된 대등한 관계로 관계를 설정하기도 한다.
 어떤 입장에 서든 시가 시로서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포용하는 심상과 정서적 안정성에 바탕을 둔 재생적 에너지를 제공할 수 있는 원천이 되어야 한다.
 진리는 어떤 사물 속에 내재되어 있는 본질이라고 플라톤은 이미 간파하였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시인은 철학을 앞선 진리 탐구의 선도자가 아닌가 싶다.
 시인의 눈은 언제나 현미경처럼 그 초점은 내재된 사물의 이미지를 찾고 들추어내는 작업자이기 때문이다.
 풍부한 상상력과 흩어진 이미지들의 조합자로서의 언어의 연술사. 그러한 작업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철학과 과학을 선도하는 상상력을 통하여 아니 이보다 더 몽상적 관심으로 뚫어보고 부셔보고 다시 여러 형태로 맞춰보는 과정의 즐거움도 즐거움이려니와 이를 읽는 사람들의 가슴도 설레게 하는 역할도 한다.
 그래서 시인은 과학자의 분석보다 예리한 통찰력이 필요하고 철학자보다 진지한 가슴이 필요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작품 해설에 앞서 시인이 갖추어야 할 기본 양식과 좋은 작품을 쓰기위한 최소한의 각성이 누구보다 요구되는 신인작가이기에 앞으로의 정진을 위한 참고사항으로 서두에 말해둔다.
 황조한 시인을 알게 된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필자와 절친한 지인을 통하여 소개를 받고 그 자리에서 그의 작품을 처음 대하게 되었다.    선입견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바라본 그의 작품은 비교적 단조롭고 덜 더듬어진 짧은 작품  이였으나 형식이 잘 갖추어져 있었고 언어의 조합이 탄탄하여 조금만 잘 다듬으면 좋은 시인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몇 차례 만나 작품을 논하고 첨삭하면서 이 정도면 처녀시집으로서는 괜찮겠다싶어 시집 발간에 긍정적으로 찬성 했으며 이 한 권의 책을 통하여 보다 많은 생각의 축적과 앞을 내다볼 수 있는 새로운 창작의 거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작품의 해설도 필자가 쓰게 된 동기가 되었다.
                                
                                          2

 시의 주제는 대부분 체험을 통하여 습득된 정서를 하나의 소재를 통하여 표출해낸다. 여기에서 빠트릴 수 없는 것이 ‘그리움으로 출발한다는 점’이다. 세월은 물과 같이 흘러서 잡을 수 없으니 흘러간 것에 대한 아쉬움은 필연적으로 가슴 한 구석자리를 차지하고 별처럼 반짝이고 있으니 그 반짝임이 바로 그리움의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산자락 언덕 위에
길따라 펼쳐진
잊혀진 고향길
 
어깨를 내어주는
나무같은 사람도
세월 가니 추억만 남기고
떠나 버렸고

슬퍼하고 기뻐했던
순수의 감정들
이제는 모두
버려지고 없다

고샅길을 쓸쓸히
풀꽃이 자리잡고
마을 앞 당산나무는
기력을 잃었다

                - 잊혀진 고향 전문

 현대인은 모두 고향을 잊었다. 어쩌면 잊은 게 아니라 잃었다는 표현이 타당하지 않을까!   70년대 80년대를 지나오면서 잘 살아보자는 일념으로 농촌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게 되었고 산업화의 현장의 도시는 급격한 팽창을 맞게 된다.
 살아남기 위한 생존경쟁의 치열함 속에서 고향은 점점 잊혀지고 고향마을은 생기를 잃어가는 낙후된 곳으로 전락되었다. 지금 한창 자라는 젊은이들이야 고향의 정겨움과 그 속에서 체험되어지는 자연과 대인관계의 긴밀함 속에서 형성된 정서는 예초부터 없겠지만 대다수의 나이든 사람이라면 잊혀진 기억 너머의 고향을 그리움 속에 남기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잊혀진 고향>에서 독자들에게 남겨준 것은 개인적, 집단적 이기주의에 매몰되고 파개된 게젤샤프트의 이익사회 속에서 사람의 냄새가 나고 공동체적 관심과 어루만짐이 있었던 농경사회(1980년대 이후)의 인정이 넘쳐나는 게마인샤프트 적 옛 시골 고향의 그리움과 변모해버린 자연 환경을 소회하는 시간을 제공해 주고 있다.
 이러한 작품을 대표하는 소설로는 단편 황석영의 <삼천포 가는 길>에서 이루어지는 고향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을 품고 귀향하는 3명의 주인공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나를 맞아 줄 거라는 고향은 이미 파괴되어버린 쓸쓸한 곳, 낯선 곳으로 변모해 버렸고 박재삼의 시 <노을 타는 가을 강>에서는 고향마을의 자연이 주었던 강이 그리워 해 지는 줄도 모르고 노을 진 강가에서 옛것과 회후하는 모습에서 보듯이 ‘어깨 내어주던 곳’ 그 많던 그리운 얼굴들이 오버랩 되어 진 골목길은 잡초로, 당당히 푸르르고 그 그늘아래 더불어 살던 이야기 소리 들을 수 없으니 당산나무도 기력을 잃었다는 시인의 고향에 대한 감회가 어찌 황 시인만의 만감이겠는가!
 고향을 소재로 창작한 시가 아니라도 작품 속에서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고향의 정취를 들어내고 있는 작품으로 <빈탄에서>, <목사고을 시장> 등 여러 작품에 내재되어 시적 자아의 내포적 의미를 들어내고 있다.

삶의 공간
볼거리 먹을거리
지역민 소통의 장이다.

악장 속에 펼쳐진 음률
전통시장 알리는
서민적인 장터

축제의 한 마당
우리 것이 좋아라
얼씨구 절씨구
어울어진 오일 장

             -목사골의 오일 장 전문

 오일장은 누구나 좋아한다. 남녀노소, 도시인이나 시골사람이나 가리지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인간들이 향유하고 있는 본성적인 게마인샤프트 적인 공동체적 동질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것이요 누구에게나 열어주는 장을 제공하는 공간으로서 삶의 활력을 제공해 주는 정이 듬뿍 담긴 볼거리와 먹을거리를  아낌없이 나누는 즐거움을 공유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1연에서는 ‘볼거리/ 먹을거리/ 지역민 소통의 장/’에서 보고 느끼고 맛보면서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는 열려있는 공동체의 한마당을 2연에서는 축제적 의미로써의 음악이 등장한다. 음악은 무용을 지향하는 것이고 춤이라는 움직임을 통하여 쾌락의 최고 정점인 ‘얼씨구 절씨구’ 국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추임새가 저절로 흥을 돋군다.
  그리고 이 시가 시각에서(볼거리) 촉각(먹거리)으로 이동시켜가며 청각(펼쳐진 음률)으로, 3연에서 ‘얼씨구 절씨구/ 어울어진 오일 장‘은 동적 즐거움에 회화적 전경으로 옮겨 줌으로서 응고된 정서에 윤활유를 제공해 주고 있다.
 황시인은 각각의 자연이 보여주는 색깔과 감응을 큰 기교 부리지 않고 제 가슴속에 이입시켜 제 것으로 동일화시켜 줌으로서 미적 심상의 기슭으로 옮겨준다.

꽃이 피는 것을
보기만 해도
마음이 떨린다.

마을 시냇가
물 흐르는 소리에도
가슴이 뛴다.
꽃이 지는 것은
바라만 보아도
눈물이 흐르고

메마른 개천은
바라만 봐도
쓸쓸해 진다.

            - 오는 것과 가는 것  전문

4연 12행시로서 1연과 3연, 2연과 4연을 하나의 대상을 소재로 삼아 오는 것과 가는 것을 의미화하고 있다.
 꽃이 피는 것과 꽃이 지는 것을, 물이 흐르는 개천과 메말라버린 개천을, 쾌미(快味)와 비애(悲哀)로 대응시켜 있음과 없음의 거리, 생과 멸의 존재론적 관점에서 텍스트를 이어주고 있다.
 꽃을 대상으로 한 1연과 3연 끝 행 ‘마음이 떨리고’ 는 두려운 마음에서의 떨림이 아니라 설렘의 역설적 표현이며, ‘눈물이 흐르고’ 는 상실감의 내포적 언어며, 2연과 4연의 끝 행 ‘가슴이 뛴다’ 와 ‘쓸쓸해진다‘ 도 각각의 대상이 갖고 있는 속성을 한 부류의 이미지로 관통시켜 준다는 것은,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탐닉이 없었다면 쓸 수 없는 좋은 작품이라 여겨진다.
 인간의 감정들은 많은 여로를 통하여 표출되어지나 그 여로의 종착점은 하나다. 그것은 숙명적인 생멸의 귀로 속에서 이에 구속되지 않고 보다 보장된 삶을 유지하고자 힘쓴다. 여기서 말하는 보람이란 보다 나은 삶의 추구에서 얻어지는 美的관계로, 측은지심을 말 할 수 있다. 우월적 존재로서의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아니라, 대등한 관계로서의 인류애가 바로 그것이다. 다음 시를 감상해 보자.

봉사 한다는 것은 사랑을 주는 것이다.
작은 것으로 시작된 생각의 실천이다.
주는 마음 나누는 마음 함께하는 외로운 행동
모두가 행복해 질 수 있다면 최선을 다 하는 것이야
곤경에 처한 이에게 티 내지 않은 희생으로
보살펴 줄 수 있는 용기
나눔속에 피어나 희망의 싹 다독여 가꾸어 주는
버팀목이 되어준 삶.

               - 나를 아름답게 하는 것  전문

 남을 돕는 것은 사랑이고, 사랑은 작은 것 하나부터 이루어 나가는 생각의 실천이라고 시인은 강조한다. 그렇다, 언어는 마음의 전령이고 실천의 동기를 부여하는 각성재의 역할을 한다.
 언어학적 측면에서 본다면 생각 없는 언어는 소리요, 존재론적 측면에서 본다면 언어가 없는 생각은 무가치한 것이다. 그래서 언어는 존재의 집, 이라고 말한 하이데거의 말이 의미심장한 진리로 와 닿는 것이다.
 2연에서 내어주고 나누어주는 마음은 동의적 성격을 갖고 있는듯하나, 여기서 ‘내어준다’는 것은 갖은 것 전부의 뜻이 담겨져 있고, ‘나누어 주는’ 에서는 내가 갖고 있는 일부를 의미하는 것으로, 전적으로 수해자의 입장을 고려하는 겸양지심관계로서의 위치에서 배려하는 마음에서만 행할 수 있는 심상을 그 밑바탕에 깔고 있다. 이러한 실천적 행위는 그저 오는 것이 아니고, 희생을 각오해야만 할 수 있는 용기로서,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져야할 덕목 중에 덕목을, 시를 통하여 울림을 주는 외침이라고 본다.
 위에서 잠깐 언급한 대등의 관계로서의 나눔에 대한 설정이, 허심이 아니라는 점을 이 시를 통하여 말해주고 있다.

바람과
비와
천둥 맞고
바라보는 오늘

당신도 귀하고
나도 귀하다.

          -인생  전문

 이 시의 1연의 ‘바람’과 ‘비’와 ‘천둥’은, 생을 살아가면서 닥쳐오는 온갖 역경을 함의하고 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피할 수 없는 부딪침의 아픔이라고 한다면, 그 부딪침의 원인이 바로 시련이고 역경이고 고난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에서 시인은 살아오면서, 살아간다는 무든 행위가 육체적, 심적으로 고난임을 깨달고 그 삶속에서 생존하는 어느 누구라도 자신의 삶처럼 존귀하다는 것을 이 짧은 시를 통하여 인과관계의 갈등을 치유시키는 방법을 제시해 주고 있다.
 더욱이 이 시인은 지난날의 고난과 방황을 통한 성찰로서 바라보는 해안을 가졌기에 ‘너’와 ‘나’가 동일한 존재로서 귀하다고 말한다. <나를 아름답게 하는 것>의 출발점이자 종착지로서의 확고한 신념의 피력임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등단하고 첫 시집을 내는 시인들의 작품들을 보면 대체로 대동소이한 소재로 자연을 노래하고 사랑을 그리워하며 옛 추억 속에 숨겨진 하나의 대상을 들추어 자신이 느낀 서정에 단조로운 색체를 입힌다. 황시인의 시도 조금은 어수룩하고 덜 다듬어진 어체로 세상을 기웃거리고 있지만 전반적인 흐름으로 보아 정진의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다.
 시의 본류가 서정성이라고 보고 자연에 대한 그의 정서는 어떠한지 살펴보기로 하자

라일락 꽃향기로
가득한 마당을 지나면
장미가 붉게 피고지고
보랏빛 나팔꽃도
인사하는 아침

작은 텃밭에 송송 오른
부추도 살짝 데쳐서
초장에 맛 즐기고
저절로 자라
초연하게 세월 친
돌나물도 따 먹었지.

세상 사는 일
가진 것 없어도
온갖것 가슴에 품었으니
여기가 낙원이로고...

          - 계절 선물  전문

 이 시를 읽으면서 필자는 시경에 실려 있는 시 한 수가 생각났다. 자연과 벗하며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탓하지 않고 자연에 맡기며 사는 촌부의 무욕한 삶. 이러한 삶을 시경에서 이리 표현 했다.

 ‘배고프면 농사지어 배불리고 / 목마르면 샘을 파 물 마시니 / 내게 임금은 무엇이란 말인가.’ 누군가의 구속 없이 스스로의 방법으로 살아간다면 이보다 더 좋은 삶이 어디 있으랴   시가 언어의 예술이고 유희라면 이러한 시를 생산해 내는 시인이야말로 예술인 중에 예술인이고 낙을 아는 풍류 중에 풍류인 선비가 아니랴
 라일락꽃에 피는 봄과 붉은 장미가 만개한 여름, 초가을 울타리를 타고 올라 피어나는 나팔꽃이 피는 시절이라면 자연을 관조하고 즐기는 시절로서 여기에 텃밭에 씨 뿌려 자란 온갖 채소며 자연에서 얻은 돌나물까지 덤으로 얻은 행복감. 누군들 무릉도원이라 부정하랴만, 진정한 시인이 되고자 한다면 개인적인 낙 보다는, 한 발 더 나가 더불어 자연을 소유하는 즐거움의 시였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고사리를 케어 먹으며 불렀던 시 안빈낙도 하고자하는 것은 인간의 순수 본성이라 할지라도 현대를 살아가는 시인이라면, 그 본성을 뛰어넘어 세상을 고민하는 마지막 행의 ‘여기가 낙원이로고’의 삶에 대한 만족이, 더불어 나누는 곳으로 이동시킬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물론 이 시를 쓰게 된 동기가 잠시 잠깐 머물다간 유로의 산물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지만 여행지에서 쓴 시들이 대체적으로 자족하는 것으로 만족하는데 이러한 생각을 뛰어 넘어 詩는 언제나 인간관계와의 삶에 대한 반영으로서 설정되어야 하고, 자연을 대한 주관적 감흥에 있어서도 인간관계와의 배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황시인의 삶의 본질이 시로서만 담아낸 것은 아니다. 그는 라이온스클럽활동을 통하여 희생정신과 봉사를 생활 속에서 실천해 내는 습성이 배어있다. 그런 점에서 황시인이 시를 통하여 사회에 지향점을 잡아주는 덕목의 일환으로, 시인이 나누고 있는 행위가 시를 통하여 발휘되었으면, 하는 기대를 해보면서 그 기대를 갖게 하는 시를 살펴보자.

기쁨은 비워진 두 마음이
부딪힐 때 흔들리는 오묘한 파장

노래를 부르는 것은
깊은 곳을 표현하는 소리

거울 속 비춰진
흰 머리칼은 세월의 자취

사는 날이 익숙해져
이런 게 있었구나 알아가는 중

                   - 알아가는 중  전문


 사람은 살아가면서 삶의 진지성에 눈 Em게 된다. 1연에서의 ‘기쁨’은 부딪힐 때 의 충동에 의한 파장으로 이해되는 화두를 던져주고 있다. ‘비워진 두 마음’은 순수로서의 관계가 정립되어지는 상태라고 본다면, 욕망의 충돌이 아니라는 것이다.
 1연과 2연이 살아가면서 심정적으로 감흥 되는 감성의 영역이라면 3연과 4연은 이성적 영역으로 세월이 가벼워진 만큼 세상으로 눈 떠가는 과정을 설정하고 있다.
 이런 게 있었구나, 깨달은 순간 시인으로서 보다 간결하고, 의미화 된 시다운 시에 눈을 뜨게 되겠구나 하는 확신이 선다.
 시 창작에 관한 한, 창작욕망을 통제하는 행위에서 벗어나, 자기가 갖고 있는 감성적 이성적 욕망을 발산시키는 데 주저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어디에 가더라도
소식만은
남겨주오

가고 오고
하는 것은
그대 맘 이겠지만

세월가면
잊혀질지
내 맘도 모른다오.

           - 내 마음   전문

 사랑은 인간 본성의 원형질에 속한다. 어쩌면 자연계에 살아있는 것들의 원천적 에너지가 사랑일 것이다. 사랑은 지극히 관념적이어서 그 크기의 정도나 그 깊이의 길이를 측량하여 말 할 수 없다. 필자가 <내 마음>의 해설에서 작품 중에는 ‘사랑’이란 단어가 하나도 없는데 왜 사랑이 어쨌고 저쨌고 하는 것은 시의 외연이야 독자들이 읽고 있는 <내 마음>그대로 이겠으나 내포적 언어가 함의하고 있는 것들이, 직감적으로 이미 화자의 곁을 떠나가 버린 사랑하는 ‘그’에게 소망하는 말들이 의미심장하게 곁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1연의 ‘어디 가더라도 소식만’에서 모든 것 다는 아니어도 좋으니 소식만이라도 있기를 기원한다. 2연의 ‘가고 오고하는 것은 그대 맘’이란 숨겨진 뜻은 1연과도 3연과도 긴밀한 소통의 통로로 작용하고 있는 하나의 타의적 강요로서 3연이 말 하고 있듯이 절대 너를 잊을 수 없을 것이며 또한 떠나가고 없는 ‘그’를 역설적으로 협박하고 있다. 시의 언어는 그런 것이다. 아이러니 하면서도 직설적이고 은유적이면서도 직유적인 기법들이 외연적 표현들을 내포적 언어로 변용시켜, 사고를 분산하고 그래서 독자들이 갖고 있는 정서 속에 깊이 천착하여 공감각적 또는 개별적 감성으로 뿌리내려지는 것이다.
 황시인은 유달리 사랑에 대한 연민과 그리움의 시가 많다. <눈시울 젖어>, <그리움>, <달팽이 사랑>, <당신 一 二>, <독백>, <멍 一 二> 등이 그렇다. 뿐만 아니라 삶에 대한 지지성과 자기 성찰에 관한 이해도를 높여주고 삶의 의미를 묻는 행위가 조금은 서툴지만 창작과정을 겪어가면서 좋은 작품을 생산할 것으로 믿는다.

 


                                    3.

 시는 논리적이거나 대상과의 관계가 절대적일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시의 언어는 논리적이거나 절대적이면 시가 아닌 현학적인 본질을 논하는 과학적 측면에서만 유용해 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무런 유기적 이미지가 없는 것들의 조합은 더 위험하다.
 지금까지 작품해설이라는 형식을 빌어서 8작품을 발취해 나름대로 부언하였다. 앞으로 더 좋은 시인이 되고자 한다면, 자신이 지니고 있는 단점의 한계를 뛰어넘어야 한다.
 한편의 시에 만족하게 되면 포프리즘에 빠지게 되고, 정진의 기회를 놓치고 만다.
‘나는 시인이야’라는 명찰을 버리고 새로움에 도전하는 데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고 현재의 위치에서 항상 배고파해야 한다. 사물을 관찰 하되 곤충의 눈으로 살펴야 한다. 지금까지는 평이한 언어의 조합이었다면, 언어 선택에 있어서도 심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작품이 탄생되면 갈고닦는 일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처음 내는 시집을 디딤돌로 삼아 보다 명징하고 윤곽이 있는 작품, 모든 사람들에게 읽힘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작품. 첫 눈에 각인될 수 있는 그런 시를 써야 할 것이다.
  황시인의 문체적 특성은 짧고 간결하게 쓰려는 흔적이 많다. 참 권장하고 싶은 장점이다. 첫 시집발간을 축하하며 앞으로 보다 짧지만 담아내고 있는 내포적 의미가 장래를 약속해 주는 듯싶다. 울림이 있는 시로서 새로운 의미로 새겨지고 가슴으로 그려지는 회화적인 시를 기대해본다.

 

 

언어로 찾아가는 시의 유로(流路 - 황조한시집『 꽃씨 도둑 』을 중심으로

 

 

                                                        시인 ‧ 문학평론가  문 인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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