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장흥문화와역사/시도지정문화재39

[시도지정 기념물 제134호]장흥 방촌리 지석묘군 시도기념물 제 134호 장흥방촌리지석묘군 (長興傍村里支石墓群) 분 류 유적건조물/무덤/무덤/지석묘 수량/면적 일원(90여기) 지정(등록)일 1990.12.05 소 재 지 전남 장흥군 관산읍 방촌리 588-1번지 시 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장흥군 지석묘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고인돌이라고도 부르며, 주로 경제력이 있거나 정치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4개의 받침돌을 세워 돌방을 만들고 그 위에 거대하고 평평한 덮개돌을 올려 놓은 탁자식과, 땅 속에 돌방을 만들고 작은 받침돌을 세운 뒤 그 위에 덮개돌을 올린 바둑판식으로 구분된다.전라남도 지방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는 곳으로 지금까지 2만기 이상이 알려져 있다. 전라남도 장흥.. 2018. 3. 21.
[시도지정 기념물 제68호] 용호정원림 시도지정 기념물 제 68호 용호정원림 (龍湖亭圓林) 분 류 자연유산/천연기념물/생물과학기념물/생물상 수량/면적 일원 지정(등록)일 1985.02.15 소 재 지 전남 장흥군 부산면 용반리 545번지 시 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낭주최씨종중 용호정은 비가 와 강물이 넘치면 강 건너 부친의 묘에 성묘를 하지 못하고, 바라만 보며 명복을 빌던 아버지 최영택을 위해 최규문이 조선 순조 28년(1828)에 지은 정자로, 최규문의 부친에게는 ‘부친을 바라보는 정자’요, 최규문에게는 ‘부친을 위로하는 정자’라 하였다. 정자는 느티나무 목재로 만든 8개의 원형 기둥을 세우고, 밤나무와 느티나무 목재만을 사용하여 지은 목조 기와집이다. 특히 사방에 놓여있는 마루는 못을 사용하지 않는 특수공법으로 조립되었다.. 2018. 3. 21.
[시도지정 기념물 제 67호] 부춘정원림 시도기념물 제 67호 부춘정원림 (富春亭園林) 분 류 자연유산/천연기념물/생물과학기념물/생물상 수량/면적 일원 지정(등록)일 1985.02.15 소 재 지 전남 장흥군 부산면 부춘길 79 (부춘리) 시 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청풍김씨종중 부춘정은 임진왜란(1592), 정유재란(1597) 때 혁혁한 공을 세운 문희개 선생이 고향으로 돌아와 선조 31년(1598)에 지은 정자로 원래는 문희개의 호를 따서 ‘청영정’이라 하였으나 후에 부춘정으로 비뀌었다. 건물은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2칸의 온돌방과 2칸의 대청을 두고 앞뒤로 반칸의 툇마루를 두었다.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정자가 서 있는 절벽 밑으로 물에 잠긴 바위에는 옥봉 백광훈이 썼다는 ‘용호(龍湖).. 2018. 3. 21.
[시도지정 기념물 제 59호] 장흥수인산성 장흥수인산성 (長興修仁山城) 종 목 시도기념물 제59호 명 칭 장흥수인산성 (長興修仁山城) 분 류 유적건조물/정치국방/성/성곽 수량/면적 일원 지정(등록)일 1982-10-15 시 대 미분류 전라남도 장흥군과 강진군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해발 561m의 수인산 산마루를 이어 돌로 쌓아 만든 산성이다. 성벽은 직사각형으로 다듬은 돌을 이용하여 이물려쌓기(돌의 단을 조금씩 들여 넣으면서 쌓는 일)를 하였는데, 총 연장 길이 6㎞, 높이 약 5m, 너비 4m로 남문, 북문, 동문이 있다. 성의 동쪽부분은 2중으로 성벽을 쌓았는데, 이러한 방식은 백제 때 나타나는 수법으로 미루어 백제의 성으로 추정된다. 기록에 의하면 고려말에 도강·탐진·보성·장흥·영암지역 백성들이 이곳에 들어와 왜구를 피했으며, 조선 태종(재.. 2018. 3. 21.
[시도지정 기념물 제30호] 장흥이조백자도요지 장흥이조백자도요지[長興李朝白磁陶窯址] 유형 유적 성격 도요지 건립시기·연도 조선시대 소재지 전라남도 장흥군 용산면 월송리 문화재 지정번호 전라남도 시도기념물 제30호 문화재 지정일 1977년 10월 20일 전라남도 기념물 제30호. 월송리 재홍마을의 동쪽 골짜기를 ‘사그점골’이라 하는데, 백자요지는 이 골짜기에 있는 월송저수지 동쪽 500m 지점에 위치한다.현재 완만한 자연 경사면에 약 100여m의 간격을 두고 2기의 가마가 노출되어 있다. 가마는 정남향으로 자리하고 있으며 2기 모두 여러 개의 방으로 이루어진 칸가마이다.두 가마 모두 노출된 상황으로 보아 4개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가마 끝의 격벽(隔壁 : 칸을 막은 벽)의 상황으로 보아 5칸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가마는 봉통 부분쪽인 1실이 가장 .. 2018. 3. 21.
[시도 유형문화재 제 304호] 장흥 신흥사 소장 정방사명 동종 [시도 유형문화재 제 304호] 장흥 신흥사 소장 정방사명 동종 (長興 新興寺 所藏 井方寺銘 銅鐘) 분 류 유물/불교공예/의식법구/의식법구 수량/면적 1구 지정(등록)일 2009.12.31 소 재 지 장흥읍 연산리 89-8번지 신흥사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장흥 신흥사에 소장된 “海南 井方寺銘 銅鐘”은 조선후기[1751년, 영조 27년, 乾隆十六年 辛未 五月日]에 제작되었지만 고려시대 걸작인 탑산사종(보물 88호, 1233년 추정)과 상당한 친연성이 느껴진다. 신흥사 동종은 고려 종에 비해 구경이 넓고 상대와 유곽사이에 범자문이 있으며 유곽사이에 보살입상이 있고 단아한 몸체와 정교한 문양, 그리고 아름다운 용뉴의 표현은 조선종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좋은 작품이다. 종을 제작한 도편수 윤취오(尹就.. 2018. 3. 21.
[시도지정 유형문화재 제 218호] 노봉선생문집목판 장흥연곡서원노봉선생문집목판 (長興淵谷書院老峯先生文集木板) 종 목 시도유형문화재 제218호 명 칭 장흥연곡서원노봉선생문집목판 (長興淵谷書院老峯先生文集木板) 분 류 기록유산/전적류/목판본/사간본 수량/면적 298판 지정(등록)일 1999-07-05 시 대 미분류 조선 숙종 때의 문신이자 학자인 노봉 민정중(1628∼1692)의 시문집을 새긴 목판이다. 정조 8년(1784)에 판을 새겼으며, 298매가 남아 있다. 민정중은 송시열의 문인으로, 효종 즉위년(1649)에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성균관전적, 예조좌랑, 홍문관수찬와 각 도의 암행어사의 벼슬을 지냈다. 그후 성균관대사성, 이조참판, 우의정, 좌의정 등을 지내고 1689년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집권하자 노론의 여러 사람들과 함께 벼슬을 빼앗기고 벽동에 .. 2018. 3. 21.
[시도지정 유형문화재 제 18호] 장흥 연곡서원 시도지정 유형문화재 제 18호 장흥연곡서원 (長興淵谷書院) 분 류 유적건조물/교육문화/교육기관/서원 수량/면적 일원 지정(등록)일 1974.12.26 소 재 지 전남 장흥군 장흥읍 연곡길 31 (원도리) 시 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연곡서원 노봉 민정중(1628∼1692)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민정중은 조선 후기 문신으로 호조·공조판서 등 여러 벼슬을 거쳐 우의정과 좌의정을 역임한 분이다. 숙종 원년(1675) 당쟁으로 장흥에 유배되었을 때 이 지방 선비들을 가르쳤는데 지금 있는 서원 자리에서 강회를 열었다고 전한다. 장흥 연곡서원은 숙종 24년(1698)에 세웠으며 숙종 42년(1716) 민정중의 동생인 민유중을 추가로 모셨다. 영조 2년(1726)에 나라에서 인.. 2018. 3. 21.
[시도지정 유형문화재 제193호] 장흥구룡리마애여래좌상 장흥구룡리마애여래좌상 (長興九龍里磨崖如來坐像) 종 목 시도유형문화재 제193호 명 칭 장흥구룡리마애여래좌상 (長興九龍里磨崖如來坐像) 분 류 유물/불교조각/석조/불상 수량/면적 일원(1,000㎡) 지정(등록)일 1998-02-05 시 대 고려시대 전라남도 장흥군 부산면 구룡리 자미 마을 뒤편 높이 20m가량 되는 병풍 바위에 새긴 마애불이다. 지상에서 약 6m 높이에 선으로 새겨 표현하였는데, 바위면이 평평하지 않아 전체 윤곽을 파악하기 힘들다. 민머리의 정수리 부근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높이 솟아 있고, 얼굴에는 콧등만이 유난히 돌출되어 있어 인상적이다. 옷은 양 어깨에 걸치고 있는데 무릎 밑으로 옷주름이 흘러 내려와 있다. 아랫부분으로 내려오면서 마모가 심해 정확한 윤곽을 알 수 없다. 오른손은 .. 2018. 3. 21.
[시도지정 유형문화재 제191호] 장흥전의상암지석불입상 장흥전의상암지석불입상 (長興傳義湘庵址石佛立像) 종 목 시도유형문화재 제191호 명 칭 장흥전의상암지석불입상 (長興傳義湘庵址石佛立像) 분 류 유물/불교조각/석조/불상 수량/면적 1구 지정(등록)일 1998-02-05 시 대 통일신라시대 원래 전라남도 장흥읍 제암산 중턱에 있는 의상암 절터에 있던 것인데, 1994년부터 보림사로 옮겨 모시고 있다. 몸 뒤의 광배(光背)와 목 부분에 약간의 파손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양호한 편이다. 민머리 위에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높게 표현되었고 얼굴은 계란형이다. 옷은 양 어깨를 감싸고 있으며 가슴 위까지 U자형 주름을 이루고 있다. 양 팔에 걸쳐진 옷자락은 물결 모양의 주름을 만들면서 무릎까지 길게 드리워졌다. 오른손의 엄지와 검지를 맞대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아마타여래.. 2018. 3. 21.
[시도지정 유형문화재 제 164호] 반계사 유물일괄 반계사유물일괄 (盤谿祠遺物一括) 종 목 시도유형문화재 제164호 명 칭 반계사유물일괄 (盤谿祠遺物一括) 분 류 유물 수량/면적 5종 8점 지정(등록)일 1988-12-21 시 대 미분류 반계사에 모셔진 조선 선조 때의 정경달(1542∼1602)과 관련된 자료들이다. 반계사는 숙종 40년(1714)에 영광 정씨 문중이 중심이 되어 건립한 것으로,영광 정씨의 정인걸, 정경달, 정명설, 정남일 네 사람과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큰 공을 세운 이순신, 임영립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건물이다. 고종 5년(1868) 훼손 되었던 것을 1957년 지금의 자리에 강당을 새로 짓고, 1959년에 탑을 세워 사우로서의 기능을 대신케 하였다. 유물과 유품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반곡의『난중일기』는 정경달이 임진왜란 초에.. 2018. 3. 21.
[시도지정 유형문화재 제 161호] 고산사 석불입상 고산사 석불입상 (高山寺石佛立像) 종 목 시도유형문화재 제161호 명 칭 고산사석불입상 (高山寺石佛立像) 분 류 유물/불교조각/석조/불상 수량/면적 1구 지정(등록)일 1988-03-16 시 대 미분류 고산사는 전라남도 장흥군 장평면 용강리 험준한 골짜기에 있는 사찰이다. 원래는 절터만 남아 있고 석불입상은 파손된 채 땅속에 묻혀 있었는데, 1966년 새로 지은 법당 안에 모셔놓았다. 석불 아랫부분과 광배 일부가 파손된 것을 시멘트로 보수하였다. 민머리 위에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높직하게 솟아 있고, 계란형의 얼굴은 살이 올라 풍만하다. 좁은 어깨를 감싼 옷은 수직선을 그리며 아래로 내려가고 있다. 손은 양 팔을 구부려 앞가슴에 대고 있으나 옷주름에 가려 형태를 알 수 없다. 옷주름에 가려진 손모양은 .. 2018. 3. 20.
[시도지정 유형문화재 제 135호] 천관사 오층석탑 천관사 오층석탑 종 목 시도유형문화재 제135호 명 칭 천관사오층석탑 (天冠寺五層石塔) 분 류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탑 수량/면적 1기 지정(등록)일 1986-02-07 시 대 미분류 천관사에 서 있는 5층 석탑으로, 1층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렸다. 기단과 탑신부의 각 층 몸돌에는 기둥모양을 조각하였다. 지붕돌은 밑면에 3단의 받침을 두었고, 윗면은 경사가 급하다. 꼭대기에는 꽃봉오리 모양의 머리장식이 남아 있다.기단이 1층으로 줄어들고, 지붕돌 받침이 3단으로 줄어드는 등 통일신라의 전형 양식에서 살짝 벗어나 있어 고려시대의 석탑으로 추측된다. 자료출처: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5_2_1_0&.. 2018. 3. 20.
[시도지정 유형문화재 제 134호] 천관사 석등 천관사 석등 종 목 시도유형문화재 제134호 명 칭 천관사석등 (天冠寺石燈) 분 류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석등 수량/면적 1기 지정(등록)일 1986-02-07 시 대 미분류 천관사 극락보전 아래쪽에 놓여 있는 석등으로, 바닥돌을 제외한 각 부분이 8각을 이루고 있다. 등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3단의 받침을 두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었다. 받침부분은 아래·윗받침돌에 서로 대칭되는 연꽃을 새기고, 그 사이는 기둥을 세워 가운데 받침을 삼았다. 화사석은 불빛이 퍼져나오도록 4곳에 창을 뚫었다. 지붕돌은 여덟 귀퉁이가 시원스레 들려있어 경쾌한 처마선을 그린다. 꼭대기에는 얇은 받침 위로 높지막한 꽃봉우리 모양의 머리장식이 놓여있다. 적당한 규모에 단아한 양식수법이 돋보.. 2018. 3. 20.
[시도지정 유형문화재 제 107호] 장흥향교 시도유형문화재 제107호 장흥향교 (長興鄕校) 분 류 유적건조물/교육문화/교육기관/향교 수량/면적 일곽 지정(등록)일 1985.02.25 소 재 지 전남 장흥군 장흥읍 교촌남외길 33 (교촌리) 시 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장흥향교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를 제사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나라에서 지은 교육기관이다. 태조 7년(1398)에 세워진 장흥향교는 임진왜란(1592) 때 불에 탄 것을 인조 8년(1630)에 수리하였다. 그 후에도 여러 차례 고쳤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대성전·명륜당·동재·서재·제기고 등이 있다. 경사지에 위치한 장흥향교는 내삼문을 경계로 배움의 공간과 제사공간을 구분하고 있다. 앞쪽에는 외삼문·명륜당·동재·서재가 있고, 뒤쪽에는 대성전과 전사청이 있어.. 2018. 3. 20.
[전남유형문화재 제72호] 장흥 장천재 장흥 장천재 (長興 長川齋) 종 목 전남유형문화재 제72호 명 칭 장흥 장천재 (長興 長川齋) 분 류 자연유산/천연기념물/생물과학기념물/생물상 수량/면적 2,195㎡ 지정(등록)일 2011-08-26 시 대 미분류 1978년 9월 22일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72호로 지정되었다. 본래 이 자리에는 장천암이라는 절이 있었다고 한다. 조선 중종 때 강릉참봉 위보현이 장천동에 어머니를 위해 묘각을 짓고 장천암의 승려로 하여금 이를 지키게 한 것이 그 유래가 되었다. 1659년(효종 10) 사찰을 철거하고 재실을 창건하였으며 1705년(숙종 31), 1724년(영조 23) 개수를 거쳐 1873년(고종 10) 현재의 형태로 중수하였다. 평면은 ㄷ자형이며 전면은 양쪽 날개 1칸씩을 누각형으로 한 것이 특징이다. 장대.. 2018. 3. 20.
[시도지정 유형문화재 제 55호] 장흥 사인정 장흥사인정 (長興舍人亭) 종 목 시도유형문화재 제55호 명 칭 장흥사인정 (長興舍人亭) 분 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조경건축/누정 수량/면적 1동 지정(등록)일 1974-12-26 시 대 미분류 설암 김필(1426∼1470)이 제자들을 가르치던 정자이다. 단종(재위 1452∼1455) 때 홍문관 부제학, 이조참판을 지낸 설암은 계유정란(1453) 후 벼슬을 버리고 장흥에 내려와 숨어살다가 정자를 짓고 후학들을 교육시켰다. 선생이 이곳에서 여생을 마치자 후손들은 그를 추모하기 위하여 ‘사인(舍人)’이란 벼슬이름을 따서 사인정이라 불렀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의 건물로,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가운데에 온돌방을 두고 주위를 모두 마루로 둘렀다. 자료출처: http://www... 2018. 3. 20.
[시도지정 유형문화재 제 46호] 용화사약사여래좌상 용화사약사여래좌상 (龍華寺藥師如來坐像) 종 목 시도유형문화재 제46호 명 칭 용화사약사여래좌상 (龍華寺藥師如來坐像) 분 류 유물/불교조각/석조/불상 수량/면적 1구 지정(등록)일 1974-09-24 시 대 미분류 전라남도 장흥의 야산 계곡에 있는 불상으로 어느 개인이 지은 조그마한 암자에 모셔져 있다. 1매의 화강암 석재를 가공하여 불상과 광배(光背)를 하나의 돌에 만든 석불좌상이다. 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뚜렷하며, 갸름한 얼굴과 정제된 이목구비의 표현 등에서 세련된 느낌과 함께 부처의 위엄을 느낄 수 있다. 신체는 인체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묘사하여 통일신라 후기의 불상양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옷은 양 어깨를 감싸고 있으며, 옷주름이 도식적으로 표현되었다. 오른손은 어깨 높이로 올리고 .. 2018. 3. 20.
[시도지정 유형문화재 제 25호] 당포앞바다승첩지도 시도유형문화재 제25호당포앞바다승첩지도 (唐浦 앞바다 勝捷之圖) 분 류 유물/과학기술/천문지리기구/지리 수량/면적 1매 지정(등록)일 1972.01.29 소 재 지 전남 장흥군 승첩도란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그린 그림을 이른다. 이 승첩도는 선조 37년(1604) 임진왜란 때 왜적의 침공을 막아냈던 공신들에게 왕이 하사했던 그림이라고 전하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당포 앞바다에서 왜적과 싸워 승리하던 장면을 그린 것으로, 그림 제목에 ‘당포전양승첩지도’라고 전서체로 쓰여있고 그 앞에는 전열을 가다듬은 배들이 줄을 지어 배치되어 있다. 배에는 깃발을 달았는데 그 기세가 당당하여 전쟁에 승리했다는 것을 곧 알아볼 수 있게 묘사되었다. 배 아래로는 당시 군관들의 활동상황 등을 붓으로 적었으며, 군.. 2018. 3.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