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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문화소식/2024 장흥문화소식

[장흥문화소식]장흥 대표 서예인 ‘치인(痴人) 이봉준(李奉俊)’ 별세

by 장흥문화원 관리자 2024. 6. 4.

향년 74세 … 고향 만수리 선영 안장
장흥 서예 문화 육성‧증진에 선도역
문하생 100여명 중 50명, 전남서예전특별상 등 입상

치인 이봉준(李奉俊, 1950∼2024)선생이 지난 5월 14일 타계했다. 향년 74세. 유족으로 부인과 1남 2녀를 두었다. 선생은 고향(장동면 만수리)의 선영에 안장됐다.

본관 인천인, 호 치인(痴人), 행행명(行名) 이대기(李大基).

선생은 장흥군 장동면 만수리 출신으로 지난 80년대 후반에 낙향하여 40여 년 동안 장흥에서 대표 서예가로서 서예문화 육성과 증진을 선도하며, 서예연구에 일생을 걸어 온 서예가이다.

치인이 본격적으로 학서(學書)를 시작한 것은 그의 나이 서른 두 살 때인 1980년, 여수에서 생활할 때, 그 무렵 유류 파동으로 모든 것을 잃은 선생은 서예의 길에 뛰어들게 된다. 이때 선생은 창암 이삼만(蒼岩 李三晩) 선생의 학서 지침에 주안점을 두고 자습에 몰입해 갔다.

장흥 주부대학‧장흥서법예술원 개원

서예 뮨화 선도-30여 명 서예인으로 양성

1985년 오랜 타향살이를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온 치인은 장흥서법예술원, 장흥주부대학을 개설해 후학을 지도하면서 열심히 습서했다. 장흥에서 서예가로 활동은 물론 한국방송대학교 중국어과에 입학하여 백화문(白話文)과 고문(古文)을 서예와 병행 습서(習書)하며 만 권서의 학덕(學德)과 서예의 깊이를 궁구(窮究)하는 기간을 보내게 된다.

1986년에는 독학의 한계를 깨닫고, 정중와(井中蛙)를 면하기 위해 상경할 것을 결심하고, 여초 김응현(金應鉉) 선생의 문하로 들어가게 돼 일주일에 한 번씩 장흥과 서울을 오가며 서예에 각고면려(刻苦勉勵)하는 시기를 보내게 된다. 이 시기에 치인은 서예의 실기 과정을 거쳐 서법이론과 정인동방서법탐원 3년, 동방서법탐원 최고 과정 2년을 필업하게 된다.

치인은 또 틈틈이 번역한 《대학서법》을 《서법대관書法大觀》‘이란 책을 편저, 1997년에 출판했으며 2000년에는 《위비(魏碑)의 서법예술(書法藝術)》라는 서예 이론서를 출간하기도 하였다.

또 지난 2003년에는 ‘제4회 강암서예대전’에서 영예의 대상을 차지(국내 서예계 최고 상금 1.000만원 상금 수여)한 데 이어, 그 해 하반기 충주문화원에서 주최한 ‘제8회 김생전국서예대전’에서도 대상의 영예를 차지, 명실상부 국내 톱클래스에 드는 중견 서예가로서 자리를 잡게 된다.

제4회 강암서예대전 대상을 계기로 치인 선생은 강암서예대전 초대 작가(이후 한국 서가협 초대작가로 활동)가 되었으며, 제2회 강암서예기획초대전의 초청을 받아 2008년 10월 22일부터 29일까지 전주시 강암서예관에서 자작 한시 등 75편을 내 건 ‘치인이봉준 이순전(耳順展)’을 열기도 했다.

또 지난 2006년 6월에는 국내 최초로 서예와 부적을 결합한 부적서예작품 60여 점을 특허출원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으며, 지난 2007년 7월에는 국내 최초로 부적서예작품 전시회를 갖기도 했다.

또 2001년에 창립된 ‘장흥서예인협회’를 2005년부터 ‘(사)한국서가협 장흥지부’로 승격시켜 제자 회원들이 전라남도 서예전람회 등에 꾸준히 참여하면서 많은 입상을 차지하도록 지도하여 문하생 100여명 중 지금까지 특선이상 수상 서예인만 50여 명을 배출하기도 했다. 또 2007년부터는 ‘(사)한국서가협 장흥지부 회원전’(2023년 17회째 전시회)을 열며 장흥 서예 부흥에 선도적인 역할을 해 왔다.

한문실력 발휘-장흥고문학 조명도 앞장

또 선생은 2009년 12월 23일부터 25일까지 장흥군민회관에서 '장흥역대문인시가선전' 작품 전시회를 가졌는데, 이후 선생은 매년 '장흥역대문인시가전'을 열며(2023년 7월, 제13회 장흥 역대 문인 시가선전시회) 장흥의 고문학과 결합한 장흥 서예 활성화를 선도해 왔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한문학자이기도 한 선생은 2010년 국역화된 《금곡유문집金谷遺文集》 발간을 비롯, 《천방선생문집(天放先生文集)》(2015), 《만수재 유고晩守齋遺稿》(2018), 《제암집(霽岩集)》(2020), 《역주 헌헌헌(軒軒軒) 선생 문집》(20220, 《역주 송포(松浦) 유집》(2022) 등 장흥 고문집 국역화 발간에도 적극적으로 앞장서 왔는데, 그동안 선생이 역대 장흥문인들의 문집을 분석, 서예작품으로 승화시킨 시킨 사람이 230여 명에 이른다. 선생의 장흥 고문학에 대한 관심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역대 장흥문인시가전과 별도로 2020년 11월 ‘원감국사 위충지 현창서예전’, 2022년 7월에는 ‘기봉 백광홍 선생의 현창서예전’ 등을 전시하기도 하였다.

선생은 또 과거 사자산에서 큰 산불로 (1994년 이른 봄 큰산불) 당시 사자산을 거의 태우고, 산불진화에 나선 공무원 네 명의 아까운 목숨을 앗아간 대형 참사에 대해 깊이 관심을 가지고있던 치인 선생은 그 사자산 산불이 일어나던 그 해 1994년 5월, 길일을 택하여 제자요 문하생들이기도 한 '장흥주부한문대학' 대학생 및 '장흥서법예술회' 회원들과 함께 ‘사자산 산신제'를 개최하였고, 이후 해마다 사자산 산신제를 봉행, 지난 2023년까지 30회째 사자산 산신제를 봉행해 왔다.

치인 선생은 2009년에는 장흥고문학국역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장흥문화원에 국역료 1천만원을 기탁하기도 했으며, 2019년 4월 5일 시사투데이가 선정한 ‘2019 올해의 신 한국인대상’에 선정된 바도 있다.

또 치인 선생은 2011년, ‘제3회 경북 청 송전(백강미술관 기획초대전)’과 ‘장흥전(정남진물축제 초대전)’, 2012년 ‘임란 정유재란 한시선전(여수시문화원과 천관문학관 기획 초대전)’ 등 총 11회 째 개인전을 가졌다. 그룹전으로는 ‘(사)국제서법예술연합 국제서법대전(세종문화회관)’,

‘(재)동방연서회전’, ‘(사)동방서법탐원회전(예술의전당)’, ‘(재)강암서예관 초대작가전(강암서예관)’, ‘한중일 문화인서예전(서울‧상해‧동경)’ 등 60여회 전시회에 참가하였다.

치인 이봉준 - “우리나라 대표 서예가”

장흥출신의 소설가 한승원 작가는 치인 이본준 선생의 서예에 대해 “…열 개의 벼루 밑바닥이 구멍 뚫어지고 붓 천 자루가 몽당붓이 되도록 글씨를 썼다는 추사 김정희처럼, 붓과 종이가 없어 모래밭에 작대기로 쓰고 칡덩굴을 으깨고 씹어 만든 붓으로 쓰고, 대나무를 털처럼 쪼아 만든 붓으로 썼다는 창암 이삼만처럼 글씨 쓰기에 미쳐 있는 그의 글씨에는 글씨가 없다. 광기(狂氣)와 신기(神氣)와 선기(仙氣)만 있다. …그의 글씨에는 글씨가 없고, 고대 중국의 시인 굴원(屈原)의 시 같은 주술(呪術)이 한 가마니씩 들어 있다. 나는 그의 작품을 통해 마음의 가난을 얻고, 산과 강의 그윽하고 건강한 정(精)을 가슴에 품고, 예술 지상주의자의 광기(狂氣)와 신기(神氣)와 선기(仙氣)를 배우고, 어지러운 세파를 헤쳐 나가는 나침반 같은 신통한 주술을 배운다”고 평가했다.

서예가 송신일 선생(동방연서회서법예문연구원장)도 치인 선생의 서예에 대해 “글씨는 단순한 필묵으로 꾸미는 속장(俗匠)의 한계를 넘어 변화 다채로운 예술세계로 승화시키려면 탈속의 인품, 비범한 천질(天質), 만권 서의 학덕, 부단하게 각고한 학서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 치인은 이같이 ‘서여기인(書如其人)의 뜻을 마음속에 깊이 담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천학비재(淺學非才)한 데다 노력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겸양해 하는, 우직하고 졸박한 선비의 성정을 가지고 그토록 몸부림치며 서법에 대한 피나는 노력을 한, 우리나라 현대에서 대표적인 서예가이다.”고 평가했다.

출처 : 장흥투데이(http://www.jhtoday.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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