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문화원

■기획/장흥문학단체-별곡문학동인회
----별곡… 1984년 설립, 1988년 김석중 4대 회장〜현재까지 회장 역임
1989년 ‘별곡문학’ 창간-2020년 제32호 발간-장흥문학의 산실 돼 와

昊潭 김석중
▶…이 글은 지난해 11월부터 올 2월까지 장흥문화원에서 ‘2021년 장흥문학특구 포럼’의 비대면 행사의 하나로 추진한 ‘장흥문학인 인명록 사업’에서 추진위원으로 참여한 고 김석중 작가가 ‘장흥문학단체-별곡문학동인회’에 대한 소개의 글에서 별곡문학동인회 회장으로서 직접 작성한 글로, 고인의 마지막 유고로 여겨진다. 이에 장흥문학의 토대 구축과 발전을 선도해 온 고인의 그 문학적 유업을 기리며, 고인의 글을 여기 전재한다 …편집자 ◀

▪ 장흥의 첫 문학동인회의 출범

별곡(別曲)! 장흥 최초의 문학동인 첫 모임은 1984년 7월 8일 장흥읍내의 식당에서 창립의 깃발을 올렸다. 문학을 사랑 하고 창작의 열정이 내재한 젊은이들이 모여 시작한 구성원은 김동옥金東玉, 김석중金碩中, 김순덕金順德, 김철웅金哲雄, 白성우, 양기수梁基洙, 위수미魏秀美, 윤승중尹昇重, 이규영李奎榮, 이혜경李惠京으로 열 명이었다. 당시 나이가 30대 중반에서 20대 중반이었다.

당시 별곡 모임은 “문학동인 별곡(文學同人 別曲)” 이라는 소식지를 만들어(1987.8.7까지) 모임의 상황을 기록하고 이를 배포하여 회원을 점진적으로 확대해가기로 했다. 당시 제1호 소식지 첫 머리를 이렇게 기록했다.

“시작은 이렇습니다. 이 땅 장흥에 사는 몇몇 뜻있는 젊은이들이 아름다운 예향의 고장에 예지적(藝知的)인 모임 하나 없음을 아쉬워하면서 뜻을 모았습니다. 퍽 조심스럽게 의중을 타진하면서 이런저런 경로를 통하여 그 첫모임이 이루어졌습니다.”

말 그대로 가식이 없는 순수한 열정의 시작이었다. 우린 다시 모여 모임을 구체화 하였고 세 번째 모임부터는 토론의 주제를 가지고 만났다. 당시의 첫 토론의 주제는 “문학과 자신의 생활”이었다. 여기서 회원들은 문학에 뜻을 둔 이유를 밝히고 자신의 부족함이나 가슴에 내재된 감정을 표출하고 싶다는 심경을 이야기 했다. 다음 토론 주제는 “나의 독서 편력”이었다. 그리고 제3호 소식지부터는 토론 내용 외에 자신의 목소리를 정리하여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그 첫 번째가 김철웅의 「별곡동인에 임하며」라는 수상이었고, 윤승중의 「아지랭이의 전설」이라는 시였다.

▪ 장흥문화운동의 시원이 되다

지금 생각하면 어리고 서투른 논리의 전개이었으나 우리에게는 자신의 속내를 이야기할 수 있었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는데 매력을 느껴 스스로 빠져들었다. 각자가 자신감이 충만해져 갈 무렵 ‘별곡’이라는 동인이 저잣거리에 회자되기 시작하였다. 우리들이 모임을 한다하면 스스럼없이 모임자리를 내어 주었다. 지금도 운영하고 계시는 “김사진관의 김정식” 어른은 선뜻 당신이 운영하시는 <희망예식장>을 우리들의 모임 장소로 제공하셨고, 뒤늦게 우리들의 모임소식을 들으신 강수의 문화원장은 휴일일지라도 문화원 강당을 활용토록 허락하기도 했다. 그러한 주변의 덕이었을까? 아니면 젊은이들의 꿈을 곱게 보아준 당시 어른들의 아량이었을까? 문화원의 주선으로 별곡동인들이 중심이 되어 “우리고장의 문화운동 이대로 좋은가?”하는 주제로 토론회를 갖기도 하였다. 이를 계기로 그동안 《향토문화》라는 제호로 6호째 발간해오던 장흥문화원 문화지를 7호부터는 장흥문화》로 바꾸기도 하였고, 우리들의 토론 내용을 그대로 장흥문화》 제7호에 수록하여 세상에 내 놓았다. 그리고 ‘별곡(別曲)’이라는 조금은 생뚱맞다는 저자거리의 여론에, 앞서 얘기한 「별곡을 싹 틔우며」를 장흥문화》 제7호에 실어 해명했다. 이 글에서 우리는 시대에 따른 고통과 자랑, 동경들이 역사의 맥을 이으며 시대에서 시대로 전해진다고 말하고, 외형에 신경 쓰지 않고 자유롭게 생활 주변에 얽힌 자신의 감정과 느낌을 문학적 부문에 따라 표현하고 기술하자는 의미와 함께 조선시대 우리고을 출신 기봉 백광홍선생의 ‘관서별곡’의 맥을 이어가자는 뜻에서 ‘별곡’이라 이름하였다”고 밝혔다.

▪ 소소하면서도 확실했던 문학운동의 전개

이후 우리는 각자의 주머니를 털어 매번 모임을 갖았고, 1986년 5월 25일부터 5일간 장흥에서 최초로 ‘시화전’도 개최하였다. 시화전을 마치고 나자 당시 나름대로 문화와 예술에 뜻을 두고 있었으나 자기표현에 목말라하던 젊은이들이 별곡동인 곁으로 하나하나 모이기 시작했다. 별곡동인들은 모여진 그들의 각자의 재능별로 모임을 가질 것을 제안하여 드디어 1986년 9월 10일 <장흥문화동호회(長興文化同好人會)>라 새로운 문화 예술단체를 발기하였다. 그때부터 <문학동인 별곡>은 스스로가 장흥문화동호인회의 문학분과로 활동하면서 장흥문화동호인회의 주체가 되어 각 분과를 결성해 나아갔다. 그 분과는 향토사분과·미술분과·서예분과·사진분과·민속분과·음악분과로 나누어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러면서도 활동이 왕성한 분과는 별개의 명칭을 붙여 활동하였다. 당시 발기된 <장흥향토사연구회> <억불사우회> <한들농악단> <음악동호회>이다. 이렇게 결성된 장흥문화동호인의 회원은 67명이었고, 초대 회장으로 동네에서 큰형의 나이인 화산 윤수옥(華山 尹洙鈺) 선생께서 맡아 사회적 경륜을 앞세워 이끌어 나아갔다.

당시 동호인의 활동은 대단했다. 마을마다 명절이면 어김없이 활동하던 마을의 농악기를 다루던 어른들이 사라져 그 맥이 끊기기 시작하여 한들농악단은 서투른 솜씨지만 각 읍면 마을에서 농악을 배우고자 하는 곳을 찾아가 함께 연습하며 즐겼고, 향토사연구회에서는 처음으로 장흥군의 문화유적과 사라지는 민속들을 조사 기록하기 시작하였다. 억불사우회는 매 주말이면 산야를 함께 누비며 장흥의 산야와 장흥인들의 생활상을 카메라에 담았다.

▪ 일상의 문화 영역을 개척하여 문학에 접목하다

그리고 문화동호인들이 1988년 1월1일 억불산에서 시작한 새해맞이 행사는 이후 장흥에 거주하는 일반인들의 새해맞이 연례행사로 만들었다. 1989년 10월 3일에는 천관산에 올라 천제(天祭)를 지낸 뒤 장흥산악회에서는 1993년 10월 첫 주에 천관산 억세제를 지내기 시작하였고, 1990년 5월 첫 주에 실시한 제암산철쭉제는 제암산악회에 이를 자연스럽게 물려주기도 하였다. 물론 이러한 각 분과의 활동의 참여는 각 분과를 불문하고 시간이 나는 동호인회원 모두가 자율적으로 참여하여 서로가 서로를 가르치고 배우는 기회로 만들어 나갔다.

▪ 별곡과 함께 장흥문화의 연대가 시작되다

이후 문화 영역의 전반에 걸친 활동을 목표로 하여 한들농악(회장 한봉준), 묵우회(회장 윤수옥), 향토사연구회(회장 양기수), 억불사우회(회장 김충석), 미술동우회(회장 위명온), 음악동우회(회장 박성일)이 창립되었고, 이들 단체들은 ‘장흥문화동호인회’라는 명칭으로 연대하여 장흥문화의 다양한 소재를 개발하고 현장에 도입하면서 향토색 있는 문화 행사를 개최하였다. 제1회 ‘장흥문화동호인展’은 서예·그림·시화·공연·강연 등 종합예술제를 지향하는 최초의 문예 행사로 주목을 받았다.

1986년 장흥에서 창립된 종합문화 단체인 장흥문화동호인회(회장 윤수옥)와 연대하여 문림의향의 문맥과 자원을 계발·진흥하는 것은 물론 문학과 종합 문예의 창작과 향유의 시대를 열어 가자고 다짐하였다. 하여 장흥문화동호인전으로 명칭 하는 종합 문예전을 개최하여 시화를 선보이고 매월 창작 작품 윤독회를 열어 회원 간의 유대와 창작의 기풍을 진작하는 기반을 조성하였다.

별곡문학동인회는 1984년 초대 양기수(수필,향토사) 회장을 선임 하였고 1985년 8월 2대 회장으로 김철웅(스님, 소설가)이 선임 뒤를 이었다., 1986년 8월 3대 회장으로 윤승중(공무원, 시인)이 선임되었으며, 이 기간 동안 소식지(지령7호)를 꾸준히 발간하는 것은 물론 창작 작품 토론회(격주간), 시화전(3회 개최), 작품 낭송회(4회) 등 왕성한 문학 활동을 통하여 장흥의 문맥을 조성하는 견인차 역할을 담당하였다. 1988년 8월 4대 회장으로 김석중이(소설)이 선임되었고, 1989년 동인지 《별곡문학》을 창간하여 출판기념회를 개최 하여 문학 행사의 효시를 열었다. 이어서 5대 박종규(수필), 6대 김원봉,(수필), 7대 김석중이 회장을 맡아 장흥의 문학을 확인하고 대내외에 선양하여 장흥의 문학을 진흥하는 문학 단체로 자리매김하여 오고 있다. 이 기간 동안 별곡문학동인회의 회원들은 공모전과 문예지 신인문학상에 당선되어 윤수옥(수필), 김석중(소설), 양기수(수필), 윤승증(시), 위수미(시), 위명온(수필), 이규영(동화) 회원들이 정식으로 문단에 데뷔하여 그 역량을 과시하였다.

▪ 장흥 최초의 문학동인지 “별곡문학別曲文學” 창간

별곡문학동인회는 1989년 동인지 《별곡문학》을 창간하여 장흥 지역 최초로 문예동인지의 시대를 열었다. 제호 《별곡문학》은 장흥의 선인인 기봉 백광홍의 관서별곡(關西別曲)의 문맥을 이어가겠다는 뜻이 내재되어 있다. 동인지 “별곡문학”은 그 이후 한 호도 결호 없이 지령 30호(2018년) 기념 특집호를 간행 하면서 그 연륜과 전통을 이어 오고 있다.

▪ 장흥문학인들과의 연대와 교류를 시작 하다

별곡문학동인회는 창립 이후 다양하고 창의적인 문학 행사를 기획하고 개최하여 장흥을 한국의 문단이 주목하는 “남도 문학의 본향”으로 지칭되는 문맥의 기반을 조성하였다.

1989년 6월 장흥출신의 소설가 한승원 작가를 초청하여 본격적인 문학강연회를 개최하면서 출향 작가들과의 연대를 시작하였다.

이어서 소설가 이청준 작가 초청 문학 강연회, 장흥의 문학현장 기행 등의 기획을 연이어 개최하였다.

군 단위 지역으로는 최초로 한국소설가협회와 연대하여 전국 규모의 문학세미나를 개최하였고, 전남문인협회와 공동으로 2회에 걸쳐 문학 심포지엄을 개최하여 장흥의 문학 자산을 이론적으로 정리하는데 기여하였다. 더불어 군민과 함께 문학을 향수하는 프로그램으로 청소년 문예작품 공모, 여성문학상 작품 공모, 장흥 문학현장 기행, 장흥 출신 작가 초청 문학강연회 등의 다채로운 문학 행사를 공유하였다.

▪ 장흥의 문맥 발굴과 대내외 선양 사업의 시대를 열다

특히 장흥의 가사문학을 발굴 선양 하는 작업에 참여 하여 기봉백광홍 선생의 문학적 업적을 확인하여 문화체육관공부의 이달의 문화인물로 선정(2004년 6월)하는데 기여하였으며 기봉선생의 선양 행사를 주도하였다.

▪ 장흥문학 관련 자료집 간행의 사업을 주도하다

금년으로 지령 30호에 이르는 동인지 《별곡문학》은 남도의 대표적인 문학동인지로 회자되고 있고 회원의 창작 작품과 장흥 문학의 소식, 문학 자료, 회원들과 장흥 출신 문학인들의 활동과 문학 업적 등을 수록하여 가히 장흥 문학 역사의 자료집으로 역할을 감당하였다. 하여 한국문예진흥원에서 선정 하는 최우수문학동인회로 그 역량을 인정받았다. 더불어 장흥 출신 문학인들의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고향인 장흥을 중심으로 문학을 담론하고 친교와 소통을 도모하고자 『장흥의 문학기행』(1995년 초판 자비 출판, 2014년 5쇄 개정 증보판) 간행하여 장흥 문학인과 문학 현장, 문학 자원을 형상화하여 장흥의 문학적 자긍심을 널리 홍보하였다.

장흥문학 자료집으로는 『장흥의 가사문학』(2쇄 간행) 『존재 위백규의 사상과 철학』, 『장흥의 설화』, 『장흥의 민속』, 『장흥 대표 작가 자료집』(송기숙, 이청준, 한승원), 『장흥 대표 작가 작품 선집(당제, 살아 있는 늪)』, 장흥 출신 작가 선양 사업으로 소고당 고단의 규방가사문집 『평화사시사』, 정병우의 소설집 『가잿골』을 간행하여 장흥의 문맥을 형상화하는데 기여하였다.

장흥에서 최초로 전라남도의 지원을 받아 장흥의 가사문학 길, 장흥 문학 작가 출생지와 창작의 현장에 안내판을 설치하였고, 장흥문예회관 3층의 복도를 장흥문학 전시관으로 조성하여 장흥문학의 지도를 형상화하였다. 장흥 문학의 명소 조성사업을 주도하여 이청준·한승원 문학길 조성과 스토리텔링을 기획하였고, 이청준 작가의 생가 복원 사업, 한승원 작가의 문학 공간인 달 긷는 집 안내와 홍보에 선도적으로 활동하였다. 천관산문학공원의 조성에 참여하여 남도의 문학 명소로 승화되게 하였고, 천관문학관의 건립과 전시사업에 자료를 제공하였다. 특히 관서별곡의 현장과 장흥의 가사문학 길을 정리하여 장흥문학기행의 텍스트가 되게 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바탕으로 장흥작가 문장전, 시화전을 관내 기관 단체의 공간과 축제 등 행사장에 순회 전시하여 장흥의 문학을 군민과 공유하는 분위기를 조성하였으며, 문학을 주제로 하는 현장 기행, 세미나 심포지엄 등의 다양한 행사를 지속적으로 개최하였다.

▪ 장흥문학의 선양과 문학자원의 보존 계승의 사업을 시작하다

장흥의 문학 자원을 전국적인 차원에서 형상화 하고자 ‘국립한국문학박물관(900억 소요)’ 건립 기획에 참여하였고, 근간에 대두된 ‘국립한국문학관’ 건립 공모에 전남의 대표 지역으로 참여하였다. 이제는 현대 한국 소설문학의 대표적인 작가인 이청준 작가의 문학관건립추진위원회에 참여 하여 그 성사를 목표로 진력하고 있다.

2008년 전국에서 최초로 문학을 주제로 하는 지역 특구의 이론을 정립하여 장흥을 “문학관광기행특구”로 지정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감당하였다. ‘이청준문학제’ ‘장흥문화예술인대회’ ‘한국문학특구포럼’ ‘장흥문학 뉴스레터’ 간행 등 장흥문학의 선양 사업을 혹은 주도하고, 이론과 자료 제공, 회원의 적극적인 참여로 그 지평을 넓히는데 기여하였다.

지난 30여 년 동안의 별곡문학동인회가 추구했던 작업은 지역에서의 문예 활동에 그치지 않고 출향하여 활동하고 있는 장흥출신 작가들과의 교감을 통하여 장흥문학 자원의 대내외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하였고 그 결과는 오늘 날 장흥이 가히 ‘한국문학의 본향’으로 지칭되는 성과를 거두었다.

회원들은 방송에 출연하고 신문에 장흥문학의 소식들과 현장들을 소개하고 홍보하는 것은 물론 장흥을 남도문학기행의 명소로 회자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장흥의 문학인, 장흥 문학의 명소, 창작의 현장 등 발길 닿는 곳 마다 문학의 색깔과 향기를 덧칠해온 별곡문학동인회의 족적은 오늘의 장흥을 문림의 고장 문학관광기행특구의 특화된 지역으로 각광받게 하고 있다.

장흥문화예술회관 3층에 회원들의 소통 공간과 자료실을 운영 하고 있으며 장흥에서 가장 많은 “문학자료”를 보유 하고 있다. 별곡문학동인회 34년의 연륜은 장흥의 문맥을 보존, 계승, 발굴, 선양 하는 끊임없는 작업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그러한 작업을 통하여 회원들과 장흥문인들의 창작에 기여하고 있다. 장흥을 비롯하여 전국 각지에 거주 하며 연대하는 회원 76명(2020년 현재)이 가입되어 있다.

 출처_장흥문학의 산실 ‘별곡문학동인회’의 어제와 오늘 - 장흥투데이 (jhtoday.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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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문인들 아쉬움과 애도의 글 답지, 내일의 장흥문학(화)발전 정체 걱정된다.

 

세상을 떠난
그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김석중 작가(金碩中,1948~2021)가 지병으로 3월 12일 별세했다.
향년 73세. 유족으로 부인 박인옥여사와 1남 1녀를 두었다. 김석중 작가의 장례는 고인의 유지에 따라 치르지 않기로 하였다.

고인은 의학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시신을 전남대학병원에 기증하였고, 장흥문인협회, 장흥문화원, 별곡문학회, 장흥신문사 등 장흥 문화 문학계는 고인의 장흥문학 발전에 대한 공을 기리기 위해 유족과 협의하여 별도의 추모행사를 갖기로 하였다.

고인은 평소 심장관련의 지병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고영천 장흥문화원장은 “장흥문화원 이사이며, 장흥 문학의 대표적인 소설가로 장흥문학 발전을 선도해 왔고, 현재도 책임 맡고 있는 업무가 상당하고, 앞으로도 장흥문학 발전을 선도해야 할 김석중 이사가 갑자기 별세하여 참으로 안타깝다”고 말하고 “고인은 마지막 가시는 길에서도 당신의 시신을 기증하는 일은 후인들에게 참된 삶의 의미를 시사해 주는 바가 크다”며 “조만간 유족들을 비롯 장흥 문화 원로분들과 협의하여, 조촐한 별도의 추모행사라도 가지려 한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고인과 장흥문화 활성화 사업을 함께 추진하기도 했던 윤수옥 전 장흥문화원장(수필가)은 “장흥 현지에서 ‘장흥문학 하면 김석중’으로 통칭될 만큼 장흥 현지에서 고인은 장흥문학의 대표자로 통했다. 자기 문학적 성과는 말할 것도 없고, 특히 이청준 작가의 기념사업도 앞장서서 주도하고 장흥 문학의 산실이었으며 이미지 제고 사업도 선도해 왔고... 특히 최근 들어 다양하게 장흥 문화, 문학 사업에 열정을 불태우다시피 했는데, 갑자기 먼저 가 버려 참으로 안타깝고 후인들의 몫이 더 커진 듯 해 더욱 안타깝다”고 말했다.
고인은 1970년 군역시절 월남전에 백마부대에 파병됐고, 파월장병의 후유증으로 고엽제 판정을 받기도 하였다.
1974년에는 인구보건협회 재직하였다. 1974년부터 1982년까지는 기독청년회 활동에 참여하며 특히 민주회복인권운동에 앞장서며 광주전남지역 기독청년회장, 호남NCC 인권위원으로 민주화 운동에 헌신, 직장(인구보건협회)에서 해직당하는 아픔도 있었다.
1985년에는 국회입법 보좌관으로 재직하기도 하였다.

고인은 과거 민주화 운동으로 2004년 민주화운동 관련자 인증 및 명예회복에서 민주화운동자로 검증을 받기도 하였다. 고인은 이후 민주화 운동 등의 자신의 치열한 삶의 경험을 문학으로 승화시키며, 장흥 지역의 대표적인 문화 운동가, 대표적인 소설가로 활동해 왔다.
고인의 문화(학)의 관련 주요 경력으로는, 장흥문화원 이사ㆍ부원장, ‘장흥문화’誌 편집자, 장흥문화원 각종 자료집 편집 간행 참여, 한국문학특구포럼 기획 진행위원, 이청준 문학제 기획 진행위원, 장흥군민의상 심사위원, 장흥전통가무악전국제전 추진위원, 민주평통장흥군협의회 문화분과위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고인은 별세 이전까지도 전남도청 관광문화정책자문위원, 남도한일문화친선시민모임 대표, 전남문화재단 이사, 장흥별곡문학동인회 회장, 광주전남소설가회 회원, 한국작가회 회원 장흥신문 주필과 논설위원 등으로 활동 중에 있었다.

●다음은 고인의 프로필이다.
▲현주소 : 전남 장흥군 장흥읍 교촌남외길 11 ▲장흥군 부산면 용반리 373번지 태생(1948.9.7.) ▲장흥중학교, 장흥고등학교 졸업(1968년,18회) ▲세한대학교 관광산업과 졸업(문학사)(2007년) ▲1976~
1982. 새농민문화상(농협중앙회), 관광수필문학상(관광공사), 호국문예상(국방부) ▲1981. 장편소설 ‘바람’으로 삼성문예상 수상 ▲1996. 대산재단 창작지원작가 선정 ▲1999. 전남문학상 수상 ▲2010. 전라남도문화상(문학부문)수상

●작품연보
-1982년 장편소설 ‘바람’간행
-1988년 장편소설 ‘햇빛 눈부신 날의 초상’ 간행-1991년 소설집 ‘꿈꾸는 물새’ 간행-1993년 장편소설 ‘거미눈’ 간행 설화집 ‘금수굴의 황금약수’ 간행 광주전남 소설가 협회 소설집 ‘베데다스로가는 길’ ‘석양의 나무 곁에 서서’
-1995년 ‘장흥의 민속’ 간행 (공저)
-1995년 삼성문예수상작가 작품집 ‘공명조가 사는 나라’, ‘향기①’ 발표-1995년 장흥출신작가 신작 소설집 ‘당제’, ‘향기②’ 발표
-1995년 인문학총서:향토 인물열전 ‘장흥의 선인들’ 간행
-1995년 삼성문예수상작가 신작소설집 ‘우리안의 식민지’, ‘미망의 국화’ 발표-1997년 연작소설집 ‘구름 걷어내기’ 간행
-1997년 장편소설 ‘청산에 우짖는 저 새는’ 간행
-1997년 인문학총서 ‘장흥의 가사문학’ 간행
-1997년 장흥출신작가 소설집 ‘살아있는 늪’,  ‘눈물의 끝’ 발표
-1998년 설화집 ‘며느리바위의 푸른 그림자’ 개정 보증판 간행
-1998년 인문학총서 ‘탐진댐 수몰마을 이야기’간행
-1998년 국방일보 ‘부용화’ 소설연재
-2000년 장편소설 ‘속깊은 우물’ 간행
-2001년 인문학총서 ‘존재 위백규의 사상과 철학 간행’ (공저)
-2005년 ‘장흥의 문학기행’편저
-2006년 인문학총서 ‘누군들 따뜻한 남쪽마을이 그립지 않으랴’
-2007년 장편소설 ‘다시 지와몰에서’ 간행
-2009년 장편소설 ‘깊은 우물’개정판 간행
-2009년 장흥지원 ‘지청 100년사’ 책임집필
-2012년 ‘장흥경찰100년사’ 책임집필
-2014년 인문학총서 ‘그리운 남쪽마을’(장흥, 역사문화인문서)간행
-2019년 장흥작가 연구총서 ‘소설과 삶의 향연-이청준’ 편저
-2019년 장편소설 ‘풀잎과 강물의 이야기’

출처_‘장흥문학 큰 별’ 소설가 김석중 선생 별세 - 장흥신문 (jh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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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 천관산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지정'

장흥군은 지난 15일 천관산이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119호 ‘장흥 천관산(天冠山)’으로 지정됐다고 밝혔다.

 

천관산은 장흥군 관산읍 옥당리 산97-4 등 10필지에 위치하며 지정 면적은 총 1,333,013㎡(국/군유지 100%)이다.

▲장흥 천관산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지정ⓒ장흥군


문화재청이 밝힌 천관산의 명승 지정 사유로는 산등성과 정상 부근을 중심으로 분포하는 기암괴석 등의 화강암 지형 경관, 억새군락 등의 식생 경관, 정상부에서 조망할 수 있는 다도해 경관 등이 있다. 천관산은 경관이 탁월하게 아름다워 경관 가치가 뛰어나다는 강점을 갖고 있다. 

 

또한 백제·고려와 조선 초기에 이르기까지 일대 행정 구역의 중심이 되는 산으로 국가 치제를 지내거나 봉수를 설치해 국방의 요충지로 활용된 역사성을 가지고 있다. 아울러 일대에 천관사, 탑산사 등 사찰·암자와 방촌마을 고택 등 문화관광 자원이 다수 분포해 역사 문화적 가치 또한 뛰어나다. 

이처럼 장흥 천관산은 경관·역사 문화적 가치가 탁월하여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 119호로 지정되었다.

천관산 명승 지정을 위해 정종순 장흥군수는 주민 의견을 청취하고, 사유 재산의 과다 침해를 막기 위해 문화재청에 의견 제출 및 다각도로 협의를 시도했다. 

그로 인해 『장흥 천관산』 국가지정문화재(명승) 119호 지정은 역사문화 환경 보존 구역을 최대 축소한 지정 구역 100m 반경으로 설정되었다. 

이는 개인의 사유 재산을 보호하면서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지정을 이루어 낸 전국 국가지정문화재 지정 관련 첫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은 지자체의 국가지정문화재(명승) 지정과 사유 재산권 보호를 동시에 이루게 된다는 점에서 향후 국가지정문화재 지정의 모범 사례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정종순 장흥군수는 “이번 천관산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지정을 계기로 군민들이 자긍심을 갖고 살 수 있도록 천관산의 다양한 역사 및 문화 자원을 보존·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장흥 천관산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지정'

장흥군은 지난 15일 천관산이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119호 ‘장흥 천관산(天冠山)’으로 지정됐다고 밝혔다. 천관산은 장흥군 관산읍 옥당리 산97-4 등 10필지에 위치하며 ...

www.pressian.com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031610390478802#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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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사상, ‘불공정 계약’ 논란 후
작가 출판·저작권 침해 없게 제도 고쳐



지난해 불공정 계약 논란으로 수상작을 내지 못한 이상문학상의 올해 대상 수상작으로 이승우(사진)의 단편소설 ‘마음의 부력’이 선정됐다. 수상 작품집은 이달 안 발간된다.

이상문학상을 주관하는 문학사상은 4일 제44회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과 우수작 선정 결과를 발표했다. 대상 수상작인 ‘마음의 부력’은 죽은 형과 화자인 동생을 착각하는 어머니를 통해 가족이 서로에게 느끼는 부채감과 죄책감을 그린 작품이다. 심사위원회(권영민, 윤대녕, 전경린, 정과리, 채호석)는 “아들과 어머니 사이의 부채 의식과 죄책감이라는 다소 무겁고 관념적인 주제를 사회윤리적 차원의 여러 가지 현실 문제와 관련지어 소설적으로 결합해 내는 데 성공했다”며 “주제의 관념성을 극복하면서 감동적인 예술미를 구현한 소설적 성취를 높이 평가했다”고 밝혔다.

이승우 작가는 1981년 한국문학 신인상에 ‘에리직톤의 초상’이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구평목씨의 바퀴벌레> <일식에 대하여> <미궁에 대한 추측> <목련공원>, 장편소설 <생의 이면> <식물들의 사생활> <그곳이 어디든> <캉탕> 등 다수의 작품을 펴냈다. 대산문학상, 현대문학상, 동서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이 작가는 “소설가가 자기가 한 일로 상을 받는 것은, 규칙과 반복이 지배하는 ‘사무원’의 사무실로 갑자기 낯선 손님들이 찾아오는 것과 같은 사건”이라며 “나는 손님들에게 이유를 따져 묻는 대신 다시 ‘사무원처럼’ 내 일을 하려고 한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문학사상은 지난 한 해 동안 주요 문예지에 발표된 중·단편소설을 대상으로 문학평론가, 소설가, 문예지 편집장, 문학 연구자, 문학담당 기자, 문학 전공 교수 등 200여명에게 후보작 추천을 의뢰했다. 그 결과 총 19편을 예심 대상작으로 선정했으며 이 가운데 11편이 최종 심사 대상에 올랐다. 우수작은 박형서의 ‘97의 세계’, 윤성희의 ‘블랙홀’, 장은진의 ‘나의 루마니아어 수업’, 천운영의 ‘아버지가 되어주오’, 한지수의 ‘야夜심한 연극반’ 등 5편이 선정됐다.

이상문학상은 지난해 수상작의 저작권 양도조항 등 불공정 계약으로 작가들이 수상을 거부하면서 논란을 빚었다. 권영민 월간 문학사상 편집주간은 “지난 일 년 동안 이상문학상 운영 전반에 관한 모든 사항을 면밀하게 점검해 운영 방법을 개선하고 불합리한 요소를 제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문학사상은 <이상문학상 작품집> 출간을 위해 작품을 재수록하는 과정에서 작가의 출판권과 저작권에 어떠한 침해도 없도록 한다는 내부 시행 규정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또 그간 문학사상 편집부에서 자체 운영해온 예심 제도를 바꿔 예심위원을 위촉하고 예심 내용을 공개하기로 했다.

올해부터 대상 수상자에게 지급하는 상금을 기존 3500만원에서 5000만원으로 올렸고, 우수 작품 재수록료는 작품당 500만원으로 책정했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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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한국사진작가협회 전라남도지회 임성동 회장-

언택트 시대 사진예술 추구-‘지역문화 진흥에도 수범적’

 

사진작가 임성동

 


지난 8월 18~22일 5일간 순천시 문화건강센터에서는 제15회 전라남도사진대전에 출품하여 입상한 작품 89점, 초대 및 추천작가 작품 45점 등 130여 점의 사진 작품들이 전시되었다.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한 언택트 사진전은 실제 전시 공간과 유튜브의 동시 전시로 사진 애호가들과 관람객들에게 사진미학의 정수를 향유하는 기회를 제공하였다.비대면의 사회적 질서를 지키면서도 치유와 사유의 문예를 향수하는 전라남도 사진대전은 임성동 지회장의 꼼꼼하고 섬세한 기획으로 대내외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장흥 출신인 사진작가 임성동 

지회장은 일찍이 렌즈를 통한 순간의 영상미학 창작에 뛰어난 수준을 보였으며, 장흥을 근간으로 하는 동호회 활성화와 창작활동에도 꾸준히 정진해 왔다.또한 지난 2014년에는 대한민국사진대전 대상을 수상하는 등 전국 규모의 공모전에 다수 입상하여 독자적인 작품 영역을 구축하였다.특히 사진예술의 불모지였던 장흥군에 사진협회 지부를 결성하여 지역 작가들의 연대와 창작 환경 조성에 앞장서는 열의를 보였다.회원의 창작전시 프로그램과 연수 워크샵을 정기화하고, 전국 규모의 작품 공모전을 개최하는 등 남도사진 예술의 선도적 활동을 전개하였다.이러한 임성동 회장의 활동에 힘입어 회원의 자질은 향상되었고, 대내외적으로 예술단체로서의 위상을 구축하는 놀라운 변화를 보여 주었다.


주목받는 임성동의 오리지널리티
사진예술은 스마트폰의 대중화로 그 영역이 대중화되고 다량의 이미지화 작업이 가능하여 대중예술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누구든지 쉽게 촬영하고 인화, 출력하여 시공을 극복한 공유와 감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래 이러한 흐름에 반하여, 그의 작품의 오리지널리티가 주목받고 있다.
또한 임성동 회장은 사회적 활동과 문화적 탐방의 작품 경향을 뛰어넘어 이상향적인 작품을 추구하고 있다.
그 예로 강과 산과 바다를 주제로 하는 지극히 서정적인 「하늘사다리」와 「미명」 계열의 작품은 SNS에서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지역 문화의 진흥에도 솔선 

지난 2019년 2월 한국사진작가협회 전남지회장으로 취임한 임성동 회장은 남도 사진작가들의 창작 현장 개선, 작품 발표 및 공유, 프로그램의 다양성과 활성화를 위해서 전력을 다하고 있다.지난 8월 18~22일 동안 주최된 전라남도사진대전의 언택트 전시 또한 세월의 곡절을 극복하는 기획전이었다.지역의 문화 활동에도 솔선수범하고 있는 임성동 회장은 장흥문화원의 부원장을 역임하면서 장흥의 문화 진흥에도 기여하고 있다.

 

출처_ http://www.jhtoday.net/news/articleView.html?idxno=4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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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의 대표 서예가 올해 치인 이봉준 초대작가로 선정
목원 박병호, 청현 문상일, 춘산 최병길, 태와 권문옥, 아촌 남택이, 율원 금종일, 대은 임형두 입선

 

 

대작가로 선정된 치인 이봉준

 

 

사)한국서가협회 장흥지부에 큰 경사가 났다.

장흥지부장 치인 이봉준 선생은 제25회 대한민국서예전람회에서 그해에 대상이 없는 우수상으로 1등을 수상하는 등 12점을 획득, 금년에 초대작가가 되었다. 그 상은 전라남도에서 여태껏 처음 있는 큰 상이었다.

이어 금년 제28회 대한민국서예전람회에서는 박병호(장동면 용곡리), 문상일(장흥토요시장내 서영수산 대표), 최병길(전 행정공무원), 권문옥(장흥 대신택배 대표), 남택이(의료보험 과장), 금종일(전 알리안츠 장흥소장), 임형두(대은산업 대표)의 7명이나 입선하는 쾌거를 거두었다(이 수상내역은 동아일보 7월 1일자 15면과 한국미술서예신문, 각 서예월간지, 사)한국서가협회 홈페이지 등에 발표되었다)

서예대전은 1949년부터 1988년까지의 국전(國展)시대를 마감하고, 1989년부터 민간단체인 (사)한국미술협회가 주관하는 대한민국미술대전 서예부문과 같은 해 (사)한국서예협회가 주관하는 대한민국서예대전에 이어 1992년 (사)한국서가협회가 창립되고 이듬해부터 제1회 대한민국서예전람회를 개최하니 올해가 제28회째이다.

하여 위 삼 단체, 대한민국미술대전 서예부문 · 대한민국서예대전 · 대한민국서예전람회는 전 국전 지류로 민간단체에 의해 주도되기에 부적절한 명칭이지만, 그 권위에 걸 맞는 단어를 찾지 못하고 흔히 ‘국전’이라고 부르고 있다.

(사)한국서가협회 장흥지부에서는 그 국전에 지금껏 총 13명의 입상자를 배출했다. 치인 이봉준 지부장은 “장흥지부 회원들은 각자 열심히 서예학습에 임하고 있고, 상들도 많이 받으므로, 머지않아 청출어람할 제자들이 나올 것이다.”라 하니, 장흥 서예의 앞날이 기대되고 있다.

제28회 대한민국서예전람회의 입상자 시상식은 2020년 8월 29일(토) 오후 3에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갖게 되며 9월 4일까지 전시키로 하였는데, 요즘 갑자기 코로나 19의 확산으로 시상식과 전시를 생략하고, 도록제작 등과 사)한국서가협회 홈페이지의 지상전으로 대체한다.

 

출처_ http://www.jhtoday.net/news/articleView.html?idxno=4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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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인 이봉준 초대작가 선정

 

 

 
▲치인 이봉준

사)한국서가협회 장흥지부는 금년에 큰 경사가 났다. 장흥지부장인 치인 이봉준 선생은 제25회 대한민국서예전람회에서 그 해에 대상이 없는 우수상으로 1등을 수상하는 등 12점을 획득하여 금년에 초대작가가 되었다. 그 상은 전라남도에서 여태껏 처음 있는 큰 상이었다.
금년 제28회 대한민국서예전람회에서 박병호(장동면 용곡리), 문상일(장흥토요시장내 서영수산 대표), 최병길(전 행정공무원), 권문옥(장흥 대신택배 대표), 남택이(의료보험 과장), 금종일(전 알리안츠 장흥소장), 임형두(대은산업 대표)의 7명이나 입선하는 쾌거를 거두었으니, 동아일보 7월 1일자 15면과 한국미술서예신문, 각 서예월간지, 사)한국서가협회 홈페이지 등에 발표되었다. 

서예대전은 1949년부터 1988년까지의 국전(國展)시대를 마감하고, 1989년부터 민간단체인 (사)한국미술협회가 주관하는 대한민국미술대전 서예부문과 같은 해 (사)한국서예협회가 주관하는 대한민국서예대전에 이어 1992년 (사)한국서가협회가 창립되고 이듬해부터 제1회 대한민국서예전람회를 개최하니 올해가 제28회째이다.
 하여 위 삼 단체, 대한민국미술대전 서예부문 · 대한민국서예대전 · 대한민국서예전람회는 전 국전 지류로 민간단체에 의해 주도되기에 부적절한 명칭이지만, 그 권위에 걸 맞는 단어를 찾지 못하고 흔히 ‘국전’이라고 부르고 있다.

(사)한국서예협회 장흥지부에서는 그 국전에 지금껏 총 13명의 입상자를 배출했다. 치인 이봉준 지부장은 “장흥지부 회원들은 각자 열심히 서예학습에 임하고 있고, 상들도 많이 받으므로, 머지않아 청출어람할 제자들이 나올 것이다.”라 하니, 장흥 서예의 앞날이 기대된다.
 제28회 대한민국서예전람회의 입상자 시상식은 2020년 8월 29일(토) 오후 3에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갖게 되며 9월 4일까지 전시한다.

 

 

 

출처_ http://www.jh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61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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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관식 후 기념사진 앞줄 오른쪽 세 번째 백남경관장. 양 옆으로 정종순 군수 위등 의장

 

 

장흥군 안양면 남부관광로 1045번지에 위치한 정남진 수석박물관(백남경 관장)이 26일 전국의 수석인들과 정종순 장흥군수, 위등 의장을 비롯한 군 의원과 사순문 곽태수 김복실 윤명희 도의원, 기관사회단체장 및 지역주민과 친지 등의 축하를 받으며 4년 동안 준비하여온 수석박물관을 개관했다.

백남경 관장은 1968년부터 수석에 매료되어 수집광이 되었으며 평생을 수집한 수석과 그림 민속품 2,000여점을 1차로 전시하고 있다.
정남진 수석박물관은 20여억원의 공사비를 투입하여 우리지역 수석문화발전과 문화관광에 큰 몫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백남경 관장은 개관사에서 “一生一石을 찾아내기 위하여 땀을 흘리던 시간, 수석탐석과 수석연출로 행복했던 시간이 박물관 개관으로 주마등처럼 지나간다”면서 “인생을 녹여 만들어낸 수석과 작품들을 고향에 전시하여 저의 고향 사랑하는 마음을 박물관에 담았으니 장흥문화발전에 일익을 담당하는 박물관이 되도록 수석문화에 많은 관심과 사랑을 당부 드린다”고 하였다.

개관식 축사는 (사)대한민국수석인총연합회 김상규 총회장, 박철수 상임고문 겸 서울수석인연합회 회장, 정종순 장흥군수, 위등 장흥군의장, 고영천 문화원장이 하였고 김영록 전남지사, 김승남 국회의원, 김영배 국회의원, 백낙훈 기산리 출신의 축사는 인쇄물로 대신했으며 민족통일협의회 전라남도 박현정 사무처장의 “정남진 수석박물관” 축시로 개관식은 성대하게 진행되었다.

특히 박물관 홍보 책자에 “맑은 물 푸른 숲” 그리고 휴식의 고장 장흥의 관광지를 소개하여 백남경 관장의 애향심을 잘 표현하여 주고 있었다.
백남경 관장은 사단법인 수석문화협회 이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출처_ http://www.jh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61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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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 회령진성과 주변 지형

 

 

장흥 회령진성과 관련 시설물

 

 


 

장흥부 회령포진지도(1872년 제작)

 

 

 

장흥 회령진성 동벽(뒤채움) 전경

 

 

 


 

동벽 뒤채움 축조방식

 

 



전남문화관광재단은 장흥군(군수 정종순)과 함께 지난 2월부터 4개월 동안 장흥 회령진성(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44호) 구조파악을 위해 학술 발굴조사를 실시했다고 15일 밝혔다.

이번 조사를 통해 전부 훼손된 것으로 판단된 회령진성의 동벽이 절벽과 급경사 등 자연지형을 그대로 활용한 돌로 외벽을 쌓고 안을 흙으로 채운 구조(내탁식)로 축조된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관련 시설로 추정된 수혈(구덩이) 4기와 주공열(기둥) 1기를 추가적으로 발굴해 기록으로만 존재한 동벽의 흔적을 확인했다.

이번 발굴조사로 장흥 회령진성은 ‘1490년(성종 21) 4월 높이 13척, 둘레 1,990척 규모로 흙과 돌을 섞어 쌓았으며, 동벽은 벼랑 위에 쌓았다’는 역사기록을 고고학적으로 증명하게 됐다.(성종실록권239)

이외에 회령포진지도(1872년)에 남문ㆍ북문ㆍ동문이 표현되어 있고, 성 안에는 동헌, 객사, 장교청, 사령청, 군기고, 성 밖에는 선소, 군 정박지가 묘사되어 있는데 그 흔적도 이번 조사를 통해 확인하였다.

* 동헌(관청), 객사(관사), 장교청(상급직 집무실), 사령청(하급직 집무실), 군기고(무기 보관고)

재단은 전남도 핵심사업인‘이순신 호국‧관광벨트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장흥 회령진성 발굴 조사를 추진했으며, 앞으로 여수, 해남, 진도, 완도지역 등 이순신 관련 역사, 유적, 문화 관광지를 체계적으로 조사해 복원·정비 자료로 활용할 계획이다.

주순선 재단 대표이사는“이번 발굴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체계적인 학술 조사와 고증을 거쳐 ‘이순신 호국‧관광벨트 조성사업’과 연계해 장흥 회령진성을 전남의 대표적인 역사테마 관광 명소로 개발될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한편, 회령진성과 앞 회령포구는 조선시대 선소와 선창이 있던 곳이다. 정유재란(1597)때 원균의 칠천량해전 패전 후 경상우수사 배설이 부서진 배 12척을 이끌고 피신했던 곳이고, 그 배를 고쳤던 곳(현 덕산마을)이기도 하다.

이후 백의종군을 끝내고 삼도수군통제사로 복귀한 이순신 장군은 300여명의 주민들과 이곳 회령진성에서 난파 직전인 배를 수리하여 12척의 배로 133척 왜선을 물리친 명량대첩의 가장 극적인 승리를 쟁취할 수 있게 한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출처 : http://www.bzero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46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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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회령진성 동벽 구조 확인..정비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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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이 정유재란 때 12척의 배를 수습해 출병한 장흥 회령진성의 동벽 구조가 확인됐습니다. 전남문화관광재단은 최근 실시한 학술발굴조사에서 회령진성 동벽이 절벽과 급경사 등 자연지형을 이용해 만든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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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림의향’ ‘문학관광기행특구’의 인문학적 근간이 부끄러워 지는 장흥의 문화현장

 

● 장흥의 처처에 설치된 안내판의 허虛와 실實

 

 
 

 
 

필자는 장흥의 문화현장에 설치된 안내판의 문안 작성에 상당히 많이 기여 하였다.
그때마다 느껴 지는  의문점이 있다. 장흥의 역사 문화 경관의 명소에 찾아오는 이들을 위하여 설치된 안내판은 그 제작과 설치가 업자 중심으로 설계되고 설치 된다는 사실이다.
탐진강변의 정자들을 설명 하고 안내 하는 안내판의 경우를 예로 들어 보자. 그 안내판의 재질과 내구성과 디자인은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안내판에 들어갈 문안文案이다.
설명의 문안이 없는 안내판은 그냥 사물일 뿐이다. 그런데 안내판의 규격과 재질과 디자인 제작의 예산은 계상 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문안 작성의 에산은 전혀 반영이 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안내판의 문안은 기존의 자료에서 발췌하여 짜깁기 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기존의  자료를 인용 하면서도 그 자료를 연구 작성한 필자에게는 양해도 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혹은 그 분야에 식견이 있는 이에게 의뢰 하는 경우에도 업자측의 생색을 앞세운 촌지寸志 수준의 인시치레로 갈음 정도이다. 한 분야에 대한 문안은 자료를 확인하고 문장을 요약하고 가장 합당한 단어를 구사하여 안내판의 규격에 맞는 문안을 작성해야 한다. 그 작업이 수월한 것은 아니다. 생각해 보면 이런 행정은 인문의 학자들에게는 너무 무례하게  대처하는 것이다. 안내판을 제작하는 업자에게 합당한 예산이 책정 되듯이 문안을 작성 하는 이에게게도 응분의 사례를 하는 것 당연한 도리임에도 장흥군은 그 당연함을 외면하고 있다.
이는 장흥에서 활동 하며 향맥을 선양 계승하는  역사학자. 문예인들을 무시하는 처사이다. 하여 간곡하게 당부 드린다. 역사 문화의 사업 예산을 편성할때에는 자문료 저작권료 원고료에 대한 일정한 비율을 포함 하는 안목 있는 행정을 추구 하였으면 하는 건의이다.

 

●오류와 장흥의 안내판들

1. 장흥읍 송암리에 위치한 사인정의 뒷곁에는 암각서巖刻의 서체書體가 있다.
 서체는 ‘제일강산第一江山“이며 유래에 대한 안내문이 있다. 안내문은 그 서체가 백범김구선생의 친필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사인정을 방문한 분들 중에서 식견이 있는 이들이 그 부분을 지적하고 있다. 백범선생의 친필이 아닐 것이라는 지적이다.  분명한 고증이 필요 하다. 구전에 의지하여 사실과 다른 설명은 장흥 인문의 민낯을 보여주는  부끄러운 사안이기 때문이다.

2. 장흥읍 예양교에 전시된 사진의 오류

 

 

장흥읍 예양교 아랫녁에 “장흥 고싸움 줄당기기” 관련 사진들을 전시하여 산책 하는 이들의 식견을 넓히고 장흥의 역사성을 인식하게 하고 있다.

전시된 사진중에 1971년 보림문화제 당시 시연된 ‘고싸움“사진이 있다. 그 사진은 우리 장흥의 전통 민속놀이인 “고싸움”과는 괴리가 있다. 당시의 사정은 통일벼의 장려로 ‘장흥 고’를 제작할만한 양질의 볏짚을 구하지 못해 임시방편의 고싸움 형태를 재현한 것이다. 그래서 장흥의 민속과는 동떨어진 ‘차전놀이’ 모양이다. 극히 초보적인 상식을 외면하고 많고 많은 장흥 고싸움의 사진 대신에 궂이 이런 사진을 전시하는 연유은 어디에 있을까. 다른 사진들은 개인이 소장한 자료이다. 개인 소장의 자료를 공공의 장소에 전시하기 위해서는 소장자의 양해를 구하거나 합당한 사례(저작 소유권)를 해야 한다. 그 과정을 거쳤는지 의문이 든다.

3. 탐진강 수변공원의 안내판 표기 오류

 

 

탐진강 수변 공원 근처에 ‘탐진강’의 유래와 지리적 현장을 설명한 안내판의 내용은 기본적인 사실도 확인되지 않은 오류가 있다. 표기된 유치면의 옴천천(唵川川ㆍ옴과 암의 한문 표기는 상용)은  따라서 ‘옴천천’으로 한글 표기하는 것이 맞다. 출처의 표기 또한 오류이다. 1985년도에 간행된 장흥군지郡誌는 없기 때문이다. 장흥군 향토지는 1975년에 간행 되었고 장흥군지는 1990년도에 간행 되었으므로 1985년의 장흥군지를 출처로 기재한 것은 치명적인 오류이다.

4. 장흥의 대표 작가를 소개하는 안내판의 내용이 부실하다.

 

 

소설가 송기숙 안내판(동학농민혁명기념관 앞) 시조시인 김제현  안내판(문예회관 계단 앞)
 장흥의 대표적인 작가들의 작품과 경력을 소개하는 안내판을 제작 설치 하는 사업의 일환으로 관내 십여곳에서 읽을 수 있다. 그중 다중이 왕래 하는 장흥읍 충렬리 동학농민혁명기념관 앞에는 ‘송기숙 작가’ 장흥읍 읍성로 문예회관 계단 옆에는 김제현 작가를 소개하는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그 내용이 너무 부실하다. 이 두 작가의 약력 설명이 부실하기 때문이다.
가령 김제현 작가는 소설가인지 시인인지 어느 읍,면 출신인지 기본적인 설명이 없다.
김제현 작가 안내판의 경우 이름과 시조 한편만 게재되어 있다. 회진면 출신이며 한국 시조문학의 유명 작가인 김제현의 문학적 업적을 알기에는 태부족이다. 아마도 여타 다른 작가의 안내판도 유사할 것이다. 1개당 300만원이 소요 되었다는 안내판을 제작 설치하기 전에 가장 기본적인 자문을 받는 절차가 그리도 어려웠을까. 장흥군청의 문화관광과 행정이 심히 우려스럽다.

5. 천도교장흥교당(장흥읍 교촌리 소재) 마당의 안내판 문안 부조화
우리 장흥군은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국보 2점을 비록 하여 보물 11점 등 국가지정 문화재가 24점 도지정문화재가 56점 향토문화재가 16점이다. 이 문화재의 존재를 알리고 선양하기 위한 안내판은 거의 모든 대상물의 앞에 설치되어 있을 것이다.
그 안내판의 문안은 간결하고 분명 하고 알기 쉽게 작성 되어야 한다는 것은 기본일 것이다. 따라서 문안의 작성은 어느 개인(담당 공직자)의 식견보다는 역사적 안목과 문장의 작성에 전문성이 있는 이들의 자문과 협력응 거쳐 작성 되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근간에 장흥읍 교촌리 소재 천도교교당(도지정218호) 마당에 설치된 안내판을 읽은 지인이 필자에게 연락해서 내용에 대한 의견을 피력 하였다.
안내판의 문안은 국한문혼용 문장 7행. 영문 번역 문장 13행으로 작성 되어 있는바 국한문 혼용의 1행 반이 천도교당의 유래를 기술 하고 있고 5행은 교당의 건축물 설명에 할애 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천도교당이 장흥의 근대사에서 어떤 기여를 하였는지 그 교당이 건립된 역사적 민족적 의식에 대한 기술이 없다는 지적이며 건축 형식에 대한 기술이 너무 많이 할애 되고 있는 것은 부조화이며 일반인이 읽을 수 없는 영문 기술이 안내판 공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것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지적이었다.
필자는 그 지적을 듣고 현장을 찾아서 확인 하고 이해가 되었다. 추후 관내 문화재의 안내판은 보다 객관적이고 전문적이며 이해가 쉬운 문안으로 작성 하는 원칙을 세워야 할 것으로 보여 진다.

6. 장흥 문학현장 안내판 문안의 정비와 보수를 외면하고 있는 문화 행정
지난 4월 초순 장흥문인협회 회원들이 이청준의 걸작 소설‘눈 길’의 현장 기행을 하였다.
이청준의 눈 길 그 창작 현장은 전국의 이청준 소설의 독자들과 인문학자들 가족단위 여행길을 나서는 이들이 꼭 한번 걷고 싶은 문학 여정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길목이다. 장흥문인협회 회원들 역시 소설 눈길의 행간을 사유하며 문학의 공간과 여백을 동행하는 답사 기행이었다.
그 길지 않은 답사 길목에서 장흥의 문학현장이 너무 소외되고 방치 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 하였고 그 내용을 지역의 주간 신문에 기고하기도 하였다. 그 중 지나칠 수 없는 몇가지 사례를 기술 하겠다.

▶눈길의 길목에 설치된 안내판이 훼손되어 있는데도 방치되고 있었다.

 


 


이청준 생가를 방문하는 이들이 방명 하고 감상을 기재 하는 ‘방명록 비치대’의 구조가 불균형적이어서 사용 하기에 불편 하였다. 이청준문학자리 입구의 안내판 문안, 그 내용이 부자연 스럽다.


적절한 지적이었다. 사실 기행팀이 지적한 사안에 대해서는 지난 2년전과 최근에도 필자가 문광과의 담당 주무관에게 수차례 건의 하였다. 그럼에도 종무 소식이다.

문광과는 장흥 문화의 수십억 수백억의 예산이 소요 되는 사업에만 관심이 있고 업무를 집중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문화의 현장은 섬세하고 디테일하게 관리 보존 계승 되어야 빛이 나고 여운이 있다는 것이다.
문화의 자원이 섬세하고 디테일 하게 형상화 되기 위해서는 도식적이고 관료적인 행정과 더불어  민간 문예인들의 현장성과  감수성과 전문성이  접목 되어야 한다. 이 칼럼에서 필자가 제기한 문제들이 교과서적인 담론은 아닐지라도 차제에 관민이 참여한 “문화자원 보존자문위원회”같은 기구를 설립 운영 하는 것을 검토해 보았으면 하는 제안을 드린다.<호담>

 

출처_http://www.jh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6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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