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문화원

■2018 ‘장흥전통인문학문화강좌’-장흥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글-이경엽(목포대학교)

 

 

 

 

 

1. 장흥 고싸움줄당기기를 주목하는 이유
2. 장흥 고싸움줄당기기의 진행과정
3. 다른 지역 사례와의 비교와 특징

 

1. 장흥 고싸움줄당기기를 주목하는 이유

줄다리기가 2015년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이에 대한 관심이 확대되었다. 당시 한국·베트남·캄보디아·필리핀 등 아태지역 4개국 줄다리기가 공동등재될 때, 관련 국가들이 협력해서 준비한 점과 벼농사문화권의 대표적인 전통문화라는 점이 주목받았다. (유네스코 제10차 무형유산보호협약 정부간위원회(나미비아 빈트후크, 2015.11.30~12.4)에서 한국, 베트남, 캄보디아, 필리핀이 공동등재 신청한 '줄다리기'(Tugging rituals and games)를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이와 관련해서 문화재청에서는 “위원국들이 아시아·태평양 지역 4개국이 협력하여 공동 등재로 진행한 점과 풍농을 기원하며 벼농사 문화권에서 행해진 대표적인 전통문화로서 줄다리기의 무형유산적 가치 등을 높이 평가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공동등재된 한국의 줄다리기에는 영산줄다리기(국가무형문화재 제26호)․기지시줄다리기(국가무형문화재 제75호)와 삼척기줄다리기(강원도 무형문화재), 감내게줄당기기․의령큰줄땡기기․남해선구줄끗기(이상 경남도 무형문화재) 등이 포함됐다. 인류무형유산 등재를 전후해서 관련 지자체와 정부에서 국제학술회의를 비롯한 각종 행사를 의욕적으로 추진했으며, 등재 이후에는 줄다리기축제의 글로벌화를 기획하고 사회적 이슈와 관련된 행사를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기지시줄다리기 홈페이지(http://www.gijisi.com/)

줄다리기가 공동등재된 이후 다른 나라 줄다리기에 대한 관심도 늘어났다. 한편 줄다리기 관련 연구를 되짚어보면 외국 줄다리기와의 비교는 공동등재 문제와 별개로 이른 시기부터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최인학, 「줄다리기에 관하여 <한일비교연구의 일고찰>」, 『한국민속학』6, 민속학회, 1973., 송화섭,「동아시아권에서 줄다리기의 발생과 전개」, 『비교민속학』38, 비교민속학회, 2009., 지춘상, 「한국과 오키나와 줄다리기의 성희성」, 『동아시아 민속학』, 민속원, 2010.)
여기에서 특기할 점은 한국 줄다리기의 구체적인 사례로 장흥 줄다리기가 거론되었다는 사실이다. 지춘상 교수는 1970년부터 장흥줄다리기(1970년 제11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장흥 보름줄다리기’라는 이름으로 출연했다. 전년도 대회에서 ‘광산고싸움’이 대통령상을 수상한 까닭에 전남에서 연이어 큰 상을 받는 게 부적절하다는 의견에 밀려 2등상인 국무총리상을 수상했지만 큰 관심을 끌었다고 한다. 이렇듯 장흥 고싸움줄당기기가 알려지면서 장흥이 줄다리기의 ‘본향’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주목을 받았다.) 의 색다른 면모를 학계에 소개한 바 있고(지춘상, 「전남의 민속놀이에 관한 조사연구(1)-줄다리기를 중심으로-」, 『호남문화연구』5, 호남문화연구소, 1973., 지춘상, 「줄다리기와 고싸움놀이에 관한 연구」,『민속놀이와 민중의식』, 집문당, 1996.)
오키나와 줄다리기와 상세하게 비교하고 특징을 살핀 적이 있다.(지춘상, 「한국과 오키나와 줄다리기의 성희성」, 『동아시아 민속학』, 민속원, 2010.)

이처럼 장흥의 줄다리기는 비교적 이른 시기 주목받았지만, 정작 근래의 유네스코 관련 논의에서는 관심 밖에 놓여 있으며 외부에서는 그 존재마저 모르는 경우가 있다.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까닭에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장흥 고싸움줄당기기는 오래되고 특별한 무형유산이다. 글쓴이와 양기수 등이 학술조사를 하고 흩어져 있던 여러 자료들을 정리하고 분석한 뒤 단행본을 발간한 바 있다.(이경엽․양기수․이옥희, 『장흥고싸움줄당기기』, 장흥문화원, 2014.)
장흥 고싸움줄당기기는 고을축제의 전통을 잇고 있는 공동체놀이로서 남다른 특징을 갖고 있다. 그것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계승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장흥 고싸움줄당기기는 현재도 연행되고 있지만 안정적인 전승기반을 갖추고 있지 못한 까닭에 앞으로의 계승을 위해서는 새롭게 전승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장흥 고싸움줄당기기를 색다르게 주목하고 지역사회의 관심을 촉구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장흥 고싸움줄당기기’란 명칭에 대해 설명해둘 필요가 있다. 장흥에서는 예전부터 ‘고쌈’ 또는 ‘고싸움’, ‘고줄쌈’, ‘고줄놀이’란 말을 사용해왔고, ‘고줄 고향 장흥’이란 표현도 써왔다. 또한 ‘줄당긴다’, ‘줄땡긴다’란 말도 사용해왔다. 이 명칭들에는 고를 갖고 싸우거나 줄을 당기며 논다는 뜻이 담겨 있다. 또한 ‘고+줄’이란 말에서 보듯이 고싸움과 줄다리기가 별개가 아니라는 의미도 담겨 있다. 널리 알려진 대로 고싸움과 줄다리기는 놀이 방식이나 원리가 다르므로 구분된다. 대표적인 사례로 광주칠석고싸움의 경우 고싸움과 줄다리기는 완전히 구분된다. 그러나 장흥에서는 두 놀이를 따로 하지 않는다. 또한 ‘고쌈’이 ‘줄당기기’의 예비 놀이에 그치지 않고 비중 있는 놀이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므로 두 놀이 중 하나만 지칭하는 것이 올바르다고 할 수 없다. 주민들 스스로 ‘고쌈한다’는 말을 자연스러워 하고 선호하며, 고싸움의 연속선상에서 줄당기기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이런 점을 두루 수용한 명칭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이전에 학계에 소개된 ‘장흥 보름줄다리기’란 말은 1970년도부터 사용되었는데, 그 명칭은 지춘상 교수의 언급에서 보듯이 당시 임의적으로 정한 것이다. 지춘상, 「장흥 줄다리기의 민속학적 가치」, 學堂 ’96, 장흥학당, 1997. “출연할 당시 줄다리기 제목을 정하는데 장흥줄다리기로 할 것이냐, 아니면 다른 걸로 할 것인가 의논하다가 ‘노인들이 보름날 줄다리기를 한다고 하므로 「장흥보름줄다리기」로 하는 것이 좋겠다’ 하는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 장흥보름줄다리기라는 이름을 갖고 나갔다.”
그러므로 다소 혼란이 있을 수 있으나 실상을 반영한 명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름 자체가 다른 지역과 다른 특징을 담고 있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두루 고려하고 주민들이 선호하는 명명을 하고자 2014년에 장흥문화원이 마련한 간담회에서 ①지역 특색을 살린 명칭, ②다른 지역과 변별되는 브랜드화된 명칭, ③어감을 고려한 명칭 등의 기준을 마련하고 의견을 나눈 끝에 ‘장흥 고싸움줄당기기’란 이름을 선택하기로 했다.

2. 장흥 고싸움줄당기기의 진행과정

근래의 고싸움줄당기기는 ‘장흥 군민의 날 및 보림문화제’의 일환으로 실시되고 있다. 1930년대 후반 이후로 한동안 중단되었다가 1970년도에 재현되었다. 그해 4월 15일에 예양강변에서 열린 ‘제1회 보림문화제’에서 30여년 만에 재현된 후, 같은 해 7월에 광주에서 열린 제11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전남대표로 출연했다. 이후 한동안 격년제로 실시되다가 2017년에는 6년만에 재현되었다. 이렇듯 요즘의 고싸움줄당기기는 간헐적으로 ‘형식적으로 재현’되고 있지만, 1930년대까지는 매년 정월에 성대하게 펼쳐지던 고을축제 자체였다.

 

 

<그림> 전라도 장흥부 지도. 그림 중앙의 예양강(탐진강)을 경계로 동교 아래 쪽 모래사장에서 서쪽의 부내면과 동쪽의 부동면을 중심으로 인근 지역까지 망라한 고싸움줄당기기가 펼쳐졌다.

 

과거 장흥읍 일원에서 전승되던 고싸움줄당기기는 전통적으로 고을의 읍치(邑治)에서 이루어지던 고을형 줄굿에 속한다. 장흥 고싸움줄당기기의 편 구성은, 조선시대 읍치의 상황과 연관돼 있다. 탐진강(예양강)을 경계로 서부편(남외․교촌․충렬)과 동부편(행원리․신산리)으로 나뉘어서 줄다리기를 했으며, 인근 지역민까지 합세해 수천, 수만 명에 이른다.’고 할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했는데, 지춘상(1973), 87~88쪽.
이와 같은 편 구성은 방위 개념만이 아니라 치소의 전통과 관련돼 있었다. 이 구도는 20세기 행정구역 개편 후에도 부내면(장흥면)과 부동면 간의 대결로 이어졌으며, 이전 시기와 마찬가지로 인근 지역 주민들까지 합세해서 대규모로 펼쳐졌다.

 

 

1970년4월15일 제1회 보림문화제에서 재현된 고싸움줄당기기.

(강수의, 「사진으로 본 장흥 100년사」에서 전재)

 

 

1970년4월15일 제1회 보림문화제에서 재현된 고싸움줄당기기.

(강수의, 「사진으로 본 장흥 100년사」에서 전재)

 


장흥 고싸움줄당기기는 읍치의 고을축제에 기반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규모가 남달랐다. 놀이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한 지춘상 교수의 글에서 보듯이 참여인원과 구경꾼들이 수천, 수만 명에 이른다고 할 정도로 규모를 자랑했다.(지춘상(1973), 88~95쪽.)

장흥의 줄은 고머리 부분이 특이하며 고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것이 특징이다. 줄이 완성되면 4~5m길이의 멜대 7~8개를 묶고 거기에 세로로 나무를 세워 층층이 수십 개의 청사초롱을 매단다. 그리고 고머리가 처지지 않게 하기 위해 45도 각도로 세워 밧줄로 묶어 놓는다. 줄을 메고 행진할 때에는 토반에 해당하는 한량과 기생들이 줄 위에 올라타서 줄다리기 설소리를 하고 춤을 춘다. 과거에는 장흥현 관아의 동헌(東軒) 뜰에 들어가서 인사를 한 뒤 예양강변으로 이동해서 본격적인 놀이를 펼쳤다. 재현 이후에도 이런 방식이 이어져서 거리 행진을 한 뒤 줄판에 도착하면 군수를 비롯한 기관장을 태운다.

예양강변 모래판에 이르러 분위기가 고조되면 청사초롱 장식을 해체하고, 장정 10여 명이 웃옷을 벗어젖힌 후 줄 위에 올라타서 기세를 돋우며 ‘고쌈’을 하게 된다. 줄 위의 지휘자가 “밀어라”하는 명령을 내리면 줄을 멘 사람들이 일제히 멜대를 두 어깨로 떠받치면서 돌진해서 상대방의 고에 부딪친다. 고가 맞닿으면 줄 위에 탄 장정들이 상대방의 고를 누르고 또 땅 위로 밀어 떨어트리려 한다. 광주칠석고싸움과 달리 고머리에 대나무를 넣지 않고 ‘굉갯대’도 없이 장정들이 어깨로 떠받치고, 앞사람이 땅에 떨어지면 뒷사람이 고를 받치고 또 그 뒷사람이 계속적으로 올라타기 때문에 수십 명의 장정들이 엉켜 혈전을 벌인다. 상대방의 고머리를 누르고 또 줄을 땅에 닿게 하면 승부가 끝나는데 그 경기 방법이 대단히 치열하고 격렬하다.
고싸움이 끝난 뒤에는 줄에 달린 멜대를 제거하고 줄당기기를 한다. 고싸움에서 진편이 양 어깨에 줄을 메고 전진, 후진을 거듭하면서 응전을 촉구하고, 서로 어우러지면 양 쪽 고머리를 댔다 떼었다를 반복한다. 그리고 줄을 결합한 뒤 줄당기기를 하는데 한쪽에서 끌려갈 경우 지휘자가 “깔아라”는 호령을 내리면 일제히 줄을 깔고 앉는다. 그러면 양편이 모두 줄 위에 앉아서 어깨로 상대의 몸을 밀쳐내는 ‘밀치기’를 한다. 이렇듯 자기편이 유리하면 당기고 불리하면 깔기와 밀치기를 계속하니 쉽사리 승부가 나지 않는다. 요즘에는 시간을 정해 줄당기기를 하기 때문에 깔기를 하지 않고 승부를 겨루지만 예전에는 깔고 밀치기를 거듭하며 몇 날을 끌었다고 한다. 줄당기기의 결과 서편이 이겨야 풍년든다고 하지만 이에 구애되지 않고 서로 이기려고 격렬하게 대결한다. 승부가 가려진 뒤 과거에는 거름으로 쓰기 위해 줄을 가져가기도 했으나 재현 이후에는 보관해두었다가 이듬해 보수해서 사용하고 있다.
이상에서 본 대로 장흥 고싸움줄당기기는 격렬하고 시끌벅적한 집단놀이의 전형을 보여준다. 물론 그 강도가 과거보다 약해지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고 있다. 본래 정월 대보름 무렵에 하던 세시풍속놀이지만, 재현 이후에는 군민의 날에 열리는 보림문화제의 일환으로 전승되고 있다. 자발적으로 조직화해서 연행하던 공동체 민속이 행사화 돼서 전승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장흥도 여느 농촌지역과 다를 바 없이 젊은 인력이 많지 않아 인원 동원과 고줄 제작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고싸움줄당기기에 대한 주민들의 자부심이 대단하고 계승 의지도 강한 편이다. 예전에 비해 전체적인 분위기가 위축되었지만 현행되는 전통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 다른 지역 사례와의 비교와 특징

1)다른 지역 사례와의 비교
 줄다리기는 종류가 다양하다. 지역에 따라 줄의 형태나 놀이 방식에서 차이가 있다. 전국적으로 줄(고)을 이용한 놀이가 여럿 있지만 형태로 보면 외줄형/쌍줄형/이형(異形)으로 나눠진다. 쌍줄다리기와 고싸움은 쌍줄형에 속하며, 게줄다리기는 이형에 속한다. 외줄다리기는 전국적으로 분포하지만 서해안 쪽에 집중돼 있다. 고싸움은 장흥, 광산, 남평, 강진 등 전남지역에서 주로 전승되고 있고 게줄다리기는 경기도・강원도・경상도(과천, 삼척, 밀양, 울진 등)의 몇몇 지역 중심으로 전승되고 있다.
장흥 고싸움줄당기기에는 그 명칭에서 보듯이 고싸움과 쌍줄다리기가 함께 있다. 장흥 고싸움줄당기기의 특징을 파악하기 위해 다른 지역 자료와 비교할 필요가 있다. 현행되는 사례 중에서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자료를 중심으로 대비하기로 한다.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고싸움・줄다리기 현황
<명칭/지정번호/전승지역/지정일>
영산 줄다리기/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26호/경남 창녕군 영산/1969.2.11
칠석 고싸움놀이/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33호/광주시 광산구/1970.7.12
기지시 줄다리기/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75호/충남 당진군/1982.6.1
삼척 기줄다리기/강원도지정 무형문화재 제2호/강원도 삼척시/1976.6.17
감내 게줄당기기/경상남도지정 제7호/경남 밀양시/1983.8.6
의령 큰줄땡기기/경상남도지정 제20호/경남 의령군/1997.1.30
남해 선구줄끗기/경상남도지정 제26호/경남 남해군/2003.6.7

 

국가지정 자료는 세 건이고 지방지정 자료는 네 건이다. 명칭이 조금씩 다르고 놀이방법도 약간 차이가 있지만 줄다리기 유형에 속하는 민속놀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지정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영산줄다리기, 광산 칠석고싸움놀이, 기지시 줄다리기가 규모로 볼 때 우리나라 고싸움・줄다리기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만하다. 지방지정 자료 중에서는 경남의 사례가 관심을 끈다. 경남의 경우는 지자체의 적극적인 역할을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자생적인 전승력이 약화된 상태에서 문화재 제도를 활용해 전통을 보존하는 방식을 잘 보여준다.
비교의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장흥과 규모나 성격이 서로 통하는 국가지정 무형문화재를 구체적으로 다룰 필요가 있다. 지역 자료의 연행시기와 유형, 전승현황 등을 중심으로 주요 내용을 간추려 대비해보면 다음의 표로 정리된다.

지역별 비교

 

<명칭/연행시기/유형/놀이방법/전승현황>

장흥고싸움줄당기기/정월 대보름→5월/고을형/고싸움-줄다리기
군민의 날 행사의/시연 종목(불규칙)영산줄다리기/정월 대보름→3월 초/고을형/줄다리기
3・1문화제의 핵심 종목 칠석고싸움/정월 대보름/마을형/고싸움-(줄다리기)
고싸움놀이축제기지시줄다리기/윤년 날받이 →윤년 음력3월초/고을형/줄다리기/기지시 줄다리기 축제

 

위에 든 사례들은 한국을 대표하는 민속놀이로 꼽히는 종목들이다. 유서 깊은 전통축제로서도 그렇고 규모도 성대하다. 비슷한 점도 있지만 각기 지닌 역사적 맥락이나 전승기반의 차이에 따라 서로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다. 세세한 부분들은 차치하고 유형, 놀이방법, 전승현황 등을 중심으로 비슷하고 다른 점을 얘기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지역별 비교를 통해 장흥 고싸움줄당기기의 남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2) 장흥 고싸움줄당기기의 특징

(1)고을형 축제 전통의 전형
줄다리기는 전승범위와 규모를 기준으로 볼 때 마을형과 고을형으로 나눌 수 있다. 전자가 마을 내 또는 마을 간에 벌어지는 것이라면 후자는 고을 단위에서 수행되는 것이다. 마을형 줄다리기는 마을 내 골목길을 기준으로 편을 가르거나 인접 마을끼리 편을 나눠 승부를 겨룬다. 이에 비해 고을형은 마을형을 크게 확대시킨 것이며 마을형과 달리 ‘큰줄다리기’라고 불린다. 고을형은 조선시대 읍치(邑治)가 있던 고을에서 전승하는 까닭에 참여하는 마을이나 놀이꾼・구경꾼들의 숫자가 수천 명에 이를 정도로 큰 규모로 진행된다.
무형문화재 중에서 고을형에 속하는 것은 영산줄다리기와 기지시줄다리기를 들 수 있다. 전통적으로 영산 줄다리기는 ‘영산 읍치’를 중심으로 벌어졌고 그 놀이들꾼은 이른 바 ‘읍4리’라고 하는 교리, 성내, 동리, 서리 등 네 개의 자연마을 사람들이다. 교리와 성내가 동편, 동리와 서리가 서편을 이루며, 인근 지역 주민들까지 합세해서 큰 규모로 승부를 겨룬다. 기지시 줄다리기는 현재의 모습을 보면 규모가 상당하지만 읍치가 아닌 5일장이 서던 시장의 상인들이 주도하던 것이어서 성격이 조금 다르다. 기지시는 과거 면천군(沔川郡)의 남쪽과 서쪽 사람들이 한양을 가기 위해 통과하는 교통의 요지이며 시장이 서던 곳이다. 기지시에서는 시장경제의 번성을 촉진하기 위해 줄다리기가 연행했다. (이인화, 「무형문화재 제75호 기지시 줄다리기의 사회환경적 재검토」, 한국사진지리학회지제19권 4호, 2009, 163~164쪽)

이것으로 볼 때 기지시는 엄밀한 의미에서 고을형에 포함된다고 보기 어려운 점이 있다.
장흥에서는 읍치 지역답게 큰 규모의 고싸움줄당기기가 전승되었다. 고싸움줄당기기가 전승되는 장흥읍 지역은 조선시대 지방관청 중에서 상급기관에 해당하는 부(府)의 치소가 있던 곳이다. 그런데 장흥의 경우 다른 지역 사례와 다른 조건을 하나 더 갖고 있었다. 장흥에는 동일 관내에 두 개소의 관아가 있었다. 장흥도호부의 관아가 부내면 쪽에 있었고, 치소 동쪽에 ‘장흥-강진-해남-진도’로 이어지는 역로(驛路)를 관장하는 벽사도(碧紗道)가 자리하고 있었다. 9개의 속역을 거느린 벽사찰방(碧紗察訪:종6품)은 품계는 낮았으나 관할 업무가 달라서 도호부사(都護府使:종3품)의 직접적인 지휘를 받지 않았다. 이처럼 소속이 다른 두 기관이 서쪽과 동쪽에 자리하고 있어서, 두 기관 간의 경쟁 구도가 형성돼 고싸움줄당기기가 더 성대하게 치러졌다고 전한다. 일반적인 읍치 줄다리기와 달리 장흥에서는 장흥부사와 벽사도찰방 사이의 경쟁 구도가 더해져 더 역동적인 줄다리기가 전승되었던 것이다.
장흥 고싸움줄당기기의 전통을 보면 관아와의 관련성이 잘 나타난다. 서부와 동부 고가 행진을 하면서 관아에 들러 인사를 했다든가(東軒 參拜), 양 고 위에 원님들(장흥부사, 벽사도찰방)을 태웠다든가 하는 구술 속에 읍치 줄다리기와 관련된 설명이 담겨 있다. 1895년에 역참제도가 폐지된 후에도 동서부의 고가 도호부 동헌에 들러 가는 행진은 계속되었다. 이런 전통은 1970년도에 줄다리기가 재현된 뒤에 군수나 경찰서장 등의 기관장을 고 위에 태워 행진하는 연유가 되기도 했다.
또한 예전에 원도리와 남외리에서 각각 동부고와 서부고를 제작했던 것도 이 마을들이 치소와 직접 관련된 지역이라는 것과 연관 있다. 1970년도에 고싸움줄당기기를 재현한 뒤로는 행원리에서 고를 제작하지만 이전 시기에는 서부고는 남외리, 동부고는 원도리에서 주도해서 만들었다고 전한다.

 

 [동부 어느 마을에서 줄을 걷어왔나요?] 행원리, 원도리, 축내리, 상리, 관덕리, 당정이, 해당쟁이(해당리), 월평, 신기, 금성(금산리) [왜 이 곳에서 동부고를 드렸답니까?] 예전에 여기 위에 찰방이 있었어요. 역졸들이 원도리에서 다 살았어요. 원도리가 205번지가 많아요. 그런데 그곳이 역졸들이 살던 집터예요. 205번지 내에서 차근차근 나갔어요. 찰방이 여기 위에 있어서 어사 출두하면 역졸들이 전부 나간다는 말을 들었어요. 축내 관덕 위에 비가 있었는데 그 비를 교도소 앞으로 다 옮겼어요. [이곳에 역졸들이 살았기 때문에 줄을 드리기에 유리했던 모양이네요?] 예. - 2013,2, 장흥읍 원도리 손영근(남, 87세) 면담

 

 위의 구술을 보면 원도리에서 동부 줄을 제작했던 이유가 나온다. 동부에 속하는 여러 마을에서 새끼줄을 모아오면 원도리에서 큰 줄을 완성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이유로 벽사역 찰방에 소속된 역졸들이 원도리에 많이 거주했던 사실을 거론하고 있다. 관아에서 주관 또는 후원하던 고을 축제의 배경을 설명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서부고를 제작하던 남외리도 이와 비슷한 사정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장흥 고싸움줄당기기의 편 구성 방식은 행정구역 개편 이후에도 비슷하게 이어진다. 위의 구술에 나오는 것처럼 찰방의 관할 하에 있던 동부는 부동면으로 바뀌고, 서부는 장흥면으로 바뀐다. 그리고 20세기 중반 이후에는 행정구역이 아닌 방위에 따른 편 이름으로 바뀌게 된다.

읍치 행정기관 기반의 편 구성

조선후기-부내방(도호부) 부동방(벽사도)
20세기 초-장흥면 부동면
20세기 중반 이후-서부 동부

장흥 고싸움줄당기기는 읍치 행정기관에 기반을 둔 편 구성을 잘 보여준다. 한말에 조선시대 행정구역이 폐지되면서 벽사도(역)가 사라지지만 이전의 편 구성 방식이 달리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20세기 초에는 강 서쪽에 자리한 장흥면과 동쪽의 부동면 간의 대결로 이어지며 두 지역이 장흥읍으로 통합된 뒤로는 서부/동부로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1970년도에 재현돼 보림문화제 행사로 이어지고 있는 현행 줄다리기도 동일한 방식으로 지속되고 있다. 예전 고싸움줄당기기를 기억하는 노인들의 구술 속에 벽사역이 등장하거나, ‘장흥과 부동’ 간의 대결 구도에 대한 설명이 들어 있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라고 할 수 있다.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편 구성이 달라졌지만 읍치 고을 축제의 전통이 기반에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장흥 고싸움줄당기기가 고을 축제로 진행됐다는 것은 작은 줄과 큰 줄의 관계를 통해서도 설명할 수 있다. 장흥읍만 하더라도 예전에는 마을 내 또는 마을 간에 작은 규모의 줄다리기를 하는 곳이 여럿 있었다. 행원리에서는 내동(암줄)과 외동(수줄) 간에 줄다리기를 했으며, 원도리는 원도와 상리, 남외리는 남외・교촌과 충열 간에 줄다리기를 했다. 이렇게 마을 단위의 줄다리기가 끝난 뒤에 그 줄을 해체해서 동부/서부 간의 큰 줄다리기로 확대해서 연행했다. 서부 쪽에 속한 마을들은 남외리로 줄을 모으고, 동부 쪽에 속한 마을들은 원도리로 줄을 모아서 큰 줄을 만들었다. 이렇게 해서 ‘골목 고싸움줄당기기기’가 고을의 ‘큰 고싸움줄당기기’로 확대되었던 것이다.

 

장흥의 ‘큰 고싸움줄당기기’
<구분/명칭/중심마을(고 제작)/참여마을/인근 군민 참여/1970년 이후 고 제작 마을>
서편,암고/장흥 고/남외리/교촌리,충열리,동동리,남동리,예양리,연산리등/강진,영암군민 가세/행원리
동편,숫고/부동 고/원도리,행원리,기양리,건산리,축내리,관덕리,상리 등/보성,고흥군민 가세/행원리

 

 위의 표는 1930년대까지 이루어지던 장흥의 큰 줄당기기의 모습이다. 마을 단위의 고싸움줄당기기를 하고 난 뒤, 고을 단위로 크게 확대해서 놀이판을 만들어 축제를 펼치는 형태를 보여준다. 여기에서 보듯이 장흥 고싸움줄당기기는 작은 고(줄)가 큰 고(줄)로 확대되는 고을형 축제의 전형적인 모습을 잘 보여준다.
물론 이런 방식이 현재도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20세기 중반까지도 마을 단위의 줄다리기가 있었으나 지금은 전승하는 마을이 없다. 또한 강진, 보성 등지의 인근 지역 주민들이 참여하지 않는다. 그리고 마을마다 새끼줄을 걷어서 한 곳으로 모아 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교부받은 예산으로 한 마을에서 줄을 제작하고 있다. 놀이꾼도 마을마다 할당된 인원들이 나와 편을 짜서 승부를 겨루는 것으로 바뀌었다. 1970년도에 장흥 ‘보름줄다리기’가 재현된 이후 예전 방식대로 편 구성을 하는 형식을 유지하고 있으나, 내용상으로는 많은 변화가 있음을 알 수 있다.

 (2)성대한 규모와 놀이과정의 역동성
장흥 고싸움줄당기기의 성대한 규모는 위에서 설명한 고을형 축제의 전통과 관련 있다. 관아의 후원을 받고, 행정관청 간의 경쟁심리가 담겨 있어서 더욱 큰 축제로 확장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배경으로 인해 참여하는 마을들이 많고, 인근 지역까지 포괄한 큰 규모의 승부로 펼쳐졌으며, 참여하는 놀이꾼의 인원수나 줄의 규모 등이 남달랐다고 할 수 있다.
20세기 초의 기록을 통해 장흥 줄다리기의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鉦鼓喧喧號令明 징 북소리 시끌벅적 호령소리 분명하니
東西形勢兩分生 동서의 형세 두 편으로 나뉘어 일어나네
龍爭虎鬪千斤力 용과 호랑이 천근의 힘으로 다투어 싸우고
地塌天崩萬仞聲 땅과 하늘 만인의 소리로 기울고 무너지네
管束衆心團體進 뭇 사람들 마음 단속하여 단체로 나아가며
指揮隊伍密行成 대오를 지휘하여 빈틈없이 행렬을 이루었네
一場勝負宜常事 한마당의 승부야 마땅히 보통의 일이니
較這兵家摠是情 이것을 병가에 견준다면 다 이런 마음이라네
(<戊午正月次白兄索戰韻>, 『소천유고(小川遺稿)』)(김희태(전라남도청 문화재전문위원) 선생이 발굴한 자료 중의 하나다. 김 위원에 의하면 장흥 줄다리기의 옛모습을 보여주는 역사자료는 사진 1점, 한시 2점이 있다.)

장흥 유림 이인근(李寅根, 1883~1949)의 시에 묘사된 무오년(1918년) 줄다리기의 모습이다. ‘용과 호랑이 천근의 힘으로 다투어 싸우고’, ‘땅과 하늘 만인의 소리로 기울고 무너지네’와 같은 표현 속에서 장흥 줄다리기의 규모를 어렵지 않게 떠올려 볼 수 있다.
장흥 고싸움줄당기기가 큰 규모로 펼쳐진 배경에는 지역의 경제적 기반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0세기 이후에도 고을형 축제가 지속된 것은 고을 공동체의 전승기반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수백 명의 놀이꾼들이 참여하는 큰 행사답게 지역의 향반 부호들의 후원이 있었을 것이다. 동부고와 서부고가 행진할 때 지역의 유지・한량들과 기생들을 태우고 기세를 돋우곤 했다는 데서 그런 정황을 읽을 수 있다. 지춘상 교수의 설명에서 보는 바와 같이 ‘다른 지역과 달리 장흥에서는 비교적 토반 측에 속하는 사람들만이 참여하고 또 줄 위에 탄 사람은 문벌과 재력을 어느 정도 겸비한 한량들이 평소에 가까이 지내던 기생들을 태우고’ 지춘상(1973), 97쪽.
행진을 했다고 한다. 토반과 재력을 갖춘 한량들이 줄다리기의 후원 세력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장흥 고싸움줄당기기의 경제적 배경과 관련해서 장흥시장 상업 세력의 존재를 빼놓을 수 없다. 그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소화난장’ 때의 줄다리기다. 고로들에 의하면 소화(昭和)시대에 장흥시장의 개장과 번성을 위해 크게 난장을 벌였고 그때 고싸움줄당기기를 했다고 말한다.

 

줄다리기 할 때는 부동하고. 원래 줄은 남밖 삼리, 그리고 성안하고 행안 4개리하고 남정리 3개리하고 줄을 당겼어. 그리고 크게 당길 때는 부동하고 장흥하고 합칠 때 그때 크게 당기고. 소화난장이라고 그래. ……장을 완전히 복구했을 때가 ‘소화난장’이라고 했어. 거기에서 줄을 당겼어. 줄 당길 때는 어려서 못 갔어. 얘기만 들어봤어.- 2013.1.22.장흥읍 행원리 김문수(남,1920년생) 옹과의 면담

위의 인용은 1920년생의 고로가 전하는 말이다. 그는 장흥과 부동을 합할 때, 장흥시장을 개장했을 때 줄다리기를 했다고 말한다. 그에 의하면 십대 중반에 장흥시장이 복구・개장되었을 때 난장을 텄는데 그 때 줄다리기를 크게 했다고 한다. 그의 구술을 보면, 앞에서 설명한 바 있는 ‘골목줄다리기’가 ‘크게 당기는’ 줄다리기로 확대되는 과정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소화난장 때의 줄다리기가 전통 방식대로 큰 규모로 이루어졌음을 말하고 있다.
고로들이 말하는 소화난장은 소화 12년(1937년)의 줄다리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김재열(남, 84) 옹에 의하면 이때의 줄다리기가 전통적인 것으로는 마지막이었다고 한다. 그는 장흥 줄다리기가 시장과 연관 있다는 설명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 당시에는 강 이편하고 여기는 ‘장흥’이고 저 건네는 ‘부동’이었거든. 장흥하고 부동하고 고를 멘디 장흥 고는 암줄이고 저 건네 부동은 수줄이에요. …… 여기는 동편이고 저쪽은 서편인디 동편, 서편이라고 안 하고 ‘장흥 고’, ‘부동 고’라고 했어.
이 근방에서 유명한 고싸움이 되았거든. 강진고을, 영암고을은 여기 편이 되고 보성에서 고흥까지도 하듬만. 그 사람들은 저기 부동 편이 되아서 이쪽은 아조 카니발이었어. 장흥 고줄 영향으로 해서 장흥장은 ‘허천난 장’이라는 소리가 있어. 장에만 나오면 뭐든지 먹어버려. 왜냐하면, 고를 당그면 보름동안은 하거든. 하루 이틀에 끝내는 것이 아니여. 보름동안 그 행사를 해서 줄 당겨서 그것이 끝나버리는데, 그럴 때 모인 사람들이 지금같이 야전용 뭣이 있어 가지고 올 것이 없제. 그러니까 장흥 장에 있는 것은 뭐든지 나기만 하면 사 먹어버려. 고구마도 나오면 쪄가지고 가고 토란도 쪄가지고 가고 해서 내만 놓으면 구경꾼들이 다 사먹어준께. 못 사먹어서 난리가 나고 해서 그래서 허천난 장이라는 별명이 있었어.
- 2013.1. 장흥읍 연산리 김재열(남, 84세) 옹과의 면담

 

위의 인용에서 보듯이 장흥의 고싸움줄당기기는 장흥 관내의 행사에 그치지 않고 인근 강진, 영암, 보성 주민들까지 참여하는 축제였다고 한다. 또한 하루 이틀에 끝나지 않고 여러 날에 걸쳐 실시되고 모여드는 인파가 많아서 상인들이 내놓은 물건들이 나오는 즉시 팔려나갔다고 한다. 그래서 무엇이든지 먹을 것이 나오면 사서 먹어서 ‘허천난 장’이란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고 한다.
‘소화난장’의 사례에서 보듯이 장흥의 고싸움줄당기기는 지역의 경제적 기반을 토대로 해서 더 활기차게 전승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런 배경으로 인해 화려하게 줄을 장식해서 행진을 하고 더 많은 놀이꾼들이 참여해서 격렬하게 고싸움과 줄다리기를 했다고 할 수 있다.

 

정월 대보름날, 아침밥이 끝나면 농악대가 놀이꾼들을 끌어들인다. 5,6백 명의 놀이꾼들이 동원되면 휘황찬란한 청사초롱을 매달고 줄을 어깨에 메고 마을 앞을 돌아다니며 전의를 북돋기 위한 시위를 벌인다. 오후가 되면 줄 앞에 노인들이 켜든 횃불 20여 개를 앞세우고 줄다리기가 벌어질 탐진강을 향해 행진한다.
행군의 순서는 횃불 뒤에 수백 년 내려오는 큰 ‘덕석기’와 농기 및 영기가 뒤따르고 그 뒤에 농악대가 따른다. 농악대 뒤에 이 지방의 토반에 속하는 한량들이 호사한 옷차림과 머리에 수건을 옆으로 멋스럽게 동여매고 올라탄다. 그 뒤에는 평상시에 같이 놀던 명기 2,3명이 호사한 옷차림과 머리에는 특이한 고깔을 쓴 채 맨 앞의 기생은 줄다리기 노래의 설소리를 하고 그 외의 기생들은 춤을 춘다. 지춘상(1973), 92~93쪽.


위의 인용에서 묘사한 보름날 줄을 메고 행진하는 장면을 보면, 농악대의 연주와 덕석기・농기・영기 등의 깃발과 수십 개의 횃불이 앞장서고 휘황찬란한 청사초롱을 장식한 고가 뒤따르며, 고 위에는 한량들과 기생들이 올라타서 노래를 불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놀이꾼 수백 명이 참여하는 성대한 행렬이었으며, 다른 지역 줄다리기보다 규모가 크고 화려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장흥 고싸움줄당기기는 그 규모처럼 놀이 과정도 격렬하고 역동적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대동놀이가 억세게 펼쳐지는 것은 어디나 마찬가지지만 장흥의 경우 더했던 것으로 보인다. 고싸움 또는 줄다리기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반적인 격렬함만이 아니라 각 단계마다 놀이의 역동성이 부각되는 특징을 보여준다. 이런 점이 일반 사례들과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다. 고(줄)을 메고 행진한 뒤에 총사초롱을 해체하고 난 다음 진(陣)잡이를 하는데, 이때에 장정 10여 명이 줄 위에 올라가고 두 세 명이 맨 앞에서 어깨로 고를 떠받치게 된다. 이어 양편의 고가 맞부딪치면서 고싸움이 상대편 고를 누르고 고 위에 탄 이를 떨어뜨리고자, 웃옷을 벗어젖힌 장정들이 맨몸으로 엉켜 싸우는 고싸움이 벌어진다. 그리고 멜대를 해체한 뒤에 고를 연결해서 줄을 당기는데, 줄이 끌려 갈 경우 일제히 줄을 깔고 앉는다. 줄을 끌어 당겨도 끌리지 않으므로 줄 위에 앉은 사람을 밀어내기 위한 밀치기를 한다. 또한 줄을 당길 때에는 여자들이 솔잎을 따다가 상대편 남자들의 손등을 찔러 힘을 못 쓰게 한다. 이와 같이 장흥의 고싸움줄당기기는 여느 줄다리기에 비해 대규모로 펼쳐지는 역동적인 편싸움 놀이라는 점이 두드러진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장흥 고싸움줄당기기의 특징을 살펴보았다. 고을형 축제의 전형적인 사례라는 점과 규모의 성대함, 놀이과정의 역동성이 남다르다는 것을 주된 특징으로 꼽았다. 이외에 청사초롱을 장식하는 문제, 낮에 하는데도 횃불을 들고 나오는 문제, 줄다리기 장소가 강변이라는 문제 등등을 더 구체적으로 다룰 수 있다. 세부적으로 보면 더 많은 특징들을 거론할 수 있으나 위의 설명 속에서 압축적으로 다루었다.

고싸움줄당기기는 장흥의 역사적 내력과 공동체의 기억을 담고 있는 무형문화유산이다. 조선후기 지역사와 연계돼 있고 20세기 격변기의 여러 상황과 연관돼 있다. 특히 고싸움줄당기기를 매개로 반일의식이 표출되었다는 이야기가 후일담으로 전하는데, 고싸움줄당기기가 당대의 특별한 역사적 경험과 연결돼 있다는 점에서 남다른 가치를 인정할 만하다. 그리고 ‘군민의 날 및 보림문화제’의 일환으로 재현되고 있고 지역 공동체의 정체성을 표상하는 상징으로 해석되고 있다는 점도 관심을 끈다. 하지만 지금의 고싸움줄당기기는 축제 자체로서가 아니라 형식적으로 시연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고싸움줄당기기의 온전한 계승을 위해 지역사회의 토론과 실천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출처 : http://www.jhtoday.net/news/articleView.html?idxno=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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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의 고싸움줄당기기 문화재 등록 서둘러야"

 

제3강 장흥 민속의 문화사적 가치와 보존 전승-고싸움 줄당기기, 장흥 신청 외_이경엽 교수

 

 

지난 8월 23일 장흥문화원(원장 이금호)이 주관하는 장흥전통인문학문화강좌가 100여명의 군민이 참석한 가운데 군민회관에서 열렸다. ‘장흥 민속의 문화사적 가치와 보존 전승 - 고싸움줄당기기, 장흥 신청 외’란 주제로 이경엽 목포대 국문학과 교수가 진행하였다.
 
 이 자리에서 이경엽 교수는 장흥을 넘어 남도의 소리와 춤을 배우고 전승하면서 최옥산, 신홍재, 김녹주 등 탁월한 음악가들이 활동했던 대표적인 전통음악 공간인 장흥신청이 제대로 조명 받지 못하고 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또한 이경엽 교수는 서편으로는 강진과 영암, 동편으로는 보성과 고흥사람들까지 참여할 정도로 엄청난 규모의 고을축제였으며, 독특하게 고싸움과 줄다리기가 결합된 장흥 고싸움줄당기기가 현재 형식적인 시연으로 머물러 있는 점도 비판하였다. “장흥 고싸움줄당기기와 비슷한 시기에 복원, 재현(1970년)된 광주시 광산구 칠석 고싸움놀이가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지역민의 자발적인 참여와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장흥도 문화재 등록을 추진하면 가능성이 높다고 제안했다.
 
 특히 이경엽 교수는 심지어 중앙분리대를 철거하고 큰 대로에서 펼쳐지는 오키나와 줄다리기를 예로 들면서 “오키나와 줄다리기는 생동감과 활력이 넘친다”며 그 이유로 “축제 자체가 목적인 까닭에 전승주체가 주인이 되어 즐긴다. 그것을 보고 느끼러 관광객이 찾아온다”고 말했다. “축제는 운동장에서 다른 행사의 방편으로 보여주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며 장흥도 군민의 지혜를 모아 과감하게 일상생활의 공간인 거리에서 고싸움줄당기기를 펼치며 지역의 대표적인 축제로 만들어가야 한다고 강변했다.

 한편 이 자리에 참석한 위등 장흥군의회의장은 인사말에서 “문림의향 장흥의 문화와 역사를 재조명하고 전승하려는 인문학강좌에서 많이 배운다”며 장흥의 고싸움줄당기기를 복원하고 지원하는데 의회 차원에서 관심을 갖고 대처하겠다고 말했다.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장흥문화원(이금호 원장)은 “작년과 올해 장흥인문학강좌를 통해 숨겨져 있는 우리 지역의 문화 소중한 문화유산을 지역민들에게 알리고 관심을 이끌어 발전 계승하기를 바란다”고 장흥 군민의 문화 의식 발전을 염원했다.
 
<저작권자 © 장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출처 http://www.jh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56897

 

 장흥 고싸움줄당기기, 문화재 등록 서둘러야 위키트리 1일 전

"장흥 고싸움줄당기기 문화재 등록 서둘러야" 광남일보 1일 전

장흥군, 고싸움줄당기기 문화재 등록 ‘강구’ 에너지경제 1일 전

"장흥 고싸움줄당기기 문화재 등록 서둘러야" 시민일보 1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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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박3일-제주도 4.3평화기념관 등 역사문화유적지 답사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7월 18일부터 20일까지 장흥문화원(원장 이금호) 문화가족 40여명이 제주도로 임직원 연수를 다녀왔다. 2박 3일의 짧은 여정이었지만 제주도의 역사와 문화를 느끼고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첫날 탐방한 제주 4.3평화기념관에서 장흥문화가족들은 70년이 되었지만 아직 아물지 않은 통곡의 역사와 인간의 상처에 직면하면서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김영석(운영위원)는 “전혀 모르고 있던 제주도 4.3의 비극을 마주하면서 남북화해와 평화가 절실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또한 문화가족들은 ‘선녀와 나무꾼’(추억의 테마공원), 한울랜드(연박물관) 등 여러 전시공간을 방문하면서 장흥에는 별다른 전시관이나 문학관이 없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김상찬(이사)는 “양이 중요한 건 아니지만 제주도에는 100여개가 넘는 여러 미술관, 박물관이 있다. 하지만 장흥에는 방촌유물전시관, 천관문학관, 장흥동학농민혁명기념관 정도가 고작이다. 앞으로 문림의향 장흥에 꼭 필요한 공간을 말한다면 장흥의 역사를 담아내는 역사박물관, 무엇보다 장흥출신 여러 미술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미술관, 그리고 장흥과 남도의 문학작가들을 담아내는 장흥문학관 혹은 남도문학관이다. 마침 (구)교도소 자리에 복합문화공간을 조성할 계획이라니 그 곳에 이러한 전시관들을 마련하여 문림의향 장흥의 문화관광 기틀을 만들어 가면 좋을 것이다”고 말했다.

한편 70년대부터 최근까지 많게는 수십 차례, 적게는 수차례 제주를 방문한 경험이 있는 문화가족들은 급격하게 변한 제주의 풍광을 보면서 많이들 안타까워했다. 1년이면 제주도를 수차례 방문한다는 문경호(이사)는 “개발이 다가 아니다. 사실 제주 특유의 오름과 바다, 잘 보존된 자연의 풍광을 보러 자주 왔다. 제주 뉴스를 보니 서귀포 성산읍에 인구 5만이 사는 신공항 신도시를 만든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이러면 장기적으로 봤을 때 제주도는 관광지로서 매력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장흥도 사자산과 억불산을 무리하게 개발할 일이 아니다. 자연의 훼손을 최소화하는 생태문화관광의 방향성을 이제는 생각할 때”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노구를 이끌고 2박 3일 임직원 연수 제주도 유적탐방에 참석한 김기홍(고문)은 참 좋았다면서 “집에 가면 컴퓨터에 저장하여 찬찬이 들여다보려고 가는 곳마다 사진을 다 찍었다. 수백 컷을 찍었다. 앞으로도 이러한 문화원 임직원 연수가 지속되어 우리의 견문을 넓히고 장흥문화와 접목할 수 있는 기회를 자주 가진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사업을 첫 번째로 추진하고 진행한 이금호 문화원장은 타 지역의 문화적 토양를 배우고 익혀서 지역사회와 소통하고 ‘교학상장’ 하는 문화원이 되겠다”고 말했다.

출처 : 장흥투데이(http://www.jhtoday.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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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28∼29, 주제-‘남도의 눈부신 별-장흥 문화의 힘찬 비상’
                                                       김희태 마동욱 공로상 수상, 박형상 전중구청장 주제 발표

 

 

 

                                                                                ▲이금호문화원장이 대회사를 하고 있다.

 

                                                                                 ▲김희태, 마동욱이 공로상을 수상했다.

장흥문화원(원장 이금호)이 주관하고 장흥 문화예술인 29개 단체가 참여한 제19회 장흥군 문화예술인 대회가 7월 28∼29일 양일간 장흥군민회관과 장흥 물축제장 등에서 성대히 개막되었다. 이번 주제는 ‘남도의 눈부신 별-장흥문화의 힘찬 비상’이었다.


이날 개막식에는 광주, 서울 등 전국에서 출향인 문화예술인 20여명, 장흥 관내 문화예술인 150명, 지역민 등 200여명이 참여했다.

첫날인 28일에는 ▶오후 2시부터 문화예술단체 배너전, 팝콘스케치‧시담‧구메구메 등 예술인작품전, 식전 공연 등의 부대행사 ▶3시부터 제1부 개회식 및 ‘남도의 부신 별, 문화’ ▶제2부 ‘남도의 부신 별, 소리’ 주제의 문화예술공연-정남진 보리수악단, 보림국악회, 장흥합창단, 국악가요(이유나), 장흥한춤보존회, 예술단 결, 색소폰 연주(위왕규) ▶제3부 소통과 화합의 만찬 순으로 진행됐으며 ▶다음 날인 29일에는 ‘문학이 흐르는 물길에서 추억 쌓기’ 주제로 강진청자박물관 민화박물관, 강진 청자축제를 답사하는 순으로 이어졌다.

이날 장흥문화원이 시상하는 공로상에는 향토학자 김희태와 사진작가 마동욱이 수상했다.

김희태는 장흥 향토학 관련 글 100여 편 집필을 비롯해 다양한 분야에서 장흥 문화유산 재조명에 기여하며 장흥문화와 향토학 발전에 크게 공헌해 왔으며, 마동욱은 ‘정남진의 빛과 그림자’ ‘하늘에서 본 장흥’ ‘탐진강 속살’ 등 수많은 사진 작업과 사진집 발간을 통해 장흥의 마을문화 및 향토 유산 등의 정체성을 규명하는 등 특별한 사진작업으로 장흥문화발전에 기여해 와 이날 공로상을 수상했다.

이금호 원장은 “장흥군 문화예술인대회는 “문림의 향맥을 계승하고 문화적 위상을 고양하는 것은 물론 정기적 모임을 통하여 예술적 역량의 결집과 화합, 소통을 도모하여 장흥 문화 진흥의 계기를 만들고자 개최되는 모임”이라고 설명하고 “물 축제가 열리는 고향 장흥에서 장흥의 낭만과 정취를 만끽하시고 뜻깊은 날로 기억되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종순 군수는 축사에서 “장흥이 문화관광의 스토리텔링이 무궁무진한 문림의향 장흥으로 입지하기까지 문화예술인 여러분의 노력과 공헌이 지대하였다”면서 “오늘, 내일 화합과 소통의 아름다운 시간을 향유하길 바란다”면서 “저 역시 장흥군의 수장으로서 향후 장흥 문화 진흥에 적극 노력할 것이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에서 ‘남도의 눈부신 별, 장흥문화의 힘찬 비상-예양강 물줄기 중심으로 온고지신’이라는 주제로 주제발표에 나선 박형상 변호사는, ‘장흥은 고래로부터 문학적 영감의 원천의 땅이었다’고 역사적으로 장흥을 고찰하고 이어 예양강과 장흥의 정체성, 장흥의 보림사, 예양강 사연과 풍경, 영천 신잠과 장흥 풍경, 장흥의 의와 충, 장흥문림의 전통, 장흥 청자‧도자의 전통, 장흥 서편제의 전통 등 다양한 소제로 역사적 고찰과 의미 등을 통해 장흥과 예양강의 정체성을 규명하고 “장흥의 찬란한 문화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이제 ‘장흥적인 것’에 토대하면서 이를 뛰어넘는, 즉 지역성을 극복하여 보편성으로 나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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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장흥투데이(http://www.jhtoday.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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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사진작가 마동욱 마동욱 사진작가
‘제19회 장흥군문화예술인대회’서-‘장흥 마을사진 기록의 공’
드론사진 마을사진집, 장흥 영암편 발간, 강진 보성 고흥편도
‘마을 소멸위기 속 마을 모습 사진 기록으로 담는 작업 절실“


 

마동욱 사진작가가 공로상을 수상했다

 

하늘에서 본 영암’북 콘서트가 글을 쓴 우승희씨와 함께 지난
7월 26일 영암에서 개최됐다.
 
지난 7월 27-28일 장흥에서 개최된 ‘제19회 장흥군문화예술인대회’에서 사진작가 마동욱이 공로상을 수상했다.

마동욱은 지난 30여년 동안 장흥에서 마을사진을 비롯 사리진 마을의 역사(유치수몰지역, 장흥산단 마을들)를 사진으로 기록해온 ‘마을 향토사’에 큰 기여를 했다.

뿐만 아니다. 마을 외에도 탐진강 천관산 득량해 등 장흥의 수혀한 자연유산 등에 대한 끊임없는 사진작업에 이어 <아, 물에 잠길 내 고향> <정남진의 빛과 그림자> <탐진강의 속살> <고향의 사계> <하늘에서 본 장흥> 등 수많은 마을사 관련 사진집 발간으로 장흥의 마을문화 및 향토유산 등의 정체성을 규명하는 등 특별한 사진작업으로 장흥문화 발전에 기여해 와 이날 공로상을 수상했다.

그동안 마동욱의 마을 관련 개인 사진전도 20여회, 마을 관련 사진집은 10여권에 달할 정도.

지난 6월에는, 드론으로 찍은 사진집<하늘에서 본 장흥> 편에 이어 <하늘에서 본 영암> 사진집을 펴내고 6월 21일-7월 5일까지 서울 남대문 억불카메라 4층 벤로갤러리에서 사진전을 연 바 있다.

마 작가는 영암군 600여 개 자연마을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의 4계절 풍광을 드론으로 담아 ‘하늘에서 분 영암’이란 제목으로 지난 6월에 펴냈다. 이 사진집은 무려 672쪽의 변형판(가로 26센티×세로19센티), 올 칼라로 엮은 대형 사진집.

최근 들어 잇달아 ‘하늘에서 본 마을’ 사진집 그것도 장흥 마을들 외에 영암 강진군(현재 ‘하늘에서 본 강진’ 사진집 발간 준비 중) 등 남도 마을들의 정경을 펴냄으로써, 남도 마을사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는 지적이다.

오랫동안 장흥의 마을들을 카메라에 담고 사진집으로 펴내왔던 마 작가는 평면의 마을 사진보다 공간이 확보된 사진을 찍기 위해 마을 부근 높은 산에 오르거나 6미터짜리 고가 사다리를 제작하여 마을 앞에 세워놓고 사진을 찍었지만, 늘 부족감을 느꼈다. 그러던 중 3년 전에 드론이 대중화 되면서 그동안 꿈꿔왔던 마을의 항공사진 촬영이 가능하게 되자, 드론을 마련하여 몇 번의 실패와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장흥군 마을 전체를 드론사진으로 담아 펴내니, '하늘에서 본 장흥'편이었다.

드론마을 사진은 공간적이고 입체적인 마을의 모습뿐 아니라 개개인의 집도 사진으로 담을 수 있어 취락의 구조, 마을 생태계, 자연과 관계성 등을 종합적으로 관찰, 규명할 수 있는 특장점이 있다.

드론 사진집 장흥 편에 이어 남도 마을 전체에 대한 마을 사진으로 작업을 넓힌 그는 영암군 전체 마을을 드론으로 담고자 작업을 추진했고. 우승희 도의원과 인연이 되어 그의 도움으로 지난 2년여 동안 영암군 마을 600여개를 드론으로 담아 ‘하늘에서 본 영암’이라는 사진집을 펴낼 수 있게 되었다.

이 사진집은 드론으로 담은 사진집 ‘하늘에서 본 장흥’에 이어 두 번째 자치단체 드론 마을사진집인 셈. 마 작가는 영암군 마을 사진집에 이어 ‘하늘에서 본 강진’ 사진집 출판을 위해 작업 중이며, 이어 ‘하늘에 본 고흥’, ‘하늘에서 본 보성’의 드론 마을 사진집도 준비 중이다. 결국 마 작가는 일차로 국회의원 선거구획으로 장흥과 인연이 된 영암과 강진 보성 고흥군 마을 드론 사진집을 모두 펴낸다는 계획이다.

저명한 사진비평가 이광수는 마동욱 사진에 대해 “…사진 속 마을에 살고 있거나 그곳을 고향으로 마음에 둔 채 떠나왔거나 하는 사람들은 이 사진들을 눈으로 보지 않을 뿐더러 머리로 읽지도 않는다. 가슴으로 새길 것이다. …(이 사진들은 그들에게) 가슴 깊은 곳에 절절히 박히는 감성의 원천이기도 하다. 사진가 마동욱은 적어도 이 점 하나만으로도 …다큐멘터리 사진가로서 웬만한 사진가들이 이루지 못한 일을 해냈다. 사진으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그것도 시간과 시간을 이어줌으로써 그리움을 자아내게 해주는 역할,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사진의 첫번째 가치다” 라고 평했다.

마동욱 작가는 “영암군은 마을 주변의 농토가 넓고, 광활한 곳이 많아 부촌이 많은 고을임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영암군 마을 역시 비어있는 집이 늘어나고 젊은 사람들이 많지 않아 얼마나 오랫동안 마을들이 옛날 그대로 남아있을지 알 수 없었다. 더 늦기 전에 영암 마을 모두를 드론을 통해 사진으로 기록해 두는 필요성을 느끼며 작업하였다”고 말했다.

한편,‘하늘에서 본 영암’북 콘서트는 7월 26일 오후 3시 전라남도 영암교육지원청 영재교육센터2층 대강당에서 500여명의 주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됐다. 이날 마 작가는 “‘하늘에서 본 영암’은 장흥에 이어 두 번째 작품이며, 기회가 된다면 전라남도의 전체 시.군을 촬영하여 책으로 출판하고 싶습니다”고 인사했다.

사진집에 글을 쓴 전남도의회 우승희 의원은“마을의 역사를 이야기로 풀이하여 기록했다”면서 “영암사람 모두 한 권 쯤은 보관하기를 권한다”고 말했다. 이날 북 콘서트는 정치인과 작가가 만나 마을 사진집을 출간하게 된 뒷 이야기와 지방 소멸론(마을 소멸론)에 대한 우려와 대책, 그러므로 마을이 소멸되기 전 마을 모습을 사진기록으로 담는 작업이 절시하다 등의 주제로 좌담이 진행됐다./김선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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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장흥투데이(http://www.jhtoday.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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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훈 시인

 

제3회 정남진신인시문학상에 제주 출신 최재훈 시인이 선정됐다. 수상작은 ‘가방’ 외 4편.
2016년에 제정된 정남진신인시문학상은 장흥문화원과 계간 ‘시산맥’이 공동으로 주관하고 장흥군과 한국문학특구포럼추진위원회가 주최한다.
심사위원들은 최재훈 시인의 작품에는 “현대 시의 경향이 매우 다양하기는 하지만 그런 트랜드와 다르게 자기만의 발성법을 지니고 있다”고 작품을 평했다.
이번 예심은 기 수상자인 강주 시인, 김경린 시인, 성금숙 시인이 맡았으며 본심에 광주 출신 김병호(협성대 교수) 시인이 참여해 최재훈 시인을 만장일치로 선정했다.
한편 수상작품과 수상소감, 심사평 등은 계간 ‘시산맥’ 가을호에 소개될 예정이다. 시상식은 오는 10월 20일~21일 장흥에서 개최되는 2018년 제8회 한국문학특구포럼 행사장인 장흥군민회관에서 열린다. 문의 010-8894-8722.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출처 http://www.kwangju.co.kr/read.php3?aid=153374040063836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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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회 장흥군문화예술인대회’ 화합의 날 열려

 

 '남도의 눈부신 별 ‘장흥문화’의 힘찬 비상'

 

 

 

[일등방송=위정성 기자] 장흥문화원은 지난 28일과 29일 장흥군민회관에서 장흥군 출향예술인 30여명과 지역예술인 등 25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2018 제19회 장흥군문화예술인대회’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이번 대회에는 29개 장흥문화예술단체가 참가해 공연과 그림전시 시낭송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이어서는 지역 문화의 비전을 나누는 등 다양한 장르와의 소통과 화합의 자리를 만들었다.
식전 행사로 조연희 외 10개읍면 다양한 회원으로 구성된 ‘여울타’의 풍물공연과 65세 이상 실버민요합창단 ‘오늘같이 좋은날’에서 화합 문화의 장을 열었다.
1부 문예인들의 ‘화합의 장’으로 공로상 표창, 주제발표, 공연을 가졌다.
공로패 수상자로 지역대표 출향 대표 김희태, 지역 대표 마동욱작가가 선정돼 지역 예술인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장흥출신으로 서울중구청장을 지낸 박형상 변호사는 ‘장흥문화의 힘찬 비상-탐진강 물줄기를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우리지역의 ‘문림의향’이 어디에서부터 출발하는지와 장흥의 포괄적인 문화유산에 대해 알려주는 발표를 이어갔다.

정종순 정흥군수는 “지역 예술인들이 한 자리에 모여 다양한 의견들을 나누고, 출향문화예술인들의 전문성이 지역문화 예술인들과의 교류를 통해서 지역 문화예술 수준을 향상시키고 군민들에게 한 차원 높은 문화예술 향유 기회 제공한다”고 말했다.

2부 공연은 정남진보리수관악단, 장흥합창단, 보림국악진흥회, 장흥전통우리춤, 장흥한춤보존회, 색소폰연주, 예술단 ‘결’, 국악가요 화합의 공연이 펼쳐졌다.

또한 1층과 3층 로비에서는 29개 문화예술단체 배너전시와 구메구메, 시담, 팝콘스케치, 이봉준 서예가의 고희 작품 전시가 함께 펼쳐졌다.

29일 행사에는 ‘문화예술탐방’의 시간으로 강진 ‘청자박물관’과 ‘민화박물관’ 강진청자축제장을 방문하여 인근 역사의 숨결과 조우하고 문화교류 시간을 가졌다.

장흥문화원 이금호 원장은 “오늘은 그야말로 장흥을 사랑하고 문화를 생산하는 ‘장흥문화인의 날’이라면서 시원한 물줄기 정남진 장흥물축제장에서 고향의 정취를 만끽하시고 오늘 하루 뜻 깊은 ‘문화예술인의 날’로 기억되기를 기원한다”며 출향 및 장흥문예인들에 감사인사를 전했다.

 

 

관련기사 http://www.ibnews.or.kr/sub_read.html?uid=38168

 

 

 

 

 

 

 

 

▲ⓒ장흥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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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흥문화원 임직원 연수

장흥문화원(원장 이금호)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제주도에서 임직원 연수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첫날 탐방한 제주 4.3평화기념관에서 장흥문화가족들은 70년이 되었지만 아직 아물지 않은 통곡의 역사와 인간의 상처에 마주했다.

김영석 운영위원은 전혀 모르고 있던 제주도 4.3의 비극을 마주하면서 남북화해와 평화가 절실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선녀와 나무꾼’(추억의 테마공원), 한울랜드(연박물관) 등 여러 전시공간을 방문하면서 장흥에 전시관이나 문학관 필요성을 체감했다.

김상찬 이사는 양이 중요한 건 아니지만 제주도에는 100여개가 넘는 여러 미술관, 박물관이 있다. 하지만 장흥에는 방촌유물전시관, 천관문학관, 장흥동학농민혁명기념관 정도가 고작이다.

앞으로 문림의향 장흥에 꼭 필요한 공간을 말한다면 장흥의 역사를 담아내는 역사박물관, 무엇보다 장흥출신 여러 미술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미술관, 그리고 장흥과 남도의 문학작가들을 담아내는 장흥문학관 혹은 남도문학관이다.

마침 ()교도소 자리에 복합문화공간을 조성할 계획이라니 그 곳에 이러한 전시관들을 마련하여 문림의향 장흥의 문화관광 기틀을 만들어 가면 좋을 것이다고 말했다.

한편 70년대부터 최근까지 많게는 수십 차례, 적게는 수차례 제주를 방문한 경험이 있는 문화가족들은 급격하게 변한 제주의 풍광을 보면서 많이들 안타까워했다.

1년이면 제주도를 수차례 방문한다는 문경호 이사는 개발이 다가 아니다. 사실 제주 특유의 오름과 바다, 잘 보존된 자연의 풍광을 보러 자주 왔다.

제주 뉴스를 보니 서귀포 성산읍에 인구 5만이 사는 신공항 신도시를 만든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이러면 장기적으로 봤을 때 제주도는 관광지로서 매력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장흥도 사자산과 억불산을 무리하게 개발할 일이 아니다. 자연의 훼손을 최소화하는 생태문화관광의 방향성을 이제는 생각할 때라고 말했다.

김기홍 고문은 집에 가면 컴퓨터에 저장하여 찬찬이 들여다보려고 가는 곳마다 사진을 다 찍었다. 수백 컷을 찍었다. 앞으로도 이러한 문화원 임직원 연수가 지속되어 우리의 견문을 넓히고 장흥문화와 접목할 수 있는 기회를 자주 가진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금호 문화원장은 타 지역의 문화적 토양를 배우고 익혀서 지역사회와 소통하고 교학상장하는 문화원이 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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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ngtv.tv/news/articleView.html?idxno=47033

 

 

장흥문화원, 제주도 역사문화유적지 탐방 5시간전 | NGTV

장흥문화원(원장 이금호)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제주도에서 임직원 연수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첫날 탐방한 제주 4.3평화기념관에서 장흥문화가족들은 70년이 되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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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문학을 전라도 문화콘텐츠로 만들자”

윤선도·정약용·정약전 등 문학작품·기록 문화자원 삼아야

전남문화원연합회 12일 심포지엄 갖고 구체적 방안 모색

22개 시·군 문화원장 진도일대 유배지 돌아보며 현장토론

 

유배문화활용방안모색 심포지엄

 

12일 전남 진도군 진도향토문화회관에서는 ‘호남의 유배문화와 그 활용 방안 모색’이라는 주제로 향토문화연구 심포지엄이 열렸다. 이날 전남문화원연합회 주최로 열린 심포지엄에서는 학계인사와 22개 시·군 문화원장과 사무국장, 문화원 관계자, 향토사학가들이 참석해 남도의 학문과 사상, 문학작품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유배문화를 체계적으로 정리·자원화 하는 방안에 대해 폭넓은 의견을 나눴다.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김종회 경희대교수가 ‘한국의 유배문화’를 주제로 기조 발제했다. 또 방민호 서울대 교수가 유배문화의 문화사적 가치(유배와 문학의 관련 양상에 관한 하나의 해석-윤선도를 중심으로-)를 주제로 발표했다. 이와 함께 김대현 전남대 교수가 ‘호남의 유배문화 현황’을, 유성호 한양대 교수가 ‘호남의 유배문화와 그 활용 방안’을 주제로 해 호남지역 유배 상황을 조망하고 문화자원화 방안에 대한 의견을 제시했다. 토론자로는 김선기 시문학파기념관장과 박주언 향토사학자, 김경옥 목포대교수가 나섰다.

 

 

 

12일 진도향토문화회관에서 열린 유배문화 심포지엄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지난해 호남지방문헌연구소가 출판한 <호남유배인 기초목록>중 928명에 달하는 호남유배인들에 대한 문헌자료를 활용한 지역학 연구와 조사마무리, 유배문학 체계적 정리의 필요성 등이 강조됐다. 또 유배관련 문화자원을 어떻게 전남의 특징적인 유배문화 콘텐츠로 만들 것인지 대해서도 논의가 이뤄졌다. 이날 심포지엄에서 논의됐던 발표자와 토론자들의 유배문화 활용방안의 주요내용을 간추려 소개한다.

■기조발제 : 한국의 유배문화

 

 

 

 

김종회 교수

김종회 (경희대학교 교수·한국문학평론가협회 회장)

조선시대 유배지를 도별로 조사한 연구에 따르면 조선 8도 중 전라도가 가장 많은 빈도를 나타낸다. 그 중에서도 진도, 흑산도, 고금도, 강진, 장흥, 지도의 순서를 보인다. 유배지는 도성에서 거리가 멀고 외진 곳이 적합지였으며 그래서 교통이 어려운 섬이 선택될 때가 많았다.

진도에 유배된 정치적 사상적 ‘죄인’의 숫자는 60여 명에 이르는데, 이 중 반 수 가까이는 3년 미만의 적거생활을 했다. 유배자 거의 모두가 유배시서(詩書)에 능해 많은 기록을 남기는 것이 통상적인 결과다. 진도에는 노수신, 김이익, 정만조 등 명사의 유배 기록이 남아 있으나 문학사에 논구될 만한 유배문학은 잘 보이지 않는다.

유배지 현지의 입장에서 보면 국가의 우수한 인재가 지역 생활공간으로 편입되어 학문과 교육을 전파하고 식산(殖産)의 향상을 위한 지혜를 가르치는 것은 매우 유익했다. 이를 통해 지식과 경륜의 재분배가 이루어지고 지역의 다음 세대에 새로운 시대를 바라보는 안목을 키워줄 수 있었다. 순기능적 측면을 무시할 수 없는 형편이다.

■제1주제 : 유배문화의 문화사적 가치

 

 

방민호 교수

방민호 (서울대학교 교수)

특기할 만 한 점은 호남 지역이 유배지수와 유배횟수에서 상당한 치수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 특히 흑산도, 진도, 해남이 50회 이상의 수치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유배의 고장으로서 호남 해안, 도서 지방이 그와 관련하여 어떤 문화적 특성을 키워 왔으리라는 가설은 부정될 수 없을 것이다.

윤선도를 통하여 한국문학, 조선의 한글문학은 다른 어느 나라의 시가도 부럽지 않을 것 같은 ‘천연’의 언어적 보물을 얻었으니, 윤선도의 시가들은 한문문학이 중심으로 자처하던 시대에 쌓아올린 유배의 달디 단, 값진 과실이었다. 윤선도의 강호 문학, 강호 시가, 이것은 단순한 풍류의 노래가 아니라 왕조의 통치술로서의 유배와 자신의 인생의 시간을 들여 맞설 수 있었던 한 인간의 치열한 내면의 풍경의 기록인 것이다.

■제2주제 : 호남의 유배문화 현황

 

 

 

김대현 교수

 

김대현 (전남대학교 교수)

작년에 출판된 호남지방문헌연구소의 <호남유배인 기초목>에는 호남유배인 928명이 정리되어 있다. 이는 양진건, 김경옥 선생의 기존 업적을 바탕으로 좀 더 보충하여 호남 유배인의 전체 목록을 종합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더 조사가 이루어지면 아마 1천 여 명에 가까운 유배인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유배문인의 문헌자료는 특히 중요한데, 이들 문헌자료를 통하여서도 다음과 같은 일을 할 수가 있다.

첫째, 호남유배인의 문헌자료를 활용하여 유배문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다. 유배나 추방을 당한 문인 가운데는 유배시 훌륭한 작품을 남긴 사람들이 적지 않다. 호남유배인의 문헌자료가운데는 문집이 106종에 이르렀으며, 문집 안에는 유배지에서 쓴 한시, 가사, 편지, 일기 등이 수록되어 있었다. 호남유배인 문헌자료를 활용한다면 유배한시, 유배시조, 유배가사, 유배편지, 유배일기 등 유배문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호남유배인의 문헌자료를 활용하여 지역학 연구를 진행할 수 있다. 호남유배인 문헌자료에 수록된 다양한 작품 중 유기(遊記), 풍토기(風土記) 등은 당대 그 지역을 연구하는 데에 기여하는 것이 크다. 또한 한시 중에서도 지역 풍토를 담고 있는 작품들도 지역학 연구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호남유배인의 문헌자료를 통해 유배문화 콘텐츠를 제공하여, 스토리텔링 및 관광자원화에 활용할 수 있다. 기존 연구자들도 모두 유배관련 문화자원을 현대에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호남유배인 문헌자료는 이러한 유배문화 콘텐츠의 원형자료를 제공할 수 있으니,앞으로 전면적인 정리와 활용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제3주제 : 호남의 유배문화와 그 활용 방안

 

 

유성호 교수

유성호 (한양대학교 교수)

호남은 한양과 거리가 먼 변방 중의 변방이었고, 많은 섬 지역을 포함하고 있어서 유배지로 자주 선택되었다. 호남이 고려, 조선, 근대 초기에 이르기까지 900명이 넘는 많은 유배자들이 다녀갔음을 확인할 수 있고, 그들은 한양과 거리가 멀고 섬 지역인 제주와 전남 남해안에 많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문헌 자료가 있는 124명의 호남 유배자 가운데 문집이 확인된 인물은 현재 106명에 이른다. 호남 유배자의 문집 중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은 1230년 전북 부안에 유배된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이고, 가장 늦은 시기의 것은 1914년 전남 여수 거문도에 유배된 임병찬의 <둔헌문집>이다.

김진철, 양진건 교수는 제주 유배 문화 스토리텔링 사례를 중심으로 유배 문화스토리텔링을 살피면서 추사 김정희의 유배 서사를 활용하여 문화 콘텐츠화한 사례로 추사 유배길을 언급하였다. 이처럼 현대에는 문화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높기 때문에 우리는 호남 유배자 문헌 자료가 문화 콘텐츠화에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호남 유배자 문헌 자료의 구체적 예시를 통해 문화 콘텐츠화 가능성을 구축하고, 나아가 미디어 콘텐츠, 관광 콘텐츠, 교육 콘텐츠 분야에서 활용 가능성을 타진해볼 수 있을 것이다. 호남 유배자 문헌 자료에 담긴 유배로 인한 드라마틱한 경험은 충분히 스토리로 재탄생하여 만화, 드라마, 영화 등 미디어의 원형 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종합토론

■김선기 (문학박사·시문학파기념관장)

 

김선기

 

 

21세기 정보화산업의 큰 물결 속에서 문화공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유배문화 공간에 대한 실존적 탐색은 매우 의미 있는 일 일 것입니다. 유배문화에 대한 콘텐츠는 세계적으로도 관심이 큽니다. 김대현 교수님의 연구 성과물에 따르면, 우리나라 여덟 개 도 단위 가운데 전라도 지역이 유배가 가장 많았던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처럼 찬란한 유배문화유산을 갖고 있는 전라도 지역을 외국의 사례처럼 개발 가능성이 있는지, 있다면 어떠한 방법으로 개발해야 하는지? 또 전라도 지역이 지니고 있는 유배문화적 리소스는 문화산업적 관점에서나, 문화사적 측면에서 그 활용도가 매우 높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금까지 변방으로만 치부되었던 유배문화를 담아내는 ‘그릇’, 즉 문화공간이 필요하다고 여겨집니다. 그 것은 곧 ‘대한민국 유배문화관’ 건립일 것입니다. 이에 대한 발표자의 견해는 어떤 것인지?

■ 박주언 (향토사가)

 

 

박주언

 

 

김대현교수는 호남지방문헌연구소를 운영하면서 호남문집, 호남 지방지, 호남 누정, 호남 문중문헌 그리고 호남 유배인 조사 등 을호남학 연구에 크게 공헌했다. 그러나 아직도 드러나지 않은 기록유산이 각 가정으로부터 마을과 기관들을 거쳐 군청, 시청에 이르기까지 숨어있다.

문중, 제각, 사우, 학교, 향교, 사찰, 사회단체 그리고 각종 계를 포함하여 특별한 점포까지 조사자가 찾아갈 곳은 많다. 지역사회에서 누가 이러한 조사 작업을 맡을 것인가? 누가 각종 기록유산을 조사 정리 보존할 것인가? 문화원밖에 없다. 번역은 단계적 일이고, 우선 문서들을 살려내는 일이 시급하다. 향토사에 관심 있는 분들과 함께 즉시 시작할 일이다.

호남의 기록유산을 살려내는 데 전남문화원연합회가 상당한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한다.

■ 김경옥 (목포대학교 교수)

 

 

 

김경옥 교수

 

기존 유배 관련 연구 성과를 살펴보면, 누가, 언제, 어디로, 유배되었는가에 대한 기본 틀은 어느 정도 파악된 것으로 보인다. 이제 해당 지역에서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동안 우리들의 유배에 대한 인식은 TV드라마에서 제공했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런데 최근 연구 성과를 통해 유배인의 유배여정(노정기), 유배지에서의 생활(의식주, 인적교류, 일상사), 현전하는 유배문화자원(문집, 서원·사우, 비석 등)에 이르기까지 1차 자료가 파악되었다. 그리고 일부 지역의 경우 유배문화를 자원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시도되고 있다.

예컨대 남해의 유배문학관, 강진의 다산기념관, 제주도의 추사관, 흑산도의 유배문화공원 등이다. 주로 다산 정약용과 추사 김정희 등 역사인물과 그의 활동을 소개하고 있고, 예외적으로 흑산도의 경우 섬 주민과 외지인을 고려하여 공간을 조성한 사례이다.

최근 제주도에서는 ‘추사의 유배길’이 조성되었고, 또 하나의 스토리텔링으로 조정철(1751~1831)의 유배길(제주목→정의현)과 홍랑의 길(홍랑의 무덤→묘비)에 대한 사례가 발표되었다. 진도나 호남 역시 유배된 인물과 이들이 남긴 문화자원을 활용해 문화 콘텐츠 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박정석 진도 문화원장(왼)과 황호용전남문화원연합회회장(오른쪽)

 

진도 금갑도에 있는 무정 정만조선생의 유배지를 찾아 전남 22개 시군 문화원장과 사무국장, 관계자들이 현장토론을 벌이고 있다.

 

벽파진

 

/최혁 기자 kjcho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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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종관 지역문화네트워크 공동대표 / “중앙집권적 운영, 창의성 떨어져 / 문화분권, 지역간 문화격차 해소 /

 원천 콘텐츠 잠재성 관심 가져야”

 


지방분권이 태동하고 있다. 과거 정부 주도의 획일적인 목표 하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풍요를 안겨줬던 중앙집권적 국가 운영이 다원화 시대의 지역 특수성과 창의성 등을 더 이상 반영하지 못하고 있어서다. 분권의 태동은 문화계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박종관(사진) 지역문화네트워크 공동대표는 5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문화분권은 지역 간 문화 격차를 해소하고, 지역별로 특색 있는 고유의 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 대표는 “공동체를 중심으로 한 활동에 익숙했던 우리 사회가 이제는 개인의 다양성을 중시하는 변혁기에 놓여 있다”며 “문화는 일상적인 삶과 분리할 수 없고, 국민의 삶이 지역에 기초한다는 점에 비춰 지역의 특색을 반영한 자생적이고, 자발적인 지역 문화는 다양성을 촉진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문화분권은 최근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문화비전 2030’의 의제에도 포함돼 있다. 문화비전 2030은 자율성, 다양성, 창의성을 가치로 설정하고, 2030년까지 ‘쉼’ 문화 등을 사회 전반에 확산시키기 위한 정부의 정책 방향이다. 박 대표도 문화비전2030 ‘새문화정책 준비단’ 위원으로 활동했다.
그는 지역문화 활성화를 위해서는 지방문화원이 추진하고 있는 ‘원천콘텐츠 발굴 지원사업’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방문화원이 체계적으로 조사·정리한 향토문화자료를 바탕으로 콘텐츠를 발굴하고 이를 토대로 다양한 문화자원을 개발하는 사업이다. 경북 문경의 모전들소리 보존 사업, 전남 장흥의 문림의향 장흥설화를 토대로 한 교육용 만화책 제작 사업, 울산 울주의 영등할만네 신앙과 바람올리기 기록화 사업 등 전국 231개 지방문화원 중 184곳에서 지역 향토문화를 기반으로 한 독창적인 사업을 펼쳐가고 있다.

 

박 대표는 “수많은 사람의 시간과 역사를 오롯이 담고 있는 지역 향토문화는 지역의 정체성 확립은 물론 지역주민의 자긍심을 고취해줄 것”이라며 “원천 콘텐츠의 잠재성과 부가가치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까지 문화정책은 무엇이 더 경쟁력이 있는지를 따지는 성과주의적인 측면이 강했지만 그것이 어디에서 나왔는지에 대한 주목도는 약했다”며 “원천콘텐츠와 같은 본질적이고 기초적인 가치가 탄탄해야 훌륭한 결과물, 파생적 가치가 나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 대표는 문화분권을 위해서는 지방문화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방문화원들이 과거 그 지역의 문화적·정신적 지주 역할을 담당해왔지만 2000년 이후에는 지역문화재단들과 우선 순위를 다투는 등 사실상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며 “문화원의 정확한 역할과 위상을 규정해줄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지역문화에 정통한 전문 인력을 확보하고, 지역문화에 대한 정확한 실태조사를 해나갈 뿐 아니라 지역 간 협력 체계를 구축하는 등 문화원이 주도하는 논의의 장이 펼쳐지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글·사진=이정우 기자 woolee@segye.com

 

 

 

출처: http://www.segye.com/newsView/20180705005027

 

 

 

 

 

▲장흥설화를 바탕으로 한 장흥설화 만화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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