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문화원

향토 사학자 위성-해창진의 규모, 기능, 구조 새롭게 확인
“전문 학술대회, 전문 학계 용역, 역사 관광지화 추진해야”


 

강연하는 이수경 박사




 


11월 25일 장흥군민회관에서 개최된 인문학강좌. 이날 이수경 박사가
‘군영구미는 장흥 해창(서소)로 비정한다’고 발표했다.






지난 11월 25일 장흥인문학강좌에서, ‘정유재란 때 이순신의 수군재건 과정에서 중요 거점이었던 ‘군영구미’는 회천면 군학리가 아니고 안양 해창(선소)으로 비정한다‘는 이수경 박사의 논문 발표 이후 해창에 대해 관심이 증폭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당시 해창진(海倉津)의 규모와 기능, 구조가 새롭게 확인, ‘군영구미=해창진’ 비정이 더욱 탄력을 받을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지난 12월 4일, 장흥의 향토사학자 위성 씨는 이전까지 누구도 확인하지 못했던 『장흥지』(戊寅誌. 1938년)의 해창에 대한 기사를 본지에 제보하고 “장관청(將官廳)이었던 해창진이 군영구미였음이 보다 확실해졌다”면서 “장흥군에서는 우선적으로 시급히 해창진에 ‘군영구미’ 안내 간판이라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위성 씨가 확인한 『장흥지』(戊寅誌.1938년)의 기사는 “장관청(將官廳)인 해창진에 장(군장)의 숙소가 있고, 세관기가 세워져 있고, 세관의 숙소도 있다. 병선은 1척이고 세금을 내고 일하는 사람이 삼백 명이다. 좌수영에 속하고 수군 조련을 한다. 징선(세금을 거두어 싣는 배)은 1척이고 선창에 상시 정박해 있으며 쌀 운반 때 사용한다.”이다. -『장흥지』 戊寅誌(1938년)-‘長興誌續卷之一 / 倉庫 / 將官廳

그동안 장흥의 향토 학자들은 ‘당시 이순신의 수군 재건 과정에서 이순신이 회진(회령진)에 도착하기 전날 1박을 하며 머물렀던 군영구미는 해창이었다’는 점에서는 거의 이론이 없었다. 그러나 장흥의 사학자이건 외부 전문 학자이건 해창에 대한 인식은 『장흥읍지』(정묘지)(1747)의 기사, 즉 “해창은 장흥부에서 조세를 바치는 쌀을 저장하는 창고인 조운창이 있으며, 이 쌀은 경창(京倉)으로 운반된다 …선소가 있다. 대선 1척이 병선 1척, 사후선(伺候船 : 적의 형편이나 지형을 살피는 배) 1척 모두 좌수영에 소속되어 있다…”는 등의 사실(史實) 기록에 준할 뿐이었다.

그런데 이번 위성 씨가 확인한 1938년 무인지 『장흥지』에서는, 해창에는 조운창, 선소 외에도 군장의 숙소, 세관과 세관의 숙소도 있었으며, 진에 속한 역군도 3백 명이나 되는, 대단한 규모와 수군 군영으로서 큰 역할을 하고 있었던 사실(史實)이 새롭게 확인된 것이다.

위성 씨는 “당시, 수군 재건과 함께 군량미 확보가 최대 관건이었던 이순신에게는 보성 조운창을 거쳐 회령진에 도착하기 전 군량미 확보를 위해, 군장의 숙소도 있고, 세관과 세관의 숙소도 있고, 미곡이 저장된 조운창이 있는 해창진에 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면서 “해창진이 군영구미였음이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장흥의 문화계에서는 지난 번 이수경 씨의 ‘보성 회천면 일원의 백사정·구영구미 비정은 잘못됐다’는 논문 발표 이후에 해창진의 대단한 규모와 기능, 구성이 사실史實로 새롭게 확인된 만큼, 이를 계기로 장흥군에서 ‘이순신 수군 재건로와 해창진’을 새롭게 조명하는 전문학자 중심의 학술심포지엄 및 전문 학계에 연구 용역 발주, ‘군영구미=해창진’의 역사 관광지화 추진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출처_ http://www.jhtoday.net/news/articleView.html?idxno=5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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