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문화원

고산사 석불입상 (高山寺石佛立像)

종 목 시도유형문화재 제161호
명 칭 고산사석불입상 (高山寺石佛立像)
분 류 유물/불교조각/석조/불상
수량/면적 1구
지정(등록)일 1988-03-16
시 대 미분류

고산사는 전라남도 장흥군 장평면 용강리 험준한 골짜기에 있는 사찰이다. 원래는 절터만 남아 있고 석불입상은 파손된 채 땅속에 묻혀 있었는데, 1966년 새로 지은 법당 안에 모셔놓았다. 석불 아랫부분과 광배 일부가 파손된 것을 시멘트로 보수하였다.
민머리 위에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높직하게 솟아 있고, 계란형의 얼굴은 살이 올라 풍만하다. 좁은 어깨를 감싼 옷은 수직선을 그리며 아래로 내려가고 있다. 손은 양 팔을 구부려 앞가슴에 대고 있으나 옷주름에 가려 형태를 알 수 없다. 옷주름에 가려진 손모양은 화순 운주사 석불군에서 나타난 양식을 나타낸다. 이러한 점은 당시 각 지역간의 문화교류의 영향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둥근 머리광배는 2줄의 볼록한 선으로 구분하고 그 안에 연꽃잎을 새겨 넣었다. 몸광배도 둘레에 2줄의 타원형 띠를 돌려 불상 전체를 감싸고 있다.몸체의 아랫부분을 볼 수 없어 아쉬움을 주지만 광배와 얼굴에서 보이는 분위기는 중국 당나라 불상과 비슷한 면을 보여 준다.

 

자료출처: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5_2_1_0&ccbaCpno=21136016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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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관사 오층석탑

 

종 목 시도유형문화재 제135호
명 칭 천관사오층석탑 (天冠寺五層石塔)
분 류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탑
수량/면적 1기
지정(등록)일 1986-02-07
시 대 미분류

 

천관사에 서 있는 5층 석탑으로, 1층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렸다.
기단과 탑신부의 각 층 몸돌에는 기둥모양을 조각하였다. 지붕돌은 밑면에 3단의 받침을 두었고, 윗면은 경사가 급하다. 꼭대기에는 꽃봉오리 모양의 머리장식이 남아 있다.기단이 1층으로 줄어들고, 지붕돌 받침이 3단으로 줄어드는 등 통일신라의 전형 양식에서 살짝 벗어나 있어 고려시대의 석탑으로 추측된다.

 

자료출처: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5_2_1_0&ccbaCpno=21136013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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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관사 석등

종 목 시도유형문화재 제134호
명 칭 천관사석등 (天冠寺石燈)
분 류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석등
수량/면적 1기
지정(등록)일 1986-02-07
시 대 미분류

천관사 극락보전 아래쪽에 놓여 있는 석등으로, 바닥돌을 제외한 각 부분이 8각을 이루고 있다.
등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3단의 받침을 두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었다. 받침부분은 아래·윗받침돌에 서로 대칭되는 연꽃을 새기고, 그 사이는 기둥을 세워 가운데 받침을 삼았다. 화사석은 불빛이 퍼져나오도록 4곳에 창을 뚫었다. 지붕돌은 여덟 귀퉁이가 시원스레 들려있어 경쾌한 처마선을 그린다. 꼭대기에는 얇은 받침 위로 높지막한 꽃봉우리 모양의 머리장식이 놓여있다.
적당한 규모에 단아한 양식수법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통일신라 후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자료출처: http://search.cha.go.kr/srch_org/search/search_top.jsp?searchCnd=&searchWrd=&home=total&mn=&gubun=search&query=%EC%B2%9C%EA%B4%80%EC%82%AC+%EC%84%9D%EB%93%B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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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유형문화재 제107호
장흥향교 (長興鄕校)

분 류

유적건조물/교육문화/교육기관/향교

수량/면적

일곽

지정(등록)일

1985.02.25

소 재 지

전남 장흥군 장흥읍 교촌남외길 33 (교촌리)

시 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장흥향교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를 제사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나라에서 지은 교육기관이다.
태조 7년(1398)에 세워진 장흥향교는 임진왜란(1592) 때 불에 탄 것을 인조 8년(1630)에 수리하였다. 그 후에도 여러 차례 고쳤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대성전·명륜당·동재·서재·제기고 등이 있다.
경사지에 위치한 장흥향교는 내삼문을 경계로 배움의 공간과 제사공간을 구분하고 있다. 앞쪽에는 외삼문·명륜당·동재·서재가 있고, 뒤쪽에는 대성전과 전사청이 있어 전학후묘의 배치를 이루고 있다. 전사청은 1981년에 지은 것으로 제사를 관리하는 곳이며, 원래 대성전 앞에 동무, 서무가 있었으나 1970년에 철거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노비·책 등을 지급 받아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1894) 이후에는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 2차례에 걸쳐 제사만 지낸다.

 

자료출처: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21,01070000,36&pageNo=5_2_1_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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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 장천재 (長興 長川齋)

종 목

전남유형문화재 제72호

명 칭

장흥 장천재 (長興 長川齋)

분 류

자연유산/천연기념물/생물과학기념물/생물상

수량/면적

2,195㎡

지정(등록)일

2011-08-26

시 대

미분류

 

1978년 9월 22일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72호로 지정되었다. 본래 이 자리에는 장천암이라는 절이 있었다고 한다. 조선 중종 때 강릉참봉 위보현이 장천동에 어머니를 위해 묘각을 짓고 장천암의 승려로 하여금 이를 지키게 한 것이 그 유래가 되었다. 1659년(효종 10) 사찰을 철거하고 재실을 창건하였으며 1705년(숙종 31), 1724년(영조 23) 개수를 거쳐 1873년(고종 10) 현재의 형태로 중수하였다. 평면은 ㄷ자형이며 전면은 양쪽 날개 1칸씩을 누각형으로 한 것이 특징이다. 장대석으로 짜올린 기단 위에 덤벙주초를 놓고 기둥은 원주를 세웠는데 포작이 없는 주두와 창방, 장여를 올려 결구하였다. 지붕은 중앙 용마루 부분이 ㄷ자형 양익부와 높이를 동일하게 하고 전면에서는 팔작지붕의 합각이 보이며 배면에서는 맞배지붕으로 처리한 것이 특이하다. 문은 중앙 3칸에만 설치하였는데 3칸 모두 2분합이다. 존재 위백규(:1727∼98)는 어려서 이곳에서 수학하고 후배를 양성하였다. 현판에 적힌 시문으로 보아 유림들이 시문을 교류하였던 장소였음을 알 수 있다. 2000년 현재는 장흥위씨 방촌계파의 제각으로서 이용된다. 장천팔경이 있는 수려한 경관과 함께 관광지로서 각광을 받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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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사인정 (長興舍人亭)

종 목

시도유형문화재 제55호

명 칭

장흥사인정 (長興舍人亭)

분 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조경건축/누정

수량/면적

1동

지정(등록)일

1974-12-26

시 대

미분류

 

설암 김필(1426∼1470)이 제자들을 가르치던 정자이다.
단종(재위 1452∼1455) 때 홍문관 부제학, 이조참판을 지낸 설암은 계유정란(1453) 후 벼슬을 버리고 장흥에 내려와 숨어살다가 정자를 짓고 후학들을 교육시켰다. 선생이 이곳에서 여생을 마치자 후손들은 그를 추모하기 위하여 ‘사인(舍人)’이란 벼슬이름을 따서 사인정이라 불렀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의 건물로,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가운데에 온돌방을 두고 주위를 모두 마루로 둘렀다.

 

자료출처: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5_2_1_0&ccbaCpno=21136005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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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사약사여래좌상 (龍華寺藥師如來坐像)

종 목 시도유형문화재 제46호
명 칭 용화사약사여래좌상 (龍華寺藥師如來坐像)
분 류 유물/불교조각/석조/불상
수량/면적 1구
지정(등록)일 1974-09-24
시 대 미분류

 

전라남도 장흥의 야산 계곡에 있는 불상으로 어느 개인이 지은 조그마한 암자에 모셔져 있다. 1매의 화강암 석재를 가공하여 불상과 광배(光背)를 하나의 돌에 만든 석불좌상이다.
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뚜렷하며, 갸름한 얼굴과 정제된 이목구비의 표현 등에서 세련된 느낌과 함께 부처의 위엄을 느낄 수 있다. 신체는 인체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묘사하여 통일신라 후기의 불상양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옷은 양 어깨를 감싸고 있으며, 옷주름이 도식적으로 표현되었다. 오른손은 어깨 높이로 올리고 손바닥을 밖으로 향하고 있으며, 왼손은 무릎 위에 얹었는데 약병을 들고 있는 형태를 취했으나 약병은 없어졌다. 광배는 언저리가 깨져 원래의 모습을 잘 알 수 없지만, 연꽃무늬나 꽃무늬 그리고 불꽃무늬 등이 세련되게 새겨진 원형의 머리광배가 있다.
얼굴 등의 조각기법, 도식적인 옷주름 표현 등에서 형식화가 진전되는 고려시대의 불상으로 옮겨가는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자료출처: http://search.cha.go.kr/srch_org/search/search_top.jsp?searchCnd=&searchWrd=&home=total&mn=&gubun=search&query=%EC%9A%A9%ED%99%94%EC%82%AC%EC%95%BD%EC%82%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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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유형문화재 제25호

당포앞바다승첩지도 (唐浦 앞바다 勝捷之圖)

분 류

유물/과학기술/천문지리기구/지리

수량/면적

1매

지정(등록)일

1972.01.29

소 재 지

전남 장흥군

승첩도란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그린 그림을 이른다. 이 승첩도는 선조 37년(1604) 임진왜란 때 왜적의 침공을 막아냈던 공신들에게 왕이 하사했던 그림이라고 전하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당포 앞바다에서 왜적과 싸워 승리하던 장면을 그린 것으로, 그림 제목에 ‘당포전양승첩지도’라고 전서체로 쓰여있고 그 앞에는 전열을 가다듬은 배들이 줄을 지어 배치되어 있다. 배에는 깃발을 달았는데 그 기세가 당당하여 전쟁에 승리했다는 것을 곧 알아볼 수 있게 묘사되었다. 배 아래로는 당시 군관들의 활동상황 등을 붓으로 적었으며, 군관들의 이름을 적어놓았다. 임진왜란과 관계된 그림으로, 당시 전란의 상황을 알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자료출처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5_2_1_0&ccbaCpno=21136002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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