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문화원

. ‘고싸움줄당기기란 명칭에 담긴 뜻


민속놀이의 명칭에는 지역 고유의 언어 표현이 담겨 있기 마련이다. 이런 까닭에 표준어 표기에 얽매이지 않고 지역적 특생을 담은 명칭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 이 책에서 고싸움줄당기기란 명칭을 사용하게 된 배경을 밝히기로 한다.

장흥에서는 예전부터 고쌈또는 고싸움’, ‘고줄쌈’, ‘고줄놀이란 말을 사용해왔고, ‘고줄 고향 장흥이란 표현도 써왔다. 또한 줄당긴다, ’줄땡긴다란 말도 사용해왔다. 문헌에는 삭전 또는 삭희란 말이 등장하지만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경우는 거의 없고, ’줄다리기한다하는 말도 잘 사용되지 않았다. 이에 비해 고쌈한다‘, ’고줄쌈한다‘, ’줄당긴다‘, ’줄땡긴다라는 표현들이 빈번하게 사용돼 았다. 이 명칭들에는 고를 갖고 싸우거나 줄을 당기며 논다는 뜻이 담겨있다. 또한 +이란 말에서 보듯이 고싸움과 줄다리기가 별개가 아니라는 의미도 담겨 있다. 널리 알려진 대로 고싸움과 줄다리기는 놀이 방식이나 원리가 다르므로 구분된다. 대표적인 사례로 광주칠석고싸움의 경우 고싸움과 줄다리기는 완전히 구분된다. 그러나 장흥에서는 두 놀이를 따로 하지 않는다. 또한 고쌈줄당기기의 예비 놀이에 그치지 않고 비중 있는 놀이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므로 두 놀이 중 하나만 지칭하는 것은 올바르다고 할 수 없다. 주민들 스스로 고쌈한다는 말을 자연스러워하고 선호하며, 고쌈의 연속선상에서 줄당기기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이런 점을 두루 수용한 명칭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이전에 학계에 소개된 장흥 보름줄다리기란 말은 1970년도부터 사용되었는데, 그 명칭은 지춘상 교수의 언급에서 보듯이 당시 임의적으로 정한 것이다. 그러므로 다소 혼란이 있을 수 있으나 실상을 반영한 명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름 자체가 다른 지역과 다른 특징을 담고 있다고 판단되지 때문이다. 연구단에서는 이런 점을 고려해서 지역어의 표현을 살려 고쌈줄당기기라는 이름을 그대로 쓰고, 둘이 연계돼 있고 서로 비중 있게 연속적으로 연행된다는 것을 고려해서 고쌈줄당기기란 명칭을 사용하면 좋겠다는 판단을 하게되었다.

한편 지역특색을 살린 이름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고유명사로 사용하려고 하면 어색하다고 느낄 수 있다. ‘고쌈한다는 표현을 관용적으로 써왔다고 하더라고 고쌈이란 말을 생소하다고 여길 수 있고, 줄다리기란 표준어 표기에 익숙해서 줄당기기란 말이 어색하다고 느끼는 이도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연구단이 선택한 용어에 대해 주민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의견을 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해서 간담회가 마련되었다. 간담회에서는 지역특생을 살린 명칭, 다른 지역과 변별되는 브랜드화된 명칭, 어감을 고려한 명칭 등의 기준을 마련하고 구체적이고 다양한 논의를 했다. 그리고 장흥고싸움줄당기기란 이름을 선택하기로 했다. 장흥고싸움줄당기기는 장흥의 대동놀이 전통과 특징을 포괄한 명칭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연구단과 지역 민관 관계자들이 토론을 거쳐 확정한 것이라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장흥문화원에서 소중한 자료를 공유함은 문림의향 장흥에 관하여 
구하시는 분들께 도움이 되고자 함입니다.
또한,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후손들에게도 선조들의 과거를 거울삼아 현재와 
다가올 미래를 따뜻하게 설계해 주기를 부탁하는 마음을 담아 올립니다.

 문의처) 061-863-6362 · 6339/ jhculture96@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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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관련 사진자료(故 지춘상 교수 제공)

 

11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장흥읍 원도리(현 장흥교도소 자리) 들판에서 연습하는 장면(1970)

11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장흥읍 원도리 들판에서 연습하는 장면으로 주변에 초가들이 보임(1970)

 

 

 

고줄 위에 소리꾼과 줄패장을 태우고 행진하는 장면. 예전에는 문벌과 재력을 어느 정도 겸비한 한량들이 기생을 태우고 행진을 했다고 함. 기생의 설소리에 맞추어 멜꾼들은 , -, ~!” 하는 후렴구로 화답함(1970년 광주)

11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청사초롱을 단 고줄을 메고 행군하는 장면. 청사초롱의 모양이 현재의 것과는 다르며 고머리에 색천이 감겨 있지 않음(1970)

 

 

 

11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출전 당시.

맨 앞부터(우측) 서부기, 덕석기, 영기, 농지천하지대본기, 버꾸놀이패, 청사초롱, 고줄의 순서로 행군하는 장면.(1970)

11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수많은 청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청사초롱을 단 고줄을 메고 행군하는 장면.

당시 장흥 보름줄다리기라는 명칭으로 출전합(1970)

 

 

 

고싸움 준비를 위해서 청사초롱을 떼어내려고 고를 내리는 장면. 이때 농악패는 버꾸놀이를 한판 벌인다. 장흥 버꾸놀이 농약패가 쓴 고깔의 꽃은 담배꽃으로 장흥에서만 썼다. 공력과 비용이 많이 들어 대물림을 하여 썼다고 함.(1970)

11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고싸움을 벌이는 장면으로 격렬한 고싸움 못지 않게 한복을 입은 여성들의 응원도 열렬함. (1970)

 

 

11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암고와 숫고가 결합하는 순간 장면. 암고의 편장이 숫고를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이채로움(1970)

11회 예술경연대회에서 줄당기기를 하는 장면.

맨 앞쪽 웃옷을 벗은 분이 당시 편장을 맡았던 장흥읍 행원리 정철수 씨임. 80년대 초반까지 고싸움을 지도함.(1970년 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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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군민의 날·보림문화제 사진자료(양기수 제공)

 

1. 20회 군민의날 보림문화제(1990)

  덕석기를 앞세우고 출전하는 암고

1990년 당시의 고에는 청사초롱과 국기, 군기, 새마을기를 달았음.

 

 

탐진천변의 행사장으로 진입하는 고의 행렬, 장흥고의 특징을 보이는 고의 행렬과 화려함이 보임.

고싸움을 앞두고 고를 인도하는 농악대와 고줄. 암줄과 숫줄에 빨간천과 파란천으로 고머리를 장식함

 

고싸움에 출전하는 암고.

고싸움에 출전하는 숫고.

 

 

탐진강변에서 마지막으로 이뤄진 고싸움.

고싸움을 끝낸 후, 암고가 숫고와의 결합을 위해 어우르는 광경.

 

 

줄다리기를 위해 암수고가 결합되는 장면.

줄다리기중 깔아라하는 소리와 함께 줄을 깔고 앉아있는 편(우측)과 줄을 계속 당기는 편(좌측)의 모습. 장흥 고싸움의 특징임.

 

 

2. 22회 군민의 날 보림문화제(1992)

고싸움과 줄당기기의 흥을 더하는 농악대. 장흥 서부농악대의 버꾸놀이 장면.

공설운동장 동문으로 들어선 동부고.

 

 

공설운동장 서문으로 들어선 서부고와 인도하는 가수들과 농악대.

공설운동장 행사장에 도열한 동서부 고. 국가와 군기만 보이고, 비녀목에는 장식을 하지 않음.

 

 

장흥공설운동장에서의 첫 고싸움.

동서부 줄당기기에 함께 참여한 부녀자들. 고줄의 꼬리 쪽을 잡고 당기고 있음.

 

3. 26회 군민의날 보림문화제(1996)

1996년 장흥서초등학교에서 올라오고 있는 서부고.

고싸움을 하기 전에 고를 아우르고 있는 동부고.

 

 

 

동부고와 서부고가 맞붙기 위해 돌진하는 순간.

1996년도의 고싸움 장면.

 

 

 

빨간천을 벗기고 고줄의 결합을 기다리고 있는 암고의 모습. 파란천을 벗기고 암고와 결합하려는 숫고의 모습. 1990년도에는 어깨 너머의 공중에서 결합하였으나, 1996년도의 자세는 많이 낮아진 자세로 결합을 시도하고 있음.

 

 

 

4. 29회 군민의 날 보림문화제(1999)

장흥교를 지나는 동부고의 행렬

칠거리로 올라오는 서부고의 행렬

 

 

 

999년도의 고싸움 장면.

줄당기기에 참가한 군장병들과 줄당기기를 지휘하는 모습.

 

 

 

5. 37회 군민의 날 보림문화제(2007)

비가 오는 가운데 행사장으로 입장하는 동부고 행렬. 농악대도 일반 모자를 착용함.

부녀자들도 하얀색의 통일된 복장에 흰색 모자를 쓰고 줄을 멤.

 

 

 

행사장에 입장하는 서부고 기수단의 모습.

행사장에 입장하는 서부고의 모습. 비녀목에 하얀 천을 감음.

 

 

6. 39회 군민의 날 보림문화제(2009, 양기수 송기태 제공)

고싸움줄당기기에 사용되는 덕석기로 장흥읍 동동리에서 오래전부터 전해오는 것임.

긴 장대 꼭대기를 짚으로 감싸고 황, , , , 흑의 오방색 드림을 묶어 균형을 잡음.

 

 

 

2009년도는 덕석기를 제외한 농기와 영기의 모습이 많이 달라짐.

푸른색 천을 감은 동부고와 붉은색 천을 감은 서부고가 고머리를 맞대고 대치하고 있는 모습.

 

 

 

동부고와 서부고가 서로 부딪히기 전 편대장의 힘찬 함성과 응원에 힘입어 대원들이 기세를 돋우고 있음.

동부고와 서부고가 서로 부딪혀 고싸움을 벌이는 장면

기편의 고머리를 상대방 고 위로 올려 상대방의 고를 아래로 누르기 위해 필사적으로 애씀.

 

숫고를 암고 속으로 집어넣으면 줄 들어갔다!”는 함성소리와 동시에 비녀목을 끼우고 줄당기기가 시작됨.

고싸움과 줄당기기에 오방색 응원기가 사라짐.

 

 

7. 41회 군민의 날 보림문화제(2011)

동부고의 행사장 입장 모습. 오방색기가 사라지고 동부기는 청기, 서부기는 홍기가 많이 등장함.

행사장에서 고에 오른 군수와 기관장.

 

동서부 농악대가 동시에 노란색 꽃고깔을 써서 통일된 복장을 함.

서부고의 출정 대기 모습.

 

 

 

동부고의 출정 대기 모습.

2011년도 고싸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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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고줄 제작 사진자료(양기수 제공)

 

 

1994420일 행원마을 분들이 고를 만들기 위해 기본 새끼 줄꼬기를 하는 모습.

기본 새끼줄로 3합의 줄을 만듦.

 

 

3합 줄을 다시 3합하여 9합의 줄을 만드는 모습.

9합의 줄을 다시 3합하여 27합의 줄을 만듦.

 

 

27합의 줄을 다시 3합하여 81합의 줄이 되어 고 모양을 이룸.

81합이 된 고를 접어 몸통을 만듦.

 

 

고머리에 대나무를 넣고 새끼줄로 다시 감아 고의 모양을 만들면서 고싸움을 할 때 쉽게 부셔지지 않도록 보강함.

완성된 서부고. 군민회관 앞에서 고를 떠멜 장정들을 기다리는 199451일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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