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문화원

문림의향’ ‘문학관광기행특구’의 인문학적 근간이 부끄러워 지는 장흥의 문화현장

 

● 장흥의 처처에 설치된 안내판의 허虛와 실實

   
   
 

필자는 장흥의 문화현장에 설치된 안내판의 문안 작성에 상당히 많이 기여 하였다.
그때마다 느껴 지는  의문점이 있다. 장흥의 역사 문화 경관의 명소에 찾아오는 이들을 위하여 설치된 안내판은 그 제작과 설치가 업자 중심으로 설계되고 설치 된다는 사실이다.
탐진강변의 정자들을 설명 하고 안내 하는 안내판의 경우를 예로 들어 보자. 그 안내판의 재질과 내구성과 디자인은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안내판에 들어갈 문안文案이다.
설명의 문안이 없는 안내판은 그냥 사물일 뿐이다. 그런데 안내판의 규격과 재질과 디자인 제작의 예산은 계상 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문안 작성의 에산은 전혀 반영이 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안내판의 문안은 기존의 자료에서 발췌하여 짜깁기 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기존의  자료를 인용 하면서도 그 자료를 연구 작성한 필자에게는 양해도 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혹은 그 분야에 식견이 있는 이에게 의뢰 하는 경우에도 업자측의 생색을 앞세운 촌지寸志 수준의 인시치레로 갈음 정도이다. 한 분야에 대한 문안은 자료를 확인하고 문장을 요약하고 가장 합당한 단어를 구사하여 안내판의 규격에 맞는 문안을 작성해야 한다. 그 작업이 수월한 것은 아니다. 생각해 보면 이런 행정은 인문의 학자들에게는 너무 무례하게  대처하는 것이다. 안내판을 제작하는 업자에게 합당한 예산이 책정 되듯이 문안을 작성 하는 이에게게도 응분의 사례를 하는 것 당연한 도리임에도 장흥군은 그 당연함을 외면하고 있다.
이는 장흥에서 활동 하며 향맥을 선양 계승하는  역사학자. 문예인들을 무시하는 처사이다. 하여 간곡하게 당부 드린다. 역사 문화의 사업 예산을 편성할때에는 자문료 저작권료 원고료에 대한 일정한 비율을 포함 하는 안목 있는 행정을 추구 하였으면 하는 건의이다.

 

●오류와 장흥의 안내판들

1. 장흥읍 송암리에 위치한 사인정의 뒷곁에는 암각서巖刻의 서체書體가 있다.
 서체는 ‘제일강산第一江山“이며 유래에 대한 안내문이 있다. 안내문은 그 서체가 백범김구선생의 친필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사인정을 방문한 분들 중에서 식견이 있는 이들이 그 부분을 지적하고 있다. 백범선생의 친필이 아닐 것이라는 지적이다.  분명한 고증이 필요 하다. 구전에 의지하여 사실과 다른 설명은 장흥 인문의 민낯을 보여주는  부끄러운 사안이기 때문이다.

2. 장흥읍 예양교에 전시된 사진의 오류

   
 

장흥읍 예양교 아랫녁에 “장흥 고싸움 줄당기기” 관련 사진들을 전시하여 산책 하는 이들의 식견을 넓히고 장흥의 역사성을 인식하게 하고 있다.
전시된 사진중에 1971년 보림문화제 당시 시연된 ‘고싸움“사진이 있다. 그 사진은 우리 장흥의 전통 민속놀이인 “고싸움”과는 괴리가 있다. 당시의 사정은 통일벼의 장려로 ‘장흥 고’를 제작할만한 양질의 볏짚을 구하지 못해 임시방편의 고싸움 형태를 재현한 것이다. 그래서 장흥의 민속과는 동떨어진 ‘차전놀이’ 모양이다. 극히 초보적인 상식을 외면하고 많고 많은 장흥 고싸움의 사진 대신에 궂이 이런 사진을 전시하는 연유은 어디에 있을까. 다른 사진들은 개인이 소장한 자료이다. 개인 소장의 자료를 공공의 장소에 전시하기 위해서는 소장자의 양해를 구하거나 합당한 사례(저작 소유권)를 해야 한다. 그 과정을 거쳤는지 의문이 든다.

3. 탐진강 수변공원의 안내판 표기 오류

   
 

탐진강 수변 공원 근처에 ‘탐진강’의 유래와 지리적 현장을 설명한 안내판의 내용은 기본적인 사실도 확인되지 않은 오류가 있다. 표기된 유치면의 옴천천(唵川川ㆍ옴과 암의 한문 표기는 상용)은  따라서 ‘옴천천’으로 한글 표기하는 것이 맞다. 출처의 표기 또한 오류이다. 1985년도에 간행된 장흥군지郡誌는 없기 때문이다. 장흥군 향토지는 1975년에 간행 되었고 장흥군지는 1990년도에 간행 되었으므로 1985년의 장흥군지를 출처로 기재한 것은 치명적인 오류이다.

4. 장흥의 대표 작가를 소개하는 안내판의 내용이 부실하다.

   
 

소설가 송기숙 안내판(동학농민혁명기념관 앞) 시조시인 김제현  안내판(문예회관 계단 앞)
 장흥의 대표적인 작가들의 작품과 경력을 소개하는 안내판을 제작 설치 하는 사업의 일환으로 관내 십여곳에서 읽을 수 있다. 그중 다중이 왕래 하는 장흥읍 충렬리 동학농민혁명기념관 앞에는 ‘송기숙 작가’ 장흥읍 읍성로 문예회관 계단 옆에는 김제현 작가를 소개하는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그 내용이 너무 부실하다. 이 두 작가의 약력 설명이 부실하기 때문이다.
가령 김제현 작가는 소설가인지 시인인지 어느 읍,면 출신인지 기본적인 설명이 없다.
김제현 작가 안내판의 경우 이름과 시조 한편만 게재되어 있다. 회진면 출신이며 한국 시조문학의 유명 작가인 김제현의 문학적 업적을 알기에는 태부족이다. 아마도 여타 다른 작가의 안내판도 유사할 것이다. 1개당 300만원이 소요 되었다는 안내판을 제작 설치하기 전에 가장 기본적인 자문을 받는 절차가 그리도 어려웠을까. 장흥군청의 문화관광과 행정이 심히 우려스럽다.

5. 천도교장흥교당(장흥읍 교촌리 소재) 마당의 안내판 문안 부조화
우리 장흥군은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국보 2점을 비록 하여 보물 11점 등 국가지정 문화재가 24점 도지정문화재가 56점 향토문화재가 16점이다. 이 문화재의 존재를 알리고 선양하기 위한 안내판은 거의 모든 대상물의 앞에 설치되어 있을 것이다.
그 안내판의 문안은 간결하고 분명 하고 알기 쉽게 작성 되어야 한다는 것은 기본일 것이다. 따라서 문안의 작성은 어느 개인(담당 공직자)의 식견보다는 역사적 안목과 문장의 작성에 전문성이 있는 이들의 자문과 협력응 거쳐 작성 되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근간에 장흥읍 교촌리 소재 천도교교당(도지정218호) 마당에 설치된 안내판을 읽은 지인이 필자에게 연락해서 내용에 대한 의견을 피력 하였다.
안내판의 문안은 국한문혼용 문장 7행. 영문 번역 문장 13행으로 작성 되어 있는바 국한문 혼용의 1행 반이 천도교당의 유래를 기술 하고 있고 5행은 교당의 건축물 설명에 할애 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천도교당이 장흥의 근대사에서 어떤 기여를 하였는지 그 교당이 건립된 역사적 민족적 의식에 대한 기술이 없다는 지적이며 건축 형식에 대한 기술이 너무 많이 할애 되고 있는 것은 부조화이며 일반인이 읽을 수 없는 영문 기술이 안내판 공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것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지적이었다.
필자는 그 지적을 듣고 현장을 찾아서 확인 하고 이해가 되었다. 추후 관내 문화재의 안내판은 보다 객관적이고 전문적이며 이해가 쉬운 문안으로 작성 하는 원칙을 세워야 할 것으로 보여 진다.

6. 장흥 문학현장 안내판 문안의 정비와 보수를 외면하고 있는 문화 행정
지난 4월 초순 장흥문인협회 회원들이 이청준의 걸작 소설‘눈 길’의 현장 기행을 하였다.
이청준의 눈 길 그 창작 현장은 전국의 이청준 소설의 독자들과 인문학자들 가족단위 여행길을 나서는 이들이 꼭 한번 걷고 싶은 문학 여정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길목이다. 장흥문인협회 회원들 역시 소설 눈길의 행간을 사유하며 문학의 공간과 여백을 동행하는 답사 기행이었다.
그 길지 않은 답사 길목에서 장흥의 문학현장이 너무 소외되고 방치 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 하였고 그 내용을 지역의 주간 신문에 기고하기도 하였다. 그 중 지나칠 수 없는 몇가지 사례를 기술 하겠다.

▶눈길의 길목에 설치된 안내판이 훼손되어 있는데도 방치되고 있었다.

   
 

이청준 생가를 방문하는 이들이 방명 하고 감상을 기재 하는 ‘방명록 비치대’의 구조가 불균형적이어서 사용 하기에 불편 하였다. 이청준문학자리 입구의 안내판 문안, 그 내용이 부자연 스럽다.
적절한 지적이었다. 사실 기행팀이 지적한 사안에 대해서는 지난 2년전과 최근에도 필자가 문광과의 담당 주무관에게 수차례 건의 하였다. 그럼에도 종무 소식이다.
문광과는 장흥 문화의 수십억 수백억의 예산이 소요 되는 사업에만 관심이 있고 업무를 집중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문화의 현장은 섬세하고 디테일하게 관리 보존 계승 되어야 빛이 나고 여운이 있다는 것이다.
문화의 자원이 섬세하고 디테일 하게 형상화 되기 위해서는 도식적이고 관료적인 행정과 더불어  민간 문예인들의 현장성과  감수성과 전문성이  접목 되어야 한다. 이 칼럼에서 필자가 제기한 문제들이 교과서적인 담론은 아닐지라도 차제에 관민이 참여한 “문화자원 보존자문위원회”같은 기구를 설립 운영 하는 것을 검토해 보았으면 하는 제안을 드린다.<호담>

 

출처_http://www.jh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6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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