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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68

[시도지정 유형문화재 제 196호] 미륵사석불좌상 미륵사석불좌상 (彌勒寺石佛坐像) 종 목 시도유형문화재 제196호 명 칭 미륵사석불좌상 (彌勒寺石佛坐像) 분 류 유물/불교조각/석조/불상 수량/면적 1구(軀) 지정(등록)일 2002-11-15 시 대 고려시대 이 불상은 1930년대까지 야산의 산 속에 묻혀 머리부분만 노출되어 있던 것을 그 후 미륵사의 법당 안에 모셔 봉안하고 있다. 거대한 자연석을 다듬어 앞부분에는 불상을 조각하고 뒷면은 조각없이 그대로 처리하였는데, 높이 280㎝, 어깨폭 148㎝, 앉은 높이가 3m에 달하는 거불(巨佛)이다. 워낙 거대한 자연석을 이용하여 조각하여서인지 전체적으로 둔중한 느낌을 주는 한편 얼굴과 옷자락의 조각은 사실적인 수법을 보여준다. 머리에는 상투 모양의 육계가 큼직하게 솟아 있고, 소라 모양의 머리칼인 나발이 표.. 2018. 3. 26.
[시도지정 문화재자료 제 169호] 동백정 동백정 (冬柏亭) 종 목 문화재자료 제169호 명 칭 동백정 (冬柏亭) 분 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조경건축/누정 수량/면적 1동 지정(등록)일 1988-12-21 시 대 미분류 장동면 장항마을 옆으로 흐르는 강가의 동산에 자리잡고 있는 정자이다. 조선 숙종 41년(1715)경부터 마을 사람들이 참석한 대동계의 집회소로 이용하던 마을 정자이다. 처음 지은 것은 세조 4년(1458) 동촌 김린(1392∼1474)이 관직에서 은퇴한 뒤, 은거하기 위해 지은 가정사(假亭舍)로부터 시작된다. 가정사는 선조 17년(1584) 후손인 김성장이 고쳐 지었고 김린이 심어 놓았던 동백나무가 울창하여 정자의 이름을 ‘동백정’이라 고쳤다. 지금 있는 건물은 1985년 후손들이 다시 고쳐 지은 것이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 2018. 3. 26.
[시도지정 문화재자료 제 161호] 장흥 고영완가옥 장흥 고영완가옥[長興高永完家屋] 지정종목 문화재자료 지정번호 전남문화재자료 제161호 지정일 1988년 03월 16일 시대 조선 종류/분류 가옥 1988년 3월 16일 전라남도문화재자료 제161호로 지정되었다. 고영완의 할아버지 고재극이 1852년 건립하였다. 원래 이곳에는 정화사(淨化寺)라는 절이 있어 정화사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一자형 겹집으로 남부지방에 흔한 목조 기와집이다. 안채는 정면 5칸, 측면 2칸에 전퇴를 둔 목조 기와 팔작지붕집이다. 1m 가량의 높은 축대 위에 외벌대의 기단으로 자리를 잡고 다듬은 원형 주춧돌을 놓았으며 바깥기둥인 평주(平柱)는 원형으로, 안기둥인 고주(高柱)는 사각으로 세웠다. 기둥 위에는 첨차와 소로, 보아지, 주두 등으로 결구하였으며 그 위에는 다시 장혀와 팔각형.. 2018. 3. 26.
[시도지정 문화재자료 제 144호] 장흥 회령진성 장흥회령진성 (長興會寧鎭城) 종 목 문화재자료 제144호 명 칭 장흥회령진성 (長興會寧鎭城) 분 류 유적건조물/정치국방/성/성곽 수량/면적 일원 지정(등록)일 1987-01-15 시 대 미분류 장흥군 회진면 회진리 마을의 뒷산을 이용하여 쌓은 부정형 성으로. 현재는 육지에 이어진 덕도와 노력도, 대마도 등의 섬들로 둘러싸여 있다. 회령진성은 성종 21년(1490) 4월에 쌓은 만호진 성으로 남해에 출몰하는 왜구를 소탕하는 수군진이었다. 회령진이 처음 설치된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조선 초기에 진이 설치되었다. 전쟁시에는 수군의 집결장소로 사용되었고, 평상시에는 군량과 군기를 쌓아두는 보급기지의 역할을 하였다. 남아있는 성벽의 총 길이는 616m이며, 동벽은 벼랑 위에 쌓.. 2018. 3. 26.
[시도지정 문화재자료 제 73호] 월산재 월산재 (月山齋) 종 목 문화재자료 제69호 명 칭 영석재 (永錫齋) 분 류 유적건조물/인물사건/인물기념/사우 수량/면적 일곽 지정(등록)일 1984-02-29 시 대 미분류 월산재는 영광 김씨들이 중심이 되어 후손들의 교육과 인재양성을 위해 조선 순조 4년(1824)에 지은 건물이다. 사당인 용강자, 강당인 월산재, 내삼문, 외삼문, 관리사, 창고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체적인 모습은 가장 윗부분에 용강사가 있고 아래로 월산재가 있으며 월산재 앞으로 관리사와 창고가 대칭으로 자리잡고 있다. 고종 19년(1882)에 사림들이 지은 용강사는 나옹 김광범·우수당 김성범·죽옹 김정서·우수 김상범·학남 김정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앞면 3칸·옆면 1칸 크기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 2018. 3. 26.
[시도지정 문화재자료 제 71호]만수사 문화재자료 제71호 만수사 (萬壽祠) 분 류 유적건조물/인물사건/인물기념/사우 수량/면적 일곽 지정(등록)일 1984.02.29 소 재 지 전남 장흥군 장동면 만수길 25-121 (만년리) 시 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안씨종중 고려시대의 유학자 안향(1243∼1306)을 기리기 위해 그의 후손들이 1946년부터 1951년까지 지은 사당이다. 안원형·안면·안정생·주세붕·안중목을 배향하였으며 안중근 의사를 배향한 해동사를 별도로 마련하여 놓았다. 안향은 고려시대 유학자로 고려 원종 1년(1260)에 문과에 합격한 후 교서당, 국자사업, 도첨의중찬 등 많은 벼슬을 지냈으며, 후진양성과 유학을 확립하는데 힘썼다. 안원형은 밀직사, 평장사 등을 지낸 인물이며 안면은 사간원정언, 정당문학 등을 지냈고.. 2018. 3. 26.
[시도지정 문화재자료 70호] 강성서원 강성서원 (江城書院) 종 목 문화재자료 제70호 명 칭 강성서원 (江城書院) 분 류 유적건조물/교육문화/교육기관/서원 수량/면적 일곽 지정(등록)일 1984-02-29 시 대 미분류 삼우당 문익점(1329∼1398)과 풍암 문위세(1534∼1600)를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문익점은 고려시대의 문신으로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들여와 우리나라 의생활을 크게 변화시켰다. 문위세는 문익점의 9대손으로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웠고 정유재란 때 많은 왜적을 물리쳤다. 원래 문위세를 추모하기 위해 인조 22년(1644)에 월천사를 지었는데, 영조 10년(1734)에 문익점의 위패를 모시면서 그를 중심으로 하고 문위세를 추가로 모시게 되었다. 정조 9년(1785) 임금으로부터 ‘강성’이라는 현판을 받아 .. 2018. 3. 26.
[시도지정 문화재자료 제 69호] 영석재 문화재자료 제69호 영석재 (永錫齋) 종 목 문화재자료 제69호 명 칭 영석재 (永錫齋) 분 류 유적건조물/인물사건/인물기념/사우 수량/면적 일곽 지정(등록)일 1984-02-29 시 대 미분류 청강 이승(1556∼1628)을 추모하기 위해 후손들이 세운 건물로, 약 300여년 전 인천 이씨 후손들이 주체가 되어 지금 있는 자리에 세운 것으로 전한다. 건물은 강당, 사당, 내삼문, 문간채, 관리사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영석재’라고 부르는 강당은 중앙에 있으며 사당은 별도로 담에 둘러싸여 있다. 강당 앞쪽으로 문간채가 있고 관리사와 창고는 오른쪽 아래에 자리잡고 있다. 강당은 앞면 5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금 있는 건물은 1912년 새로.. 2018. 3.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