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문화원

수우옹 위세직(1655~1721)

 

남해 도서지방의 아룸다움을 자유롭게 노래한 금당별곡

선생의 본관은 장흥이며 자는 우경, 호는 수우옹이다. 관산읍 방촌에서 태어났다.

향촌의 선비로서 숙종 때 장흥에서 적거생활을 했던 노봉 민정중과는 특별한 교분을 가졌으며<동국여지승람>수정시 큰 역할을 하였다 전한다.

선생이 지은<금당별곡>은 회진 앞의 금당도와 만화도를 유람하면서 느끼고 생각한 감정을 서경적으로 읊은 기행가사로 남해안 도서지방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점이 특이하다.

또한 선생의 자유로운 시상을 마음껏 펼쳐 보인 점과 표현과 구성이 뛰어나 학계에 관심을 모으는 작품이다.

 

[책소개]

<금당별곡>

조선 후기에 위세직(魏世稷)이 지은 기행가사. 필사본. 가칭 삼족당가첩 三足堂歌帖에 전한다. 처음에는 위세보(魏世寶)의 작품으로 소개된 바 있으나, 후에 위세보의 석병집 石屛集삼종형작금당별곡(三從兄作金塘別曲)’이라는 기록에 의해 위세직으로 밝혀졌다.

이 작품은 배를 타고 금당도(金塘島 : 지금의 전라남도 완도군 금당면) 및 만화도(萬花島)를 거쳐 돌아오기까지의 자연경물을 서경적으로 읊은 일종의 해양기행가사이다.

형식은 2음보 1구로 계산하여 총 200구가 되며, 말미에 3·8·4·3조의 낙구(落句)를 취하고 있다. 3·4조가 주조를 이루며 간혹 4·3, 3·3조도 보인다. 4음절로 된 한자숙어에 우리말 조사를 취하여 2·3조나 2·4조도 비교적 많다.

내용은 아홉 문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1단은 아직 금당도로 떠나기 전에 평소에 지녔던 작자의 심경을 토로한 서사(序詞)로서, 벼슬에 뜻이 없어 풍월주인으로 반세를 늙어간 자신을 돌이켜보는 회고의 서술이다.

2단은 봄비로 아름다워진 강산에 흥이 일어 배를 띄워 금당도에 이르기까지의 광경을 노래한 것이다. 3단에서는 금당도에 닻을 내리고 기암절벽이 늘어선 자연 속에서 선경을 연상하고, 4단에서는 산봉우리에 올라 아름다운 산색과 바다의 경치를 굽어보며 천지간의 조화를 감탄하고 있다.

5단은 잠시 선잠을 자는 동안 꿈에 선인을 만나 선경에 노닐다가 문득 잠을 깨어 달빛에 비치는 해변과 끝없는 수로의 장관을 굽어보는 광경을 읊었다.

6단은 여장(旅裝)을 꾸려 만화도로 가는 동안의 야경(夜景)을 노래한 것이다. 7단은 만화도로 노를 저어 가는 동안 날이 새어 물가에 배를 매어놓고 새벽 이슬에 옷을 적셔가며 다시 산길로 접어드는데, 골짜기 경치에 옛 선경을 상기하고, 퉁소를 부는 장면이다.

8단에서는 술잔을 기울이며 삼화루(三花樓)에 앉아 물밑을 굽어보면서 자연의 형색이 다함 없이 기이함을 감탄하였다.

9단은 이렇듯 아름다운 자연을 오래 즐기지 못하고 돌아와야 하는 안타까운 심정의 결사(結詞)로서, 뒷날을 기약하고 돌아와서는 명상에 잠기는 애틋한 심회의 표출로써 끝을 맺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가사작품은 수백 편이나 그 중 해양과 도서생활을 소재로 한 작품은 10여 편에 불과하다. 그 중 남해를 배경으로 한 것은 이 작품과 이진유(李眞儒)속사미인곡 續思美人曲, 안조환(安肇煥)만언사 ()言詞등이 있다.

 

그러나 속사미인곡만언사는 타의에 의한 유배가사들인 데 비해 자의에 의한 해양기행은 금당별곡뿐이다. 다만, 도서생활의 현실적인 소재나 격동하는 바다의 사실적인 표현에 있어서는 다소 미흡한 점이 있다.

유람의 심경이라 전원가사에서 보이는 정적(靜的)인 정취를 맛보며 해도의 자연을 관조하는 자세이기 때문이다. 서술 체재나 그 시상(詩想) 및 조사법(措辭法) 등에 있어서 정철(鄭澈)관동별곡과 상당한 유사성을 보이고 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금당별곡 [金塘別曲]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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