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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열린자료실(DB)/■장흥 고싸움줄당기기(2013년)4

장흥고싸움 줄당기기 Ⅲ. ‘고싸움줄당기기’란 명칭에 담긴 뜻 민속놀이의 명칭에는 지역 고유의 언어 표현이 담겨 있기 마련이다. 이런 까닭에 표준어 표기에 얽매이지 않고 지역적 특생을 담은 명칭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 이 책에서 ‘고싸움줄당기기’란 명칭을 사용하게 된 배경을 밝히기로 한다. 장흥에서는 예전부터 ‘고쌈’ 또는 ‘고싸움’, ‘고줄쌈’, ‘고줄놀이’란 말을 사용해왔고, ‘고줄 고향 장흥’이란 표현도 써왔다. 또한 ‘줄당긴다, ’줄땡긴다‘란 말도 사용해왔다. 문헌에는 삭전 또는 삭희란 말이 등장하지만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경우는 거의 없고, ’줄다리기한다‘하는 말도 잘 사용되지 않았다. 이에 비해 ’고쌈한다‘, ’고줄쌈한다‘, ’줄당긴다‘, ’줄땡긴다‘라는 표현들이 빈번하게 사용돼 았다. 이 명칭들에는 고를 갖고 싸우.. 2020. 6. 9.
[장흥고싸움 줄당기기] Ⅰ.제11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관련 사진자료 제11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관련 사진자료(故 지춘상 교수 제공) 제11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장흥읍 원도리(현 장흥교도소 자리) 들판에서 연습하는 장면(1970년) 제11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장흥읍 원도리 들판에서 연습하는 장면으로 주변에 초가들이 보임(1970년) 고줄 위에 소리꾼과 줄패장을 태우고 행진하는 장면. 예전에는 문벌과 재력을 어느 정도 겸비한 한량들이 기생을 태우고 행진을 했다고 함. 기생의 설소리에 맞추어 멜꾼들은 “상, 사-, 뒤~여!” 하는 후렴구로 화답함(1970년 광주) 제11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청사초롱을 단 고줄을 메고 행군하는 장면. 청사초롱의 모양이 현재의 것과는 다르며 고머리에 색천이 감겨 있지 않음(1970년) 제 11회 전국민속.. 2020. 6. 9.
[장흥고싸움 줄당기기] Ⅱ.군민의 날·보림문화제 사진자료 Ⅱ.군민의 날·보림문화제 사진자료(양기수 제공) 1. 제 20회 군민의날 보림문화제(1990년) 덕석기를 앞세우고 출전하는 암고 1990년 당시의 고에는 청사초롱과 국기, 군기, 새마을기를 달았음. 탐진천변의 행사장으로 진입하는 고의 행렬, 장흥고의 특징을 보이는 고의 행렬과 화려함이 보임. 고싸움을 앞두고 고를 인도하는 농악대와 고줄. 암줄과 숫줄에 빨간천과 파란천으로 고머리를 장식함 고싸움에 출전하는 암고. 고싸움에 출전하는 숫고. 탐진강변에서 마지막으로 이뤄진 고싸움. 고싸움을 끝낸 후, 암고가 숫고와의 결합을 위해 어우르는 광경. 줄다리기를 위해 암수고가 결합되는 장면. 줄다리기중 “깔아라” 하는 소리와 함께 줄을 깔고 앉아있는 편(우측)과 줄을 계속 당기는 편(좌측)의 모습. 장흥 고싸움의 특징.. 2020. 6. 9.
[장흥고싸움 줄당기기] Ⅲ. 고줄 제작 사진자료 Ⅲ. 고줄 제작 사진자료(양기수 제공) 1994년 4월 20일 행원마을 분들이 고를 만들기 위해 기본 새끼 줄꼬기를 하는 모습. 기본 새끼줄로 3합의 줄을 만듦. 3합 줄을 다시 3합하여 9합의 줄을 만드는 모습. 9합의 줄을 다시 3합하여 27합의 줄을 만듦. 27합의 줄을 다시 3합하여 81합의 줄이 되어 고 모양을 이룸. 81합이 된 고를 접어 몸통을 만듦. 고머리에 대나무를 넣고 새끼줄로 다시 감아 고의 모양을 만들면서 고싸움을 할 때 쉽게 부셔지지 않도록 보강함. 완성된 서부고. 군민회관 앞에서 고를 떠멜 장정들을 기다리는 1994년 5월 1일의 아침. 2020. 6.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