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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문화소식/2021 장흥문화소식

[부고]송기숙 소설가 2021년 12월 5일 오후 8시 타계 소식 전합니다.

by 장흥문화원 관리자 2021. 12. 6.

 
송기숙 소설가가 2021년 12월 5일 오후 8시 타계하셨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아래 고은 시인의 글로 추모를 대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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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문구가 이르기를
천연기념물 송기숙
광주는 그가 있어 광주였다
아무리 바람 찬 세월일지나
그가 있어 광주의 밤이었다
70년대 후반에야 떨쳐일어나
세칭 교육헌장 사건 이래
그의 행로는 위태위태했다
광주
그곳의 가능성과 허구성 다 부여안아
방금 매운 것 먹고 난 듯
얼얼한
얼얼한 그의 얼굴이 있다
홀로 고상하지 않다
홀로 저속하지 않다
홀로 고상과 저속 파묻어
차라리 어리석다
그에게 가거라
원시를 짐작하려거든
그에게 가거라
원시의 음덕을 배우려거든
그는 손으로 쓰다가 발로 쓴다
차라리 정신 따위는
자칫 관념을 낳아버려서
그는 몸으로 쓴다
소설 암태도를
소설 「재수 없는 금의환향」을
옛날 소씨(昭氏)가 거문고를 뜯을 때
한 소리만 나고
다른 소리는 나지 않았다
과연 그의 벗 사광(師曠)이
지팡이로 땅을 쳐 반주한 까닭이 어디 있을까
거기 송기숙이 히힝히힝 말처럼 웃으며 일어난다
고은, 「송기숙」 창작과비평사
 
// 행동하는 지식인 소설가 송기숙(宋基淑) (1935년∼2021 )

193574일 출생. 전남 장흥군 용산면 포곡리에서 양친 아래, 아우와 함께 성장하며 계산초등학교와 장흥중고등학교를 다녔다. 포곡(浦谷)마을의 유래는 원래는 (암컷자) (안을포) (꿩치)부르기도 하고 옛날 골짜기에 포구(浦口)가 있다하여 포구라 불리오다 행정구역 개편 때 포곡(浦谷)으로 바뀌었다 한다. 마을의 형국이 암꿩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깊은 산골 동네라 초등학교는 십리 남짓, 고등학교는 억불산 산길(자포치)를 넘어 시오리 길이어서 그때 제일 부러운 것이 학교 가까이 사는 친구들이었다. 그래서 전남대학교 문리대에 다닐 때는 아예 학교 구내나 비슷한 동네서 자취를 했다.

중학교 때 송귀식(宋貴植)에서 송기숙(宋基琡)으로 개명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단편소설 야경학생에 실렸으며 김용술 문학선생과 후배 한승원과 함께 교지 억불을 창간하고 단편 물쌈을 게재하였다.

그에게 고향은 작품에 크게 영향을 끼쳤다. 그의 작품에 나타난 생동감있는 민중들의 생활상은 고향사람들의 삶에서 구체성을 얻었고, 작품 속에 내재되어 있는 치열한 역사의식 또한 고향에서 성장하는 과정에서 형성되었을 것이다.

초기대표작으로 평가되는 자랏골의 비가, 재수없는 금의환향등의 작품은 그가 태어나고 자란 포곡마을을 배경으로 한 것이다. 또한 대하장편 소설 녹두장군에서 동학군이 최후의 항전을 벌였던 곳이 장흥읍 석대들이고, 석대전투를 총지휘했던 이방언 장군 또한 그와 같은 용산면 묵촌 태생이다 .이처럼 작가 송기숙에게 고향은 작품의 원천으로 작용했다.

 

 

현대문학작가 송기숙 [오정해가 만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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