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문화원

회진면 독립자금헌성기념탑 선양 정화활동에 앞장선 장흥문화원 임원들

 

▲독립자금헌성기념탑
 1936년 전후  덕도의 주민들이 독립을 염원하여 헌성한 독립자금 교부인들의 명단과 은동장을 교부받은 사실을 알리는 기념탑.
2006년 덕도의 주민들이 참여 하고 고김제현님이 주동 하여 자신의 사유지인 덕도 신덕리 동구에 건립하였다.

 

●●● 코로나19 감염의 사태를 극복하는 장흥군민의 역사 의식이 돋보인다.
코로나19 감염의 사태로 온 나라가 경직된 삶을 감당하고 있다. 전 국민이 감염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예방 수칙과 사회적 물리적 거리 두기 수행을 일상에서 철저히 지키는 것으로 지구촌에서 모범된 코로나 방역 국가로 인정 받고 있다. 이 과정의 불편함을 국민적인 단결로 지켜 내는 한국인의 국난 극복의 자세는 또 하나의 역사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이렇듯 어려운 시기에 항일 독립 투쟁의 역사를 조명하여 시대의 귀감으로 삼고자 하는 장흥군의 정책과 군민의 호응은 다른 어느때 보다 명료한 역사의식을 반영하는 것으로 국내외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국내 최초로 안중근의사의 기제사를 봉행하는 ‘해동사’ 건립의 의의를 민족적 자긍심으로 승화 하고자 2020년을 ‘해동사 참배의 해’로 지정한 그 의의는 코로나19의 사태로 역동성을 발휘하고 있지 않지만 오래 기억되어야 할 사안일 것이다.
더불어 장흥문화원의 역점 사업인 “장흥군 항일 의병사”발굴은 그동안 묻혀있던 장흥인들의 항일 투쟁 지사와 열사들의 행적과 기록을 확인하여 2019년에는 13명의 독립운동 지사들의 후손이 대통령 표창을 받는 성과로 이어졌다. 이 사업은 향후 지속적으로 전개되어 그동안 묻혀지고 잊혀졌던 장흥인들의 애국 지사들과 항일 독립 지사들의 행적이 조명되어 군민 모두가 존경하고 공유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 근대 장흥의 개화를 앞당긴 회진면 덕도德島(명덕明德) 역사 이야기
덕도는 회진항과 연계된 섬(島嶼)이었다. 덕산리, 장산리, 대리, 신상리, 신덕리 5개 마을이 덕도라고 불리었으며 또 다른 섬인 노력리까지 포함되어 그 지역을 덕도 혹은 명덕이라고 지칭 하였다. 지리적으로는 장흥의 남단이며 섬이라는 특성 때문에 1964년 연륙이 되기까지는 주민들의 일상 생활이 많은 제약을 받는 오지奧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러한 지리적 여건에도 불구하고 덕도 주민들의 역사 의식은 장흥군 전역에서 가장 진취적이고 개성적인 면모를 보여 주었으며 특히 일제강점기를 전후한 근대사의 변환기에는  민족성이 투철하고 일찍이 개화를 수용한 선진 의식을 보여 주었다.
그 중에서도 덕도 주민들의 개화의식과 교육열은 대단하였다.
회진면 근대 교육의 시원은 장덕長德 신학술강습회가 그 효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1909년 김재계 선생께서 5월에  신상리에 장흥교구사범 198호 강습소를 개원하여  이어서 연정리蓮亭  연지리蓮池에도 설립 수백명의 청년 자제들에게 신문화를 교육 하였다.
그 후 천도교가 주축이 되어 시작한 신학술강습회는 덕도사립양영학교로부터 출발 하였다. 1921년 천도교리 강습회장을 지낸 바 있는 김병후 명의로 인가를 신청하여  당시 조선총독부 전라남도 지사로부터 인가를 얻었고 매년 갱신하여 1924년까지 운영 되었다. 그러나 총독부에서는 천도교 교인들의 주축이 되어 민족 정신을 구현하는 강의를 빌미 삼아 인가를 보류 하였다.
덕도 주민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1930년 덕도 신상리 천도교 교회당에서 덕도 간이 학교를 개설하여 그해 4월 19명의 학생을 모집 하여 개교 하였다. 이 학교가 명덕초등학교의 전신인바 덕도의 신식 교육의 시초는  111년의 놀라운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민족 종교인 천도교의 교리와 민족 자정의 의식으로 출범한 간이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항일의 의식 교육과 근대의 시대에 대응하는 개화의 교육 과정으로 덕도 주민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었다.

●●● 덕도와 천도교 그리고 일제강점하의 민족 독립운동의 산실
덕도와 천도교의 상관 관계는 유추하기 어렵다. 이 부분은 보다 심층적인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여 진다. 일찍이 1906년 (포덕布德47년) 장흥의 천도교인들은 장흥군 부내면 교촌리에 (현 장흥읍 교촌리) 천도교 교구를 창립하고 각 면단위에 전교실을 세워 신앙과 전도에 대대적으로 정진하였다. 장흥이 낳은 천도교 지도자이며 독립운동가인 김재계(1888-1942) 선생 같은 탁월한 인사들이 주축이 되어 무인멸왜. 독립성취 기도와 시천주 주문이 덕도 일원을 덮는 듯이 기세를 올렸다.
덕도의 천도교인들과 주민들은 기도와 주문을 외우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물심양면으로 항일 독립 운동의 대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덕도의 신덕마을 앞에는 2006년에 조성된 “독립자금헌성기념탑”이 그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당시 천도교 중앙본부에서 중임을 맡고 있던 김재계 선생을 비롯하여 김재반, 황생주, 황 업주 등 동지들과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하여 중앙본부에 전달 하였다.
1918년을 전후 해서는 3.1독립만세운동이 비밀리에 추진되고 있었으며 이에 그 해 3월6일 군내郡內에서 모금한 거금 5백원을 전달 하였다. 이 자금으로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인쇄하여 서울에서 전남 일원으로 날라다가 비밀리에 배부하는 역활을 감당하였다. 그런 연유로 전국적인 독립만세 운동의 거사일인 3월 1일에는 정작 조직적인 만세 운동에 동참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3월15일을 전후 해서 장흥의 만세 운동을 주도한 천도교의 지도자들과 장흥의 애국 지사들은 일경日警과 헌병憲兵의 대대적이고 치밀한 감시와 탄압으로 소기의 성과는 거두지 못했지만 지속적이고 산발적인 기습 만세 시위로 장흥인의 기개를 보여 주기도 하였다.
3.1독립만세운동의 후유증으로 일제의 탄압이 문화 침탈 내선일체의 고도화된 모양으로 전개되고 조직적인 감시는 강화 되었다, 그러나 덕도의 주민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1936년을 전후하여 독립자금의 헌성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 열성과 참여는 가히 놀라울 정도였다. 당시 무려 235인의 주민들이 헌성 모금을 하였으며 그렇게 모금된 자금은  관산 대평리 거주 김영화 교인의사敎人義士와 회진 명덕 거주 한오화 교인의사敎人義士 두분이 부인婦人의 처지임에도 불구 하고  회진에서  영산포까지 걸어가는 고행을 마다하지 않고 일경과 왜헌병의 감시를 피해 중앙본부에 전달 하였다.

   

▲독립자금을 헌성한 이들에게 교부된
은동장銀銅章. 당시 은장을 교부 받은 헌성액은
논 서마지기 값에 해당 하였다고 한다.

독립자금 헌성은 일경日警에게 정보를 주지 않기 위해서 액수를 표기 하지 않고 은동장銀銅章을 교부交付 하는 것으로 구분 하였다. 전래 하기로는 당시 은장銀章의 헌성액은 논 서마지기 값에 해당 하였고 동장銅章은 논 한마지기 값 정도 였다니 명덕 인근과 장흥 천도교인들의 독립에 대한 열망과 참여의 열기를 짐작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느 교인은 전재산을 헌성하고 고용살이를 하면서 생개를 유지 하였다니 이들의 독립에 대한 간절함을 유추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렇듯 장흥의 남녁 덕도의 주민들이 보여준 민족 정신과 항일 독립의 의지가 처절하게 투영된 역사는 묻혀 가는 듯 했지만  2006년을 전후 하여 회진 신덕리의 김제현 선생이 앞장 서고 덕도의 주민들이 합심하여 “독립자금헌성기념탑”을 건립하여 그 사실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장흥인들은 문림의향의 향맥을 선양하면서도 회진면 신덕리에 소재한 “독립자금헌성기념탑”의 존재를 모르고 있다.
지난 4월 28일 장흥문화원의 임원들과 회진면 회원들이 “독립자금헌성기념탑”을 찾아 주변 정화와 청소를 하고 참배하였다. 장흥문화원의 금번 행사는 잊혀져 가는 문림의향의 향맥 그 현장을 보존 선양 하겠다는 취지에서 시작한 첫 행사였다. “독립자금헌성기념탑”을 관리하고 있는 김제현 선생의 차남인 김생씨(독립자금헌성유족회 회장)는 외부인이 찾아와 관심은 물론 주변의 정화 작업을 하는 현장에서 감격해 하였다.
더불어 이 ‘독립자금헌성기념탑’이 장흥읍의 동학농민혁명기념관 혹은 천도교 장흥교구 근처로 이전 복원되어 더 많은 장흥인들이 찾아오는 역사적 유적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피력하였다.

●●● 덕도德島(명덕明德)의 역사를 확인하는 주민들의 기록記錄 문화
 -덕호가 가사가 들려 주는 민족 정신

‘덕호가’ 이 노래의 가사가 어디에서 유래 되었고 누가 지었는지 확인이 되지 않고 있다.
이 노래의 가사는 덕도의 덕산리 주민들이 1992년 필사하여 단면으로 편집 간행한 70여쪽의 향토지鄕土誌 맨 앞 3쪽에 수록되어 있다. 한 마을의 주민들이 손으로 직접 쓰고 제책하여 마을의 역사인 향토지를 간행 하였다는 사실이 놀라웁다. 이 간행물에는 덕산리의 풍속 현황과 마을 주민들의 활동 내용이 비교적 소상하게 기술되어 있다. 더불어 사는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일찍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한 땀 한 땀 엮었다는 사실이 역시 덕도의 깨어 있는 주민 의식의 발로가 아닌가 싶다.
특히 덕호가의 가사 그 내용이 심상치 않게 다가온다. 절절이 나라 잃은 비분강개를 직시하고 떨쳐 일어나 독립을 쟁취 하려는 간절하고 당당한 의지가 담겨 있다. 이 노래를 누가 짓고 곡을 붙였는지 그 유래를 확인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덕호가
1. 피가 끓는 이십세기 덕호 청년아 깨어라 어서 깨어라 작야 춘몽을 (후렴) 이 지경이 당한 것이 절통 하거든 힘을 모아 일을 하자 개척 시키자
2. 금수강산 삼천리는 뉘의 땅이며 삼천여만 백의민은 뉘의 자손인가

 

 

 

▲덕산리 향토지 (표지 사진)
1992년 덕도의 덕산리 주민들이 필사로 간행한 마을지.
마을의 풍속,인물 산업 등을 정리하였으며 주목받는 노래 “덕호가”가 수록되어 있다.

   

  ▲명덕향토사 (표지 사진)
1995년 덕도의 주민들이 간행한 450여쪽 분량의 향토지.덕도 주민들이 일구어온 역사를 체계적으로 발굴정리하였다. 주민들이 자율적으로 간행한 마을
     

 

 

 

 

 

 

 

 

 

 

 


 

 

 

 

 

 



1995년 덕도의 주민들은 또 하나의 역사적 기록문화를 완성하였다. 무려 450쪽에 이르는 “명덕明德(덕도德島)향토사鄕土史”지誌를 간행 하였다.
전문인들이나 전공 학자들이 거들어 주지 않고 순전히 덕도의 주민들이 발로 뛰어 잊혀지고 숨겨진 향토사를 발굴 정리 하여 간행한 쾌거였다. 명덕 향토사에는 덕도 주민들이 갑오동학농민혁명 당시부터 항일 독립운동에 이르는 치열하고 당당했던 국난극복의 역사를 촘촘히 기록 하였다.
덕도 신덕리 출신의 소설가 한승원은 이 향토지의 서문에 이렇게 쓰고 있다.
“1925년을 전후하여 천도교 청년회는 대대적으로 계몽운동을 펼쳤다. 신상리 2구 중촌에 양영학교를 세우고 물산장려운동과 저축운동을 펼쳤다. 그 결과로 우리 덕도는 섬이라는 불리한 조건 속에서도 다른 인근의 여늬 마을보다 훨씬 빨리 깨어날 수 있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도 그 동학의 뿌리로 말미암아 눈을 빨리 뜨게 되었다고 늘 고마워하고 그 고마움에 대한 채무의식을 가지고 있다”

●●● 장흥군의 전략사업 국가위인공원의 주인공은 장흥의 선인들이어야 한다.
장흥군에서는 해동사를 성역화 하여 선양하고 나아가서는 국가위인공원을 조성하여 역사의식을 바로 세우겠다는 전략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국가위인공원, 그 공원의 주체는 명망있는 인물들 중심이 아니라 우리 장흥 땅 곳곳에서 이름없이 국난의 극복에 헌신한 선인들이 먼저 선양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덕도의 역사가 조명하는 것 같이 장흥의 역사속에서 스러져 간 무명의 위인들을 발굴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장흥의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 그 일이야말로 곡절많은 이 시대를 극복하는 문림의향 장흥인들의 소명이 아닐까.
/취재 정리 :김석중(소설가) 황월연(장흥문화원 부원장, 전 장흥군의회의장)


 
   
   
▲지난 4월28일 장흥문화원 임원들이 문림의향의 향맥을 조명 선양하기 위하여 독립자금헌성기념탑 주변 정화와 청소 작업하고 참배를 하였다.
   
▲명덕초등학교/ 장흥군 관내 최초의 사립 신식 교육 기관. 그 역사가 99(혹은 83년)년이 되었으며 덕도의 청소년들에게 민족의식과 계몽 신식교육을 실시하여 이 지역의 개회에 크게 기여 하였다.

 

 

출처_http://www.jh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60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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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문화원(원장 고영천)이 지난 4월 28일 장흥문화원 이사 운영위원들과 함께 회진면 신상리에 있는 ‘독립자금헌성기념탑’에 정화활동을 진행했다고 4일 밝혔다.

전남 장흥군은 안중근 의사의 추모하는 전국유일의 사당 해동사를 비롯해, 동학농민전쟁 4대 전적지인 석대들이 있는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 때문에 장흥은 ‘의향’으로도 불린다.

독립자금헌성기념탑은 독립투쟁 당시 장흥군 회진면 명덕을 주축으로 손의암 도주의 교령에 의해 235명의 의사들이 독립자금 모금에 헌신한 것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모금에 참여한 사람들은 일제의 혹독한 탄압과 착취, 총칼의 세월 속에서도 한 줌, 두 줌, 좀도리 쌀을 모으고, 논밭을 팔고, 금반지와 은반지를 모으고, 고추알 바람 속에서 김 한 속, 두 속 모아 상해로 보낼 독립자금을 모금했다. 이때 만일을 위해 헌성자들의 내역을 금액 대신 금동, 은동 훈장으로 명시했다.

김생(독립자금헌성유족회장)은 “이러한 독립자금 헌성에 참여했던 선조들의 숭고한 업적을 묻혀둘 수 없어, 2001년 2월 12일 독립자금헌성 유족회가 결성 회장으로 김제현 씨를 추대했고, 2006년 10월 30일에 독립자금헌성기념탑을 건립했다고 밝혔다. 



이 기념탑은 당초 동학혁명기념탑 부근에 건립하려 했지만, 유족들의 뜻에 따라 독립자금의 최초 모금처였고 시발지였던 회진면 신상리에 건립하기로 하고 2008년 5월 15일에 제막식을 진행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장흥군 회진면 신덕리에 있는 독립자금헌성기념탑이 ‘의향장흥’의 자랑이며, 많은 이들이 볼 수 있는 장흥동학농민혁명기념관 앞 공원이나 장흥천도교당 근처로 오기를 후손들은 원하고 있었다. 기념탑 앞 비석에는 회진면 출신 한승원 작가의 글이 이렇게 새겨져 있다.

‘지나가는 나그네여 발을 멈추고 우리 선인들의 꿋꿋한 발걸음을 읽으십시오. 하늘로부터 열린 태극의 길(道)은 땅과 바다로 명덕(옛 덕도)사람들의 가슴으로 흘러 꽃으로 피어났습니다'

'일제의 혹독한 탄압과 착취, 그 무지막지한 총칼의 세월 혀를 깨물면서 보릿고개 배고픔 속에서도 허리띠 졸라매고 한 줌 두 줌 좀도리 쌀을 모으고 논밭을 팔고 눈물로 마련한 금반지 은반지를 빼고 고추알바람 속에서 건진 김 한 속 두 속 모아 상해로 보냈습니다'

'그 가시밭 헤치고 나아간 우리 선인들의 발걸음을 영원히 기리고 청사에 남기고자 후손들은 가난한 호주머니를 털어 이 조그마한 돌을 놓습니다‘ {글: 신덕리(해산) 한승원 문학작가}

장흥문화원은 최근 2년간 ‘문림의향 장흥역사자원 발굴조사’사업의 결과로 장흥군 독립운동가 전수조사 자료집 "의향장흥의 역사와 인물 1900~1945"를 펴냈으며 그 결과로 장흥군 출신 독립운동가 13명 독립유공자로 포상 받는 데 크게 기여한 바 있다.

출처 : http://www.newsworker.co.kr/news/articleView.html?idxno=698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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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군 거주 유족 3명에 정부포상 전수

 

 

장흥군은 지난 17일 제101주년 3·1절 계기 정부포상 전수식을 가졌다. 코로나19 위기 단계 발령을 감안해 포상 전수 유족과 일부 내빈만을 초대해 행사를 진행하였다.

이날 대통령표창을 전수받은 독립운동가는 3명이며 독립운동 당시 20대 청년들로 각 마을에 농민야학을 조직해 한글을 가르치는 한편 농민권리 투쟁을 벌이며 독립사상을 고취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표창 대상자로 선정되었다.

장흥군 출신으로 제101주년 3·1절 계기 정부포상 대상자는 총 12명이나, 현재 군에 거주하고 있는 유족 3명에 대해서만 대통령표창을 전수하였으며, 군 출신 독립유공자는 43명이 되었다.
이는 장흥문화원(원장 고영천)과 장흥항일독립운동기념사업회(회장 이영권)에서 지속적으로 독립유공자 발굴에 애쓴 결과이며, 특히 장흥문화원의 고영천 원장과 문충선 이사는 독립정신을 선양한 공로를 인정받아 광주지방보훈청(청장 하유성) 으로부터 감사장을 수여받았다.

정종순 군수는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님들께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드린다.”며, “의향 장흥의 기치를 바로 세우신 독립유공자들의 뜻을 기리고 최고의 예우로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출처_http://www.jh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60498

 

독립유공자 포상 전수식 개최 - 장흥신문

장흥군은 지난 17일 제101주년 3·1절 계기 정부포상 전수식을 가졌다. 코로나19 위기 단계 발령을 감안해 포상 전수 유족과 일부 내빈만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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淸江遺集-한문학자 이병혁 국역
霽岩集-서예가‧한문학자 이봉준 국역


제암집과 청강유집


 

장흥문화원(원장 고영천)에서는 문림고을 장흥의 역사문화 전통을 선도하기 위해 1996년~7년에 조사 수집하여 <장흥문집해제> 간행으로 고전문집의 현황을 1차적으로 정리하고 2017년 첫 번째 국역문집으로 백진항(白鎭恒.1760~1818)선생의 계서유고(溪西遺稿)발간, 2018년 이민기(李敏琦. 1646~1704)선생의 만수재유고(晩守齋遺稿)를 발간하고 2019년에 청강유집(淸江遺集. 이승)과 제암집(霽岩集. 정명열)을 출간하여 배포했다.

청강유집을 번역한 이병혁 박사

 

 

 

이번 청강유집 번역 및 주석은 문학박사 아양 이병혁 회장(호남문헌연구회) 주도로 이뤄졌다.

이병혁 회장은 “선조들이 남긴 고전을 우리말로 번역하고 후세를 알리는 것은 후학들의 당연한 의무이자 책임”이라며 “역사 속 묻힌 인물들의 삶과 학문을 기록으로 남기고 문화유산으로 전승하는 것은 또 다른 보람”이라고 말했다.

이병혁 호남문헌연구회 회장은 광주시에서 정년퇴직을 한 뒤 전남대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번역주석서로는 ‘역주지지재유고’(譯註止止齋遺稿)와 ‘역주남파집’(譯註南坡集)이 있으며, 연구논문으로는 ‘전라도 장흥 도호부 수군 만호진 회령포 연구’와 ‘임진왜란 중 전라도 수군의 역할과 승전요인’ 등을 발표했다.

제암집은 서예가이며 한문학자인 치인 이봉준 선생이 국역했다. 치인은 40년에 가까운 수련으로 오체(전서, 예서, 해서, 행서, 초서)를 두루 섭렵해 붓끝이 막힘없이 유려하며 정취가 빼어난 서체로 잘 알려져 있으며, 한학에 능통해 지난해 ‘만수재 유고(晩守齋 遺稿)’를 국역하기도 했다.

 

 

청강유집- 이승의 시문집




조선중기 학자인 이승(李昇)은 자는 경첨(景瞻)이고 호는 청강(淸江), 본관은 인천이다. 1606년(선조39)년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이괄(李适)의 난(1624, 인조2)에 창의하는 등 충의와 지절(志節)로 이름이 높았다. 1625년(인조3)에 유일로 천거되어 계공랑(啓功郞)인 상서원 직장(尙瑞院直長)에 제수되었고, 만년에는 독역정(讀易亭)을 짓고 후학양성에 힘썼다. 사후에 장흥의 금계사(金溪祠)와 당곡사(唐谷祠)에 향사되었으며, 문집으로《청강유집(淸江遺集)》이 있다.

시문집인 청강유집(淸江遺集)은 상·하 2권 1책 목활자본으로, 이승의 7대손 李邦啓·李達運 등이 편집해 놓은 것을 1932년 종9대손 李敎錫과 10대손 李鶴洙가 간행하였다. 권두에 姜遊의 서문, 권말에 이교석과 이학수의 발문이 있다. 권상에 시9수, 輓 5수, 賦 27편, 書 1편, 권하에 策問 2편, 論 1편, 제문 2편, 부록으로 行錄·묘표 각 1편, 시 3수, 만사 2수, 祝文·文集跋·遺事跋·別廟上樑文·永錫齋重修記 각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용산면 어산리에 있는 영석재는 1700년경 淸江 李昇(1556∼1628)을 追慕하기 위해 건립하여 1912년 현재의 모습으로 重修되었다.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69호(1984. 2. 29) 이다. 齋내에 있는 사당인 唐谷祠는 1917년에 設壇하여 제향 하여 오다가 1962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건립되었다. 이곳에는 청강 이승을 주벽으로 宣武功臣 李種仁(1565∼1593), 守義齋 李孟(?∼1593), 世忍軒 李昌命(1647∼1721), 日省齋 李希曾(1690∼1755), 恕菴 李宗旭(1717∼ 1770), 東谷 李復淵(1768∼1846), 止止齋 李商啓(1758∼1822), 南坡 李僖錫(1804∼1889) 등 9인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이곳 唐谷 乾坐에 이승과 부인 靈光金氏의 雙墳이 있다.

또한 부산면에 있는 금계사는 1788년(정조12)에 恭度公 李文和(1358∼1414)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부산면 금장마을에 창건된 鄕祠宇이다. 1868년(고종5) 대원군의 서원훼철령에 따라 훼철되었으나, 1901년 築壇復設하고 淸江 李昇(1556∼1628), 晩守齋 李敏琦(6146∼1704)를 추배하였다. 그 후 1981년 8월 애그니스 태풍으로 인해 사우 및 부속건물 일체가 유실되어 원래의 터에 복건 할 수 없게 되자, 현재의 부산면 신현(新峴) 마을에 있는 李貴秀의 재실 則孝齋 위에 옮겨 건축하였다. 매년 음력 3월 13일 지역 유림이 제향하며, 1990년 江東縣監을 지낸 李信立(1595∼1672)을 추배하고, 1982년에 神室, 內外 三門, 講堂을 竣工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곳 薪峴 酉坐에 李貴秀와 부인 河東鄭氏가 合窆되어 있다.


 

 

제암집-정명렬 유집 치인이 국역

제암집을 번역한 치인 이봉준



 


한편 제암집(霽岩集)은 3권 1책. 목활자본. 1792년(정조 16) 7대손 수익(修翼)이 편집, 간행하였다. 권말에 수익의 후지(後識)가 있다. 규장각 도서·장서각 도서 등에 있다.

권1·2에 시 98수, 연기(年紀) 1편, 잡저 1편, 권3에 부록으로 행장 1편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시운이 청아하고 품격이 고상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석순(石蓴)을 시제(詩題)로 하여 아이들이 나물캐는 풍경을 읊은 「석순」이나, 정월에 아이들이 윷놀이하는 광경을 다룬 「관아배사희(觀兒輩柶戱)」 등은 당시 민속을 살피는 데 다소 도움이 된다.

「송강임보입일본(送姜任甫入日本)」은 일본으들어가는 강임보를 보내며 그의 용맹과 충의를 칭찬하고 석별의 정을 나타낸 것이다. 그 밖에 임진왜란이 끝난 뒤의 감회를 읊은 「출란후문가성감제(出亂後聞歌聲感題)」 2수와, 역사적인 인물을 시로 논한 「애제갈(哀諸葛)」·「독시황기(讀始皇記)」·「양비(楊妃)」 등이 있다. 「연기」는 저자의 연보로서, 임진왜란 당시 의병의 활동상황이나 모병(募兵)·모곡(募穀) 등에 관한 사실들이 담겨 있어 참고자료가 된다.

이번 제암집(霽岩集)은 장흥문화원이 보관 중인 1815년 반산세고와 함께 감행된 영인본을 참고하여, 4권 1책의 시집인데 권지일(卷之一) 시집은 오언율시(五言律詩) 9수, 칠언절구 56수, 칠언율시(七言律詩) 16수, 칠언배률(七言排律) 3수이며, 권지이(卷之二)는 년기(年記)와 집저(集著) 천방유선생행장(天放劉先生行狀), 권지삼(卷之三)은 행장(行狀), 권지사(卷之四)는 사우록(師友錄)이며 이를 서예가이며 고문연구가인 치인 이봉준 선생이 번역했다.

제암공은 장동면 반산리에서 태어날 때 사자산이 세 번 울었다고 한다. 공의 휘는 명월(鳴說)이요 자는 제경(帝卿)이며 호는 제암(霽巖)이다. 아버지 경달(景達)은 관(官)이 통정(通政)으로 예조참판에 중직되고 선무원중공에 기록되었다. 어머니 진주(晉州) 정씨는 참봉원의 손녀이다.

학자인 정명열(丁鳴說)선생은 1606년(선조 39)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광해군이 즉위하여 대북파가 득세하자 정치에 뜻을 버리고 실명하였다는 핑계로 두문불출, 10년간 오로지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하늘은 우러러 “햇빛이 밝아질 때 내 눈도 밝아질 것이다”라고 하여 실명을 자칭한 이유를 설명한 학자이다.

고영천 문화원장은 “문림 장흥의 인문적·학문적 기반을 살피는데 중요한 문집을 출간하는데 수고해 준 치인 이봉준 서예가와 김희태 전 전라남도 문화재위원, 아양 이병혁 선생에게 감사드린다” 며 “앞으로 지속적으로 ‘정남진 장흥 고전국역사’ 간행을 지속적으로 발간할 수 있도록 예산이 좀 더 확충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김용란 기자

 

출처:http://www.jhtoday.net/news/articleView.html?idxno=3809

 

장흥문화원 淸江遺集‧霽岩集 발간 - 장흥투데이

장흥문화원(원장 고영천)에서는 문림고을 장흥의 역사문화 전통을 선도하기 위해 1996년~7년에 조사 수집하여 간행으로 고전문집의 현황을 1차적으로 정리하고 2017년 첫 번째 국역문집으로 백진항(白鎭恒.1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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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군 출신 독립유공자 43명으로 증가

독립운동가 최두용-맨 앞 중앙

독립운동가 임도진 선생

 

독립운동가 길덕동 선생

 

 

장흥문화원(원장 고영천)은 2020년 3.1절 계기로 장흥군 출신 독립운동가 12명이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았다고 전했다.

이로써 장흥군 출신 독립유공자는 43명으로 늘었다.

1934년 이른바 사회주의독립운동 비밀결사 ‘전남운동협의회’ 사건으로 투옥돼 옥고를 치른 독립유공자는 고삼현, 최두용 선생을 비롯해 강상국(대덕읍 연정리), 고복동, 손영현(이상 대덕읍 신월리), 김개성(용산면 덕암리), 길덕동(장평면 양촌리), 임도진(장평면 등촌리), 이길원, 이길종, 이천흠(이상 용산면 어산리), 이영대(용산면 인암리) 선생 등이 있다.

이들은 독립운동 당시 20대 청년들로 각 마을에서 농민야학을 조직하여 한글을 가르치는 한편 농민권리 투쟁을 벌이며 독립사상을 고취했다.

또한 박기평 선생은 장흥군 출신으로는 특이하게 1940년 11월 충남 대전 등지에서 활동하다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징역 1년 옥고를 치렀다.

한편, ‘전남운동협의회’ 사건 당시 주도적으로 독립운동을 펼치다 징역 2~3년의 옥고를 치른 유재성(용산면 접정리), 문병곤(용산면 어산리) 선생이 이번 독립유공자 포상 대상에서 제외돼 지역사회에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해방 후 사회주의 활동 경력이 있어 제외된 것은 문재인 정부의 확장된 독립운동가 포상 정책에 어긋난다는 평가다.

1910~20년대 항일의병으로 활동한 임학현, 임규현 선생(장평면 내동리)과 노전석 선생(장평면 녹양리)도 당시 장평주재소를 습격하고 독립자금을 모집하는 등 독립운동 공적이 확실함에도 포상에서 제외된 것으로 알려졌다.

장흥항일독립운동기념사업회(회장 이영권)는 포상에서 제외된 인물들의 독립운동 공적을 보완하여 재심을 청구할 방침이다. 국가의 독립유공자 포상과 관계없이 200여명에 이르는 장흥군 독립운동가들을 위한 선양 사업을 해나갈 계획이다.

한편 장흥문화원은 최근 ‘문림의향 장흥역사자원 발굴조사’사업(장흥군 지원)의 결과로 장흥군 독립운동가 전수조사 자료집 <의향장흥의 역사와 인물 1900~1945>를 펴냈다. 장흥문화원은 이 책자를 바탕으로 장흥군과 장흥항일독립운동기념사업회, 그리고 현장활동력이 풍부한 장흥문화공작소와 협력하여 지속적으로 독립운동가를 발굴, 국가에 포상을 신청할 계획이다.

 

출처 : http://www.jhtoday.net/news/articleView.html?idxno=3751

 

장흥군 출신 독립운동가 13명, ‘독립유공자’ 포상 - 장흥투데이

장흥문화원(원장 고영천)은 2020년 3.1절 계기로 장흥군 출신 독립운동가 12명이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았다고 전했다.이로써 장흥군 출신 독립유공자는 43명으로 늘었다.1934년 이른바 사회주의독립운동 비밀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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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문화원(원장 고영천)은 2020년 3‧1절 계기로 장흥군 출신 독립운동가 12명이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았다고 전했다.
이로써 장흥군 출신 독립유공자는 43명으로 늘었다.
1934년 이른바 사회주의독립운동 비밀결사 ‘전남운동협의회’ 사건으로 투옥돼 옥고를 치른 독립유공자는 고삼현, 최두용 선생을 비롯해 강상국(대덕읍 연정리), 고복동, 손영현(이상 대덕읍 신월리), 김개성(용산면 덕암리), 길덕동(장평면 양촌리), 임도진(장평면 등촌리), 이길원, 이길종, 이천흠(이상 용산면 어산리), 이영대(용산면 인암리) 선생 등이 있다.

 

▲2020년 3‧1절 계기로 장흥군 출신 독립운동가 12명이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았다. ⓒ장흥문화원

 

이들은 독립운동 당시 20대 청년들로 각 마을에서 농민야학을 조직해 한글을 가르치는 한편 농민권리 투쟁을 벌이며 독립사상을 고취했다.

또한 박기평 선생은 장흥군 출신으로는 특이하게 1940년 11월 충남 대전 등지에서 활동하다 체포돼 서대문형무소에서 징역 1년 옥고를 치렀다.

한편, ‘전남운동협의회’ 사건 당시 주도적으로 독립운동을 펼치다 징역 2~3년의 옥고를 치른 유재성(용산면 접정리), 문병곤(용산면 어산리) 선생이 이번 독립유공자 포상 대상에서 제외돼 지역사회에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해방 후 사회주의 활동 경력이 있어 제외된 것은 문재인 정부의 확장된 독립운동가 포상 정책에 어긋난다는 평가다.

1910~20년대 항일의병으로 활동한 임학현, 임규현 선생(장평면 내동리)과 노전석 선생(장평면 녹양리)도 당시 장평주재소를 습격하고 독립자금을 모집하는 등 독립운동 공적이 확실함에도 포상에서 제외된 것으로 알려졌다.

장흥항일독립운동기념사업회(회장 이영권)는 포상에서 제외된 인물들의 독립운동 공적을 보완하여 재심을 청구할 방침이다. 국가의 독립유공자 포상과 관계없이 200여명에 이르는 장흥군 독립운동가들을 위한 선양 사업을 해나갈 계획이다.

한편 장흥문화원은 최근 ‘문림의향 장흥역사자원 발굴조사’ 사업(장흥군 지원)의 결과로 장흥군 독립운동가 전수조사 자료집 <의향장흥의 역사와 인물 1900~1945>를 펴냈다. 장흥문화원은 이 책자를 바탕으로 장흥군과 장흥항일독립운동기념사업회, 그리고 현장활동력이 풍부한 장흥문화공작소와 협력해 지속적으로 독립운동가를 발굴, 국가에 포상을 신청할 계획이다.

 

출처_http://www.pressian.com/news/article/?no=281746&ref=kko

 

장흥군 출신 독립운동가 12명 ‘독립유공자’ 포상

장흥문화원(원장 고영천)은 2020년 3‧1절 계기로 장흥군 출신 독립운동가 12명이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았다고 전했다. 이로써 장흥군 출신 독립유공자는 43명으로 늘었다. 1934년 이른바 사회주의독립운동 비밀결사 ‘전남운동협의회’ 사건으로 투옥돼 옥고를 치른 독립유공자는 고삼현, 최두용 선생을 비롯해 강상국(대덕읍 연정리), 고복동, 손영현(이상 대덕읍 신월리), 김개성(용산면 덕암리), 길덕동(장평면 양촌리), 임도진(장평면 등촌리), 이길원, 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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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주석서 낸 아양 이병혁 호남문헌연구회 회장
조선 중기 장흥 이승 시문집 ‘청강유집’ 번역
지역 문인 업적 발굴 및 조명·삶의 태도 시사도

 

조선 중기 장흥 출신 학자 이승 선생의 시문집 ‘청강유집’을 번역 주해한 직계 자손 아양 이병혁 호남문헌연구회 회장.

 

 

“직계 조상의 문집을 직접 번역하게 돼 의미가 남다릅니다. 큰 바위를 작은 정(釘)으로 뚫는 심정으로 번역에 임했죠. 독자들의 질책이 두렵기도 하지만 국역문집을 세상에 내놓게 돼 기쁩니다.”

장흥문화원이 조선 중기 장흥 출신 학자 이승(李昇·1556∼1628) 선생의 시문집 ‘청강유집’(淸江遺集·다큐디자인刊) 전문을 번역 주해해 출간한 가운데 번역 및 주석을 맡은 문학박사 아양 이병혁 회장(호남문헌연구회)은 이처럼 소감을 밝혔다.

‘정남진 장흥 고전국역총서 간행사업’으로 마련된 이번 국역문집은 전남 장흥의 대표적 역사인물의 고전문집을 찾아 시대에 맞게 한글로 번역, 문림의 전통을 계승하기 위해 진행됐다.

지난 2017년 백진항 선생의 ‘계서유고’(제1집)에 이어 2018년 이민기 선생의 ‘만수재유고’(제2집)를 펴냈다. 이번에 펴낸 ‘청강유집’은 ‘제암집’과 세트(제3집)로 발간될 예정이었으나 미리 세상에 나오게 됐다.

그에 따르면 이승 선생은 조선 중기 인물로, 성장 당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인목대비 폐비사건, 인조반정, 일괄의 변란 등 크고 작은 정치적 풍파를 거친 인물이다.

이롭지 못한 일이 닥쳤을 때 붓으로 항거해 기절(氣節)이 뛰어나는 점 때문에 청강(淸江) 선생으로 불렸다고 한다.

 

조선 중기 장흥 출신 학자 이승 선생이 쓴 ‘청강유고’ (전남대학교 도서관 소장).

 

그의 학문 정신과 시대를 통찰하는 시선은 오늘날까지 지방의 사림들로부터 추앙받아 사후 전남 장흥의 금계사와 당곡사에 배향되고 있다.

이승 선생이 쓴 ‘청강유집’은 그의 7대손 이방계와 이달운 등이 편집해놓은 것을 1932년 9대손 이교석과 10대손 이학수가 간행, 상·하 총 2권 1책 목활자본이다. 권두에 강유의 서문, 권말에 이교석·이학수의 발문이 수록됐다.

이번에 펴낸 국역문집 ‘청강유집’은 전남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된 ‘청강유집’을 번역한 것으로, 권상에 시 9수를 비롯해 만 5수, 부 26편, 서 1편이, 권하에 책문 2편, 논 1편, 제문 2편이 다뤄졌으며, 부록으로 행록·묘표 각 1편, 시 3수, 만사 2수, 축문·문집발·유사발·별묘상량문·영석재상량문 각 1편을 포함해 원문과 번역문, 해설 등이 수록됐다.

이 회장은 “이승 선생이 활동했던 시대를 이해하고, 그의 사상과 학문적 특성을 살펴볼 수 있는 것은 물론, 그동안 미진했던 연구에 보탬이 된다는 데 의의가 있다”며 “물질 문명의 발달과 개인주의가 팽배한 현 시대에 올곧은 지조와 절개를 고수했던 이승 선생의 삶의 태도는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역사적으로 유명한 이들의 업적 만을 돌아보는 분위기를 언급하며 앞으로 묻혀있는 인물들을 조명해 이들의 경험을 축적했으면 한다는 주장을 내비쳤다.

 

‘청강유집’ 번역주석서

 

“각 지역마다 학문적, 기질적으로 본받을 만한 업적을 기릴 인물들이 많지만 묻혀있는 이들을 발굴해 조명하기 보다 알려진 이들을 재조명하고 있죠. 장흥 지역 고전국역총서 간행사업처럼 지역의 숨은 인물들을 발굴하는 것이 계속됐으면 합니다. 이를 통해 지역 문인들의 업적을 발굴, 조명하는 한편, 문림의향의 고장 장흥의 진가를 알리는 발판이 됐으면 합니다.”

한편, 이병혁 호남문헌연구회 회장은 광주시청에서 정년퇴직을 한 뒤 전남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번역주석서로는 ‘역주지지재유고’(譯註止止齋遺稿)와 ‘역주남파집’(譯註南坡集)이 있으며, 연구논문으로는 ‘전라도 장흥 도호부 수군 만호진 회령포 연구’와 ‘임진왜란 중 전라도 수군의 역할과 승전요인’, ‘장흥지역문집의 간행실태 비교고찰’ 등이 있다.

 

출처_http://www.gwangnam.co.kr/read.php3?aid=1582794735350189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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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천팔경과 암각문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지난 10일, 장흥 지역의 고문헌 사진 자료와 민요 채록 자료를 장흥문화원에 기증하기 위하여 방문한 홍순석 교수는 위황량 선생(장흥문화원 고문)과 위종만 사무국장(장흥문화원)과 함께 천관사와 장천재를 탐방했다고 14일 밝혔다.

홍순석 교수는 1989년과 1990년에 강남대학술조사단을 이끌고 장흥지역 문화유적과 민요 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천관사의 사지인 『지제지』원본을 처음으로 발견하여 제보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도립공원인 천관산과 장천계곡은 옛날부터 호남 지역의 대표적인 명승지로 각광을 받아온 곳이다. 장천계곡은 존재 위백규선생의 유적인 장천재 주변의 계곡으로 ‘장천재팔절(長川齋八絶)’로 회자했다.



장천팔경과 암각문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장천재의 현판 가운데 <장천재 팔절(長川齋八絶)>을 기록한 현판이 있어 이를 증빙한다. 이 현판에 제1 청풍벽(淸風壁), 제2 도화량(桃花梁), 제3 운영기(雲影磯), 제4 세이담(洗耳潭), 제5 명봉암(鳴鳳巖), 제6 추월담(秋月潭) 제7 탁영대(濯纓臺) 제8 와룡홍(臥龍泓)이 열거되어 있으며, <장천재 팔절서(長川齋八絶序>에서는 팔절[팔경]을 명명한 연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날마다 보면서 이곳에 있으니 마음이 지경(地境)과 같이 융합(融合)되고 눈이 신비와 꾀하게 되어 오래도록 즐거워하니 없던 이름을 붙여 자연히 그 입에서 나옴을 깨닫지 못한다. 곡구(谷口)의 첫 번 째를 청풍벽(淸風壁)이라 하였으니 세상 사람이 골짜기에 처음 들어와서 청풍(淸風)과 만남이다. 두 번째를 도화량(桃花梁)이라 한 것은 신선을 찾는 자가 도화(桃花)를 따라감이다. 운영기(雲影磯)라 함은 개천에게 맑은가를 묻고 내 마음을 허락하는 것이요, 세이담(洗耳潭)이라 함은 소부(巢父)의 일을 말한 것이요, 명봉암(鳴鳳巖)이라 함은 높은데서 세상을 봄이니 또한 덕성암(德星巖)이라고도 하며, 추월담(秋月潭)이라 함은 성현(聖賢)의 마음을 말하는 것이요, 탁영대(濯纓臺)라 함은 유자(孺子)의 티 없는 노래를 말함이요, 제팔(第八)을 와룡홍(臥龍泓)이라 함은 인간에게 비를 만들어 보냄을 말하는 것과 같다.

이 8개소의 명칭은 모두 팔절(八絶)로서 하늘에 있는 것이요, 억지로 이름 붙인 것이 아니다. 만약 괘(卦)의 이름을 보고 이름 붙이지 않는 것이 적고 이름 붙인 것이 많다고 한다면 이는 참다운 주역(周易)을 알지 못하는 자다.

이 운영기(雲影磯)와 탁영대(濯纓臺)를 영조(英祖) 임오(壬午) 1762년 가을에 한결같이 그 이름을 수(繡)처럼 아름답게 하여 오래도록 전하고자 대강 그 설명을 편다.」

이 서문 뒤에 “맹추하한일(孟秋下澣日)에 계항운민(桂巷耘民) 적고 사락산인(四樂散人) 글씨를 쓰다”라는 관지가 있어 존재 위백규 선생이 글을 짓고, 사락헌 위백침(魏伯琛,1732~?)이 글씨를 썼음을 알 수 있다.


장천팔경과 암각문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 자료는 장천팔경이 존재선생이 1762년(영조38) 음력 7월 하순에 장천팔경을 명명했음을 증빙한다. 이 현판 말미에는 낭서과객(朗西過客)이 초서로 쓴 <팔영(八詠)>이란 제목의 5언 율시가 있다. 내용은 장천팔경의 개괄한 것이다. 옆에 게시된 <팔경판상운(八景板上韻)>은 경인년(庚寅,1890년) 7월에 지부(知府) 민치준(閔致駿)이 지은 팔영시를 판각한 것이다.

장천재 앞의 장천계곡에는 팔경의 명칭을 새긴 암각문이 펼쳐져 있다. 장흥지역의 향토사가인 위성록씨의 블로그에 장천계곡의 암각문을 탐사하고 올린 사진과 글이 있는데, 제3 운영기(雲影磯), 제5 명봉암(鳴鳳巖), 제6 추월담(秋月潭) 제8 와룡홍(臥龍泓) 암각문은 확인되지 않은 채이다.

장천재 앞의 지부(知府) 송기로(宋綺老) 외 2인의 제명기와 장흥위씨 가문의 유지임을 새긴 암각문도 거론 된 바 없다. 운영기(雲影磯) 암각문은 태풍으로 인해 엎어진 상태여서 암각문을 확인할 수 없다고 한다. 이들 암각문은 260여 년간 존치되어 왔다. 기반암의 자연적인 훼손이 더 심각하기 전에 본격적인 현장조사가 필요하다.

해동암각문연구회를 이끌고 있는 홍교수에 의하면, 암각문의 기반암은 대부분 화강암으로 자연 환경에서 3~4백 년 동안 암각된 문자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한다.

장천계곡과 같은 여건에서는 존치 기간이 짧아질 수밖에 없다. 현재로선 3D 촬영과 드론 촬영으로 위치와 원형을 보존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우선, 일실되기 전에 문헌자료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현장조사와 탁본작업이 필요하다. 고문헌에는 천관산에도 다수의 암각문이 존재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암각문이 금석문의 한 분야인 만큼 금석문조사와 함께 추진될 수 있는 과제이기도 하다.

홍순석 교수는 최근에는 전국의 암각문을 조사에 전념하고 있다. 2019년에 『경기도암각문』을 간행했고, 남양주시 보광사 주변에서 추사서 암각문 3점을 발굴하여 공개했다. 금년도 1월에는 삼척 죽서루의 기녀 정매길의 한글 시조 암각문을 확인하여 공개했다. 금년도 상반기에 『강원도암각문』을 간행한다.

1989년과 1990년 2년간 장흥지역의 고문헌 사진자료와 지금은 생존해 계신분이 없을 만큼 소중한 민요 채록 자료와 고문서 원본 촬영 사진, 민속학서적 23권을 장흥문화원에 기증한 내용은 아래와 같다.

또한 전남 장흥문화원 사무국장(위종만)은 지역의 소중한 자산(고문서,서적,구비문학,영상 등)을 디지털로 변환하는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다방면에서 사업비를 마련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출처_http://www.newsworker.co.kr/news/articleView.html?idxno=6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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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20일 장흥군민회관 소회의실…의거 110주년 기념 41점 작품 전시

[광주타임즈] 장흥문화원은 오는 18부터 20일까지 장흥군민회관 2층 소회의실에서 안중근의사 정신계승 서화특별전을 연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는 숭고한 안중근 의사의 정신을 계승하고 국내유일 안중근 사당이 있는 장흥 ‘해동사’를 널리 알리는 기회와 장흥지역 문화유산자원으로서 토대 마련을 위한 서화특별전을 개최하게 됐다.

2019년 올해는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면서 안중근 의사 탄신 140주년이자 하얼빈 의거 110주년을 맞은 매우 의미가 깊은 해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는 서예, 회화, 서각등 장흥출신 37인 작가가 평화를 바라는 안중근 의사의 숭고한 정신을 담아 41여점 작품을 전시하고 하얼빈 의거 11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를 가진다.

전시회 작품들은 장흥을 대표하는 중견작가의 작품들과 (사)한국서가협장흥지부, (사)한국서예협회장흥지부 후원 작품으로 구성됐다.

이번 특별전에는 위황량, 윤수옥, 이정호, 이문갑, 이봉준, 이정호, 안창호, 김선호, 이명진, 이권호 ,이종희, 김채홍, 이영록, 문기봉, 위기환, 임만엽, 박형록, 장근호, 안남식, 이양진, 김만배, 이진홍, 이삼용, 권문옥, 문상일, 남택이, 최병길, 곽태송, 선학, 노종건, 박병호, 임형두, 문재평, 위오남, 이종민, 위경애, 노병두, 위향량(37명)이 출품했다.

고영천 장흥문화원장은 “장흥군에서 안중근의사의 정신을 기리는 서화전이 처음으로 열리는 것은 뜻깊은 일”이라며 “의향 장흥의 저력을 실감하고, 앞으로도 문화가 숨쉬는 ‘길이 길이 흥할 장흥’ 만들기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출처_http://www.gjtnews.com/article.php?aid=1576403826111731031

 

광주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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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흥군, 넘치는 흥과 끼 ‘제4회 장흥군민 공연예술 경연’ 성황

장흥군은 지난 14일 저녁 7시부터 장흥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제4회 장흥군민 공연예술 경연대회'를 개최했다. 장흥문화원(고영천 원장)이 주관하고 장흥군이 후원하는 ‘제4회 장흥군민공연예술경연대회’가 장흥군민 400여명이 모인 가운데 큰 성황을 이루었다.

경연은 장흥군 내 거주하는 공연예술단체 및 개인 등 순수 아마추어들이 모여 노래, 무용, 악기 연주 등 다양한 공연예술을 펼쳐 최고를 가리는 자리로 마련됐다. 다양한 장르에서 본선에 오른 총 12개팀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본선 당일은 심사의 공정성을 더하기 위해 바쁜일정에도 불구하고 각 10개 읍면에서 이장단(130명)이 참여해 관객 평가단을 구성했다.

구성된 관객 평가단은 전자버튼기를 사용해 현장에서 직접 투표하고, 전문 심사위원의 점수를 합산하여 최고 득표를 얻은 팀이 수상자로 결정됐다.

이날 영예의 대상은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큰 박수를 받은 ‘어랑어랑예술단’의 가시버시사랑으로 어린이 민요팀이 차지했다.

트로피와 상금 300만원이 주어졌다.

금상은 심정희 외 36명으로 짜여진 ‘정남진시니어합창단’이, 은상은 장흥고등학교(라그) 김용국 외 1명 동상은 천관퓨전난타 김회옥 외 9명, 천관우리소리 이창님 외 10명 팀에게 돌아갔다.

금상과 은상, 동상을 수상한 팀도 각각 트로피와 150만원, 100만원, 50만원의 상금을 받았다.

수상을 하지 못한 참가팀에게는 각 20만원씩의 참가금이 주어졌고 행운권 추첨을 통해 참여한 관객에게는 따뜻한 기념품을 증정하고 함께 어우러지는 자리를 만들었다.

장흥문화원장(고영천)은 "장흥은 전통적으로 문화와 예술이 살아 숨 쉬는 고장"이라며, "오늘은 우리 문화예술인과 더불어 군민들의 수준높은 작은 공연 문화예술축제입니다. 우리들 서로에게 응원과 관심을 가지고 차가워지는 날씨에 따뜻하고 훈훈한 온기가 전달되기를 소망합니다."고 말했다.

정종순 장흥군수는 “문화예술을 통해 군민 행복을 높여갈 것”이라며, “문화예술공간 조성을 마련하는 데 힘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출처_https://www.wikitree.co.kr/main/news_view.php?id=48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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