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문화원

 국보 44호이자 통일신라시대 후기를 대표하는 석탑인 전남 장흥의 ‘보림사 남북 삼층석탑’이 일제강점기 당시 복원이 잘못된 채 지금까지 서 있는 것으로 29일 확인됐다. 사진은 조선총독부의 보림사 석탑 복원 공사(1934년 가을) 이전에 촬영된 것으로 보이는 남쪽 석탑이다. 탑 상륜부의 동그란 장식물인 보륜의 갯수가 4개지만 복원 이후엔 3개로 줄어든다. 사진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선총독부박물관의 유리 건판(소장품 번호 ‘건판036697’)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보림사 삼층석탑의 북쪽 탑으로 일제의 복원 공사 이전엔 상륜부 보륜의 갯수가 4개로 명확하게 확인된다. 사진은 중앙박물관 소장 조선총독부박물관의 유리건판(소장품 번호 ‘건판036669’)이다.

국보 44호이자 통일신라시대 후기의 대표적 석탑인 ‘보림사 남북 삼층석탑’(전남 장흥군)이 잘못 복원된 채 서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보림사 대적광전 앞에 남북방향으로 자리한 쌍둥이 탑인 보림사 석탑은 일제강점기이던 1934년 도굴에 따른 훼손으로 복원 공사가 이뤄졌지만 석탑 상륜부가 원형과 다르게 복원된 사실이 29일 확인됐다. 

80여년 만에 드러난 보림사 석탑의 복원 오류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 중인 일제강점기 당시의 유리건판 사진에서 확인된다. 유리건판은 조선총독부박물관이 식민지배를 목적으로 1909년부터 1945년까지 전국의 유적·유물 등을 촬영한 것이다. 

복원 2년 뒤인 1936년 3월 18일 촬영된 보림사 삼층석탑 중 남쪽 석탑. 복원 공사 이전에 4개이던 상륜부의 보륜 갯수가 3개로 줄어들었다. 복원을 잘못한 것이다. 사진은 중앙박물관 소장 조선총독부박물관의 유리건판(소장품 번호 ‘건판012690’).

 

▲복원 2년 뒤인 1936년 3월 18일 촬영된 보림사 삼층석탑 중 북쪽 석탑. 복원 공사 이전에 4개이던 상륜부의 보륜 갯수가 5개로 늘어났다. 남쪽 석탑에 있던 보륜 1개를 빼내 북쪽 탑에 설치함으로써 복원을 잘못한 것이다. 사진은 중앙박물관 소장 조선총독부박물관의 유리건판(소장품 번호 ‘건판012689’).

 

 문화재청과 보림사 등의 문헌자료를 보면, 보림사 쌍탑은 신라 경문왕(재위 861~875년) 때인 870년에 세워졌다. 이후 ‘1933년 겨울’에 도굴꾼들로 인해 탑의 일부가 훼손되자 조선총독부는 이듬 해인 ‘1934년 가을’에 복원공사를 했다. 

그런데 복원 시점을 전후한 유리건판 사진들을 비교·분석한 결과, 남북탑 상륜부의 보륜(寶輪·탑 꼭대기의 원반형 장식물) 갯수가 달라지는 등 복원 오류 사실이 드러났다.

복원 공사 전인 1930년대에 촬영된 것으로 보이는 남탑(중앙박물관 소장품 ‘건판 036697’)과 북탑(‘건판 036669’)의 보륜은 각각 4개씩으로 명확히 확인된다. 

하지만 복원 2년 뒤인 1936년 3월 18일에 촬영된 사진을 보면 남탑의 보륜은 3개(‘건판 012690’), 북탑의 보륜은 5개(‘건판 012689’)다. 남탑에 있던 4개의 보륜 중 1개가 북탑에 설치된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 김영민 박사(사진전문경력관)는 “보륜이 각 4개씩인 사진은 촬영 일자가 불명확하지만 전후 맥락상 1930년대 촬영된 것이며, 보륜 갯수가 달라진 사진은 복원 후인 1936년 3월 18일로 촬영 날짜가 명확하다”고 밝혔다. 

일제의 잘못된 복원이 고쳐지질 않은채 현재 보림사 대적광전 앞 마당에 서 있는 보림사 남북 삼층석탑(국보 44호). 각 석탑의 보륜이 4개씩이었지만 일제의 복원공사 이후 왼쪽의 북쪽 탑 상륜부의 보륜 갯수는 5개, 남쪽 탑 보륜은 3개로 쌍둥이 탑임에도 불구하고 높이, 비례가 맞지 않은 실정이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남북 석탑의 보륜 숫자가 달라지면서 보림사 석탑은 쌍둥이 탑임에도 불구, 높이나 비례가 맞지 않는 실정이다. 신라 경문왕이 선왕인 헌안왕을 위해 세워 1000여년 동안 유지돼온 석탑이 복원 잘못으로 상륜부의 원형을 잃어버린 것이다. 물론 당시의 잘못된 복원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당시 석탑의 원형 훼손이 일제의 고의에 의한 것인지, 단순한 실수 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

일제의 복원 오류가 고쳐지질 않고 80여년 째 그대로 서 있는 ‘보림사 남북 삼층석탑’(국보 44호). 문화재청 제공.

 

전문가들은 문화재청 등 관련 당국이 적극 나서 원형대로 재복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석탑 전문가인 박경식 교수(단국대 석주선박물관장)는 “유리건판은 말이 필요 없는 명확한 사진이다보니 문화재의 원형을 찾는데 매우 유용하고 중요한 역할을 해오고 있다”며 “더욱이 국보이니 만큼 정밀 조사를 거쳐 원형대로 복원하는 게 너무나 당연하다”고 밝혔다.

보림사 석탑의 복원 오류를 처음 제기한 경향신문 독자인 박계윤 장흥한의원 원장(48)은 “수십년 째 보림사를 찾고 있는데, 최근에 남북탑의 보륜 갯수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됐다”며 “이제 사진으로 확인된 이상 원형 복원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 원장은 “쌍둥이 탑인데 보륜 갯수가 3개, 5개로 각각 다르다보니 석탑 전체의 높이나 비례가 맞지 않아 의문이 들었다”며 “그 이후 보림사 석탑과 관련된 여러 자료들을 찾게 됐고, 결국 복원이 잘못된 것으로 확신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보림사 삼층석탑 가운데 남쪽 석탑의 보륜 부분. 일제의 복원공사 이전엔 4개 였으나 잘못된 복원으로 1개가 북쪽 탑에 설치되면서 3개만 남아있다.

보림사 삼층석탑 가운데 북쪽 석탑의 보륜 부분. 일제의 복원공사 이전엔 4개 였으나 잘못된 복원으로 5개가 됐다.

 

남북 석탑 사이의 가운데에 있는 석등과 함께 국보로 지정된 보림사 석탑은 전문가들 사이에선 9세기 후반 세워진 석탑들 가운데 전북 남원의 ‘실상사 동서 삼층석탑’(보물 37호)과 더불어 상륜부가 원형대로 잘 남아 있는 것으로 평가받아왔다. 

보림사 석탑과 동시대에 세워진 ‘실상사 동서 삼층석탑’(828년)의 보륜도 일제의 복원 공사전 보림사 석탑처럼 각 4개씩이다. 경주의 ‘불국사 삼층석탑’(석가탑·국보 21호)의 상륜부는 보존이 잘된 실상사 탑의 상륜부를 모방, 복원한 것이기도 하다. 

보림사 석탑은 설립 경위와 연대 등이 명확한 유례 드문 통일신라시대 후기 석탑이기도 하다. 1930년대 석탑 내부에서 사리합·비단·구슬 등의 사리장엄구와 함께 탑의 조성 연대와 경위 등을 기록한 탑지(塔誌)가 발견된 것이다. 탑지에 따르면 보림사 석탑은 870년 경문왕이 선왕인 헌안왕(재위 857~861년)의 명복을 빌기 위해 건립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보림사 삼층석탑과 동시대에 세워진 남원의 ‘실상사 동서 삼층석탑’(보물 37호). 상륜부가 잘 보존돼 ‘불국사 삼층석탑’(석가탑·국보 21호) 복원 당시 실상사 탑의 상륜부를 모방했다. 보륜 갯수가 역시 4개씩이다.

일제가 1934년 복원 당시 잘못을 저지른 보륜은 석탑의 상륜부를 장식하는 주요한 요소의 하나다. 석탑의 머리장식이라 할 상륜부는 각각의 상징성을 띤 노반~복발~앙화~보륜~보개~수연~용차 등의 순으로 구성된다. 노반(露盤)은 탑의 최고 꼭대기 옥개석 위에 놓아 상륜부를 받치는 부재로 ‘이슬을 받는 쟁반’이라는 의미로 부처의 은혜를 뜻한다. 복발(覆鉢)은 노반 위에 그릇을 엎어놓은 모양의 부재인데 인도 스투파의 반구형 돔을 형상화한 것이다. 또 연꽃잎이 사방으로 피어 있는 형태의 앙화(仰花)는 복발 위에 놓이는 장식물이다. 

앙화 위에 설치되는 보륜은 신들의 공간인 하늘의 세계를 상징한다. 보륜의 갯수는 특별히 정해지지 않아 석탑마다 다르다. 보륜 위에는 마치 보륜을 덮기라도 하듯 덮개 모양의 보개(寶蓋)가 자리한다. 보개 위에는 불꽃 모양의 장식물인 수연(水煙), 구슬 모양의 장식인 용차(龍車)가 차례로 설치돼 석탑 꼭데기를 장식한다. 이들 상륜부 장식물은 일반적으로 찰주(擦柱)라고 불리는 탑의 중심 기둥으로 고정된다. 찰주는 쇠나 돌로 만들어 진다. 

가지산 남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보림사는 통일신라 헌안왕의 권유로 보조국사 체징(804~880)이 헌안왕 4년(860)에 창건한 사찰이다. 

이후 보림사는 구산선문 가운데 가지산문 사찰로 선풍을 드날렸다. 인도의 가지산 보림사, 중국 가지산의 보림사와 함께 ‘3보림’으로 불리기도 한다. 한때 20여동에 이르던 보림사 전각들은 한국전쟁 당시에 대부분이 불에 타 현재는 복원한 건물이들이다. 현재 대한불교 조계종 송광사의 말사로 소속돼 있다. 

1930년대 촬영된 보림사 전경. 조선총독부박물관의 유리건판 사진으로 저 멀리 대웅보전 건너편에 삼층석탑이 보인다.



자료출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5291914001&code=960100&utm_campaign=share_btn_click&utm_source=facebook&utm_medium=social_share&utm_content=khan_view#csidx582b6ee67cc91f6b17c3a2bf24028c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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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02월 28일(수)   

   정월대보름 민속놀이한마당

 

  2018년 02월 26일~27일

  ■정월대보름행사 달집만들기

 

 

 

 

2018년 02월 28일 수요일

■정월대보름행사(비오는날)

 

 

 

 

 

 

 

 

2018년 03월 02일 금요일

■정월대보름행사(맑은날) 마동욱 작가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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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5월 11일 야천 ‘이정호 선생’ 초대 서예작품전

 가. 일    시 : 2018. 5. 10 ~ 5. 14 (5일간) 
 나. 초대작가 : 야천 이정호 (관산 거주)
 다. 전시장소 : 장흥군민회관(소회의실)
 라. 전시규모 : 작품수 총 70점 내외
                   (액자 및 족자 60점, 병풍 2점, 서각4점, 기타)
               - 출향작가2명 찬조출품작(3점) 포함
 주관:장흥문화원

야천 이정호 프로필

53회 전라남도미술대전 수상 2017~광주서예페스티벌 남도서예흐름전 출품 2014~ 귀고회전 출품 2010 한중서법교류전 출품 광주광역시 추천작가 광주서예인협회 회원 한국미협회원 귀고회 회원 2018.5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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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소설가 이대흠

 

이대흠 시인은 1967년 전남 장흥군 장동면 만수리에서 태어났다. 시인은 20여년 글쓰기에 매진해온 시인으로, 1994창작과 비평봄호로 등단한 후 활발한 활동으로 문단과 언론 매체의 호평을 받았다. 4시집귀가 서럽다3권의 시집을 상재하였을 뿐만 아니라, 장편소설청앵을 비롯하여 산문집이름만 이삐먼 머한다요8권의 저서를 발간하여 그 저력을 문단 내외로부터 인정받고 있다. 사시문학상, 애지문학상, 전남문화상 등을 수상하였다.

 

[책소개]

<열세살 동학대장 최동린>

1894년에 일어난 동학농민혁명은 전국적으로 약 300만 명이 참여한 것으로 추정 되고 있으나, 일본군과 관군 측 기록을 제외하고 농민군 측의 기록은 전무하다시피 한 상태이다. 우리 정부에서 2004년에야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 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 되었지만, 역사적 사실 마저도 감추어져 있고, 연구 또한 부진한 상태다. 그런데 최근 들어 전남 장흥 석대 전투에서 소년들이 동학군에 참여 했다는 것이 밝혀졌는데, 그 중심 인물이 최동린이었다. 이에 최동린을 중심으로 이 이야기는 시작 된다.

 

<귀가 서럽다>

소박하고 아름다우면서도 향토적 정서가 물씬 풍기는, 이대흠 네 번째 시집

이대흠의 네 번째 시집. 물속의 불, '지나 공주' 연작과 같은 실험적 서사시를 전면에 내세웠던 전작들과는 달리 이번 시집은 개인의 미시적 경험과 그에 따르는 소박한 서정성이 주를 이룬다. 가난하지만 남도의 사투리가 자연스럽게 스며든 시들은 애잔한 정서를 극대시키며, 향토적 정서를 구현한다. 인간과 인간의 마음이 진실하게 통하는, 소박하고 아름다운 세계가 총4부로 나누어져 펼쳐진다.

 

<눈물속에는 고래가 산다>

90년대 우리 시단의 젊은 시인군 중에서 가장 독특한 시법을 가진 이대흠 시인의 첫시집. 근육질의 핏줄이 돋고, 땀이 흐르고, 해머드릴이 울리고, 어둠을 가르고, 백설공주를 부르고, 루루루 건축공사장으로 나가는 시인의 주변은 온통 불편한 현실이지만 그 모든 것은 그에게 눈물 속의 노래다. 3회 현대시 동인상 수상작을 수록했다.

 

 

<탐진강 추억 한사발 삼천원>

전남 장흥의 탐진강변에서 태어나 지금도 그 강마을에 살고 있는 이대흠 시인이 산문집 탐진강 추억 한 사발 삼천 원(문학들 )을 펴냈다. 탐진강을 따라 피고, 지고, 썩고, 다시 피는 자연의 시간과 생로병사 하는 인간의 희로애락과 그 굽이굽이 역사가 남긴 흔적을 시인 특유의 해학과 직관으로 담아냈다. 재미있는 이야기책이자 깨우침이 있는 인문서라 부를 만하다.

시인의 자전적 이야기를 비롯하여 입으로 소설을 쓸 정도로 입담이 좋은 마량아짐, 소리개(솔개)가 낚아채 간 동생, 꾀꼬리 새끼가 어떻게 우는지를 묻는 백련사 보살 등의 이야기, 그리고 탐진강변의 정자들, 영랑생가와 다산 정약용, 칠량 옹기, 존재 위백규, 소설가 이청준·한승원·송기숙·이승우로 이어지는 한국문학의 탯자리 등 문학과 역사와 문화가 흘러넘치는 이 책은 사람살이의 마중물이 담긴 밥과 집과 옷의 인문학이자 탐진강 인문학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바닥

외가가 있는 강진 미산마을 사람들은

바다와 뻘을 바닥이라고 한다

바닥에서 태어난 그곳 여자들은

널을 타고 바닥에 나가

조개를 캐고 굴을 따고 낙지를 잡는다

살아 바닥에서 널 타고 보내다

죽어 널 타고 바닥에 눕는다

 

바닥에서 태어난 어머니 시집올 때

질기고 끈끈한 그 바닥을 끄집고 왔다

구강포 너른 뻘밭

길게도 잡아당긴 탐진강 상류에서

당겨도 당겨도 무거워지기만 한 노동의 진창

어머니의 손을 거쳐 간 바닥은 몇 평쯤일까

발이 가고 손이 가고 마침내는

몸이 갈 바닥

오랜만에 찾아간 외가 마을 바닥

뻘밭에 꼼지락거리는 것은 죄다

어머니 전기문의 활자들 아니겠는가

저 낮은 곳에서 온갖 것 다 받아들였으니

어찌 바닷물이 짜지 않을 수 있겠는가

 

봄은 하늘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바닥에서 시작된다

 

관련기사_http://www.jangheung.go.kr/www/organization/news/jh_news?idx=203465&mod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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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제3회 정남진 신인 시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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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고당 고단 가사비

 

전통규방가사의 맥을 이어온 시인 소고당 고단(紹古堂 高短1922~2009)

 

가사시인 고단 여사는 장흥읍 평화리에서 1922년에 태어났다. 자는 효덕이고, 호는 소고당이다. 고단은 7살에 천자문을 잘 읽었고, 장흥초등학교를 마친 뒤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매달 출간되는 강의록을 통해 학식을 넓혔다.

그는 18세 되던 해, 강진김씨 충민공의 종가집으로 시집 가 8남매의 맏며느리가 되었고, 네 명의 딸과 세 아들을 키워낸 종부이자 현모양처였다.

소고당은 1976, 그의 나이 55세에 이르러 자신의 집 후원에다 방을 들이는 공사를 하던 중 일꾼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고 느끼게 된 행복한 느낌을 4.4조의 형태로 옮겨본 것이 가사 짓기의 첫 출발이 되었다 한다.

그렇게 완공한 후원에 옛것(조상, 정신, 문화)을 전하는 집이라는 뜻으로 소고당이라 현판을 걸고 거처하자 집의 이름이 곧 자신의 호가 되었다.

소고당의 작품은 친가와 시가 모두 선비 집안으로 가문의 전통을 이어 받아 조선시대 가사전통의 맥을 그대로 현대에 이어 왔다는 점과, 전근대 작품들에서 볼 수 있는 교훈적인 사항이 없고, 부녀자가 가질 수 있는 눈물과 한숨, 애상이 아닌 종가의 종부로서 이루어온 온화하고 따뜻한 감성의 표현으로 밝고 안정적이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작품 소재의 폭이 인사, 자연, 문화 기행 등 다양하고 사물의 현상을 관조하고 수용하는데 자신만의 개성과 능력을 보인 점, 그리고 가사형식의 구조에서 전통적인 음수율을 택하면서도 음수율을 자연스럽게 가감하고 시어의 선택에 있어서도 고식적인 시어의 틀에서 벗어나 토속적인 언어들이나 의성어 등을 사용하는 자기세계를 열어 전통적 정서 위에 현대를 수용하는 새로운 현대기 가사의 존재가치를 나타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3년 시인의 고향인 장흥 내평마을과 2007년 정읍 산외의 산외중학교 교정에 소고당 가사비가 세워졌다.

 

관련기사_http://view.asiae.co.kr/news/view.htm?idxno=2013100714543486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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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삶을 그려낸 시조시인 김제현(金濟鉉 1939.8.11~)

 

 시조시인 김제현은 회진면 회진리 228번지에서 태어나, 1960조선일보신춘문예에 고지1962시조문학해바라기를 발표하여 문단에 나왔다. 1965년 경희대학교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고등학교 교사, 장안대학과 경기대학교 교수 및 대학원장으로 재직하였다.

시인의 시적 지향은 현대시조의 혁신을 꾀하면서도 자연과 삶의 아픈 풍경들을 시조라는 절제된 언어로써 인간적인 관계의 애틋한 정서로 표현해 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작품집으로 동토’, ‘산번지’, ‘무상의 별빛’, ‘도라지 꽃등 많은 시조집이 있다.

또한 시조가사론’, ‘시조문학론’, ‘사설시조 사전’, ‘사설시조문학론’,‘현대시조 평설’, ‘현대시조 작법등을 통해 현대시조의 이론을 체계화하는데도 기여하면서, 한국문인협회 시조분과 위원장, 한국시조시인 협회 회장을 역임하였고, 겨레시운동본부(한국시조 학회)를 창립하여 시조 순수문예잡지인 시조문학을 창간,발행하는 등 현대시조의 활성화를 위한 남다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시인 김제현은 중앙일보 시조대상, 월하시조문학상, 조연현문학상, 정운시조문학상, 한국시조대상 등을 수상하였다.

 

[책소개]

<백제의 돌>

196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한 김제현 시인의 네 번째 시조집. 자유로움의 참가치와 관계성의 미학을 노래하는 58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풍경>

한국대표 명시선, 김제현 시인의 작품을 만나다!

 오랜 역사와 더불어 꽃피워온 얼글의 아름다움을 만나볼 수 있도록 구성된 한국대표 명시선 100김제현 시집 풍경. 시조시학발행인이자 가람기념사업회 회장 김제현이 삶과 문학, 그리고 자연에 대한 뛰어난 통찰을 간결하고 진솔한 시어로 표현했다. 표제작 '풍경'을 비롯한 '땅의 길', '산사행', '몸에게' 등 다양한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우물 안 개구리

                     -김제현

 

암록색 무당개구리

우물 안에서 산다.

 

 

바깥세상 나가봐야

패대기쳐서 죽을 목숨

 

 

온전히 보존키 위해

우물 안에서 산다.

 

 

짝짓고 알슬기에

깊고 넉넉한 공간

 

 

이따금 두레박소리에

잠을 설치고

 

 

별들의 전갈을 기다리며

눈이 붓도록 운다.

 

관련기사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8&aid=0000228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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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사회와 근대화과정에서 흔들리는 풍경을 그린

소설가 정병우(鄭炳禹 1925~2009)

 

 소설가 정병우는 장흥군 유치면 조양리에서 태어났다. 19453월 광주사범학교를 수료한 후 5년 가까이 장흥초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였다. 해방직전에는 일본병사로 징집되었다가 전주부대에서 제주로 파송 중 목포에서 해방을 맞아 원대복귀해 해산하였다. 고향에서 교직에 있던 정병우는 1955년 전주로 이거하여 전북일보에서의 근무를 시작으로 경향신문의 편집부장, 논설위원 등으로 평생 언론사에서 일하면서 전후사회와 근현대화 과정의 흔들리는 사회 풍경을 글로 표현한 소설가였다.

소설가 정병우는 현대문학을 연 작가로 김동리, 김팔봉에 의해 추천되어 1954현대문학에서 추천 완료하여 문단에 나왔다. 첫 작품 가재골을 발표한 이래 1970년 이후부터는 문학에 대한 관심과 열정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못하였다.

정병우의 작품 중 6.25 전후 혼란스럽고, 절망적인 시대상황에서 순화되지 않은 인간의 본능인 비열한 욕망떄문에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할퀴고, 물어뜨는 사회풍경을 해학적으로 파헤치면서 끝내는 건강한 인간성을 회복하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주었다.

1960년대에 쓴 작품 중에서는 근대화 과정으로 왜곡되는 농촌마을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불신사회와 물질문명의 폐해를 입는 농촌마을의 풍경과, 남녀간의 사랑을 매개로 하여 제약된 사회규범을 벗어나 나름대로 삶의 방식을 탐구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렇듯 장흥이 낳은 소설가 정병우는 전후사회와 근대화 과정의 흔들리는 사회의 풍경을 유려한 글로 표현한 작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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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과 휴머니티를 주제화시킨 생활시인 정재완(鄭在浣 1936~2003)

 시인 정재완은 안양면 사촌리에서 출생하였다. 평생을 전남대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교수로 지내면서 많은 작품 활동과 함께 문학인 양성에 기여했다. 시인 정재완은 장흥초등학교 재학 중 교내 백일장에서귀뚜라미라는 동시로 상을 받은 후 시심을 키우게 되었다.

 처음에 전남대 의대에 입학하였으나 신병으로 마치지 못하다가 1956년 전남대 철학과로 옮겼다. 김현승시인을 만나 본격적인 문학수업을 한 후 1958년 유치환 선생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문단에 올랐다. 이후 시인은 1965년 전남대 대학원 국문학과를 나와 전남대학교에서 국문학과 교수로 정년하였다. 시인 정재완은 1967년부터 원탁시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사물에 대한 감상을 배제하고 언어를 절재하면서도 서정을 담아내는 이른바 주지적 서정시를 썼다. 작품소재를 생활주변에서 찾았으며 인정과 휴머니티를 주제화시킨 생활시를 많이 썼다. 또 자연이나 계절, 귀여운 아기의 모습이나 헐벗고 굶주리는 이웃의 모습, 바쁘고 고달픈 궁상들을 소재로 한 작품도 많다. 자연과 생명에 대한 외경을 근간으로 순수감정을 추구했으며 사회적 진실에 대한 갈구를 내포하는 작품을 남겼다. 후반기엔 자연과 사회, 인간을 자아 내부의 근원적 감수성 상상적 진실로 형상화했다. 그의 시는 현실과 존재, 인식과 서정, 도시와 농촌의 다양한 소재를 통해서 한국문단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으며 한국 현대시의 전통적 순수 서정시의 새 경지를 개척했다는 평을 받는다.

저서로는 시집하늘빛,저자에서,빛발같이 햇살같이,흙의 가슴,믿음과 노래,사랑안에 살면,사람새,넘어가는 해,유고시집그 무수한 나의 새 다시 만날 수 있을까,등과 동시집해바라기,온 세상 어린이등을 펴냈다. 또한 한국 현대시의 반성,문학의 이해와 비평,한국현대작가 작품론등의 논저를 펴냈다.

 

그럴싸한 민주의 나라/부화(浮華)한 차림새/그 밑바닥을/이처럼 웃어줄까. 좀 부끄럽게 시리/아니면 통째로 발가벗기고 말까.하면서도 실상은 사회적인 현실비판이나 관념의 토로보다는 그들에 대한 따뜻한 인정과 포용을 보이는 것이 그의 시다. 얼른 표현 안 되는 무엇/밀물져 오는/느긋함이 있다/저자에 들어서면//한길에까지 발진(發疹)한 생활/괴롭고 외롭고 애달픈/어색한 표정 조차/없는 막벌이 장수들

<나의 시>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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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안훈석 기자]전남 장흥군 부산면은 지난 30일 부산초등학교 전교생 40명을 대상으로 부춘정과 열녀비 현장 탐방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탐진강 상류에 자리하고 있는 부산면은 강을 따라 4개의 정자가 들어서 있고, 주변 마을입구에 효열비 15곳이 세워져 있다.

 

 

 

부산면은 효 문화 잘 발달된 지역 정서와 조상의 높은 선비정신에 대해 지역 꿈나무들이 자부심을 갖도록 이같은 탐방행사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부산초등학교에서도 아동문학가 김녹촌 문학교실을 운영하면서 지역 문화유산 알기에 힘쓰고 있다.

이날 문화해설에 나선 문병길 부산면장은 조상의 참된 가치관과 삶을 잘 배워 오늘날 우리 사회가 추구하고 있는 윤리와 도덕성이 새로운 지표를 발견하자고 말했다.

 

출처_http://www.simin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558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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