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문화원

장흥군은 지난 19일 제81회 순국선열의 날을 맞아 독립유공자 유족을 모시고 정부포상 전수식을 가졌다.

이날 대통령표창을 전수받은 독립운동가는 2명으로, 독립운동 당시 0대에서 30대 사이의 청년들로 비밀결사 전남운동협의회 항일 운동 공로를 인정받아 표창 대상자로 선정되었다.

이로써 장흥군 출신 독립유공자는 총 49명이 되었으며, 2020년에만 19명이 신규 유공자로 책정되었다.

이는 장흥문화원과 장흥항일독립운동기념사업회에서 지속적으로 독립유공자 발굴에 애쓴 결과이며, 위 두 기관은 포상과 관계없이 200여 명에 이르는 장흥군 독립운동가들을 위한 선양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정종순 장흥군수는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님들께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드린다”며 “그 뜻을 장흥군민과 함께 기리고, 순국선열의 날을 맞아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과 나라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출처:
http://www.jangheung.go.kr/www/organization/news/jh_news?idx=248275&mod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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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문화원, 순국선열의 날 독립유공자 포상


[장흥=뉴스핌] 지영봉 기자 = 전남 장흥의 독립운동가 발굴 및 기록 작업을 3년째 진행하고 있는 장흥문화원이 올해 순국선열의 날을 계기로 5명이 독립유공자로 포상을 받았다고 20일 밝혔다.

이로써 2019년부터 2020년까지 23명이 새롭게 독립유공자로 포상을 받는 성과를 낳았다.

이번에 독립유공자 추서를 받은 장흥의 독립운동가들은 고영태(1917~1988, 안양면 모령), 김한상(1897~1978, 용산면 원등), 김한원(1893~1982, 용산면 원등), 김한태(1903~1980, 용산면 원등), 이종기(1908~1953, 용산면 접정) 선생들이다.

고영태 선생은 1934년 독립운동 당시 용산면 운주마을에 거주하며 고희석(高喜錫 / 당시 26세, 아직 독립유공자 미포상) 선생과 함께 활동했다.김한상, 김한원, 김한태 선생은 김두환(金斗煥 / 1990년 독립유공자 포상) 선생과 함께 활동했다.

이종기 선생은 용산면 접정리에서 유재성(劉載星 / 당시 31세, 아직 독립유공자 미포상) 선생과 활동했다.

이들은 1933년 사회주의 독립운동 비밀결사 '전남운동협의회'에 가입해, 농민조합과 농민야학을 통해 독립운동을 펼치다 1934년 1월 일제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장흥항일독립운동기념사업회는 장흥 독립운동가들을 선양하기 위한 조례 제정과 선양 사업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기념사업회 관계자는 "장흥 해동사 안중근 의사와 장흥의 독립지사들이 함께 선양되고 이들을 기념하는 조형물이 설치되기를 기대한다"며 "또한 독립운동가들의 신원과 후손을 확인하기 위해 각 읍면에서 제적등본을 교부할 수 있도록 협조를 바란다"고 말했다. 

장흥의 독립운동가 발굴 및 기록 작업을 마을 현장에서 진행하고 있는 문충선 이사와 김상찬 이사는 아직 후손을 찾지 못해 생애사 기록과 포상 신청을 못하고 있는 장흥 독립지사들이 100여 명 있다고 전했다.

특히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에 참여했던 문명렬(文明烈 / 당시 21세, 유치면 오복리) 선생과 김종선(金鍾善 / 당시 23세, 용산면 인암리) 선생의 소재를 찾고 있다. 

이밖에도 장흥문화원은 장흥문화공작소와 협력해 독립유공자 포상 신청에 머물지 않고 장흥 독립운동가들의 생애사를 기록하는 일도 모색하고 있다.

 

고영태 선생 [사진=장흥군] 2020.11.20

출처_ http://m.newspim.com/news/view/2020112000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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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군 ‘제81회 순국선열의 날’ 독립유공자 포상... 12시간전 | 광주평화방송

순국선열의 날, 독립유공자 포상 받아    장흥투데이

http://www.jhtoday.net/news/articleView.html?idxno=4972

장흥군청http://www.jangheung.go.kr/www/organization/news/jh_news?idx=248266&page=2&mod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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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경 박사, 2016년 보성 회천 ‘비정’ 뒤집는 학술논문 중심으로 발제

2015년 위성 씨, 전남도에 ‘보성군 회천=군영구미’ 부당성 2회 제기


이순신 장군은 삼도수군통제사 교지를 받고 회령진성에서 회령포 결의(취임식)를 다졌다.

사진은 회령진성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 교지를 받고 육지전을 택하라는 선조의 부당한 명령에 항거하는 장계를 올린 후

‘今臣戰船 尙有十二’라는 말을 남겼다. 사진은 ‘회령포 문화축제’


이순신 장군이 회령진성으로 내려올 당시 끌고 왔던 군졸들의 수가 120명이었다.



장흥문화원(원장 고영천)이 오는 25일 오후 2시 장흥군민회관 대회의실에서 ‘2020년 장흥전통인문학강좌 제3강’을 개최한다. 이번 강좌에는 이수경 박사(전남대학교 문화재 박사)의 ‘난중일기의 백사정과 군영구미의 위치 검토’라는 주제의 강좌가 열린다.

전남도가 2013년에 추진한, 정유재란 때 이순신 ‘조선수군 재건로’ 사업 중 하나였던 당시 장흥부 소속의 ‘백사정’과 ‘군영구미’는 그 위치를 놓고 학자들 간 첨예한 갈등을 불러일으켰던 곳으로, 전남도는 ‘조선수군 재건로’ 조성 사업에서 ‘장흥부 백사정‧군영구미’의 위치를 ‘보성군 회천면 일원’으로 비정하고 그 해당 장소에 관광 시설물을 설치하면서 장흥군 측 사학자들로부터 반기를 불러일으켰던 사안이었다.

2013년 전남도는 ‘남도 이순신 길 조선수군 재건로’ 사업을 추진하면서, 남도도립대학교 산학협력단으로부터 ‘남도 이순신 길 조선수군 재건로 고증 및 기초조사’의 최종 성과품을 제출받아, ‘조선수군 재건로’ 사업 중 장흥부 백사정 및 군영구미를 ‘회천면 일원’으로 비정하고, 본 사업을 본격 추진했다.

이에, 2015년 7,8월 장흥군 향토 사학자로 방촌유물전시관 명예관장이었던 위성 씨가 전남도에 ‘조선수군 재건로 안내 해설판 및 군영구미 지명 변경’이라는 제목의 민원(요구사항=“‘보성군 회천면 군학리’의 군영구미 지명을 ‘장흥군 안양면 해창리’로 변경해 달라”)을 2회에 걸쳐 제기하고, 그에 대한 논거를 조목조목 제시하면서 이 사업을 부당성을 지적하였다. (이 민원은 ‘*시행 ‘관광 –9715’ *접수 2015 8.21 *주무관 나소영 *광광개발담당 박석환 *관광과장 인기홍‘으로 적시돼 있다.)

위성 씨의 2회 민원 제기에서 전남도는 ▶이순신 길(수군 재건로) 사업은…(중략) …역사적 사실을 고증하는 용역을 거쳐 실시하였으며 ▶고증에 따라 (해당) 안내판을 설치하였는 바, 난중일기 등 각종 기록에 의하면, 군영구미는 안내해설판과 같이 ’회천면 군학리‘가 맞다고 회신했으며, 당시 고증을 맡았던 노기욱 교수의 의견과 전남대학교 이순신 해양문화연구소의 의견도 첨부했다.

이러한 전남도 회신에 대해 위 성씨는 “실적 위주의 역사 논문(이순신 수군 재건로 관련 논문)이 학맥과 인맥의 비호를 받으며 공개토론이나 비판 없이 학계에 통용되고 인용, 양상되는 사실이 안타깝다”면서 “비틀리고 왜곡된 글들이 논문이란 탈을 쓰고 횡행하면서 누군가의 목적달성에 이용되는 사태가 참으로 한심스럽다”고 개탄해 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그동안 장흥의 향토 사학자로서 전남도의 ‘이순신 오는 11월 25 길 조선수군 재건’ 부당성과그 문제점을 줄기차게 제기해 온 위성 씨는 ▶2014년 <장흥문화(제36호)>에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 장흥 행적’ ▶2015년 <장흥문화(제37호)>에 ‘이순신 장군 수군 재건로에 관하여’ ▶2017년 <장흥문화(제39호)>에 ‘정유년(1597년) 8월 15일 보성 열선루 장계의 건에 대한 의문점’ ▶ 2018년 <장흥문화(제40호)>에 ‘이순신 조선 수군 재건로 현장답사를 다녀와서’ 등 이순신 수군 재건로 관련 연구 논문 및 글들을 계속 발표하며, 끊임없이 ‘전남도의 이순길 길’ 사업의 부당성을 제기해 왔다.

오는 11월 25일 ‘난중일기의 백사정과 군영구미의 위치 검토’라는 주제의 강좌가 열린다.

장흥 문화계 일각에서는, 이번 이수경 박사가 발표한 ‘난중일기의 백사정과 군영구미의 위치 검토’의 학술 논문의 성과물도, 결국 이와 같은 위성 씨 등의 문제 제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고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 기사 2면 사설>

출처_ http://www.jhtoday.net/news/articleView.html?idxno=4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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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암각문조사단

장흥군 부산면 수리봉에서 위원량(魏元良) 망곡서(望哭書) 암각문 발굴


위원량 망곡서 암각문  N34°42′55.7676 E126°52′48.4896


장흥암각문조사단 조사광경(2020.11.13)  


전남 장흥문화원은  (재)한국학호남진흥원에서 실시하는 2020년도 「제1기 광주・전남 정신문화 르네상스 문화원 동행사업」에서 「문림의향(文林義鄕) 장흥지역 암각문 영상제작」과 「장흥의 암각문을 따라 걸으며 옛 선비들을 만나다」 사업이 선정된 바 있다. 이 사업은 해동암각문연구회(회장 홍순석 강남대명예교수)와 장흥문화원(원장 고영천) 향토사연구팀과 공동으로 2020년 11월부터 2021년 5월 까지 추진된다. 지난 11월 12일부터 14일까지 1,2차 현장조사를 마친 장흥암각문 조사단은 부산면, 용산면, 장흥읍 관내의 암각문을 대상으로 실측, 탁본, 동영상 촬영을 추진하였다. 

 1, 2차 현장조사에는 김기홍 전 장흥문화원장, 김일근(83세, 부산면) 청풍김씨문중원로, 김종관(79세,별신굿보존회장), 위종삼(72세,장흥위씨장천문회총무) 등 장흥관내의 유지들이 자문하였으며, 해동암각문연구회 조사팀으로 홍순석 회장, 강양희 부회장, 최은철 연구원, 오준석 보조연구원이 참석하였다. 장흥문화원 향토사연구팀으로 위종만 사무국장이 참가하였다.

이번 현장조사에서 새로 발굴된 자료로 부춘정 암각문 3건, 월산재 석비 2건, 부산면 수리봉 암각문  1건 등이 있다. 특히 부산면 수리봉 정상의 바위에 새겨진 암각문은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아 학계의 귀추가 주목된다. 


망곡서 탁본 일부 


이 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홍순석 교수는 부산면 수리봉의 「위원량 망곡서(魏元良 望哭書)」 암각문에 대해 “이 암각문 자료는 1910년 한일합병의 국치 소식을 접한 장흥지역 유림 위원량 선생이 울분을 토로하고자 수리봉 정상에 올라와 나라 잃은 울분을 칠언절구 한시에 담아낸 것으로, 시를 짓고 암각문을 조성한 연대가 분명이 새겨져 있어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평가하였다.

이 자료는 김기홍 (전 문화원장)선생이 2005년도에 발견한 자료이지만, 후학들의 관심이 없어 묻힐 위기에 있었다. 이번 사업을 계기로 재조명되고, 사료적 가치가 판명되는 셈이다. 2020년도에 전국적으로 독립운동사료를 발굴하고 정리하는 여건 속에서, 의림(義林)의 향촌 장흥지역에서 이같은 암각문을 발굴하여 학계에 보고하게 된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다.  

위원량(魏元良)의 칠언절구를 새긴 암각문은 장흥군 부산면 내안리 내동과 구룡리 자미마을 뒷산 정상인 수리봉[鷲峰,412m] 암벽에 새겨져 있다. 바위 면에 광곽을 얕게 파고 평탄하게 조성한 다음에 해서체 종서로 쓴 칠언절구 「登臨是日感斯」峰ㄷ是東邦守」義峰人多不守」峰能守可以人」多不似峰」 28자를 음각하였다. 그리고 좌측에 「隆熙庚戌秋」 魏元良謹拜」 望哭書」라는 관지를 종서로 음각하였다. 광곽의 규모는 가로 85㎝, 세로 50㎝ 정도이다. 글씨 하나의 크기는 대략 가로 8.5cm×세로 9.5cm 정도이다. 관지의 내용은 “융희 경술년 가을에 위원량이 삼가 절하고 곡하며 쓰다.”이다. 융희(隆熙) 경술년(庚戌年)은 한일합병이 체결된 1910년이다. 1901년 8월 16일, 테라우치 통감은 비밀리에 총리대신 이완용(李完用)에게 합병조약안을 제시하고 수락할 것을 독촉하였다. 그리고 8월 22일 이완용과 데라우치 사이에 합병조약이 조인됨으로써 한국은 암흑의 일제시대 36년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장흥의 유학자 위원량이 경술 국치의 사실을 듣고 울분을 토로하고자 수리봉 정상에 올라와 칠언절구를 짓고, 암각문을 조성한 것이다. 칠언절구를 번역해 보이면 다음과 같다.


登臨是日感斯峰       오늘 올라와 이 봉우리에서 느끼나니

ㄷ[峰]是東邦守義峰   이 봉우리야말로 동방의 의를 지킨 봉우리네

人多不守峰能守       사람 많아도 못 지킨 것을 봉우리는 지키니

可以人多不似峰       많은 사람도 이 봉우리만 못하누나 


 위원량(1882~1945)은 장흥의 유학자로 초명은 종량(鍾良), 자는 여진(汝眞), 호는 회은(晦隱)이다. 위계선(魏啓善)과 인천이씨(仁川李氏) 사이에서 3남 중 장남으로 1882년에 장흥군 부산면 기동에서 태어났다. 회은 위원량의 집은 역대 장흥위씨 가문의 천석꾼 집안이었다. 그는 부산면 구룡리 자미마을 수리봉에 송암정松岩亭[영이루詠而樓]를 짓고 소요하였다. 송암정은 1964년에 경호정鏡湖亭을 중수할 때 현 위치인 예양강변에 이건하였다.  

장흥문화원에서는 추진하는 이 사업을 바탕으로 장흥관내의 역사문화자원과 기록유산을 발굴・정리하여 지역전통문화 보존‧계승하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11월 27일부터 29일까지 실시하는 3,4차 현장조사는 천관산과 장천재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이 조사가 마무리되면 장흥은 물론 전남 관내의 귀중한 향토사료가 발굴될 것으로 기대된다. 


ps-문병길 부산면장 재직할 때(2018년) 자미마을 회관 앞에 그 암각문의 원문과 번역문을 홍보하는 안내판을 설치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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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보성 역사논쟁 - 재촉발인가? 종결인가?


이순신 길’ 잘못됐다 … “백사정‧군영구미는 장흥군에 있었다”
이수경 박사, 2016년 보성 회천 ‘비정’서 뒤집는 학술 논문 발표
“전적지 고증, 바른 지방사 정립, 역사 관광화에 보탬되길”


보성 측의 역사 왜곡으로 잘못 그려진 이순신의 ‘수군 재건로’


보성 회천면 군학리에 설치된 관광 안내판 ‘이순신 수군위치 등' 안내판



보성 군학리에 설치된 ‘군영구미’의 안내판



전남도가 지난 2010년 이순신의 ‘백의종군로 컨텐츠사업’ 추진과 2013년 ‘조선수군재건로’ 조성을 통한 ‘이순신 길’ 개발을 추진하면서, ‘장흥부 백사정‧군영구미’ 위치를 ‘보성군 회천면 일원’으로 비정한 후, 해당 장소에 관광 시설물을 설치했고 이를 근거로 보성등지에서 ‘의향 보성’을 널리 홍보해 왔다.

애초 ‘이순신 길’ 개발 용역과 관련 연구 등으로 ‘장흥부 백사정‧군영구미=보성군 회천면 일원’이라는 史實에 학술적 근거를 제공하였던 관련 학자들은 2013년 이후에도 지속 연구로 ‘장흥부 백사정‧군영구미=보성군 회천면 일원’이라는 史實이 고착화되며 오늘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장흥군에서는 위성‧양기수‧이병혁 등 향토사학자들이 지역신문‧학술지 등에 ‘백사정‧군영구미=보성군 회천면 일원이다 史實은 왜곡이다’고 주장하고 이론을 제기하였지만 장흥 행정당국 등의 무관심으로 ‘보성 회천면 일원이 장흥 땅 백사정과 군영구미’라는 역사의 왜곡은 변하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당초 ‘장흥부 백사정‧군영구미=보성군 회천면 일원’의 史實에 학술적 근거를 제공했던 한 당사자이기도 하였던 이수경 박사(전남대학교 문화재 박사)가, 최근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가 펴내는 <軍史> 제116호(2020.9)에서 ‘난중일기의 백사정과 군영구미의 위치 검토’라는 주제의 학술 새 논문을 발표하고 “백사정은 장흥읍 예양강 강변 둔치로, 군영구미는 안양면 선소(船所)로 추정된다"는 주장을 제기, 향후, 장흥과 보성측의 역사논쟁을 가능케 하면서 화제가 되고 있다.

이 학술논문이 주목을 받는 것은, 이수경 박사가 2016년 ‘이순신 역사문화자원의 콘텐츠 활용방안-보성군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전남대학교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등에서 ‘장흥부 백사정‧군영구미=보성군 회천면 일원’의 史實에 학술적 근거 제공을 일조한 바가 있어, 이번 학술논문은 결국 기존의 연구‧학설를 뒤집은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이수경 박사는 이번 논문의 머리글에서 ▶근래 출간된 자료집(보성군 측 주장 자료)이 기존 ‘비정’을 무비판적으로 옮겼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사료‧자료집 생산 시기를 재정리하고 ▶수군진의 수군 외 읍수군의 운영 상태를 검토하였고 ▶기존의 ‘장흥부 백사정‧군영구미=보성군 회천면 일원’ 史實의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느꼈으며 ▶그동안의 선행 연구를 바탕으로 해당 지역 지리지地誌類‧고지도를 중심으로 재검토한 데 이어 ▶현장 답사로 이를 확인하는 등의 과정을 거쳤다”면서 “이러한 작업이 임진왜란 시기의 유적지·전적지를 고증하는 데 도움이 되고 올바른 지방사 정립에 보탬이 되기를 바라고, 이러한 사료 고증과 현장 조사의 결과가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역사관광 자원화 사업에 반영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출처 : http://www.jhtoday.net/news/articleView.html?idxno=48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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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림의향 '文林義鄕’ 청소년 문화체험학교 운영


장흥향교서 6일간…장흥중‧장흥여중 1학년생 153명 참가
향교예절‧장흥 자랑거리‧대성전 분향‧해동사 참배‧보림사 탐방 등

장흥향교 10월 27일부터 11월 9일까지 명륜당과 대성전에서
‘문림의향(文林義鄕)’ 청소년 문화체험을 실시했다.


장흥중학교와 장흥여중학교 학생들이 기념촬영을 하다


장흥중학교와 장흥여중학교 학생들이 향교예절교육을 받았다 


장흥향교(전교 위인환)는 지난 10월 27일부터 11월 9일(기간 중 8일)까지 명륜당과 대성전에서 ‘문림의향(文林義鄕)’ 청소년 문화체험을 실시했다.

지난 10월 27일부터 11월4일까지 6일간 장흥중학교와 장흥여중학교 1학년 학생 153명이 ▼향교예절교육 ▼우리고장 자랑거리 ▼대성전 분향 ▼소감문 작성 ▼해동사 참배 ▼보림사 탐방하면서 ‘문림의향(文林義鄕)’ 향맥을 이어가는 장흥의 매력적인 문화체험을 통해 지역 학생들에게 지역문화의 역사성을 이해하는 교육의 자리를 마련하였다.

특별강사 위인환 전교는 41년간 초등학교 교편생활을 하였던 경험으로 향교 방문 예절교육을 1시간 동안 실시하면서 외삼문. 내삼문. 대성전 계단을 오르고 내려오는 방법과 출입하는 요령, 유복 입는 요령, 절하는 요령. 공수법과 읍례법 (굴신법)등을 자세하게 알려주면서 학생들은 직접 체험하였다.

그 주요내용은 외삼문, 내삼문, 대웅전을 출입할 때는 동쪽 문으로 들어가고, 서쪽 문으로 나간다. 공수(拱手)는 손을 맞잡아 다른 사람에게 공경의 뜻을 나타내는 행동으로 평상시 남자는 왼손을 오른손 위에 포개어 맞잡고, 여자는 오른손을 왼손위에 포개어 맞잡는데 흉사 시에는 반대로 한다.

서로 만나면 상대방을 존경하는 의미로, 남자는 읍례(揖禮)를 하고 여자는 굴신례(屈身禮)를 한다. 향교에 들어오면 맨 먼저 행하는 것은 문묘배례(文廟拜禮)인데, 문묘배례는 명륜당 뜰 중앙에서 대성전을 향하여 읍례를 하고, 25분의 성현들에게 허리를 굽혀 국궁배례를 합니다.

그리고 향교란 무엇인가? 향교의 기능, 장흥향교 역사를 살펴보았다.

일반강사 문병길 총무수석 장의도 장흥군청에서 40년 동안 근무했던 마인드를 바탕으로 1시간 동안 장흥지역 자랑거리인 아름답고 푸른 산과 맑고 깨끗한 탐진강 주변의 8(여덟)정자를 소개하면서 선인들은 그곳에서 학문을 연구하면서 나라가 어려울 때 의병을 일으켰던 선비의 충효정신을 강조했으며, 고려 17대 인종 왕비 공예태후 장흥임씨, 원감국사 충지, 가사문학의 효시자 기봉 백광홍, 실학의 선구자 존재 위백규, 동학혁명 남도장군 이방언, 가야금의 명인 최옥삼, 의사&교육자 남강 최상채, 항공우주공학의 선구자 위상규, 한과 소리를 소설로 담아낸 이청준 등 장흥지역을 빛낸 여러 선현을 알려주었다.

위성석 의전수석장의 주관으로 참가 학생대표가 대성전에서 봉향, 봉로, 대축 임무를 맡았고 일반학생은 성전배례 했으며 대성지성문선왕과 성인인 안자, 증자, 자사자, 맹자와 현인(한국18분,중국2분)에 대한 설명을해 주었는데 참가학생들은 경청하였다.

양기수 장흥향토사학자는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의사 안중근를 배향하고 있는 해동사에서 학생들은 경건한 마음으로 참배했으며, 한국불교 조계종 9산선문 가운데 가지산문의 종찰 보림사에 보존되어있는 국보2점과 보물 8점의 국가문화재를 안내 해설하였다. 특히, 한국서예협회 장흥지부장 이문갑은 참가 학생 개인별 이름을 주역으로 해석하여 가훈을 한문(10언 절구)으로 짓고 그 번역문을 전달하여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었다.

고영천 장흥문화원장은 인사말을 통해 향교의 기본 이념인 효와 충의 의미를 알기 쉽게 사례를 설명하면서 우리고장 선비들의 위대한 숨결을 느낄 수 있도록 교육하기도 했다.

11월 9일에는 회덕중학교, 11월11일에는 대덕중학교를 대상으로 ‘문림의향(文林義鄕) 청소년 문화체험’을 지속적으로 실시했다.

장흥향교는 1398년부터 1894년까지 500여년간 전주향교와 나주향교와 함께 호남의 명성 높은 향교로서 조선시대 775명(문과93명, 무과 496명, 사마시186명)관리를 배출하였는데 1894년 갑오개혁이후에 과거제도가 폐지됨에 따라 교육기능은 없어졌다.

그러나 제향(祭享)은 남아 있어 공자(대성지성 문선왕)를 비롯한 공자의 제자 4분(안자, 증자, 자사자, 맹자)과 중국 송나라 현인 정호와 주자, 우리나라 유학발전에 큰 영향을 끼친 18분의 학자에게 매년 음력 2월과 8월 상정일에 국가 중요무형문화제 제85호 석전대제(제사)를 봉행하고 있으며, 지역주민에게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다.

2015년부터 6년 동안 장흥문화원의 예산지원으로 장흥군 관내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대상으로 2015년에는 훈장님과 함께하는 문화체험, 2016년 오색감동(五色感動)문화체험, 2017년 청소년 선비문화 체험, 2018년 우리 고장 자랑거리 알기, 2019년 우리고장 향토문화체험을 실시하여 지역주민으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 기사제공-문병길 총무수석 장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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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www.jhtoday.net/news/articleView.html?idxno=4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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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가을날의 국악 향연'


고영천/장흥문화원장

코로나19의 기세가 무색하게 느껴지는 가을날이었다. 계절의 은혜는 세상의 곡절을 극복하는 기운이라도 주듯이 11월7일 오후, 예양강변의 서정은 살아 오르고 있었다. 하늘거리는 물비늘은 은빛으로 형상화 되어 말갛게 개인 하늘과 맞닿아 오르며 감성을 충동질 하고 있었다. 강변의 건너편에서 마주 보이는 장흥읍성의 성벽을 가린 수목들은 생성의 마지막 색깔들로 장식하며 그 형용을 전해 오고 있었다. 오랜만에 교감하는 가을의 정수를 마주하는 그 주말의 시간에 예양강변의 소박한 무대에서는 국악의 향연이 베풀어지고 있었다.

서혜린 국악단 에움의 ”장흥 신청神廳복원 기원 창작문화축제“의 비대면 공연이 자연과는 정순한 대면으로 개최되고 있었다.

근간에 참신하고 개성적인 국악의 행사와 공연을 기획하여 군민과의 문화적 향수를 연대하고 있는“”서혜린국악단 에움“은 장흥의 문예인들이 주목 하고 있는 모임이었다. 에움은 장흥읍 순지마을 동구쯤의 물길 옆에 둥지를 튼지가 얼마 되지 않은 세월인 것 같은데 사람들의 눈과 귀를 호사시키는 공연 행사를 거르지 않고 올리고 있었다. 이렇듯 기운차게 나래 짓 하는 문예단체가 우리 주위에 있다는 사실은 즐거울 수 밖에 없다.

주말 예양강변의 공연은 우선 주제가 시선을 끈다.

장흥 국악의 예맥藝脈에서 비껴갈 수 없는 “신청 복원기원”을 화두로 삼고 있어서이다.

장흥신청은 마치 전설처럼 지역의 문화사文化史에서 회자되고 있다. 사서史書와 향토사鄕土史에서는 장흥의 국악을 논할때마다 “장흥신청” 규모와 개성과 배출된 국악인들이 거론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청의 보다 학술적인 자료는 정립되지 않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2008년 장흥군이 “소리전수관” 건립 계획을 용역사업으로 발주 하여 대체적인 자료들이 기술될 수 있었다. 그만큼 신청의 복원이 어떤 모양으로든 가시화 되어야 한다는 것이 장흥 국악계의 오랜 숙원이었다. 그 숙원을 금년 가을날의 공연 주제로 띄운 서혜린국악단 에움의 용기에 갈채를 보낸다.

공연은 여섯 마당으로 이어졌다.

우리 전통의 현絃(가야금)과 현대의 관管(풀루트)이 혹은 개성을 살리고 혹은 합주의 선율로 우리 전통의 음악 세계를 주유하게 하였다. 곁들여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춤사위를 펼치는 무용과 국악을 歌唱가창하는 여유와 창작 국악의 공연이 강변의 경관과 조화되는 모양은 혹은 한 폭의 그림 혹은 연주와 소리의 순간을 사진으로 현상 하는 듯 아름답고 감동스러웠다. 비대면의 공연이어서 관객은 많지 않았지만 화사한 날씨를 공유하는 군민들의 무심하고 여유로운 몸짓들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동화되고 있었다. 예술은 행위하는 예인藝人들의 예지적 언행들과 어울려 박수를 치고 추임새로 끌어 들이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어느덧 넷째마당 “국악을 노래하다-여유”의 공연에서는 그 심상스러운 코로나19를 넘어 보다 차원높은 세상을 추구 하듯이 아리랑을 떼창으로 따라 부르고 있었다.

세상이 어떤 모양으로 변덕을 부리더라도 우리들의 예술은 보다 차원 높은 정경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서혜린 국악단-에움”의 무대였다.

더불어 우리 모두의 보물처럼 휘감아 흐르는 예양강의 물줄기에서 장흥의 문화는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출처 : 장흥투데이(http://www.jhtoday.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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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호남진흥원, 지역 10개 문화원 지원

 

(재)한국학호남진흥원은 ‘광주·전남 정신문화 르네상스 문화원 동행사업’ 공모결과 광주·전남의 10개 문화원을 선정했다고 19일 밝혔다.

지역별로 광주의 경우 서구·북구·광산문화원 3개 문화원이, 전남에선 목포·나주·화순·장흥·영암·함평·진도 등 7개 문화원이 선정됐다.

‘광주·전남 정신문화 르네상스 문화원 동행사업’은 광주·전남에 소재한 지방문화원이 멸실 위기의 기록문화유산 보존과 역사자원을 계승하는 중심기관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한 사업이다.

지원분야는 ‘지역 기록유산 조사 및 정리’를 비롯 ‘지역 역사문화자원 영상자료 제작’, ‘강좌와 기행’ 등으로 나뉘며 중복 지원이 가능하다. 1개 문화원당 최대 3,000만원의 사업비가 지원된다.

한국학호남진흥원은 이 사업이 지방문화원의 역량 강화와 함께 각 지역 문중에 소장된 미발굴 기록유산을 발굴·보존하고, 침체된 지역문화 정체성을 활성화해 문화자원 구축에 이바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지방문화원을 중심으로 지역 향토사 전문연구자(대학 교수·연구원 등)는 물론 차세대 학문 후속 세대인 대학생·대학원생 등이 사업에 참여해 지역 역사문화 관련 인적 발굴에도 기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사업과 관련된 자세한 내용은 진흥원 누리집(www.hiks.or.kr)을 참조하거나 전화(062-603-9618)로 문의하면 된다.

이종범 한국학호남진흥원장은 “한국학호남진흥원이 전통을 성찰하고 미래를 지향할 연구기관으로서 허브 역할을 하기 위해선 지방문화원과의 긴밀한 협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길용현 기자

 


 

출처_ http://www.jndn.com/article.php?aid=1603099976306937003

관련기사_

이뉴스투데이 2020.10.19. 전남도, 광주 전남 정신문화 르네상스 문화원 동행사업 선정

뉴스렙 2020.10.19. 광주·전남 정신문화 르네상스 문화원 동행사업 선정

위클리오늘 2020.10.19. 광주·전남 정신문화 르네상스 문화원 동행사업 선정

불교공뉴스 2020.10.19. 광주‧전남 정신문화 르네상스 문화원 동행사업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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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장흥만 해도 기히 초고령의 사회에 진입 하고 있고 “마을”마다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연령층을 감안 하면 청춘의 동력을 기대 하기는 어려운 사정이 되고 있다.마을마다 빈 집(空家)들이 늘어 나고 있으며 골목과 문전은 적요하기만 해서   사람의 그림자와 음성이 사뭇 그리워 지기도 한다.
마을은 우리 사회를 지탱 하는 최소의 공동체이다. 마을이 활기차고 마을이 살만한 환경으로 변화 하고 마을에 사람의 온기와 소통이 풍성 하면 그 사회는 여지가 있어 보인다.그러나 오늘의 장흥은 마을마다 공동화 되어 가는 위기감이 가중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이러한 마을의 위기 속에서 살만한 공동체의 본이 되는 마을이 회진면의 선학동이다.선학동은 깨어 있고 진화하고 있으며 희망이 있는 미래를 그려 가고 있다.장흥이 낳은 큰 소설가 이청준의 명작소설“선학동 나그네”의 창작 현장이라는 모티브를 지나치지 않고 마을 공동체의 이상으로 현실화 하여  마을 이름을 “선학동”으로 명명한 사건은 이 마을 주민들의 예지적이고 창조적인 면모를 확인 시켜 주기에 충분하다.그리고 선학동은 국민작가의 반열에 드는 이청준의 문학적 업적을  그 문학적 향기와 여운을 마을의 곳곳에 형상화 하는 작업을 진행해 왔다.그래서 지금은 남도의 문학 명소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한반도의 머나먼 남쪽 바닷가 마을인 선학동에는 사계절을 마다하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다. 마을은 교류와 소통의 활발함을 느낄 수 있어서 생경스럽다.사람들은 봄철이면 화사한 유채꽃의 향연과 쪽빛 바다의 서정을 향유 하며 문학의 향기를 음미하는 치유의 시간을 갖는다.금년 가을에는 메밀꽃의 화원이 희디흰 속 살을 들어내며 개화하면서 유난히 정스러운 경관을 연출하고 있어서 코로나19에 지친 발길들이 줄을 잇고 있다.이렇게 삶의 원동력을 유감없이 표현 하면서 마을이라는 공동체를 가꾸고 있는 선학동의 주민들이 스스로의 자부심을 확인하고 격려 하는 소박한 마을 잔치의 자리를 만들었다.10월16일 옅은 구름의 커틴이 맹렬한 가을 햇볕을 막아 주는 시간에 주민들은 마을의 회관에서“주민 사진전”과 “문패 만들기” “”소망의 깃발 만들기“프로그램을 공유 하면서 그 이면에는 보다 소망스러운 내일을 그리고 있었다.선학동의 주민 사진전은 마을 주민들이 각자의 스마트 폰으로 찍은 마을의 경관을 액자에 담아 전시하고 있었다.더불어 우수한 사진 작품을 선정 하여 격려와 함께 상품을 전달 하였다.  디지털 기기의 응용이 능숙 하지 않은 고령의 주민들이 자신들의 마을을 찍은 사진들은 어떤 작품보다 그 의미기 돋보였다.생기를 잃어가고 있는 우리 주변의 마을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보내는 듯 한 선학동의 어느 가을날은 문학의 향기와 주민들의 바람과 메밀꽃의 향연으로 살아 오르고 있었다.


  출처_http://www.jgy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3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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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기고/고영천/장흥문화원장


코로나19의 엄습은 우리 사회의 지형을 너무나 황당하게 변하게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예기치 못하는 현상을 대책없이 방관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감염의 그 불확실한 경로를 예지적으로 극복하는 것은 보다 적극적인 인문의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차원에서 우리 장흥문화원의 2020년도 인문학강의 제2강은 유서 깊은 역사가 전래하고 천관산의 경관이 어우러 지고 가을의 서정까지 청량하게 가세한 관산읍의 산자락 공원에서 개최 되었다.

야외 행사이니만큼 참석자는 제한 되었으나 코로나 예방 수칙을 준수한 많은 분들이 “장천팔경의 암각문”을 주제로 하는 인문학강의에 시종을 진지하게 참여하여 본을 보여 주었다.
“암각문巖刻文”은 산야에 자연스럽게 조형된 무심한 바위에 글과 문장을 새기되 그 내용은 대체로 지역의 역사, 인물, 전통, 경관, 서정을 반영하고 있으며 내용 또한 흘려 보낼 수 없는 뜻과 유래를 담고 있다. 그러나 암각문의 현장에 대한 연구는 그다지 알려진 학문이 아니어서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바 있다. 이러한 암각문을 연구 답사하여 정리하고 발표하는 학문적 성과를 거두고 있는 강사는 강남대학교 한영문화콘텐츠학과의 홍석순 명예 교수이다. 기히 남도의 역사와 문화에 많은 연구 실적을 보이고 있는 홍순석 교수는 1989년과 1990년에 강남대학술조사단을 이끌고 장흥지역 문화유적과 민요 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천관사의 사지인 지제지 원본을 처음으로 발견해 제보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렇듯 장흥 관산읍의 장천제 일원의 문화적 특성에 관심을 보인 홍교수는 전남도의 도립공원인 천관산과 장천계곡은 옛날부터 호남 지역의 대표적인 명승지로 각광을 받아온 곳이며 경관이 빼어난 장천계곡은 존재 위백규선생의 유적인 장천재 주변의 계곡으로 ‘장천재팔절’로 회자 된다고 묘사 하였다.

장천재의 현판 가운데 ‘장천재 팔절’을 기록한 현판이 있어 이를 증빙한다는 것을 고증 하였다.
홍교수의 강의는 “이 현판에 제1 청풍벽, 제2 도화량, 제3 운영기, 제4 세이담, 제5 명봉암, 제6 추월담, 제7 탁영대, 제8 와룡홍이 열거되어 있으며 ‘장천재 팔절서과 같이 융합되고 눈이 신비와 꾀하게 되어 오래도록 즐거워하니 없던 이름을 붙여 자연히 그 입에서 나옴을 깨닫지 못한다.

곡구의 첫 번 째를 청풍벽이라 하였으니 세상 사람이 골짜기에 처음 들어와서 청풍과 만남이다.
두 번째를 도화량이라 한 것은 신선을 찾는 자가 도화를 따라감이다.
운영기라 함은 개천에게 맑은가를 묻고 내 마음을 허락하는 것이요, 세이담이라 함은 소부의 일을 말한 것이요, 명봉암이라 함은 높은데서 세상을 봄이니 또한 덕성암이라고도 하며 추월담이라 함은 성현의 마음을 말하는 것이요, 탁영대라 함은 유자의 티 없는 노래를 말함이요, 제팔을 와룡홍이라 함은 인간에게 비를 만들어 보냄을 말하는 것과 같다.
이 8개소의 명칭은 모두 팔절로서 하늘에 있는 것이요, 억지로 이름 붙인 것이 아니다. 만약 괘의 이름을 보고 이름 붙이지 않는 것이 적고 이름 붙인 것이 많다고 한다면 이는 참다운 주역을 알지 못하는 자다.
이 운영기와 탁영대를 영조 임오 1762년 가을에 한결같이 그 이름을 수처럼 아름답게 해 오래도록 전하고자 대강 그 설명을 편다.
이 서문 뒤에 “맹추하한일에 계항운민 적고 사락산인 글씨를 쓰다”라는 관지가 있어 존재 위백규 선생이 글을 짓고 사락헌 위백침이 글씨를 썼음을 알 수 있다.

이 자료는 장천팔경이 존재선생이 1762년 음력 7월 하순에 장천팔경을 명명했음을 증빙한다.”고 역설하여 장천재의 새로운 인문의 장을 열었다.
장흥문화원의 금년 두 번째 강의인 “장천 팔경의 암각문”은 우리 지역의 인문과 역사와 문예적 기풍을 한 단계 끌어 올리는 알찬 내용으로 전해질 것이다.


출처_ http://www.jh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61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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