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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문화원/2025 언론보도

[언론보도] 특별기고 - 뜨거운 그이름, 어머니

by 장흥문화원 관리자 2025. 5. 15.

김명환 장흥문화원장 / 전 전라남도 교육위 부의장



이세상에 나와 또래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 역시 ‘어머니’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움이 올라오고, 그리움에 왈칵 목이 메인다. 지금은 하늘에 계신 어머니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그리고 보릿고개로 대변되는 절대빈곤의 세월을 나를 들쳐 업고 건너오셨다.

이 세상에 태어난 나는 ‘어머니’라는 이름 석 자를 의지하며, 지독했던 그 시절을 살아냈다. 어머니가 겪으신 고생은 말이나 글로 다 표현할 수 없다. 그래서일까. 남진 씨의 노래 <어머니>가 내 가슴을 두드리고, 태진아 씨의 <사모곡> 첫 소절, “앞산 노을 질 때까지 호미자루 벗을 삼아”만 들어도 눈물이 솟구친다.

‘어머니’는 눈물과 함께 따라오는 단어다. 세 번만 외쳐도 눈물이 나는 이름, 어머니 말고 또 있을까. 어릴 적, 다치거나 아플 때면 “엄마!”하고 울었고, 나이가 들어 힘들고 지칠 때면 어머니를 떠올리며 울었다. 군대에 가서는 어머니라는 글자만 봐도 눈물이 났다. 내가 유독 어머니라는 이름 앞에서 유난히 눈물이 앞을 가리는 이유는, 어머니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고, 좀 더 가까이 가지 못했으며, 좀 더 빨리 철이 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철없던 어린 시절, 잘못을 저질렀을 때 어머니는 회초리를 들긴 하셨지만 차마 종아리를 때리지는 못하고 눈물 고인 눈으로 나를 노려보셨다. 그때 어머니의 두 눈에서 흘러내리던 눈물은 회초리보다도 더 무서웠다.

어머니는 언제나, 어디에 계시든지 사랑으로 흘러 전환 동생을 포함한 일곱 남매의 고향의 강이 되어 주셨다. 장성한 뒤 일에 매달리다 겨우 찾아간 어느 날, 신령님 앞에 정안수를 떠놓고 새벽마다 기도를 드리시던 그 팔순 노모의 굽은 등을 바라보며 나는 어머니의 고단한 세월을 보았다.

‘어머니’는 단지 자녀를 둔 여인을 가리키는 가족 호칭이 아니다. 내 어머니가 사시던 시대의 여성은 출가 전에는 아버지를, 결혼 후에는 남편을,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에는 아들을 따라야 하는 ‘삼종지도(三從之道)’라는 유교적 규범 아래 살아야 했다. 그래서 내 어머니는 평생 이름 없이 사셨다.

결혼 후에는 ‘아버지의 아내’로, 내가 태어난 뒤에는 ‘명환이 어머니’로 불리셨다. 심지어 학교에서도 어머니는 ‘명환이 어머니’라는 호칭뿐이었다. 가장 고된 노릇을 감당하는 분이자, 가장 훌륭한 스승. 살아 있을 땐 태산 같지만 세상을 떠나고 나면 온 세상을 눈물로 덮는 존재, 그분이 바로 어머니다. 자식이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러도 끝내 등을 돌리지 못하는 사람, 그 또한 어머니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고 빅토르 위고는 말했다.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들었다고 유대인은 말한다. 2004년 11월 25일, 영국문화원이 창립 70주년을 맞아 비영어권 102개국 4만 명을 대상으로 ‘가장 아름다운 영어 단어’를 조사했는데, 1위는 ‘Mother’였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직업이 있다면 바로 어머니일 것이다.

누군가는 말했다. 한 여자의 뱃속에서 나와 그 여자의 젖을 먹고 자라며 그 여자의 속을 썩이며 나이 들어가는 우리가 그 여자를 온전히 사랑하지 못한다면 세상 어떤 사랑을 말할 자격이 있겠느냐고. 시인 심순덕은 ‘소리 죽여 우는 엄마’를 보고도 그 눈물의 의미를 몰랐다고 했다. 하지만 자신이 엄마가 되고 엄마가 낡은 액자 속 사진으로만 남았을 때 비로소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존재’임을 알았다고 했다.

시골집에서 치매로 7년을 고생하시다가 이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나신 어머니. 가끔은 문득 나를 부르며 골목길을 돌아오실 것만 같다. 그 흔적이 그리워 어두운 창밖을 바라보다 보면 어느새 그렁그렁 눈물이 고인다.

삶이 고단하고 괴로울 때 눈물 속에서 불러보는 가장 따뜻한 이름, 어머니. 죄 많은 이 아들, 오늘도 고개 숙여 용서를 빕니다.

 


출처 : (장흥투데이)  http://www.jhtoday.net/news/articleView.html?idxno=15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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