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5년 7월 4일 출생. 전남 장흥군 용산면 포곡리에서 양친 아래, 아우와 함께 성장하며 계산초등학교와 장흥중・고등학교를 다녔다. 포곡(浦谷)마을의 유래는 원래는 雌(암컷자) 抱(안을포) 雉(꿩치)부르기도 하고 옛날 골짜기에 포구(浦口)가 있다하여 포구라 불리오다 행정구역 개편 때 포곡(浦谷)으로 바뀌었다 한다. 마을의 형국이 암꿩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깊은 산골 동네라 초등학교는 십리 남짓, 중・고등학교는 억불산 산길(자포치)를 넘어 시오리 길이어서 그때 제일 부러운 것이 학교 가까이 사는 친구들이었다. 그래서 전남대학교 문리대에 다닐 때는 아예 학교 구내나 비슷한 동네서 자취를 했다.
중학교 때 송귀식(宋貴植)에서 송기숙(宋基琡)으로 개명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단편소설 「야경」이 『학생』에 실렸으며 김용술 문학선생과 후배 한승원과 함께 교지 『억불』을 창간하고 단편 「물쌈」을 게재하였다.
그에게 고향은 작품에 크게 영향을 끼쳤다. 그의 작품에 나타난 생동감있는 민중들의 생활상은 고향사람들의 삶에서 구체성을 얻었고, 작품 속에 내재되어 있는 치열한 역사의식 또한 고향에서 성장하는 과정에서 형성되었을 것이다.
초기대표작으로 평가되는 「자랏골의 비가」, 「재수없는 금의환향」 등의 작품은 그가 태어나고 자란 포곡마을을 배경으로 한 것이다. 또한 대하장편 소설 「녹두장군」에서 동학군이 최후의 항전을 벌였던 곳이 장흥읍 석대들이고, 석대전투를 총지휘했던 이방언 장군 또한 그와 같은 용산면 묵촌 태생이다 .이처럼 작가 송기숙에게 고향은 작품의 원천으로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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