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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문화소식] 장평면 우산 출신 김윤자 문예사조 최우수상 수상

장흥문화원 관리자 2024. 12. 30. 11:19

제35회 문예사조문학상, 수필부문

 

 

장평면 우산출신 김윤자씨가 제35회 문예사조문학상 시상식에서 문학적 열정과 꾸준한 창작활동으로 문예지에 수필 ‘그래도 내 고향은’을 발표하여 최우수 작품으로 선정되었다.

 그래도 내 고향은

20여 년 전 장흥, 신안, 완도, 담양이 아시아 최초로 ‘국제 슬로시티 인증’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네 군(郡)이 모두 전남이었다.

내 고향 장흥, 장평(우산마을)이 이웃 유치면 어느 마을과 함께 슬로시티로 지정된 이유는 동물과 곤충이 함께 공생(共生)하면서 생태계가 그대로 살아 있는 환경 때문이라고 한다. 두 곳 모두 생태 학습장(지렁이와 장수풍뎅이)이 생기고, 학생들을 비롯해 관광객들도 찾아온다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좋았다. ‘어서 한번 가봐야지’ 마음은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 찼으나 바쁜 일상은 늘 내 발목을 잡았다.

잊고 있을 무렵, 문예사조 사화집에 실린 내 글 ‘느리게 사는 삶’을 본 며느리가 별 헤는 밤의 어머님 고향에 가보고 싶다고 했다. 그 마음이 고마워 선뜻 승낙하고, 우린 설 명절 연휴를 이용해 2박 3일 일정으로 아름다운 탐진강 근처에 숙소를 예약했다. 장흥에 가볼 만한 명소들이 얼마나 많은가. 많이 보여주리라.

아들 가족과 함께 마을 입구에 도착했다. ‘조이 국제학교’와 ‘행복한 마을’이라는 기다란 팻말이 나란히 서 있고, 밑에는 ‘친환경 농업 생명의 땅’이라고 쓰여있었다. 행복한 마을이라는 글자만 봐도 가슴이 뛰었다. ‘그래, 행복해야지’ 다시는 우리 부모 세대가 겪었던 그 비극(빨치산의 만행)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했다.

반가운 마음으로 마을로 들어섰다. 우리 집은 맨 앞, 중앙에 있어 대번에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집터 한쪽엔 ‘마을회관’이 들어서고, ‘코로나19로 경로당 임시 휴관’이라는 안내문과 함께 문도 꽁꽁 잠겨있었다. 아버지의 삶이 담겨있는 방앗간 자리엔 알 수 없는 건물이 들어서고, 사철 푸르던 텃밭과 마당엔 잡초만 무성했다. 

집 앞에 서니 아련한 기억들이 떠오른다. 나를 포근하게 안아주고 키워준 곳, 우리 8남매, 유년의 추억들이 주렁주렁 열려있는 내 고향! 순간 어머니의 환한 얼굴이 스쳐가고, 통통통 방아 찧는 소리, 마당에서 시끌벅적 오빠들의 웃음소리가 환청(幻聽)처럼 들려온다, 뒤란의 골담초 꽃잎을 따서 쪽쪽 빨아먹고, 선홍빛 수정 같은 앵두를 따 먹던 기억들도 어제인 듯 생생한데 벌써 반백 년의 세월이 훌쩍 지났다.

동네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낼모레가 설인데 코로나 팬데믹에 발이 묶여선지 거리엔 오가는 사람 하나 없고, 절속같이 고요하기만 하다. 인적마저 끊긴 마을이 무척 삭막해 보였다. 

그 많던 집들도 줄어들고, 새로 들어선 집들은 낯설고 생소했다.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온 동네 사람들을 먹여 살리던 ‘통시암’(샘)도 사라지고, 주인 잃은 폐가도 있었다. 허물어져 가는 돌담 위에 얹힌 녹슨 철판에선 고인 물이 뚝뚝 눈물처럼 떨어진다. 힘없이 기울어져가는 집이 보기만 해도 위태위태하다. 집도 삶이 담겨  있을 때라야만 탄탄하게 버텨내는 힘을 지니는 것일까. 

늙어가는 인간의 한 생(生)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먹먹해진다. 탄생과 소멸을 반복하는 게 어디 생명 있는 것들뿐일까마는 볼수록 짠하고, 애틋한 연민(憐愍)의 마음을 어이하랴.

내가 어렸을 때 우리 마을은 자연부락까지 합하면 100여 호가 훨씬 넘었다. 국민학교 입학할 때는 신입생이 남녀 합해 20여 명이었다. 아침이면 공터에 모여 나이 많은 통학 단장 오빠가 인솔해 학교에 갔다. 점점 학생 수가 많아져 우리 후배들은 오전과 오후반으로 나누어 수업을 했다. 그러다가 몇 년 후, 우리 마을에도 학교(장평북교)가 생겼다 우리는 5리를 걸어서 산과 내(川)를 건너 ‘장평서교’에 다녔는데 가까운 곳에 학교가 생기니 내 일처럼 반갑고 기뻤다. 그런데 학생 수가 많지 않아 폐교된 지 오래되었단다. 

나의 모교도 오래전에 없어졌다. 지금 애들은 면(面) 소재지에 하나밖에 없는 ‘장평초등학교’로 군청에서 보내준 버스를 타고 다닌다.

슬로시티가 되려면 갖추어야 할 조건이 너무 많아 일본도 몇 번이나 신청했다가 떨어졌다는데 내 고향이 인증받았다는 것은 그 까다로운 조건을 다 충족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어려운 관문을 통해 인정받은 슬로시티는 불과 5년 남짓! 이제 그 이름을 잃고 말았다. 이유야 많겠지만 문제는 사람이 아니겠는가, 점점 줄어드는 인구에 젊은이가 없는 시골, 쇠잔(衰殘)한 노인들과 함께 늙어가는 고향을 보니 허탈한 마음 가눌 길이 없었다.

문득 피천득님의 수필 ‘황포탄의 추석’이 생각났다. 식민지 청년 피천득은 중국 상하이 부두가 있는 황포탄 공원에서 추석 명절을 맞이했다.

그는 고향에서의 아름다웠던 기억을 반추하며 향수를 달랬다. 그리고는 “과거는 언제나 행복이요, 고향은 어디나 낙원”이라는 말을 남겼다. 

나는 그 글을 볼 때마다 행복했는데 이제 ‘고향은 어디나 낙원’이라는 그 말엔 공감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이내 마음을 다잡는다. 그래도 내 인생에 가장 아름답고 행복했던 시절, 첫사랑 같은 내 고향이 아니던가.

 

◆김윤자/프로필 

-전남 장흥 장평 우산리 출생
-국민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방송대 문화교양학과 졸업
-2021년 문예사조 수필 등단
-한국문인협회 구로지부 회원
-문예사조 회원 ·구수회 회원
-제 35회 문예사조문학상 최우수상 (수필부문) 수상
-現 독서 논술 교사

출처 : https://www.jh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07174 (장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