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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문화와역사/시도지정문화재39

[명가와 고택을 찾아서] 14. 전남 장흥, 존재-신와-오헌 고택 전통문화의 보고 ‘방촌마을’...名山 정기 받아 길게 흥하다 깨끗하게 잘 정리된 신와고택 안채 뒤툇마루. 튀어나온 큰 바위 때문에 안채와 사랑채의 좌향이 조금 어긋나게 됐다고 한다. 방촌(傍村)은 통일신라 때 정안현, 고려 때 장흥부의 치소였다. 조선조에 장흥 위씨가 들어와 살기 시작해, 오늘날 12뜸에 위씨 110가구가 살고 있다. 작은 마을에 팔경이라면 과한 느낌인데, 방촌 팔경 두 대목만 소개한다. 2경 상잠만하(觴岑晩霞), 저녁밥 짓는 연기가 방촌의 주산 상잠산에 띠 허리를 두른다. 8경 금당귀범(錦塘歸帆), 고깃배가 해질녘 황혼의 기운을 받고 만선으로 돌아온다. 풍요로운 고장이다. 장흥 관산읍은 고려 말 원나라가 왜를 정벌할 때 조선소였다. 천관산의 아름드리 소나무를 수 만 그루 베어 신월마을에.. 2021. 6. 1.
[시도지정 문화재자료 제 272호] 장흥 백산재(회주사) 장흥백산재 (長興 栢山齋) 종 목 문화재자료 제272호 명 칭 장흥백산재 (長興 栢山齋) 분 류 유적건조물/정치국방/궁궐·관아/관아 수량/면적 정면 6칸, 843㎡ 지정(등록)일 2009-03-20 시 대 조선시대 장흥 백산재는 문중재실이다가 장흥위씨 문중의 사우인 하산사(霞山祠)의 강당으로 함께 활용되고 있는 건물이다. 원래 조선후기 장흥부의 관아건물을 2차 이건을 통해 1936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온 것이다. 당시 이건 과정에서는 거의 원형 그대로 옮겼다고 전하고 있다. 백산재는 건축 부재나 결구수법 등으로 보아 조선후기인 19세기경의 건물로 보인다. 건물은 정면 6칸, 측면 2칸으로 된 본 건물은 비록 이축과정에서 다소 변형된 구조 기법을 보이기는 하나 넓은 대청과 온돌방 등 조선후기 관아건물 구.. 2018. 3. 28.
[시도지정 문화재자료 제 270호] 탑산사지 금동여래입상 장흥탑산사지금동여래입상 (長興 塔山寺址 金銅如來立像) 종 목 문화재자료 제270호 명 칭 장흥탑산사지금동여래입상 (長興 塔山寺址 金銅如來立像) 분 류 유물/불교조각/금속조/불상 수량/면적 1점 지정(등록)일 2008-12-26 시 대 삼국시대 장흥 탑산사지금동여래입상은 대좌부분이 떨어져나갔지만 불신과 대좌가 같은 개체임이 금속성분 분석 결과 확인된 것이다. 불상의 외모상에서 나타난 양식의 특징 또한 7세기경 삼국시대의 전통적인 양식을 계승한 것으로 계란형의 얼굴과 사발형의 육계, 행인형의 눈두덩, 길게 내려온 U자형 대의주름, 7~8세기경 유행한 시무외, 여원인의 수인 등이 모두 고졸한 양식임을 알 수 있다. 더구나 금동불상 대좌 하단의 평면이 7각인 점도 주목된다. 불신과 대좌가 분리되어 있다는 결함이.. 2018. 3. 28.
[시도지정 문화재자료 제 252호] 장흥 덕암리 암각 매향명 장흥덕암리암각매향명 (長興德巖里巖刻埋香銘) 종 목 문화재자료 제252호 명 칭 장흥덕암리암각매향명 (長興德巖里巖刻埋香銘) 분 류 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수량/면적 일원(100㎡) 지정(등록)일 2004-09-20 시 대 조선시대 장흥 덕암리 암각매향명은 조선시대 초기(1435년, 세종 17)의 매향사실을 기록한 비석이다. 매향(埋香)이란 향나무(香木)를 묻는 민간불교 신앙의례이다. 향나무를 민물과 갯물이 만나는 지역에 오래 묻었다가 약재나 불교의식용으로 썼으며, 그 매향의 시기와 장소, 관련 인물들을 기록한 것이 매향비(또는 암각)이다. 자연암반에 음각된 매향의 명문 순서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새겨져 있어 통례적인 오른쪽에서부터 읽는 것과 다르다. 글자수는 총 6행 21자로 되어 있다. 자형(字形).. 2018. 3. 27.
[시도지정 문화재자료 제 196호] 탑산사지 석등 장흥탑산사지석등 (長興塔山寺址石燈) 종 목 문화재자료 제196호 명 칭 장흥탑산사지석등 (長興塔山寺址石燈) 분 류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석등 수량/면적 1기 지정(등록)일 1994-12-05 시 대 미분류 탑산사터에서 위쪽으로 1km쯤 오르다 보면 이 석등을 만나게 된다. 석등은 일반적으로 등불을 켜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3단의 받침을 두고 위로는 지붕돌을 올려 놓는데, 이 석등은 현재 받침의 일부와 화사석이 없어진 상태이다. 남아있는 아래받침돌, 가운데기둥, 지붕돌은 모두 8각을 이루고 있으며, 아래받침돌은 윗면에 8잎의 연꽃무늬를 두었다. 지붕돌은 윗면이 완만한 경사를 이루는데, 처마의 윗선과 여덟 모서리선이 밋밋한 곡선을 이루고 있다. 고려 전기에 세운 것으로 추측되며, 비록.. 2018. 3. 27.
[시도지정 유형문화재 제 196호] 미륵사석불좌상 미륵사석불좌상 (彌勒寺石佛坐像) 종 목 시도유형문화재 제196호 명 칭 미륵사석불좌상 (彌勒寺石佛坐像) 분 류 유물/불교조각/석조/불상 수량/면적 1구(軀) 지정(등록)일 2002-11-15 시 대 고려시대 이 불상은 1930년대까지 야산의 산 속에 묻혀 머리부분만 노출되어 있던 것을 그 후 미륵사의 법당 안에 모셔 봉안하고 있다. 거대한 자연석을 다듬어 앞부분에는 불상을 조각하고 뒷면은 조각없이 그대로 처리하였는데, 높이 280㎝, 어깨폭 148㎝, 앉은 높이가 3m에 달하는 거불(巨佛)이다. 워낙 거대한 자연석을 이용하여 조각하여서인지 전체적으로 둔중한 느낌을 주는 한편 얼굴과 옷자락의 조각은 사실적인 수법을 보여준다. 머리에는 상투 모양의 육계가 큼직하게 솟아 있고, 소라 모양의 머리칼인 나발이 표.. 2018. 3. 26.
[시도지정 문화재자료 제 169호] 동백정 동백정 (冬柏亭) 종 목 문화재자료 제169호 명 칭 동백정 (冬柏亭) 분 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조경건축/누정 수량/면적 1동 지정(등록)일 1988-12-21 시 대 미분류 장동면 장항마을 옆으로 흐르는 강가의 동산에 자리잡고 있는 정자이다. 조선 숙종 41년(1715)경부터 마을 사람들이 참석한 대동계의 집회소로 이용하던 마을 정자이다. 처음 지은 것은 세조 4년(1458) 동촌 김린(1392∼1474)이 관직에서 은퇴한 뒤, 은거하기 위해 지은 가정사(假亭舍)로부터 시작된다. 가정사는 선조 17년(1584) 후손인 김성장이 고쳐 지었고 김린이 심어 놓았던 동백나무가 울창하여 정자의 이름을 ‘동백정’이라 고쳤다. 지금 있는 건물은 1985년 후손들이 다시 고쳐 지은 것이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 2018. 3. 26.
[시도지정 문화재자료 제 161호] 장흥 고영완가옥 장흥 고영완가옥[長興高永完家屋] 지정종목 문화재자료 지정번호 전남문화재자료 제161호 지정일 1988년 03월 16일 시대 조선 종류/분류 가옥 1988년 3월 16일 전라남도문화재자료 제161호로 지정되었다. 고영완의 할아버지 고재극이 1852년 건립하였다. 원래 이곳에는 정화사(淨化寺)라는 절이 있어 정화사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一자형 겹집으로 남부지방에 흔한 목조 기와집이다. 안채는 정면 5칸, 측면 2칸에 전퇴를 둔 목조 기와 팔작지붕집이다. 1m 가량의 높은 축대 위에 외벌대의 기단으로 자리를 잡고 다듬은 원형 주춧돌을 놓았으며 바깥기둥인 평주(平柱)는 원형으로, 안기둥인 고주(高柱)는 사각으로 세웠다. 기둥 위에는 첨차와 소로, 보아지, 주두 등으로 결구하였으며 그 위에는 다시 장혀와 팔각형.. 2018. 3. 26.
[시도지정 문화재자료 제 144호] 장흥 회령진성 장흥회령진성 (長興會寧鎭城) 종 목 문화재자료 제144호 명 칭 장흥회령진성 (長興會寧鎭城) 분 류 유적건조물/정치국방/성/성곽 수량/면적 일원 지정(등록)일 1987-01-15 시 대 미분류 장흥군 회진면 회진리 마을의 뒷산을 이용하여 쌓은 부정형 성으로. 현재는 육지에 이어진 덕도와 노력도, 대마도 등의 섬들로 둘러싸여 있다. 회령진성은 성종 21년(1490) 4월에 쌓은 만호진 성으로 남해에 출몰하는 왜구를 소탕하는 수군진이었다. 회령진이 처음 설치된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조선 초기에 진이 설치되었다. 전쟁시에는 수군의 집결장소로 사용되었고, 평상시에는 군량과 군기를 쌓아두는 보급기지의 역할을 하였다. 남아있는 성벽의 총 길이는 616m이며, 동벽은 벼랑 위에 쌓.. 2018. 3. 26.
[시도지정 문화재자료 제 73호] 월산재 월산재 (月山齋) 종 목 문화재자료 제69호 명 칭 영석재 (永錫齋) 분 류 유적건조물/인물사건/인물기념/사우 수량/면적 일곽 지정(등록)일 1984-02-29 시 대 미분류 월산재는 영광 김씨들이 중심이 되어 후손들의 교육과 인재양성을 위해 조선 순조 4년(1824)에 지은 건물이다. 사당인 용강자, 강당인 월산재, 내삼문, 외삼문, 관리사, 창고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체적인 모습은 가장 윗부분에 용강사가 있고 아래로 월산재가 있으며 월산재 앞으로 관리사와 창고가 대칭으로 자리잡고 있다. 고종 19년(1882)에 사림들이 지은 용강사는 나옹 김광범·우수당 김성범·죽옹 김정서·우수 김상범·학남 김정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앞면 3칸·옆면 1칸 크기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 2018. 3. 26.
[시도지정 문화재자료 제 71호]만수사 문화재자료 제71호 만수사 (萬壽祠) 분 류 유적건조물/인물사건/인물기념/사우 수량/면적 일곽 지정(등록)일 1984.02.29 소 재 지 전남 장흥군 장동면 만수길 25-121 (만년리) 시 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안씨종중 고려시대의 유학자 안향(1243∼1306)을 기리기 위해 그의 후손들이 1946년부터 1951년까지 지은 사당이다. 안원형·안면·안정생·주세붕·안중목을 배향하였으며 안중근 의사를 배향한 해동사를 별도로 마련하여 놓았다. 안향은 고려시대 유학자로 고려 원종 1년(1260)에 문과에 합격한 후 교서당, 국자사업, 도첨의중찬 등 많은 벼슬을 지냈으며, 후진양성과 유학을 확립하는데 힘썼다. 안원형은 밀직사, 평장사 등을 지낸 인물이며 안면은 사간원정언, 정당문학 등을 지냈고.. 2018. 3. 26.
[시도지정 문화재자료 70호] 강성서원 강성서원 (江城書院) 종 목 문화재자료 제70호 명 칭 강성서원 (江城書院) 분 류 유적건조물/교육문화/교육기관/서원 수량/면적 일곽 지정(등록)일 1984-02-29 시 대 미분류 삼우당 문익점(1329∼1398)과 풍암 문위세(1534∼1600)를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문익점은 고려시대의 문신으로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들여와 우리나라 의생활을 크게 변화시켰다. 문위세는 문익점의 9대손으로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웠고 정유재란 때 많은 왜적을 물리쳤다. 원래 문위세를 추모하기 위해 인조 22년(1644)에 월천사를 지었는데, 영조 10년(1734)에 문익점의 위패를 모시면서 그를 중심으로 하고 문위세를 추가로 모시게 되었다. 정조 9년(1785) 임금으로부터 ‘강성’이라는 현판을 받아 .. 2018. 3. 26.
[시도지정 문화재자료 제 69호] 영석재 문화재자료 제69호 영석재 (永錫齋) 종 목 문화재자료 제69호 명 칭 영석재 (永錫齋) 분 류 유적건조물/인물사건/인물기념/사우 수량/면적 일곽 지정(등록)일 1984-02-29 시 대 미분류 청강 이승(1556∼1628)을 추모하기 위해 후손들이 세운 건물로, 약 300여년 전 인천 이씨 후손들이 주체가 되어 지금 있는 자리에 세운 것으로 전한다. 건물은 강당, 사당, 내삼문, 문간채, 관리사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영석재’라고 부르는 강당은 중앙에 있으며 사당은 별도로 담에 둘러싸여 있다. 강당 앞쪽으로 문간채가 있고 관리사와 창고는 오른쪽 아래에 자리잡고 있다. 강당은 앞면 5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금 있는 건물은 1912년 새로.. 2018. 3. 26.
[시도지정 민속문화재 제 46호] 장흥 근암고택 시도민속문화재 제46호 장흥 방촌리 근암고택 (長興 傍村里 勤庵古宅) 분 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수량/면적 887㎡ 지정(등록)일 2010.08.27 소 재 지 관산읍 방촌리(내동마을) 504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장흥 방촌리는 선사시대 유적이 다수 분포해 있고 백제시대 이래 고려시대까지 정안현-장흥부-회주목으로 이어지는 고을이 있던 지역이다. 고려시대 말기에 왜구로 인해 치소를 옮긴 뒤, 고읍으로 불리게 되며 임진왜란이 지난 뒤 장흥위씨가 입향하여 집성촌을 이룬다. 전통 반가는 물론 사당과 서재를 갖추고 있고 존재 위백규 등 학자들이 활동하여 문집, 고문서, 전적류와 민속문화재가 잘 남아 있다. 이러한 역사 전통을 가진 방촌리의 입향 선조가 초기에 정착한 현.. 2018. 3. 22.
[시도지정 민속문화재 제 43호] 장흥 호계리 별신제와 동계문서 장흥호계리별신제와동계문서 (長興 虎溪里 別神祭와 洞契文書) 분 류 기록유산/문서류/문서류/문서류 수량/면적 동계문서 등 18건, 별신제 지정(등록)일 2008.04.11 소 재 지 전남 장흥군 시 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호계리에서 전승되어 온 마을 공동체 의례와 별신제 관련 기록물이다. 조선시대 후기(별신제 1702년 무렵, 대동계[동계] 1715년)부터 전해오는 동계안, 집강록, 제관록, 홀기, 풍물 부의책 등 관련 문적 17책과 상서 2건, 절목 1건 등으로 구성되어 있어, 동계 창설 및 운영 등 마을사의 변천과 공동체 제의인 별신제의 운영에 관하여 자세히 알 수 있다. 특히 동계문서는 조선시대 후기부터 현재까지도 매년 기록하고 있어 살아 있는 역사자료이며 마을공동체 의례의 연혁과 변.. 2018. 3. 22.
[시도지정 민속문화재 제 7호] 장흥 위성탁 가옥 장흥위성탁가옥 (長興魏聖卓家屋) 종 목 시도민속문화재 제7호 명 칭 장흥위성탁가옥 (長興魏聖卓家屋) 분 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수량/면적 일곽 지정(등록)일 1986-02-07 시 대 미분류 위계환 가옥(중요민속자료 제161호)과 위성룡 가옥(전라남도민속자료 제6호) 맞은 편 마을에 자리잡고 있는 집이다. 안채와 사랑채는 1910년대에 지은 것으로 보이며 나머지 건물들은 후대에 지은 것으로 추정한다. 바깥마당에 연못을 파 정원시설을 꾸미고 있는 이 집은 안채, 사랑채, 곳간채, 아래채, 사당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장 안쪽에 안채가 있고 사랑채는 안마당 사이로 축을 맞추어 배치하였다. 안채로 통하는 대문을 사랑채의 한 문을 이용해 좌우로 2번 꺾어 들어가 안마당에 이르도록 꾸민 점이 특이.. 2018. 3. 22.
[시도지정 민속문화재 제 6호] 장흥 위성룡 가옥 장흥 위성룡가옥[長興魏聖龍家屋] 지정종목 시도민속문화재 지정번호 전라남도 민속문화재 제6호 지정일 1986년 02월 07일 시대 대한제국 종류/분류 가옥 크기 면적 1,455㎡ 1986년 2월 7일 전라남도 민속문화재 제6호로 지정되었다. 면적은 1,455㎡이다. 방촌리 계춘동 마을의 장흥 위계환가옥의 아랫편에 있다. 집앞 솟을대문에 남아 있는 상량문에 ‘숭정기원후오회갑기축 삼월초칠일임자무신시주립십구일 갑자기사시상량(崇禎紀元后五回甲己丑三月初七日壬子戌申時柱立十九日甲子己巳時上樑’이라 기록되어 1949년에 건축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안채와 사랑채는 그 이전인 20세기 초에 건축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집 앞에는 2그루의 노거수가 있고 뒤의 계단을 오르면 솟을대문이 서향하여 있다. 대문 좌측으로 사랑채가.. 2018. 3. 22.
[시도지정 기념물 제 238호] 장흥 신북 구석기 유적 시도 기념물 제 238호 장흥신북구석기유적 (長興 新北 舊石器遺蹟) 분 류 유적건조물/유물산포지유적산포지/육상유물산포지/선사유물 수량/면적 일원70,586㎡(34필지) 지정(등록)일 2008.04.11 소 재 지 장동면 북교리 신북마을 일원(9-19번지 외) 시 대 석기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장흥 신북 구석기유적은 장흥군 장동면 북교리 신북마을이 자리한 검은둥이 언덕(해발 190~165m)의 남쪽에 있다. 신북유적의 규모는 유물이 확인된 범위를 기준하면 약 12만여㎡으로 추산되고, 유물이 들어있는 지층의 분포 범위로 보면 신북마을을 포함한 언덕 전체가 해당되어 약 30여만㎡으로 추정된다. 2002년 8월에 국도2호선 장흥-장동간 도로 확포장 구간도로 건설 구간의 교량 터파기 공사 때 문.. 2018. 3. 21.
[시도지정 기념물 제221호] 장흥 풍길리 청자요지 장흥풍길리청자요지 (長興豊吉里靑瓷窯址) 종 목 시도기념물 제221호 명 칭 장흥풍길리청자요지 (長興豊吉里靑瓷窯址) 분 류 유적건조물/산업생산/요업/도자기가마 수량/면적 일원(2필지, 3,000㎡) 지정(등록)일 2004-02-13 시 대 고려시대 고려시대 초기 청자 가마터로 지정구역 면적은 3,000㎡이다. 마을 뒤 두암저수지 주변, ‘도둑골’이라고 부르는 남동향의 급경사지로, 저수지 상류로 가는 농로를 따라 약 500m 가면 있다. 가마 방향은 남-북으로 추정된다. 퇴적층은 일부만 확인되는데 갑발(匣鉢) 등 요도구(窯道具)와 청자 일부가 발견되었다. 요도구는 가마에서 번조(燔造) 때 사용하던 원통형 갑발과 ㅠ자형 갑발 받침 등이 발견되었다. 갑발은 크기가 다양하며 형태는 원통형인데, 윗면 중심부가 낮은.. 2018. 3. 21.
[시도지정 기념물 제 218호] 천도교장흥교당 천도교장흥교당 (天道敎長興敎堂) 종 목 시도기념물 제218호 명 칭 천도교장흥교당 (天道敎長興敎堂) 분 류 유적건조물/종교신앙/민족종교/천도교 수량/면적 1동 지정(등록)일 2003-05-27 시 대 일제강점기 장흥 천도교당은 원래 1906년 4월에 동학의 후예인 교구장 강봉수(姜琫秀) 등이 중심이 되어 천도교인에게 모금운동을 전개하여 지어졌다. 천도교장흥군교구역사〉와 교당 내부에 걸린 〈교구실기(敎區室記〉(1920년)를 통하여 당시 개축에는 전남의사원(全南議事員) 신명희(申明熙), 장흥교구장 김재계, 수령 강봉수, 윤세현 등이 주도하였다는 것과 1917년(포덕오십육년정사(布德五十六年丁巳) 11월부터 한달여에 걸쳐 2,300원(圓)을 모금하여 1918년 2월 15일에 건축을 시작하여 6개월만인 8월 26.. 2018. 3.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