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문화원

[목포MBC 창사특집]
한반도의 정남진 장흥 탐진강,
장흥사람들은 탐진강을 어머니의 품 같은 강이라고 말합니다.

영암 금정산에서 발원돼 장흥을 거쳐 강진만을 통해 바다로 흐르는 탐진강은 한승원, 이청준 등 수많은 문인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작품 속 배경이 되기도 했습니다.

맑고 깨끗한 물은 여름이면 주민들에게 다슬기를 내어주고 농민들에게는 농사에 꼭 필요한 물을 내어줍니다.

문화와 생태가 살아 숨쉬는 탐진강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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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NET_찾아라! 팔도맛지도 - 전남 장흥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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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지오그래피] 이부부가 사는법 -장흥 향양댁(16.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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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지오그래피] 이 부부가 사는법 - 장흥 용산댁네 (17.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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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지오그래피] 이부부가 사는법 - 장흥 우곡댁네 (17.04.03)

 

할머니: "하다 뭉태고 있는께 혼자 하다가는 날새고 닭 울어불어 어른얼른 빨랑빨랑 해"
할버지: "그라고 저라고 자기가 잘허네.둘이 깐닥깐닥 하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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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백산재 (長興 栢山齋)

종 목 문화재자료 제272호
명 칭 장흥백산재 (長興 栢山齋)
분 류 유적건조물/정치국방/궁궐·관아/관아
수량/면적 정면 6칸, 843㎡
지정(등록)일 2009-03-20
시 대 조선시대

장흥 백산재는 문중재실이다가 장흥위씨 문중의 사우인 하산사(霞山祠)의 강당으로 함께 활용되고 있는 건물이다. 원래 조선후기 장흥부의 관아건물을 2차 이건을 통해 1936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온 것이다. 당시 이건 과정에서는 거의 원형 그대로 옮겼다고 전하고 있다. 백산재는 건축 부재나 결구수법 등으로 보아 조선후기인 19세기경의 건물로 보인다.
건물은 정면 6칸, 측면 2칸으로 된 본 건물은 비록 이축과정에서 다소 변형된 구조 기법을 보이기는 하나 넓은 대청과 온돌방 등 조선후기 관아건물 구조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대들보 등 사용부재도 매우 장대하고 견실하며 기둥은 모두 두리기둥을 사용하였다. 기둥은 5량가구이며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백산재는 조선시대의 행정관아의 건물이 거의 없는 터에 보존이 잘 되어 있어서 관아 건물 연구 자료에 도움이 되고 장흥부 관아의 복원 측면, 공공기관 건물이 장소와 시간의 변화에 따라 용도가 변화되는 점을 알 수 있는 측면 등에서 건축 및 역사적 가치가 있다.

 

자료출처: http://search.cha.go.kr/srch_org/search/search_top.jsp?home=total&subHome=0&sort=&searchField=&page=1&query=%EB%B0%B1%EC%82%B0%EC%9E%AC

https://blog.naver.com/mallarmel/10120758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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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탑산사지금동여래입상 (長興 塔山寺址 金銅如來立像)

종 목 문화재자료 제270호
명 칭 장흥탑산사지금동여래입상 (長興 塔山寺址 金銅如來立像)
분 류 유물/불교조각/금속조/불상
수량/면적 1점
지정(등록)일 2008-12-26
시 대 삼국시대

장흥 탑산사지금동여래입상은 대좌부분이 떨어져나갔지만 불신과 대좌가 같은 개체임이 금속성분 분석 결과 확인된 것이다. 불상의 외모상에서 나타난 양식의 특징 또한 7세기경 삼국시대의 전통적인 양식을 계승한 것으로 계란형의 얼굴과 사발형의 육계, 행인형의 눈두덩, 길게 내려온 U자형 대의주름, 7~8세기경 유행한 시무외, 여원인의 수인 등이 모두 고졸한 양식임을 알 수 있다.
더구나 금동불상 대좌 하단의 평면이 7각인 점도 주목된다. 불신과 대좌가 분리되어 있다는 결함이 있긴 하나 같은 동체임이 확인되었으며 연대 또한 7세기후반 늦어도 8세기 초반에 걸쳐있다는 점에서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자료출처: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31,02700000,36&pageNo=5_2_1_0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3&aid=0002467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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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덕암리암각매향명 (長興德巖里巖刻埋香銘)

종 목

문화재자료 제252호

명 칭

장흥덕암리암각매향명 (長興德巖里巖刻埋香銘)

분 류

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수량/면적

일원(100㎡)

지정(등록)일

2004-09-20

시 대

조선시대

장흥 덕암리 암각매향명은 조선시대 초기(1435년, 세종 17)의 매향사실을 기록한 비석이다.
매향(埋香)이란 향나무(香木)를 묻는 민간불교 신앙의례이다. 향나무를 민물과 갯물이 만나는 지역에 오래 묻었다가 약재나 불교의식용으로 썼으며, 그 매향의 시기와 장소, 관련 인물들을 기록한 것이 매향비(또는 암각)이다.
자연암반에 음각된 매향의 명문 순서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새겨져 있어 통례적인 오른쪽에서부터 읽는 것과 다르다. 글자수는 총 6행 21자로 되어 있다. 자형(字形)은 아주 정서(精書)된 것 같지는 않고 투박한 편이다. 그 내용은 '1435년 10월에 많은 사람이 발원하여 남남동향에 (향목을)묻어 두었는데 주도한 향도는 홍신이다.'라고 정리할 수 있다.
장흥 덕암리 암각매향명은 조선초기(태종∼세종대)에 억불정책이 가장 심했음에도 불구하고 불교의식이 촌락사회에서 계속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자료로서 조선시대 불교사, 사회사, 향촌문화 연구에 매우 귀한 자료가 되고 있다.

 

자료출처: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5_2_1_0&ccbaCpno=34136025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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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탑산사지석등 (長興塔山寺址石燈)

종 목 문화재자료 제196호
명 칭 장흥탑산사지석등 (長興塔山寺址石燈)
분 류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석등
수량/면적 1기
지정(등록)일 1994-12-05
시 대 미분류

탑산사터에서 위쪽으로 1km쯤 오르다 보면 이 석등을 만나게 된다.
석등은 일반적으로 등불을 켜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3단의 받침을 두고 위로는 지붕돌을 올려 놓는데, 이 석등은 현재 받침의 일부와 화사석이 없어진 상태이다. 남아있는 아래받침돌, 가운데기둥, 지붕돌은 모두 8각을 이루고 있으며, 아래받침돌은 윗면에 8잎의 연꽃무늬를 두었다. 지붕돌은 윗면이 완만한 경사를 이루는데, 처마의 윗선과 여덟 모서리선이 밋밋한 곡선을 이루고 있다.
고려 전기에 세운 것으로 추측되며, 비록 거의 절반정도가 없어지기는 하였으나, 현재 해남 대둔사로 옮긴 탑산사동종(보물 제88호)과 함께 옛 탑산사의 불교조각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자료출처: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31,01960000,36&pageNo=5_2_1_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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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사석불좌상 (彌勒寺石佛坐像)

종 목 시도유형문화재 제196호
명 칭 미륵사석불좌상 (彌勒寺石佛坐像)
분 류 유물/불교조각/석조/불상
수량/면적 1구(軀)
지정(등록)일 2002-11-15
시 대 고려시대

이 불상은 1930년대까지 야산의 산 속에 묻혀 머리부분만 노출되어 있던 것을 그 후 미륵사의 법당 안에 모셔 봉안하고 있다. 거대한 자연석을 다듬어 앞부분에는 불상을 조각하고 뒷면은 조각없이 그대로 처리하였는데, 높이 280㎝, 어깨폭 148㎝, 앉은 높이가 3m에 달하는 거불(巨佛)이다.
워낙 거대한 자연석을 이용하여 조각하여서인지 전체적으로 둔중한 느낌을 주는 한편 얼굴과 옷자락의 조각은 사실적인 수법을 보여준다. 머리에는 상투 모양의 육계가 큼직하게 솟아 있고, 소라 모양의 머리칼인 나발이 표현된 흔적이 있으나 현재는 많이 마멸되었다.
신체는 어깨가 넓어 장대한 편이며, 오른쪽 무릎 아래부분이 일부 떨어져 나갔다. 양어깨에 걸쳐 흘러내린 평행의 옷주름은 무릎 아래까지 유려한 옷주름을 이루고 있으며, 드러난 가슴 사이로는 군의를 묶은 띠가 표현되었다. 손 모양은 오른손은 배 부근으로 모아 손가락을 펴고 있으며 왼손은 옷자락을 잡고 있으나 손가락이 떨어져 나갔다. 결가부좌한 왼쪽 다리의 아래 부분도 일부 떨어져 나갔다.
이 불상은 거대한 자연석을 이용하여 조각한 석불로서, 특히 고려 전기에 조성된 대흥사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보물 제48호)과 유사성을 보여준다. 즉 거대한 신체표현이라든가 다소 살찐 듯한 양감이 풍부한 얼굴, 큼직한 이목구비의 표현, 유려하게 표현된 평행 옷주름 등에서 북미륵암 불상과 유사하지만 조각수법이 다소 투박하고 괴체화된 점에서 고려시대 후기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자료출처: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21,01960000,35&pageNo=5_2_1_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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