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문화원

어머니 자궁같은 고향땅서… 삶과 자연을 읊조리다

‘당신은 북천에서…’ 펴낸 이대흠 시인 / 2011년 전남 장흥 탐진강변 돌아와 / 8년간 쓴 시 묶어… 남도의 서정 물씬 / 보고 싶은 이를 향한 지쳐버린 마음 / 희미한 흔적으로 남은 그리움 묘사 / 곰살맞은 사투리 애잔한 시어로 녹여

“장구를 치다가 가죽에 번져 있는 얼룩을 본 적이 있다 커다란 몸뚱이를 감쌌던 소가죽이 몸을 다 잃고 매 맞아가면서도 놓지 않아 말라붙은 소 울음소리// 그날의 소리는 죽지 않았고 떠나간 자들은 아주 떠나지 못한다”

얼룩 속에서 그리운 이의 얼굴을 발견한 적이 있는가. 시인은 “누군가를 오래 그리다 보면 문득 그의 얼굴이 얼룩 속에서 살아난다 때로는 마음에 두지 않았던 얼굴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뜻하지 않았을지라도 모르는 얼굴은 아니다”고 이어간다. 그 얼굴은 “잊힌 한때에 내가 그리워했던 얼굴이거나 나를 잊지 못한 누군가가 난데없이 방문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대흠(50) 시인이 고향인 전남 장흥 탐진강변에 돌아와 살면서 8년 만에 상재한 새 시집 ‘당신은 북천에서 온 사람’(창비·사진)에 수록된 ‘얼룩의 얼굴’이다.

시인에게 얼룩은 ‘말라붙은 울음소리’에 가깝다. 보고 싶고 그리워서 울다가 얼룩으로 남아 눌어붙은 울음소리. 목놓아 불러봐도 더 이상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는 지칠 대로 지친 그리움. 그것은 시간이 흐른다고 완전히 소거되지도 않고 희미한 흔적이나 추상의 무늬로 남지만, 결국 그 흐릿한 얼룩에서도 끝내 보고 싶은 이의 얼굴과 마주하고 만다. 뜻하지 않은 얼굴이 떠오를 때도 있지만 그이는 정작 나를 잊지 못한 누군가여서 모른다고 잡아뗄 얼굴도 아닌 것이다.

“사무쳐 잊히지 않는 이름이 있다면 목련이라 해야겠다 애써 지우려 하면 오히려 음각으로 새겨지는 그 이름을 연꽃으로 모시지 않으면 어떻게 견딜 수 있으랴 한때 내 그리움은 겨울 목련처럼 앙상하였으나 치통처럼 저리 다시 꽃 돋는 것이니”

시인은 ‘목련’에서도 그리움을 치통처럼 앓는다. 그는 “그리움이 아니었다면 어찌 꽃폈겠냐고” 진술하면서도 “또 바람에 쓸쓸히 질 것”인데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일지 모른다고 되뇐다. 모든 ‘사랑의 습관’이 쓸쓸한 건 아니다. 때로는 ‘너무 성스러워 고맙고’ 고맙기도 하다. ‘홀아비 만수 형님’이 객지를 삼십 년 넘게 떠돌아다니다 제주도에 집을 장만해 칠순의 부모를 모셨는데 도란거리던 노인들이 ‘중늙은이 아들’이 ‘젖먹이 때인 듯 살포시’ 잠들자 ‘사랑의 습관’을 되살렸던 모양이다.

 

 

 

 


고향에 돌아와 쓴 시편들을 8년 만에 새 시집으로 묶어낸 이대흠 시인. 그는 “막연했던 고향을 소화하는 과정에서 신화적 상상력에 방점을 두었다”고 말했다.
창비 제공

 


“꿈결인 듯 아닌 듯 파도 소리가 막 들려오더래요 처음엔 파도가 파도를 베끼는 소린 줄 알았다가 바람이 파도를 일으키는 소린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몸이 몸을 읽어가는 소리였는데요 칠십 줄 넘은 노인들이 한 오십년 읽어왔던 서로의 몸을 다시 읽는 소리였는데요// 처음에는 얼굴이 붉어졌는데 가만 생각하니 너무 성스러워 고맙고 고맙더래요 애 낳기에는 늦어버린 허공이 된 몸들이 애를 쓰고 있었는데 그 소리에 더 묻히다 보니 거기서 나오는 바람 소리와 파도 소리가 혼자 노는 게 아니더래요// 그래요 그것은 우주가 알 스는 소리였는데요 우주의 숨을 낳고 기르다가 다시 우주로 돌려주는 것이었는데요”(‘성스러운 밤’)

이대흠은 2011년 고향에 돌아온 이후 쓴 시편들을 수록한 이번 시집에 생에 대한 성찰과 탐진강변 자연 풍광, 5년 전 작고한 아버지의 삶, ‘북천’에 대한 그리움들을 고르게 담았다. 탐진강변에서는 ‘물의 경전’을 읽는다. “언제고 어느 때고 세월은 도둑처럼 다녀가고/ 물의 말씀을 화석으로 남기려다가/ 끝내는 물이 되어 흘러가는 무모한 사람들// …// 보아라/ 서러운 것/ 바라는 것/ 생의 환희 같은 것이/ 다만 여백으로 기록되는 물의 경전을 보아라” 시인에게 ‘북천’이란 해탈과 적멸의 공간이다. 그 북천에서는 “사람도 사랑도 새도 나비도 죽음도/ 꽃이나 별떼도 하나로”(‘북천의 물’) 흐르고, “사랑을 할 줄만 알아서/ 무엇이든 다 주고/ 자신마저 남기지 않는다”(‘당신은 북천에서 온 사람’)고 시인은 쓴다.

“달이 빛나서 북천이 밝습니다/ 북천이 밝아서 당신이 보입니다/ 나를 보고 웃는 낯빛이 고요합니다// 단 하나의 사랑을 지어 달로 띄워 올립니다”(‘북천의 달빛’)

“와보랑께와보랑께로/ 거보랑께거보랑께로/ 그란당께그란당께로”(‘강진’)처럼 질펀하고 곰살궂은 남도 사투리도 시어로 녹여낸 이대흠은 “말이 지닌 본디의 것을 살리는 데 애를 썼다/ 조금 더 나에게 가까워졌다/ 너에게 밀착되었다”고 시인의 말에 적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출처: http://www.segye.com/newsView/20180830004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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