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문화원

●저기가 희망의 고개(1950년대)



●1947년 새봄은 우리에게 따뜻한 꽃다발을 가져다 주려는가



●1945년경 고교생들(당시 장흥고 1년 김병옥, 김영철, 유치면 조재원, 채용오 外)



●각 면대항 축구 우승. 안양면 선수



●장흥농업고등기술학교 주최 수예강습 수료기념(1958.8.10)



●고영완과 함께 기념으로 '여기 거목에서'당시 학교장



●부산면 상록학원 제2기 수료기념(1964. 4. 10)면장 김재숙, 교사 강숙자, 지서장, 주원술, 간사 김유선, 위원애, 김연요, 김연남, 문은자, 길정희, 부산교 이동률, 동교 김재훈, 임종천, 김점수, 김정애, 김응남, 이춘자, 김영남, 문태자, 문석남, 김봉순, 김정순, 김연님, 위연님, 김경남, 오용우, 김필순, 김수남, 안길남




●백양가정양재학원 졸업생(1956. 5. 26)



해방후 식량사정이 곤란했던 시절 미국원조 옥수수 가루로 죽을 만들어 먹고 학교에서 결식아동에게 강낸이 죽과 우유,유가루로 급식하였다. 도시락 못 가져온 친구에게 도시락 바꾸어 먹는 미담을 당시 동아일보는 특선으로 보도했다.









●농촌의 근대화를 이끌던 장흥군 산업교육원. 지금의 장흥군 농촌지도소













●산업교육원에서 강습하는 모습. 콩으로 영양간식하자는 4H지도자 여부원의 교육 당시 쓰던 마이크와 연탄화로가 생활의 변화를 느끼게 한다.



●산업교육원에서 강습하는 모습. 콩으로 영양간식하자는 4H지도자 여부원의 교육 당시 쓰던 마이크와 연탄화로가 생활의 변화를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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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시래기 죽을 먹고 은어를 잡던 시절/생활

 

 

 

●판죽전에서 요기를 달래고

 

 

●어렵던 시절 일수를 찍으며

 

 

 

●과자전에서 아이들을 생각하며

 

 

●없던 시절 손님이 없어 뜨게질을 하는 어머니 마음

 

 

1950년대 삶

보리고개가 있던 시절 봄이면 나물캐는 일은 소녀들의 몫이었고 우리들의 일과는 이렇게 시작했다

 

 

 

●들에 나가신 부모님을 기다리며

 

 

●지게를 매고 일터로 가는 농부

 

 

●나물캐는 소녀와 잠든 아기

 

 

 

●빨래터의 풍경

 

 

●장흥 특산명물중 하나였던 유기그릇. 부산면 유량리 여남선씨의 제작공방

 

 

●해방 다음해인 1946년 4월에 장흥에 이발조합원들이 유치장 수감자에게 이발을 해준 후 기념사진(당시는 교도소가 없어 장흥경찰서 유치장에 장흥,강진,보성,영암,해남,완도 6군의 피의자들이 수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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