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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열린자료실(DB)/■장흥 100년사(1996년)31

[안내] 사진으로 보는 장흥 100년사 사진으로 보는 장흥 100년사 장흥문화원에서 소중한 자료를 공유함은 문림의향 장흥에 관하여 연구하시는 분들께 도움이 되고자 함입니다. 또한,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후손들에게도 선조들의 과거를 거울삼아 현재와 다가올 미래를 따뜻하게 설계해 주기를 부탁하는 마음을 담아 올립니다. '사진으로 보는 장흥 100년사' 자료를 활용하고자 하시는 분은, 장흥문화원에 문의바랍니다.발행처 승락을 받아야 합니다. 문의처) 061-863-6362 · 6339/ jhculture96@daum.net 2020. 5. 22.
사진으로 보는 장흥100년사('발간사/축간사/서문/목차'3p~9p) 2020. 5. 21.
사진으로 보는 장흥100년사('근현대 100년' 12p~17p) 근현대 100년 2020. 5. 21.
사진으로 보는 장흥100년사('역대 군수' 177p~182p) 역대 군수 2020. 5. 21.
사진으로 보는 장흥100년사('역대 경찰서장' 183p~188p) 역대 경찰서장 2020. 5. 21.
사진으로 보는 장흥100년사('연표로 보는 장흥 100년' 189p~193p) 연표로 보는 장흥 100년 2020. 5. 21.
사진으로 보는 장흥100년사('연표로 보는 장흥 100년' 194p~206p) 연표로 보는 장흥 100년 2020. 5. 21.
사진으로 보는 장흥100년사('연표로 보는 장흥 100년' 207p~213p) 연표로 보는 장흥 100년 2020. 5. 21.
사진으로 보는 장흥100년사('연표로 보는 장흥 100년' 214p~223p) 연표로 보는 장흥 100년 2020. 5. 21.
사진으로 보는 장흥100년사(161p~175p) ●1950년대 장흥읍 석대들 모습. 경운기 없던 시절 비료를 마을로 옮길 때 ●마을 부녀회원들이 논보리 수확을 올리기 위해 제초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장흥읍 掛也里 유명했던 부산 자매마을 모시베 집 뒷뜰의 논서밭에 심은 모시를 가지런히 다듬어 밤새껏 동네사람들과 함께 노랫가락을 흥얼거리며 실을 내린뒤 온 동네 사람이 모여 마당에서 풀칠을 한 뒤 베틀에 앉아 마무리한다. 장에 내다팔고 혼수감으로도 쓴다. 이제는 거의 볼 수 없는 작업과정이다. 농가부업과 농한기소득을 권장하던 60년대 국민학교와 중학생들에게는 품평회를 열어 표창하였다.-학생토끼(앙고라)기르기- 해장창고 앞에서 근처 노인들을 모셨다. 장흥 장날이면 배가 출항.통영, 삼천포, 부산 등지로 서남부 4개군의 쌀이 운반되고 근처 섬사람들은 그 배편으.. 2020. 5. 12.
사진으로 보는 장흥100년사(146p~160p) ●도로개설시의 울력(장흥-남포선 구간의 자울재에서) ●지게와 달구지는 우리 고향을 생각나게 하고 장평면 청룡리 소류지 공사. 장평면 청룡리 마을 주민들은 이렇게 땀흘려 일했다. 순수한 노력, 이때만 해도 농기구외 특별한 장비가 없었다. ●용산 덕암보 설치를 역설하는 김미식씨, 김용관 지사와 군수가 듣고 있다. ●덕암보 공사 시공현장. 1963. 4. 3 착공 ●대덕면 율지리 100여정보가 홍수로 매몰된 농지를 피해복구하는 광경(사라호) ●사촌 분배식 끝나고 대덕사업이 시작된다. 1954년도 안양 사촌 장재도 연륙공사 현장 ●흥업회에서는 부모형제가 없는 난민을 위해 따뜻한(전인표, 황만일 혼주가 돼서) 보금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1950년대 말 군청내에 있는 공회당에서 장흥군 지활 정착단원 45쌍의 합동.. 2020. 5. 11.
사진으로 보는 장흥100년사(136p~145p) ●장흥읍 부녀 생활개선을 선도해 온 사람들 모임 ●부녀자들의 생활개선사업으로 추진했던 농촌부녀자들의 활동복 패션 ●1960~70년 장흥읍 송암리 썩시골 삼애원 정착자 자활 개간구역(2~5정) ●당시 이 마을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들. 지금은 의젓한 사회인으로(삼애원은 자활갱생원이다.) ●삼애원을 운영한 사람들 ●남 다른 노력으로 자립. 지금은 넉넉한 생활에 보람있게 지낸다. ●1960년대의 우리의 초상. 깡통 모습이 낯설기만 하다. 6. 나무로 엮은 다리에서 12층 아파트까지/건설 ●98년 전의 예양강 대나무다리. 나루배와 나루터 주막이 세월의 흐름을 느끼게 한다.(1897) ●장흥교의 개교를 축하하며(1930년대) ●옛 동교다리의 모습. 다리 폭은 4m였고 다리 밑으로 옛날 다리인 나무다리 잔해가 보인다.. 2020. 5. 11.
사진으로 보는 장흥100년사(131p~135p) ●저기가 희망의 고개(1950년대) ●1947년 새봄은 우리에게 따뜻한 꽃다발을 가져다 주려는가 ●1945년경 고교생들(당시 장흥고 1년 김병옥, 김영철, 유치면 조재원, 채용오 外) ●각 면대항 축구 우승. 안양면 선수 ●장흥농업고등기술학교 주최 수예강습 수료기념(1958.8.10) ●고영완과 함께 기념으로 '여기 거목에서'당시 학교장 ●부산면 상록학원 제2기 수료기념(1964. 4. 10)면장 김재숙, 교사 강숙자, 지서장, 주원술, 간사 김유선, 위원애, 김연요, 김연남, 문은자, 길정희, 부산교 이동률, 동교 김재훈, 임종천, 김점수, 김정애, 김응남, 이춘자, 김영남, 문태자, 문석남, 김봉순, 김정순, 김연님, 위연님, 김경남, 오용우, 김필순, 김수남, 안길남 ●백양가정양재학원 졸업생(195.. 2020. 5. 8.
사진으로 보는 장흥100년사(125p~130p) 5. 시래기 죽을 먹고 은어를 잡던 시절/생활 ●판죽전에서 요기를 달래고 ●어렵던 시절 일수를 찍으며 ●과자전에서 아이들을 생각하며 ●없던 시절 손님이 없어 뜨게질을 하는 어머니 마음 1950년대 삶 보리고개가 있던 시절 봄이면 나물캐는 일은 소녀들의 몫이었고 우리들의 일과는 이렇게 시작했다 ●들에 나가신 부모님을 기다리며 ●지게를 매고 일터로 가는 농부 ●나물캐는 소녀와 잠든 아기 ●빨래터의 풍경 ●장흥 특산명물중 하나였던 유기그릇. 부산면 유량리 여남선씨의 제작공방 ●해방 다음해인 1946년 4월에 장흥에 이발조합원들이 유치장 수감자에게 이발을 해준 후 기념사진(당시는 교도소가 없어 장흥경찰서 유치장에 장흥,강진,보성,영암,해남,완도 6군의 피의자들이 수감되었다. 2020. 5. 8.
사진으로 보는 장흥100년사(118p~124p) ●풍년기원, 마을축제 호계리 별신제(1987, 부산면 호계리) ●장흥읍 기양분단 우승기념(1948. 8 장흥읍사무소 앞) ●안양면 축구선수단 우승기념(1948년 가을) ●체육대회 우승을 한 장흥읍 동동리 젊은이들(이장 김길호, 고재근, 이자산, 서장 김준공 1949. 11 . 23) ●수문포 특설 호남배구대회 결승(1951. 8. 26) ●법원 검찰청 직장 배구대회 결승 기념(호남배구대회 준결승 수문포앞에서 1948. 8. 26) ●6개군(장흥, 강진, 해남, 보성, 영암, 완도)고등부 배구대회 김용식, 김병욱, 김두호, 김직권 ●장흥읍 남산공원 소재 흥덕정. 전국 국궁대회가 열린바 있다. ●군민축제인 보림문화제에서 시가행진(장흥교)을 하는 흥덕정 임원 및 사수들. ●흥덕정 사선에 선 사수 ●여성국궁 사.. 2020. 5. 6.
사진으로 보는 장흥100년사(112p~117p) ●장흥군 문화관 현판식 ●장흥문화원 개원기념 ●장흥극장 신축 개관, 초청 연예인들, 극장설립인 손병기 사장(구봉서, 백금녀, 배삼용,양석천) ●장흥읍 동동리 수성당에서 효자 효부 포상식(1936, 일정 때) 군수, 서장, 법원장 여타 기관장 참석 ●장동면 조양리의 기공제(다리) (이상구 면장,1960년대) ●부춘정에서 이형근, 노춘식, 장순대 여타 노인들의 모임(1946. 8. 15) ●장흥출신 김용관 도지사 수성당 방문 ●어머니날 기념식 및 장한 어머니 시상(1972년, 장흥중고등학교)1956년에 어머니날을 제정해 1973년 어버이날로 했다. ●시상(조완영 교장) ●격려사(길전식 의원) ●초빈 시체를 매장하기 전 약 백일동안 빈장(殯葬)을 하기도 했다.(한말,타지역) ●40년전 신흥리 김용팔 조모상이었.. 2020. 5. 6.
사진으로 보는 장흥100년사(105p~111p) 4. 삶의 현장, 문화와 신앙과 활동상/문화 ●1946년 보림사 대웅전, 좌축에 꼽아져 있는 나무기둥과 창성탑비에 새겨진 나라에서 원표 대덕에게 하사한 신역 표시의 장생 표주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전하며 대웅전 뒷편에 명부전의 일부가 보인다. ●1965년 대적광전과 삼층석탑 2기, 석등 ●1946년경 석탑.석등 ●장흥향교 향교는 조선시대의 지방관립교육기관으로 장흥향교는 조선초기에 건립한 뒤로 한번도 자리를 바꾸지 않았다고 한다. ●장흥향교, 군 유도회 주최. 윤리대강연회(1984.5.15) ●제1회 경로노인위안회(1985.9.23) 동학 천도교는 외래종교가 아니고 우리 민족의 정신지주이기에 일제는 더욱 탄압을 가중했다.갑오동학혁명혈사에 얽힌 빼놓을 수 없는 반세기 악몽속에서 공을 남기고 가신 선대들의 흔.. 2020. 4. 29.
사진으로 보는 장흥100년사(98p~104p) ●1937년 10월 13일 건산리 505번지로 옮겨온 장흥국민학교, 1930년 후반기 졸업식 ●장흥보통국민학교 신센지 선생과 학생들(1942) ●장흥국민학교 졸업소풍(1950, 신흥리) ●1956년 장흥국민학교 ●1950년초 장흥국교 선생님 ●봄 학예회를 마치고 (1950) ●장흥동국민학교 도지정 근로생산 연구학교 당시 마교장선생 ●1947년 4월 15일 사자산 아래의 南齊學院에서 가교로 개설했던 장흥동국민학교 ●장흥서국민학교 선생님들(1950) ●6.25직후 교실이 불타고 가 교사 상태인 유치보통학교 ●부산면 공립보통학교(1945)졸업사진. 교장 淸水淸義,英本基(朴基鳳),西原麟 (韓,麟敎),文汝哲,金在,金貞禮順, 金淑煥,金善禮,당시반장 邊乙植, ●부산면 국민학교 김정순 선생과 신입생 ●기독교청년회에서는.. 2020. 4. 29.
사진으로 보는 장흥100년사(92p~97p) ●장흥교육청 청사 신축낙성기념(1959. 6. 4 엄을준 교육장) 개식사하는 엄을준 교육장 ●방명,감사장 전달 ●완공된 장흥중고의 모습(1946) ●장흥중 무용반, 지도교사 장선생과 함께 ●1946. 10. 9 인가를 받아 건산리에 터를 잡고 신축 기공을 축하하는 장흥중학교( 당시 장순섭 교장) ●보림사를 찾은 학생들(한국전쟁으로 불타기 전의 국보 대웅전 모습이 보인다) ●장흥중학교 한상필 교감과 학생간부진이 함께(1953. 3. 25) ●1948 장흥중학교 교정(향보단 대회 후) ●1953. 3. 25 제6회 장흥중학교 졸업식. 지금은 자취를 감춘 밴드부. 당시 악기를 마련하기 위해 재학생들이 보리 닷되씩을 거출하여 악기를 마련하였다. (당시 임종대교장) ●장흥여자중학교 기공식(1966. 3. 7) ●.. 2020. 4. 27.
사진으로 보는 장흥100년사(83p~91p) ●1949. 6. 12 장흥지원 합의부 승격 기념식 ●1972년 신축한 법원청사 ●7대 나순채 지원장 법원지원은 1909년 11월 1일 광주지방재판소 장흥구재판소로 처음 설치(통감부)하였다가 1912년 4월 1일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원, 1947년 1월 1일 광주지방심리원 장흥지원(미군정청). 1948년 6월 1일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원이 되었다. 1949년 9월 26일 법원조직법에 의해 합의지원으로 승격되었고 1981년 2월 1일 각급 법원 설치와 관할구역에 관한 법률에 따라 보성군이 순천지원으로 1982년 1월 1일에는 영암군이 목포지원 관할이 되었다. 장흥읍 남동리 88번지에 소재한다.(초대 지원장은 김풍일, 사진은 나순채 전 지원장) ●승격 직후 기념촬영 ●장흥농산물 검사소 직원들 1949영 1월 2.. 2020. 4.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