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문화원

[목포MBC 창사특집]
한반도의 정남진 장흥 탐진강,
장흥사람들은 탐진강을 어머니의 품 같은 강이라고 말합니다.

영암 금정산에서 발원돼 장흥을 거쳐 강진만을 통해 바다로 흐르는 탐진강은 한승원, 이청준 등 수많은 문인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작품 속 배경이 되기도 했습니다.

맑고 깨끗한 물은 여름이면 주민들에게 다슬기를 내어주고 농민들에게는 농사에 꼭 필요한 물을 내어줍니다.

문화와 생태가 살아 숨쉬는 탐진강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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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NET_찾아라! 팔도맛지도 - 전남 장흥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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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지오그래피] 이부부가 사는법 -장흥 향양댁(16.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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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지오그래피] 이 부부가 사는법 - 장흥 용산댁네 (17.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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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지오그래피] 이부부가 사는법 - 장흥 우곡댁네 (17.04.03)

 

할머니: "하다 뭉태고 있는께 혼자 하다가는 날새고 닭 울어불어 어른얼른 빨랑빨랑 해"
할버지: "그라고 저라고 자기가 잘허네.둘이 깐닥깐닥 하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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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행 - Korea travel_호남명산기행 4부 천관산_#001

전라남도 장흥군 관산읍과 대덕읍 경계에 있는 산.

높이 723m. 가끔 흰 연기와 같은 이상한 기운이 서린다고 하여 신산이라고도 한다. 주위에 양암봉·소산봉 등이 있다. 사방이 비교적 급경사이며 곳곳에 깊은 계곡이 발달했다. 사자암·상적암·문주보현암 등의 기암괴석과 갈대밭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경치가 수려하며 특히 가을단풍이 좋다. 또한 천관사·탑산사·장안사를 비롯한 많은 절터와 석탑·석불 등의 유적이 남아 있다.

개설

높이는 723m이고, 옛 이름은 천풍산(天風山)ㆍ지제산(支提山)이다. 가끔 흰 연기와 같은 이상한 기운이 서린다 하여 신산(神山)이라고도 한다.

지리산, 내장산, 변산, 월출산과 더불어 호남의 5대 명산으로 불리는 천관산은 수려한 지형경관으로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명칭 유래

신라김유신(金庾信)이 소년시절에 사랑한 천관녀(天官女)가 숨어 살았던 산이라는 전설이 있다.

자연환경

천관산의 주변으로는 백악기 후기의 중성 화산암류가 대부분이지만, 천관산 일원은 불국사 화강암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일부 쥐라기의 대보화강암이 나타나고 있다.

하계망은 북쪽으로 고읍천의 지류가 형성되어 있으며, 남쪽으로는 대덕천으로 유입된다. 천관산 제2봉인 대장봉 일대는 연대봉과는 달리 구상풍화(球狀風化)를 받은 원형의 핵석이 많이 분포한다. 또한 산릉을 따라 토어(tor)와 캐슬코피(castle koppie)가 형성되어 화강암산지 특유의 지형경관을 만든다. 정상에 출현하는 평탄한 노암에서 연유하여 환희대(歡喜臺)라고도 불린다. 천관산 지역의 주요 식물군락은 소나무군락, 곰솔군락, 곰솔-상수리나무군락, 신갈-졸참나무군락, 동백나무군락, 비자나무군락, 억새군락 등이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2000년 조사에서 천관산 지역에서는 총 8목 19과 49종 723개체의 조류가 관찰되었다.

형성 및 변천

고려시대까지만 하여도 산이 울창하였으며, 천관사ㆍ옥룡사ㆍ보현사 등 89개의 암자가 있었으나, 현재는 절터와 몇 개의 석탑ㆍ석불만이 남아 있다.

현황

장천재의 깊은 계곡과 치솟아 있는 산정 일대의 봉우리는 정말 아름답다. 당암(堂巖)ㆍ고암(鼓巖)ㆍ사자암(獅子巖)ㆍ상적암(上積巖)ㆍ사나암(舍那巖)ㆍ문주보현암(文珠寶賢巖) 등은 일대 장관을 이룬다.

가을에는 단풍이 깊은 계곡을 아름답게 수놓으며, 겨울에는 푸르른 동백과 함께 주변 경관이 뛰어나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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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임씨 뿌리를 찾아서

출처: https://youtu.be/ZiUHC9SfTBI

 

장흥 임씨는 고려 시대 문벌 귀족 가문으로 조선 시대에는 유림의병 세력으로 다양한 활동을 한 호남의 대표 성씨이다. 고려시대에는 재상지종[2]으로 특히 호남의 호족세력으로서 현재의 장흥군과 인접 시군 일부에 장흥부라는 지명을 부여받게하고 이후에는 지역발전에 기여하였다. 고려 시대에 지속적으로 국가와 왕권을 보위한 가문으로, 장흥 임씨 세력이 다양한 권력 교체기에도 국가의 주요 직책에 봉사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한 학술 연구가 진행되었는데, 민족을 사랑하고 청렴을 강조한 가풍과 혼맥에 이유가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조선 시대에는 낙향하여 지방 유림세력으로 과거시험을 통하여 중앙 및 지방관직에 진출하였다. 임진왜란 및 정유재란시에 호남 의병장 등으로 활동하여 의병을 일으켰다.

장흥 임씨의 시조 임호( 顥)는 중국 송나라 소흥부(紹興府) 출신으로 상서공부원외랑(尙書工部員外郞; 공조 소속의 정6품 벼슬)과 이부상서(吏部尙書)를 지냈는데[3], 당시 중국의 정세가 혼란하자 난을 피하여 고려 정종 때 정안현(定安縣; 현재의 장흥군 관산읍(冠山邑)의 임자도(任子島 또는 荏子島)에 잠시 정박하였다가, 그곳 천관산 아래에 있는 당동(堂洞)에 정착하였다.

임호의 아들 임의(任懿)가 중서문하평장사(中書門下平章事)·판상서형부사(判尙書刑部事)를 거쳐 상주국(上柱國)에 이르렀고 좌리공신(佐理功臣)으로 정안군(定安君)에 봉해졌다. 시호는 정경(貞敬)이다.

임의의 아들 임원후시중에 올라 묘청의 난을 토벌한 공으로 좌리공신(佐理功臣)에 책록되었으며 삼중대광(三重大匡; 文官 정1품 품계)·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 문관 정1품 품계)를 거쳐 수태위(守太尉)·상주국으로 정안공(定安公)에 봉해짐으로써 후손들이 본관을 장흥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임원후의 두 형제 원숙(元淑)과 원순(元順)이 각기 평장사(平章事; 정2품)를 역임하였으며, 또한 그의 아들 모두가 출세하였는데, 그 중에 맏아들 극충(克忠)이 고려 문종 때 문과에 급제한 후 한림학사(翰林學士; 한림원 소속의 정4품 벼슬)를 거쳐 사공(司空: 삼공의 하나로 정1품 벼슬)을 역임하였고 이어 판상서형부사(判尙書刑部事)에 오른 뒤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 中書門下省 정2품職)에 이르렀다. 둘째 극정(克正)은 호부상서(戶部尙書; 정3품)를 지내고, 셋째 유(濡)가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종2품 문산계(文散階)에 올라 문하시중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 정2품)를 거쳐 태자태사(太子太師; 동궁의 종1품)에 이르렀으며, 인종의 비인 공예태후는 임원후의 딸이었다. 공예태후로 인해 왕실과 인연을 맺어 18대 의종, 19대 명종, 20대 신종이 모두 장흥임씨의 외손으로 그들이 전후 약 50년간 왕위에 있는 동안 장흥임씨는 고려귀족가문의 발판을 더욱 굳히게 되었다. 학덕이 높은 명신으로 희종묘(僖宗廟)에 배향된 양숙공(良淑公) 유(濡)의 아들 경숙(景肅)은 형부상서(刑部尙書; 정3품)·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 정3품)·수문전태학사(修文殿太學士)에 이어 평장사(平章事; 정2품)가 되었는데 그가 수찬관(修撰官; 사관(史館, 춘추관)에 두었던 벼슬)으로 있을 때 유명한 명종실록(明宗實錄)을 편찬하였다. 유(濡)의 증손 익(翊)은 밀직부사(密直副使)·동수국사(同修國史; 사관(史館)의 한 벼슬)를 거쳐 찬성사(贊成事; 정2품)가 되었는데 왕명을 받들어 선원록을 지었다. 이것이 우리나라 족보편찬의 효시가 되었다고 한다. 그는 박식다문하고 전고(典故)에 밝아 당시의 수찬관 김련(金聯)과 함께 원나라에 초빙되어 원나라의 세조사적(世祖事績)을 편찬하였다. 원준(元濬)의 증손 방부(邦富)는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로 평장사(平章事)에 오르고 아우 방수(邦壽)는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로 태자태부(太子太傅)에 이르렀다. 조선초기에는 유(濡)의 5세손 서종(瑞宗)이 예조판서(禮曹判書), 서원(瑞原)이 전공판서(典工判書), 서종(瑞宗)의 아들 헌(獻)은 대사헌, 손자 종선(從善)이 전라감사(全羅監司) 등을 역임했을 뿐, 이성계의 역성혁명에 반대, 벼슬길을 멀리해 오다가 성종(成祖朝)에 이르러 원준(元濬)의 8세손 득창(得昌)이 온성도호부사(穩城都護府使)가 된 이래 관직이 이어졌으나 고려조(高麗朝)에 비해 벌열(閥閱)하지는 못하였다. 득창(得昌)의 아들 광세(光世)는 좌통례(左通禮), 아우 충세(忠世)는 병조참판(兵曹參判)을 지냈다. 광세는 5형제를 두었는데 장남 희준(希駿)은 절제사(節製使), 2남 희순(希馴)은 옥과현감(玉果縣監), 3남 희중(希重)은 호(號)가 국담(菊潭)인데 문장이 뛰어난 석학으로 지리·병서에도 능했으며 전남·보성군·조성면·축대리(全南寶城郡鳥城面築內里)에 사숙(私塾)을 지어 후진양성에 힘써 많은 인재를 배출하였다. 희중의 아들 임계영은 문과에 급제하여 진보현감(珍寶縣監)을 지낸 후 임진왜란을 당하자 호남 의병장이 되어 많은 공을 세웠으며, 해남 의병장 희진(希璡)은 효자 근(謹)의 아들로 임진왜란 때 제1차 진주성 전투에서 의병장 김건재(金健齋)와 함께 순절하였다. 조선 명종 때 제주목사(濟州牧使)를 지낸 응룡(應龍)은 제주에서 돌아올 때 해송(海松) 여덟 그루를 가지고 나와 제천시의 북쪽 경치 좋은 곳에 심어 그곳 경관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 시객(詩客)을 불렀던 것이 유래가 되어 오늘의 탁사정유원지(濯斯亭遊園地)로 발전하여 지금은 많은 관광객과 피서객이 이곳을 찾고 있다.

 

출처: https://ko.wikipedia.org/wiki/%EC%9E%A5%ED%9D%A5_%EC%9E%84%EC%94%A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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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16. 6. 1.

[앵커]
아시아 최초로 맨부커상을 받은 한강의 아버지 한승원 작가가 고향 주민을 위해 조촐한 축하 잔치를 열었습니다.
잔치가 열린 전남 장흥은 한승원 외에도 이청준, 송기숙 등 많은 문인을 배출한 곳으로 유명한데요.
장흥군은 한강의 맨부커상 수상을 계기로 국립한국문학관 유치가 한층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김범환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얼마 전 한강의 맨부커상 수상은 대한민국 문학의 쾌거로, 앞으로 더 많은 우리나라 작품이 세계에 소개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쏟아졌습니다.
[한강 / 맨부커상 수상 작가 : 상을 받고 나서 많이 기뻐해 주시고 고맙다고 해 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어떤 마음인지를 헤아려 보려고 많이 생각했습니다.]
한강의 아버지 한승원 작가가 마을 잔치에 이어 장흥군민 3백여 명을 초청해 점심을 대접했습니다.
수상 발표 직전 부처님 오신 날에 열린 사찰 상량식에서 혹시라도 딸이 맨부커상을 받으면 고향 주민을 위한 잔치를 열겠다고 한 약속을 지킨 겁니다.
[한승원 / 한강 아버지 : 앞으로는 좋은 번역가가 나오기 때문에 한강이 탄 맨부커상보다 훨씬 더 좋은 상들을 우리 후배 작가들이 많이 타 올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예부터 '문림 의향'으로 이름난 전남 장흥은 관서별곡의 기봉 백광홍, 존재 위백규를 비롯해 가사문학의 대가들을 많이 배출했습니다.
24명의 작품이 수록된 한국 현대문학 전집에도 한승원 외에 '당신들의 천국'의 이청준, '녹두장군'의 송기숙 등 3명이나 이름을 올렸습니다.
억새로 이름난 천관산 자락에는 이미 문학공원과 문학관이 들어서 있습니다.
장흥군은 한강의 맨부커상 수상을 계기로, 한국문학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게 될 국립한국문학관 유치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이낙연 / 전라남도지사 : 정말 문학적 대표성과 상징성으로만 본다면 장흥을 능가할 곳이 과연 있겠는가, 정무적 판단을 일절 배제하고 문학적 대표성과 상징성만으로 판단하신다면 오히려 판단은 쉬어질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이자 유일한 '문학관광 기행 특구'로 지정된 장흥군은 한국문학관 터로 옛 교도소 자리를 활용한다는 계획입니다.
국립한국문학관 유치에 나선 곳은 전국적으로 모두 24곳, 수많은 소설의 배경이자 영화의 촬영지로 '살아있는 문학박물관',' 현대문학의 요람'으로 불리... (중략)

▶ 기사 원문 : http://www.ytn.co.kr/_ln/0115_2016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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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숙

생년월일 : 1935 - 출생지: 전남 장흥

1935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 전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같은 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했다. 1964년 [현대문학]에 평론 [창작 과정을 통해 본 손창섭]과 1965년 [이상서설]로 추천이 완료되었다. 1966년 단편 [대리복무], 장편 [자랏골의 비가]를 발표하며 소설가로 활동을 시작했다. 1973년 전남대학교 교수가 되었으나 1970~80년대 민주화운동과 교육운동에 참여하며 두 차례 옥고를 치렀다. 1984년 전남대학교 교수로 복직했으며, 1987년에는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를 창설하여 초대 공동의장을 맡았다. 작품으로는 [백의민족], [도깨비 잔치], [재수없는 금의환향], [개는 왜 짖는가], [테러리스트], [자랏골의 비가], [암태도], [녹두장군], [은내골 기행]과 산문집 [녹두꽃이 떨어지면], [교수와 죄수 사이], [마을, 그 아름다운 공화국], 역사이야기 [이야기 동학농민전쟁] 등이 있다. 현대문학상, 만해문학상, 금호예술상, 요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우투리(소설), 원작 송기숙 - 오월문학작품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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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이청준,한승원,송기숙,이승우...문학의 고장, 장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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