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특별기고 - 네 박자
‘네 박자’는 얼마 전 하늘의 별이 된 가수 송대관이 1998년 4월 발표한 노래다. 김동찬 선생이 작사하고 박현진 선생이 작곡한 네 박자는 가수 송대관 특유의 쉰 목소리에 실려 공전의 히트를 쳤다. ‘쿵짝 쿵짝 쿵짜자 쿵짝 네 박자 속에 사랑도 있고 이별도 있고 눈물도 있네, 한 구절 한고비 꺾어 넘을 때 우리의 사연을 담은’. 들을수록 맛깔나는 노래이다. 가수 송대관은 네 박자로 스타 반열에 올랐고 부와 명성을 얻었다. 그 무엇이 사람들의 마음을 그렇게도 움직여 그 많은 감동을 주었을까. 그의 노래처럼 네 박자 속에 인생이 있는 것인가, 아니면 인생 속에 네 박자가 있는 것인가. 민초들은 몸을 흔들며 젓가락으로 장단을 맞춰가며 인생으로 네 박자를 비비고 네 박자로 인생을 비볐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울고 웃었다.
가수 송대관의 네 박자가 대중가요의 네 박자라면 한시(漢詩)의 기승전결은 글쓰기의 네 박자이다. 기승전결은 한시를 지을 때 쓰는 방법으로 한시 중 특히 절구체에서 사용되고 있다. 시상을 불러일으키는 기(起) 구, 그것을 더욱 발전 시키는 승(承) 구, 급작스럽게 시상을 변화시키는 전(轉) 구, 기승 구와 전 구의 서로 다른 시상을 연결시키면서 더욱 강한 효과를 일으키며 여운을 남기는 결(結) 구로 이뤄졌다. 이런 글쓰기의 네 박자는 박자를 쪼개어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다섯 박자인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로 진화되기도 했다. 구를 전(轉)자를 쓰는 전 구에서는 시작에 상응하는 결말을 예상했는데 웬걸 내 의지와 상관없는 뜻밖의 일이 벌어져 전혀 다른 결말로 향하는 묘미가 나타난다. 글쓰기의 네 박자를 인생에 적용해 본다면 대박이 쪽박이 되기도 하고 쪽박이 대박이 되기도 함을 의미한다. 믿고 산 주식이 종이쪽지가 되고 빚 대신 마지못해 받은 돌자갈 밭이 금싸라기 땅이 되기도 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가수 송대관의 네 박자와 글쓰기의 네 박자 그리고 인생의 네 박자가 구절마다 고비마다 물리고 돌며 꺾고 넘는다.
나에게도 네 박자가 있었다. 내가 만들어낸 네 박자는 최선과 최악 그리고 두 개의 차선으로 이뤄져 있다. 어디로 가야 하나 기로에 섰을 때, 어떻게 해야 하나 번민이 일 때, 나는 항시 나 자신이 작사 작곡한 네 박자를 생각했고 그 생각을 토대로 결심을 해 나왔다. 사람을 선택할 때 처음도 좋고 나중도 좋은 사람이 최선이라면 시작도 나쁘고 끝도 나쁜 사람이 최악일 것이다. 그런데 최선의 사람이 여러 가지로 아쉬운 나를 받아주겠는가 하는 생각에 항상 최선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 한 박자는 자동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내 아무리 궁하기로서니 강기는 있어 최악인 시작도 끝도 모두 나쁜 사람은 결코 선택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 또 한 박자는 수동으로 사라지게 만들었다. 그래 남은 것은 두 박자, ‘시작은 좋은데 끝은 나쁜 사람’이냐 ‘시작은 나쁜데 끝이 좋은 사람’이냐였다. 누굴 선택할 것인가. 내 인생의 고민이었다. 그리고 선택한 이상 나머지는 숙명이라 다짐했다. 시작이 좋은 사람에게는 나쁘게 나타날 끝을 염려해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시작이 나쁜 사람에게는 좋게 나타날 끝을 바라보며 참고 참으며 애지중지하기로 한 것이다. ‘꿈을 펼칠 기회는 희미하나 안정된 가정’을 택할 것인가. ‘꿈을 펼칠 기회는 확실한데 광야에 던져질 가정’을 택할 것인가, 나의 장년 생활의 갈등이었다. ‘장래가 보이지만 맨주먹 붉은 피 사위’를 맞을 것인가, ‘장래는 보이지 않지만 밥술깨나 먹고 사는 사위’를 맞을 것인가 이것이 내 딸 사랑의 번민이었다. 이 나이 먹도록 난 네 박자 인생을 살아내면서 두 박자는 한사코 외면하고 두 박자를 두고 울고 웃으며, 선택하며 견뎌내고 포기하며 감내했다. 그래 나는 내가 작사 작곡하고 내가 부른 네 박자로 내 인생을 살아냈다. 내 인생 거의 매 순간 두 박자 속에서 두근거리며 살아온 것이다. 주한 미군 악대가 네 박자로 편곡한 우리나라 아리랑에 맞춰 행진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주둔지에서 현지인에 맞춰가며 자기 것을 잠시 내려놓음에 놀랐다. 세계 최강 초강대국마저도 하나를 얻기 위해서는 또 다른 하나는 포기해야 함을 일깨워 주는 것 같기에 놀란 것이다.
가수 송대관의 네 박자와 글쓰기의 네 박자, 그리고 내가 살아온 방법으로서의 네 박자가 다 같은 네 박자이다. 가수 송대관이 네 박자 위에서 놀다 갔지만, 선비들이 네 박자 위에서 붓사위를 놀렸지만, 나는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네 박자 인생 장단 맞추기를 멈추고 싶다. 무엇이 오건 오는 대로 받고 누가 가던 가는 대로 내버려두고 선택도 포기도 내려놓고 원망도 조급함도 버리려 한다. 내 삶이 균형을 잃었던 지난 세월, 글쓰기 또한 온전하지 못했음을 후회하고 이번 글은 그 옛날 선비처럼 네 박자로 썼다.
출처 : (장흥투데이) http://www.jhtoday.net/news/articleView.html?idxno=14879
출처 : (장흥신문) https://www.jh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07572
출처 : (장강뉴스) https://www.jgy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94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