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문화원

시인 문재구(1930~)

 

장흥군 유치면 출생.

 

수상

2011년 노산문학회 주관 <한국시문학대상>

 

활동사항

대구사범,국학대학 졸업

중항대학교 대학원 졸업(문학박사)

부산여자대학 교수

중앙대학교 교수

 

山골 고향 하늘은

어머니께서 빨래하여

걸어 놓은 것

땟자국 구김살 하나 없이

홍두깨 다듬이질 한

옥색 명주 결이다.

어릴 때 가지고 놀던

유리 구슬 굴리면

대글대글 소리날 것 같고

힘껏 돌팔매질 하면

유리창 깨지듯

화자근 깨질 것 같다.

어쩌다

후줄그레한 무명배 바지가랑이처럼

흐려지더라도

그것은 반가운 희뿌연 막걸리 빛

구수한 보리밥숭늉 같은 것.

山골 고향 하늘은

개이거나 흐리거나

그것은 다 내 살붙이

미운 정 고운 정

모두 받아 주는

어머니 품속 같은 것...

 

-'고향하늘'전문

 

관련기사_http://www.jh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6316

            http://www.jh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20673

출처_장흥별곡문학동인 '장흥의 문학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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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웅(1952~)

 

 

장흥군 장평면 출생

 

등단

1993<문예사조>를 통해 등단

 

저서

1993<재기하는 기업인>

2006 산문집<오직 한 사람>수필과 비평사

번역서 <이벤트 프로젝트 관리 2004>

 

활동사항

성균관대학교 예술경영학박사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교수

호서대학교 교수

(주)인영기업 대표이사

인영물류 대표이사

인영건설 대표이사

 

 나무는 하늘의 햇빛과 흙에서 흡수되는 양분만을 받아먹고 자라는 게 아니다. 사람의 손길이 얼마나 많이 가느냐에 따라서 수형도 곱게 잡히고 성장 속도도 달라진다.

 농장에서 작업을 할 때마다 나는 모자를 쓰고 전정가위를 든다. 나와 정이 든 한 그루 한 그루의 나무가 지난해에 미처 전지해주지 못한 가지 때문에 올바르게 자라지 못하고 옆으로 커져 버렸다. 수형을 망까드린 것을 보고, 선과 악도 적당할 때 잘라야지, 시기를 놓치면 손대기가 어려워진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래서 원하는 모형대로 절지를 해 나가다 보면 끼니때도 잊어가며 몰두하게 된다. 땀으로 멱을 감는다는 말이 격에 맞을 정도이다.

 유난히 체질적으로 땀이 많이 나는 남 보기에도 민망하다. 뜨거운 음식을 먹을 때도 그렇지만, 나 혼자서 일을 다 하는 것처럼 관리인과 일꾼들에게 민망스럽기 그지 없다. 그러나 나는 흘러내리는 땀이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지만, 귀찮지도 않고 싫지도 않다.

 땀을 많이 흘린다는 것은 여러모로 ㅇ명예스러운 일이라고 생각된다. 땀은 고등 동물만이 흘릴 수 있는 특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일수록 많은 땀을 흘리기 마련이다. 그것은 노동하는 이의 특권이 아닌가?(하략)

 

<구슬땀을 꿰어서 일구듯이> 中

 

 

 

관련기사_ http://www.sc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7655

             http://www.segye.com/newsView/20190509517525?OutUrl=naver

출처_장흥별곡문학동인회'장흥의 문학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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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문병민(1955~)

 

 

장흥군 부산면 출생.

 

등단

2008 제 42회 현대문예 신인문학상 수필<말씀의 회초리>

 

활동사항

국방대학원 졸업(석사)

병무청 정책홍보담당관

광주지방보훈청장

서울병무청장

 

 고향에 대한 각별한 사랑을 글 속에 담고 있으며, 공직생활의 행간에서 쓰여지는 글은 단정한 어우름을 지니고 있다.

 문병민의 수필은 삶의 진정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유년의 회억을 형상화시킨 글에서는 고향과 어머니라는 그리운 존재를 통해 오늘날 우리가 잃어버린 참된 가치를 다시 일깨워 준다. 또한 일상의 삶을 그려낸 글에서는 삶에서 얻어지고 깨달아지는 자잘한 이야기를 통해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담담하게 사색하며 성찰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유년시절의 어머니는 나에게는 하난의 큰 산이었다. 여렸을 적 어머니와 함께 10여리 떨어진 5일장에 간 일이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시절이니 그 때 내 키가 130cm 정도나 되었을 것이다. 나란히 걸어가며 어머니가 나보다 키가 더 크다고 하셨다. 어머니는 나에게 앞으로 어머니보다 훨씬 더 큰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니 어머니의 말씀은 비단 키뿐만 아니라 아들이 크게 성장하여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뜻이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어머니의 바람대로 큰 사람이 되었을까.(히랙)

<말씀의 회초리>中

 

 

관련기사_ http://www.jh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88295

출처_장흥별곡문학동인회'장흥의 문학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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