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문화원

존재 위백규(1727~1798)

학문을 현실에 적용한 실학의 선구자

 

 

▲존재 위백규의 동상  ⓒ마동욱작가

 

▲존재 위백규의 가옥

 

 

 선생의 본관은 장흥이고 자는 자화, 호는 존재 또는 계항이다. 관산읍 방촌리에서 태어나 병계 윤봉구 문하에서 수학했다.

1765(영조41)생원복시에 합격했으나 그 후 과장에 나가지 않았다. 1796(정조20)위유사 서영보의 추천으로 선생의 문집이 조정에 들어가게 되었고, 정조 임금의 부름을 받고 나아가 자신의 경세사상을 만언봉사로 올리자 임금께서 감탄하고 옥과현감의 목민관에 제수하였다.1년 후에 장원서 별제에 승차되었으나 노환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7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선생은 경서는 물론 천문, 율력,산수등 폭 넓은 학문을 쌓았고, 실학사상에 심취하여 이를 실천함으로써 호남실학의 기초를 닦았을 뿐 아니라 많은 저술을 하였.

[존재집]이 전한다.

▲ 존재집

 

그 중 가사문학 작품으로는 효 사상과 학문의 열정이 잘 나타난<자회가><농가><권학가>와 옥과현감시 옥과의 합강에서 여러 수령들이 뱃놀이하는 내용을 음유한 <합강정선유가>가 있다.

 

관련기사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281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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