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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문화예술인/장흥현대문인

[장흥문인]웅숭깊은 필력으로 평론의 세상을 여는평론가 장일구(1968~)

by 장흥문화원 관리자 2018. 6. 12.

◎ 인적사항

장일구(1968~ )

1968년 출생(장흥군)

 

◎ 문학활동

196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전승의 담론-교감의 미학-『혼불』론」 당선

문학박사

 

◎ 수상연보

2001 혼불 학술상 수상

 

◎ 작품연보

『혼불읽기 문화읽기』 (1999, 한길사,)

『혼불의 언어』 (2003, 한길사,)

『실재라는 허구 그 기묘한 아이러니』

『영화기법과 소설기법의 함수』

『대하소설의공간 형상시론』

논문 「한국 근대소설의 공간성 연구」 외 (1999,)

 

 

 

"'혼불'에는 십수년 문학공부를 한 사람도 쉽게 읽을 수 없는 대목이 있습니다.

방언, 사라져가는 순우리말, 방대한 문화적 정보를 담은 어휘들이 쓰이기 때문입니다.

가령 넋두리는 일상생활에선 푸념의 의미지만. 굿판에서는 공수를 받아 죽은 사람의 넋을 흉내내는 것이잖아요.

이런 것을 망라하면 우리말의 여러 측면을 보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작업에 나섰습니다."

 

한겨레의<'혼불'의 고운 우리말 풀어쓰고 갈무리하고>

 

뱃사람들은 대게 물귀신이 되지 않게 해달라고 부적을 지니거나 그 부적의 효혐을 대신할 만한 별명을 지니고 있었는데 '거무'는 그런 목적으로 안노인이 지어

준 이름이 었다.거무(거미)라는 놈은 물위를 빠지지 않고 기는 놈이니 절대로 물귀신이 될 염려가 없다는 것이었다.(118p)

별녜와 거무의 이름을 지은 의도에서 엿보이는 공통된 점은, 이름이 주술적 효혐을 갖는다는 믿음이다. 이를테면 별녜는 이름따라 '다산(多産)'의 화신일테고,

거무는 '불사(不死)'의 화신인 셈이다. 이는 나중에 이야기의 결말 대목을 해석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되는데, 제법 치밀한 구도하에 기술된 민속 관념 내시 속

신이다. 특히 거무라는 이름과 연관된 속신에 재심 주목할 여지가 있다.

이는 요컨대 물귀신 속신에 대한 대응 속신이라 할 만한 것이다. '물귀신이 되지 않게 해달라고 기원하는 심산이 예 투사되어 있다. 거미처럼 물에 빠져 죽지

않아 결코 물귀신이 되지 않는다는 믿음이 그 속신의 효험을 배가함직하다.이는 원체 물에 빠져 죽지 말라는 주술이지만, 은연중에 물에 빠져 죽더라도 물귀신

이 되지 않게 해달라는 주술로 변용된 것으로 여겨진다. 가령 별녜는 물귀신 속신에 끝내 강박되어, 연쇄된 죽음의 고리를 끊으려고 희생 제물을 자처하는데,

거무와 함께 죽을 요망을 한다. 겉으로야 사랑의 힘을 별미로, 말하자면 동반 자살을 감행하는듯 하지만, 내심 '거무'라는 이름의 주술력을 믿는 듯 싶다. 물론

이 모두가 일견 허황된 속신에서 비롯된 것이나만치, 별녜의 내적 갈등의 요인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적어도 별녜는 맹목적으로만 속신을 믿지는 않는 것으로

전제되어 있는 까닭에, 속신이 그녀에게 심적인 갈등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다. 이런 갈등 양상 또한 이야기의 추동력이 되는데, 어떤 갈등이든 속신이 작용하여

빚어졌다는 점은 일관된 셈이다.

 

중략

결국 그 죽음은 결코 악무한의 비극을 낳지 못한다. 혹 남을지도 모를 부정한 물귀신의 흔적을 씻고 또 씻어 놓은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해

안 지방에서 벌이는 진혼굿(씻김굿) 에서 남녀 허수아비를 혼인시켜 모형 배에 태워 바다한가운데로 띄워 보내는 장면이 이 소설의 마지막 대목에서 연상되는

것도 이런 해석과 관련 있다.[석화촌]은 그야말로 문화적 제재를 형상화한 소설의 전범으로서 손색 없다. 죽음의 역설을 담론한 신화, 곧 죽음의 뮈토스 가운데

돋보이는 소설이다.

 

2003[별곡문학]<죽음의 뮈토스, 이청준<석화촌>이야기>에서

 

[책소개]

<서사공간과 소설의 역학>

 

서사공간과 소설의 역학. 이야기는 삶 속에서 생겨나며 삶 속에서 소통된다. 특히 근대 이후 가장 유력한 이야기 양식인 소설이 삶을 배경으로 하고 그 조건 하에서 지어져 소통에 부쳐지는 현황이 여실하다. 그 내용이 가상적인 것이든 현실적인 것이든 간에, 창작과 독서의 정황으로 미루어 보건대, 소설은 삶의 조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본문 중에서-

 

<서사+문화@혼불_α>

 

사람들은 경험이나 생각, 감정 등을 이야기로 나누어 삶의 지혜를 공유한다. 그러한 생활의 예지가 집산된 결정체가 문화라면 이야기, 곧 서사는 문화의 원동력이다. ‘서사+문화항은 둘의 관계가 자명하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각각에 관여된 현상이나 텍스트의 의미 관계를 통해 역학적으로 구성된다. 가령, 서사를 통해 재구성되는 문화적 은유에 대한 이해, 사람들의 마음이 모이는 문화장의 구심에 대한 이해, 서사 매체의 활용을 통해 활성화되는 미적 소통 회로에 대한 이해 등이 그러한 역학의 이해에 관건이 된다. 이들을 포섭할 수 있는 폭넓은 시야와 그 촘촘한 의미망을 통찰할 수 혜안을 통해 서사+문화항에 여러 상수와 변수를 대입하여 도출할 수 있는 결과치를 바탕으로 그 가치를 추산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다. 그 거점에 소설 혼불이 있다. 서사+문화@혼불_α』혼불을 통해 재구성된 문화장의 횡단적이고 융합적인 의미망과, 이를 통해 확산되는 서사의 문화 가치를 탐색해 가는 도정에서 거둔 결실의 일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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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202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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