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문화원

淸江遺集-한문학자 이병혁 국역
霽岩集-서예가‧한문학자 이봉준 국역


제암집과 청강유집


 

장흥문화원(원장 고영천)에서는 문림고을 장흥의 역사문화 전통을 선도하기 위해 1996년~7년에 조사 수집하여 <장흥문집해제> 간행으로 고전문집의 현황을 1차적으로 정리하고 2017년 첫 번째 국역문집으로 백진항(白鎭恒.1760~1818)선생의 계서유고(溪西遺稿)발간, 2018년 이민기(李敏琦. 1646~1704)선생의 만수재유고(晩守齋遺稿)를 발간하고 2019년에 청강유집(淸江遺集. 이승)과 제암집(霽岩集. 정명열)을 출간하여 배포했다.

청강유집을 번역한 이병혁 박사

 

 

 

이번 청강유집 번역 및 주석은 문학박사 아양 이병혁 회장(호남문헌연구회) 주도로 이뤄졌다.

이병혁 회장은 “선조들이 남긴 고전을 우리말로 번역하고 후세를 알리는 것은 후학들의 당연한 의무이자 책임”이라며 “역사 속 묻힌 인물들의 삶과 학문을 기록으로 남기고 문화유산으로 전승하는 것은 또 다른 보람”이라고 말했다.

이병혁 호남문헌연구회 회장은 광주시에서 정년퇴직을 한 뒤 전남대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번역주석서로는 ‘역주지지재유고’(譯註止止齋遺稿)와 ‘역주남파집’(譯註南坡集)이 있으며, 연구논문으로는 ‘전라도 장흥 도호부 수군 만호진 회령포 연구’와 ‘임진왜란 중 전라도 수군의 역할과 승전요인’ 등을 발표했다.

제암집은 서예가이며 한문학자인 치인 이봉준 선생이 국역했다. 치인은 40년에 가까운 수련으로 오체(전서, 예서, 해서, 행서, 초서)를 두루 섭렵해 붓끝이 막힘없이 유려하며 정취가 빼어난 서체로 잘 알려져 있으며, 한학에 능통해 지난해 ‘만수재 유고(晩守齋 遺稿)’를 국역하기도 했다.

 

 

청강유집- 이승의 시문집




조선중기 학자인 이승(李昇)은 자는 경첨(景瞻)이고 호는 청강(淸江), 본관은 인천이다. 1606년(선조39)년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이괄(李适)의 난(1624, 인조2)에 창의하는 등 충의와 지절(志節)로 이름이 높았다. 1625년(인조3)에 유일로 천거되어 계공랑(啓功郞)인 상서원 직장(尙瑞院直長)에 제수되었고, 만년에는 독역정(讀易亭)을 짓고 후학양성에 힘썼다. 사후에 장흥의 금계사(金溪祠)와 당곡사(唐谷祠)에 향사되었으며, 문집으로《청강유집(淸江遺集)》이 있다.

시문집인 청강유집(淸江遺集)은 상·하 2권 1책 목활자본으로, 이승의 7대손 李邦啓·李達運 등이 편집해 놓은 것을 1932년 종9대손 李敎錫과 10대손 李鶴洙가 간행하였다. 권두에 姜遊의 서문, 권말에 이교석과 이학수의 발문이 있다. 권상에 시9수, 輓 5수, 賦 27편, 書 1편, 권하에 策問 2편, 論 1편, 제문 2편, 부록으로 行錄·묘표 각 1편, 시 3수, 만사 2수, 祝文·文集跋·遺事跋·別廟上樑文·永錫齋重修記 각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용산면 어산리에 있는 영석재는 1700년경 淸江 李昇(1556∼1628)을 追慕하기 위해 건립하여 1912년 현재의 모습으로 重修되었다.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69호(1984. 2. 29) 이다. 齋내에 있는 사당인 唐谷祠는 1917년에 設壇하여 제향 하여 오다가 1962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건립되었다. 이곳에는 청강 이승을 주벽으로 宣武功臣 李種仁(1565∼1593), 守義齋 李孟(?∼1593), 世忍軒 李昌命(1647∼1721), 日省齋 李希曾(1690∼1755), 恕菴 李宗旭(1717∼ 1770), 東谷 李復淵(1768∼1846), 止止齋 李商啓(1758∼1822), 南坡 李僖錫(1804∼1889) 등 9인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이곳 唐谷 乾坐에 이승과 부인 靈光金氏의 雙墳이 있다.

또한 부산면에 있는 금계사는 1788년(정조12)에 恭度公 李文和(1358∼1414)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부산면 금장마을에 창건된 鄕祠宇이다. 1868년(고종5) 대원군의 서원훼철령에 따라 훼철되었으나, 1901년 築壇復設하고 淸江 李昇(1556∼1628), 晩守齋 李敏琦(6146∼1704)를 추배하였다. 그 후 1981년 8월 애그니스 태풍으로 인해 사우 및 부속건물 일체가 유실되어 원래의 터에 복건 할 수 없게 되자, 현재의 부산면 신현(新峴) 마을에 있는 李貴秀의 재실 則孝齋 위에 옮겨 건축하였다. 매년 음력 3월 13일 지역 유림이 제향하며, 1990년 江東縣監을 지낸 李信立(1595∼1672)을 추배하고, 1982년에 神室, 內外 三門, 講堂을 竣工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곳 薪峴 酉坐에 李貴秀와 부인 河東鄭氏가 合窆되어 있다.


 

 

제암집-정명렬 유집 치인이 국역

제암집을 번역한 치인 이봉준



 


한편 제암집(霽岩集)은 3권 1책. 목활자본. 1792년(정조 16) 7대손 수익(修翼)이 편집, 간행하였다. 권말에 수익의 후지(後識)가 있다. 규장각 도서·장서각 도서 등에 있다.

권1·2에 시 98수, 연기(年紀) 1편, 잡저 1편, 권3에 부록으로 행장 1편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시운이 청아하고 품격이 고상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석순(石蓴)을 시제(詩題)로 하여 아이들이 나물캐는 풍경을 읊은 「석순」이나, 정월에 아이들이 윷놀이하는 광경을 다룬 「관아배사희(觀兒輩柶戱)」 등은 당시 민속을 살피는 데 다소 도움이 된다.

「송강임보입일본(送姜任甫入日本)」은 일본으들어가는 강임보를 보내며 그의 용맹과 충의를 칭찬하고 석별의 정을 나타낸 것이다. 그 밖에 임진왜란이 끝난 뒤의 감회를 읊은 「출란후문가성감제(出亂後聞歌聲感題)」 2수와, 역사적인 인물을 시로 논한 「애제갈(哀諸葛)」·「독시황기(讀始皇記)」·「양비(楊妃)」 등이 있다. 「연기」는 저자의 연보로서, 임진왜란 당시 의병의 활동상황이나 모병(募兵)·모곡(募穀) 등에 관한 사실들이 담겨 있어 참고자료가 된다.

이번 제암집(霽岩集)은 장흥문화원이 보관 중인 1815년 반산세고와 함께 감행된 영인본을 참고하여, 4권 1책의 시집인데 권지일(卷之一) 시집은 오언율시(五言律詩) 9수, 칠언절구 56수, 칠언율시(七言律詩) 16수, 칠언배률(七言排律) 3수이며, 권지이(卷之二)는 년기(年記)와 집저(集著) 천방유선생행장(天放劉先生行狀), 권지삼(卷之三)은 행장(行狀), 권지사(卷之四)는 사우록(師友錄)이며 이를 서예가이며 고문연구가인 치인 이봉준 선생이 번역했다.

제암공은 장동면 반산리에서 태어날 때 사자산이 세 번 울었다고 한다. 공의 휘는 명월(鳴說)이요 자는 제경(帝卿)이며 호는 제암(霽巖)이다. 아버지 경달(景達)은 관(官)이 통정(通政)으로 예조참판에 중직되고 선무원중공에 기록되었다. 어머니 진주(晉州) 정씨는 참봉원의 손녀이다.

학자인 정명열(丁鳴說)선생은 1606년(선조 39)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광해군이 즉위하여 대북파가 득세하자 정치에 뜻을 버리고 실명하였다는 핑계로 두문불출, 10년간 오로지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하늘은 우러러 “햇빛이 밝아질 때 내 눈도 밝아질 것이다”라고 하여 실명을 자칭한 이유를 설명한 학자이다.

고영천 문화원장은 “문림 장흥의 인문적·학문적 기반을 살피는데 중요한 문집을 출간하는데 수고해 준 치인 이봉준 서예가와 김희태 전 전라남도 문화재위원, 아양 이병혁 선생에게 감사드린다” 며 “앞으로 지속적으로 ‘정남진 장흥 고전국역사’ 간행을 지속적으로 발간할 수 있도록 예산이 좀 더 확충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김용란 기자

 

출처:http://www.jhtoday.net/news/articleView.html?idxno=3809

 

장흥문화원 淸江遺集‧霽岩集 발간 - 장흥투데이

장흥문화원(원장 고영천)에서는 문림고을 장흥의 역사문화 전통을 선도하기 위해 1996년~7년에 조사 수집하여 간행으로 고전문집의 현황을 1차적으로 정리하고 2017년 첫 번째 국역문집으로 백진항(白鎭恒.1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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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군 출신 독립유공자 43명으로 증가

독립운동가 최두용-맨 앞 중앙

독립운동가 임도진 선생

 

독립운동가 길덕동 선생

 

 

장흥문화원(원장 고영천)은 2020년 3.1절 계기로 장흥군 출신 독립운동가 12명이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았다고 전했다.

이로써 장흥군 출신 독립유공자는 43명으로 늘었다.

1934년 이른바 사회주의독립운동 비밀결사 ‘전남운동협의회’ 사건으로 투옥돼 옥고를 치른 독립유공자는 고삼현, 최두용 선생을 비롯해 강상국(대덕읍 연정리), 고복동, 손영현(이상 대덕읍 신월리), 김개성(용산면 덕암리), 길덕동(장평면 양촌리), 임도진(장평면 등촌리), 이길원, 이길종, 이천흠(이상 용산면 어산리), 이영대(용산면 인암리) 선생 등이 있다.

이들은 독립운동 당시 20대 청년들로 각 마을에서 농민야학을 조직하여 한글을 가르치는 한편 농민권리 투쟁을 벌이며 독립사상을 고취했다.

또한 박기평 선생은 장흥군 출신으로는 특이하게 1940년 11월 충남 대전 등지에서 활동하다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징역 1년 옥고를 치렀다.

한편, ‘전남운동협의회’ 사건 당시 주도적으로 독립운동을 펼치다 징역 2~3년의 옥고를 치른 유재성(용산면 접정리), 문병곤(용산면 어산리) 선생이 이번 독립유공자 포상 대상에서 제외돼 지역사회에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해방 후 사회주의 활동 경력이 있어 제외된 것은 문재인 정부의 확장된 독립운동가 포상 정책에 어긋난다는 평가다.

1910~20년대 항일의병으로 활동한 임학현, 임규현 선생(장평면 내동리)과 노전석 선생(장평면 녹양리)도 당시 장평주재소를 습격하고 독립자금을 모집하는 등 독립운동 공적이 확실함에도 포상에서 제외된 것으로 알려졌다.

장흥항일독립운동기념사업회(회장 이영권)는 포상에서 제외된 인물들의 독립운동 공적을 보완하여 재심을 청구할 방침이다. 국가의 독립유공자 포상과 관계없이 200여명에 이르는 장흥군 독립운동가들을 위한 선양 사업을 해나갈 계획이다.

한편 장흥문화원은 최근 ‘문림의향 장흥역사자원 발굴조사’사업(장흥군 지원)의 결과로 장흥군 독립운동가 전수조사 자료집 <의향장흥의 역사와 인물 1900~1945>를 펴냈다. 장흥문화원은 이 책자를 바탕으로 장흥군과 장흥항일독립운동기념사업회, 그리고 현장활동력이 풍부한 장흥문화공작소와 협력하여 지속적으로 독립운동가를 발굴, 국가에 포상을 신청할 계획이다.

 

출처 : http://www.jhtoday.net/news/articleView.html?idxno=3751

 

장흥군 출신 독립운동가 13명, ‘독립유공자’ 포상 - 장흥투데이

장흥문화원(원장 고영천)은 2020년 3.1절 계기로 장흥군 출신 독립운동가 12명이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았다고 전했다.이로써 장흥군 출신 독립유공자는 43명으로 늘었다.1934년 이른바 사회주의독립운동 비밀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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