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문화원

기봉 백광홍1522(중종 17)∼1556(명종 11)

 

기행서경가사의 효시를 이룬 관서별곡

 

 

▲기봉 백광홍

 

    

 

▲관련서적

 

 

선생의 본관은 수원이고 자는 대유이며 호는 기봉이다.

1549(명종4)에 사마양시에 급제하고 1552년에 문과에 등재하여 홍문관 정자에 임명되었다. 그 해 성균관에서 문신들이 재주를 겨룰 때 '동지'라는 부를 지어 장원을 하여 명종 임금으로부터 '선시'10권을 하사받아 지금까지 전한다.

1555(명종10)에 평안도 평사가 되어 관서 지방의 백성들의 폐해를 보살피면서 그 곳 향촌의 서정과 자연풍물을 시문으로 노래하던 중<관서별곡>을 지었다.가사는 당시 한문으로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던 조선중기의 일반적인 틀에서 벗어나, 우리말과 우리글, 그리고 우리 가락으로 펴현한 문학예술 양식의 하나이다.선생의 문집인[기봉집]에 전하며 기봉선생이 왕명을 받들어 평안도 평사가 되어 임지로 떠나는 심정과 관서지방의 삶과 정취,자연풍광의 아름다움을 174구의 한글가사로 표현한 작품으로 우리나라 국문학사에 하나의 이정표를 세운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관서별곡>은 송강 정철이 지은<관동별곡>보다 무려 25년을 앞서 지은 작품으로 당시 문인들에 의해 많이 애송되었다.

특히 송강의<관동별곡>은 구성형식과 표현기법이 기봉선생의<관서별곡>을 모방한 작품으로 그대로 확인되었다.

또한 <관서별곡>은 우리 장흥의 선비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어 '장흥가단'을 이루는 바탕이 되었다.

 

관서별곡

 

관서 명승지에

행장을 다사라니

연소문 내닿아

귀심이 빠르거나

백제에 말가라

천수원 도라드니

만월대도 보기슬타

형극이 지었도다

귀편을 다시빠와

생양관 기슭에

감송정 돌아들어

십리파랑과 만중연류는

왕명으로 보내실세

칼 하나 뿐이로다

모화고개 너머드니

고향을 사념하랴

임진에 배건너

송경은 고국이라

황강은 전장이라

사누얼이 반사카늘

구현을 넘나드니

버들조차 푸르렀다

대동강 바라보니

상하에 어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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