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문화원

기봉 백광홍1522(중종 17)∼1556(명종 11)

 

기행서경가사의 효시를 이룬 관서별곡

 

 

▲기봉 백광홍

 

    

 

▲관련서적

 

 

선생의 본관은 수원이고 자는 대유이며 호는 기봉이다.

1549(명종4)에 사마양시에 급제하고 1552년에 문과에 등재하여 홍문관 정자에 임명되었다. 그 해 성균관에서 문신들이 재주를 겨룰 때 '동지'라는 부를 지어 장원을 하여 명종 임금으로부터 '선시'10권을 하사받아 지금까지 전한다.

1555(명종10)에 평안도 평사가 되어 관서 지방의 백성들의 폐해를 보살피면서 그 곳 향촌의 서정과 자연풍물을 시문으로 노래하던 중<관서별곡>을 지었다.가사는 당시 한문으로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던 조선중기의 일반적인 틀에서 벗어나, 우리말과 우리글, 그리고 우리 가락으로 펴현한 문학예술 양식의 하나이다.선생의 문집인[기봉집]에 전하며 기봉선생이 왕명을 받들어 평안도 평사가 되어 임지로 떠나는 심정과 관서지방의 삶과 정취,자연풍광의 아름다움을 174구의 한글가사로 표현한 작품으로 우리나라 국문학사에 하나의 이정표를 세운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관서별곡>은 송강 정철이 지은<관동별곡>보다 무려 25년을 앞서 지은 작품으로 당시 문인들에 의해 많이 애송되었다.

특히 송강의<관동별곡>은 구성형식과 표현기법이 기봉선생의<관서별곡>을 모방한 작품으로 그대로 확인되었다.

또한 <관서별곡>은 우리 장흥의 선비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어 '장흥가단'을 이루는 바탕이 되었다.

 

관서별곡

 

관서 명승지에

행장을 다사라니

연소문 내닿아

귀심이 빠르거나

백제에 말가라

천수원 도라드니

만월대도 보기슬타

형극이 지었도다

귀편을 다시빠와

생양관 기슭에

감송정 돌아들어

십리파랑과 만중연류는

왕명으로 보내실세

칼 하나 뿐이로다

모화고개 너머드니

고향을 사념하랴

임진에 배건너

송경은 고국이라

황강은 전장이라

사누얼이 반사카늘

구현을 넘나드니

버들조차 푸르렀다

대동강 바라보니

상하에 어듸었다.

 

 

관련기사 http://www.jnilbo.com/read.php3?aid=1526558400549367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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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우옹 위세직(1655~1721)

 

남해 도서지방의 아룸다움을 자유롭게 노래한 금당별곡

선생의 본관은 장흥이며 자는 우경, 호는 수우옹이다. 관산읍 방촌에서 태어났다.

향촌의 선비로서 숙종 때 장흥에서 적거생활을 했던 노봉 민정중과는 특별한 교분을 가졌으며<동국여지승람>수정시 큰 역할을 하였다 전한다.

선생이 지은<금당별곡>은 회진 앞의 금당도와 만화도를 유람하면서 느끼고 생각한 감정을 서경적으로 읊은 기행가사로 남해안 도서지방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점이 특이하다.

또한 선생의 자유로운 시상을 마음껏 펼쳐 보인 점과 표현과 구성이 뛰어나 학계에 관심을 모으는 작품이다.

 

[책소개]

<금당별곡>

조선 후기에 위세직(魏世稷)이 지은 기행가사. 필사본. 가칭 삼족당가첩 三足堂歌帖에 전한다. 처음에는 위세보(魏世寶)의 작품으로 소개된 바 있으나, 후에 위세보의 석병집 石屛集삼종형작금당별곡(三從兄作金塘別曲)’이라는 기록에 의해 위세직으로 밝혀졌다.

이 작품은 배를 타고 금당도(金塘島 : 지금의 전라남도 완도군 금당면) 및 만화도(萬花島)를 거쳐 돌아오기까지의 자연경물을 서경적으로 읊은 일종의 해양기행가사이다.

형식은 2음보 1구로 계산하여 총 200구가 되며, 말미에 3·8·4·3조의 낙구(落句)를 취하고 있다. 3·4조가 주조를 이루며 간혹 4·3, 3·3조도 보인다. 4음절로 된 한자숙어에 우리말 조사를 취하여 2·3조나 2·4조도 비교적 많다.

내용은 아홉 문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1단은 아직 금당도로 떠나기 전에 평소에 지녔던 작자의 심경을 토로한 서사(序詞)로서, 벼슬에 뜻이 없어 풍월주인으로 반세를 늙어간 자신을 돌이켜보는 회고의 서술이다.

2단은 봄비로 아름다워진 강산에 흥이 일어 배를 띄워 금당도에 이르기까지의 광경을 노래한 것이다. 3단에서는 금당도에 닻을 내리고 기암절벽이 늘어선 자연 속에서 선경을 연상하고, 4단에서는 산봉우리에 올라 아름다운 산색과 바다의 경치를 굽어보며 천지간의 조화를 감탄하고 있다.

5단은 잠시 선잠을 자는 동안 꿈에 선인을 만나 선경에 노닐다가 문득 잠을 깨어 달빛에 비치는 해변과 끝없는 수로의 장관을 굽어보는 광경을 읊었다.

6단은 여장(旅裝)을 꾸려 만화도로 가는 동안의 야경(夜景)을 노래한 것이다. 7단은 만화도로 노를 저어 가는 동안 날이 새어 물가에 배를 매어놓고 새벽 이슬에 옷을 적셔가며 다시 산길로 접어드는데, 골짜기 경치에 옛 선경을 상기하고, 퉁소를 부는 장면이다.

8단에서는 술잔을 기울이며 삼화루(三花樓)에 앉아 물밑을 굽어보면서 자연의 형색이 다함 없이 기이함을 감탄하였다.

9단은 이렇듯 아름다운 자연을 오래 즐기지 못하고 돌아와야 하는 안타까운 심정의 결사(結詞)로서, 뒷날을 기약하고 돌아와서는 명상에 잠기는 애틋한 심회의 표출로써 끝을 맺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가사작품은 수백 편이나 그 중 해양과 도서생활을 소재로 한 작품은 10여 편에 불과하다. 그 중 남해를 배경으로 한 것은 이 작품과 이진유(李眞儒)속사미인곡 續思美人曲, 안조환(安肇煥)만언사 ()言詞등이 있다.

 

그러나 속사미인곡만언사는 타의에 의한 유배가사들인 데 비해 자의에 의한 해양기행은 금당별곡뿐이다. 다만, 도서생활의 현실적인 소재나 격동하는 바다의 사실적인 표현에 있어서는 다소 미흡한 점이 있다.

유람의 심경이라 전원가사에서 보이는 정적(靜的)인 정취를 맛보며 해도의 자연을 관조하는 자세이기 때문이다. 서술 체재나 그 시상(詩想) 및 조사법(措辭法) 등에 있어서 정철(鄭澈)관동별곡과 상당한 유사성을 보이고 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금당별곡 [金塘別曲]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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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 노명선(1707~1775)

가을 천관산의 아름다움과 청빈한 선비정신이 깃든 천풍가

 

 

▲삼족당가첩

선생의 본관은 광산이며 자는 부초이고 호는 청사이다. 부산면 관한에서 태어났다.

부귀공명과는 거리가 먼 청빈한 선비로 살면서 자연을 벗삼아 많은 시문을 남겼으나 전해지지 않고, 천관산의 절경을 서경적으로 읊은 기행가사<천풍가>만 전한다.<천풍가>는 선생이 겨울에 천관산의 여러 골짜기와 봉우리, 절과 암자 등을 돌아보고 오는 기행가사로서 표현기법이 뛰어나고, 청빈한 선비의 정신이 깃들어 있는 작품이다

 '천풍가'는 청사 노명선(1707-1775)의 작으로 장흥의 명산인 천풍산(천관산)의 자연 풍경을 서경적으로 읊은 가사 작품이다.


이종출 교수가 발굴한 가칭 '삼족당 가첩(三足堂 歌帖)'에 수록되어 있는 작품인데, 거기에는 한글로 "천풍가라, 노청사라"고만 기록되어 있어서 작자의 본명조차 알 수 없었다. 그러'장흥지속록에(長興誌續錄', 卷之三 學行條 夫山面項"盧明善, 光山人 光原君毅后 號淸沙 從遊閔老峰 鼎重文學名世 作天風歌 行于世"라는 기록이 있어 천풍가를 지은 노청사의 본명을 확인할 수 있었고, '광산노씨족보(光山盧氏族譜)'를 통해 그의 생몰 연대를 알 수 있었다.

이 작품도 일종의 기행가사로서 작자가 겨울에 천풍산의 여러 골짜기와 봉우리, 절과 암자 등을 구경하고 돌아오는 내용이다. 표현의 기법도 관동별곡과 흡사한 점이 발견된다. 이 작품의 내용으로 보아 지은이는 부귀공명과는 거리가 먼 청빈한 선비이며, 창작 시기는 "빈발이 호백하고, 기력이 쇠잔하니"의 구절로 보아 노년으로 추정된다.

 

출처 http://www.nocutnews.co.kr/news/4597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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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 위백규(1727~1798)

학문을 현실에 적용한 실학의 선구자

 

 

▲존재 위백규의 동상  ⓒ마동욱작가

 

▲존재 위백규의 가옥

 

 

 선생의 본관은 장흥이고 자는 자화, 호는 존재 또는 계항이다. 관산읍 방촌리에서 태어나 병계 윤봉구 문하에서 수학했다.

1765(영조41)생원복시에 합격했으나 그 후 과장에 나가지 않았다. 1796(정조20)위유사 서영보의 추천으로 선생의 문집이 조정에 들어가게 되었고, 정조 임금의 부름을 받고 나아가 자신의 경세사상을 만언봉사로 올리자 임금께서 감탄하고 옥과현감의 목민관에 제수하였다.1년 후에 장원서 별제에 승차되었으나 노환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7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선생은 경서는 물론 천문, 율력,산수등 폭 넓은 학문을 쌓았고, 실학사상에 심취하여 이를 실천함으로써 호남실학의 기초를 닦았을 뿐 아니라 많은 저술을 하였.

[존재집]이 전한다.

▲ 존재집

 

그 중 가사문학 작품으로는 효 사상과 학문의 열정이 잘 나타난<자회가><농가><권학가>와 옥과현감시 옥과의 합강에서 여러 수령들이 뱃놀이하는 내용을 음유한 <합강정선유가>가 있다.

 

관련기사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281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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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자 미상의 가사문학 작품

 

작자미상의 현실비판 가사로 임자계축년(영조8~9,1732~1733)에 연이어 흉년이 들다가 근이 발생한 참상 및 관의 부패와 무능을 서술한 내용이다.

작자는 누구인지 알 수 없으나 향촌의 유교지식인일 터인데 작중의 진술로 미루어 호남의 장흥부 관산에 거주한 선비로 추정하고 있다.

그 연유인 즉 (한문 모르겠음) 라고 하여 작자가 고을의 관산에서 생활하고 있음을 짐작케 한 것 이다.

작중에서 지역적 배경을 '五十三州 湖南長興海邑이라/ 土出도 됴커니와 山海珍味 시고/ 冠山 삼긴 후의 樂土有名 터니' 라고 하여 작자가 장흥 고을의 관산에서 생활하고 있음을 짐작케 한 것이다.

임계탄은 1732년과 1733, 임자(壬子)와 계축(癸丑)년의 장흥 관산과 대흥(대덕) 등 해안지방주민들의 참상을 가사로 쓴 기록이다. 이 가사를 처음 발굴한 이는 성균대 임형택(林熒澤)교수이다. 그는 이 가사가 당시 장흥 선비가 쓴 것은 확실하나 저자를 알 수 없다면서 존재공의 아버지 영이재공(詠而齋公)가 아닌가 보고 있다. 그러나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이 가사는 간암공의 작품임이 거의 확실하다고 보기 때문에 간암공의 상소문과 함께 여기서 소개한 것이다.(編輯者 註)

 

 

(1) 임자 계축(壬子癸丑): 17321733, 영조89

(2) 이로이다: 이르리다(이르다: )의 뜻으로 보임

(3) 구법(句法)시불견(時不見): 문맥으로 미루어 문장 구성은 따지지 않고 시대상의 눈으로 차마 보지 못한 정경을 기록한다는 뜻으로 풀이됨.

壬子癸丑 無前凶年 介介히 이로이라 임자계축(1) 무전흉년 개개히 이로이라(2)

듯고보는 이景色三尺童도 알건마는 듣고 보는 이 경색을 삼척동도 알건마는

刻骨한 이시졀을 銘心하야 닛지말자 각골한 이 시절을 명심하여 잊지 말게

無識眞諺文才助업시 매와내니 무식한 진언문을 재조없이 매와내니

句法은 보쟌하고 時不見만 어다가 구법은 보잔하고 시불견(3)만 적어다가

슬프다 百姓드라 이내말 드러스라 長安 大道市예 붙이로다 백성(百姓)들아

가업는 이時節無興하나 보아스라 가 없는 이 시절을 무흥하나 보아스라

슬프다 古老人아 일언時節 보안느냐 슬프다 고노인아 이런 시절 보았느냐

時節 만난百姓 네오내오 다를손냐 이 시절 만난 백성 네오 내오 다를 소냐

無罪한 이百姓無遺히 다죽거나 무죄한 이 백성이 무유9無遺0히 다 죽거나

世上 나온듯은 三代興 만나거나 이 세상 나온 뜻은 삼대흥(4) 만나거나

百歲를 살작시면 道不拾遺 보옵고저 백세를 살작시면 도불습유(5) 보옵고저

太平乾坤 無事時를 긔뉘아니 원할넌고 태평건곤 무사시를 그 뉘 아니 원할런고

天地 삼긴후의 古今歷代 생각하니 천지 삼긴 후의 고금역대 생각하니

治亂興亡 다바라고 豊凶歲만 니르잔들 치란흥망 다 바리고 풍흉세만 이르잔들

古跡의 누니업서 記述할말 업거니와 고적의 눈이 없어 기술할 말 없거니와

兩岐麥穗 못바시니 一莖九穗 언제일고 양기맥수(6) 못 봤으니 일경구수(7) 언제일고

九年水(8) 支離하나 凶荒歲 되랴하면 구년수 지리하나 흉황세 되랴하면

塗山의 뫼혼諸侯 玉帛을 자바시며 도산의 뫼혼 제후 옥백을 잡아시며(9)

七年旱 異甚하나 殺年니 되랴하면 칠년한(10) 이심하나 살년(11)이 되랴하면

桑林禱 六事責數千里 大雨할가 상림도 육사책(12)의 수천리 대우할가

녜날의 天災地變 史冊의 실녀시니 옛날의 천재지변 사책의 실렸으니

泛然히 지나보고 等閑히 혜엿더니 범연히 지나보고 등한히 혜였더니

(4) 삼대흥: 하은주 삼대의 일어남. 즉 태평시대를 만나고 싶었다는 뜻

(5) 도불습유(道不拾遺): 길에 떨어진 물건이 있어도 줍지 않는다. 위로 정치가 잘 행해져서 인심이 아주 순후하게 된 상태를 이르는 말.

(6) 양기맥수(兩岐麥穗): 보리에 이삭이 둘씩 생겨나는, 풍년을 지칭.

(7) 一莖九穗): 한 줄기에 아홉 개의 이삭이 달린 벼, 상서로운 징조를 나타냄.

(8) 구년수(九年水): 요임금 시대 9년 동안 홍수가 있었다는 전설이 있음. 이 때 우가 치수하였다고 한다.

(9) 도산(塗山)잡이시며: 고대 중국 우왕의 고사로 도산에 제후들이 모였는데 옥백같은 조공물을 가지고 온 나라가 만국에 이렀다고 함. 도산은 지금 안휘성 회원현 동난 회하동안에 있다.

(11) 칠년한(七年旱): 온나라 탕 임금시절 7년이나 가물어 임금이 상림에서 몸소 기도를 하자 큰 비가 내렸다 함.

(12) 살년(殺年): 흉년이 우심하다는 것을 가리키는 말.

(13) 상림도(桑林禱) 육사책(六事責): 온나라 탕 임금이 상림에서 비를 빌 적에 여섯 가지 일을 들어 스스로 책임을 물었다는 고사 즉 징세 노역 사치시기뇌물참소 등.

人相食 이말씀은 오늘날 解惑하나 인상식 이 말씀은 오늘날 해혹하나(13)

아모리 혜어바도 이時節 비할넌가 아무리 혜어봐도 이 시절의 비할넌가

아닌 病乙알코 杜門不出 안자시니 병 아닌 병을 앓고 두문불출 앉았으니

時序은 때올아나 春陽조차 길게한다 시서는 때를 알아 춘양조차 길게 한다

이리혜고 저리혜니 살라날길 전히업네 이리 혜고 저리 혜니 살아날 길 전혀 없네

실시한 이丈夫慷慨는 어디간고 실시한 이 장주여 강개는 어디 간고

塵埋三尺劍强忍하여 빼여잡고 진매한 삼척검을 강인하여 빼어 잡고(14)

泰山第一峯寸寸이 쉬여올라 태산 제일봉의 촌촌이 쉬어 올라

天下聘目하며 歎息하고 領略하니 천하를 빙목탄식하고 영략하니(15)

十二諸國 東一隅의 우리 朝鮮偏小하다 12제국(16) 동 일우의 우리 조선 편소하다

地利도 죠커니와 禮義之邦이로다 지리도 좋거니와 예의지방이로다

萬物이 자자커니 大國을 부러하랴 만물이 갖췄거니 대국을 부러하랴

우리나랏 八道中의 하삼남 더욱죠타 우리나라 팔도중의 하삼남(17) 더욱 좋다

□□□ 죠커니와 □□□사치한다 □□□ 좋거니와 □□□절 사치한다

五十三州 湖南道長興海邑이라 오십삼주 호남도의 장흥은 해읍이라

地出도 크거니와 山海珍味 갖졸시고 지출도 크거니와 산해진미 갖출시고

冠山 삼긴후의 樂土有名터니 관산(18) 삼긴 후의 낙토라 유명터니

□□否塞하고 時運罔極하야 □□이 비색하고 시운이 망극하야

連値 大殺年의 가지록 慘酷하다 연치 대살년의 갈수록 참혹하다

萬古에 이런詩節 듯기도 처암이요 만고에 이런 시절 듣기도 처음이요

生來에 이런詩節 보기도 처음이라 생래에 이런 시절 보기도 처음이라

슬프다 四海蒼生 自家罪惡인가 슬프다 사해창생 자가의 죄악인가

우흐로 父母同生 아래로 妻子息이 위로 부모동생 아래로 처자식이

一時의 둑게되니 이아니 罔極한가 일시에 죽게 되니 이 아니 망극한가

曾前의 지낸凶年 歷歷히 헤어보니 증전(19)의 지낸 흉년 역력히 헤어보니

(13) 인상식(人相食해혹(解惑):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었다는 글을 보고 그럴 수 있을까 의심했는데 그 의문이 이제 풀렸다는 뜻.

(14) 진매한 빼어 잡고: 먼지 앉은 삼척의 칼을 잡고 기어이 뽑아들고.

(15) 빙목(聘目), 영략(領略): 빙목은 눈을 돌려 봄, 영략은 대강을 헤아림.

(16) 십이제국: 동방에 있는 12개 나라. 중국 전국시대의 상황에서 유래함.

(17) 하삼남: 한반도에 있는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를 통칭한 말.

(18) 관산: 전남 장흥군 관산읍을 이름.

(19) 증전: 일찍이 지나간 적, 증왕(曾往)

乙亥 丙子 凶年 癸丑 甲午 凶年 을해(20) 병자(21) 흉년 계사(22) 갑오(23) 흉년

慘酷하다 하려니와 이대지 滋甚한가 참혹하다 하려니와 이다지 자심한가

그례도 머긴 따히 곳곳이 나마 잇고 그래도 머긴(24) 땅이 곳곳에 남아 있고

조련한 凶年陳谷도 있거니와 조련한(25)흉년은 진곡(陳穀)(26)도 있거니와

移粟이 넉넉하니 賑財들 업슬넌가 이속이 넉넉하니 진재(27)인들 없을런가

그 나문 許多 凶年 無數經歷하니 그 남은 허다 흉년 무수히 경력하니

千萬古 以來로 이時節 처엄이다 천만고 이래로 이 시절 처음이다.

乙亥水 丙辰旱은 새발의 피랏닷다 을해수 병진한(28)은 새발의 피랏닷다(29_

癸酉年 戊戌農形 免凶을 계유하니 계유년(30) 무술(31) 농형 면흉을 겨우 하니

그로사 豊年이라 別虛費 업슬넌가 그로사(32) 풍년이라 별허비 없을런가

(20) 을해(乙亥): 숙종 21(1695), 숙종실록41일 이 해에 큰 가뭄이 들었다. 거센 바람이 연이어 불고 서리가 여러 번 내려 보리와 밀이 여물지 않았으며, 파종시기를 놓쳐 큰 흉년이 들었다.169;고 기록도어 있음.

(21) 병자(丙子): 숙종 22(1696), 숙종실로 71일 이 해 가을에 곡식이 크게 흉년들었다. 무릇 곡식을 해칠 수 있는 재해(災害)는 한 가지도 빠진 것이 없었으며, 바다에 가까운 땅에는 또 해손(蟹損)의 재앙이 있어 작은 게가 전야(田野)에 편만(遍滿) 하여 어린 싹을 끊어버려 이 때문에 자라지도 못하였다. 고금에 아직 듣지 못한 재앙이라 한다는 기사가 보임.

(22) 계사(癸巳): 숙종 39(1713), 숙종실록104일 국가가 불행하여 팔도에 흉년이 들었는데 양호(兩湖)와 기전(畿甸)이 더욱 심해 아픔이 내 몸에 있는 것 같아 금의(錦衣)와 옥식(玉食)도 편안치 못하였다며 백성들은 이산하지 말 것이요, 수령들은 백성의 진휼에 각별히 힘쓸 것을 하교하고 있음.

(23) 갑오(甲午): 숙종 40(1714), 숙종실록 721일조에 전국 각지에 천재지변이 일어났으며 특히 제주에는 큰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모두 소와 말을 잡아먹었으며, 심한 가뭄으로 소와 말이 목이 타 죽었다는 기사가 보임.

(24) 머긴: 먹게 된, 즉 농사의 소출이 있었던 땅.

(25) 조련: 만만한 정도로 헐하거나 쉬운.

(26) 진곡(陳穀): 묵은 곡식.

(27) 이속(移粟)진재(賑財): 이속은 다른 지역의 양곡을 이관하는 것을, 진재는 구휼에 쓰기 위한 재물.

(28): 을해수(乙亥水)병진한(丙辰旱): 을해년의 홍수와 병진년의 가뭄. 을해는 숙종 21(1695), 병진은 숙종 2(1676).숙종실록 167623일조에 보면 왕은 넓은 하늘 밑은 왕의 땅이 아님이 없고, 신하가 아님이 없다. 팔도가 흉년이 든 것은 예전 에 없던 바인데, 그 가운데 관서(關西)해서(海西)기전(畿甸)은 더욱 심하다&며 백성의 구제책을 당부한 기록이 보임.

(29) 새발의 피랏닷다: 새발의 피라고 하더구나

(30) 정유(丁酉): 숙종 43(1717)

(31) 무술(戊戌): 숙종 44(1718)

(32) 그르사: 그제야

朝廷 大議하야 榻前定頉하고 조정 대의하야 탑전의 정탈(33)하고

各道行關하야 量田으로 作亂하니 각도의 행관하야 양전(34)으로 작난하니

己亥年 庚子年亂離로 지내여다 기해년(35) 경자년(36)을 난리로 지내여다

그밧긔 남은 凶年 乙丙丁 지낸후의 그 밖의 남은 흉년 을병정 지낸 후의

疊疊公私債는 뫼같이 싸혀닛고 첩첩한 공사채는 뫼같이 쌓여 있고

汨汨憂患疾病 물같이 깁퍼도다 골골한 우환질병 물 같이 깊었도다

十生九死 百姓이 그리져리 사라나서 십생구시 이 백성이 그리저리 살아나서

하느니 흉년이요 하니 逸民이라 탄하느니 흉년이오 원하느니 일민이라

大旱 陽春 못보와셔 辛亥還甲 만나도다 대한양춘 못 보아서 신해환갑 만났도다

砂哨險時節 辛亥 便할소냐 옛 신해 험한 시절 이 신해에 편할소냐

人言이 이러하니 疑慮들 업슬넌가 인언이 이러하니 의려인들 없을넌가

祝融南來하야 火龍을 채질하니 축룡이 남래하야 화룡(37)을 채질 하니

旱魃肆惡하니 乾坤紅爐로다 한발이 사악하니 건곤이 홍로로다

山原이 불리나니 田野 다타거다 산원의 불이 나니 전야 다 타거다

赤地 千里하니 惶怯이 절로난다 적지 천리하니 황겁이 절로 난다

時雨를 못어드니 移秧을 어이하리 시우를 못 얻으니 이양 어이 하리

不違農時 이말씀 人力으로 못하리라 불위농시(38) 이 말씀 인력으로 못하리라

六月望 오는비는 鳴呼晩兮 그러나마 유월망(39) 오는 비는 오호만의 그러나마

제판의 패게된모 옴겨두고 試驗하세 제판의 패개된 모(40) 옮겨 두고 시험하세

南村 北村 사람 時刻을 쟁선하다 남촌 북촌 사람 시각을 쟁선(爭先)한다

슬프다 農民드라 이畢役 못하야서 슬프다 농민들아 필역(41) 못 하야서

(33) 탑전의 정탈(定奪): 임금의 결재를 얻음.

(34) 행관(行關)양전(量田): 행관은 공문을 하달하는 것, 양전은 조정이 경작살황을 파악하기 위하여 토지를 측량하는 일. 양전의 과정에서 허다한 폐해가 발생했기 때문에 여기서 양전으로 전락하니라고 표현 한 것임.

(35) 기해(己亥) 숙종 45(1719)

(36) 경자(庚子): 숙종 46(1720)

(37) 축융(祝融)화룡(火龍): 축융은 불을 맡은 신, 화룡은 불을 등에 전용을 가림킴.

(38) 불위농시: 농사의 적기를 어기지 말도록 해야 한다는 뜻. 맹자가 통치자에게 당부한 말이다.(孟子梁惠王)

(39) 유월망: 음력 유월 보름.

(40) 제판의 패게 된 모: 모판에서 미쳐 이앙을 하지 못해 너무 자라 벼이삭이 나올 지경이 된 모. 이렇게 된 모는 좋지 않지만 그래도 이앙을 해보라고 한 것임.

(41) 필역(畢役): 어떤 일을 마치는 것.

獰惡風波 被害慘酷하다 영악코 흉한 풍파 피해도 참혹하다

곳곳지 남은田地 낫낫치 섯는禾穀 곳곳이 남은 전지 낱낱이 섯는 화곡(42)

나 무하면 生道를 보라더니 이 후나 무병하면 생도를 보라더니

놀납다 滅吳四野의 니단말가 놀랍다 멸오충(43)이 사야이단 말가

엊그제 푸른들이 白地純色 되거고나 엊그제 푸른 들이 백지순색 되겠구나

江東安石을 다시조차 나라온가 강동의 안석패(44)을 다시 좇아 날아 온가

千載人無魯恭하니 뉘라서 할고 천재인무노공(45) 하니 뉘라서 소재할꼬

朝夕 難繼하니 後生涯 보랄소냐 이 조석 난계하니 후생애에 보랄소냐

秋乙 펴여시들 져當糖 추적을 펴여신들 저 요역(46) 뉘 당하리

□□極嚴하니 □□어렵도다 □□이 극엄하니 □□어렵도다

自然離散하니 村落이 가이업다 자연이 이산하니 촌락이 가이 없다

辛亥冬 남은百姓 壬子春 만나고야 신해동 남은 배성 임자 춘 만났구나

□□饑民드라 賑恤 奇別 들어슨다 □□다 기민들아 진휼기별 들었는가

當初에 흔谷石 精備하야 바다더니 당초에 뫼흔 곡석 정비하야 받았더니

賑恤廳 모든쥐가 各倉의 궁글뚫고 진휼청(47) 모든 쥐가 각 창의 구멍 뚫고

晝夜로 나들면서 섬섬이 까먹언네 주야로 나들면서 섬섬이 까먹었네

이번의 타낸乞粮 空穀으로 의포하예 이번의 타낸 걸량 공곡으로 의포하네

맛튼 져斗升아 너조차 무슴일로 적조(48) 맡은 저 두승아 너조차 무슨 일로

孔輸子 밍근鐵木으로 삼겻거늘 공수자 만든 신(49) 철목으로 삼겼거늘

(42) 화곡(禾穀): 벼 종류를 통틀어 일컫는 말.

(43): 멸오충(滅吳): 별멸구, 매미목 등 멸구과에 속하는 곤충의 총칭.

(44) 안석패(安石牌):

(45) 천재인무노공: 천년에 노공 같은 사람이 없다. 노공은 후한시대 지방관으로 선정을 베푼 사실이 유명하다. 그가 중모(中牟) 지방의 수령으로 있으면서 덕화로 다스렸던 바 다른 고을에는 황충으로 큰 피해를 입었으나 중모는 황충이 들어오지 않았다

(46) 요역: 정남(丁男)에게 부과된 역의 하나로 1년 중 일정기간 각종 공사 동원됨.

(47) 진휼청: gvd년에 백성들을 구제하는 일을 맡은 관아. 현종 2(1657) 비변사의 소관이다 숙존 12(1686) 선혜청으로 이관됨.

(48) 적조: 곡식의 매매와 출납을 가리키는 말. 여기서는 환곡을 뜻함.

(49) 공수자의 신: 춘추전국시대 노나라의 인물로 수교가 빼어나서 기계제작으로 유명하다. 공수(公輸)는 성이고 이름은 반() 혹은 반()이며 신()은 부신(符信)을 가리킴.

無端換面하고 憑公營私 하나슨다 무단이 환면하고 빙공영사(50) 하나슨다

엊그제 寬洪量奸貪狹隘하다 엊그제 관홍량(51)이 간탐코 협애하다

變世變世로다 사름이 거북되여 변세는 변세로다 사람이 거북 되어

賑倉의 들어안자 모든쥐을 사피더니 진창의 들어앉아 모든 쥐를 살피더니

本性鼠狀이라 못참내 어이되어 본성이 서상이라 마침내 어이 되어

倉中 賑穀米을 다주어 무러가라 창중 진곡미를 다 주어 물러가다

녁코닢풀 굴을삼고 暮夜藏置하니 녁코(52) 잎을 굴을 삼고 모야의 장치하니

碩鼠歌 일러난들 狡穴餘腐 뉘이시리 석서가(53) 일어난들 교혈여부 뉘 있으리

실갓쓴 小令監秦王을어더 실 갓 쓴 소영감은 진왕의 성을 얻어(54)

但坐嘯 다방부리 指揮中의 녀허 두고 단좌소 다방부리 지휘중의 넣어 두고(55)

朱墨擅弄하며 殘民椎剝하니 주묵을 천농하며 잔밈을 추박하니(56)

餓越視하고 私貨財 圖謀하다 저 아표 월시(57) 하고 사화재 도모한다

賑政事 말게하소 無實存名 가이업다 진정사 맑게 하소 무실존명(58) 가이 없다

賑監色의 진진챵을 고뷔고뷔 다치오니 진감색의 진진 창(59)을 고비고비 다 채우니

饑民아 네죽거라 事事殺歲로다 기민아 네 죽거라 사사로 살세로다

時節 이러하니 보랠 것 업서도야 기민아 네 죽거라 사사로 살세로다

四月 南風大麥黃 미덧더니 사월 남풍의 대맥황(60)을 믿었더니

黃耗 이라 一時遍熾하니 황모(61)는 제 병이라 일시에 편치하니

無狀하다 時節이여 麥凶을 또만나니 무상하다 시절이여 맥흉을 또 만나니

水益深 火益熱果然이다 聖訓이여 수익심 화익영(62)을 과연이다 성훈이여

(50) 빙공영사(憑公營私): 공적인 일임을 빙자해서 사리를 도모하는 것.

(51) 관홍량: 넓은 도량

(52) 녁코: 여뀌. 물가에 자라는 풀의 일종.

(53) 석서가(石鼠歌): 시경 魏風에 있는 석서를 가리킴. 이는 큰 쥐가 창고의 곡식을 먹어치우는 정경을 그린 노래. 부세가 무거움을 풍자한 내요이라 함. 교혈여부는 간교한 짐승의 굴속에 남은 곡식을 뜻하는 말.

(54) 실 갓 쓴 영감:

(55) 단좌소 다방부리:

(56) 주목을 추박하니: 문서를 멋대로 조작, 농간해서 쇠잔한 백성을 수탈하니

(57) 아표월시: 굶어 죽은 시체들을 아랑곳하지 않음. 월시는 먼 나라 일처럼 바라봄.

(58) 무실존명: 실제 없는 이름을 장부상에 올리는 것. 진휼의 업무를 담당한 자들이 허수를 넣어 착복하는 방식임.

(59) 진감색의 지진 창: 진감 색리(色吏)의 길고도 긴 창자. 색은 이두어로 빗인데 관청에서 어떤 일의 담당자를 가리킴.

(60) 대맥황: 보리가 누렇게 익음.

(61) 황모: 보리나 밀이 시들어 못쓰게 되는 병.

(62) 수익심화익영: 물이 더욱 깊은 것 같고, 불이 더욱 뜨거운 것 같다. 백성들이 위기를 심각하게 느끼는 정경을 표현하는 말.梁惠王篇()

人命鐵石니들 이러코 保全하라 인명이 철석인들 이러고 보전하랴

문노라 官人드라 이때가 어느때뇨 묻노라 관인들아 이 때가 어느 때냐

稅米還上 各項밧자 舊未收은 무삼일고 세미 환상 각항 받자 구미수(63)는 무슨 일고

아무리 式年인들 新戶籍 무삼일고 아무리 식년(64)인들 신호적 무슨 일고

可笑로다 卽今脩單 合沒絶戶 方時로다 가소로다 즉금 수단 합몰 절호 방시로다(65)

塗炭의 빠진百姓 奚暇의 눌을뜨고 도탄의 빠진 백성 해가의 눈을 뜰꼬

실고튼 이목숨이 질금도 질글시고 실같은 이 목숨이 질김도 질길시고

굼고먹고 그리져리 天幸으로 살아난들 굶고 먹고 그리저리 천행으로 살아난들

父母同生 어디가고 夭逝子息 더욱 섧다 부모동생 어디가고 요서자식 더욱 섧다

눈의는 피가나고 가슴은 불이난다 눈에는 피가 나고 가슴은 불이 난다

罔極痛哭이여 到處慘酷하다 망극다 통곡이여 도처의 참혹하다

이몸이 遑遑하야 心不能定情하니 이 몸이 황황하야 심불능정정(66)하니

殺歲 사라나셔 이樂歲 볼동말동 이 살세 살아나셔 이 낙세 볼똥말똥

이리하야 못라 도로혀 풀쳐혜자 이리하야 못 하리라 도로혀 풀쳐 혜자

人無遠慮하면 必有近憂라니 인무원려하면 필유근우(必有近憂) 라니

旣免殯死하고 又當農節하니 기면 빈사(旣免殯死)하고 우당 농절하니

立我 百姓드라 作農을 고쳐하자 아바(67) 백성들아 작농을 고쳐 하자

五倍債 어든거슨 아직 資生이요오 오배채(68) 얻은 것은 아직 자생이요

十倍利 내여다가 農糧種子 장만하고 십배리 내어다가 농량종자 장만하고

勸農하니 百種이 거의로다 진시에 권농하니 백종이 거의로다

耕種을 마챠느냐 農形을 사펴보니 경종을 마쳤느냐 농형을 살펴보니

移秧 얼마러니 □□可慮로다 이앙 얼마러니 □□이 가려로다

豊兆가 되라하면 根本이 이러할가 풍조가 되랴하면 근본이 이러할까

(63) 구미수: 예전에 받아들이지 못해 누적 체납된 각종 부세를 일컫는 말.

(64) 식년: ()()()()의 간지(干支)가 드는 해로써 3년마다 한 번씩 돌아 옴. 이 해는 과거와 호적을 정리 함.

(65) 즉금 수단방시로다: 지금 받고 있는 호적 단자는 온통 없어져서 절호의 상태라는 뜻. 수단(脩單)收單의 오기 인 듯.

(66) 심불능정정: 마음을 안정시키지 못함.

(67) 입아: 이바(여보시오)의 음차 표기.

(68) 오배채: 연리 다섯 곱의 빚. 당시 흉년에 으레 이율이 높았다.

凶年의 놀낸百姓 惶怯을 슬어낸다 흉년의 놀랜 백성 황겁을 쓸어낸다

역들 올벼논에 上年滅吳 또일거다 동녘 들 올벼 논에 상년 멸오 또 일거다

□□벼논애 滅吳 삭기쳔 □□들 중 벼논에 멸오 새끼 쳤다

어와 이滅吳여 원슈엇 며외노다 어와 이 멸오여 원수엣 멸오로다

이해예 다시날제 尋常이 삼겨시라 이 해에 다시 날 제 심상이 생겨시라

볘가 업서거니 볘가 나물넌가 조벼(69)가 없었거니 중(70)벼가 남을런가

早中稻 다바리니 이時節 可知로다 조중도 다 바리니 이 시절 가지로다

殺年이 되랴할졔 風波들 업슬런가 살년이 되려 할 제 풍파인들 없을런가

七月 七夕風波 不意大作하여 칠월 칠석풍파 불의에 대작하니

上年 流豆風波 오늘날 을하여 상년 유두풍파 오늘날 대를 하여

海澤을 들너보니 海溢浦落 가이업다 해택을 들러보니 해일포락 가이 없다

大災을 가초올서 惡水들 업슨넌가 대재를 갖추올서 악수들 없을런가

田形이 업서거니 成川이 거의로다 전형이 없었거나 성천이 거의로다

禾谷이 업서거니 伏沙가 거의로다 화곡(禾穀)이 없었거니 복사가 거의로다(71)

被災 免農形 긔얼마나 남어는고 이 피재 면한 농형 긔 얼마나 남었는고

四方周覽하니 焦原余草로다 사방을 주람하니 초원의 여초(72)로다

져나락 사긴滅吳 이나락의 들거고냐 저 나락 사긴 멸오 이 나락의 들었구나

이고지 뷔온滅吳 져고지로 건내넌네 이 고지 비운 멸오 저 고지로 건내넌네

一時枯損하니 到處同然하다 일시에 고손하니 도처의 동연하다

霜降인가 積雪인가 一樣은로 희여게다 상강인가 적설인가 일양으로 희여게다

滋甚하다 대벌기는 空莖조차 다새겻네 자심하다 대벌기(73)는 공경조차 다 새겼네

져압너룬들은 碧海가 말난는가 저 앞에 너른 들은 벽해가 말랐는가

이뒤예 노푼들은 秋山이 뷔엿는가 이 뒤에 높은 들은 추산이 비었는가

百谷을 혜여보니 萬無一實이로다 백곡(百穀)을 헤어보니 만무일실 이로다

고지마다 嗟歎이오 들마다 곡셩이다 고지마다 차탄이오 들마다 곡성이다

슬프다 져곡셩아 이제는 하릴업다 슬프다 져 곡성아 이제는 하릴없다

秋風이 건듯부러 梧桐葉落하니 추풍이 건 듯 불어 오동의 엽락하니

東務을 다시할가 西成望斷하니 동무를 다시 할까 서성(74)을 망단하니

(69) 조벼: 보통 뵤보다 일찍 익는 올벼. 조도(早稻)조양(早穰)조종이라고도 함.

(70) 중벼: 올벼도 늦벼도 아닌 중올벼로 중도(中稻)라고도 함.

(71) 성천복사: 홍수로 인해 논밭이 냇물처럼 바뀐 것을 성천, 모래가 덮인 것을 봇사라 함.

(72) 여초: 남은 풀, 즉 심한 가뭄으로 불 탄 듯한 땅에 겨우 살아남은 풀 같다는 뜻.

(73) 대벌기:

(74) 동무서성: 동무는 농사를 시작하는 것, 서성은 추수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

이거시 뉘타시라 誰怨 誰咎 할고 이것이 뉘 탓이라 수원 수구 할 꼬

一網 乾坤의 갈데도 업서지게 일망 건곤의 갈 데도 없어지게

時節 살펴보니 倍倍殺年 다시만나 이 시절 살펴보니 배배살년 다시 만나

官庫蕩盡하니 賑政인들 미들넌가 관고도 탕진하니 진정인들 믿을런가

아마도 못살인생 永訣會나 하여보세 아마도 못살 인생 영결회나 하여보세

마고떨어 수을 사고 머리버혀 안쥬사고 마구 떨어 술을 사고 머리 베어 안주 사고

고지고지 聚會하니 永訣會樂事런가 고지 고지 취회하니 영결회가 낙사인가

아마도 죽글인생 令監進退마라 아마도 죽을 인생 영감(75)께 진퇴마라

애답다 우리令監 巡使道面分업서 애닮다 우리 영감 순사또의 면분없어

監營을 가시잔들 騎馬가 이실넌가 감영을 가시잔들 기마가 있을런가

보션이 업섯거니 冬衣難得하다 보선이 없었거니 동의도 난득이다

行裝不齊하니 邑民完行 勸치마라 행장이 부제하니 읍민완행(76) 권치 마라

馳報을 자주하샤 公道만 미덧더니 치보(77)를 자주하샤 공도만 믿었더니

公道 公道안야 人情公道로다 공도 공도 아녀 인정이 공도로다

使道題音 公明하샤 우리고을 낫다하고 사또 제음(78) 공명하사 우리 고을 낫다하고

負琵琶者 起舞하니 荷枷者亦動이라 부비파자 기무하니 하가자도 역동(79)이라

題音 이러하니 이아니 一可笑가 이 제음 이러하니 이 아니 일가소가

金陵山陽 두사이요 瀛州는 압피로다 금릉 산양(80) 두 사이요 영주(81)는 앞이로다

세고을 鼎足間의 우리고을 삼겨거늘 세 고을 정족간에 우리 고을 생겼거늘

무어시 낫다하고 之次邑分等한고 무엇이 낫다 하고 지차읍(82)의 분등하고

(75) 영감: 원래 정3품에서 정2품의 벼슬아치를 일컫는 말이다. 대감의 다음 호칭. 여기서 영감은 장흥부사를 지칭한 하다.

(76) 읍민완행: 고을 백성이 감영 소재지인 전주로 가는 것.

(77) 치보: 급히 보고하는 것.

(78) 제음: 이두어로 뎨김관청에서 백성의 소장이나 청원서에 쓰는 판결문. 제사(題辭)라고도 하는데 소지의 좌측하단 여백에 소지를 올린 사람에게 돌려주어 증빙자료로 삼게 한다.

(79) 부비파자도 역동이라: 이 구절은 고을 사또가 백성들이 올린 소장이나 원정에 대해 쓴 제음으로 판결문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비파를 짊어진 자가 일어나 춤을 추니 칼을 쓴 자도 움직인다로 풀이되나 정확한 의미는 알 수 없다.

(80) 금능산양: 금능은 강진의 옛 이름, 산양은 보성의 옛 이름.

(81) 영주: 제주도의 별칭, 당시 제주도는 전라도에 속했다.

(82) 지차읍: 지차는 다음가는 순서. 여기서는 흉년의 재해정도의 등급을 나눔에 우심하지 않은 고을로 결정되었다는 뜻.

아모리 連凶인들 上納을 근치손야 아무리 연흥인들 상납을 끊칠소냐

行關連續하야 各項밧자 停止할나 행관(83)이 연속하야 각항받자 정지할라

大同 結役米還上 乞粮本錢 대동 걸역미와 환상 걸량본전

各色保米 運役統戶役 香徒役 각색보미(84) 운역과 통호역 향도역(85)

區別區別 別音하랴 一時督捧하니 구별구별 별음(86)하라 일시의 독봉(87)하니

이리하야 못하리라 別差檢督 내여코야 이리하여 못 하리라 별차검독 내여코야

咆哮하는 號令소리 閭閻振動한다 호효하는 호령소리 여염이 진동한다

官令을 메셧거니 名分을 도라보랴 관령(88) 메셨거니 명분을 돌아보랴

內庭作亂하니 壬辰倭亂 이럿턴가 내정의 작난하니 임진왜란 이렇던가

戶首次知 面任次知 里正次知 一族次知 호수차지(89) 면임차지 이정차지 일족차지

다자바 囚禁하고 星火督納하니 다 잡아 수금하고 성화로 독납하니

永嘉時節인가 荷擔은 무슴일고 영가적 시절인가 하담(90)은 무슨 일고

어어 亂離로다 이亂離 하리 어와 난리로다 이 난리 뉘 당하리

千兵萬馬 슬듸업고 萬財千金 네알이라 천병만마 쓸데없고 만재천금 네알이라

五大예 바린 谷物 亂離할넌가 오대재에 바린 곡물(穀物) 이 난리를 면할런가

賣買업서 바린 田地 亂離할넌가 매매없어 버린 전지 저 난리를 당할런가

家藏器物 干거슬 그리져리 蕩盡하고 가장기물 약간 것을 그리저리 탕진하고

가는 流乞 오는流乞 져아니 避難인가 가는 유걸 오는 유걸 저 아니 피난인가

他道 各官 長程外의 니고지고 홀넛고야 타도 각관 장정외의 이고 지고 흘렀고야

東西南北 岐路間依地업슨 저流乞아 동서남북 의지 없는 저 유걸아

風雪조차 무름슈고 어듸로 하는가 풍설조차 무릅쓰고 어디로 향하는가

殘風向陽 어덕미츨 져집같치 반기는고 잔풍향양 언덕 밑을 제 집같이 반기는고

쉬는드시 안자다가 자오도시 죽어지니 쉬는 듯이 앉았다가 자오듯이 죽어지네

(83) 행관: 동등 혹은 그 이하의 관아에 보내는 공문.

(84) 각색보미: 각종 군보로부터 거두는 쌀. 이 때 군보(軍保)란 군역의 하나로 정궁(正軍)으로 나가는 대신 정군의 비용을 부담했던 보인(保人)을 말 함.

(85) 통호역 향도역:

(86) 별음: 이두어로 분정 조정에서 할당하는 것.

(87) 독봉: 세납을 독촉하여 거둬들이는 것. 독쇄라고도 함.

(88) 관령: 관청의 명령.

(89) 호수차지: 이두어로 무엇을 점유해 가지거나 무슨 일을 맡아보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 여기서는 호 단위에서 면임에 이르는 향촌의 여러 일을 보는 사람임.

(90) 영가하담: 영가는 정확한 뜻을 알 수 없으며, 하담은 어깨에 짐을 지는 것을 일컫는다.

물의밧진 져사람은 屈原忠節인가 물에 빠진 저 사람은 굴원의 충절인가

뫼혜죽은 져사람은 夷齊忠節인가 뫼에 죽은 저 사람은 이제(91)의 충절인가

路傍溝壑 사힌주검 無主孤魂 할일업다 노방구학 쌓인 구검 무주고혼 할 일없다(92)

一切肥膚群鴉所啄이요 일체 비부는 군아의 소탁이요

四肢骸骨諸犬相爭이다 사지 해골은 제견의 상쟁이다

所見慘測하다 져地境을 뉘할고 소견도 참측하다 저 지경을 뉘 면할꼬

頑命이 죽잔하고 천의만 바라더니 완명(93)이 죽잖으고 천의만 바라더니

前監司 李匡德監賑史로 온다하니 전감사 이광덕(94)이 감진사(95)로 온다하니

어와 百姓드라 이아니 石底佛가 어와 백성들아 이 아니 석저불가

前王不忘 百姓先聞欣幸이라 전왕불망(96) 이 백성이 선문이 흔행이라

湖南輕重 去來間勿剪甘棠 歌頌이라 호남경중 거래간의 물전감당(97) 가송이라

竹馬來迎 멋고지어 白康壯 蹈舞하니 죽마래영 몇 곳이어 백수강장(98) 도무하네

(91) 이제(夷齊): 은나라를 위해 충절을 지키다 마침내 굶어 죽었다는 백이(伯夷)와 숙제(叔齊).

(92) 노방구학무주고혼: 노방구학은 길옆의 구렁창으로 흉년을 만나 떠돌다 굶어 죽은 경우를 일컬음. 무주고혼은 주인 없는 혼 즉 제사 지내줄 사람도 없이 죽은 사람을 가리킨 말.

(93) 완명: 죽지 않고 모질게 살아 있는 목숨.

(94) 이광덕(李匡德): 영조 때의 문신. 본관 전주, 자 성뢰(聖賴), 호 관양(冠 陽), 1722(景宗 2) 정시문과(廷試文科)에 급제, 설서(設書)가 되어 왕세자(영조)의 심임을 받았다. 당쟁이 심할 때 중간파여서 노소론파의 미움을 샀다. 지평교리를 거쳐 1728(영조 4) 전라도관찰사 부임, 이듬해 대대로 경작을 금지해온 전주 건지산(乾止山)을 내수사(內需司)에서 경작하려는 것을 거부해 추고(推考)를 받았다. 더구나 이인좌 난의모의를 미리 알았을 것이라는 노론의 무고로 삭직됐다. 1739년 사은부사로 청나 라를 다녀온 후 대제학이 되고, 1741년 지평인 동생 광의(匡誼)가 천거(薦擧)의 폐를 논하다가 투옥되자 이에 연좌, 정주(定州)해남(海南) 등지로 유배됐다가 이듬해 풀려나 한성부좌윤에 제수됐지만 취임않고 과천에 은거했다. 관양집이 있다.

(95) 감진사: 흉년이 들 때 백성을 구제하는 일을 감독하기 위해 파견한 어사.

(96) 전왕불망: 지나간 일을 잊지 않음. 원문에는 전왕(前王)으로 되어 있는데 전왕(前往)의 오기로 보임.

(97) 물전감당(筌甘棠): 지방관의 은덕을 잊지 못해 불렀다는 노래(詩經 감당편에 나온 구절)로 이광덕의 은덕을 칭송하는 의미.

(98) 백수강장(强壯): 머리 흰 노인이나 건장한 젊은이.

德澤廣布하니 各邑均蒙이라 덕택을 광포하니 각읍이 균몽이라

우리고을 曖昧之次 不攻自破 업셔지게 우리 고을 애매지차(99) 북공자파 없어지게

百役停減하고 賑政만 심을쓰니 백역을 정감(100)하고 진정만 힘을 쓰니

監賑使施仁善政 이밧긔 또업거늘 감진사의 시인선정 이 밖에 또 없거늘

散在各處 列邑首令 須施行 몃몃치고 산재각처 열읍 수령 수체시행(101) 몇몇인고

우리고을 센개꼬리 아모린들 黃毛되랴 우리 고을 센 개꼬리 아무련들 황모되랴(102)

寃痛切迫할사 有百姓 무슨로 원통코 절박할사 유비백성(103) 무슨 죄로

죽기는 이百姓이요 기긔나니 阿大夫라 죽기는 이 백성이요 기긔나니 아대부(104)

애달프다 監賑使를 고을마다 보내던들 애달프다 감진사를 고을마다 보냈던들

可憐人命을 그대지 죽기넌가 가련한 저 인명을 그다지 죽이는가

事目塞責하야 設賑으로 作名할제 사목(105)을 색책하여 설진으로 작명할제

壬午年 해저을고 癸丑正月 다금온다 임오년 해 저물고 계축정월 다가온다

우리令監 神明하샤 饑民戶預知하야 우리 영감 신명하사 기민호를 예지하여

人口數磨鍊하야 三等分定하고 인구수를 마련하여 삼등의 분정하고

定式數成冊하라 嚴俊傳令하니 정식수로 성책(106)하라 엄준히 전령하니

요마한 尊位約正 違越官令 뉘 이시리 요마(107)한 존위약정(108) 위월관령 뉘 있으리

(99) 애매지차(曖昧之次): 흉황의 등급을 억울하게 지차읍으로 정한 일. 불공자파는 그 잘못된 결정이 힘쓰지 않고도 저절로 해결됐다는 뜻.

(100) 정감: 흉년에 조세나 부역 등을 재해의 정도에 따라 면해 주거나 줄여 주는 것.

(101) 수체시행: (감진사) 모름지기 본받아서 시행한다.

(102) 센 개꼬리 아무린들 황모되랴: 원형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는 뜻의 속담. 은 흰 것이고, 황모는 족제비의 꼬리 털, 세필(細筆)의 붓을 만드는 재료로 씀.

(103) 유비백성: 마비 상태에 이른 백성이란 뜻.

(104) 아대부: 는 지명으로 중국 산동성의 동아현(東阿縣). 대부는 벼슬아치의 칭호이므로 아대부란 아지방의 관인을 이르는 말이다. 전국시대에 제나라 위왕(威王)이 즉묵(卽墨)대부를 불러 그대가 즉묵을 맡아 있음에 비방하는 말이 날마다 들려서 살펴 보도록 했더니 농지는 넓어지고 백성이 풍족하고 관에 밀린 일이 없더라. 이는 그대가 나의 측근들에게 손을 쓰지 않은 때문이다하고 만가(萬家)를 봉해 주었다. 그리고 아대부를 불러 말하기를 그대가 아를 맡아 다스림에 칭찬이 날마다 들렸다.사람을 시켜 살펴보니 농지는 넓혀지지 않고 인민은 빈곤하였다. 이는 나의 측근들에게 뇌물을 바쳐 영예를 구한 덧이다하고 아대부 및 칭찬한 측근까지 처단했다 한다. 여기서 아대부는 장흥부사를 풍자한 표현인데 원문의 기긔나니는 거짓을 행하고 속인다는 뜻으로 생각됨.

(105) 사목: 어떤 일에 대해 정해 놓은 관의 규정.

(106) 성책: 문서를 책자로 만든 것.

(107) 요마: 작음, 어림, 쓸모 없음, 변변치 못함.

(108) 존위약정: 향촌의 유지들. 존위는 면이나 마을의 어른. 약정은 향약조직의 임원.

七八九 인는二三口抄出하고 칠팔구 있는 호를 이삼구로 초출하고

優劣업슨 져饑民定數外예 물리치니 우열없는 저 기민을 정수외에 물리치니(109)

成冊의 못든饑民 눈물지고 시셜한들 성책의 못 든 기민 눈물지고 사설한들

官令메신 져面任加減을 어이하리 관령 메신 저 면임이 가감을 어이 하리

長擇셔 타온 乞粮 終始히 일어하면 장택(110)서 타온 걸량 종시히 이러하면

드나마나 셜워마라 타나마나 彼此업다 드나마나 서러마라 타나마나 파차없다

슬프다 사름들아 하로도 못살이라 슬프다 사람들아 하루도 못 살리라

賑恤廳不恤하니 解懸廳倒懸이라 진휼청이 불휼하니 해현청이 도현이라(111)

大同廳謹避하야 書役廳을 살펴보니 대동청(112)을 근피하여 서역청을 살펴보니

고한 져환가 어디어디 어진고 한 저 환채(還債)가 어디어디 씌여진고

一城中 漏落하니 任掌者生涯로다 일성중 누락하니 임장자(113)의 생애로다

어와 沓沓하다 쇠경都監 눈을 뜨소 어와 답답하다 쇠경 도감 눈을 뜨소

腹中千斤 二十五都書員 네알리라 복중천근 이십오는 도서원(114) 네 알리라

雙南秋色 百余數各面書員 뉘모르리 쌍남추색(115) 백여수는 각면서원 뉘 모르리

墨客黑心 倂發하니 掩耳偸鈴 査로라 묵객흑심(116) 병발하니 엄이투령(117) 사재로라

(109) 우열없는 저 기민: 낫고 못하고 가릴 것도 없는 굶주린 백성. 기민으로 파악, 문서에 올려야 구휼의 대상자가 되는데 정수에서 제외시킨다는 뜻.

(110) 장택: 장흥지역 옛 지명. 백제 때 계천현(季川縣)이었는데 신라 때 계수현으로 고쳐 보성군의 영현에 편입됐다. 고려 때(태조 23940) 장택현으로 바뀌었고 현종 때 장흥도호부에 귀속됐다. 정자천이 흐르는 산간의 분지로 계천이나 계수장택 등 지명은 하천유역이란 의미를 가진다. 조선시대는 사창(社倉)이 있었고, 보성과 무안을 잇는 도로가 발달했다.

(111) 해현청이 도현이라: 문맥으로 보아 백성의 거꾸로 매달린 위기를 해결해 주어야할 관청이 도리어 거꾸로 매달고 있다는 야유적인 표현으로 생각된다.

(112) 대동청: 선혜청 산하의 지방관아. 각 도의 대동사무를 관장하기 위하여 경기강원영남호남호서해서 등에 있음.

(113) 임장: 호적을 개정할 때 임시로 차임하던 하급 직장으로 경중(京中)에는 별문서(別文書)병유사, 외방에는 면임이임감고가 있음.

(114) 도서원: 서원은 각 고을에서 조세의 징수업무를 맡은 인원. 아전의 구실이어서 서리라고도 부른다. 도서원은 그중의 우두머리

(115) 쌍남추색: 쌍남은 77석을 가리키는 말.

(116) 묵객흑심: 탐학하고 부정을 저지르는 자들의 검은 마음. 여기서는 묵객은 묵리와 같은 뜻임.

(117) 엄이투령: 남을 속이려 하지만 속이지 못하고 저를 속이는 꼴이 되는 것을 비유한 말. 엄이도종(掩耳盜鐘)= 종을 훔쳐 가는데 너무 무거워 등에 질 수 없자 깨뜨리다가 소리가 크게 나므로 남이 알까 두려워 얼른 제 귀를 가렸다고 한다.(여씨춘추) 여기서는 재해를 조사(사재)하는 것이 워낙 부정해 감출래야 감출 수 없이 드러난다는 의미.

爲民救蔽 大小事上司廉問 네알리라 위민구폐 대소사는 상사렴문 네 알리라

廉恥 都喪하니 이時節 하리업다 염치 도상하니 이 시절 하릴없다

貪泉漲溢하고 慾郞滔天하니 탐천이 창일하고 욕랑이 도천하니

淸白吏 원업거든 盜賊責忘하랴 청백리 원 없거든 도적을 책망하랴

襁褓中 赤子心飢寒을 알고올제 강보중 적자심도 기한을 알고 올 제

好生惡死人之常情이라 호생오사는 인지상정이라

飢寒切身할제 相聚爲盜 例事로다 기한이 절신할 제 상취위도 예사로다

無厭한 이慾心富貴貧賤 뉘업스리 무렴한 이 욕심이 부귀빈천 뉘 없으리

大荒年 보랴거든 各官臟物 살펴보소 참 대황년 보려거든 각관장물 살펴보소

이곳져곳 富民드라 이時節 만난의 이곳 저곳 부민들아 이 시절 만난 후의

親戚救濟 隣里救濟 바라보도 못할야도 친척구제 인리구제 바라보도 못하여도

朝露같탄 네人命養口體나 잘하여라 조로 같은 네 인명이 양구체나 잘 하여라

末世를 생각잔코 田民渴望하야 말세를 생각잖고 전민에 갈망하야

違法徵債 橫斂하니 後孫計 長遠하다 위법징채 횡렴하니 후손계 장원하다

世上乙 슬펴보니 是非도 부질업다 세상을 살펴보니 시비도 부질없다

聾惡盲 부울세라 然無知 願이로다 농오고맹 부울세라 엄연무지 원이로다(118)

時節險難하야 사람을 다죽일제 시절이 험난하야 사람을 다 죽일 제

慘酷染疫조차 天地의 그물도여 참혹한 염역조차 천지의 그물 되여

飢寒의 나문百姓 걸리나니 다죽는고 기한의 남은 백성 걸리는 이 다 죽는고

이리죽고 져리죽고 億兆群民 다죽거다 이리 죽고 저리 죽고 억조군민 다 죽거다

百姓이 업슨國家를 어이하리 백성이 없는 후의 국가를 어이 하리

나라히 나라안여 百姓이 나라히요 나라이 나라아녀 백성이 나라이요

百姓百姓안여 衣食百姓이다 백성이 백성아녀 의식이 백성이다

衣食百姓 다업스니 이時節 어이될고 의식백성 다 없으니 이 시절 어이 될꼬

有口無言하고 束手無策이라 유구무언하고 속수무책이라

勞心焦思하니 落膽喪氣 뿐에로다 노심초사하니 낙담상기 뿐이로다

不卞할제 相食康津뿐가 인곡을 불변할 제 상식이 강진 뿐가

骨肉相殘 한일 無數히 잇거만은 골육상잔 저 흉한 일 무수히 있건마는

如此如此 患失官長 隱諱令 장할시고 여차여차 환실관장 은휘령(119) 장할시고

擁城門深鎖하이 告變呼訴 뉘이시리 옹성문을 심쇄하니 고변호소 뉘 있으리

(118) 농오고맹원이로다: 귀먹어리, 소경이 부러울레라 홀연 무지의 사태로 되는 것이 소원이로다.

(119) 환실관장은휘령: 실책을 지탄받을까 걱정하는 관장이 숨기도록 지시했다는 뜻.

遑遑한 이時節의 한말 다하자면 황황한 이 시절 효효한 말 다 하자면

朽腹方痛이요 空腸慾斷이라 후복은 방통이요 공장은 욕단이라

恒産이 업서거니 恒心이 이실넌가 항산이 없었거니 항심이 있을런가

父母楚越이요 兄弟氷炭이다 부모는 초월이요 형제는 빙탄이다

夫婦恩情업고 奴主分義업다 부부는 은정 없고 노주는 분의 없다

家屬을 못살를제 親戚救濟하랴 가속을 못 살릴 제 친척을 구제하랴

四肢을 못쓰거든 赤子을 어불소냐 사지를 못 쓰거든 적자를 업을 소냐

사랑불회 숙불회을 鹽醬업시 爛烹하고 싸랑부리(120) 쑥 부리 염장없이 난팽이요

松葉粥 무릇과 모시뿌회 느릅떡을 송엽죽(121)무릇죽(122)과 모시뿌리 느릅떡을

가지가지 장만하여 別味사마 朝夕사니 가지가지 장만하여 별미삼아 조석사니

菜色滿面하고 腹中雷鳴한다 채색은 만면하고 복중의 뇌명한다

耳無聞 目不見三日不食뿐 안이요 이무문 목불견이 삼일불식 뿐 안이요

皮肉乾 骨立은 이十倍로다 피육건 수골입 이마의 십배로다

魚是 粥於是은 삼람은 편하닷쇠 전어시 죽어시(123)는 옛 사람은 편하닷쇠

糟糠을 못 얻거든 을 바랠소냐 조강을 못 얻거든 전죽을 바랄소냐

三旬 九遇食은 삼람은 닷쇠 삼순 구우식은 옛 사람은 헐 닷쇠

釜鼎의 듯글나니 무엇잇서 九食할가 부정의 듯글나니(124) 무엇 있어 구식할까

生死有命 어인말고 饑死이런가 생사유명 어인 말고 기사도 명이런가

士之常 어인말가 니려코 士之常가 사지상(125) 어인 말고 이러고 사지상가

어와 이 景像을 뉘게다 알월넌고 어와 이 경상을 뉘게다 아뢸런고

일런일 져런일을 어이하야 니져볼고 이런 일 저런 일을 어이하야 잊어볼꼬

簞瓢을 손에들고 避寓나 하쟈하니 단표를 손에 들고 피우나 하자 하니

(120) 싸랑부리: 씀바귀의 전라도 방언. 구황식품의 일종.

(121) 송엽죽: 생생한 솔잎을 찧어 짜거나 걸러 낸 즙에 식은 밥을 넣고 저어 두었다 먹는 죽.

(122) 무릇죽: 무릇을 재료로하여 쑨 죽. 무릇은 백합과의 여러 해살이 풀로써 파나 마늘과 비슷한데 어린잎과 줄기를 먹음.

(123) 피육건십배로다: 살이 여위고 뼈가 앙상이 드러나는 모습이 비쩍 마른 말보다 열배나 더하다.

(124) 전어시 죽어시: 전과 죽은 모두 죽의 종류인데 전은 걸쭉한 것, 죽은 멀건 것, 정명에 새겨진 말로 여기에 죽을 쑤어 살아간다는 뜻.(春秋좌전, 昭公 7)

(125) 듯글나니: 이끼가 끼다.

(126) 사지상: 옛말에 가난한 선비의 일상적인 것이란 말이 있다.

朱陣村漠漠하고 武陵桃園 杳杳하다 주진촌(127)은 막막하고 무능도원 묘묘하다

頭流山 萬壽洞의 이時節 니즈리라 두류산(128) 만수동의 이 시절 잊으리라

도로혀 생각하이 돗의 生道로다 도리어 생각하니 생돌의 생도로다

陳蔡歎 瓢屢空千載昭昭한가 진채탄 표루공(129)이 천재의 소소하고

韓將軍 計策업셔 漂母의게 寄食한가 한 장군(130) 계책없어 표모에게 기식한가

董卓의 불은배는 혼자豊年 만나던가 동탁의 불은 배는 혼자 풍년 만나던가

時乎 天作蘖하고 할소냐 시호 천작얼(131)을 피하고 탄할소냐

生死一度 人皆有라 내어이 留念하리 생사일도 인개유라 내 어이 유념하리

어와 남은 百姓 千辛萬苦 사라나셔 어와 남은 백성 천신만고 살아나서

天時泰運 다시 만나 解民하온 후의 천시태운 다시 만나 해민온 하온 후의

倫理綱常 발가지고 無限太平 될줄알면 윤리강상 밝아지고 무한태평 될 줄 알면

張子房 穀工夫 仙庵의가 法文일고 장자방 벽곡공부 선암의 가 법문 읽고

僥倖남은 져벗님아 올해만 做工하소 요행 남은 저 벗님아 올해만 주공(132)하소

陳希夷 千日眠來菜 尙存이다 진희이(133) 천일모는 면래채 상존이다

내역시 키여먹고 누엇노라 올날븟터 내 역시 캐어 먹고 누었노라 올날부터

슬프다 이런말씀 다하쟈면 가이업다 슬프다 이런 말씀 다 하자면 가이없다

周民黃金歌傷田歌 一篇詩을 주민의 황금가와 상전가(134) 일편시를

流民圖 한 가지로 이 긋에 긔려 내어 유민도(135) 한 가지로 이 끝에 그려내어

니르자면 목이메고 보쟈하면 눈물나다 이르자면 목이 메고 보자 하면 눈물 난다

十襲 同封하야 百拜稽首하야 십습 동봉하여 백배 계수하여

님계신 九宮宮闕의 들여볼가 하노라 님 계신 구궁궁궐 들여 볼까 하노라

(127) 주진촌: 옛날 마을 이름으로 주씨와 진씨가 서로 결혼하며 평화롭게 살았다 한다.

(128): 두류산: 지리산의 별칭.

(129) 진채탄 표루공: 공자는 진채 땅에서 곤경에 처한 일이 있으며, 제자인 안회는 가난하여 단표가 자주 비었다 함.

(130) 한 장군: 한신을 가리킴. 그는 불우했던 때 빨래하는 여자에게 밥을 얻어먹은 일이 있엇다.

(131) 천작얼: 하늘이 지은 허물, 옛말에 하늘이 지은 허물은 어길 수 있지만 스스로 지은 허물은 피할 수없다 맹자, 離樓 上)

(132) 주공: 무슨 일이나 공부를 힘써 하는 것.

(133) 진희이: 중국 도교 계통의 인물인 진단(북송 태종이 그를 회이선생으로 일컬음. 원문의 천일모는 면래채 상존이다는 말은 무슨 뜻인지 미상인데 벽곡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다.

(134) 황금가 상전가: 미상

(135) 유민도: 흉년에 유민들의 참혹한 정경을 그린 그림. 송나라 때 정협(鄭俠)은 유민이 거리를 메운 것을 보고 그 실상을 그대로 그려 황제에게 바치고, 상소를 한 데서 유래했다.

 

 

 

[출처] 임계탄 가사 (장흥위씨운곡종친회) 작성자 위상복

 

관련기사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512141750101&code=96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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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재 이상계(1758~1822)

자연을 벗삼아 안빈낙도하는 선비

 

 

선생의 본관은 인천이며 자는 군옥, 호는 지지재 또는 관송이다.

이상계는 어려서부터 성품과 도량 그리고 예의범절에 있어서 다른 사람의 모범이 될 만큼 남달리 뛰어났다. 좋고 싫음을 곧바로 표현하지 않았고 말과 행동을 조심스럽게 해 군자의 자질을 지녔었다. 또 뛰어난 효성이 널리 알려져 그를 천거하는 일이 매우 많았다. 자라서는 유학에 힘썼다.

효행에 대한 일화가 전하는데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하여 날씨를 가리지 않고 아침저녁으로 성묘했으며 하루도 거르지 않았기에 엎드려 절한 곳에 풀이 나지 않았다고 한다. 또 땔감을 하는 아이나 나무하는 사람들이 그가 성묘하러 가는 길의 잡초 따위를 베어 길을 닦아주었다고 전한다.

1808(순조 8) 120일에 전라남도 장흥군 용산면불용산(佛聳山) 동쪽 기슭 아양동(峨洋洞)에 초당을 짓고 아름다운 자연의 경관을 즐기며 여생을 보냈다.

문집으로는 지지재유고(止止齋遺稿)21책이 전한다. 한시 79수와 초당곡(草堂曲)·인일가(人日歌)등의 가사가 실려 있다. 이 가사는 유고집과 종가 가장본(家藏本)인 표제 없는 가첩 필사본 초당곡전(草堂曲全)에도 전하고 있다.

증손 이창호(李昌浩)에 의해 유고의 수집과 정리가 이루어지고, 시간이 흐른 후에 1958년 그의 5대손 이만흠(李萬欽)에 의하여 간행됐다. 양회갑(梁會甲)의 서()1890(고종 27)인 영력(永曆) 244125일의 여흥후인(驪興後人) 민영은(閔泳殷)의 발()이 있다. 그리고 195899일에 쓴 5대손 이만흠의 근지(謹識)가 있다.

초당곡은 스스로 속세를 떠나 자연을 즐기는 한가함의 정조를 노래한 가사이다. 인일가는 인륜도덕의 사상을 가사형식을 빌려 쉽게 풀어쓴 가사이다. 땔나무를 하는 아이와 가축을 치는 아이 그리고 배움이 없는 사람도 쉽게 배워 실천할 수 있도록 교훈적 내용을 쉬운 말로 표현했다.

 

 

 

 

[책소개]

인일가(人日歌)

가사. 95. 내용은 유교의 인륜 도덕적(人倫道德的) 사상을 고취한 것.

초당곡(草堂曲)

가사. 69. 내용을 편의상 6단으로 구분하면 제1단은 서사(序詞)로 춘경(春景)의 감흥을 술회하고, 2단은 학이시습(學而詩習)했으나 모든 것이 헛일로 돌아가고 백발만 늘어간다는 허탈감을, 3단은 부귀 영화에의 뜻을 버리고 자연 속에 파묻히는 안락한 심회를, 4단은 산수의 경치에 무아(無我)의 경지를 맛보는 즐거움을, 5단은 달 아래에서 선유(仙遊)하는 모습을, 6단은 결사(結詞)로서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안빈 낙도할 것을 결의하는 내용을 담았다.

 

관련기사 http://www.gwangnam.co.kr/read.php3?aid=1479114679246418025

                 http://www.hani.co.kr/arti/society/area/76734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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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곡 이중전 (愚谷 . 李中銓 ) (1825~1893)

 

경세적이고 교훈적인 내용을 노래한 장한가

 

선생의 본관은 인천이며 자는 화집이고 호는 우곡으로 부산면 금자리 환한마을에서 태어났다.

선생의 집안은 5대를 이은 효자 가문으로 이름이 나있으며 문장을 잘하기로 유명하다. 선생은 평생을 독서와 훈도로 지내면서 문집으로[우곡집]을 남겼다.문집에 실린<장한가>는 경세적이고 교훈적인 664구의 긴 가사이다.

<장한가>의 전반부는 선생의 기구한 인생 역정을 도덕사상에 근거하여 노래하였고, 후반부는 금강유람을 소망하는 심경을 읊었는데, 한 작품안에 두개의 주제를 담아 노래한 점이 특이하다.

 



어와 세상 사람들아

이 내 노래 들어보소

천지가 창조될 때

범위가 어떻든고

형체 없는 어떤 하나

이름이 태극이라

태극이 무극이요

지극한 도 어렵도다

적연한 그 기운이

양의 비로소 만드나니

양은 하늘 되어 위에 뜨고

둥근 원이 되어 가볍고 맑으며

음은 땅이 되어 아래로 내려오니

네모난 형태되어 무겁고 탁해지네

순환은 무궁하고 사계절은

춘하추동 교대하고

한번 정하면 바뀌지 않는 정사방

동서남북 변함 없네

그 기간에 인간 생겨

삼재에 참여하고

삼강오륜 받아들여

만물 영장 되었구나

사람이 좋다마는

사람노릇 극히 어렵다

하늘이 주신 성품 같건만

어짊과 어리석음의 차별 어인 일인고

지극공정하신 하나님이

사사로이 차별을 두겠는가

사람은 모두 더할 것 없이

온갖 선을 갖추었으니

요임금 순임금 따로 있나

사람은 누구나 요순임금이 될 수 있고

너도 장부고 나도 장부니

형명이 다를쏘냐

넓고넓은 하늘의 성품대로

물욕에 현혹되지마소

하늘 큰 뜻 법이 되고

땅의 성물 공이로다


일월성신 풍운우로

만천수상 소소하고

산하초목 조수어별

땅에 실어 형태를 갖춰 물물이라

애연한 저 사단이

자연이 바라난다

허령한 저 마음을

마음을 굳게하소

매일의 동정 그 가운데

본성 출입 형적없어

작은 차이가 천리 오류 만드니

선악화복 양도로다

이 내 몸을 생각하니

부모은혜 망극하다

낳고 키우신

깊은 은덕 갚고자 해도 끝이 없어

태산보다 무겁고

하해보다 깊고 깊다

하늘인 아버지와 땅인 어머니의 조화보소

음양오행 기운으로

자애로운 모친 뱃속

열 달 편히 보낼 적에

천명 받아 천성 따름은

상지 군자 거의 잊고

사욕 좋아 순리를 거역하면

어리석고 천한 자 된다

인의예지 본래 성정

사람이면 뉘 없는가

낮에는 등에 업고

밤이면 품에 안아

한 살 두 살 세 살 때

부모 품에 자라나서

지나치게 사랑하여

자식 악행 알겠느냐

보이지 않아도 자주 보고

들리지 않아도 자주 들어

없어지고 잦아질까

제 자식 걱정하니

이렇듯 큰 은혜를

털끝만큼 갚을쏘냐

사오육칠 팔구세에


호강으로 지냈도다

태평성대 호의호식

부친 은혜 좋을시고

열한 살을 지낸 후에

병신년 액 당했구나

행동거지 조심하고

음식을 가리어서

강보에 싸인 갓난아이

때때로 목욕시켜

더위 추위 피하여

장수와 복을 빈다

마음 다해 지성으로

이리 안고 저리 안아

조모슬하 자랄 때에

기른 은혜 난망이라

애지중지 좋은 의식

호강자제 아이구나

선하신 우리 계모

고금에 드물다

사랑하여 거두기를

친자보다 더하도다.

편히 살되 못 배워 금수 됨은

옛 성인의 분명한 가르침이라

아버지의 명을 받아

서당에 입학하여

사략통감 배운 후에

중용대학 읽어보니

성현의 깊은 말씀

대강인들 알겠는가

가운이 불행했든

신세가 기구했든

유월보름 다음날에

자모상을 당했어라

차례 없는 이 내 몸이

거상 예절 알겠는가

엄중한 부명으로

삼년상을 지낸 후에

목 놓아 울부짖어

기절했다 깨어나기 서럽구나

애고 애고 이 내 팔자

이 일이 어인 일인고


불효로다 불효로다

조실부모 불효로다

전생에 죄를 지었나

차생에 악을 쌓았나

조실 양친 나의 죄는

천지간에 용서받기 어렵다

불효 중의 큰 죄인이

나밖에 또 있을까

상례 좇아 가력 대로

선산에 안장하니

살아서 불효한 몸

상례인들 잘할쏘냐

벌재위명 다닐 적에

시절만 자랑한다

배부르고 등 따숩게 보낸 세월

세상 일을 알겠는가

세월은 가고 이 내 나이

이십이 넘었구나

스물두 살 병오년에

또 액운이 닥쳤구나

불의흉변 부친상을

오늘날 당했으니

부모가 없었다면

이 내 몸이 생길쏘냐

사람으로 태어나서

사람 도리 못했으니

참담한 이 내 한이

죽으면 사라질까

미물인 까마귀도

효도할 줄 알고

사나운 호랑이도

은혜를 갚건만

후회막급 이 내 한이

언제나 없어질까

삼년 상 지낸 후에

불의에 집안 일 맡아

천년이라 여겼더니

영원 이별 하였구나

불법이네 불법이네

백발상제 불법이네

못 할래라 못 할래라


혼자 상치르기 못할래라

슬프다 우리부모

언제다시 돌아올까

한이로다 한이로다

봉양못한 한이로다

어찌해야 잘모실까

주야로 걱정이라

좋은 음식 없는 중에

가세가 빈한하다

천하근본 농사일

이제나 힘써보자

상하 논밭 갈아내어

이골 저골 파종하니

벼 콩 보리 온갖 곡식

해해마다 풍년이라

부지런한 우리 농부

들일 잘도하네

남쪽 유월 더운 날에

땀 흘리며 벼 김매니

집안 일이 바쁜 중에

글 공부할 시간 없네

서책을 멀리하고

재산을 돌보자니

못하겠네 못하겠네

안 배운 일 못하겠네

노복 없이 일하자니

고생인들 적을쏘냐

당년 팔십 조모님과

청상 과부 어머님

음식이 하늘로 여겨

농사밖에 길이 없네

부지런하면 부자되고

게으르면 가난하리

논 심구고 밭 심어서

오곡이 다 익거든

먼저 나라 세금 내고

그 다음 조상 제사

그 다음 부모 공양

그 아래 처자 부양

섣달 정월 명절에는

집집마다 고기 굽고


떡치고 술 빚어서

서로서로 나눠먹고

얼얼우 상상호난

들들마다 태평가요

밤 바구니 술동이는

거리거리 풍년이라

밭갈고 우물파는 우리농부

임금님 덕 어찌 알리

칠경농상 수여안저

권농으로 이른 말이

힘써하소 힘써하소

농업을 힘써하소

억만 장안 화류 중에

피리 부는 동자 세운

울긋 불긋 저자 거리

불의이니 싫을래라

천상 랑 지상 선은

도방권자 선망 않는 자 있을꼬

양주 수례 두목지며

낙양 포상 소진인가

십 년 공부 애써 글 읽어

삼일 말 타고 등과 영화

길일을 택하여

선산에 제사지내고

국은을 다시 입어

벼슬길을 오른다

모든 사람 즐거워하니

강구연월 이때로다

앞집 소년 뒷집 아이

글 공부 힘써하소

부귀는 반드시 근면해야 한다는 것은

글을 두고 이름이라

많이 읽고 많이 쓰면

문장명월 뉘라 아니되리

춘당대 좋은 과거

장원 급제 높이하여

황은에 사배 후에

어주 삼배 취하게 마셔

위화를 척파하고

양로를 막아

사방에 큰 탈 없어


보국 중신 아니될까

임금은 태평성대

부모는 부귀영화

충효를 모두 갖춰

입신양명 할 것이니

부모 슬하 좋은 시절

헛되이 보낼소냐

청춘은 한번가면

다시오기 어려우니

방백수령 다지내고

삼공 육경 높이 올라

음양을 본받고 사시에 순응하는 것은

재상이 할 일이라

나라의 녹을 공으로 받을까

힘을 다해 나라에 충성하여

기오군어 요순하고

제사민어 수성하여

집집마다 충의 사람마다 영재

부국 강병 그 뒤에는

군신이 일체 동심으로

북쪽 오랑캐를 거절하고

국가가 금하는 이 음식()

구태여 먹을소냐

술을 싫어하고 의협을 멀리함은

우임금의 절금이요

덕장은 취하지 않고 제사에 쓰려 술은 만든 것은

주무왕 경계하신 가름침이요

술을 마시되 적절하게 그침은

공자의 절엄이요

술 한잔 권할 때 절을 백 번씩 함이

향음주례 고법이라

옛성인의 엄금절계

경전에 뚜렷하니

----- 온갖재물

구슬같이 고운 계집

글 가운데 있으니

부디 공부 힘써하소

또다시 이를말이

술먹기에 힘쓸소냐

술이라 하는 것이

성정을 파괴하는 광약이라


술 먹어서 착실하단말

어디서 들어봤나

옛일을 살펴봐도

망국패가 그 몇인가

근후한 본성정이

흉험하게 되느니라

된트림 섣기침은

사람눈에 꼴불견이요

이리비틀 저리걸음

손가락질하는 가관이라

크게 취해 깨지 못한 중에

집꼴을 보자면

벽 떨어진 냉돌방에

부모의 주야걱정

곡식없는 텅빈 부엌

처자의 조석원망

이 사람의 패가망신

눈앞에 역력하다

농사짓고 글읽기를

술 먹듯이 힘을 쓰면

부자문장 다되어서

착한사람 되련마는

음주를 취미삼아

날마다 술마실제

집안일 저버리고

술집을 내집삼아

주야로 다닐적에

패가망신 아니할가

한잔 두잔 세잔

술취한 자 거동보소

부부는 분별있고

장유는 차례있고

친구는 믿음두니

이것이 오륜이라

타고난 성정 좋은 것이

제 몸에 있건마는

아니 힘써 못 익히니

자포자기 네 죄로다

나부터 못한 일을

남에게 이를소냐

주모의 술값 재촉


부모 욕 미치네

슬프도다 저 사람들

술 못먹어 죽을손가

그밖에 당부할 말

남색잡기 즐겨마소

제 신상 제 망하니

누가 가련타하리

아서라 그만두고

삼강오륜 외어보자

임금은 신하의 근본

아비는 자식의 근본

지아비는 아내의 근본

이것이 삼강이요

부자는 친이 있고

군신은 의가 있고

예로써 상을 치러

혼백을 수조할제

조모상중 설운 중에

부모생각 새로 난다

우리부모 계셨으면

호화롭게 치를 것을

오늘날 이 내 몸이

상치르니 더욱 섧다

그러나 이 내 말씀

만분지일 도움될까

그럭저럭 지낼 제

세월이 무정하다

삼십칠세 이 내 나이

신유년 정월이라

할머님이 세상 뜨니

부모흉변 다를소냐

애고애고 서럽구나

부모대신 발상하니

애곡애고 서럽구나

비통함이 더하도다

원통하신 우리부모

혼백인들 모르는가

승중상 중 이 내 슬픔

조실부모 한이로다

가업을 전한 후에

한가한 사람되어


집을 우곡이라 이름짓고

벽위에 붙이니

우곡이라 한 뜻은

다름이 아니로다

내 근본이 이런지라

산골 거처 마땅하다

그 달을 지난 후에

이월을 당해서리

이런 흉액 또 있는가

상처라니 뜻밖이다

불행토다 이 내 신세

이다지도 험하구나

슬프다 망처 상을

형편 맞춰 치르고서

조모님 큰 상사를

망극애통 지내올 제

효부로다 어머님

살으신 듯 극진하니

연약하신 이 기질로

살림하기 극난하다.

세월 흘러 이 년 상

삼년 상을 마친 후에

자식 혼사를 가리어서

며느리를 급히 맞고

골마다 흐른 물에

속된 말을 씻어내고

봉우리 두른 안개

선경이 여기로다

소박한 식사 이 내 뜻을

부귀가 달내소냐

뒤로 소나무 대나무

앞으로 삼마장은

신선 세상 그 가운데

작은 초가 더욱 좋다

자연의 깊은 맹세

티끌로 벗을 삼아

번화한 세상사슬

저멀리 던져두니

시비는 물처럼 흐르고

부귀는 구름과 같구나


효친충군 못한 몸이

다른 일을 알겠는가

종일 가만히 앉았으니

허수아비 완연하다

산수나 노래하고

풍월이나 읊어보며

숲속 새를 희롱하고

소나무를 만져보며

임자없는 좋은 자연

임의로 주장하니

좋을시고 산수지락

이 또한 성덕이라

초가집 봄잠 느즈막이

새소리에 깨어나니

금장산 취하고 살리

맛이 좋기도하다

마음이 만든 병든 몸

이제야 회복하는구나

구름속에 캐온 약초

물고기 함께 하고

창 앞에 부는 청풍

고인이 자로 온다

꽃피는 봄 잎지는 가을

사시를 짐작하고

아침 밭갈기 저녁 책읽기는

백년을 기약하네

냇가꽃나무 낮풍경은

도심을 자아내고

오동나무 비친 달빛

천루를 얻었구나

소나무에서 조는 백학

찻물 연기 피하고

꽃그늘 만든 푸른 베개

손님 소식 전하는구나

용두산 상상봉에

완보로 높이 올라

구름 속 궁 바라보고

아득한 경복궁 축도 후에

○○○(○○○) 조냥으로

걸어 한가한 정원 구름 볼 바


밭 꽃밭 돌아보고

아이 불러 차 다리니

물외신선(物外神仙) 내 아니면

연단도사(鍊丹道士) 그 뉘던고

○○노래 한 곡조(曲調)

청운(靑雲)이 멀었도다

인간(人間) 청복(淸福) 내 계곡 산

삼공의 귀와 바꿀쏘냐

즐거움이 안에 있어 약 없이도 병이 낫네

연하고질 다 나았다

앉고 싶으면 앉고 눕고 싶으면 눕고

천명의 유한함을 지키는 것이고

사람의 자족함을 즐기는 것이요

산에 오르고 물가에 가는 것은

지리의 무궁함을 탐하는 것이라

그 외에 한가함 얻어

동자 두셋 앞세우고

요순의 건곤이요

공맹의 일월이라

단군의 천년 풍속

기자의 팔조 교시

눈 앞에 높이 높아

어짊 지혜 근원 보며

흉금을 다시 열어

광경을 수습하고

사자정 푸른 개울

목욕하고 돌아와서

향을 피워 단좌한 후

경서 두루 읽어보니

안연의 좋은 기상

오늘 날 거의 볼 듯

사람 안택 좋은 집을

이제나 구경하세

의관을 엘제도로

순박하게 차려입고

산길 가파른 좁은 길로

점점 찾아 들어가니

기구한 저 험로의

묵은 띠만 다 지내고

꽃향기 속 거닐다가

입근정에 쉬었다가


()의 산 바로 넘어

()의 정도 썩 나서니

칠보 층대 밝고 밝아

열두 뇌문 소요하니

집마다 미풍이요

촌마다 유훈이라

대도중평 넓은 길에

불편부당 걸어가서

()의 삼백 함의 삼천

조마다 구경하니

정자의 밝은 유덕

은연 중 거기 있다

()의 물 건넜더니

세상 길 여러 갈래

가운데 길 하나 올라

믿음으로 걸어가니

피곤함이 매우 커서

길가 석단 기댔더니

꿈인지 생시인지 오늘 일은

심신도 허랑하다

청풍이 건듯 불어

앞길을 인도하니

정처 없이 가는 길이

한 곳에 다다르니

별천지 비인간은

천계가 완연하다

기린과 달리는 짐승이오

봉황과 나는 새라

홀로 높은 황금 난간 높은 집에

옥황상제 자리하니

구천 제군 열위하고

삼계 영령 모두 모였더라

()()() ()경서(經書)

금관 옥대 몇 선궁인고

공덕문을 지난 후에

화육원을 들어서며

미풍을 비겨서서

우주중간 살펴보니

장하다 천태만상

조화옹의 조물보소

흰 것 희고 붉은 것 붉으니


나무마다 꽃마다 타고난 기품이요

날 것 날고 뛸 것 뛰니

금수마다 하늘의 조화로다

학이 울고 ~ 소리 하늘에 울림은

진실로 느끼는 바 그리하고

어잠심연(魚潛深淵) 적공소(赤孔昭)

도례발원(導禮潑源) 숨길쏘냐

솔개는 높이 날고

고기는 물에 뛴다

형이유취 물이군분(形而類聚 物以群分)

존비굴신(尊卑屈伸) 갈라내니

용사칩이(龍蛇蟄而) 존신(存身)하고

척확굴이(尺蠖屈而) 구중(求仲)이라

만물이 번성 중에

인생이 최귀로다

그 남은 괴이재생목

기수지 일변이라

일식 지진 산붕 해일

어찌 다 측량하리

지성 불식 상천재는

무성 무취 뿐일레라

현현묵묵 변화기를

우부가 알쏘냐

쳐다보니 푸르고 또 푸른 하늘

내려보니 가없고 가없는 경계

갈 길이 희미하여

이윽히 주저하다

가던 길로 회정하여

초당에 돌아오니

도로 일이 없어

동몽을 훈학한다

성현의 깊은 말씀

박학불교 하였어라

사람의 큰 병통이

호위인사 있다하니

천견박식 이 내 몸이

마음 속 자괴 중에

남이 응당 웃으리라

정리 건곤 한중 일월

성화를 목욕하니

뉘라서 가불쏘냐


시년이 반백이라

인간 공도 저 백발이

내 머리에 오겠구나

자탄으로 하는 말이

백발은 왔다만은

사람 노릇 못한 몸이

백발은 어인 일인고

백발이 이제 오니

청춘이 다시 올까

이팔청춘 사람들아

소년행락 자랑마소

세월은 기다리지 않으니

어찌 소년을 늘릴 수 있으리오

동산에 지는 꽃은

명년 삼월 다시 피고

서산에 지는 해는

명일 다시 보려니와

남천부 늙은 영감

뉘라 다시 소년 될까

아서라 쓸 데 없다

지 일이 다 허사라

초로같은 이내 인생

죽어지면 무엇하리

채약하던 진시황은

여산청초 가련하고

구선하던 한문제는

무릉모우 처량하다

천항부자 석숭이는

석두성의 일배사요

경국미색 양귀비는

마외역 고혼이라

가자서라 가자서라

구경하러 가자서라

무슨 구경 가자는가

산수 구경 가자서라

만고의 대망 공부자는

태산에 오르시고

천인의 기상 회점이는

기수에 목욕하고

술 잘먹던 이태백은

채석강에 완월하고

동쪽으로 가는 물은

언제 다시 돌아올고

나같이 천한 인생

아니놀고 무엇하리

청춘에 구경하고

와유강산 해볼 것을

이제야 늦게 알아

명산대천 놀아보자

천관산 월출산은

전날에 올라보고

지리산 금강산은

천하명산 이르나니

죽장망해 찾아가서

한 번 구경 못할소냐

중국 사람 하는 말도

한 번 보고 싶다 하였으니

본국에 태어나서

한 번 구경 못할소냐

팔만구 암자 만이천 봉

지겹도록 들은지 오래이니

가다가 못가거든

인가 찾아 자고가세

풍속도 들어보고

세태도 살펴보아

글 잘하던 소동파는

적벽강에 뱃놀이하니

사람이나 동네 인심이 후한지 박한지

이 또한 구경거리라

여러 날 가고가서

금강산에 도착하거든

단발령에 머리 깎고

세신암에 저을 씻어

전념을 청소한 후

유점사 찾아가서

소승불러 길을 묻고

노승불러 경치 물어

팔만구암자 좋은 경치

낱낱이 다본 후에

선록(仙綠)을 겨우 잡어

그 위 일층 봉에 올라


만이천 봉 경치마다

차례로 구경할 제

하늘에 사는 신선 만나거든

담화나 나누어보세

동자야 손님오시거든

구경갔다 이르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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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 문계태(1875~1955)

 

시대의 아픔을 안고 학문으로 벗을 삼아 살아온 작가

 

 선생의 본관은 남평이며 자는 희도 호는 겸재로 유치면 덕산리에서 태어났다.

면암 최익현의 문인으로 관직은 통정대부중추원의관에 올랐다 성품이 충직하고 학문이 깊어 일제가 침략하자 모옥을 짓고 은둔생활을 하였다.

 1926년 고종 황제의 영정을 봉안한 회덕묘를 짓고 면암선생의 영정을 봉안한 산앙사를 지어 제를 올렸다.

6.25이후까지 선비의 기품을 잃지 않고 학문에 몰두하다가 생을 마쳤다.

선생이 남긴 문집[겸재사고]에는 선생이 구곡의 서경에 빗대어 나라 잃은 설움을 나타낸<덕강구곡가>와 인간이 갖추어야 할 덕의 연원을 찾아 중국의 공맹과 우리나라 여러 학자댁을 찾아 학문적 업적과 도의 높음을 칭송하는<덕천심원가>가 가사로 전한다.

특히 선생이 노래한 가사는 3.4조나 4.4조의 정형이 많이 파괴되어 가사가 산문적으로 변화해 가는 과정을 살필 수 있어 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덕강구곡가 德岡九曲歌겸재 . 문계태 ( 謙齋 . 文桂泰 )

 (1875~1955) 유치면 덕산

구경 가세 구경 가세 우리 동포 벗님네야
이 내 말씀 들어보소 일 년 가절 어느 때요
좋을시고 좋을시고 요사이 동풍삼월
온갖 화초 만발하고 두견새 꾀꼬리는
춘흥을 자랑하는대 우리는 놀지 않고 무엇하리
명산대천 구경커든 덕강구곡을 찾아 놀러 가세
무이구곡은 옛글에 익히 보아 강론하였으며
석담구곡은 이제 병풍에 그려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