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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30여년 득량만 바다에서 정원을 가꾸고 쌀뜨물로 '돌'을 키워가는 한국문학의 거장, 한승원 | 자연의 철학자들 '반양반음의 풀들처럼' (KBS 20220805 방송)

by 장흥문화원 관리자 2022. 8. 25.

 

 

■  반양반음의 풀들처럼

 

  한국문학의 대표 소설가, 한승원 작가(83)는 그의 고향인 전라남도 장흥군에서 반양반음의 풀들처럼 살고 있다. 작가가 되바라져서 흥행하면 시가 죽는다며 작렬하는 햇볕을 피해 잿빛 안거에 들어선 지 20여 년이 흘렀다.

  1968년, 단편소설 ‘목선’으로 신춘문예에 등단한 한승원 작가는 올해로 등단 56년을 맞이했다. 그는 김동리·박목월 선생에게 수학한 몇 안 남은 문하생이자 아시아 최초 맨부커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대표작으로는 영화화된 ‘아제아제 바라아제’, 그리고 ‘앞산도 첩첩하고’, ‘해산 가는 길’, ‘해변의 길손’, 최근 출간한 자서전,‘산돌 키우기’ 등 수백 편에 이르는 작품을 집필했다.

  한승원 작가가 자신의 문학적 토대인 고향 장흥으로 돌아온 것은 자연으로 귀화하기 위해서였다. 서울살이에 병색이 짙어져 귀향을 결심했지만, 자연 친화적인 삶을 살면서 더 깊은 세상의 이치를 알게 됐다고 한다. 작가의 든든한 후군이자 플러스 알파가 되어준 자연, 그 덕분에 망구(望九)의 작가는 여전히 왕성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  내 시와 소설의 8할이 바다다

 

  한승원 작가에게 시와 소설의 8할은 바다가 만들어 준 것이다. 초기 작품들 속에서 바다는 치열한 삶의 현장, 휴머니즘의 최극단이었다면 이제 구십을 바라보는 작가에게 바다는 자연으로 돌아가는 회귀의 공간이자 자연 친화적인 삶의 모태다.

  20여 년 전, 바다가 그리웠던 한승원 작가가 고향에 돌아와 잠이 들었을 때, 꿈속에 나타난 도깨비가 “도깨비 나라에서 엄청나게 많은 돈을 빌려줄 테니까 득량만 바다라든지 하늘이라든지 다 사버려라.”라고 말했다. 대신 이야기를 열심히 써서 세상에 베풀어야 한다는 조건과 함께 도깨비와의 거래는 성사되었다고 한다.

  천생 이야기꾼인 작가가 도깨비와의 거래를 통해 득량만 바다의 주인이 된 것은 더욱 특별한 의미였다. 학창 시절 아버지를 도와 김 양식을 했던 삶의 현장, 자기 문학의 발원지였던 그 대자연속에서 그의 말처럼 살아 있는 한 글을 쓰고, 글을 쓰는 한 살아있는 작가로 살 수 있기 때문이다.

 

 

■ 꽃에 씌어 산다

 

  한승원 작가의 집필실은 ‘해산토굴‘ (海山土窟). 한덕산을 병풍삼은 작가의 토굴 마당에 서면 득량만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정원은 자잘한 꽃과 풀들로 무성하다. 나이가 들면서 꽃과 나무, 심지어 풀까지도 가능하면 손대지 않고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둔단다. 정원의 자연 또한 작가와 함께 늙어가고 함께 익어가며 함께 사는 것이기 때문이란다.

  풀잎 하나, 꽃 한 송이가 우주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이것을 시와 소설로 쓴다는 건 하늘의 뜻과 땅의 질서를 읽는 것과 다름없다는 한승원 작가. 그래서 그의 소설과 시에는 다양한 꽃, 벌레, 새, 구름, 하늘, 달도 ’자연의 이치‘를 전하는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작품 한 편, 한 편 쓰는 것이 꽃 한 송이를 만들어 꽂아놓는 일이라고 말하는 작가는,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사는 것 또한 꽃 한 송이를 피우는 성스러운 일이라고 세상을 향해 위로를 전한다.

 

 

■ 나의 오랜 벗, 이청준 그리고 산돌 키우기

 

  집필실 뜨락에 공룡알처럼 생긴 바위가 눈에 띈다. 한승원 작가가 물 한 바가지를 떠온 뒤, 돌에 정성스레 물을 붓는데… 어린 시절 키우던 산돌 같은 것이라는 한승원 작가.

  ‘산돌 키우기’란 날마다 돌에 물을 주며, 착한 마음을 가지면 산돌이 큰다는 어린 시절 즐겨하던 놀이다. 돌이 큰다는 건 꿈같은 거짓말이지만 산돌을 키우던 아이들은 모두 실패와 좌절의 경험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는단다. 평생 글만 쓰며 살았지만, 작가의 인생도 수많은 실패와 좌절의 시간들이 지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매일, 쉬지 않고 자연과 소통하며 글을 쓰는 것은 독자들에게 희망의 씨앗을 심어주고 싶은 작가의 ‘산돌 키우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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