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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문화원/2026 언론보도

[언론보도] 특별기고 - 탐진강 노을빛 물비늘

by 장흥문화원 관리자 2026. 2. 24.

▲ 김명환/장흥문화원장. 前 전라남도교육위 부의장

 

 

  정남진 저녁노을이 탐진강 위에 내려앉으니 탐진강 물은 비늘을 돋운다. 천관산 바람 한 줄기 스치니 탐진강 수면은 잔잔한 떨림으로 응답하고 그 위에 얇고 투명한 비늘들이 겹겹이 일어난다. 오늘따라 물비늘이 유난히 반짝인다. 노을빛을 받으니 붉게 타오르며 더욱 곱게 빛난다. 평생을 함께한 탐진강에는 지난날에도 물비늘이 있었을 것이요, 노을빛은 지구의 역사와 함께했을 것인데도 요즘에서야 노을빛을 받은 탐진강 물비늘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견딜 수가 없다.

 

  왜 그러는 것일까. 왜 지난날에는 보이지도 않고 느끼지도 못했을까. 탐진강이 내 운명의 강이라 생각하지 못해서였을까. 아니면 물비늘보다 더 아름다운 것들이 내 주변에 널려서였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나이가 들어가니 내 눈이 진정으로 밝아져서 생기는 현상일까. 요즘 부쩍 보이기 시작하는 탐진강 물비늘이 황혼 길에 접어든 내게 눈물 나게 아름다운 노을빛을 반사한다.

 

  탐진강은 영암군 금정면 세류지에서 발원하여 장흥, 강진을 거쳐 남해로 흘러 들어가는 강이다. 총 길이 백사십여 리, 유역 면적이 일억오천이백사십만 평으로 영산강, 섬진강과 함께 전라남도 3대 강의 하나다. 하구에 삼각지가 발달하였으며 간척지 공사로 물길이 정리되어 있다. 우리 장흥에서는 탐진강을 맑은 물이 흐르는 양지바른 강이란 뜻의 예양강(汭陽江)이라 부른다. 그래서 탐진강 생태공원도 예양리에 있고 해마다 열리는 물축제도 예양리에서 하고 있다. 탐진(耽津)이란 말은 통일신라 시대에 탐라국의 사신이 신라에 조공하러 올 때 배를 뒀던 나루터라는 뜻에서 나왔다. 탐진 최씨, 탐진 안씨도 탐진으로 본관을 삼는다. 나는 거의 평생을 탐진강과 함께했다. 씻고, 마시고, 두려워하고, 즐기고, 탐진강은 내 삶이었다.

 

  나이 들어 보이는 탐진강 물비늘은 지나온 내 삶과 닮았다. 지금 이 순간은 반짝이지만 붙잡으려 하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어제의 빛은 오늘의 탐진강 물비늘 위에 남아있지 않듯, 지난날의 보람이 지금 내게 남아있지 않다. 그리고 오늘의 빛도 내일의 탐진강 물비늘 위에 머물지 못하듯, 지금 이 순간의 내 모습도 내일은 남아있지 못할 것이다. 나는 늘 현재를 살고 있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물비늘의 반짝임처럼 사라지고 있다.

 

  삶의 어떤 날들은 탐진강 물비늘처럼 유난히 반짝인다. 기쁜 소식이 겹쳐오거나 마음이 가벼워지면 사소한 것에도 웃음이 난다. 그리고 세상이 유리처럼 맑아진다. 반대로 삶의 어떤 날들은 탐진강 수면처럼 검푸러진다. 그것은 마치 비가 내려 수면이 거칠어지면 탐진강 비늘이 사라지고 반짝임도 사라지는 것과 같다. 그렇다고 삶 자체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물비늘 없는 탐진강도 여전히 흐르듯 내 삶 또한 흘러간다. 그래서 물비늘이 보이지 않는 탐진강이 때로는 내게 위로가 된다. 나는 종종 사람의 마음에도 탐진강과 같은 물비늘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물비늘처럼 말 한마디에 반짝이고 침묵하다가 가라앉음을 반복한다. 진심은 물아래에 있고 드러나는 것은 물비늘이 쏘아 올린 반짝임뿐이다. 우리는 서로의 물비늘만 보고 판단하기보다 조금 더 기다리고 조금 더 바라보아야 한다.

 

  혜은이 씨가 물비늘이라는 곡을 발표했다. 작년 삼월 가수 데뷔 반세기 기념으로 발표한 곡이다. ‘흘러간다 흐른다. 석양이 토해낸 햇살 담고서. 서글픈 삶이라 해도 세상을 미워는 말자. 한없이 반짝거리는 물비늘 아름다우니. 물비늘 아름다우니.’ 강물처럼 흘러가는 인생에서 반짝거리는 물비늘처럼 인생은 아름답고 의미가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노래다.

 

  해가 기울면 탐진강 물비늘은 길어지고 색을 바꾼다. 금빛에서 은빛으로, 다시 은빛에서 푸른 어둠으로, 하루의 끝에서 탐진강은 가장 조용해진다. 그때의 탐진강 물비늘은 소리 없이 숨을 고른다. 오늘 하루의 반짝임을 정리하고 내일을 위해 수면을 고르게 만든다. 나 역시 그렇게 하루를 접는다. 탐진강 위에 돋는 얇은 비늘들이 오늘도 말없이 내게 가르침을 준다. 삶은 반짝이는 동안만 빛나는 것이 아니라 흐르는 내내 아름답다는 것을.

 

  물비늘은 세어도 세어도 끝나지 않는다. 결국은 세기를 포기하고 빛의 움직임을 따라가게 된다. 빛은 물 위에서 부서지고 부서진 빛은 다시 이어져 하나의 길이 된다. 길은 어딘가로 나를 데려갈 것처럼 반짝이지만 한 발짝만 움직이면 금세 흩어진다. 그때 깨닫는다. 어떤 것은 다가갈수록 멀어지고 멀리서 바라볼 때 가장 선명해진다는 것을. 갈수록 멀어져만 가는 아들딸들이 이 애비 없이도 잘 살 것만 같다. 오늘도 내 운명의 강 탐진강은 흐르고, 탐진강 물비늘은 새로 돋는다.

 

 

 


출처 : 장흥투데이 (http://www.jhtoday.net/news/articleView.html?idxno=17168)

 

 

 

출처: 장흥신문 (https://www.jh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098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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