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문화원

향교방문예절과 우리고장 자랑거리를 알려준다



장흥향교(전교 위인환)에서 9월29일부터 10월15일까지(기간 중 9일) 명륜당과 대성전에서 향교 방문예절교육을 실시한다.

이번 청소년문화체험은 장흥문화원 주관으로 장흥중학교, 장흥여자중학교, 장흥용산중학교, 장흥안양중학교, 장흥대덕중학교 1학년 전교생 193명에게 전통예절교육, 우리지역 인물탐구, 문화유적 탐방을 실시한다.

고영천 장흥문화원장은 향교의 기본 이념인 효와 충의 의미를 알기 쉽게 설명하면서 「문림의향」 장흥과 우리지역 선비들의 위대한 숨결을 느낄 수 있도록 격려한다.

장흥향교 위인환 전교는 향교방문예절 교육을 실시하면서 향교유래와 변천과정, 장흥향교 연혁과 향교방문 예절교육으로 외삼문, 내삼문, 대성전 계단 오르고 내려오는 방법과 출입하는 요령, 다른 사람에게 인사할 때 공수하는 손의 위치와 도포(남자)와 당의(여자) 입는 요령, 상대방에게 절하는 요령(읍례:남자, 굴신:여자)과 큰절하는 모습 등을 알려주면서 실습하게 한다.

문병길 총무수석장의는 우리고장 자랑거리를 설명하면서 아름다운 제암산 등 푸른 산과, 깨끗하고 맑은 탐진강 주변의 부춘정 등 8정자, 장흥읍성 등 호국의 향토문화자원, 우리고장을 빛낸 선현으로 고려 17대 인종왕비 공예태후 임씨와 조선시대 8문장가 기봉 백광홍선생의 관서별곡, 호남실학 선구자 존재 위백규선생 동학농민혁명때 남도장군 이방언, 소설가 이청준 선생 등을 설명한다.

위성석 의전수석장의는 대성전에서 참가학생 대표가 대성지성문선왕 공자에게 분향하고 일반학생들은 자유스럽게 배례하게 한다.

그리고 공자, 안자, 증자, 자사자, 맹자와 통일신라시대 설총과 최치원, 고려시대 안향과 정몽주, 조선시대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 김인후, 이이, 성혼, 김장생, 조헌, 김집, 송시열, 송준길, 박세채 등 14분과 중국 송나라 정호와 주희를 소개한다.

이문갑 한국서예협회장흥지부장은 이번 청소년 문화체험프로그램에 참가한 학생 전원에게 개인별로 다르게 가훈을 써서 전달한다.

장흥군 문화관광해설사협회에서 전국에서 유일하고 안중근 의사를 배향하고 있는 해동사(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91호)에서 참배하게 하고, 한국불교조계종 9산선문 종찰(종가집)인 보림사 문화재 360점(국보 2개 4점, 보물8개 13점, 지방문화재17개 351점)를 해설한다.

장흥향교는 1398년부터 1894년까지 500여 년간 나주향교와 함께 명성 높은 향교였다. 조선시대 721명(사마시157명, 문과68명, 무과 496명)관리를 배출했는데 1894년 갑오개혁 이후에 과거제도가 폐지됨에 따라 교육기능은 없어졌지만, 제향(祭享)기능을 전통그대로 전수하면서 매월 음력 1일과 15일 새벽 4시 30분에 분향례를 올리고 있으며, 매년 음력 2월과 8월 상정일에 국가 중요무형문화제 제85호 석전대제를 봉행하고 있다. (기사 및 사진제공 : 문병길 총무수석장의)

출처_장흥문화원, 장흥향교에서 청소년문화체험 실시 - 장흥투데이 (jhtoday.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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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암집(雲巖集)』번역하고 운암선생을 독립유공자 추서한다.
문병길(문화관광해설사)

운암 선생은 과거시험 문과에 급제했던 고급 관리였다.

정두흠(鄭斗欽:1832~1910)선생은 장흥군 유치면 운월리 출신으로 1910년 경술년 한일합방 때 순절(殉節)한 애국지사이다. 운암(雲巖) 정두흠은 <손명사(損命詞>을 남기고 순절하였다. ‘손명사’는 “목숨을 버리며 알린다.”는 뜻이다. 순절 당시 유묵은 확인 되지 않고, 공의 문집인 『운암집(雲巖集)』에 <손명사(損命詞> 2수가 전한다.

운암 정두흠선생 자(字)는 응칠(應七)이요, 호는 운암(雲巖)이며 진주인(晉州人)이다.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종2품직) 정철주(鄭哲周)이며, 어머니는 영광김씨(靈光金氏)로 김희(金희:王+義)의 딸이다.

어려서 부터 재기(才氣)가 총명하여 젊은 날에 능주 개천사에서 공부하면서 16세에 남주독보(南州獨步)로 칭송받았다. 그래서 장흥부사 김기석(金箕晳:재임기간 1848. 2~1849. 6)의 권유(勸誘)로 승지(承旨) 최상관(崔相琯)에게 사사(師事)했으며, 32세 때 향해(鄕解), 동당(東堂), 회시(會試)를 거친 후 화서(華西) 이항로(李恒老:1792~1868) 선생에게 수업하면서 학문을 닦았다.

1879년(고종16) 48세 나이에 식년문과에 을과 7위로 급제하고 진중(陣中), 정시(庭試), 전시(殿試)하여 주서에 임명되었고, 곧 승문원 정자가 되었다. 이듬해 1880년에 성균관 전적(典籍)을 거쳐 사간원 정언(正言)이 되었다.

1881년(辛巳), 1882년(壬午)에 차례로 부모상을 당하여 시묘(侍墓) 6년하고 1887년(丁亥) 56세 때 다시 성균관 전적(典籍), 사헌부 지평(持平)되어 임금에게 선정을 베풀 것을 청하고, 그해 10월에 뇌진지변(雷震之變)을 당하여 백성이 크게 동요함에 죄와 상을 분명히 하여 국가의 기강을 세울 것을 상소하여 백성을 위무(慰撫)하도록 진청(秦請)하였다.

1888년(戊子) 정월 종묘대제(宗廟大祭)에 공(公)이 대축(大祝)겸 전사관(典祀官)으로 차출되어 업무를 맡았던바 임금께서 친임(親臨)하시어 보시고 관복(官服)한 벌과 녹미(祿米) 3석, 해조물 등을 특별히 하사(下賜)하였다.

운암선생은 고급관리로서 고종임금에게 바른 말을 했다.

공은 관직에 있으면서 개항에 반대하여 양이(壤夷)의 노선을 주장하였고, 만언소(萬言疏), 청파매관소(請罷賣官疏), 청납직언소(請納直言疏)를 올려 정치 도의를 바로 잡을 것, 매관(賣官)의 폐단을 없앨 것, 직언을 받아들여 언로를 개방할 것 등을 촉구하는 시페(時弊)를 올려 시정(是正)토록 하였으나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용퇴를 결의하고 1892년(壬辰)에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인 유치 운월리로 돌아와 망화대(望華臺)를 설단(設壇)하고 임금이 계신 곳을 향해 읍소(泣訴)하면서 서회(敍懷)의 시를 읊었다.

그리고 한양 조정과 나라를 걱정하며 인근에서 모인 제자들을 가르쳤다. 운암(雲巖)선생은 역대 장흥출신들 관리 가운데 중앙무대에서 가장 바른 말을 많이 한 것으로 여겨진다.

공의 문집 『운암집』은 4권 2책으로 쇠퇴해가는 국운을 개탄하여 지은 시들이 많아 강개한 뜻이 넘치고 있다. 탄임오군요(嘆壬午軍擾)․상시감음(傷時感吟)․탄의산개제(嘆衣裳改制)․창의감음(倡義感吟)․환향(還鄕) 등에는 조선의 몰락과정과 함께 그의 애국심이 잘 나타나 있다.

만언소(萬言疏)는 정치의 정상화를 위한 조정의 자구책에 대해 진언한 것이다. 명덕(明德)․독경(篤敬)․총명(聰明)․수성(修省)․기강(紀綱)․근검(勤儉)의 6개항을 지적하여 시행할 것을 촉구했다.

그리고 삼락설(三樂說)은 인간의 행위 가운데 즐거운 것 세 가지와 즐겁지 못한 것 세 가지를 열거한 것이다. 부귀자로 독서하지 않는 것, 술이나 마시고 인의(仁義)를 행하지 않은 것, 윗사람에게 아부하여 녹봉이나 탐내는 것이 세 가지 즐겁지 못하는 것이라 하였다. 반면, 부모가 모두 살아 있고, 친구 간에 믿음이 있고, 자신을 수양하여 천년을 마칠 수 있는 것이 세 가지 즐거운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운암선생의 손명사(損命詞:목숨을 버리며 알린다)가 전한다.

운암선샌이 마지막 가는 길에 남겼던 손명사(損命詞) 2수는 아래와 같다.

1. 有客來傳無國報(유객래전무국보) 어떤 객이 와서 전하길 나라가 없어졌다 하기에

癲狂心事淚凄然(전광심사루처연) 미칠듯한 심사에 눈물 흘리며 처참해지네

擧跟寧蹈靑山土(거근영도청산토) 발꿈치 들고 어찌 청산의 흙을 밟으랴

閉戶不見白日天(폐호불견백일천) 문 걸어 닫고 대낮의 하늘을 보지 않네

負帝貞忠慙陸秀(부제정충참육수) 황제를 업고 죽은 육수부의 정충에 부끄럽고

攘秦大義憶齊連(양진대의억제련) 진나라 물리친 제나라 노충련의 대의를 생각하네

國破難容無求罪(국파난용무구죄) 나라가 망함은 용납이 어렵고 구제할 수 없는 죄이니

莫如身死逐先賢(막여신사축선현) 이 몸 죽어 선현을 따르니만 못하리라

2. 許國斯身問幾年(허국사신문기년) 나라에 이 몸 의탁한지 몇 년 되었나

愛君每祝太平宴(애군매축태평연) 임금 사랑으로 늘 태평전승 빌었건만

一朝盡人洋夷手(일조진인양이수) 하루아침에 오랑캐 손에 끝장이 났네

末境殘傷餓虎咽(말경잔상아호인) 굶주린 호랑이 목에 걸린 마지막 참상

禮義可憐箕聖域(예의가련기성역) 예의와 의리 가련하다, 기자(箕子) 성인의 강역

彛倫誰復漢陽天(이륜수복한양천) 그 누가 회복하랴, 조선하늘 사람 도리

屋社無歸身可殉(옥사무귀신가순) 사직이 무너졌으니 이 몸도 순신(殉身)하리라

下倍先帝地黃泉(하배선제지황천) 신하로서 선제(先帝) 받들어 황천에서 살아가리.

운암(雲巖)의 손명사(損命詞)는 매천(梅泉)의 절명시(絶命詩) 에 대비될 수 있다.

운암(雲巖) 선생은 문과급제자 ‘제도권 관료’인 반면에, 매천(梅泉) 선생은 과거시험 1차(사마시)에 그친 ‘초야 선비’라는 차이점이 있기에, 서로 지향점이 달랐다.

운암 선생은 임금을 가까이에서 모신 고급 관리로서 충군보국(忠君輔國)이었으며, 매천(梅泉)은 지식인으로서 인의(仁義)에 가치를 더 두었다. 어쨌거나 매천(梅泉)의 <매천야록>의 명성을 감안하더라도 운암 선생과 공의 손명사(損命詞)는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

운암선생 문집을 문화원에서 번역한다.

장흥문화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고전 국역사업 일환으로 공의 문집『운암집』번역을 위촉받은 홍순석 명예교수(강남대 한문학 전공)가 번역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공의 문집 『운암집』에 당대 명망가, 판서, 고관들이 등장한다. 민영환 산정(山亭)에서 시회를 했으며 이항로(1792~1868), 조성하(1845~1881), 이건창(1852~1898) 등과 종유 또는 교류하였고 그 무렵 장흥부사 이학래(재임기간1880. 8~1882.12), 이용태(재임기간1892. 8.~1894. 3) 박헌양(재임기간1894. 4 ~1894. 12)이 언급되었고 장흥출신 선비들의 만시(挽詩)도『운암집』에 기록되었다.

국난수습에 애쓰다 돌아가시거나, 을사조약 울분으로 자결한 선현들인 신헌(1810~1884), 조병세(1827~1905), 민영환(1861~1905), 송연재(1836~1905), 홍만식(1842~1905), 김봉학(1871~1905)등 이다. 매천 황현(梅泉,1855~1910) 역시 민영환. 홍만식, 조병세, 최익현, 이건창을 기리는 ‘오애(五哀)시’를 남겼다.

운암(雲巖)은 1906년에 자결한 면암 최익현(1833~1906)에 대해 “억(憶)면암 연재 양兩 선생(先生)”기록도 남겼다.

문화원에서 운암선생 독림유공자 추서사업을 하고 있다.

8월 29일은 한일합병의 경술국치의 날이다. 운암(雲巖) 선생은 1897년 국호를 대한(大韓)으로 고친 점, 1905년 을사보호조약 체결, 1906년 면암 최익현 순국 등 소식을 접하고 비통해 하다가 결국 당신도 경술국치 치욕의 변(變)을 듣고 망화정에 올라 북쪽을 바라보고 통곡하며, 의고선성문(擬告先聖文)을 짓고 탄식하기를 “내가 어떤 면목으로 저 하늘의 해와 달을 대할 것이며, 살아서 설 곳이 없고 죽어 돌아갈 길만 있다.”라고 하였다.

자손에게 명하여 말하길 “나는 마땅히 대궐 아래서 죽을 것이다. 갈 채비를 서둘러 하라.” 하였다. 자손들이 차마 행하지 못하고 이 날 저 달 계속 수개월 미루었다.

또한 노쇠하여 갈 수가 없자 충의를 위하여 마침내 자기집 방에서 약을 먹고 머리를 부숴 기진하고 유혈이 자리에 가득하여 홀연히 순절(殉節)하였으니 바로 1910년 10월 25일 공의 나이 69세였다.

이듬해 1911년 10월에 부인 한씨(韓氏)도 공의 소상(小祥)을 지낸 후 “國破夫死인데, 吾何獨生하리요”라고 말하면서 같은 방법으로 음독 자결하여 열(烈)을 다하기 위해 공의 뒤를 따랐다.

운암선생은 “나라가 망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으니 죄를 구할 수도 없어 선현(先賢) 따라 죽는 것보다 나을 일 없다”라고 하셨다.

운암선생과 같은 시기에 호남에서 순절한 애국지사는 셋 인데, 정두흠 선생은 장흥에서, 곡성에서는 정재건(鄭在健), 김제에서는 장태수(張泰秀)가 각각 유서를 남기고 순절하였다. 정재건 선생은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 받았고, 장태수 선생은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장흥문화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정두흠 선생의 독립유공자로 추서사업을 하고 있는데 공의 후손 정제하(1936년 장동면 봉동리 이거) 가족을 빨리 파악했으면 한다.

유적으로 유치 운월마을에 망화대(望華臺)가 있으며 그곳에 유적비(높이 1m, 폭 40cm) 있다. 그러나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조선시대 학자(學者)로 명성을 얻었던

망화대기(望華臺記)가 전하고 있으며 운암(雲巖)선생의 세거를 알리기 위해 후손들이 유치면 운월리 엿마지기등 입구인 배고픈 다리 옆 바위에 “지평 운암 정공유적(持平 雲巖 鄭公遺蹟)”이라 1962년에 새겨 놓았다.

※참고자료: 남도 정자여행: 장흥 망화대(望華臺), 예양칼럼(17): 운암 정두흠 선생,

『운암집』, 운암 정두흠의 <손명사(損命詞) 결자부분 복원, 유치면지(1993년) 등

출처 : 특별기고- ‘문림의향’고을, 운암(雲巖) 정두흠(鄭斗欽)을 알려야한다. - 장흥투데이 (jhtoday.net)http://www.jhtoday.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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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일고 학생독립운동 퇴학자
180명 명예졸업 대상자 찾았지만
후손 없어 전달된 졸업장 5건뿐

지난 5일 이해춘 씨는 외할아버지의 광주일고(당시 광주고등보통학교) 명예졸업장을 수여받았다.

광주일고가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 가담 혐의로 퇴학당한 고등학생 명단을 확보해 지난해 10월 '명예졸업장'을 만들었지만, 175개 졸업장이 주인에게 전달되지 못한 안타까운 소식이 알려졌다.

상당수의 의인들이 후손 없이 요절하거나 오랜 세월에 연락이 끊기는 등의 문제로 수여자 찾기에 난항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이해춘(62·남) 씨는 올해 3월 장흥문화원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장흥 출신인 할아버지가 생전 독립운동을 한 기록이 있는데, 독립유공자로 지정이 안 되어 있다는 설명이었다.

"이해춘 씨의 외할아버지 되시는 위장환 선생은 1929년 학생독립운동 가담 혐의로 광주일고에서 퇴학을 당한 후, 장흥에서 농민 계몽운동 등의 활동을 하셨습니다. 후손께서 독립유공자 신청을 해보시는 것이 어떨까요?"

이 씨는 권유에 따라 국가보훈처에 독립유공자 신청을 진행했다. 보훈처도 위장환 선생의 광주일고 입학 및 광주학생독립운동 가담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학교에 문의했고 뜻밖에 답변이 돌아왔다.

"안 그래도 지난해 위장환 선생 포함 180개 명예졸업장을 만들었습니다. 학교에서 보관 중이니 후손께 연락을 취해 전달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

그렇게 이 씨는 우연히 광주일고와 연락이 닿으면서 지난 5일 외할아버지의 졸업장을 전달받았다. 독립운동가 위장환 선생은 무려 100여 년 만에 학교를 졸업했다.

위장환 선생의 외손자 이 씨는 "장흥 출신인 할아버지와 관련된 이야기를 마을에 세워진 할아버지 송덕비나 어머니가 이야기해준 내용으로만 접했다"며 "사실 광주일고와 연락이 닿아 명예졸업장을 전달받기 전까지는 할아버지 행적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명예졸업장 수여로 공식적인 기록으로 남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지난 5일 이해춘 씨는 외할아버지의 광주일고(당시 광주고등보통학교) 명예졸업장을 수여받았다. 왼쪽이 이해춘 씨.

더불어 민주당 이용빈 의원(광주 광산갑)도 명예졸업장 수여자 중 한명이다. 이 의원은 "아내의 외할아버지 이영범 선생에 대한 명예졸업장을 전달받게 됐다"며 "이영범 선생은 이미 유공자로 지정이 되어 있긴 하지만, 광주일고 졸업 여부에 대해서는 가족들도 잘 모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연좌제가 가능했기 때문에 독립운동가 가족들은 힘든 시대를 보냈다. 이제라도 공식적으로 졸업장을 받게 돼 기쁘다"며 "좋은 나라를 꿈꿨던 선열들의 모습을 반추하면서 명예졸업장이 서훈 문제 해결로도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광주일고 개교 100주년 기념식에 맞춰 만들어진 명예졸업장을 전달받은 후손은 위 사례 포함 5건에 그친다. 아직 175개 졸업장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이번 명예졸업장은 광주일고를 졸업한 한신원 광주일고 역사서 편찬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4년여간에 걸쳐 광주학생독립운동 참여한 학생들의 명단을 확보하면서 만들어졌다. 당시 독립운동가 관련 재판기록 및 동아일보·조선일보 기사 그리고 여러 독립운동 학술지 등의 자료를 뒤지고 뒤져 확보한 이름이다.

한 위원장은 "1920~1930년대 한해에만 광주일고에 100여 명이 입학했는데 졸업자 수는 20여 명이 채 안 되는 해도 있다. 명예졸업자 대상자는 이번에 확보한 180명보다 더 많아질 수도 있는 것"이라면서 "1947년 광주일고에 큰불이 났다는 기록이 있다. 그때 입학자 명단이 소실되면서 졸업앨범 등에 있는 명단과 비교할 데이터가 없는 셈이다"고 말했다.

우제학 광주일고 교장은 "명예졸업장 수여자를 찾기 위해 홍보 동영상을 찍는 등 노력하고 있지만 후손을 찾는 일이 쉽지 않다. 학교 측에서도 한신원 위원장과 공조해 당시 조선총독부가 발간한 통계연보를 확인해 주소를 추적하는 등 노력을 하고 있다"며 "독립운동가들이 일찍 요절하거나 연고자 미신청 등의 이유로 후손 찾기가 어렵다. 가정에서 가문 족보를 확인하는 등 노력을 해달라"고 말했다.

한편 광주일고는 1945년 한국해방 이후 명예졸업장을 만들어 지속적으로 수여해오고 있다.

 

출처_주인 없는 졸업장 175건 `독립운동가 후손 찾습니다` - 전남일보 (j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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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잃은 울분의 위원량 詩 암각-국내에 유일하다
사료적 가치 커, 한국 근현대사적 등 문화재 지정될 만 하다”
 


<왼쪽 사진>위성록/향토학자

2021년 7월 8일(목) 11: 00, 충남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독립기념관로 1에 위치한 천안독립기념관에서 한시준(韓詩俊 1954년생) 관장과의 대담이 있었다.

이 자리는 장흥문화원(원장 고영천) 향토사 연구팀과 장흥 암각문 발굴조사에 참여한 해동암각문연구회 회장 홍순석 강남대 명예교수가 주선하여 회은 위원량 선생의 증손 위정복 종친, 위성록

위원, 홍순석 명예교수가 함께 하였다.

한시준 관장은 1910년 회은(晦隱) 위원량(1882~1945) 선생이 경술국치의 울분을 토로한 장흥군 수리봉 "망곡서(望哭書)" 칠언절구 한시 암각문은 알려지지 않은 우국지사(憂國之士)의 작시인 점, 을사늑약과 경술 한일합병에서 충정 민영환, 연재 송병선, 매천 황현 선생 등이 나라를 빼앗긴 울분을 자결과 詩를 통해 표현한 사례는 있으나, 나라 잃은 울분의 시를 암각하여 남긴 사례가 우리나라에 전무하여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크다면서 한국 근현대사적 등 문화재 지정 추진에 힘을 보태겠다고 하였다.

위정복 종친은 1929년 광주고보(현 광주제일고교) 4학년 재학 중, 광주학생 독립운동에 참여하여 강제로 퇴학을 당한 조부 금원(錦園) 위장환(1909~1942) 선생의 행적을 입증하는 자료로 2020년 10월 30일 광주제일고등학교(교장 백기상)에서 수여한 명예졸업장과 장흥군 기동마을에 세워진 위장환 송덕비 등을 설명하였다. 특히 1947년 광주고보의 화재로 인해 재학 등 자료가 전소되어 독립유공자 포상에 대한 심의자료 수집에 어려움이 있다고 하였다.

이에 대해 한시준 관장은 광주·전남지역 내 광주학생 독립운동에 대한 전문가인 홍영기 순천대 명예교수, 항일독립운동을 위해 광주지역 학생들이 결성한 비밀결사단체 "독서회(讀書會) 사건" 을 조명한 진동혁(작고) 前 단국대 교수 자료 등 전문인에게 자문 의뢰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또 광주학생 독립운동에 참여하여 독립유공자로 포상을 받은 후손들의 자료도 매우 중요하다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홍순석 교수는 회은 위원량 선생과 금원 위장환 父子는 일제강점기 때 우국지사(憂國之士)로 독립운동에 참여 및 가난한 지역민을 돕는 선행을 몸소 실천하였다고 하면서 추후 두분의 행적을 바탕으로 광주 또는 장흥에서 학술발표회 개최를 제안하였다.

위성록 위원은 문림의향(文林義鄕) 장흥의 천년고찰 보림사, 천관산 도립공원, 호남5대 향교인 장흥향교, 실학자 존재 위백규 선생과 방촌문화마을, 안중근 의사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해동사, 동학농민의 최후 전적지 석대들, 가사문학의 산파인 탐진강변의 정자 문화, 송기숙·이청준·한승원 작가 등 유명 문학인 다수 배출, 별미 장흥삼합(한우·표고버섯·키조개) 등을 소개하면서 장흥 방문을 정중히 초청하였다.

이에 대해 한시준 관장은 금년 2월말 경 장흥을 방문하여 수리봉 망곡서 암각문 현장에 찾아 가려고 하였다면서 청정 장흥에서 처음 코로나19 환자 발생으로 인해 지역민심을 고려, 방문을 취소하였다고 하였다. 이 기회에 일정을 맞춰 장흥 방문을 하겠다고 흔쾌히 수락하였다.

한시준 독립기념관 관장은 단국대학교를 졸업하고 단국대학교 사학과 교수를 지냈으며,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연구소장, 백범김구기념관 백범학술원 원장을 역임하며『한국광복군연구』『한국독립운동의 역사』등 다양한 연구성과를 창출한 학자이다. 2021년 1월 25일 독립기념관 제12대 관장으로 임명되어 재임중으로 임기는 3년이다.

 

출처_한시준 독립기념관 관장과 장흥위문 후손의 대담 - 장흥투데이 (jhtoday.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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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7월 8일(목) 오전11시 충남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독립기념관로 1에 위치한 천안독립기념관에서 한시준(韓詩俊 1954년생) 관장과의 대담이 있었다.

이 자리는 장흥문화원(원장 고영천) 향토사 연구팀과 장흥 암각문 발굴조사에 참여한 해동암각문연구회 회장 홍순석 강남대 명예교수가 주선하여 회은 위원량 선생의 증손 위정복 종친, 위성록 위원, 홍순석 명예교수가 함께 하였다.

한시준 관장은 1910년 회은(晦隱) 위원량(1882~1945) 선생이 경술국치의 울분을 토로한 장흥군 수리봉 "망곡서(望哭書)" 칠언절구 한시 암각문은 알려지지 않은 우국지사(憂國之士)의 작시인 점, 을사늑약과 경술 한일합병에서 충정 민영환, 연재 송병선, 매천 황현 선생 등이 나라를 빼앗긴 울분을 자결과 詩를 통해 표현한 사례는 있으나, 나라 잃은 울분의 시를 암각하여 남긴 사례가 우리나라에 전무하여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크다면서 한국 근현대사적 등 문화재 지정 추진에 힘을 보태겠다고 하였다.

위정복 종친은 1929년 광주고보(현 광주제일고교) 4학년 재학 중, 광주학생 독립운동에 참여하여 강제로 퇴학을 당한 조부 금원(錦園) 위장환(1909~1942) 선생의 행적을 입증하는 자료로 2020년 10월 30일 광주제일고등학교(교장 백기상)에서 수여한 명예졸업장과 장흥군 기동마을에 세워진 위장환 송덕비 등을 설명하였다. 특히 1947년 광주고보의 화재로 인해 재학 등 자료가 전소되어 독립유공자 포상에 대한 심의자료 수집에 어려움이 있다고 하였다.

이에 대해 한시준 관장은 광주ㆍ전남지역 내 광주학생 독립운동에 대한 전문가인 홍영기 순천대 명예교수, 항일독립운동을 위해 광주지역 학생들이 결성한 비밀결사단체 "독서회(讀書會) 사건" 을 조명한 진동혁(작고) 前 단국대 교수 자료 등 전문인에게 자문 의뢰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또 광주학생 독립운동에 참여하여 독립유공자로 포상을 받은 후손들의 자료도 매우 중요하다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홍순석 교수는 회은 위원량 선생과 금원 위장환 父子는 일제강점기 때 우국지사(憂國之士)로 독립운동에 참여 및 가난한 지역민을 돕는 선행을 몸소 실천하였다고 하면서 추후 두분의 행적을 바탕으로 광주 또는 장흥에서 학술발표회 개최를 제안하였다.

위성록 위원은 문림의향(文林義鄕) 장흥의 천년고찰 보림사, 천관산 도립공원, 호남5대 향교인 장흥향교, 실학자 존재 위백규 선생과 방촌문화마을, 안중근 의사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해동사, 동학농민의 최후 전적지 석대들, 가사문학의 산파인 탐진강변의 정자 문화, 송기숙ㆍ이청준ㆍ한승원 작가 등 유명 문학인 다수 배출, 별미 장흥삼합(한우ㆍ표고버섯ㆍ키조개) 등을 소개하면서 장흥 방문을 정중히 초청하였다.

이에 대해 한시준 관장은 금년 2월말 경 장흥을 방문하여 수리봉 망곡서 암각문 현장에 찾아 가려고 하였다면서 청정 장흥에서 처음 코로나19 환자 발생으로 인해 지역민심을 고려, 방문을 취소하였다고 하였다. 이 기회에 일정을 맞춰 장흥 방문을 하겠다고 흔쾌히 수락하였다.
한시준 독립기념관 관장은 단국대학교를 졸업하고 단국대학교 사학과 교수를 지냈으며,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연구소장, 백범김구기념관 백범학술원 원장을 역임하며 ‘한국광복군연구’, ‘한국독립운동의 역사’등 다양한 연구성과를 창출한 학자이다. 2021년 1월 25일 독립기념관 제12대 관장으로 임명되어 재임중으로 임기는 3년이다.

<천안 독립기념관 건립 개요>
▶총부지 면적 : 1,208,135평
▶건축면적 : 16,600평
▶건립기간 : 1983년 8월 15일~1987년 8월 15일
▶건립비 : 835억원
 

출처_한시준 독립기념관 관장과 장흥위문 후손의 대담 - 장흥신문 (jh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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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간 계기- 암각문 추가 조사돼야
‘문림의향’ 증표, 장흥 금석문도 발굴‧조사‧정리돼야


장흥의 찬란한 문화와 얼이 서린 기록문화 유산의 하나인 장흥의 암각문을 정리한 <장흥군 암각문>(홍순석 저/크라운판/356쪽/한국문화사간)이 곧 발간된다.

이 책자는 지난 2020년 10월부터 장흥문화원(원장 고영천)이 향토사연구회(영상팀 김현호, 씨족문화연구위원 위성록, 장흥문화원 사무국장 위종만), 해동암각문연구회(회장 홍순석 교수)와 공동으로 2021년 4월까지 장흥 암각문 발굴 조사한 성과물이다.

장흥 암각문의 조사는 (재)한국학호남진흥원에서 실시하는 2020년 ‘제1기 광주・전남 정신문화 르네상스 문화원 동행사업’ 중 ‘문림의향(文林義鄕) 장흥지역 암각문 영상제작’과 ‘장흥의 암각문을 따라 걸으며 옛 선비들을 만나다’ 사업이 선정되면서 비롯된 사업이다.

이 사업은 5차례의 현장 답사 등을 통해 추진됐으며, 이 사업에서 확인 조사된 장흥 암각문은 63개였고, 조사팀은 이들 63점에 대해 좌표, 실측 등의 확인 조사와 탁본 뜨기 및 사진‧영상 촬영으로 실시됐고, 이 조사의 성과물서 <장흥군 암각문>을 발간하게 된 것.

장흥암각문 발굴 조사를 실질적으로 주관, 주도한 홍순석 교수는 “이번 1차 장흥의 암각문 발굴조사는 장흥읍, 관산읍, 부산면, 용산면 등 4개 읍면 지역을 조사한 것이었다”면서 “차후 나머지 6개 읍면지역에 산재해 있을 암각문에 대한 2차의 확대 조사도 반드시 필요하다, 가능하다면 2차조사 때는 더불어 여태 제대로 조사, 정리하지 못한 장흥군 금석문 일체에 대한 발굴 조사도 병행 실시하면 좋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금석문의 경우, 지난 1996년 장흥군문화공보실에서 〈내고장 정려(旌閭)〉를 펴내면서 조사, 정리한 것이 거의 전부였는데, 이 금석문은 관내에 산재한 95개의 충‧효‧열려비문을 정리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정려비 정경 사진과 함께 정려비 개요와 주요 행적 등을 소개하는데 그쳐, 정려비문의 탁본이나 비문 원문 소개 및 해제 등은 없었다.

또 그동안 군에서는 금석문에서 정려비문보다 보다 가치 있는 역대의 석제 비문(碑文)·묘지명(墓誌銘)·조상비명(造像碑銘) 등은 전혀 다뤄지지도 조사 되지도 않았다. 따라서 장흥의 전통 기록문화 유산의 하나인 금석문(金石文) 일체를 집대성한 금석문 발굴 조사와 책자발간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금호 전문화원장은 “굳이 홍교수의 주문이 아니더라도, 장흥의 귀중한 기록문화 유산인 금석문 일체에 대한 조사와 탁본, 해제 및 사진 등의 영상작업과 그것을 정리한 장흥금석문을 집대성한 책자 발간은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출처_“장흥 암각문‧금석문 확대 발굴 조사돼야” - 장흥투데이 (jhtoday.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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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군 부산면 용동마을 ‘위원량기념비’ 관련 한시 초고를 찾아내다.

                                                     회은 위원량 기념비                                                  회은 위원량 7언시 초고 

지난해 5월부터 1년간 장흥암각문을 조사해온 장흥문화원(고영천 원장)과 해동암각문연구회 홍순석 회장 (강남대 명예교수)은 5월 25일 회은 위원량의 한시작품 1건을 증손댁에서 발굴하였다. 홍교수는 지난 11월에 수리봉 위원량 ‘망곡서(望哭書)’ 암각문을 고증해서 학술적 가치를 제고한 바 있다. 이후 장흥문화원과 함께 위원량의 사적을 추적하면서 많은 자료를 발굴하였으며, ‘회은위원량송암정유허’ ‘위원량 기념비’ 암각문을 조사하여 고증하고 있다.

회은 위원량 魏元良(1882~1945)은 전남 장흥군 기동마을의 토반인 장흥위씨 가문에서 천석군의 아들로 출생 한 인물이다. 행장이나 비문이 없어 자세한 생애를 정리할 수 없다. 족보의 단편적인 기록과 어렸을 적에 회은을 보았던 지금의 원로들 기억이 전부이다. 원로들의 증언에 의하면, “매우 근엄하고, 검소하였으며, 문중이나 마을에 자선을 베풀어 칭송이 자자했다.”는 평을 듣는 인물이다.

회은은 청년 29세 때 한일합병의 국치를 당하고 울분을 토로하며 수리봉 정상의 암벽에 ‘망곡서’ 한시 작품을 새겼다. 가산을 희사하여 인근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고, 장흥위씨 가문의 대소사에 적극 희사하였다. 부산면사무소 옆에 위치한 장흥위씨 3세효열각을 건립한 사람도 회은 위원량이다. 그 같은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장흥위씨 장천문중과 지역유림에서는 ‘회은 위원량 중건묘각 표창비’와 ‘전참봉 위공원량 선행비’를 세웠다. 부산면 용동마을의 ‘위원량기념비’도 수로 공사비를 희사한 것에 대한 공적비이다. 1백년도 안된 기념비가 방치 된 채 훼손되어 판독이 어려울 정도였지만 전문가들의 자문으로 판독을 마쳤다. 정리해 보이면 다음과 같다.

有岩在洫 / 바위가 봇도랑에 막혀 있기에

攻治築磯 / 잘 다스려서 자갈돌을 쌓았으며

置流不滅 / 물길을 내어 마르지 않게 하였나니

厥功何傳 / 그 공적을 어떻게 전하겠는가

‘위원량기념비’에 새긴 찬사(讚辭)를 보면 물길을 가로막 은 바위는 깎아내고, 자갈돌을 잘 쌓아서 수로를 만들었으며, 물이 마르는 일이 없도록 하여 농사에 큰 도움을 주었다는 내용이다.

‘위원량기념비(魏元良紀念碑)’ 암각문은 장흥읍 부산면 용동마을 길가 수로(水路)의 암벽에 있다. 별도로 조성한 비석 형태의 기념비를 산기슭 암벽을 파고 넣어 시멘트로 고정한 것으로 해서체로 쓴 「魏元良紀念碑」 6자를 중앙에 종서로 새기고, 좌우에 작은 글씨로 4언 고시를 새겼다. 비석 형태의 기반암 총규모는 가로 45cm×세로 95cm이며, 글씨 하나의 크기는 10cm× 10cm이다.

부산면 기동마을에 거주하는 후손들에 의하면 회은 위원량이 사재(私財)를 희사하여 수로를 개설해서 농사에 도움을 준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라 한다. 조성연대는 1930년대 후반으로 추정된다.

회은 위원량은 송암정에서 시문을 만년의 낙으로 여기고 일제강점기를 겪어낸 향사(鄕士)이다. 그럼에도 현재까지 홍교수에 의해 칠언절구 ‘망곡서’ 1편과 칠언율시 <송암정 松岩亭> 1편만 확인된 상태이다. 이같은 정황에서 회은의 증손댁에 소장된 조객록(弔客錄) 갈피에서 회은의 한시 초고가 발견된 것이다. 내용을 검토한 홍교수는 “이 자료는 용동마을의 수로 정비사업 때 지은 것으로, 기념비의 내용과 부합한다. 회은의 시문을 탐문하여 수습하고 있는데 우연히 이 자료를 발견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7언으로 지은 이 작품을 번역해 보인다.

前人未碎後人碎 / 전대 사람들이 부수지 못한 것을 후대 사람들이 부수어

從此更無崩頹憂 / 이로부터 다시는 무너지는 근심이 없으리니

水道碍岩從碎後 / 물길을 가로막은 바위를 부순 뒤로는

坐聽前野太平歌 / 앉아서 앞 들판의 태평가를 들으리

受釘尖石當其理 / 뾰족한 돌이 정을 맞는 것은 당연한 이치로

一碎從休百室優 / 한번 부숴진 뒤로는 온집의 근심도 없어지리

홍교수는 이 자료를 본보에 제보하면서 “향후 회은의 시문집이 발견된다면 일제강점기 우국지사로서의 면모를 살필 수 있는 시문이 많을 것이다. 라며 함께 언론사와의 협동으로 찾아보면 어떨지 제안했다. 이에 장흥문화원은 장흥군(정종순 군수)과 함께 의향 장흥의 숨겨진 문화유산을 찾아보고 알리는데 최선을 다할 것 이라고 밝혔다.

출처 _  장흥투데이(http://www.jhtoday.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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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지역의 전통 발효 떡차인 청태전(돈차)의 인문학적 고찰, 계승과 복원 제다 연구

전남 장흥문화원(고영천 원장)은 (재)한국문화재재단에서 실시하는 2021년도 「무형문화재, 어울아띠 사업에서 장흥지역의 전통 발효 떡차인 청태전(돈차)의 인문학적 고찰, 계승과 복원 제다 연구 사업에 4월 선정되어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무형문화재 어울아띠 사업은 문화재청과 한국문화재재단의 무형문화재 활성화 지원사업으로, 장흥지역의 대표 전통 발효 떡차인 청태전(돈차)을 주제로 강연과 현장 답사 등의 프로그램을 ‘청태전보존연구회’와 함께 운영한다.

또한 청태전의 복원 계승을 통한 차산업의 지역경제 활성화 계기를 조성하고 지역내의 청태전 제다, 연구 관련 단체 및 일반인과의 연대사업으로 무형문화 유산에 대한 성찰과 가치 확산 동기 부여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청태전은 우리민족이 오랫동안 즐겨왔던 고유발효차의 일종으로 삼국시대부터 근세까지 전남 장흥지방을 중심으로 존재했던 전통발효차의 이름이다. 청태전은 세계녹차콘테스트 최고 금상, 국내외 다수 차 품평대회에서 각종 상을 수상하고 국제슬로푸드 생명다양성 재단이 인증한 맛의 방주에 등재되는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전통발효 명품차로서 온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지난 5월 20일 1강을 시작으로 ‘청태전차의 인문학적 고찰’ 고영천(장흥문화원장), 2강으로 ‘청태전차 유산의 분포와 특성(장흥부 13다소 중심으로)’ 이영민(전농업기술센터소장), 3강으로 ‘청태전차의 다례와 행다이론과 실제’ 서난경(한국차문화협회 전남지부장),4강으로 ‘청태전차 다식이론과 실제’ 김경자(마운다미원 원장)이 강의와 체험으로 진행되었다. 5강으로는 장흥 옛 다소 및 장흥 티로드 현장체험 김수희(제다명인)이 6월 4일 예정되어 있으며 5월부터 9월까지 총 20번의 강의와 체험으로 꾸며졌다.

고영천 장흥문화원장은 “이번 사업을 통해 지역 내 대상 교육을 통한 전통지식·생활관습 종목의 무형문화재 가치 확산 계기로 삼겠다고 하였다.”
 지역 문화산업에서 중추적 역할을 해온 장흥문화원은 그동안 향토문화의 보존ㆍ전승ㆍ발굴에 앞장서 왔다. 앞으로도 “지역문화예술단체의 활성화와 문화유산발굴을 통해 우리선조들의 발자취를 이해하고 ‘문림의향’ 고장을 알리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출처_ 2021년 ‘무형문화재, 어울아띠’ - 장흥신문 (jhnews.co.kr)

 

2021년 ‘무형문화재, 어울아띠’ - 장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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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문화원,전통 발효 떡차인 청태전(돈차)의 인문학적 고찰 | 위키트리 (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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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무형문화재, 어울아띠' 장흥 지역의 전통 발효 떡차 청태전(돈차)의 인문학적  고찰·계승과 복원 제다 연구

청태전

장흥문화원(고영천 원장)은 (재)한국문화재재단에서 실시하는 2021년도 「무형문화재, 어울아띠」 사업에서 「장흥 지역의 전통 발효 떡차인 청태전(돈차)의 인문학적 고찰, 계승과 복원 제다 연구」 사업에 4월 선정되어 진행 중에 있다고 밝혔다.

「무형문화재, 어울아띠」 사업은 문화재청과 한국문화재재단의 무형문화재 활성화 지원 사업으로, 장흥 지역의 대표 전통 발효 떡차인 청태전(돈차)을 주제로 강연과 현장 답사 등의 프로그램을 ‘청태전보존연구회’와 함께 운영한다.

또한 청태전의 복원 계승을 통한 차 산업의 지역 경제 활성화 계기를 조성하고 지역 내의 청태전 제다·연구 관련 단체 및 일반인과의 연대 사업으로 무형문화 유산에 대한 성찰과 가치 확산 동기를 부여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청태전은 우리 민족이 오랫동안 즐겨 왔던 고유 발효차의 일종으로 삼국시대부터 근세까지 전남 장흥 지방을 중심으로 존재했던 전통 발효차의 이름이다.

 청태전은 세계녹차콘테스트 최고 금상, 국내외 다수 차 품평대회에서 각종 상을 수상하고, 국제슬로푸드 생명다양성 재단이 인증한 맛의 방주에 등재되는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전통 발효 명품차로서 온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지난 5월 20일 1강을 시작으로 ‘청태전 차의 인문학적 고찰’<고영천(장흥문화원장)>, 2강으로 ‘청태전 차 유산의 분포와 특성(장흥부 13다소 중심으로)’ <이영민(전농업기술센터소장)>, 3강으로 ‘청태전 차의 다례와 행다이론과 실제’ <서난경(한국차문화협회 전남지부장)>, 4강으로 ‘청태전 차 다식이론과 실제’ <김경자(마운다미원 원장)> 등 다양한 강의와 체험이 진행됐다.

5강으로는 장흥 옛 다소 및 장흥 티로드 현장체험<김수희(제다명인)>이 6월 4일 예정되어 있으며, 5월부터 9월까지 총 20번의 강의와 체험으로 꾸며졌다.

고영천 장흥문화원장은 “이번 사업을 통해 지역 내 전통지식·생활관습 종목의 무형문화재 가치 확산에 더욱 힘쓰겠다”며 “앞으로도 지역문화 예술단체의 활성화와 문화유산 발굴을 통해 우리 선조들의 발자취를 이해하고, ‘문림의향’ 고장을 알리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지역 문화산업에서 중추적 역할을 해 온 장흥문화원은 그동안 향토문화의 보존·전승·발굴에 앞장서 왔다.

 

 

출처_장흥문화원,전통 발효 떡차인 청태전(돈차)의 인문학적 고찰 | 위키트리 (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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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강 청태전차의 인문학적 고찰

 

 

제2강 청태전차 유산의 분포와 특성

 

 

제3강 청태전차의 다례와 행다이론과 실제

 

 

제4강 청태전차 다식이론과 실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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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은 위원량의 증손집에서

장흥군 부산면 용동마을 위원량기념비관련 한시 초고를 찾아내다.

▲1936년(丙子) 7월 21일, 배(配)  인천이씨(1880~1936)별세 때

작성한 조객록(弔客錄) 책갈피에서 나온 회은 위원량 의 7언시 초고

 

 

지난해 5월부터 1년간 장흥암각문을 조사해온 장흥문화원(고영천 원장)과 해동암각문연구회 홍순석 회장 (강남대 명예교수)은 5월 25일 회은 위원량의 한시작품 1건을 증손댁에서 발굴하였다. 홍교수는 지난 11월에 수리봉 위원량 ‘망곡서(望哭書)’ 암각문을 고증해서 학술적 가치를 제고한 바 있다. 이후 장흥문화원과 함께 위원량의 사적을 추적하면서 많은 자료를 발굴하였으며, ‘회은위원량송암정유허’ ‘위원량 기념비’ 암각문을 조사하여 고증하고 있다.

 

회은 위원량 魏元良(1882~1945)은 전남 장흥군 기동마을의 토반인 장흥위씨 가문에서 천석군의 아들로 출생 한 인물이다. 행장이나 비문이 없어 자세한 생애를 정리할 수 없다. 족보의 단편적인 기록과 어렸을 적에 회은을 보았던 지금의 원로들 기억이 전부이다. 원로들의 증언에 의하면, “매우 근엄하고, 검소하였으며, 문중이나 마을에 자선을 베풀어 칭송이 자자했다.”는 평을 듣는 인물이다.

회은은 청년 29세 때 한일합병의 국치를 당하고 울분을 토로하며 수리봉 정상의 암벽에 ‘망곡서’ 한시 작품을 새겼다. 가산을 희사하여 인근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고, 장흥위씨 가문의 대소사에 적극 희사하였다. 부산면사무소 옆에 위치한 장흥위씨 3세효열각을 건립한 사람도 회은 위원량이다. 그 같은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장흥위씨 장천문중과 지역유림에서는 ‘회은 위원량 중건묘각 표창비’와 ‘전참봉 위공원량 선행비’를 세웠다. 부산면 용동마을의 ‘위원량기념비’도 수로 공사비를 희사한 것에 대한 공적비이다. 1백년도 안된 기념비가 방치 된 채 훼손되어 판독이 어려울 정도였지만 전문가들의 자문으로 판독을 마쳤다. 정리해 보이면 다음과 같다.

 

有岩在洫 / 바위가 봇도랑에 막혀 있기에

攻治築磯 / 잘 다스려서 자갈돌을 쌓았으며

置流不滅 / 물길을 내어 마르지 않게 하였나니

厥功何傳 / 그 공적을 어떻게 전하겠는가

 

▲회은위원량송암정유허_위원량기념비

 

 

위원량기념비’에 새긴 찬사(讚辭)를 보면 물길을 가로막 은 바위는 깎아내고, 자갈돌을 잘 쌓아서 수로를 만들었으며, 물이 마르는 일이 없도록 하여 농사에 큰 도움을 주었다는 내용이다.

 

‘위원량기념비(魏元良紀念碑)’ 암각문은 장흥읍 부산면 용동마을 길가 수로(水路)의 암벽에 있다. 별도로 조성한 비석 형태의 기념비를 산기슭 암벽을 파고 넣어 시멘트로 고정한 것으로 해서체로 쓴 「魏元良紀念碑」 6자를 중앙에 종서로 새기고, 좌우에 작은 글씨로 4언 고시를 새겼다. 비석 형태의 기반암 총규모는 가로 45cm×세로 95cm이며, 글씨 하나의 크기는 10cm× 10cm이다.

부산면 기동마을에 거주하는 후손들에 의하면 회은 위원량이 사재(私財)를 희사하여 수로를 개설해서 농사에 도움을 준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라 한다. 조성연대는 1930년대 후반으로 추정된다.

 

회은 위원량은 송암정에서 시문을 만년의 낙으로 여기고 일제강점기를 겪어낸 향사(鄕士)이다. 그럼에도 현재까지 홍교수에 의해 칠언절구 ‘망곡서’ 1편과 칠언율시 <송암정 松岩亭> 1편만 확인된 상태이다. 이같은 정황에서 회은의 증손댁에 소장된 조객록(弔客錄) 갈피에서 회은의 한시 초고가 발견된 것이다. 내용을 검토한 홍교수는 “이 자료는 용동마을의 수로 정비사업 때 지은 것으로, 기념비의 내용과 부합한다. 회은의 시문을 탐문하여 수습하고 있는데 우연히 이 자료를 발견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7언으로 지은 이 작품을 번역해 보인다.

 

前人未碎後人碎 / 전대 사람들이 부수지 못한 것을 후대 사람들이 부수어

從此更無崩頹憂 / 이로부터 다시는 무너지는 근심이 없으리니

水道碍岩從碎後 / 물길을 가로막은 바위를 부순 뒤로는

坐聽前野太平歌 / 앉아서 앞 들판의 태평가를 들으리

受釘尖石當其理 / 뾰족한 돌이 정을 맞는 것은 당연한 이치로

一碎從休百室優 / 한번 부숴진 뒤로는 온집의 근심도 없어지리

 

홍교수는 이 자료를 본보에 제보하면서 “향후 회은의 시문집이 발견된다면 일제강점기 우국지사로서의 면모를 살필 수 있는 시문이 많을 것이다. 라며 함께 언론사와의 협동으로 찾아보면 어떨지 제안했다. 이에 장흥문화원은 장흥군(정종순 군수)과 함께 의향 장흥의 숨겨진 문화유산을 찾아보고 알리는데 최선을 다할 것 이라고 밝혔다. (장흥문화원)

 

 

우국지사 장흥 위원량 ‘한시작품’ 발굴

장흥문화원과 해동암각문연구회는 지난 25일 회은 위원량(1882~1945)의 한시작품 1건을 증손댁에서 발굴했다고 밝혔다. 회은 위원량은 장흥군 기동마을의 토반인 장흥위씨 가문에서 태어났다.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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