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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문화와역사/시도지정문화재

[시도지정 기념물 제 218호] 천도교장흥교당

by 장흥문화원 관리자 2018. 3. 21.

천도교장흥교당 (天道敎長興敎堂)

종 목

시도기념물 제218호

명 칭

천도교장흥교당 (天道敎長興敎堂)

분 류

유적건조물/종교신앙/민족종교/천도교

수량/면적

1동

지정(등록)일

2003-05-27

시 대

일제강점기

장흥 천도교당은 원래 1906년 4월에 동학의 후예인 교구장 강봉수(姜琫秀) 등이 중심이 되어 천도교인에게 모금운동을 전개하여 지어졌다. 천도교장흥군교구역사〉와 교당 내부에 걸린 〈교구실기(敎區室記〉(1920년)를 통하여 당시 개축에는 전남의사원(全南議事員) 신명희(申明熙), 장흥교구장 김재계, 수령 강봉수, 윤세현 등이 주도하였다는 것과 1917년(포덕오십육년정사(布德五十六年丁巳) 11월부터 한달여에 걸쳐 2,300원(圓)을 모금하여 1918년 2월 15일에 건축을 시작하여 6개월만인 8월 26일 준공한것 그리고 건축 실비가 1,600원이 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모금에 참여한 연조인(捐助人) 169인, 목역인(木役人) 104인, 토역인(土役人) 34명으로 명단이 확인되었다. 토역인은 기숙소(寄宿所) 건립을 주로 하였다. 이처럼 1906년과 1918년의 건립에 발기인과 연조인, 목역인, 토역인까지 기록되고 건축 금액이나 건립 기간까지 알 수 있어 중요하다.
장흥지방에 동학(1905년 천도교로 개칭)이 포교된 연대는 대략 1891년 경이었는데 이인환, 이방언, 문남택 등이 동학에 입문하게 되었다.
천도교당 건물로서 남아 있는 흔하지 않은 건축물이라는 점, 삼일운동 등 항일 독립운동을 했던 인물들과 연계되는 공간구조로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리고 구조 양식에 있어서 전통 한옥이 개화기의 여러 문화가 변용되면서 공적 근대화 과정을 표상하는 등 근대 이행기의 공공기관의 건물의 변모과정을 알 수 있다는 점 등에서 역사적, 학술적, 향토문화사적 가치가 있다.

 

자료출처: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23,02180000,36&pageNo=5_2_1_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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