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문화원

장흥읍 부녀 생활개선을 선도해 온 사람들 모임

 

 

 

 

 

 

부녀자들의 생활개선사업으로 추진했던 농촌부녀자들의 활동복 패션

 

 

 

1960~70년 장흥읍 송암리 썩시골 삼애원 정착자 자활 개간구역(2~5)

 

 

 

당시 이 마을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들. 지금은 의젓한 사회인으로(삼애원은 자활갱생원이다.)

 

 

 

삼애원을 운영한 사람들

 

 

 

남 다른 노력으로 자립. 지금은 넉넉한 생활에 보람있게 지낸다.

 

 

 

1960년대의 우리의 초상. 깡통 모습이 낯설기만 하다.

 

 

 

 

 

6. 나무로 엮은 다리에서 12층 아파트까지/건설

 

 

 

 

 

 

98년 전의 예양강 대나무다리. 나루배와 나루터 주막이 세월의 흐름을 느끼게 한다.(1897)

 

 

 

장흥교의 개교를 축하하며(1930년대)

 

 

 

옛 동교다리의 모습. 다리 폭은 4m였고 다리 밑으로 옛날 다리인 나무다리 잔해가 보인다.(경문당 인쇄소가 보인다)

 

 

 

박림쏘에서 잉어낚시하는 태공(옛 이야기가 됐다.)

 

 

 

현 천주교 앞 둑길

 

 

 

공사 후 통행 모습(다리 확장 후)

 

 

 

1958년 손석두 국회의원이 선거공약으로 동교확장공사. 정과 망치로 부수는 모습

 

 

 

제방공사되기 전의 예양강 뚝자리

 

 

 

울력으로 쌓은 예양강 제방. 일제는 공사 시작전 근로보국대기를 세워놓고 동방요배를 시켰다.

 

 

 

제방공사 기공식을 마치고 기념사진. 고창석 읍장과 직원들. 일인 추진위원들의 모습도 보인다.

 

 

 

우리고장의 산물을 실어내기 위해 장흥-해창간 도로를 1917년 개설했다. 멀리 사자산이 보인다.

 

 

 

 

 

 

마을별 가구별로 활당하여 자갈 울역을 강요하여 나라의 동맥이라며 관리했다.1950년대의 도로관리를 위해 출력했다.

 

 

 

 

1960년 신흥마을 진입로 확장. 도로 완공 테이프를 끊고 있는 군수와 기관장

 

 

 

 

 

 

 

 

 

 

 

 

 

새마을 사업으로 후손을 위해 진입로를 내던 때 돈을 받지 않는 출력이었지만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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