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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25

[시도지정 민속문화재 제 46호] 장흥 근암고택 시도민속문화재 제46호 장흥 방촌리 근암고택 (長興 傍村里 勤庵古宅) 분 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수량/면적 887㎡ 지정(등록)일 2010.08.27 소 재 지 관산읍 방촌리(내동마을) 504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장흥 방촌리는 선사시대 유적이 다수 분포해 있고 백제시대 이래 고려시대까지 정안현-장흥부-회주목으로 이어지는 고을이 있던 지역이다. 고려시대 말기에 왜구로 인해 치소를 옮긴 뒤, 고읍으로 불리게 되며 임진왜란이 지난 뒤 장흥위씨가 입향하여 집성촌을 이룬다. 전통 반가는 물론 사당과 서재를 갖추고 있고 존재 위백규 등 학자들이 활동하여 문집, 고문서, 전적류와 민속문화재가 잘 남아 있다. 이러한 역사 전통을 가진 방촌리의 입향 선조가 초기에 정착한 현.. 2018. 3. 22.
[시도지정 민속문화재 제 43호] 장흥 호계리 별신제와 동계문서 장흥호계리별신제와동계문서 (長興 虎溪里 別神祭와 洞契文書) 분 류 기록유산/문서류/문서류/문서류 수량/면적 동계문서 등 18건, 별신제 지정(등록)일 2008.04.11 소 재 지 전남 장흥군 시 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호계리에서 전승되어 온 마을 공동체 의례와 별신제 관련 기록물이다. 조선시대 후기(별신제 1702년 무렵, 대동계[동계] 1715년)부터 전해오는 동계안, 집강록, 제관록, 홀기, 풍물 부의책 등 관련 문적 17책과 상서 2건, 절목 1건 등으로 구성되어 있어, 동계 창설 및 운영 등 마을사의 변천과 공동체 제의인 별신제의 운영에 관하여 자세히 알 수 있다. 특히 동계문서는 조선시대 후기부터 현재까지도 매년 기록하고 있어 살아 있는 역사자료이며 마을공동체 의례의 연혁과 변.. 2018. 3. 22.
[국가지정 민속문화재 제 275호] 장흥 방촌리 석장승 국가문화재 제 275호 장흥 방촌리 석장승 (長興 傍村里 石長栍 분 류 유물/기타종교조각/민간신앙조각/석조 수량/면적 2기 지정(등록)일 2013.06.14 소 재 지 전라남도 장흥군 관산읍 방촌리 572번지 등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장흥군 관리자(관리단체) 장흥군 장흥 방촌리 석장승은 관산읍에서 방촌으로 넘어가는 23번 국도변 양쪽에 서 있는 2기의 장승으로 고려말에 건립한 성문장승이라는 설과 조선시대 후기(17~18세기)에 창궐한 천연두를 퇴치하고자 세웠다는 설이 있다. 방촌리 석장승은 현재에도 마을에서 매년 정월 대보름에 동제인 별신제의 신격으로서 마을 수호의 기능을 하고 있어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있다. 자료출처: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 2018. 3. 22.
[시도지정 민속문화재 제 7호] 장흥 위성탁 가옥 장흥위성탁가옥 (長興魏聖卓家屋) 종 목 시도민속문화재 제7호 명 칭 장흥위성탁가옥 (長興魏聖卓家屋) 분 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수량/면적 일곽 지정(등록)일 1986-02-07 시 대 미분류 위계환 가옥(중요민속자료 제161호)과 위성룡 가옥(전라남도민속자료 제6호) 맞은 편 마을에 자리잡고 있는 집이다. 안채와 사랑채는 1910년대에 지은 것으로 보이며 나머지 건물들은 후대에 지은 것으로 추정한다. 바깥마당에 연못을 파 정원시설을 꾸미고 있는 이 집은 안채, 사랑채, 곳간채, 아래채, 사당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장 안쪽에 안채가 있고 사랑채는 안마당 사이로 축을 맞추어 배치하였다. 안채로 통하는 대문을 사랑채의 한 문을 이용해 좌우로 2번 꺾어 들어가 안마당에 이르도록 꾸민 점이 특이.. 2018. 3. 22.
[시도지정 민속문화재 제 6호] 장흥 위성룡 가옥 장흥 위성룡가옥[長興魏聖龍家屋] 지정종목 시도민속문화재 지정번호 전라남도 민속문화재 제6호 지정일 1986년 02월 07일 시대 대한제국 종류/분류 가옥 크기 면적 1,455㎡ 1986년 2월 7일 전라남도 민속문화재 제6호로 지정되었다. 면적은 1,455㎡이다. 방촌리 계춘동 마을의 장흥 위계환가옥의 아랫편에 있다. 집앞 솟을대문에 남아 있는 상량문에 ‘숭정기원후오회갑기축 삼월초칠일임자무신시주립십구일 갑자기사시상량(崇禎紀元后五回甲己丑三月初七日壬子戌申時柱立十九日甲子己巳時上樑’이라 기록되어 1949년에 건축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안채와 사랑채는 그 이전인 20세기 초에 건축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집 앞에는 2그루의 노거수가 있고 뒤의 계단을 오르면 솟을대문이 서향하여 있다. 대문 좌측으로 사랑채가.. 2018. 3.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