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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문화원/2022 언론보도

[언론보도] 일제강압기 '호남 순국지사'를 아시나요

by 장흥문화원 관리자 2022. 8. 16.
장흥 유치면 출신 '정두흠' 선생
광복절 77주년 애국훈장 추서
일제 강제병합 소식 듣고 순국
정재건 · 장태수와 호남 3대 순절자

 

 

 

 

운암선생문집

 

정두흠 선생 초상

 

제77주년 광복절을 맞아 전남 장흥군 출신 정두흠 선생이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받으면서 일제강점기 호남 순국지사가 주목받고 있다.

국가보훈처는 15일 광복절 77주년 기념식에서 정두흠 선생의 독립운동 정신을 높이 평가해 사후 112년만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국가보훈처와 지역 독립운동 선양단체 등에 따르면 정두흠 선생은 정재건 장태수 선생과 함께 함께 일제강압기 호남지역 3대 순절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호는 운암이다.

1832년 전남 장흥군 유치면 운월리에서 태어난 그는 조선 말기의 문신·학자다. 1879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해 가주서를 지냈다. 1880년 성균관전적·사간원정언을 거쳐 이듬해 부사과를 역임했다. 1886년 사헌부지평에 제수됐다.

정 선생은 1910년 한일 강제합방 소식을 듣고 “내가 무슨 면목으로 저 하늘의 해와 달을 대할 것인가. 살아서 설 곳이 없으니 죽어서야 돌아갈 땅이 있겠구나”라는 유언을 남기고 자결 순국했다. 이 때 남긴 것이 ‘손명사’다. 이는 ‘목숨을 버리며 고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저서로는 ‘운암집’ 4권이 있다. 1918년 그의 아들이 편집, 간행했다.

독립기념관은 정두흠 선생의 ‘운암집’ 국역사업과 학술대회 성과를 바탕으로 독립유공자 선정을 추진했다. 김건실 연구원이 지난해 장흥문화원 조사팀과 현장 조사를 했으며 후손을 만나 순국 지사 추서 관련 서류를 구비해 보훈처에 신청했다. 독립기념관 추서에 국가보훈처는 독립유공자 공적 심사를 거쳐 올 광복절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했다.

정두흠 선생의 애국훈장 추서로 정재건·장태수 선생도 눈길을 끌고 있다. 두 선생은 정두흠과 함께 일제에 항거한 호남지역 3대 순절자로 평가받는다.

정재건 선생은 1843년 전남 곡성군 옥과면 약천리에서 태어나 1888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사헌부 지평 등을 역임한 유학자다. 1896년 장성의거를 이끄는 등 을미사변 이후 호남 동북지방에서 의병궐기를 주도하기도 했다.

1910년 8월29일 한일합방에 울분을 참지 못하고 비통해 오던 그는 같은해 9월4일 순국하기로 결심하고 유서를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정부는 1991년 정 선생의 유지를 높이 기려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장태수 선생은 1841년 12월24일 전라북도 김제군 금구면 서도리에서 출생했다. 그는 1861년 식년 문과에 급제하고 승문원 부정자를 시작으로 여러 관직을 역임했다. 1907년 일본의 국권침탈 만행이 날로 심해지자 고향에 돌아와 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신명학교를 창설, 배일사상을 고취시켰다.

일제가 그를 회유하기 위해 은사금을 전달하고자 했으나 거부했다. 이로 인해 일본 헌병대가 그의 세 아들을 잡아가고 그를 체포하려 하자 1910년 음력 11월3일 단식에 들어갔다.

그는 단식 중에 ‘고대한동포문’이라는 유서를 남기고 24일간 식음을 전폐하다 1910년 11월27일 세상을 떠났다. 장 선생은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한편, 국가보훈처는 제77주년 광복절을 맞아 총 303명을 독립유공자로 포상했다. 포상되는 독립유공자는 건국훈장 79명(애국장 19명·애족장 60명), 건국포장 24명, 대통령표창 200명으로 포상자 중 생존 애국지사는 없으며 여성은 30명이다.

 

 

 


출처 : http://www.namdo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691776 남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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