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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 후기]2016년 장흥 문화탐방을 다녀와서-제2회

by 장흥문화원 관리자 2016. 10. 25.

문화가 살아 숨 쉬는 남도 푸른 바닷가 그 모습 아련히

2016년 장흥 문화탐방을 다녀와서-제2회



2. 10월 9일(일)


  가) 장흥문학길 답사여행

 이튿날이다. 동편으로 햇살이 떠 오르고 정남진에 새로운 날이 눈부신 햇살과 함께 펼쳐지고 있었다. 이른 아침 어제의 여흥이 아직도 남았는지 일부 회원들은 방에 모여앉아 음악에 맞추어 박수를 치며 즐거워했다. 여행지 특유의 멋과 낭만이 있는 모습이었다.

일행의 모습을 보면서 문득 서양의 철학자 ‘바그너’의 말이 떠 오른다.

 “여행과 변화를 사랑하는 사람은 생명이 있는 사람이다.”

정남진 리조트 식당에 마련한 한정식차림으로 아침을 간단히 마친 일행은 주차장에 대기한 버스에 올랐다. 오늘은 장흥문학길 답사여행을 떠난다. 장흥문화관광해설협회 ‘김상찬 해설가’의 유창한 안내로 장흥문학의 옛길 새길을 찾아 출발한 버스는 안양면 기산리 기산 백광홍 고택을 찾았다.

▲장흥 부산면 정남진 리조트에서 아침을 맞으며


안양면 기산리에서 내려 약간의 내리막길을 달리다 좌측으로 차 머리를 돌리니 마을 입구에 커다란 표지석이 있어 기양사(岐陽祠)에 다 왔음을 알려준다. 부드럽게 휘인 좁은 돌담길을 따라 50여미터쯤 올라갔을까. 담장 앞에 늘어선 비석들이 일행을 맞는다.


기양사는 백광홍 선생을 비롯한 13인을 배향한 서원의 사당으로 사당 앞엔 기양강당이란 강학당이 서 있고 기양사의 편액을 보니 전 국무총리 김종필씨가 쓴 것이다. 기양사 좌측에 가사비가 서 있고 그 옆으로 1901년 복설 때 만들었던 석조 위패들이 나란히 서 있다. 관서의 명승지에 왕명으로 보내실새/행장을 다스리니 칼 한 자루뿐이로다(중략)/벽제에서 말을 갈아타고 임진강에서 배타고 건너/천수원에 돌아드니 송경(개성)은 옛 서울이거늘/만월대 바라보니 슬퍼지누나//
아무리 나랏일이 튼튼치 못하단들 풍경좋음 어이하리/연광정 돌아들어 부벽루에 올라가니/능라도 방초와 금수산 노을은/봄빛을 자랑한다//

천년 개성의 태평스런 문물은/ 어제인 듯 하지마는(중략)/하늘 높고 땅은 먼 곳에서 흥이 다 하고 슬픈 생각 일어나니/이 땅이 어디런가 부모 생각에 나그네의 눈물이/ 소리없이 흐르는구나(중략)//
어느 때 여러 경치 기록하여서 임금께 사뢰리요/ 머잖은 때에 임금을 뵈오리라//

▲관서별곡의 효시 안양면 기산리에서 기산 백광홍 기념비


위 노래는 기행서경가사의 효시로 알려진 백광홍(白光弘:1522-1556)이 지은 `관서별곡(關西別曲)'의 서두이다. 백광홍은 자를 대유(大裕), 호는 기봉(岐峯)이라 했는데 그는 본디 경기도 수원사람으로 선조들이 대대로 수원에서 살았는데 조부인 백회(白檜)가 연산군 때에 장흥에 귀향와 살게 되었다. 


아버지 삼옥당(三玉堂) 백세인(世人)과 어머니 광산 김씨와의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조선왕조실록' 선조 22년조에서 송익필, 이산해 등과 함께 당대 8문장으로 불렸다. 그러나 아우 옥봉(玉峯) 광훈의 유명세에 가려지고 임·병 양란의 참상이 시인의 혈육 같은 유고를 삼켜버린 탓에 문집의 간행이 늦어지는 등 여러 연유로 진면목이 감춰졌던, 우리나라 최초의 기행가사 작가이다.

▲기행서경가사의 효시로 알려진 백광홍(白光弘:1522-1556)고택에서


기봉 관서별곡 가비 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기봉 백광홍은 조선가사문학을 선도한 문인이시다.” 기봉은 시인으로서 보다 관서별곡에 의해 가사문학가로 더 유명하게 된다. 아래는 요절한 자신의 삶을 상징하는듯 삶의 무상함을 빗대어 읊은 '숙소소래(宿小蘇來)'라는 시이다.


 "덩굴풀 옛길 덮고/ 고라니 사슴 뜰에 와 노네/ 중들은 말없이 수행중인데/ 빈창만 바닷 달 휘영청 비치어서 추어라//"

 나) 이청준 문학길

그래, 누군들 그 따뜻한 남쪽 마을을 향한 그리움이/아지랑이처럼 가물가물 일지 않겠는가/내 손과 발과 머리털에서/내 모든 생각들의 시원이 되어/여전히 봄날 철쭉은 붉게 타오르고/늦가을 바람에 억새가 서걱이는 정남진/
         -소설가 김석중의 '누군들 따뜻한 남쪽 마을이 그립지 않으랴' 중에서 

▲선학동 이청준 소설 문학길 안내판


장흥 별곡문학회 김석중 회장은 이 고장 토박이로 1979년 삼성문예상 소설부문에 장편 '바람'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온 뒤 '햇빛 부신 날의 초상‘ ’꿈 꾸 물새' 등의 작품을 발표하며 장흥문단을 지키고 있는 역량있는 소설가이다.


두 번 째 장흥문학 답사여행은 이청준 소설가 문학길 코스이다. 이곳에는 소설작품을 영화로 만든 ‘천년학’은 의붓 남매인 동호와 송화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가 담겨진 곳이다. 소리꾼 양아버지 밑에서 소리와 장단을 맞추며 자란 두 사람은 애틋한 마음을 갖는다.  하지만 마음속의 연인을 누나라 불러야 했던 동호는 괴로움에 집을 나간다. 몇 년 뒤 양아버지가 죽고 송화가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제 송화를 여자로 사랑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한 동호. 그러나 엇갈린 운명으로 두 사람은 잠깐의 만남과 긴 이별로 자꾸만 비껴간다. 이청준 문학길 메밀꽃밭은 선학동 뒷편으로 펼쳐져 있다. 면적이 20㏊나 된다. 산자락에서 이어지는 구릉에 메밀꽃이 활짝 피어 바닷바람에 일렁이고 있다. 하얀 꽃물결이 흡사 소금을 뿌려놓은 것 같다. 겨울에 피는 눈꽃 같기도 하다. 하얀꽃이 파란하늘의 뭉게구름과 어우러져 이국적이기까지 하다.

▲선학동 바다와 언덕에 펼쳐진 메밀밭의 아름다운 동화속 자연풍경화


마을의 여러 색깔 지붕과도 만나 한 폭의 그림을 그려진다. 이곳을 찾은 전국의 많은 관람객들은 그저 ‘아, 무아지경 황홀경!’ 바다와 언덕에 펼쳐진 메밀밭의 아름다운 조화는 한 폭의 동화속 자연풍경화이다.


메밀밭에 담긴 뒷이야기도 아리땁다. 외지인을 배려하는 마을사람들의 마음이 담겨 있다. 선학동을 찾는 외지인들의 발길이 잦아지면서 생긴 일이다. 영화 ‘천년학’ 촬영 뒤부터 마을을 보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다. 하지만 선술집 세트 외엔 별다른 볼거리가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괜히 미안해했다. 먼 길을 찾아온 손님들에게 마땅히 보여줄 게 없어서였다.  주민들끼리 머리를 맞댄 끝에 경관작물을 심기로 했다. 외지인들에게 볼거리를 주면서 마을까지 아름답게 가꿀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래서 마을 주변 밭에 유채 씨앗을 뿌렸다.

지난 2006년. 그 해 봄 노랗게 물든 마을을 본 사람들이 탄성을 토해냈다. 주민들도 뿌듯했다. 더불어 행복했다. 유채밭 사이에 원두막도 설치했다. 노랗게 물든 바닷가 마을을 영상에 담으려는 방송팀도 수시로 찾아왔다. 

▲선학동을 찾는 전국의 문학동호인 관람객들


인적 드물던 마을이 사람들로 북적였다. 마을도 활기에 넘쳤다. 마을사람들은 내친 김에 가을농사마저 포기하고 메밀씨앗을 뿌렸다. 2008년이었다. 봄에는 유채의 노란 꽃물결로, 가을엔 메밀의 하얀 색으로 물들인 것이다.  선학동의 메밀꽃밭이 더 매혹적인 이유다. 방문객을 배려하는 마을사람들의 예쁜 마음이 스며 있어서이다. 재작년에는 농림수산식품부가 주관한 '경관 우수마을 콘테스트'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한국문화해외교류협회 일행은 전국에서 온 방문객들을 대상으로 이청준 문학길 메밀밭 중턱 원두막에서 가을 분위기에 맞게 즉석공연을 했다. 준비해간 이동식 앰프를 설치하고 김우영 김애경 부부듀엣의 ‘사랑하는 이에게’를 감미롭게 불러 갈채를 받았다. 이어 김애경 성악가의 ‘시월 어느 멋진 날에’를 열창하고 이준영 이사님의 경쾌한 하모니카 연주를 함께한 관람객들로 부터 박수를 많이 받았다. 같이 간 허응만 수석부대표(시인)의 표현에 의하면 이렇다.

 “즉석공연이라! 참 좋은 아이디어라오. 오, 꽃을 주는 것은 자연이고 그 꽃을 엮어 화환을 만드는 것은 예술이구나. 마치 태양이 꽃을 물들이는 것과 같이 예술은 인생을 붉게 물 들어가는구나. 이 메밀밭에서 ---”

▲선학동 메밀밭에서 한국문화해외교류협회에서 즉석 공연을 했다


다) 바다하우스의 비빔밥과 맛난 바지락조개국


이청준 문학 산책길을 뒤로하고 내려와 허기진 배를 채우려고 일행은 안양면 바닷가에 위치한 ‘바다하우스’를 찾았다. 밥상에 차려진 고구마스틱과 꼬시래기, 바지락국물이 시원하다.

그리고 이어져 나온 바지락회무침이 일품이렸다. 그래서 함께 나온 정남진 안양주조회사 ‘햇참살이 하늘수’ 막걸리를 한 잔 들이키는데 앞에 앉은 이준영 이사님이 옆에 있는 김정 대표님과 대화를 한다.

 “남도 장흥에 왔는데 한 잔 해야지요?”
 “맞어브러요. 시원헝께 하늘수 한 잔 허장께요!”

▲이청준 문학 산책길을 뒤로하고 내려와 허기진 배를 채우려고 일행은 안양면 바닷가에 위치한 ‘바다하우스’를 찾았다. 밥상에 차려진 고구마스틱과 꼬시래기, 바지락국물이 시원하다.


직접 만든 막걸리 식초가 들어갔는지 뭔가 막걸리 향기가 느껴진다. 새콤달콤 맛있는 하늘수 막걸리. 그리고 김과 참기름이 뿌려진 그릇에 밥을 비벼먹는 맛이 일미이다. 바지락무침을 먹는데 입안에서 뻘이 씹힌다. 그래도 맛이 좋다.


이금호 장흥문화원장님이 방문객과 함께 건배를 외친다.

“여러분 우리 장흥을 찾아주시어 참말로 고맙당께요. 자, 앞으로도 우리 장흥을 징허게 사랑해 주랑께요. 여러분과 장흥을 위하여 건배!”
 “거언배, 와 ---짝 짝 짝 ---!”

함께한 장흥문화원 위종만 사무국장님 설명에 의하면 이곳 안양면 수문해변은 키조개의 산지로 이름난 곳이란다. 담백하고 달달한 ‘키조개구이’도 별미이다. 또한 ‘낙지삼합’도 맛있다.

김우영 작가와 김시영 문화이사님이 의기투합 분위기를 돋군다.

“햇참살이 하늘수’ 막걸리 한 잔 대접에 콸콸하게 부어놓고 살이 오른 낙지와 달보드레한 키조개살과 기름진 돼지고기를 하나로 묶은 뒤 입안에 날름 털어 넣는 요맛 때문에 우리가 장흥에 오노라. 오호라 통제야!”
 “워매, 참말로 맛있어 부러요 잉. 징허게 좋아브러요!”

▲한승원 소설가 해변문학산책로 저 멀리 남도 바다가 아스라이 보인다


라) 한승원 소설가 해변 문학산책로를 찾아


 지난 2106년 5월. 전남 장흥 안양면 사촌리 율산마을회관에서 조촐한 잔치가 열렸다. 이는 한승원 소설가의 여식 ‘한강’ 작가의 소설 ‘채식주의자’로 영국에서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받은 것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장흥은 한강의 아버지이자 작가인 한승원 소설가의 고향이다. 그가 오랜 외지 생활을 접고 귀향해 터를 잡은 곳이 안양면 사촌리의 ‘해산토굴’이었고, 남도 끝자락의 갯마을에서 마을잔치가 열린 건 바로 그 때문이었다. 한승원 소설가에 따르면 한강은 학생시절 가끔 회진면의 삼촌 댁을 찾아 뱃일 거들며 방학을 보냈다고 한다.

비록 고향은 아니라 해도 감수성이 풍부한 학창시절에 찾았던 회진은 그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을 게 분명하다. 어린 시절 너 나 없이 찾아갔던 시골 ‘외할머니댁’에 얼마나 많은 추억을 묻어두었는지를 떠올려 보면 이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장흥을 찾을 이유는 충분해 보인다.  한승원 소설가의 창작실 ‘해산토굴’ 아래는 ‘문학산책로’ 해변이다. 이곳에는 ‘어등’ ‘모래알’ 등 한승원의 글이 새겨진 문학비들이 700m 정도 이어진다.

▲전국에서 온 문학애호가들이 한승원 소설가 해변문학산책로 걷고 있다


장흥 회진면은 흔히 ‘장흥 문학의 자궁’으로 표현된다. 수많은 작가에게 문학적 토대가 되었다는 뜻이다. 회진에서 문학적 상상력을 키운 대표적인 인물로 이청준, 한승원 소설가를 꼽는다. 동갑내기인 두 작가 중 이청준은 회진 근처의 진목마을, 한승원은 회진리 바로 맞은편의 덕도에서 태어났다. 

장흥은 현대문학의 거장인 이청준, 송기숙, 한승원, 이승우 소설가와 맨부커상 수상자 한강과 김석중 소설가, 창작과 비평으로 등단한 이대흠 시인, 이 고장 출신이며 충남대 명예교수인 이동규 시인, 한국문화해외교류협회 시인 김정 대표, 장흥교도소에 근무하는 투박한 시를 써 눈길을 끄는 김헌기 시인 등을 배출한 문림(文林)의 고향이다.  


전국의 문학도들이 매년 장흥을 찾아 장흥문학의 현장을 방문하고 있다. 장흥군이 현대문학의 거장들을 많이 배출하게된 것은 역사를 거슬러 17세기 이르면 실학파의 가사문학을 만날 수 있다.  장흥군 관산읍 방촌리 마을은 가사문학의 선구자인 존재 위백규 선생이 태어난 마을이다. 방촌리 마을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잘 보존되어 내려오는 남도의 전통한옥이 많이 있다. 또한 그와 함께 기봉 백광홍 선생도 이곳 장흥군 안양면 기산리 마을 출신이다.

1박 2일간의 장흥문학탐방이 마무리되어간다. 한승원 소설가 해변문학산책로 백사장에 장흥문화원 이금호 원장님과 위종만 국장님, 김미옥 과장님 등과 이번 행사에 함께한 전국 문화인들 다 모였다. 마무리에서 이금호 장흥문화원 원장(집행위원장)님의 인사말이다.

▲한승원 해변문학산책로 ‘모래알’이란 문학비 앞에서 한국문화해외교류협회 소속


“전국 유일의 문학특구 정남진 장흥에서 개최하는 한국문학특구 포럼에 오신 전국의 문학애호가 여러분 고맙습니다. 남도 지역의 문화 연대가 지역성을 뛰어 넘어 큰 걸음으로 세계문학으로 내딛는 계기가 될 것으로 믿습니다. 여러분 안녕히 가세요. 내년에 또 만나요.”


이어 한국문화해외교류협회 김우영 작가의 키타연주에 맞추어 국민가요 ‘사랑해’를 ‘장흥을 사랑해’라는 가사로 바꾸어 백사장에 빙둘러 서서 다 같이 아쉬운 작별의 노래를 합창 했다.

 “사랑해 장흥을/ 장흥을 사랑해/ 당신이 내 곁을/ 떠나간 뒤에/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란다오// 예예예 예예예/ 예예예 예예예/ 예예예 예예예/ 예예예 예예예/ 예예예 예예예/ 예예예 예예예—/ 사랑해 장흥을/ 장흥을 사랑해/ 사랑해 장흥을/ 장흥을 사랑해//

▲한국문화해외교류협회 김우영 작가의 반주에 맞춰 전국 문학동인들이 노래를 합창한다


한승원 소설가 해변 문학산책로에서 부르는 힘찬 노래가 하이얀 백사장을 지나 저 멀리 푸르런 남해바다로 울려퍼지고 있었다. 끝간데 없이 이어진 푸르런 바다와 하늘이 맞닿아 다시 허공으로 비상하며 저 멀리 장흥문학을 실어 망망대해로 퍼지고 있었다.
 제6회 2016년 장흥 한국문학특구포럼 1박 2일간의 행사 대단원을 한승원 소설가 해변 문학산책로에서 마무리하고 저마다 타고 온 버스를 타고 각자 출발을 했다. 한국문화해외교류협회 회원들도 대전으로 가기 위해서 타고온 창신고속으로 향하였다.


□ 나가는 글

전국 문학인 및 지역민이 함께하는 문학 축제로 문학 특구의  위상을 확보 하고 대한민국 문화강국으로 가기 위한 일환으로 1박 2일간 장흥국제통합의학박람회장과 장흥군내 문화유적지를 돌며 문화탐방을 마쳤다.

▲한국문화해외교류협회 회원들이 1박 2일 일정을 마치고 기념사진을 촬영한다.


한국문화해외교류협회 전국회원 50여명은 장흥의 문학혼에 취하고 그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스스로 뒤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바를 생각하게 되었다.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배경을 얻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야를 갖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문득 철학자 ‘프리벨’의 말이 생각이 난다.


 “여행은 인간을 겸손하게 만든다. 세상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영역이 얼마나 작은 것인가를 깨닫게 해준다.”

전남 장흥군은 2008년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국내 최초이자 유일하게 '문학관광기행특구'로 지정받은 문학의 고장이다. 장흥이 우리나라 최초의 문학관광기행 특구로 지정된 데에는 소설가 이청준이나 한승원, 송기숙, 이승우 등 우리 문학계의 큰 별들을 배출한 문향이라는 배경이 있었다. 


현대에 이르러 한국문단에 등단한 작가가 120여 명이나 된다고 한다. 그만큼 장흥은 문학 자원이 풍부한 곳이며, 첫 전국문학인대회를 개최하는 등 한국문학의 메카라는 위상에 걸맞은 새로운 문학역사의 장을 써 나가고 있다. 장흥군 곳곳이 문학작품의 배경이 되었기 때문에 마을마다 시인, 소설가, 수필가, 평론가의 이야기가 서려 있다.


이청준 소설가의 ‘서편제’ ‘축제’ ‘천년학’ 등 문학작품 영화화한 영화 촬영지도 많다. 천관산 문학공원을 비롯해 천관문학관, 한승원 소설가의 본가와 해산토굴과 해변 문학산책로 등 문학 자원 인프라 또한 풍부하다.   1박 2일의 열정 장흥문화탐방을 마치고 장흥을 빠져나오는데 저만치 차창 밖으로 남도 바닷가의 오후 나절의 노을빛이 노랗게 빨래줄에 늘어지고 있었다.

이와 함께 도로변 가을 산야 단풍들도 울긋불긋 물들어 바람에 흩날리며 하루를 접고 있었다. 1박 2일간의 먼 로정에 피곤한 탓인지 흔들거리는 버스의 진동에 따라 스르르 잠이 온다. 눈을 감았다. 그렇게 얼마를 잤을까……?  잠시 꿈을 꾸었다. 하얀 눈이 정남진 바다에 내린 정월 초하룻 날. 김성 장흥군수와 군민 4만여명이 모였다. 그야말로 그 넓은 남도 백사장에 깨알처럼 많은 군민들이 모여 들었다.

잠시 후 군민들 가운데로 군수가 정남진 일출과 함께 떠오르는 노오란 금빛의 노벨문학상 금목걸이를 목에 걸었다. 찬란하게 빛나는 노벨문학상 목걸이는 군수만 목에 건 것이 아니었다. 4만여명의 전체 군민이 목에 하나씩 걸었다. 평소 문학을 좋아하는 군수와 군민이 목에 건 금빛 목걸이는 득량만을 거쳐 정남진의 붉은 일출에 반사되며 온통 남도바다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러자 군수가 두 손을 하늘을 향하여 높이 들고 큰소리로 외친다.

▲전남 장흥 장흥의 명소 정남진 일출 장면


“대한민국 5천만을 대표하여 우리 장흥군이 세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여러분 대한민국 노벨문학상 수상 대한민국 만세!” 이번에는 장흥군 이금호 문화원장이 큰 소리로 외친다.  “군민 여러분, 노벨문학상 수상을 4만여명의 군민과 함께 축하하며 만세를 부릅니다. 장흥군 만세!” 이렇게 정남진에 모인 군민들이 다 같이 크게 외친다. “대한민국 노벨문학상 만세, 만세, 만세……!” “장흥군 노벨문학상 만세, 만세, 만세……!”


이때, 버스에 함께 동승한 김정 시인이 어깨를 흔들며 소리를 친다. “김 작가님, 지금 긍께 꿈을 꾸고 있소잉? 그란디 웬 만세 소리랑가요?” 그제야 정신이 드는 듯 김우영 작가는 스르르 눈을 뜨면서 말한다. “아, 제가 잠시 졸며 꿈을 꾸었네요. 전남 장흥군이 대한민국을 대표하여 노벨문학상을 타는 꿈을 꾸었어요!” 이때 옆에서 웃으며 김정 시인이 웃으며 말한다. “김우영 작가님이 지금 꾼 꿈은 꿈만이 아닐 것이랑께요. 아마도 조만간 한국문학특구로 지정된 내 고향 장흥군이 노벨문학상을 탈 것이랑께요!” “아 자웅아……… ! ”                                                    (大尾) 

오늘의 명언 약상자에는 없는 치료제가 여행이다. 여행은 모든 세대를 통틀어 가장 잘알려진 예방약이자 치료제이며 동시에 회복이다                                          (대니얼 트레이크)

김우영(金禹榮).․ 충남 서천에서 출생.․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문예창작과 졸업 및 충남 중부대학교 인문산업대학원 한국어과 수학. 1989년 한국수필지와 시론지에 각 각 2회 추천 완료 문단에 등단. 장편소설집「월드컵」단편소설집「라이따이한」외 저서 총29권 출간. 한국문예대상, 서울특별시 시민대상, 독서문화공로 문화관광부 장관상, 한글유공 대전광역시장상, 한국농촌문학상 대상 농림부장관상, 대한민국 디지털문학 소설부분 대상, 2011년 문학작품대상, 중국 길림신문사 세계문학상 수필부문, 제1회 중국 두만강문학상, 제1회 중국 청도 연해문학상 수상 등 다수, 2016년 중국 칭다오 한중문화도서관 건립(기증도서 3천권)유공 감사패 수상.․ 한국문인협회, 한국소설가협회, 국제펜클럽한국본부, 대전문인협회. 한국문화해외교류협회 상임이사 겸 사무총장 ․ 대전중구문학회 회장 대전 중구다문화센터 한국어 강사 ․ 나주김씨 대전종친회 회장․ 2009년 문화체육관광부 전국 지역예술가 40인 선정 제주도 4박 5일 국비 연수
․ 편지통 siin7004@hanm44ail.net siin7004@korea.kr
․ 작가방 http://cafe.daum.net/siin7004.․ 손에 들고 다니는 목소리 010-6477-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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