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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문화원/2020 언론보도

[문화원 보도자료]장흥군 부산면 수리봉에서 위원량(魏元良) 망곡서(望哭書) 암각문 발굴

by 장흥문화원 관리자 2020. 11. 19.

장흥암각문조사단

장흥군 부산면 수리봉에서 위원량(魏元良) 망곡서(望哭書) 암각문 발굴


위원량 망곡서 암각문  N34°42′55.7676 E126°52′48.4896


장흥암각문조사단 조사광경(2020.11.13)  


전남 장흥문화원은  (재)한국학호남진흥원에서 실시하는 2020년도 「제1기 광주・전남 정신문화 르네상스 문화원 동행사업」에서 「문림의향(文林義鄕) 장흥지역 암각문 영상제작」과 「장흥의 암각문을 따라 걸으며 옛 선비들을 만나다」 사업이 선정된 바 있다. 이 사업은 해동암각문연구회(회장 홍순석 강남대명예교수)와 장흥문화원(원장 고영천) 향토사연구팀과 공동으로 2020년 11월부터 2021년 5월 까지 추진된다. 지난 11월 12일부터 14일까지 1,2차 현장조사를 마친 장흥암각문 조사단은 부산면, 용산면, 장흥읍 관내의 암각문을 대상으로 실측, 탁본, 동영상 촬영을 추진하였다. 

 1, 2차 현장조사에는 김기홍 전 장흥문화원장, 김일근(83세, 부산면) 청풍김씨문중원로, 김종관(79세,별신굿보존회장), 위종삼(72세,장흥위씨장천문회총무) 등 장흥관내의 유지들이 자문하였으며, 해동암각문연구회 조사팀으로 홍순석 회장, 강양희 부회장, 최은철 연구원, 오준석 보조연구원이 참석하였다. 장흥문화원 향토사연구팀으로 위종만 사무국장이 참가하였다.

이번 현장조사에서 새로 발굴된 자료로 부춘정 암각문 3건, 월산재 석비 2건, 부산면 수리봉 암각문  1건 등이 있다. 특히 부산면 수리봉 정상의 바위에 새겨진 암각문은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아 학계의 귀추가 주목된다. 


망곡서 탁본 일부 


이 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홍순석 교수는 부산면 수리봉의 「위원량 망곡서(魏元良 望哭書)」 암각문에 대해 “이 암각문 자료는 1910년 한일합병의 국치 소식을 접한 장흥지역 유림 위원량 선생이 울분을 토로하고자 수리봉 정상에 올라와 나라 잃은 울분을 칠언절구 한시에 담아낸 것으로, 시를 짓고 암각문을 조성한 연대가 분명이 새겨져 있어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평가하였다.

이 자료는 김기홍 (전 문화원장)선생이 2005년도에 발견한 자료이지만, 후학들의 관심이 없어 묻힐 위기에 있었다. 이번 사업을 계기로 재조명되고, 사료적 가치가 판명되는 셈이다. 2020년도에 전국적으로 독립운동사료를 발굴하고 정리하는 여건 속에서, 의림(義林)의 향촌 장흥지역에서 이같은 암각문을 발굴하여 학계에 보고하게 된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다.  

위원량(魏元良)의 칠언절구를 새긴 암각문은 장흥군 부산면 내안리 내동과 구룡리 자미마을 뒷산 정상인 수리봉[鷲峰,412m] 암벽에 새겨져 있다. 바위 면에 광곽을 얕게 파고 평탄하게 조성한 다음에 해서체 종서로 쓴 칠언절구 「登臨是日感斯」峰ㄷ是東邦守」義峰人多不守」峰能守可以人」多不似峰」 28자를 음각하였다. 그리고 좌측에 「隆熙庚戌秋」 魏元良謹拜」 望哭書」라는 관지를 종서로 음각하였다. 광곽의 규모는 가로 85㎝, 세로 50㎝ 정도이다. 글씨 하나의 크기는 대략 가로 8.5cm×세로 9.5cm 정도이다. 관지의 내용은 “융희 경술년 가을에 위원량이 삼가 절하고 곡하며 쓰다.”이다. 융희(隆熙) 경술년(庚戌年)은 한일합병이 체결된 1910년이다. 1901년 8월 16일, 테라우치 통감은 비밀리에 총리대신 이완용(李完用)에게 합병조약안을 제시하고 수락할 것을 독촉하였다. 그리고 8월 22일 이완용과 데라우치 사이에 합병조약이 조인됨으로써 한국은 암흑의 일제시대 36년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장흥의 유학자 위원량이 경술 국치의 사실을 듣고 울분을 토로하고자 수리봉 정상에 올라와 칠언절구를 짓고, 암각문을 조성한 것이다. 칠언절구를 번역해 보이면 다음과 같다.


登臨是日感斯峰       오늘 올라와 이 봉우리에서 느끼나니

ㄷ[峰]是東邦守義峰   이 봉우리야말로 동방의 의를 지킨 봉우리네

人多不守峰能守       사람 많아도 못 지킨 것을 봉우리는 지키니

可以人多不似峰       많은 사람도 이 봉우리만 못하누나 


 위원량(1882~1945)은 장흥의 유학자로 초명은 종량(鍾良), 자는 여진(汝眞), 호는 회은(晦隱)이다. 위계선(魏啓善)과 인천이씨(仁川李氏) 사이에서 3남 중 장남으로 1882년에 장흥군 부산면 기동에서 태어났다. 회은 위원량의 집은 역대 장흥위씨 가문의 천석꾼 집안이었다. 그는 부산면 구룡리 자미마을 수리봉에 송암정松岩亭[영이루詠而樓]를 짓고 소요하였다. 송암정은 1964년에 경호정鏡湖亭을 중수할 때 현 위치인 예양강변에 이건하였다.  

장흥문화원에서는 추진하는 이 사업을 바탕으로 장흥관내의 역사문화자원과 기록유산을 발굴・정리하여 지역전통문화 보존‧계승하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11월 27일부터 29일까지 실시하는 3,4차 현장조사는 천관산과 장천재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이 조사가 마무리되면 장흥은 물론 전남 관내의 귀중한 향토사료가 발굴될 것으로 기대된다. 


ps-문병길 부산면장 재직할 때(2018년) 자미마을 회관 앞에 그 암각문의 원문과 번역문을 홍보하는 안내판을 설치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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