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문화원

전남 장흥문화예술회관 공연장상주단체인 ‘예술단 결’이 지난 5월 연극 ‘고래’에 이어 올해 두 번째 공연으로 지난해 초연에 관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던 가족음악극 ‘설화, 그거 맛있는 거야?’를 선보인다.

20일 군에 따르면 이 공연은 장흥문화원이 추진해 온 장흥설화 관련 사업으로 장흥의 문화예술 관련단체가 서로 연대해 우리 고장 장흥에서 전래되어 내려오는 다양한 설화를 소재로 창작극을 만들었다.

특히 무대 위에서의 배역 뿐 아니라 작곡, 음악, 의상, 소품, 홍보, 디자인 등 스텝활동 대부분을 장흥군민들이 소화해 낸다.

이번 공연에서는 좋은 노래를 스스로 만들어 내고, 다양한 소품을 함께 제작해 아이들에게 좋은 연극 무대를 선보일 것으로 기대된다.

http://www.shina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95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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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림의향 계승 교육 사진 /자료=장흥교육지원청

 

 

장흥교육지원청(교육장 왕명석)은 문인이 숲을 이루어 의(義)로운 삶을 살아가는 장흥 고장에 대한 자긍심을 고취하기 위해 2019년 6월 24일(월) ~ 11월 22일(금) 기간 동안 장흥 지역 문학인들이 직접 학교로 찾아가는 프로그램을 지원한다.

이번 프로그램은 장흥 관내 초,중 교사와 지역 문학인으로 구성된 TF팀의 여러 차례 논의를 통해 초등 프로그램, 중등 프로그램으로 장흥지역 작가작품과 장흥의향을 교육과정과 연계하여 재구성 초등 6차시, 중등 16차시로 문림의향 주제중심 프로그램으로 구성하였다.

장흥 관내 초등학교 17학급, 중학교 6학급 학급단위로 교육이 이루어지며 운영기간은 총 3기수로 나뉘어져 1기에 신청한 학급은 6월 24일(월) 첫 수업의 시작으로 2기, 3기에 신청한 학급은 2학기 교육과정을 재구성, 자유학기제와 연계하여 프로그램을 지원하게 된다.

문림 의향 프로그램 개발위원으로 참석한 박○○ 선생님께서는 "지역 문학인과 연계한 문학 활동과 장흥동학농민혁명과, 장흥독립운동의 사건과 인물에 대한 역사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장흥 고장을 이해하고 내 고장 장흥에 자긍심을 갖길 바란다"고 전했다.

장흥교육지원청 왕명석 교육장은 "우리 고장 장흥은 널리 이름이 알려진 한승원, 이청준 등 자랑스러운 문학인들과 나라를 구한 의병들이 많아 '문림의향'으로 불리어왔으며 학생들에게 문림의향 교육을 통해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의'와 '예'의 고장인 장흥을 사랑하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장흥교육지원청에서는 문림의향 자료개발 보급, 학생, 교원을 대상으로 문림의향 캠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문림과 의향의 얼이 살아 숨 쉬는 장흥교육이 되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출처_http://www.metroseoul.co.kr/news/newsview?newscd=20190701000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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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장흥 월송리 백자 요장의 현황과 성격

‘장흥 월송리 백자 요장의 현황과 성격’ 사적 지정을 위한 국제학술대회가 지난 6월 28일 10시 청소년수련관에서 민족문화유산연구원의 주관으로 개최됐다.

한동희 장흥부군수는 “조선 초기 월송리 요장의 성격을 조명하는 학술대회를 시작으로 다양한 주제와 지속적인 연구로 사적 지정의 토대를 마련하자”고 개회사를 했다. 위 등 장흥군 의회 의장은 “장흥에는 유무형 역사문화가 산재하고 있다. 실체가 드러난 월송리 백자 요장이 전통을 확립하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고 인사했다.

학술대회는 민족문화유산연구원 한성욱 원장이 ‘장흥 월송리 백자 요장의 현황과 성격’을 발표하고, 김희태 전라남도 문화재위원이 ‘장흥 월송리 요장의 역사적 배경’을 발표하고 국립부여박물관 권소현 연구원과 토론했다.

오후에는 동북아지석묘연구소 김정애 과장이 ‘장흥 월송리 요장의 공방 현황과 성격’을 발표하고 고려청자박물관 강경인 연구개발실장과 토론하고, 獨協大學 田代裕一량 교수의 ‘장흥 월송리 요와 일본 요의 비교 검토’를 발표하고 홍청군 문종근 학애사와 토론했으며, 장기훈 경기도자박물관 관장이 ‘장흥 월송리 백자와 분원 백자의 비교 고찰’을 발표하고 최경화 서강대학교 교수와 토론했으며, 이영덕 호남문화재연구원 원장이 ‘장흥 월송리 요장의 보존과 활용 방안’을 발표하고 정두섭 양구백자박물관 관장과 토론했다. 종합 토론은 방병선 고려대학교 교수가 좌장을 맡고 발표자와 지정 토론자, 방청석과 함께 진행했다.

장흥군 담당자는 이날 국제학술대회를 계기로 사적 지정에 한발 더 가까워진 느낌이며 보존에 더욱 노력하겠다고 이야기 했다.

 

출처_http://www.jhtoday.net/news/articleView.html?idxno=2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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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은 김창대 씨를 국가무형문화재 제91호 ‘제와장(製瓦匠)’ 보유자로 인정했다고 28일 밝혔다.

이번에 제와장 보유자로 인정된 김창대 씨는 고(故) 한형준(제와장 전 보유자, 1929~2013)의 문하에서 제와기능을 전수받아 약 20여 년간 제와장의 보존·전승에 힘써왔다.

   국가무형문화재 제91호 ‘제와장(製瓦匠)’ 김창대 보유자

지난 2009년 전수교육조교로 선정된 이래로 국보 제1호 숭례문, 보물 제1763호 창덕궁 부용정 등 각종 문화재 수리에 참여해 왔다.

1988년 8월 당시 중요무형문화재 제91호로 지정된 제와장은 건축물의 침수·부식 방지, 치장 효과를 갖는 다양한 기와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기능 또는 사람을 의미한다.

흙 채취, 다무락 작업, 기와성형, 기와소성에 이르는 제와장의 기능은 막대한 노동력 외에도 전통 등요에 대한 경험적 지식까지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높은 숙련도가 필요한 종목으로 손꼽힌다. 등요는 약 13°~15°의 경사에 굴 형태로 축조한 가마를 말한다.

문화재청은 이번 제와장 인정조사에서 종목에 대한 이해도, 교수능력, 심층기량 평가 등 기와제작 전체 공정에 대해 서면조사와 현장조사를 약 1년여 간 진행했다.

그 결과 김창대 씨가 공정 재현의 전통성을 갖고 있으며, 기와 성형의 숙련도와 전통가마, 도구에 대한 이해도 등이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아 인정됐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이번 국가무형문화재 지정과 보유자 인정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오랫동안 전통기술의 계승에 전념해 온 전승자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전승현장에 활력을 불어 넣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_https://news.v.daum.net/v/20190628143528817?fbclid=IwAR1Ch1uNe7p9umY76RboB5kel625xFoYP_vit6SabRWS-Xkoh50wdQc33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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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3일 ~ 9월 1일 국립나주박물관 기획전시실서 장흥 특별전 개최

- 장흥군 대표하는 역사·문화 유산 250여점 전시

 

 

 

장흥군 문화유산 특별전 ‘길이 길이 흥할 땅, 장흥’이 지난 3일 국립나주박물관에서 막을 올렸다.

장흥군(군수 정종순)과 국립나주박물관(관장 은화수) 공동으로 주관한 이번 특별전은 개막식을 시작으로 오는 9월 1일까지 이어진다.

100여명이 참석한 개막식은 식전공연과 테이프 커팅식, 전시해설, 연회 순으로 진행됐다.

이번 전시회는 장흥군의 대표 역사·문화 유산과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흔적을 소개하고 있다.

장흥군은 나라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마다 일어섰던 의향의 땅으로 알려져 있다.

정유재란 의병, 구한말 동학농민혁명 최후 격전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의 활동지가 바로 장흥이다.

최근에는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안중근 의사 영정과 위패를 모신 장흥군 장동면 해동사가 재조명 받고 있다.

전시회에는 ‘장흥’이라는 이름을 갖게 한 공예태후(恭睿太后) 정안임씨(定安任氏)와 관련된 문화재를 비롯해 약 250점의 문화유산이 전시됐다.

전시는 모두 4부로 구성됐다.

1부에서 바다를 통해 성장하는 선사와 고대의 장흥을 살펴보고, 2부는 고려시대 찬란한 불교문화를 꽃피운 장흥을 소개했다.

3부에서는 조선시대 사림(士林)의 고장 장흥, 4부에서는 근대 이후 문예를 잇는 장흥에 대해 다뤘다.

정종순 장흥군수는 “이번 전시회를 소중한 지역유물의 체계적인 보존과 전승, 연구자료화를 위한 계기로 만들겠다”며, “빛난는 장흥의 문화관광자원이 더욱 널리 알려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출처 : http://www.jhtoday.net/news/articleView.html?idxno=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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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광학술상 수상자로 선정된 송기숙 전남대 명예교수. 전남대 제공/2019-06-04(한국일보)

 

후광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신을 계승하자는 취지로 제정된 후광 학술상 제12회 수상자로 송기숙 전남대 명예교수가 선정됐다.

후광학술상 선정위원회는 4일 송 교수를 수상자로 최종 선정하고 5일 전남대 개교 67주년 기념식에서 시상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선정위는 “송 교수는 자신의 삶과 소설이라는 도구를 통해 한국 사회의 모순된 현실을 비판하고 개선하고자 하는 ‘실천하는 지식인의 표상’이라고 선정이유를 밝혔다.

송 교수는 1973년부터 2000년까지 30여년 간 전남대 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78년 전남대 동료교수 10명과 함께 ‘국민교육헌장’을 비판한 ‘우리의 교육지표’를 발표해 긴급조치 위반으로 구속, 1년 동안 복역하면서 교수직까지 파면당하는 수난을 겪었다. 80년 5ㆍ18민주화운동 당시에도 학생수습위원회에서 활동하다 내란죄로 10개월을 복역했다.

그는 대학 복직 후 87년 ‘5ㆍ18광주민중항쟁 사료 전집’ 발간, 같은 해 ‘민주화를 위한 전국 교수협의회’ 창립 및 초대 의장, 94년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 96년 전남대 ‘5ㆍ18연구소’ 설립 및 초대 소장 등을 지냈다.

또 문단 데뷔 이래 40여년 내내 사회현실의 구조적 모순을 작품 안에 구조적 맥락에서 구체화했다. 문단에선 “그의 소설 쓰기는 민중을 국가의 주체이며, 역사의 주체로 바로 세우기 위한 작업이었으며, 그이 대표 작품인 ‘암태도’와 ‘녹두장군’ 등에도 이러한 정신이 잘 녹아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편 후광학술상은 전남대가 민주ㆍ인권ㆍ평화의 실현을 위해 공헌한 세계 각지의 탁월한 연구자 및 연구단체에게 수여함으로써 후광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신을 계승해 나가자는 취지에서 제정돼 올해로 12번째 수상자를 배출했다.

김종구 기자 sori@hankookilbo.com

출처_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906040908754109?did=DA&dtype=&dtypecode=&prnewsid=

 

후광학술상에 송기숙 전남대 명예교수

후광학술상 수상자로 선정된 송기숙 전남대 명예교수. 전남대 제공/2019-06-04(한국일보)후광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신을 계승하자는 취지로 제정된 후광 학술상 제12회 수상자로 송기숙 전남대 명예교수가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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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자궁같은 고향땅서… 삶과 자연을 읊조리다

‘당신은 북천에서…’ 펴낸 이대흠 시인 / 2011년 전남 장흥 탐진강변 돌아와 / 8년간 쓴 시 묶어… 남도의 서정 물씬 / 보고 싶은 이를 향한 지쳐버린 마음 / 희미한 흔적으로 남은 그리움 묘사 / 곰살맞은 사투리 애잔한 시어로 녹여

“장구를 치다가 가죽에 번져 있는 얼룩을 본 적이 있다 커다란 몸뚱이를 감쌌던 소가죽이 몸을 다 잃고 매 맞아가면서도 놓지 않아 말라붙은 소 울음소리// 그날의 소리는 죽지 않았고 떠나간 자들은 아주 떠나지 못한다”

얼룩 속에서 그리운 이의 얼굴을 발견한 적이 있는가. 시인은 “누군가를 오래 그리다 보면 문득 그의 얼굴이 얼룩 속에서 살아난다 때로는 마음에 두지 않았던 얼굴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뜻하지 않았을지라도 모르는 얼굴은 아니다”고 이어간다. 그 얼굴은 “잊힌 한때에 내가 그리워했던 얼굴이거나 나를 잊지 못한 누군가가 난데없이 방문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대흠(50) 시인이 고향인 전남 장흥 탐진강변에 돌아와 살면서 8년 만에 상재한 새 시집 ‘당신은 북천에서 온 사람’(창비·사진)에 수록된 ‘얼룩의 얼굴’이다.

시인에게 얼룩은 ‘말라붙은 울음소리’에 가깝다. 보고 싶고 그리워서 울다가 얼룩으로 남아 눌어붙은 울음소리. 목놓아 불러봐도 더 이상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는 지칠 대로 지친 그리움. 그것은 시간이 흐른다고 완전히 소거되지도 않고 희미한 흔적이나 추상의 무늬로 남지만, 결국 그 흐릿한 얼룩에서도 끝내 보고 싶은 이의 얼굴과 마주하고 만다. 뜻하지 않은 얼굴이 떠오를 때도 있지만 그이는 정작 나를 잊지 못한 누군가여서 모른다고 잡아뗄 얼굴도 아닌 것이다.

“사무쳐 잊히지 않는 이름이 있다면 목련이라 해야겠다 애써 지우려 하면 오히려 음각으로 새겨지는 그 이름을 연꽃으로 모시지 않으면 어떻게 견딜 수 있으랴 한때 내 그리움은 겨울 목련처럼 앙상하였으나 치통처럼 저리 다시 꽃 돋는 것이니”

시인은 ‘목련’에서도 그리움을 치통처럼 앓는다. 그는 “그리움이 아니었다면 어찌 꽃폈겠냐고” 진술하면서도 “또 바람에 쓸쓸히 질 것”인데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일지 모른다고 되뇐다. 모든 ‘사랑의 습관’이 쓸쓸한 건 아니다. 때로는 ‘너무 성스러워 고맙고’ 고맙기도 하다. ‘홀아비 만수 형님’이 객지를 삼십 년 넘게 떠돌아다니다 제주도에 집을 장만해 칠순의 부모를 모셨는데 도란거리던 노인들이 ‘중늙은이 아들’이 ‘젖먹이 때인 듯 살포시’ 잠들자 ‘사랑의 습관’을 되살렸던 모양이다.

 

 

 

 


고향에 돌아와 쓴 시편들을 8년 만에 새 시집으로 묶어낸 이대흠 시인. 그는 “막연했던 고향을 소화하는 과정에서 신화적 상상력에 방점을 두었다”고 말했다.
창비 제공

 


“꿈결인 듯 아닌 듯 파도 소리가 막 들려오더래요 처음엔 파도가 파도를 베끼는 소린 줄 알았다가 바람이 파도를 일으키는 소린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몸이 몸을 읽어가는 소리였는데요 칠십 줄 넘은 노인들이 한 오십년 읽어왔던 서로의 몸을 다시 읽는 소리였는데요// 처음에는 얼굴이 붉어졌는데 가만 생각하니 너무 성스러워 고맙고 고맙더래요 애 낳기에는 늦어버린 허공이 된 몸들이 애를 쓰고 있었는데 그 소리에 더 묻히다 보니 거기서 나오는 바람 소리와 파도 소리가 혼자 노는 게 아니더래요// 그래요 그것은 우주가 알 스는 소리였는데요 우주의 숨을 낳고 기르다가 다시 우주로 돌려주는 것이었는데요”(‘성스러운 밤’)

이대흠은 2011년 고향에 돌아온 이후 쓴 시편들을 수록한 이번 시집에 생에 대한 성찰과 탐진강변 자연 풍광, 5년 전 작고한 아버지의 삶, ‘북천’에 대한 그리움들을 고르게 담았다. 탐진강변에서는 ‘물의 경전’을 읽는다. “언제고 어느 때고 세월은 도둑처럼 다녀가고/ 물의 말씀을 화석으로 남기려다가/ 끝내는 물이 되어 흘러가는 무모한 사람들// …// 보아라/ 서러운 것/ 바라는 것/ 생의 환희 같은 것이/ 다만 여백으로 기록되는 물의 경전을 보아라” 시인에게 ‘북천’이란 해탈과 적멸의 공간이다. 그 북천에서는 “사람도 사랑도 새도 나비도 죽음도/ 꽃이나 별떼도 하나로”(‘북천의 물’) 흐르고, “사랑을 할 줄만 알아서/ 무엇이든 다 주고/ 자신마저 남기지 않는다”(‘당신은 북천에서 온 사람’)고 시인은 쓴다.

“달이 빛나서 북천이 밝습니다/ 북천이 밝아서 당신이 보입니다/ 나를 보고 웃는 낯빛이 고요합니다// 단 하나의 사랑을 지어 달로 띄워 올립니다”(‘북천의 달빛’)

“와보랑께와보랑께로/ 거보랑께거보랑께로/ 그란당께그란당께로”(‘강진’)처럼 질펀하고 곰살궂은 남도 사투리도 시어로 녹여낸 이대흠은 “말이 지닌 본디의 것을 살리는 데 애를 썼다/ 조금 더 나에게 가까워졌다/ 너에게 밀착되었다”고 시인의 말에 적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출처: http://www.segye.com/newsView/20180830004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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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 용화사 주지 서응스님
불상전문 사진작가 안장헌 - “불상 상호의 아우라 너무나 강렬”
국내 최고전문가 정영호박사-“석불 복원-국가 지정 적극 추진”
관계기관 무관심-석불 재조명, 용화세계 꽃불 언제 피어오를까
 

동면 용화사 전경

 

 
신라 말 고려초기의 용화사 석조여래좌상(사진-안중헌)

 

 
용화사(龍華寺)는 장동면 북교리 산 43번지(장동면 석교상방이길 89-114)에 위치한 신라 말 고려초기의 약사여래불을 모신 사찰이다.
아직은 사찰로서 번듯한 대웅전도 구비되어 있지 않아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영험하다고 잘 알려진 천년된 석불 약사여래가 있어 전국 각처에서 참배 불자들의 기도행이 줄을 잇고 있다.
최근에는 용화사 진입도로가 개설되어 대형 관광버스를 동원한 단체 기도참배객들이 줄을 이을 정도다. 올 가을에도 관광버스 5대의 참배가 예약되어 있다고 한다.

 

■용화사의 기원은 불자사로부터

 

용화사의 시원은 불자사(佛者寺)이다.
<장흥읍지>(1747년 간행 정묘지) 장동방 불우조(佛宇條)에 “佛子寺 在盃山西 今有遺止”라는 내용, 즉 ‘불자사는 배산 서쪽에 있었으나 지금은 그 터만 남아 있다’고 기록되어 있어, 현재의 약사여래좌상이 위치한 용화사가 예전의 불자사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런데 1953년경 모인(某人)이 폐사지 방죽에 넘어져 있던 약사여래좌상을 일으켜 세우고 석불 주위로 작은 움막 같은 보호각을 지었으니, 이 석불과 작은 움막 같은 보호각으로부터 용화사는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2003년 서응 스님이 용화사 주지로 부임해오며, 용화사는 일대 변혁기를 맞이한다. 서응 스님은 약사여래좌상이 안치된 허름한 보호각을 개축한 데 이어, 설선당, 심검당, 다향각, 화장실 등을 복원하며 어느 만큼 사찰의 면모를 갖추었다.

 

■서응 스님- 약사여래불에 큰 감화받았다

 

서응 스님은 허허벌판이나 다름없던 용화사로 이적하게 된 계기를 묻는 기자의 말에 스님은 당시 움막 같은 곳에 갇혀 있던 석불에 큰 감화를 받았다고 한다.
“저의 게으른 선수행을 질타하는 듯 활짝 열어젖힌 눈매며 기상이 넘치는 듯 우뚝 솟은 콧날, 자애가 넘치는 듯한 도톰한 입술...저는 이런 천년고불인 약사여래불을 보고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거기서 하룻밤을 유하는데 부처님이 현몽하기도 했고, 새벽에 몸이 그렇게 가뿐해질 수가 없었습니다. 용화사의 기운이 범상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약사여래불을 모셔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용화사로 온 이후 서응 스님은 첫째로 콘크리트 좌대 위에 앉아 있고 상당히 훼손 되어 있는 석불을 복원하는 불사를 추진하였다고 한다. 그러다 2003년 매미 태풍 때 약사여래불 보호각이 무너지는 참변을 당했고, 이후 군의 긴급 복구사업으로 보호각을 재건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동안 서응 스님은 스스로 수십 번 체험하기도 했지만, 약사불을 참배한 수많은 불자들로부터 약사여래부처님의 영험함을 전해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불교 미술사학의 거목인 정용호 박사가 용화사를 다년간 2015년 이후, 약사불의 예술적, 문화적 가치를 거듭 확인하고는 약사여래불의 복원사업과 국가지정 문화재인 국보, 보물 지정운동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용화사의 약사여래좌상은 1974년 9월 24일 전남도 유형문화재 제46호로 지정된 바 있다)
서응 스님은 석불의 복원에 이은 또 한 가지 꿈을 가지게 되었다. 새로운 당우에 약사불을 본존불로 모시는 대웅전 불사를 추진하는 일이었다.
이러한 일련의 불사의 꿈은 2016년 8월 2일, 전 단국대 석주선박물관장으로 한국 고고미술사학계 거목인 정영호 박사가 용화사를 방문하고 나서였다.

 

■미술사학계 거목 정용호 박사 용화사 방문

 

▲정영호박사(좌측에서 두번째)가 석불을 관찰하고 있다.(사진-안중헌)

 
▲정영호박사(우측에서 두번째)가 석불 복원, 국보지정을 주창하고 있다.(사진-안중헌)
 
정영호 박사는 1950년대부터 수백여 점의 유적 및 유물 발굴에 앞장섰던 국내 최고의 미술 사학계의 거봉이었다. 그가 발굴한 단양신라적성비(국보 제198호), 중원고구려비(국보 제205호) 발굴 등은 특히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는 또 양양군 진전사지의 6차례 발굴조사를 통해 부도(보물 제439호)와 석탑(국보 제122호) 발굴 등으로 국내 첫 폐사지 복원의 역사를 일궈내는 큰 기여를 했으며, 1977년 이후 2016까지 200여 회에 걸쳐 일본 대마도를 방문, 왕인 박사를 비롯한 선현들의 기념비를 세우기도 했던 인물이었다.
그 정영호 박사가 용화사를 방문한 것이다. 이때 동행한 분들이 문화재 전문 사진작가인 안장헌 씨, 박기선 박사(정영호 박사 제자), 순천대 사학과 교수 최인선 씨(순천대학교 박물관장) 등이었다.
특히 안장헌 사진작가의 경우, 국내의 불상 사진만 수십만 점을 보유할 정도로 불상에 대해서 세계적으로 탁월한 식견을 가진 지고 있었고 이런 이유로 용화사 석불과도 인연도 있었던 불상 전문 사진작가이기도 했다.

 

■안장현 불상 전문 작가도 용화사 방문

 

안장헌 씨는 2002년 3월 5일, 처음으로 용화사를 찾아갔을 때를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용화사는 석불의 보호각을 법당으로 사용하고 있으면서 변변한 요사채마저 없는 자그마한 절이었다. …용화사의 석불은 광배(光背)와 불신(佛身)을 커다란 하나의 돌에 새겨놓은 좌불상이었다. …석불이 오른손은 잃었으나 항마촉지인을 맺고 있었을 여래좌상이 분명하고이목구비가 뚜렷한 상호는 그윽한 자비의 미소를 듬뿍 머금은 부드럽고 활달한 기운이 생동하고 있었다. 비록 손상되고 결실되기는 하였으나 입체감이 매우 좋은 당당한 몸매에서 원숙한 조각가의 불심을 읽을 수 있었으며 배 모양의 광배에는 조식이 화려하고 양감도 좋아 부처의 몸에서 발산되는 광채를 표현하였는데 둘레가 많이 결실되어 아쉬움이 컸다”(네이버 블러그-‘안장헌의 문화유산과 사진 이야기’)
그리고 안장헌 씨는 2003년 2월, <석불-돌에 세긴 정토의 꿈>(한길아트 발간)이라는 불상 사진집을 펴냈는데 여기서도 용화사 석불을 소개하였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서응 스님과 인연이 되었고, 이후에도 3회(2004년 10월, 2005년 7월, 2015년 10월)에 걸쳐 용화사를 더 찾았으며, 2016년 8월 2일 정영호 박사가 용화사를 찾았을 때도 용화사를 다시 방문했던 것이다.

 

■“용화사 석불-복원, 국가지정 문화재 추진할 터”

 

서응 스님은 “2016년 8월, 용화사 석불을 일견한 정용호 박사는 수많은 불상을 봐 왔지만 이처럼 대단히 훌륭해 뵈는 불상은 처음이다. 국보급 이상이다. 내 생애에서(당시 80세) 마지막으로 진선사 복원(예전 진선사지 발굴을 주도했다)과 함께 이 불상 복원도 추진해 보고 싶다, 더불어 이 석불의 국보급 지정 운동도 함께 추진하겠다고 말했다”고 회고했다.
이때 정 박사와 함께 방문했던 안장헌 씨도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석불을 참배하고 우러러 보면 불상이 주는 아우라(Aura:예술 작품 등에서, 흉내 낼 수 없는 고고한, 고유한 분위기나 기운)가 너무 강렬했다, 수십만 장의 국내 불상 사진을 찍은 내게도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이후 용화사의 약사여래불의 복원과 국보급 지정 운동은 정영호 박사를 위시해서 본격 추진되는 듯했으나, 그 이듬해인 2017년 4월 27일 정영호 박사가 갑자기 별세, 용화사의 약사여래좌상의 복원과 국보급 지정 운동은 이후 정체되고 말았다.

 

■대웅전 불사 추진-용화세계 구현 기반

 

용화사(龍華寺)라는 절 이름은 미래의 불국정토가 실현된다는 용화(龍華)세계에서 따온 사찰 이름이다. 그런데 이 용화사에서 본존불은 미륵불도 아니고 약사여래불, 즉 약사여래좌상이다. 약사여래는 모든 중생의 질병을 고쳐주고 재앙을 소멸시키며 불자에게 무상보리(無上菩提)라는 최고의 깨달음을 얻게 해준다는 부처이다. 그러므로 장동 북교리의 용화사는 이상(理想)으로 불국토를 지향하지만 현실(現實)에서 중생의 아픔과 슬픔을 치유해주는 사찰인 것이다. 이상과 현실이 공존하지만 이상보다 현실을 더 중시하는 사찰이 장동 북교리의 용화사인 것이다.
최근 들어 서응 스님의 대웅전 불사와 약사여래 복원 불사에 대한 발원의식은 더욱 확고해지고 있다.
“전국에서 참배객들이 몰려드는 참배객이 연중 5백여 명이나 되는데, 보호각이 비좁아 겨우 10여명밖에 못 들어가니 기가 막히잖아요. 천년고불을 모신 법당도 너무 초라하잖아요. 그것도 절 입구 길에 떡 버텨있습니다. 바람 불면 먼지가 법당으로 들어와 1년 내내 문도 못열어 놓고 있습니다. 70-80년대에 철근 콘크리트로 만든 좌대가 부식되어 석불이 기울고 거기다 시멘트 독으로 석불이 백화현상으로 부식되고 있습니다. …하여 약사여래불을 제대로 복원도 하고, 제자리에 모시려고 대웅전 불사를 추진하고 있는 것입니다. …약사불에 대한 문화재적, 불교 미술사적인 가치에 대해 수많은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극찬하며, 국보급으로 지정되고 복원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데도 전남도나 장흥군 등 관계 당국에서는 너무 무관심해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도, 군 관계자들도 석불의 복원을 인정하면서도 에산문제로 이를 처리 못하고 있어 참배객들로부터 욕을 얻어먹고 있습니다.”
용화사 경호스님의 비원의 목소리였다.

 

■용화의 꽃불 피어나길 비원한다

 

“앞으로 대웅전 불사와 약사여래불 복원을 1차적으로 추진해야 하지만, 이와 함께 주차장도 정비해야 하고, 참배객들의 쉼터도 만들어야 하고, 종각도 신설해야하고 참, 할 일이 많습니다.”
서응 스님은 “출가한 이래 수십 년 동아 수행 정진해 오면서, 도솔암에서 천일기도 회향 후 단군 이래 국가 최대의 공사라는 새만금 간척공사 때 3회에 걸쳐 고사 및 천도재를 지낸 것을 비롯하여, 광양제절 제2컨테이너 항만, 부산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시흥 제3,4호기 화력발전소 공사 등 수많은 건설회사 공사 기도를 봉행한 것이 추억에 남는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서응 스님-무엇보다. 외진 산골에서 찬란한 용화세계를 꿈꾸며 그러나 지금은 만인 대중들의 지극한 아픔과 슬픔을 녹여주는 기도처로서 번듯한 도량을 꿈꾸는, 지극히 현대적이며 천진한 스님임에는 분명하다.
어느 시인은 용화사 방문기에서 용사화에 대해 “…당호하나 걸리지 않는 용화사에 천년을 이어오는 옛 불자사의 꽃불이 타오르고 있다”고 표현했다.
이 시인이 표현한 꽃불… 그 ‘꽃불’은 오욕과 번뇌로 가득찬 이 땅(現實)에 발 딛는 인간이 저 투명하고 공(空)한 하늘(理想)을 땅으로 끌어 내려 찬연히 빛나는 ‘용화(龍華)’의 꽃불일 게다./김선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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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장흥역대문인시가선전으로
7.28- 8. 1 장흥군민회관 3층 대회의실

                                                               ▲서예가 치인 이봉준


치인 이봉준 서예가의 고희 기념 작품전인 제8회 장흥역대문인시가선전이 제11회 정남진 장흥 물축제와 연관되어 오는 28일부터 8월 1일까지 장흥군민회관 3층 대회의실에서 열린다.올해로 여덟 번째를 맞이하는 이번 장흥역대문인시가선전은 치인 이봉준 서예가의 고희를 기념해 열린다.

이번 작품전에서는 이봉준 서예가의 자작 한시 70여점과 17세기부터 근세에까지 장흥 선현들의 한시 130여점을 서예작품으로 만날 수 있다.특히 이번 전시회에서는 이봉준 서예가의 ‘치인체(痴人體)’를 전서, 예서, 해서, 행서, 초서 등 5체의 다양한 기법으로 만나 볼 수 있다.이봉준 서예가의 삶과 풍류를 엿볼 수 있는 자작 한시를 서예작품으로 발표 한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

이봉준 서예가는 지난 2007년부터 10년을 넘게 장흥 역대 문인들의 문집을 분석하였고, 현재까지 모두 194명의 문인을 발췌 정리하였다.

이렇게 정리한 문인들의 한시들 가운데 장흥의 멋과 풍류를 읊고 있는 한시들만 선별하여 지난 2009년부터 연차적으로 서예작품화 하여 전시하고 있다.

아울러 장흥역대문인시가선전은 지난 2009년부터 만나고 있는 장기 프로젝트로 타 지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한 서예 작품전시회이다.

타 지역과는 견줄 수 없을 정도로 전대에 압도적으로 많은 문인을 배출한 ‘문림의향 장흥’, ‘정남진 장흥’을 다시 한 번 주목하게 한다.

또한 타 지역에서도 관심이 많은 이봉준 서예가의 장흥역대문인시가선전은 지난 2011년 경상북도 청송군 백강미술관에서 기획초대전을 가졌다.

지난 2012년에는 여수시문화원의 초대로 여수거북선축제에서 ‘임란정유재란한시선전’으로 충무공 이순신과 장흥출신 한시작가들이 당시 참담했던 심정을 읊은 한시 43점을 서예 작품화하여 선보인바 있다.

한편 정종순 장흥군수는 전대문인들의 묵향이 되살아난 듯 한 획마다 힘이 있고, 열정이 있으며 작가와 하나가 된 듯 한 치인 선생의 작품에서 작가의 혼을 느낄 수 있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위등 장흥군의회 의장은 이봉준 서예가를‘서예의 대가’로 칭송하며 이번 전시회는 정갈한 붓글씨로 장흥 문인 선현들의 한시 작품들을 재해석하고 선조들의 혼과 얼을 되살리는 소중한 기획전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이금호 장흥문화원장은 이봉준 서예가는 늘 청년과 같은 마음으로 지역 문화예술발전에도 크게 기여하며 이번 전시회가 장흥문화의 실상을 대내외로 널리 알림과 동시에 장흥의 위상을 드높이는 의미 있는 전시회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또한 소설가 한승원은 치인의 글씨는 세계 어디다가 던져놓아도 그의 글씨 일 수밖에 없다며 그만큼 그의 글씨는 독특한 ‘치인체(痴人體)’ 이룩했다며 ‘치인체(痴人體)’라는 새로운 어록을 남기는 것은 물론이고, 이번 전시회에서 발표하는 이봉준 서예가의 한시 작품들의 문학성 역시 나름대로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며 그의 시는 가식의 삶을 살지 않은 삿됨이 없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봉준 서예가는 장흥군 만수리 출신으로 제4회 강암서예대전 대상과 제25회 대한민국서예전람회(국전) 우수상(공동1위)을 수상하고, 제8회 김생전국서예대전 대상, 제22회 국제현대미술창작전 대상, 제20회 신동아현대미술대상전 대상, 제10회 한반도미술대전 종합대상·제14회한라서예전람회대상 등 국내외 각 서예대전에서 대상 여섯 번·우수상 세 번을 수상하는 등 화려한 수상경력과 12회째의 개인전, 한중일 문화인서예전 등 60여 차례의 그룹전을 가졌으며, 주요 저서로 ‘서법대관’ ‘위비의서법예술’과 국역 ‘천방선생문집’ 등이 있다.

문의전화 061-864-3535, 010-5489-3536

출처 : 장흥투데이(http://www.jhtoday.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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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연합뉴스) 형민우 기자 = 드론으로 농촌 마을을 기록하는 사진가 마동욱(61) 씨가 '하늘에서 본 영암'(눈빛)을 펴냈다.

고향인 장흥을 드론으로 찍어 사진집을 낸 마씨는 이번엔 월출산이 아름다운 영암을 사진에 담았다.

                                                                          영암군 군서면 모정리 1구 전경                                                                                                   [마동욱 씨 제공=연합뉴스]

2016년부터 2년간 영암지역 11개 면을 돌며 모두 600여 마을을 드론을 띄워 촬영했다.

'하늘에서 본 영암' 사진집에는 컬러사진 600여 장이 실렸다.

국립공원 월출산과 영산강 하굿둑을 중심으로 펼쳐진 영암의 자연 생태와 마을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아름다운 풍경과 달리 영암도 여느 농촌 마을과 마찬가지로 빈집이 늘고 농민들은 고령화돼 쓸쓸한 모습이다.

마씨가 기록한 사진은 경제논리로 무장한 개발의 이면에 남겨진 농촌의 그늘을 잘 보여준다.

장흥에 이어 영암까지 영역을 확대한 마 씨는 강진 취재를 마치고 요즘엔 보성과 고흥을 찍고 있다.

지난 3년간 고장 나거나 추락한 드론만도 6대에 달한다.

고가의 장비지만 모두 자비로 충당하다 보니 경제적 어려움도 만만치 않다.

마씨는 "2030년이면 전남지역의 농촌 마을이 거의 소멸한다고 보면 된다"며 "개인이 하기에는 벅찬 작업이지만, 기왕 시작한 일인만큼 전남의 모든 농촌 마을을 담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21일부터 7월 5일까지 서울 억불카메라 4층 벤로갤러리에서 '하늘에서 본 영암' 전시가 열린다.

minu21@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8/06/18 15:19 송고

자료출처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8/06/18/0200000000AKR20180618107000054.HTML?input=1179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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