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문화원

어머니 자궁같은 고향땅서… 삶과 자연을 읊조리다

‘당신은 북천에서…’ 펴낸 이대흠 시인 / 2011년 전남 장흥 탐진강변 돌아와 / 8년간 쓴 시 묶어… 남도의 서정 물씬 / 보고 싶은 이를 향한 지쳐버린 마음 / 희미한 흔적으로 남은 그리움 묘사 / 곰살맞은 사투리 애잔한 시어로 녹여

“장구를 치다가 가죽에 번져 있는 얼룩을 본 적이 있다 커다란 몸뚱이를 감쌌던 소가죽이 몸을 다 잃고 매 맞아가면서도 놓지 않아 말라붙은 소 울음소리// 그날의 소리는 죽지 않았고 떠나간 자들은 아주 떠나지 못한다”

얼룩 속에서 그리운 이의 얼굴을 발견한 적이 있는가. 시인은 “누군가를 오래 그리다 보면 문득 그의 얼굴이 얼룩 속에서 살아난다 때로는 마음에 두지 않았던 얼굴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뜻하지 않았을지라도 모르는 얼굴은 아니다”고 이어간다. 그 얼굴은 “잊힌 한때에 내가 그리워했던 얼굴이거나 나를 잊지 못한 누군가가 난데없이 방문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대흠(50) 시인이 고향인 전남 장흥 탐진강변에 돌아와 살면서 8년 만에 상재한 새 시집 ‘당신은 북천에서 온 사람’(창비·사진)에 수록된 ‘얼룩의 얼굴’이다.

시인에게 얼룩은 ‘말라붙은 울음소리’에 가깝다. 보고 싶고 그리워서 울다가 얼룩으로 남아 눌어붙은 울음소리. 목놓아 불러봐도 더 이상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는 지칠 대로 지친 그리움. 그것은 시간이 흐른다고 완전히 소거되지도 않고 희미한 흔적이나 추상의 무늬로 남지만, 결국 그 흐릿한 얼룩에서도 끝내 보고 싶은 이의 얼굴과 마주하고 만다. 뜻하지 않은 얼굴이 떠오를 때도 있지만 그이는 정작 나를 잊지 못한 누군가여서 모른다고 잡아뗄 얼굴도 아닌 것이다.

“사무쳐 잊히지 않는 이름이 있다면 목련이라 해야겠다 애써 지우려 하면 오히려 음각으로 새겨지는 그 이름을 연꽃으로 모시지 않으면 어떻게 견딜 수 있으랴 한때 내 그리움은 겨울 목련처럼 앙상하였으나 치통처럼 저리 다시 꽃 돋는 것이니”

시인은 ‘목련’에서도 그리움을 치통처럼 앓는다. 그는 “그리움이 아니었다면 어찌 꽃폈겠냐고” 진술하면서도 “또 바람에 쓸쓸히 질 것”인데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일지 모른다고 되뇐다. 모든 ‘사랑의 습관’이 쓸쓸한 건 아니다. 때로는 ‘너무 성스러워 고맙고’ 고맙기도 하다. ‘홀아비 만수 형님’이 객지를 삼십 년 넘게 떠돌아다니다 제주도에 집을 장만해 칠순의 부모를 모셨는데 도란거리던 노인들이 ‘중늙은이 아들’이 ‘젖먹이 때인 듯 살포시’ 잠들자 ‘사랑의 습관’을 되살렸던 모양이다.

 

 

 

 


고향에 돌아와 쓴 시편들을 8년 만에 새 시집으로 묶어낸 이대흠 시인. 그는 “막연했던 고향을 소화하는 과정에서 신화적 상상력에 방점을 두었다”고 말했다.
창비 제공

 


“꿈결인 듯 아닌 듯 파도 소리가 막 들려오더래요 처음엔 파도가 파도를 베끼는 소린 줄 알았다가 바람이 파도를 일으키는 소린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몸이 몸을 읽어가는 소리였는데요 칠십 줄 넘은 노인들이 한 오십년 읽어왔던 서로의 몸을 다시 읽는 소리였는데요// 처음에는 얼굴이 붉어졌는데 가만 생각하니 너무 성스러워 고맙고 고맙더래요 애 낳기에는 늦어버린 허공이 된 몸들이 애를 쓰고 있었는데 그 소리에 더 묻히다 보니 거기서 나오는 바람 소리와 파도 소리가 혼자 노는 게 아니더래요// 그래요 그것은 우주가 알 스는 소리였는데요 우주의 숨을 낳고 기르다가 다시 우주로 돌려주는 것이었는데요”(‘성스러운 밤’)

이대흠은 2011년 고향에 돌아온 이후 쓴 시편들을 수록한 이번 시집에 생에 대한 성찰과 탐진강변 자연 풍광, 5년 전 작고한 아버지의 삶, ‘북천’에 대한 그리움들을 고르게 담았다. 탐진강변에서는 ‘물의 경전’을 읽는다. “언제고 어느 때고 세월은 도둑처럼 다녀가고/ 물의 말씀을 화석으로 남기려다가/ 끝내는 물이 되어 흘러가는 무모한 사람들// …// 보아라/ 서러운 것/ 바라는 것/ 생의 환희 같은 것이/ 다만 여백으로 기록되는 물의 경전을 보아라” 시인에게 ‘북천’이란 해탈과 적멸의 공간이다. 그 북천에서는 “사람도 사랑도 새도 나비도 죽음도/ 꽃이나 별떼도 하나로”(‘북천의 물’) 흐르고, “사랑을 할 줄만 알아서/ 무엇이든 다 주고/ 자신마저 남기지 않는다”(‘당신은 북천에서 온 사람’)고 시인은 쓴다.

“달이 빛나서 북천이 밝습니다/ 북천이 밝아서 당신이 보입니다/ 나를 보고 웃는 낯빛이 고요합니다// 단 하나의 사랑을 지어 달로 띄워 올립니다”(‘북천의 달빛’)

“와보랑께와보랑께로/ 거보랑께거보랑께로/ 그란당께그란당께로”(‘강진’)처럼 질펀하고 곰살궂은 남도 사투리도 시어로 녹여낸 이대흠은 “말이 지닌 본디의 것을 살리는 데 애를 썼다/ 조금 더 나에게 가까워졌다/ 너에게 밀착되었다”고 시인의 말에 적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출처: http://www.segye.com/newsView/20180830004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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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 용화사 주지 서응스님
불상전문 사진작가 안장헌 - “불상 상호의 아우라 너무나 강렬”
국내 최고전문가 정영호박사-“석불 복원-국가 지정 적극 추진”
관계기관 무관심-석불 재조명, 용화세계 꽃불 언제 피어오를까
 

동면 용화사 전경

 

 
신라 말 고려초기의 용화사 석조여래좌상(사진-안중헌)

 

 
용화사(龍華寺)는 장동면 북교리 산 43번지(장동면 석교상방이길 89-114)에 위치한 신라 말 고려초기의 약사여래불을 모신 사찰이다.
아직은 사찰로서 번듯한 대웅전도 구비되어 있지 않아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영험하다고 잘 알려진 천년된 석불 약사여래가 있어 전국 각처에서 참배 불자들의 기도행이 줄을 잇고 있다.
최근에는 용화사 진입도로가 개설되어 대형 관광버스를 동원한 단체 기도참배객들이 줄을 이을 정도다. 올 가을에도 관광버스 5대의 참배가 예약되어 있다고 한다.

 

■용화사의 기원은 불자사로부터

 

용화사의 시원은 불자사(佛者寺)이다.
<장흥읍지>(1747년 간행 정묘지) 장동방 불우조(佛宇條)에 “佛子寺 在盃山西 今有遺止”라는 내용, 즉 ‘불자사는 배산 서쪽에 있었으나 지금은 그 터만 남아 있다’고 기록되어 있어, 현재의 약사여래좌상이 위치한 용화사가 예전의 불자사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런데 1953년경 모인(某人)이 폐사지 방죽에 넘어져 있던 약사여래좌상을 일으켜 세우고 석불 주위로 작은 움막 같은 보호각을 지었으니, 이 석불과 작은 움막 같은 보호각으로부터 용화사는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2003년 서응 스님이 용화사 주지로 부임해오며, 용화사는 일대 변혁기를 맞이한다. 서응 스님은 약사여래좌상이 안치된 허름한 보호각을 개축한 데 이어, 설선당, 심검당, 다향각, 화장실 등을 복원하며 어느 만큼 사찰의 면모를 갖추었다.

 

■서응 스님- 약사여래불에 큰 감화받았다

 

서응 스님은 허허벌판이나 다름없던 용화사로 이적하게 된 계기를 묻는 기자의 말에 스님은 당시 움막 같은 곳에 갇혀 있던 석불에 큰 감화를 받았다고 한다.
“저의 게으른 선수행을 질타하는 듯 활짝 열어젖힌 눈매며 기상이 넘치는 듯 우뚝 솟은 콧날, 자애가 넘치는 듯한 도톰한 입술...저는 이런 천년고불인 약사여래불을 보고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거기서 하룻밤을 유하는데 부처님이 현몽하기도 했고, 새벽에 몸이 그렇게 가뿐해질 수가 없었습니다. 용화사의 기운이 범상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약사여래불을 모셔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용화사로 온 이후 서응 스님은 첫째로 콘크리트 좌대 위에 앉아 있고 상당히 훼손 되어 있는 석불을 복원하는 불사를 추진하였다고 한다. 그러다 2003년 매미 태풍 때 약사여래불 보호각이 무너지는 참변을 당했고, 이후 군의 긴급 복구사업으로 보호각을 재건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동안 서응 스님은 스스로 수십 번 체험하기도 했지만, 약사불을 참배한 수많은 불자들로부터 약사여래부처님의 영험함을 전해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불교 미술사학의 거목인 정용호 박사가 용화사를 다년간 2015년 이후, 약사불의 예술적, 문화적 가치를 거듭 확인하고는 약사여래불의 복원사업과 국가지정 문화재인 국보, 보물 지정운동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용화사의 약사여래좌상은 1974년 9월 24일 전남도 유형문화재 제46호로 지정된 바 있다)
서응 스님은 석불의 복원에 이은 또 한 가지 꿈을 가지게 되었다. 새로운 당우에 약사불을 본존불로 모시는 대웅전 불사를 추진하는 일이었다.
이러한 일련의 불사의 꿈은 2016년 8월 2일, 전 단국대 석주선박물관장으로 한국 고고미술사학계 거목인 정영호 박사가 용화사를 방문하고 나서였다.

 

■미술사학계 거목 정용호 박사 용화사 방문

 

▲정영호박사(좌측에서 두번째)가 석불을 관찰하고 있다.(사진-안중헌)

 
▲정영호박사(우측에서 두번째)가 석불 복원, 국보지정을 주창하고 있다.(사진-안중헌)
 
정영호 박사는 1950년대부터 수백여 점의 유적 및 유물 발굴에 앞장섰던 국내 최고의 미술 사학계의 거봉이었다. 그가 발굴한 단양신라적성비(국보 제198호), 중원고구려비(국보 제205호) 발굴 등은 특히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는 또 양양군 진전사지의 6차례 발굴조사를 통해 부도(보물 제439호)와 석탑(국보 제122호) 발굴 등으로 국내 첫 폐사지 복원의 역사를 일궈내는 큰 기여를 했으며, 1977년 이후 2016까지 200여 회에 걸쳐 일본 대마도를 방문, 왕인 박사를 비롯한 선현들의 기념비를 세우기도 했던 인물이었다.
그 정영호 박사가 용화사를 방문한 것이다. 이때 동행한 분들이 문화재 전문 사진작가인 안장헌 씨, 박기선 박사(정영호 박사 제자), 순천대 사학과 교수 최인선 씨(순천대학교 박물관장) 등이었다.
특히 안장헌 사진작가의 경우, 국내의 불상 사진만 수십만 점을 보유할 정도로 불상에 대해서 세계적으로 탁월한 식견을 가진 지고 있었고 이런 이유로 용화사 석불과도 인연도 있었던 불상 전문 사진작가이기도 했다.

 

■안장현 불상 전문 작가도 용화사 방문

 

안장헌 씨는 2002년 3월 5일, 처음으로 용화사를 찾아갔을 때를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용화사는 석불의 보호각을 법당으로 사용하고 있으면서 변변한 요사채마저 없는 자그마한 절이었다. …용화사의 석불은 광배(光背)와 불신(佛身)을 커다란 하나의 돌에 새겨놓은 좌불상이었다. …석불이 오른손은 잃었으나 항마촉지인을 맺고 있었을 여래좌상이 분명하고이목구비가 뚜렷한 상호는 그윽한 자비의 미소를 듬뿍 머금은 부드럽고 활달한 기운이 생동하고 있었다. 비록 손상되고 결실되기는 하였으나 입체감이 매우 좋은 당당한 몸매에서 원숙한 조각가의 불심을 읽을 수 있었으며 배 모양의 광배에는 조식이 화려하고 양감도 좋아 부처의 몸에서 발산되는 광채를 표현하였는데 둘레가 많이 결실되어 아쉬움이 컸다”(네이버 블러그-‘안장헌의 문화유산과 사진 이야기’)
그리고 안장헌 씨는 2003년 2월, <석불-돌에 세긴 정토의 꿈>(한길아트 발간)이라는 불상 사진집을 펴냈는데 여기서도 용화사 석불을 소개하였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서응 스님과 인연이 되었고, 이후에도 3회(2004년 10월, 2005년 7월, 2015년 10월)에 걸쳐 용화사를 더 찾았으며, 2016년 8월 2일 정영호 박사가 용화사를 찾았을 때도 용화사를 다시 방문했던 것이다.

 

■“용화사 석불-복원, 국가지정 문화재 추진할 터”

 

서응 스님은 “2016년 8월, 용화사 석불을 일견한 정용호 박사는 수많은 불상을 봐 왔지만 이처럼 대단히 훌륭해 뵈는 불상은 처음이다. 국보급 이상이다. 내 생애에서(당시 80세) 마지막으로 진선사 복원(예전 진선사지 발굴을 주도했다)과 함께 이 불상 복원도 추진해 보고 싶다, 더불어 이 석불의 국보급 지정 운동도 함께 추진하겠다고 말했다”고 회고했다.
이때 정 박사와 함께 방문했던 안장헌 씨도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석불을 참배하고 우러러 보면 불상이 주는 아우라(Aura:예술 작품 등에서, 흉내 낼 수 없는 고고한, 고유한 분위기나 기운)가 너무 강렬했다, 수십만 장의 국내 불상 사진을 찍은 내게도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이후 용화사의 약사여래불의 복원과 국보급 지정 운동은 정영호 박사를 위시해서 본격 추진되는 듯했으나, 그 이듬해인 2017년 4월 27일 정영호 박사가 갑자기 별세, 용화사의 약사여래좌상의 복원과 국보급 지정 운동은 이후 정체되고 말았다.

 

■대웅전 불사 추진-용화세계 구현 기반

 

용화사(龍華寺)라는 절 이름은 미래의 불국정토가 실현된다는 용화(龍華)세계에서 따온 사찰 이름이다. 그런데 이 용화사에서 본존불은 미륵불도 아니고 약사여래불, 즉 약사여래좌상이다. 약사여래는 모든 중생의 질병을 고쳐주고 재앙을 소멸시키며 불자에게 무상보리(無上菩提)라는 최고의 깨달음을 얻게 해준다는 부처이다. 그러므로 장동 북교리의 용화사는 이상(理想)으로 불국토를 지향하지만 현실(現實)에서 중생의 아픔과 슬픔을 치유해주는 사찰인 것이다. 이상과 현실이 공존하지만 이상보다 현실을 더 중시하는 사찰이 장동 북교리의 용화사인 것이다.
최근 들어 서응 스님의 대웅전 불사와 약사여래 복원 불사에 대한 발원의식은 더욱 확고해지고 있다.
“전국에서 참배객들이 몰려드는 참배객이 연중 5백여 명이나 되는데, 보호각이 비좁아 겨우 10여명밖에 못 들어가니 기가 막히잖아요. 천년고불을 모신 법당도 너무 초라하잖아요. 그것도 절 입구 길에 떡 버텨있습니다. 바람 불면 먼지가 법당으로 들어와 1년 내내 문도 못열어 놓고 있습니다. 70-80년대에 철근 콘크리트로 만든 좌대가 부식되어 석불이 기울고 거기다 시멘트 독으로 석불이 백화현상으로 부식되고 있습니다. …하여 약사여래불을 제대로 복원도 하고, 제자리에 모시려고 대웅전 불사를 추진하고 있는 것입니다. …약사불에 대한 문화재적, 불교 미술사적인 가치에 대해 수많은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극찬하며, 국보급으로 지정되고 복원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데도 전남도나 장흥군 등 관계 당국에서는 너무 무관심해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도, 군 관계자들도 석불의 복원을 인정하면서도 에산문제로 이를 처리 못하고 있어 참배객들로부터 욕을 얻어먹고 있습니다.”
용화사 경호스님의 비원의 목소리였다.

 

■용화의 꽃불 피어나길 비원한다

 

“앞으로 대웅전 불사와 약사여래불 복원을 1차적으로 추진해야 하지만, 이와 함께 주차장도 정비해야 하고, 참배객들의 쉼터도 만들어야 하고, 종각도 신설해야하고 참, 할 일이 많습니다.”
서응 스님은 “출가한 이래 수십 년 동아 수행 정진해 오면서, 도솔암에서 천일기도 회향 후 단군 이래 국가 최대의 공사라는 새만금 간척공사 때 3회에 걸쳐 고사 및 천도재를 지낸 것을 비롯하여, 광양제절 제2컨테이너 항만, 부산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시흥 제3,4호기 화력발전소 공사 등 수많은 건설회사 공사 기도를 봉행한 것이 추억에 남는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서응 스님-무엇보다. 외진 산골에서 찬란한 용화세계를 꿈꾸며 그러나 지금은 만인 대중들의 지극한 아픔과 슬픔을 녹여주는 기도처로서 번듯한 도량을 꿈꾸는, 지극히 현대적이며 천진한 스님임에는 분명하다.
어느 시인은 용화사 방문기에서 용사화에 대해 “…당호하나 걸리지 않는 용화사에 천년을 이어오는 옛 불자사의 꽃불이 타오르고 있다”고 표현했다.
이 시인이 표현한 꽃불… 그 ‘꽃불’은 오욕과 번뇌로 가득찬 이 땅(現實)에 발 딛는 인간이 저 투명하고 공(空)한 하늘(理想)을 땅으로 끌어 내려 찬연히 빛나는 ‘용화(龍華)’의 꽃불일 게다./김선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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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장흥역대문인시가선전으로
7.28- 8. 1 장흥군민회관 3층 대회의실

                                                               ▲서예가 치인 이봉준


치인 이봉준 서예가의 고희 기념 작품전인 제8회 장흥역대문인시가선전이 제11회 정남진 장흥 물축제와 연관되어 오는 28일부터 8월 1일까지 장흥군민회관 3층 대회의실에서 열린다.올해로 여덟 번째를 맞이하는 이번 장흥역대문인시가선전은 치인 이봉준 서예가의 고희를 기념해 열린다.

이번 작품전에서는 이봉준 서예가의 자작 한시 70여점과 17세기부터 근세에까지 장흥 선현들의 한시 130여점을 서예작품으로 만날 수 있다.특히 이번 전시회에서는 이봉준 서예가의 ‘치인체(痴人體)’를 전서, 예서, 해서, 행서, 초서 등 5체의 다양한 기법으로 만나 볼 수 있다.이봉준 서예가의 삶과 풍류를 엿볼 수 있는 자작 한시를 서예작품으로 발표 한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

이봉준 서예가는 지난 2007년부터 10년을 넘게 장흥 역대 문인들의 문집을 분석하였고, 현재까지 모두 194명의 문인을 발췌 정리하였다.

이렇게 정리한 문인들의 한시들 가운데 장흥의 멋과 풍류를 읊고 있는 한시들만 선별하여 지난 2009년부터 연차적으로 서예작품화 하여 전시하고 있다.

아울러 장흥역대문인시가선전은 지난 2009년부터 만나고 있는 장기 프로젝트로 타 지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한 서예 작품전시회이다.

타 지역과는 견줄 수 없을 정도로 전대에 압도적으로 많은 문인을 배출한 ‘문림의향 장흥’, ‘정남진 장흥’을 다시 한 번 주목하게 한다.

또한 타 지역에서도 관심이 많은 이봉준 서예가의 장흥역대문인시가선전은 지난 2011년 경상북도 청송군 백강미술관에서 기획초대전을 가졌다.

지난 2012년에는 여수시문화원의 초대로 여수거북선축제에서 ‘임란정유재란한시선전’으로 충무공 이순신과 장흥출신 한시작가들이 당시 참담했던 심정을 읊은 한시 43점을 서예 작품화하여 선보인바 있다.

한편 정종순 장흥군수는 전대문인들의 묵향이 되살아난 듯 한 획마다 힘이 있고, 열정이 있으며 작가와 하나가 된 듯 한 치인 선생의 작품에서 작가의 혼을 느낄 수 있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위등 장흥군의회 의장은 이봉준 서예가를‘서예의 대가’로 칭송하며 이번 전시회는 정갈한 붓글씨로 장흥 문인 선현들의 한시 작품들을 재해석하고 선조들의 혼과 얼을 되살리는 소중한 기획전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이금호 장흥문화원장은 이봉준 서예가는 늘 청년과 같은 마음으로 지역 문화예술발전에도 크게 기여하며 이번 전시회가 장흥문화의 실상을 대내외로 널리 알림과 동시에 장흥의 위상을 드높이는 의미 있는 전시회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또한 소설가 한승원은 치인의 글씨는 세계 어디다가 던져놓아도 그의 글씨 일 수밖에 없다며 그만큼 그의 글씨는 독특한 ‘치인체(痴人體)’ 이룩했다며 ‘치인체(痴人體)’라는 새로운 어록을 남기는 것은 물론이고, 이번 전시회에서 발표하는 이봉준 서예가의 한시 작품들의 문학성 역시 나름대로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며 그의 시는 가식의 삶을 살지 않은 삿됨이 없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봉준 서예가는 장흥군 만수리 출신으로 제4회 강암서예대전 대상과 제25회 대한민국서예전람회(국전) 우수상(공동1위)을 수상하고, 제8회 김생전국서예대전 대상, 제22회 국제현대미술창작전 대상, 제20회 신동아현대미술대상전 대상, 제10회 한반도미술대전 종합대상·제14회한라서예전람회대상 등 국내외 각 서예대전에서 대상 여섯 번·우수상 세 번을 수상하는 등 화려한 수상경력과 12회째의 개인전, 한중일 문화인서예전 등 60여 차례의 그룹전을 가졌으며, 주요 저서로 ‘서법대관’ ‘위비의서법예술’과 국역 ‘천방선생문집’ 등이 있다.

문의전화 061-864-3535, 010-5489-3536

출처 : 장흥투데이(http://www.jhtoday.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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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연합뉴스) 형민우 기자 = 드론으로 농촌 마을을 기록하는 사진가 마동욱(61) 씨가 '하늘에서 본 영암'(눈빛)을 펴냈다.

고향인 장흥을 드론으로 찍어 사진집을 낸 마씨는 이번엔 월출산이 아름다운 영암을 사진에 담았다.

                                                                          영암군 군서면 모정리 1구 전경                                                                                                   [마동욱 씨 제공=연합뉴스]

2016년부터 2년간 영암지역 11개 면을 돌며 모두 600여 마을을 드론을 띄워 촬영했다.

'하늘에서 본 영암' 사진집에는 컬러사진 600여 장이 실렸다.

국립공원 월출산과 영산강 하굿둑을 중심으로 펼쳐진 영암의 자연 생태와 마을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아름다운 풍경과 달리 영암도 여느 농촌 마을과 마찬가지로 빈집이 늘고 농민들은 고령화돼 쓸쓸한 모습이다.

마씨가 기록한 사진은 경제논리로 무장한 개발의 이면에 남겨진 농촌의 그늘을 잘 보여준다.

장흥에 이어 영암까지 영역을 확대한 마 씨는 강진 취재를 마치고 요즘엔 보성과 고흥을 찍고 있다.

지난 3년간 고장 나거나 추락한 드론만도 6대에 달한다.

고가의 장비지만 모두 자비로 충당하다 보니 경제적 어려움도 만만치 않다.

마씨는 "2030년이면 전남지역의 농촌 마을이 거의 소멸한다고 보면 된다"며 "개인이 하기에는 벅찬 작업이지만, 기왕 시작한 일인만큼 전남의 모든 농촌 마을을 담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21일부터 7월 5일까지 서울 억불카메라 4층 벤로갤러리에서 '하늘에서 본 영암' 전시가 열린다.

minu21@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8/06/18 15:19 송고

자료출처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8/06/18/0200000000AKR20180618107000054.HTML?input=1179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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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호남 지방
가사문학의 중심지였으며
20084월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문화관광기행 특구로 지정
이 지역은 어디일까요?


 


*문학이 살아 숨 쉬는 장흥


전남 장흥이 문림 고을이라
불릴 만큼
많은 학자와 문장가, 예술인
다수 배출하였는데요.
 
 
가사 문학의 효시라 불리는
<관서별곡>의 저자 백광홍
 
<눈길>,<서편제>등 남도민의
한과 소리를 소설로 남아낸
소설가 이청준
 
 
<아제아제 바라아제>,
<해산 가는 길> 등의
저자 한승원 등이
이곳 출신이랍니다.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장흥
배경으로 한
설화, 전설, 민담 등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있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전남 장흥군 장동면 조양리에
자리한 관호마을 사람들은
옛날부터 보성강의 냇물을 막아
농업용수로 사용해 왔는데요
    

100m 정도의 보를 막자
큰비가 내리지 않았는데도
계속해서 보가 터지기 시작한 탓에
마을 주민들의 속까지
터질 지경이었답니다.

  매번 터지는 보를 해결하기 위해
돼지, 소 등을 제물로 바쳤지만
수포가 되고 계속해서 무너졌어요.


 

*계속해서 터지는 보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던 어느 날,
마을의 어르신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
젊은 사람을 제물로 바치면
무너지지 않을걸세

말을 했답니다.


다음날 이러한 꿈을
마을 사람들에게 말하고
마을을 위해 나서줄 젊은이를
찾기 시작했지만
선뜻 나서는 이가 없었어요.
 
 
포기하려는 순간,
 
마을에서 가장 가난한 집안에서
홀로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효심 깊은 젊은이였던 선들이

자신이 제물이 되는 대가로
어머니가 여생을
편히 보낼 수 있도록 해 달라며
스스로 희생을 선택하였답니다.



 

*선돌이의 아름다운 희생


마을 사람들은
선들이의 희생에 감사하며
큰 재물을 주었고
성대한 제사를 지낸 뒤
그를 제물로 바치자
 
거짓말처럼 보가 터지는
일이 사라졌어요
 

마을에 비가 많이 내린 어느날
보에서 들리는 소리가
바람을 타고
사람들에게 들려왔는데요

그 소리가 마치
선돌~ 선돌~
하는 소리처럼 들려

사람들 사이에서
'선들보'라는 이름으로
불르게 되었답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원연합회
문화콘텐츠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시행하였던
‘2017 지방문화원
원천콘텐츠 발굴 지원 사업'

     
    
특색 있는 콘텐츠 개발을 위해
향토문화자원 발굴을 통해
다양한 창작물들이
탄생할 수 있도록 노력한 결과!
 

 전라남도문화원연합회와 함께
장흥문화원에서
장흥군 마을의 신화, 전설,
민담 등 우리 선조들의
지혜와 경험들이 투사된
대표 설화를 모아

 


<장흥 땅이 품은 문림의향 장흥설화>
제작하였어요~


 *장흥 땅이 품은 문림의향 장흥설화

 


장흥군 안양면에서 내려오는 이야기
<임 목사가 굴러 떨어트린 옥녀바위>부터
장흥군 관산읍에서 내려오는 이야기
<금수굴의 황금 약수>까지
장흥군의 대표 설화 17
수록되어 있답니다!

 

 

오늘은 여러분에게
문림고을로 불리는
장흥의 대표 설화에 관한 이야기
소개해드렸어요
 
 
향토문화를 수호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지방문화원과 한국문화원연합회
다채로운 활동을 지켜봐 주시고
많이 사랑해 주세요~


 

 

자료출처_ https://blog.naver.com/kccf2007/22127636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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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동·조재환·정종순 후보 장흥문화예술 정책협약 서명

더불어민주당 박병동 후보, 무소속 조재환 후보, 무소속 정종순 후보 등 6·13 지방선거 장흥군수 후보들이 장흥문화예술단체들과 문화예술 정책 확대에 합의했다.

26개 장흥군문화예술단체들은 "지난 5일 장흥군수 후보 3명과 '장흥문화예술 발전을 위한 문화예술 정책 협약식'을 가졌다"6일 밝혔다. 문화예술단체들은 6·13지방선거를 앞두고 5차에 걸친 정책간담회를 통해 의견을 종합해 후보들에게 정책협약을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장흥군수 후보들은 장흥군의 열악한 문화예술정책의 지평을 확장하기로 합의하고 협약서에 서명했다. 이들 후보들은 문화행정 개선 등을 통해 '문화로 행복한 문림의향 장흥'을 만든다는 방침이다.

또한 각 후보들은 '지역문화진흥법'과 장흥군 '문화예술 진흥에 관한 조례'에 따라 장흥지역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 민관협치기구인 '장흥문화예술위원회' 설치를 적극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동시에 지역예술인 및 예술단체 지원을 위한 문화예술 예산을 현실화하고 예술인 지원체계 제도개선 노력과, 지역민의 삶의 질 향상과 문화욕구를 반영하고 지역특성에 맞는 '지역문화예술복합공간' 설립과 운영을 위한 방안을 마련한다.

지역공동체 중심의 문화산업 발전을 위해서는 청년예술가 및 장르별 창작 지원에 노력할 방침이다.

장흥군 문화예술인 관계자는 "지역 문화예술인들이 주체가 되어 장흥문화예술정책을 기획하고 집행할 수 있는 시스템과 문화예술에 대한 투자는 당연한 조치다""이번 정책협약식이 지역 문화예술 발전에 좋은 디딤돌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장흥=이영규 기자 yglee2@jnilbo.co

 

 

자료출처_http://www.jnilbo.com/read.php3?aid=1528273621551209163

관련기사_ 장흥군수 후보 3명, 문화예술 정책협약 서명 브릿지경제 21시간 전

                   장흥군수 후보 3명, 문화예술 정책협약 서명 신아일보 21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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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보 44호이자 통일신라시대 후기를 대표하는 석탑인 전남 장흥의 ‘보림사 남북 삼층석탑’이 일제강점기 당시 복원이 잘못된 채 지금까지 서 있는 것으로 29일 확인됐다. 사진은 조선총독부의 보림사 석탑 복원 공사(1934년 가을) 이전에 촬영된 것으로 보이는 남쪽 석탑이다. 탑 상륜부의 동그란 장식물인 보륜의 갯수가 4개지만 복원 이후엔 3개로 줄어든다. 사진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선총독부박물관의 유리 건판(소장품 번호 ‘건판036697’)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보림사 삼층석탑의 북쪽 탑으로 일제의 복원 공사 이전엔 상륜부 보륜의 갯수가 4개로 명확하게 확인된다. 사진은 중앙박물관 소장 조선총독부박물관의 유리건판(소장품 번호 ‘건판036669’)이다.

국보 44호이자 통일신라시대 후기의 대표적 석탑인 ‘보림사 남북 삼층석탑’(전남 장흥군)이 잘못 복원된 채 서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보림사 대적광전 앞에 남북방향으로 자리한 쌍둥이 탑인 보림사 석탑은 일제강점기이던 1934년 도굴에 따른 훼손으로 복원 공사가 이뤄졌지만 석탑 상륜부가 원형과 다르게 복원된 사실이 29일 확인됐다. 

80여년 만에 드러난 보림사 석탑의 복원 오류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 중인 일제강점기 당시의 유리건판 사진에서 확인된다. 유리건판은 조선총독부박물관이 식민지배를 목적으로 1909년부터 1945년까지 전국의 유적·유물 등을 촬영한 것이다. 

복원 2년 뒤인 1936년 3월 18일 촬영된 보림사 삼층석탑 중 남쪽 석탑. 복원 공사 이전에 4개이던 상륜부의 보륜 갯수가 3개로 줄어들었다. 복원을 잘못한 것이다. 사진은 중앙박물관 소장 조선총독부박물관의 유리건판(소장품 번호 ‘건판012690’).

 

▲복원 2년 뒤인 1936년 3월 18일 촬영된 보림사 삼층석탑 중 북쪽 석탑. 복원 공사 이전에 4개이던 상륜부의 보륜 갯수가 5개로 늘어났다. 남쪽 석탑에 있던 보륜 1개를 빼내 북쪽 탑에 설치함으로써 복원을 잘못한 것이다. 사진은 중앙박물관 소장 조선총독부박물관의 유리건판(소장품 번호 ‘건판012689’).

 

 문화재청과 보림사 등의 문헌자료를 보면, 보림사 쌍탑은 신라 경문왕(재위 861~875년) 때인 870년에 세워졌다. 이후 ‘1933년 겨울’에 도굴꾼들로 인해 탑의 일부가 훼손되자 조선총독부는 이듬 해인 ‘1934년 가을’에 복원공사를 했다. 

그런데 복원 시점을 전후한 유리건판 사진들을 비교·분석한 결과, 남북탑 상륜부의 보륜(寶輪·탑 꼭대기의 원반형 장식물) 갯수가 달라지는 등 복원 오류 사실이 드러났다.

복원 공사 전인 1930년대에 촬영된 것으로 보이는 남탑(중앙박물관 소장품 ‘건판 036697’)과 북탑(‘건판 036669’)의 보륜은 각각 4개씩으로 명확히 확인된다. 

하지만 복원 2년 뒤인 1936년 3월 18일에 촬영된 사진을 보면 남탑의 보륜은 3개(‘건판 012690’), 북탑의 보륜은 5개(‘건판 012689’)다. 남탑에 있던 4개의 보륜 중 1개가 북탑에 설치된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 김영민 박사(사진전문경력관)는 “보륜이 각 4개씩인 사진은 촬영 일자가 불명확하지만 전후 맥락상 1930년대 촬영된 것이며, 보륜 갯수가 달라진 사진은 복원 후인 1936년 3월 18일로 촬영 날짜가 명확하다”고 밝혔다. 

일제의 잘못된 복원이 고쳐지질 않은채 현재 보림사 대적광전 앞 마당에 서 있는 보림사 남북 삼층석탑(국보 44호). 각 석탑의 보륜이 4개씩이었지만 일제의 복원공사 이후 왼쪽의 북쪽 탑 상륜부의 보륜 갯수는 5개, 남쪽 탑 보륜은 3개로 쌍둥이 탑임에도 불구하고 높이, 비례가 맞지 않은 실정이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남북 석탑의 보륜 숫자가 달라지면서 보림사 석탑은 쌍둥이 탑임에도 불구, 높이나 비례가 맞지 않는 실정이다. 신라 경문왕이 선왕인 헌안왕을 위해 세워 1000여년 동안 유지돼온 석탑이 복원 잘못으로 상륜부의 원형을 잃어버린 것이다. 물론 당시의 잘못된 복원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당시 석탑의 원형 훼손이 일제의 고의에 의한 것인지, 단순한 실수 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

일제의 복원 오류가 고쳐지질 않고 80여년 째 그대로 서 있는 ‘보림사 남북 삼층석탑’(국보 44호). 문화재청 제공.

 

전문가들은 문화재청 등 관련 당국이 적극 나서 원형대로 재복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석탑 전문가인 박경식 교수(단국대 석주선박물관장)는 “유리건판은 말이 필요 없는 명확한 사진이다보니 문화재의 원형을 찾는데 매우 유용하고 중요한 역할을 해오고 있다”며 “더욱이 국보이니 만큼 정밀 조사를 거쳐 원형대로 복원하는 게 너무나 당연하다”고 밝혔다.

보림사 석탑의 복원 오류를 처음 제기한 경향신문 독자인 박계윤 장흥한의원 원장(48)은 “수십년 째 보림사를 찾고 있는데, 최근에 남북탑의 보륜 갯수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됐다”며 “이제 사진으로 확인된 이상 원형 복원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 원장은 “쌍둥이 탑인데 보륜 갯수가 3개, 5개로 각각 다르다보니 석탑 전체의 높이나 비례가 맞지 않아 의문이 들었다”며 “그 이후 보림사 석탑과 관련된 여러 자료들을 찾게 됐고, 결국 복원이 잘못된 것으로 확신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보림사 삼층석탑 가운데 남쪽 석탑의 보륜 부분. 일제의 복원공사 이전엔 4개 였으나 잘못된 복원으로 1개가 북쪽 탑에 설치되면서 3개만 남아있다.

보림사 삼층석탑 가운데 북쪽 석탑의 보륜 부분. 일제의 복원공사 이전엔 4개 였으나 잘못된 복원으로 5개가 됐다.

 

남북 석탑 사이의 가운데에 있는 석등과 함께 국보로 지정된 보림사 석탑은 전문가들 사이에선 9세기 후반 세워진 석탑들 가운데 전북 남원의 ‘실상사 동서 삼층석탑’(보물 37호)과 더불어 상륜부가 원형대로 잘 남아 있는 것으로 평가받아왔다. 

보림사 석탑과 동시대에 세워진 ‘실상사 동서 삼층석탑’(828년)의 보륜도 일제의 복원 공사전 보림사 석탑처럼 각 4개씩이다. 경주의 ‘불국사 삼층석탑’(석가탑·국보 21호)의 상륜부는 보존이 잘된 실상사 탑의 상륜부를 모방, 복원한 것이기도 하다. 

보림사 석탑은 설립 경위와 연대 등이 명확한 유례 드문 통일신라시대 후기 석탑이기도 하다. 1930년대 석탑 내부에서 사리합·비단·구슬 등의 사리장엄구와 함께 탑의 조성 연대와 경위 등을 기록한 탑지(塔誌)가 발견된 것이다. 탑지에 따르면 보림사 석탑은 870년 경문왕이 선왕인 헌안왕(재위 857~861년)의 명복을 빌기 위해 건립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보림사 삼층석탑과 동시대에 세워진 남원의 ‘실상사 동서 삼층석탑’(보물 37호). 상륜부가 잘 보존돼 ‘불국사 삼층석탑’(석가탑·국보 21호) 복원 당시 실상사 탑의 상륜부를 모방했다. 보륜 갯수가 역시 4개씩이다.

일제가 1934년 복원 당시 잘못을 저지른 보륜은 석탑의 상륜부를 장식하는 주요한 요소의 하나다. 석탑의 머리장식이라 할 상륜부는 각각의 상징성을 띤 노반~복발~앙화~보륜~보개~수연~용차 등의 순으로 구성된다. 노반(露盤)은 탑의 최고 꼭대기 옥개석 위에 놓아 상륜부를 받치는 부재로 ‘이슬을 받는 쟁반’이라는 의미로 부처의 은혜를 뜻한다. 복발(覆鉢)은 노반 위에 그릇을 엎어놓은 모양의 부재인데 인도 스투파의 반구형 돔을 형상화한 것이다. 또 연꽃잎이 사방으로 피어 있는 형태의 앙화(仰花)는 복발 위에 놓이는 장식물이다. 

앙화 위에 설치되는 보륜은 신들의 공간인 하늘의 세계를 상징한다. 보륜의 갯수는 특별히 정해지지 않아 석탑마다 다르다. 보륜 위에는 마치 보륜을 덮기라도 하듯 덮개 모양의 보개(寶蓋)가 자리한다. 보개 위에는 불꽃 모양의 장식물인 수연(水煙), 구슬 모양의 장식인 용차(龍車)가 차례로 설치돼 석탑 꼭데기를 장식한다. 이들 상륜부 장식물은 일반적으로 찰주(擦柱)라고 불리는 탑의 중심 기둥으로 고정된다. 찰주는 쇠나 돌로 만들어 진다. 

가지산 남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보림사는 통일신라 헌안왕의 권유로 보조국사 체징(804~880)이 헌안왕 4년(860)에 창건한 사찰이다. 

이후 보림사는 구산선문 가운데 가지산문 사찰로 선풍을 드날렸다. 인도의 가지산 보림사, 중국 가지산의 보림사와 함께 ‘3보림’으로 불리기도 한다. 한때 20여동에 이르던 보림사 전각들은 한국전쟁 당시에 대부분이 불에 타 현재는 복원한 건물이들이다. 현재 대한불교 조계종 송광사의 말사로 소속돼 있다. 

1930년대 촬영된 보림사 전경. 조선총독부박물관의 유리건판 사진으로 저 멀리 대웅보전 건너편에 삼층석탑이 보인다.



자료출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5291914001&code=960100&utm_campaign=share_btn_click&utm_source=facebook&utm_medium=social_share&utm_content=khan_view#csidx582b6ee67cc91f6b17c3a2bf24028c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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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안훈석 기자]전남 장흥군 부산면은 지난 30일 부산초등학교 전교생 40명을 대상으로 부춘정과 열녀비 현장 탐방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탐진강 상류에 자리하고 있는 부산면은 강을 따라 4개의 정자가 들어서 있고, 주변 마을입구에 효열비 15곳이 세워져 있다.

 

 

 

부산면은 효 문화 잘 발달된 지역 정서와 조상의 높은 선비정신에 대해 지역 꿈나무들이 자부심을 갖도록 이같은 탐방행사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부산초등학교에서도 아동문학가 김녹촌 문학교실을 운영하면서 지역 문화유산 알기에 힘쓰고 있다.

이날 문화해설에 나선 문병길 부산면장은 조상의 참된 가치관과 삶을 잘 배워 오늘날 우리 사회가 추구하고 있는 윤리와 도덕성이 새로운 지표를 발견하자고 말했다.

 

출처_http://www.simin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558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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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7일 9시, 지역민의 화합 한마당 '봄나물 축제'도 개최

지난 2014년 발굴조사와 문헌고증을 토대로 종합정비계획을 수립한 후 2016년 원래의 위치에 대웅보전 복원불사와 삼층석탑을 이전했다.

 

천5백여 년의 장엄한 역사를 간직한 장흥 천관사가 오는 27일 '대웅보전 부처님 봉안식'을 봉행합니다.봉은삭은 천관사 대웅보전 특설무대에서 열리며 점안식과 점안법회, 봄나물축제,리셉션 순으로 진행됩니다.

특히 이번 행사에는 송광사 주지 진화 스님을 비롯해 소설가 한승원씨, 군민 등 700여 명의 사부대중이 참석할 예정이며 지역 주민들과 함께 하는 봄나물 축제도 마련합니다.

천관사는 지난 2014년 발굴조사와 문헌고증을 토대로 종합정비계획을 수립한 후 2016년 원래의 위치에 대웅보전 복원불사와 삼층석탑을 이전했습니다.

 

정종신 기자  jjsin1117@hanmail.net 

http://news.bbsi.co.kr/news/articleView.html?idxno=8770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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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가 전시물 보완 방문객 맞이…첫 창작집·소설 원작 영화 9편 전시

 

 

 

장흥군과 장흥별곡문학동인회가 고 이청준 작가의 생가에 전시물을 보완해 수준 높은 문학공간으로 재구성하고 나섰다. 

고 이청준 작가는 한국문학의 가장 지성적인 작가로 손꼽히며, 작고 후에도 독자들과 문학인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실제로 회진면 진목리의 생가, 선학동 마을, 묘소 등 ‘이청준 문학자리’에는 전국은 물론, 해외에서도 방문객들이 찾아들고 있다. 

장흥군과 장흥별곡문학동인회 회원들은 이 같은 유명세에 비해 이청준 생가 주변 정비와 전시 자료가 빈약하다는 지적에 따라 1차로 전시 자료 정비해 이를 게시했다. 

지난해 완간된 이청준 전집 전34권은 문학과지성사(대표 이광호)에서 기증 하여 전시했다.

11개국에서 30여권이 출간된 번역서는 한국문학번역원이 정리 제공한 자료를 토대로 국가별 언어별 출간년도 등을 명기 하여 게시했다. 

열화당 이기웅 대표가 기증한 이청준 작가의 첫 창작집 ‘별을 보여 드립니다’ 복간본도 주목을 끄는 전시물이다. 

‘별을 보여 드립니다’ 복간본은 한정 소장판으로 제작돼 그 가치를 더욱 인정받고 있다.

이청준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된 영화 가운데서는, 1969년 김수용 감독이 연출한 ‘시발점(원작 병신과 머저리)’부터 연도별로 정리된 총 9편의 영화 자료도 전시됐다. 

올해로 10회째 맞는 이청준문학제의 자료도 회차 별로 전시해 독자들에게 선보인다.

올해 장흥별곡문학동인회는 매월 1~2회 장흥의 문학 현장을 순회 하며 환경을 정리 하고 전시물을 보완해, 장흥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보다 수준 높은 문학 환경을 제공할 예정이다. 

김석중 장흥별곡문학동인회장은 “이청준 문학자리는 계절을 가리지 않고 강원도, 경기도, 경상도, 제주도, 해외 독자들까지 더듬어 찾아오는 곳”이라며, “아름다운 장흥의 자연을 따라 고 이청준 작가의 소설과 고고한 인품을 회상 하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2018. 04.25(수) 14:47 장흥=김세훈 기자 vhdtp95@gwangnam.co.kr

http://www.gwangnam.co.kr/read.php3?aid=1524635230288799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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