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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문화소식/2017~2015 장흥문화소식

문인화 거장, 소천 김천두 별세 : 프로필 첨부

by 장흥문화원 관리자 2017. 7. 10.

〔부음〕문인화 거장, 소천 김천두 별세

한국 문인화의 거장, 소천(小天) 김천두(金千斗)화백이 2월9일 향년 90세로 서울 성수동 ‘산왕당(山王堂)’ 자택화실에서 별세했다.

화백은 1928년 전남 장흥에서 출생했다. 명문 광산김씨 양간공연의 후예로 본명은 김석중이다. 일본 구주대학 문학부 철학을 전공했고 현대미술초대전초대작가(국립현대미술관), 아세아현대미술대전 초대출품(동경), 북경아시아미술대전(천안문고궁) 등에 활동했고 개인전을 39회 가졌다.

생전에 중용(中庸)을 자신의 예술철학에 영향을 끼친 사상으로 꼽았고 술과 담배를 멀리하고 늘 고요하고 맑은 정신을 유지하며 작업에 몰두해왔다. 평소 수려한 산수와 당대 유명한 스승들이 많아 배움의 길을 확장하는데 부족함이 없다며 고향 유천재(柳川齋)에서의 글공부 했던 유년시절을 회상하곤 했다.
다초 위복량 선생과 잠계 백형기 선생 문하에서 서예를 익혔고 남화의 거목 남농 허건 등에게 산수화의 기법을 배웠다. 또 월전 장우성에 인물, 화조 등을 사사받아 일생동안 김천두 화백 특유의 시·서·화의 고졸미(古拙美) 넘치는 정신세계를 추구했다.
아들 김선홍, 김선두(중앙대 한국화과 교수), 김선일(한국화가)이 있다. 저서로 <소천 한 시집> <시·서·화 삼절과 남종화 이론> 화집 <小天> 등을 남겼다.

http://www.econovill.com/news/articleView.html?idxno=309226

 

 

남종문인화가 소천 김천두

남종문인화가 소천 김천두 작품 세계 속으로

열정과 집념으로 남종문인화가(南宗文人畵家)의 외길을 걸어 온 소천(小天) 김천두(金千斗)

남종문인화가인 소천 김천두선생은 전라도 장흥에서 태어나 조부(祖父) 김익수(金益洙)의 예술적인 감성에 영향을 받았으며 늘 유천재(柳川齋)라 부르던 서재에 다초 위복량, 이월초, 소산 주복문 등 한학자와 서예가, 화가들이 많이 드나들어 자연스럽게 그들에게 개인 교습을 받고 자라 오히려 회화라는 것이 그에게는 특별한 것도 없는 일상이었다.

유천재 시절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글을 읽었으며 먹물을 한 대야 갈아 놓고 먹물이 다 떨어져 그칠때 까지 지칠 줄 모르고 글씨를 썼으며 용맹정진 하여  소천은 필.묵을 보면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과 같았다.

 

소천의 글씨는 단정하고 힘이 있으며 부드러운 가운데 필.획이 자연 스럽게 운영 되고 있다.

소천은 현대 서예에서는 기초을 등한시 하여 나타난 현상이 처음부터 너무 빨리  변화를 구하려고 했지만 진정한 변화의 의미를 몰라서  매우 기괴하고 난해한 서체의 세계에 빠지고 말았다고 한다.

소천은 예를 들어 말하시기를 시도 이백의 시를 보면은 일반인 이해 하기 쉽게 써야 하며 일반인이 이해 하지도 못하는 자기만이 아는 매우 기괴하고 이해 할 수 없는 시는 시도 아니다. 시는 여러 사람이 공감 할 수 있도록 쉽게 써야 한다고 하였다.  

소천은 시와 문장을 그리고 학문에도 깊어 法古創新(법고창신)한 조용한 士君子적 고고한 정신으로 글씨를 썼다고 한다.

서예는 오랜 역사를 가진 풍부하고도 다양한 우리의 전통예술이다. 실용 가치뿐만 아니라 예술의 한 장르로 서법 예술로 승화되어 오늘날까지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 또한 그 변천과정으로 우리 주변에 일상생활과 연관하여 여러 분야와 결합하여 다양하게 사용되어져지고 있다. 이뿐 아니라 주변에서 인격 수양은 물론 침착성과 인내심 그리고 강인함을 기르려고 서예를 선택하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과연 서예가 우리의 생활에 어떠한 영향이 있기에 사람들은 심신의 수련을 위해서 서예를 선택한다.서예란 검정의 묵색을 이용하여 지면에 선과 점으로 표현하는 예술로서 문자의 아름다움을 대상으로 삼는 조형적 추상적 예술이다. 그래서 서구 단색파 글짜 추상화에 영향을 미쳤다.서예는 점과 선·획(획)의 태세(태세)·장단(장단),필압(필압)의 강약(강약)·경중(경중), 운필의 지속(지속)과 먹의 농담(농담), 문자 상호간의 비례 균형이 혼연일체가 되어 미묘한 조형미가 이루어진다. 서예는 그 미(미)라는 개념을 정확히 정의하기가 어려우며 다른 예술과는 달리 그 미개념을 알고 있는 사람이나 또는 찾으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의 마음과 눈에만 보일 뿐 문외한의 눈에 는 한 갖 먹선에 지나지 않는 이른바 글씨일 뿐이다.

글씨는 마음의 그림 이다.글씨는 그것을 쓴 사람의 인품과 같다.이는 쓴 사람의 심성이나 심리 상태가 잘 나타나는 글씨를 특징을 말해 준다 할 수 있다.

그래서 서화동근(書畵同根) 이라 한다.

“소천의 그림은 시(詩)·서(書)·화(畵)가 삼박자를 이룬다. 시를 이해하고 음미하면서 작업하기에 그림의 분위기 또한 그런 정취에 녹아든다. 전형적인 남화풍의 산수이면서도 그윽한 깊이를 느끼게 하는 것은 문인으로서의 격조를 견지하기 때문이리라.”(신항섭 미술평론가)

得粮바다에 해 오르니 水波는 푸르고照蘇의 석양볕은 서운이 붉구나

日昇得粮水波綠 落照蘇山瑞雲紅

화백은 작품 ‘天冠山’에서 자작시 ‘등천관산유람(登天冠山遊覽)’을 노래하고 있는데 산에서 바라본 득량만의 서정을 읊은 시 중 일부다. 화백은 “가을엔 억새밭이 은빛 물결을 출렁이고 천불, 천탑과 기암괴석 사이로 다도해가 한 폭의 수묵산수화를 펼쳐 보이며 겨울엔 동백꽃이 추운 한겨울을 잊게 한다”고 회상했다.

◇마음이 그려져야 고상한 그림 부분, 부분이 실경이면서도 그러나 전체적으로 공상적인 풍경으로 구성되어 있는 화백의 화법에서 무엇보다도 주목할 점은 필선(筆線)이다. 서법(書法)의 기본 획을 사물 묘사의 방법으로 전용하고 있는데 점선 따위로 초목이나 산천의 모든 사물을 묘파해 냄으로써 사물에서 매우 박진감 있는 세계를 만나게 된다.

“그는 글씨를 쓰듯 그림을 그린다는 점에서 가장 개성적인 산수화가라고도 말할 수 있다. 지극히 작은 글씨의 조각들이 한 덩어리를 이루어 그림이 되고 있다. 덩어리를 깨면 글씨의 파편, 그 파편을 모으면 그림이 된다.”(박용숙 미술평론가)

또 작품은 화제(畵題)를 담는다. 고시도 인용하지만 자작시도 적지 않다. “한국화는 고상해야 한다. 손으로 그린 것 같지만 마음이 그려져야 그러한 그림이 나오는 것이다.”(작가와 대화에서)

리인위미(里仁爲美)라 했던가. 어진 마음이 깃든 곳이면 그 거처 또한 아름다울 것이다. 화백의 산수에 담긴 우리 산하(山河)는 “무덤덤한 그림, 그러한 고상한 그림을 남기고 싶다”는 그의 철학처럼 아름답다. 기교에 빠지는 것을 일생 경계하고 유· 불교의 깊은 사상과 철학의 학업에 정진해 온 그의 산하는 화면에서 고요히 살아난다. 그 강가 실버들 아래 나루터나 노송(老松)이 길을 안내하는 산길 초입에, 봄비에 젖은 모란도와 한 겨울의 추위를 이겨낸 매화 그림을 많이 그리고 있다.

소천 김천두는 1928년 전남 장흥에서 출생했다. 향리인 천관산 기슭 유천재 서당에서 한서와 시·서·화를 수업했으며 한학의 대가인 다초 위복량 선생과 잠계 백형기 선생 문하에서 서예를 익혔다. 남화의 정상급 거목 의제 허백련 남농 허건 등에게 산수화의 기법을 배웠고 월전 장우성에게서 인물, 화조 등을 사사 받아 개성 있는 자기정신세계 표현을 위한 회화세계를 추구해 왔다. 저서로는 '소천 한 시집', '시·서·화 삼절과 남종화 이론', 화집 '小天' 이 있다.

소천 김천두 가(家)는 3대가 화가의 맥을 잇고 있는 드문 가계를 형성하고 있다. 아들 김선두가 중앙대 미대 교수로 재직 중이며 김선일이 한국 산수화의 대표작가로 주목받고 있다. 또 김천두 옹의 손자인 김선두의 자 김중일(서울대 한국화과 졸업)도 동양화의 길을 걷고 있다.

http://cafe.daum.net/kimsunil7355/RaSL/5?q=%BC%D2%C3%B5%20%B1%E8%C3%B5%B5%CE&r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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