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장흥문화예술인/장흥가사문학8

[장흥문인]가사문학의 효시자 기봉 백광홍(白光弘, 1522~1556) 기봉 백광홍1522(중종 17)∼1556(명종 11) 기행서경가사의 효시를 이룬 관서별곡 ▲기봉 백광홍 ▲관련서적 선생의 본관은 수원이고 자는 대유이며 호는 기봉이다. 1549년(명종4년)에 사마양시에 급제하고 1552년에 문과에 등재하여 홍문관 정자에 임명되었다. 그 해 성균관에서 문신들이 재주를 겨룰 때 '동지'라는 부를 지어 장원을 하여 명종 임금으로부터 '선시'10권을 하사받아 지금까지 전한다. 1555년(명종10년)에 평안도 평사가 되어 관서 지방의 백성들의 폐해를 보살피면서 그 곳 향촌의 서정과 자연풍물을 시문으로 노래하던 중을 지었다.가사는 당시 한문으로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던 조선중기의 일반적인 틀에서 벗어나, 우리말과 우리글, 그리고 우리 가락으로 펴현한 문학예술 양식의 하나이다.선생의 .. 2018. 6. 25.
[장흥문인]수우옹 위세직(1655~1721)가사문학 수우옹 위세직(1655~1721) 남해 도서지방의 아룸다움을 자유롭게 노래한 금당별곡 선생의 본관은 장흥이며 자는 우경, 호는 수우옹이다. 관산읍 방촌에서 태어났다. 향촌의 선비로서 숙종 때 장흥에서 적거생활을 했던 노봉 민정중과는 특별한 교분을 가졌으며수정시 큰 역할을 하였다 전한다. 선생이 지은은 회진 앞의 금당도와 만화도를 유람하면서 느끼고 생각한 감정을 서경적으로 읊은 기행가사로 남해안 도서지방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점이 특이하다. 또한 선생의 자유로운 시상을 마음껏 펼쳐 보인 점과 표현과 구성이 뛰어나 학계에 관심을 모으는 작품이다. [책소개] 조선 후기에 위세직(魏世稷)이 지은 기행가사. 필사본. 가칭 ≪삼족당가첩 三足堂歌帖≫에 전한다. 처음에는 위세보(魏世寶)의 작품으로 소개된 바 있으나, 후.. 2018. 6. 25.
[장흥문인]청사 노명선(1707~1775)가사문학 청사 노명선(1707~1775) 가을 천관산의 아름다움과 청빈한 선비정신이 깃든 천풍가 ▲삼족당가첩 선생의 본관은 광산이며 자는 부초이고 호는 청사이다. 부산면 관한에서 태어났다. 부귀공명과는 거리가 먼 청빈한 선비로 살면서 자연을 벗삼아 많은 시문을 남겼으나 전해지지 않고, 천관산의 절경을 서경적으로 읊은 기행가사만 전한다.는 선생이 겨울에 천관산의 여러 골짜기와 봉우리, 절과 암자 등을 돌아보고 오는 기행가사로서 표현기법이 뛰어나고, 청빈한 선비의 정신이 깃들어 있는 작품이다. '천풍가'는 청사 노명선(1707-1775)의 작으로 장흥의 명산인 천풍산(천관산)의 자연 풍경을 서경적으로 읊은 가사 작품이다. 이종출 교수가 발굴한 가칭 '삼족당 가첩(三足堂 歌帖)'에 수록되어 있는 작품인데, 거기에는 한.. 2018. 6. 22.
[장흥문인]존재 위백규(1727~1798)실학의 선구자 존재 위백규(1727~1798) 학문을 현실에 적용한 실학의 선구자 ▲존재 위백규의 동상 ⓒ마동욱작가 ▲존재 위백규의 가옥 선생의 본관은 장흥이고 자는 자화, 호는 존재 또는 계항이다. 관산읍 방촌리에서 태어나 병계 윤봉구 문하에서 수학했다. 1765년(영조41년)생원복시에 합격했으나 그 후 과장에 나가지 않았다. 1796년(정조20년)위유사 서영보의 추천으로 선생의 문집이 조정에 들어가게 되었고, 정조 임금의 부름을 받고 나아가 자신의 경세사상을 만언봉사로 올리자 임금께서 감탄하고 옥과현감의 목민관에 제수하였다.1년 후에 장원서 별제에 승차되었으나 노환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7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선생은 경서는 물론 천문, 율력,산수등 폭 넓은 학문을 쌓았고, 실학사상에 심취하여 이를 실천함으로.. 2018. 6. 22.
[장흥문인] 임계탄 가사문학 작자 미상의 가사문학 작품 작자미상의 현실비판 가사로 임자계축년(영조8~9,1732~1733)에 연이어 흉년이 들다가 근이 발생한 참상 및 관의 부패와 무능을 서술한 내용이다. 작자는 누구인지 알 수 없으나 향촌의 유교지식인일 터인데 작중의 진술로 미루어 호남의 장흥부 관산에 거주한 선비로 추정하고 있다. 그 연유인 즉 (한문 모르겠음) 라고 하여 작자가 고을의 관산에서 생활하고 있음을 짐작케 한 것 이다. 작중에서 지역적 배경을 '五十三州 湖南의 長興은 海邑이라/ 土出도 됴커니와 山海珍味 시고/ 冠山 삼긴 후의 樂土아 有名 터니' 라고 하여 작자가 장흥 고을의 관산에서 생활하고 있음을 짐작케 한 것이다. 임계탄은 1732년과 1733년, 임자(壬子)와 계축(癸丑)년의 장흥 관산과 대흥(대덕) 등 해.. 2018. 6. 22.
[장흥문인]지지재 이상계(1758~1822)가사문학 지지재 이상계(1758~1822) 자연을 벗삼아 안빈낙도하는 선비 선생의 본관은 인천이며 자는 군옥, 호는 지지재 또는 관송이다. 이상계는 어려서부터 성품과 도량 그리고 예의범절에 있어서 다른 사람의 모범이 될 만큼 남달리 뛰어났다. 좋고 싫음을 곧바로 표현하지 않았고 말과 행동을 조심스럽게 해 군자의 자질을 지녔었다. 또 뛰어난 효성이 널리 알려져 그를 천거하는 일이 매우 많았다. 자라서는 유학에 힘썼다. 효행에 대한 일화가 전하는데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하여 날씨를 가리지 않고 아침저녁으로 성묘했으며 하루도 거르지 않았기에 엎드려 절한 곳에 풀이 나지 않았다고 한다. 또 땔감을 하는 아이나 나무하는 사람들이 그가 성묘하러 가는 길의 잡초 따위를 베어 길을 닦아주었다고 전한다. 1808년(순조 8) 1월.. 2018. 6. 22.
[장흥문인]우곡 이중전(1825~1893) 가사문학 우곡 이중전 (愚谷 . 李中銓 ) (1825~1893) 경세적이고 교훈적인 내용을 노래한 장한가 선생의 본관은 인천이며 자는 화집이고 호는 우곡으로 부산면 금자리 환한마을에서 태어났다. 선생의 집안은 5대를 이은 효자 가문으로 이름이 나있으며 문장을 잘하기로 유명하다. 선생은 평생을 독서와 훈도로 지내면서 문집으로[우곡집]을 남겼다.문집에 실린는 경세적이고 교훈적인 664구의 긴 가사이다. 의 전반부는 선생의 기구한 인생 역정을 도덕사상에 근거하여 노래하였고, 후반부는 금강유람을 소망하는 심경을 읊었는데, 한 작품안에 두개의 주제를 담아 노래한 점이 특이하다. 어와 세상 사람들아 이 내 노래 들어보소 천지가 창조될 때 범위가 어떻든고 형체 없는 어떤 하나 이름이 태극이라 태극이 무극이요 지극한 도 어렵도.. 2018. 6. 22.
[장흥문인]겸재 문계태(1875~1955) 가사문학 겸재 문계태(1875~1955) 시대의 아픔을 안고 학문으로 벗을 삼아 살아온 작가 선생의 본관은 남평이며 자는 희도 호는 겸재로 유치면 덕산리에서 태어났다. 면암 최익현의 문인으로 관직은 통정대부중추원의관에 올랐다 성품이 충직하고 학문이 깊어 일제가 침략하자 모옥을 짓고 은둔생활을 하였다. 1926년 고종 황제의 영정을 봉안한 회덕묘를 짓고 면암선생의 영정을 봉안한 산앙사를 지어 제를 올렸다. 6.25이후까지 선비의 기품을 잃지 않고 학문에 몰두하다가 생을 마쳤다. 선생이 남긴 문집[겸재사고]에는 선생이 구곡의 서경에 빗대어 나라 잃은 설움을 나타낸와 인간이 갖추어야 할 덕의 연원을 찾아 중국의 공맹과 우리나라 여러 학자댁을 찾아 학문적 업적과 도의 높음을 칭송하는가 가사로 전한다. 특히 선생이 노래한.. 2018. 6.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