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문화원

사회 개선책을 제시한 만언소, 사회 폐단과 구제책을 읊은 구폐시 등 실학 저술

장흥문화원 ‘김희조의 방호선생문집, 문림의향 장흥 고전국역총서로 발간’ 

장흥문화원은 조선 후기 영조 때의 학자 김희조의 ‘방호선생문집’을 문림의향 장흥 고전국역총서 제5집으로 발간했다.‘방호집’은 김희조의 시문과 사상을 모아 수록한 시문집이다.특히 ‘방호집’에는 김희조의 사회 비판적인 현실 인식의 면모를 영조에게 사회 개선책으로 제안한 만언소가 있어 당시 사회 사정을 알 수 있다.그리고 장흥을 중심으로 강진과 화순 등 전라도 서남 지역의 산천과 당시 사정을 주된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자료이다.
‘방호집’은 2권 2책으로 1829년 후손인 김채규, 김종진 등이 주도해 1832년쯤에 간행됐다.
김덕현, 정재면, 김상학의 서문과 김익수의 발문이 있다.
1권에는 오언절구, 오언율시, 칠언절구, 칠언율시, 육언절구, 오언장편, 고사가 있다.
2권에는 소, 서 제문, 그리고 끝에 영조 무신란 때의 성균관 수관사적이 첨부되어 있다.
방호 김희조 선생은 본관은 영광, 자는 경선이다.
부산면 내안리 흥룡동 출신으로 김순의 아들이다.
문장으로 널리 알려졌고 특히 시를 잘했다.1713년 생원시에 합격했다.
성균관에 있을 때 1728년 무신란이 일어나 모든 유생들이 다투어 도피해 공관의 지경에 이르자 뜻을 같이 하는 5명의 유생과 직임을 나누어 성묘를 수호했다.이로 인해 이들 여섯 선비는 충신이라 찬사를 받았다.


1728년 무신란 이후 사회 모순을 타개하려고 영조가 구언교를 내리자 김희조는 응지상소를 올린다.
이 상소에서 당시의 난국을 타개하는 요체를 인심을 모으고 인재를 거두며 군정을 잘 다스리는 것으로 요약하고 이를 설명하는 가운데 수 10조에 이르는 폐단을 지적하고 구제책을 제안하고 있다.
김희조는 시작에도 뛰어났는데 특히 현실 사회의 비판으로 가장 주목되는 것은 칠언율시 가운데 9개의 조목별로 사회 폐단을 읊은 시였다.당시의 폐단들은 조적, 학교, 붕당, 이서 관도, 군정, 남초, 염간, 추노였다.
구폐시 또는 구폐시라고도 한다.이 9폐의 지적은 상소문과 짝하는 글이라고 할 수 있다.
김희조의 현실 인식과 사회 모순에 대한 재야시인으로서의 술회로 당시 일반화되어 있던 기강 문란과 사회 경제적 궁핍을 잘 대변하는 재야 비판 지식인의 면모를 느끼게 해 준다.
김희조는 만년에 향리인 장흥으로 돌아와 장흥과 강진, 능주, 화순 등 산수 사이에서 시를 읊으며 스스로 호를 ‘방호’라 하면서 풍류를 즐기고 강학과 교류했다.


1734년에는 동약계의 서문을 짓고 보림사 대적광전이나 탑산사 중수 서문을 쓰는 등 향촌 활동도 이어간다.
천관산 기우제문을 수령을 대신해 짓기도 한다.
‘국역 방호선생문집’은 국역은 장흥 장평 출신 한학자로 록양고문연구원 원장인 박경래 선생이 전담했다.
록양 박경래 선생은 장흥문화원 번역총서 제1집인 백진항의 ‘계서유고’를 번역했다.
그리고 존재 위백규의 동생인 위백순의 ‘서계유고’, 고봉선생 종가고문헌집 등을 번역했다.
문집의 해제는 이해준 교수가 맡아 했다.
한편 장흥군과 장흥문화원의 ‘문림의향 장흥 고전국역총서’ 간행 사업은 2017년 1차 년도에 ‘계서유고’ 번역을 시작으로 2차 2018년에 ‘만수재유고’, 3차 2019년에 ‘청강유집’, ‘제암집’, 4차 2020년에 ‘간암선생문집’, ‘방호선생문집’ 등 모두 6집을 번역·출간했다.특히 이민기-김희조-위세옥은 사회 개선책을 제안하는 실학 저술을 많이 남겼다.
이민기는 경세에 밝아 순상에게 지방 사정을 구체적으로 연역, 군병, 궁둔, 금송과 무판, 조선, 방언, 도청 등 8가지의 남도 민생 폐단을 지적하고 이를 개선할 방안을 제시한다.
김희조는 만언소에서 사회 개선책을 제안하며 구폐시를 지어 사회 폐단을 고발한다.
위세옥은 1734년의 응지상소에서 폐단을 구제하는 구폐 6조를 올린다.

수학정, 입방약, 설리창, 급전재, 개노군, 수인재이다.
그리고 힘서 실천할 무실 7사로 실경천, 실전학, 실근정, 실납간, 실파당, 실숭검, 실애민에 대한 글을 남긴다.
이러한 인적 유대와 성향으로 이어진 경세론과 향촌사회의 개선론은 뒤이어 같은 장흥 출신의 실학자 존재 위백규의 ‘만언봉사’나 ‘정현신보’로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그리고 강진에 유배되어 실학의 3대서를 찬술한 다산 정약용까지 연결될 수 있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방호선생문집’ 등 장흥 고전국역총서는 이 같은 연구에 기초 자료로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고영천 장흥문화원 원장은 “문림의향 장흥 고전국역총서 간행을 앞으로도 꾸준하게 추진해 문림의 전통을 계승하고 인문학적 기반을 닦아 나가겠다”고 밝혔다.

출처_www.mediatoday.asia/261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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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 천관산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지정'

장흥군은 지난 15일 천관산이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119호 ‘장흥 천관산(天冠山)’으로 지정됐다고 밝혔다.

 

천관산은 장흥군 관산읍 옥당리 산97-4 등 10필지에 위치하며 지정 면적은 총 1,333,013㎡(국/군유지 100%)이다.

▲장흥 천관산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지정ⓒ장흥군


문화재청이 밝힌 천관산의 명승 지정 사유로는 산등성과 정상 부근을 중심으로 분포하는 기암괴석 등의 화강암 지형 경관, 억새군락 등의 식생 경관, 정상부에서 조망할 수 있는 다도해 경관 등이 있다. 천관산은 경관이 탁월하게 아름다워 경관 가치가 뛰어나다는 강점을 갖고 있다. 

 

또한 백제·고려와 조선 초기에 이르기까지 일대 행정 구역의 중심이 되는 산으로 국가 치제를 지내거나 봉수를 설치해 국방의 요충지로 활용된 역사성을 가지고 있다. 아울러 일대에 천관사, 탑산사 등 사찰·암자와 방촌마을 고택 등 문화관광 자원이 다수 분포해 역사 문화적 가치 또한 뛰어나다. 

이처럼 장흥 천관산은 경관·역사 문화적 가치가 탁월하여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 119호로 지정되었다.

천관산 명승 지정을 위해 정종순 장흥군수는 주민 의견을 청취하고, 사유 재산의 과다 침해를 막기 위해 문화재청에 의견 제출 및 다각도로 협의를 시도했다. 

그로 인해 『장흥 천관산』 국가지정문화재(명승) 119호 지정은 역사문화 환경 보존 구역을 최대 축소한 지정 구역 100m 반경으로 설정되었다. 

이는 개인의 사유 재산을 보호하면서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지정을 이루어 낸 전국 국가지정문화재 지정 관련 첫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은 지자체의 국가지정문화재(명승) 지정과 사유 재산권 보호를 동시에 이루게 된다는 점에서 향후 국가지정문화재 지정의 모범 사례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정종순 장흥군수는 “이번 천관산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지정을 계기로 군민들이 자긍심을 갖고 살 수 있도록 천관산의 다양한 역사 및 문화 자원을 보존·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장흥 천관산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지정'

장흥군은 지난 15일 천관산이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119호 ‘장흥 천관산(天冠山)’으로 지정됐다고 밝혔다. 천관산은 장흥군 관산읍 옥당리 산97-4 등 10필지에 위치하며 ...

www.pressian.com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031610390478802#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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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문화 제42호 표지(사진_장흥문화원)


[시사매거진/광주전남] 장흥문화원에서 연간으로 내는 종합향토문화지 「장흥문화」 42호가 발간됐다.

이번 42호에는 기획 특집으로 장흥학논단 4편, 장흥학 문헌과 현장 4편, 그리고 <문림의향 장흥의 영웅들, 독립유공자>를 실었다. 그리고 향토사 조명 4편, 문화유적 발굴, 공공미술현장 등을 정리했으며, 문림의향의 미래 세대들이 참여한 제22회 장흥문예백일장 당선작 16명, 제18회 그림 그리기대회 당선작 15명의 작품 40여 편을 실었다.

[기획 특집 1 - 장흥학 논단]

존재 위백규의 실학사상 형성의 인문학적 배경을 살핀 논고이다. 위백규보다 한두 세대 앞선 만수재 이민기, 방호 김희조, 간암 위세옥 등의 경세사상과 향촌사회 개선책을 살폈다. 이 같은 개혁 사상이 존재 위백규의 정현신보나 만언봉사 등으로 계승됐으리라 볼 수 있다.

<『난중일기』의 장흥 땅 백사정과 군영구미 위치 검토>(이수경, 지역유산연구원장)는 그동안 임진정유왜란기의 장흥 지역의 역할에 대해서 살핀 논고이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 나오는 백사정과 군영구미의 위치가 인근 지자체로 잘못 비정되어 알려진 것을 각종 역사서와 고지도, 지형도 등 역사 지리적인 접근을 통해 장흥 땅에 위치해 있었다는 사실을 명징하게 고증했다.

<『環瀛誌(환영지)』를 통해 본 존재 위백규의 역사지리인식>(김봉곤, 원광대 연구교수)은 존재 위백규가 편찬한 지리서 환영지에 대한 논고이다. 위백규의 역사지리인식은 사료에 충실한 역사 해석에 바탕을 두었고, 유교적인 합리적 관념에 따라 지도를 작성했음을 알 수 있다. 서양에서 전래된 지리 지식도 최대한 수용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장흥지역 신종교(동학·천도교·원불교)의 역사와 전망>(정향옥, 원광대 불교학박사)은 장흥의 신종교인 동학, 천도교, 원불교를 중심으로 하여 지역사회 종교 활동의 역사와 전망을 살핀 논고이다. 장흥의 동학은 1890년 전후 포덕이 시작됐다. 1894년의 석대들 전투는 동학농민혁명의 4대 전적이 될 만큼 중요하다. 동학이 천도교로 이어져 독립운동의 일선에서 사회운동, 민족운동, 문화운동, 신간회 및 청년운동의 중심적 역할을 하였다는 점을 밝힌다. 원불교 역시 장흥 지역에서 40년간 지역과 함께 발전과 변모의 과정에 있으면서 지역사회와 연계한 다양한 교화사업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을 드러내고 있다.

[기획 특집 2 - 장흥학 문헌과 현장]

<문위세의 「다부茶賦」와 이유원의 「죽로차竹露茶」>(정민, 한양대 교수)는 장흥 차문화 문헌기록을 역주 해설한 글이다. 「다부」는 16세기 장흥 지역의 차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데 차의 효능, 채취, 전다(煎茶), 차시(茶詩), 차의 종류와 효능, 차의 역사, 차의 해독(害毒) 등 전전반적인 흐름과 차례를 갖춘 대단히 체계적인 기술을 담은 작품이라는 점, 「죽로차」시는 구증구포로 법제한 보림사의 죽전차, 또는 죽로차가 잎차가 아닌 떡차임을 확실하게 증언해 준다고 밝혔다. 국가중요농업유산 제12호인 <장흥 발효차 청태전 농업 시스템>을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단계를 높이려는 논의와 관련된 귀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장흥 문화유적, 100년전의 기록과 사진을 만나다>(김상찬[한들문화이사장], 김희태[문화원 자문위원])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1910년대의 일제강점기의 유적 조사 문서와 유리건판 사진, 1917년 간행된 <전남사진지>의 사진과 자료들을 종합 해설하고 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가장 많은 분포를 보이는 고인돌의 1910년대 사진이나 지금은 없어져 버린 현장도 있어 100여 년 전 문화유산 현장 자료로 중요하다.

<항일 암각 기록, 위원량의 망곡서(望哭書)>(홍순석[강남대 명예교수], 위종만[문화원 사무국장])는 부산면 수리봉에 새긴 시로 항일정신이 깃들어 있는 중요한 암각문에 대한 조사 해설이다. 시를 새긴 해(1910)는 한일합병이 되던 그 해로서 역사적 가치가 뛰어나다. (재)한국학호남진흥원이 주관하고 장흥문화원이 추진하는 「광주·전남 정신문화 르네상스 문화원 동행사업」에서 확인한 것이다.

<보림사 사적기-원본과 해설>(문병길, 전 유치면장)은 조선 초기의 보림사 사적기에 대한 해설이다. 미국 하바드대 연경도서관에 소장본, 담양 용흥사 소장본을 사진으로 소개하면서 조계총림 송광사의 방장이신 남은 현봉스님의 국역문을 실었다.

[기획 특집 3 - 장흥의 영웅들]

<문림의향 장흥의 영웅들, 독립유공자>(문충선[문화공작소]·김상찬·위종만·김희태)는 2020년에 장흥의 독립유공자 21명이 서훈 받은 것을 계기로 장흥 독립유공자를 조사한 기록을 정리했다. 장흥문화원과 장흥문화공작소가 추진한 독립운동가 조사로 21명이 한꺼번에 서훈된 것은 전국적으로도 사례가 드물다. 221명의 독립운동가 명록을 정리했다.

<찬란한 장흥의 예맥(藝脈) - 장흥의 국악>(김석중[별곡문학동인회장])은 장흥 국악사이다. 문헌과 구전의 자료 검토와 함께 현장 면담 채록을 꾸준히 해온 결과를 자세하게 정리한 것이다. 신청(神廳)과 전통 국악인들은 물론 현재 활동하고 있는 국악인 27명의 연보도 작성했다. 장흥 문학과 향토학 천착에 진력하면서 많은 업적을 낸 김석중 회장은 최근 타계하여 유작이 된 셈이다.

<국가 지정문화재 명승이 된 천관산>(위무량, 교육자)은 국가 명승으로 예고된 천관산의 역사와 인물, 경관과 명소를 소개한 글이다. 천관산은 2021년 3월 8일 명승 제119호로 최종 지정됐다.

<원감국사, 신라·고려조 ‘불교문학의 최고봉’이었다>(김선욱, 장흥투데이 발행인)는 고려시대 국사 승려이자 시인인 원감국사 충지(속명 : 위원개)의 생애와 문학세계, 저술에 대해 살핀 논고이다. 문림(文林) 장흥의 뿌리라 할 것이다.

<재앙은 없애주고 큰 복은 내려 주십시오, 호계리 별신제>(김희태)는 전라남도 민속문화재인 호계리 별신제의 연원과 자료에 대해서 정리한 글이다.

이어 <장흥 금장사지 발굴조사 성과>(한성욱, 민족문화유산연구원이사장), < “예양강을 품다”-2020 장흥군 공공미술 프로젝트 실행기>(위명온공공미술프로젝트 대표)는 장흥 문학인들의 시와 수필 등을 소개하고 있다.

자료 편으로 문화원의 문화사업, 언론보도 기사모음, 한눈에 바라보는 2020년 장흥군 행사 등을 실었다. 특히 <장흥군 행사> 편은 2020년 1년 동안 장흥에서 이루어진 각종 행사, 모임, 회의 등을 연표로 정리했다.

문화를 포함하여 다른 분야도 망라했고 군청, 문화원, 의회, 교육청 등 각급 기관단체도 포함했다. 매년 켜켜이 쌓여 간다면 문림의향의 역사자료가 될 것이다.

고영천 장흥문화원장은 “역사와 전통이 깊은 장흥문화예술을 보전하고 이끌어 가는 우리 문화원의 종합문화교양지 <장흥문화>가 자타가 공인하는 훌륭한 ‘문화 길라잡이’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장흥군민이나 문화원 회원이 문림의향 장흥의 역사와 문화를 보다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출처_www.sisamagazine.co.kr/news/articleView.html?idxno=35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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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향토문화지 ‘장흥문화’ 제42호 발간 - 장흥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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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문화사·향촌 사회 연구 사료

보림사는 문림의향 장흥 뿐 아니라 우리나라 고대 역사의 큰 뿌리라 할 구산 선문 종찰로, 국보와 보물 등 통일신라시대를 상징하는 성보유산이 즐비한 천년고찰이다. 그 같은 법맥은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까지 이어졌다.

보림사 중창 불사 기록을 비롯해 불교 문화사를 알 수 있는 ‘국역 보림사 중창기’ 재판본이 발간됐다. 지난 2001년 발간 이후 20년 만에 재발간되면서 사찰문화사를 비롯한 향촌 사회사 연구의 중요한 사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장흥문화원(원장 고영천)이 발간한 ‘보림사 중창기’는 조선후기 180년간 250여회 불사(佛事)를 세세하게 정리한 일지식 기록이다. 구체적으로 1658년부터 1838년까지 246항목의 내용이 담겨 있다. 각종 건물의 중수나 신축, 단청, 번와, 불상, 부도, 범종, 석탑, 불기, 불화 등을 비롯해 각종 불사 내용과 기문, 그리고 시주, 공사, 화주, 주지 등 참여자의 명단을 적고 있다.

보림사 사적기 국역은 조계총림 방장인 남은 현봉스님이 했다.

아울러 이번 재판본에는 중창기를 자세하게 분석한 ‘조선후기 장흥 보림사중창기의 고찰’(김희태) 논고와 조선 초기 보림사 사적기의 국역해설문, 미국 하버드대 연경도서관 소장 필사본 원본 사진 등을 함께 실었다. 무엇보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1910~30년대 유리건판사진 64장과 함께 보림사 기록, 사진 등이 망라돼 있어 의미가 깊다.

이번 발간을 위해 고경 송광사 성보박물관장, 양기수 장흥향토사회장, 최인선 순천대 교수, 최선일 문화재감정위원 등이 힘을 보탰다.

한편 고영천 장흥문화원장은 “‘국역 보림사 중창기’를 학계와 공공도서관 등에 보급해 연구 자료로 활용할 수있도록 하겠다”며 “앞으로도 장흥 문화 역사 관련 고전과 사료를 꾸준히 조사하고 소개하겠다”고 밝혔다.

 

출처_www.kwangju.co.kr/read.php3?aid=161659800071725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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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암각문연구회(회장 홍순석 교수)와 장흥문화원(원장 고영천)이 2020년 11월부터 공동사업으로 추진한 장흥 암각문 조사 가운데, 전남 장흥군 수리봉 위원량(1882~1945)의 <망곡서> 암각문은 크게 주목받은 성과물이다.

관심이 지대한 만큼 시비의 논쟁도 있었다. 본 조사단이 처음으로 공개한 영상과 사진임에도 판독에 이견을 제시했다. 이 같은 문제점을 불식시키기 위해 조사단은 지난 3월 13일 현장에서 <망곡서> 탁본을 공개적으로 실시했으며, 문헌고증의 결과도 공개했다.

회은 위원량선생 초상, 위원량 망곡서 암각문 현장공개 및 탁본(홍순석 교수)



아울러 독립기념관 한시준 관장의 전화 인터뷰도 가졌다. 이날 현장에는 조사단(5명) 외에 회은 위원량 선생의 증손자 3인(위정복, 위영복, 위수복)과 장흥향토사연구가, 장흥위씨종인, 언론 기자 등 10여 명이 참여했으며, 간략하게 고유제(告由祭)를 올린 다음 탁본을 실시했다.

회은 위원량의 칠언절구를 새긴 암각문은 장흥군 부산면 내안리 내동과 구룡리 자미마을 뒷산 정상인 수리봉(鷲峰,412m) 암벽에 북향으로 새겨져 있다.

바위 면에 광곽을 얕게 파고 평탄하게 조성한 다음에 해서체 종서로 쓴 칠언절구 「登臨是日感斯」峰ㄷ是東邦守」義峰人多不守」峰能守可以人」兮不似峯」 28자를 음각했다.

그리고 좌측에 「隆熙庚戌秋」 魏元良謹拜」 望哭書」라는 관지를 종서로 음각했다. 판곽의 규모는 가로 85㎝, 세로 50㎝이다. 글씨 하나의 크기는 대략 가로 8.5cm×세로 9.5cm 정도이다. 관지의 내용은 “융희 경술년 가을에 위원량이 삼가 절하고 곡하며 쓰다”이다. 융희(隆熙) 경술년(庚戌年)은 한일합병이 체결된 1910년이다.

조사단장 홍순석 교수가 공개한 <망곡서> 관련 문헌기록은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1929), 장흥지속록長興誌續錄(1939), 장흥지長興誌(1966) 3건인데, 문헌에는 「斯」자가 「於」로, 「多」자가 「之」, 「而」로 기록되어 있다.

장흥의 유학자 위원량이 경술국치의 사실을 듣고 울분을 토로하고자 수리봉 정상에 올라와 칠언절구를 짓고, 암각문을 조성한 것이다. 칠언절구를 번역해 보면 다음과 같다.

登臨是日感斯峰 - 오늘 올라와 이 봉우리에서 느끼나니
ㄷ是東邦守義峰 - 이 봉우리야말로 동방의 의를 지킨 봉우리네
人多不守峰能守 - 사람 많아도 못 지킨 것을 봉우리는 지키니
可以人兮不似峯 - 사람이 이 봉우리만 못하다고 할 수 있겠네

『조선환여승람』에는 회은 위원량의 <송암정松巖亭> 시도 수록되어 있는데, <망곡서>와 관련된 중요한 단서이다.

隙地煙霞築一樓 - 안개 노을 빈터에 누정 하나를 지으니
洞門深鎖遠漁洲 - 마을 입구는 굳게 닫혀져 물가에서 멀고
有期月滿靑山面 - 달이 푸른 산에 꽉 차기만 기다리는데
不種花開老石頭 - 심지 않은 꽃이 오랜 돌 머리에 피었네
何必苟求名利得 - 어찌 꼭 구차히 명예와 이득을 구할꼬
莫如安分讀書留 - 분수 지켜 독서하며 머무는 것만 못하리
於今仰數先天事 - 지금 우러러 지난 일들을 헤아리니
恨未勤王庚戌秋 - 경술년 가을에 근왕하지 못함이 한스럽네


<송암정> 시의 마지막 구절에서 “경술년 가을에 근왕하지 못함이 한스럽네”라 한 것은 바로 <망곡서> 암각문이 조성된 경술년 당시를 회상해서 말한 것이다.

이날 2차 현장 조사에서 확인된 사실 가운데 <망곡서> 암각문이 정북향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의미가 깊다. 수리봉의 여러 바위 면에서 고종 황제가 있는 북향의 바위 면을 택하여 암각문을 조성한 것이다. 그만큼 <망곡서> 암각문은 회은 위원량 선생의 결연한 우국충정의 의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현장에서 공개한 홍순석 조사단장의 자료와 한시준 독립기념관 관장의 인터뷰 내용을 정리해 보면, 수리봉 <망곡서> 암각문은 다음과 같은 사료적 가치가 높이 평가된다.

필서자 회은 위원량은 문림의향 장흥의 지역 콘텐츠에 부합하는 근대시기의 장흥의 문사이자 의리를 실천한 학자임을 암각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근대시기 중 1905년 을미사변과 1910년 한일합병은 전국 유림의 의병 활동을 촉발하는 계기가 된 사건이다. 장흥 지역의 문사들에게 직접 영향을 끼친 연재 송병선이 1905년에 자결하고, 1910년 매천 황현이 <절명시>를 남기고 자결했다.

29세의 혈기 왕성한 청년 위원량이 수리봉에 통한을 참아내며 암각문을 조성했을 정황을 충분히 가늠할 수 있는 자료이기에 더욱 의미가 있다.

단지 지면에 남긴 시문과는 격이 다르다. “경술년 가을에 위원량이 삼가 절하고 곡하며 쓴다”는 관지까지 바위에 새긴 것은 결연한 의지가 없으면 불가한 것이다. 조정의 관료들이 사직하거나 유배지에서 임금을 그리며 지은 망배시(望拜詩)와는 차원이 다르다.

경술년 전후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분개하고, 지사들은 순절하며 절명시를 남겼던 시기에 이처럼 완벽한 암각문으로 당시의 정황을 토로한 자료는 아직 보고된 바 없다.

근대시기 호남 지역의 항일의병 활동 관련 사료로서도 주목될 것이다. 문헌과 증언 자료 외에 <망곡서>와 같은 암각문을 통해서 현장의 사료를 확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제기하였다는 점에서도 이 자료는 의미가 깊다.

회은 위원량의 <망곡서> 암각문은 암각문의 구성 요소인 본문과 관지, 판곽까지 구비하고 있다는 점에서 금석학 분야에서의 가치도 높다.

회은 위원량의 <망곡서> 관련 언론 방송보도가 되면서, 후손으로부터 회은의 초상, 고택, 묘역 관련 사진이 남아 있음을 확인했다. 장흥위씨 문중의 사적과 연관된 관심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회은 선생 관련 자료는 향후 방촌유물전시관에 기증될 예정이다.

출처_www.newsworker.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6430

 

수리봉 위원량의 <망곡서望哭書> 암각문, 해발 420m 고지 현장에서 고증 결과를 공개하다 - 뉴스워

해동암각문연구회(회장 홍순석 교수)와 장흥문화원(원장 고영천)이 2020년 11월부터 공동사업으로 추진한 장흥 암각문 조사 가운데, 전남 장흥군 수리봉 위원량(1882~1945)의 암각문은 크게 주목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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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아래 링크는 언론에 보도된  내용에 자료를 더 자세하게 더 추가된 페이지입니다.

jhculture.tistory.com/1366

 

[언론보도자료]장흥 수리봉 위원량의 <망곡서望哭書> 암각문 해발 420m 고지 현장에서 고증 결과

장흥 수리봉 위원량의 <망곡서望哭書> 암각문 해발 420m 고지 현장에서 고증 결과를 공개하다 해동암각문연구회(회장 홍순석교수)와 장흥문화원(원장 고영천)이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공모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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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 수리봉 위원량의 <망곡서望哭書> 암각문

해발 420m 고지 현장에서 고증 결과를 공개하다

 

해동암각문연구회(회장 홍순석교수)와 장흥문화원(원장 고영천)이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공모사업으로 2020년 11월부터 2021년 5월까지 공동사업으로 추진한 장흥암각문 조사 가운데, 전남 장흥군 수리봉 위원량(1882~1945)의 <망곡서> 암각문은 크게 주목받은 성과물이다. 관심이 지대한 만큼 시비의 논쟁도 있었다. 본 조사단이 처음으로 공개한 영상과 사진임에도 판독에 이견을 제시하였다. 이같은 문제점을 불식시키기 위해 조사단은 지난 2021년 3월 13일 현장에서 <망곡서> 탁본을 공개적으로 실시하였으며, 문헌고증의 결과도 공개하였다. 아울러 독립기념관 한시준 관장의 전화인터뷰도 가졌다. 이날 현장에는 조사단(5명) 외에 회은 위원량선생의 증손자 3인(위정복,영복,수복)과 장흥향토사연구가, 장흥위씨종인, 언론 기자 등 10여명이 참여하였으며, 간략하게 고유제告由祭를 올린 다음 탁본을 실시하였다.

 

위원량 망곡서 암각문 N34°42′55.7676 E126°52′48.4896

회은 위원량의 칠언절구를 새긴 암각문은 장흥군 부산면 내안리 내동과 구룡리 자미마을 뒷산 정상인 수리봉[鷲峰,412m] 암벽에 북향으로 새겨져 있다. 바위 면에 광곽을 얕게 파고 평탄하게 조성한 다음에 해서체 종서로 쓴 칠언절구 「登臨是日感斯」峰ㄷ是東邦守」義峰人多不守」峰能守可以人」兮不似峯」 28자를 음각하였다. 그리고 좌측에 「隆熙庚戌秋」 魏元良謹拜」 望哭書」라는 관지를 종서로 음각하였다. 판곽의 규모는 가로 85㎝, 세로 50㎝이다. 글씨 하나의 크기는 대략 가로 8.5cm×세로 9.5cm 정도이다. 관지의 내용은 “융희 경술년 가을에 위원량이 삼가 절하고 곡하며 쓰다.”이다. 융희隆熙 경술년庚戌年은 한일합병이 체결된 1910년이다.

 

수리봉 위원량 <망곡서>암각문 탁본 (원표시는 문헌에 달리 표기된 부분)

 

위원량 망곡서 암각문 현장공개 및 탁본(홍순석 교수)

 

위원량 망곡서 암각문 고유제(告由祭)

조사단장 홍순석 교수(강남대)가 공개한 <망곡서> 관련 문헌기록은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1929) 󰡔장흥지속록長興誌續錄󰡕(1939) 󰡔장흥지長興誌󰡕(1966) 3건인데, 문헌에는 「斯」자가 「於」로, 「多」자가 「之」「而」로 기록되어 있다. 장흥의 유학자 위원량이 경술 국치의 사실을 듣고 울분을 토로하고자 수리봉 정상에 올라와 칠언절구를 짓고, 암각문을 조성한 것이다. 칠언절구를 번역해 보이면 다음과 같다.

 

登臨是日感斯峰 오늘 올라와 이 봉우리에서 느끼나니

ㄷ是東邦守義峰 이 봉우리야말로 동방의 의를 지킨 봉우리네

人多不守峰能守 사람 많아도 못 지킨 것을 봉우리는 지키니

可以人兮不似峯 사람이 이 봉우리만 못하다고 할 수 있겠네

 

 

󰡔조선환여승람󰡕에는 회은 위원량의 <송암정 松巖亭> 시도 수록되어 있는데, <망곡서>와 관련된 중요한 단서이다.

 

隙地煙霞築一樓 안개 노을 빈터에 누정 하나를 지으니

洞門深鎖遠漁洲 마을입구는 굳게 닫혀져 물가에서 멀고

有期月滿靑山面 달이 푸른 산에 꽉 차기만 기다리는데

不種花開老石頭 심지 않은 꽃이 오랜 돌 머리에 피었네

何必苟求名利得 어찌 꼭 구차히 명예와 이득을 구할꼬

莫如安分讀書留 분수 지켜 독서하며 머무는 것만 못하리

於今仰數先天事 지금 우러러 지난 일들을 헤아리니

恨未勤王庚戌秋 경술년 가을에 근왕하지 못함이 한스럽네

 

<송암정> 시의 마지막 구절에서 “경술년 가을에 근왕하지 못함이 한스럽네.”라 한 것은 바로 <망곡서> 암각문이 조성된 경술년 당시를 회상해서 말한 것이다.

이날 2차 현장조사에서 확인된 사실 가운데 <망곡서> 암각문이 정북향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의미가 깊다. 수리봉의 여러 바위 면에서 고종 황제가 있는 북향의 바위 면을 택하여 암각문을 조성한 것이다. 그만큼 <망곡서> 암각문은 회은 위원량선생의 결연한 우국충정의 의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현장에서 공개한 홍순석 조사단장의 자료와 한시준 독립기념관 관장의 인터뷰 내용을 정리해 보이면, 수리봉 <망곡서> 암각문은 다음과 같은 사료적 가치가 높이 평가된다.

○ 필서자 회은 위원량은 문림의향 文林義鄕 장흥의 지역콘텐츠에 부합하는 근대시기의 장흥의 문사이자 의리를 실천한 학자임을 암각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근대시기 중 1905년 을미사변과 1910년 한일합병은 전국 유림의 의병 활동을 촉발하는 계기가 된 사건이다. 장흥 지역의 문사들에게 직접 영향을 끼친 연재 송병선이 1905년에 자결하고, 1910년 매천 황현이 <절명시>를 남기고 자결하였다. 29세의 혈기 왕성한 청년 위원량이 수의봉守義峰(수리봉)에 통한을 참아내며 암각문을 조성했을 정황을 충분히 가늠할 수 있는 자료이기에 더욱 의미가 있다. 단지 지면에 남긴 시문과는 격이 다르다. “경술년 가을에 위원량이 삼가 절하고 곡하며 쓴다.”는 관지까지 바위에 새긴 것은 결연한 의지가 없으면 불가한 것이다. 조정의 관료들이 사직하거나 유배지에서 임금을 그리며 지은 망배시望拜詩와는 차원이 다르다.

○ 경술년 전후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분개하고, 지사들은 순절하며 ‘절명시絶命詩’를 남겼던 시기에 이처럼 완벽한 암각문으로 당시의 정황을 토로한 자료는 아직 보고된 바 없다. 근대시기 호남지역의 항일의병 활동 관련 사료로써도 주목될 것이다. 문헌과 증언자료에 외에 <망곡서>와 같은 암각문을 통해서 현장의 사료를 확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제기하였다는 점에서도 이 자료는 의미가 깊다.

○ 회은 위원량의 <망곡서> 암각문은 암각문의 구성요소인 본문과 관지, 판곽까지 구비하고 있다는 점에서 금석학 분야에서의 가치도 높다.

회은 위원량의 <망곡서> 관련 언론 방송보도가 되면서, 후손으로부터 회은의 초상, 고택, 묘역 관련 사진이 남아 있음을 확인하였고, 장흥위씨 문중의 사적과 연관된 관심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회은선생 관련자료는 향후 후손과 협의하여 방촌유물전시관에 기증될 예정이며 문화재 등록을 위한 암각문 탁본전시회와 학술대회도 장흥군에서 진행할 예정이다.

장흥문화원에 따르면 이 사업은 (재)한국학호남진흥원에서 실시하는 2020년도 「제1기 광주・전남 정신문화 르네상스 문화원 동행사업」에서 「문림의향(文林義鄕) 장흥지역 암각문 영상제작」과 「장흥의 암각문을 따라 걸으며 옛 선비들을 만나다」 사업 선정되어 진행하는 사업이라고 밝혔다.

 

○ 아래 수리봉 참석자 명단을 알려둡니다.

홍순석(해동암각문연구회 회장),강양희(해동암각문연구회 부회장),오준석(해동암각문연구회/강남대 조교),최은철(해동암각문연구회),김진호(해동암각문연구회),김현호(참빛사진영상 대표님),위종만(장흥문화원 사무국장),위성록(장흥위씨 씨족문화연구위원),김기홍(장흥문화원 고문),김선욱(장흥투데이 대표),유용수(장흥문화원 이사),위두환(장흥위씨 도문회 고문),위재원 (장천문회 회장),위수환(장천문회 부회장),위종삼(장천문회 총무),위정복(회은 위원량 선생 증손 첫째),위영복(회은 위원량 선생 증손 둘째),위수복(회은 위원량 선생 증손 세째) 등 18명

 

수리봉 암각문 올라가기전 참석자 명단(일행일부)

[참고자료] 회은 위원량의 사적

위원량(魏元良 1882~1945)은 일제강점기 전남 장흥군의 유학자이다. 초명은 종량(鍾良), 자는 여진(汝眞), 호는 회은(晦隱)이다. 1882년(고종 19) 정월 15일, 부친 위계선(魏啓善)과 모친 인천이씨(仁川李氏) 사이에서 3남1녀 중, 장남으로 장흥군 부산면 기동마을에서 태어났다. 

운암(雲巖) 위덕관(魏德寬)의 11대손이며, 증조부는 위응조(魏膺祚), 조부는 위유권(魏有權)이다. 조부 위유권은 효행으로 가선대부호조참판에 추증되었다. 부친 경은(耕隱) 위계선(魏啓善 1858~1917)은 장흥 지역에 많은 토지를 소유하여 천석군이라 불리었다. 역대 장흥위씨 가운데 천석꾼 집안은 두 집안뿐인데 그중 한집이다. 한때 부산면민들이 '위부자집' 땅을 밟지않으면 걸어 다닐 수 없을 만큼 전답이 널려 있었다고 한다. 부친 역시 효행으로 효릉참봉으로 천거되었다. 

회은 위원량은 천석군의 부유한 가정에서 출생하였지만 부모의 근검한 생활을 보고자라서 성품이강직하고 근검하였다. 예도 또한 극진하였다. 족조(族祖)인 만회(晩悔) 위국채(魏國采 1846~1921)와 족숙(族叔)인 행은(杏隱) 위계훈(魏啓勳 1866~1942)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학문이 뛰어났다. 특히 금석문과 서예에 뛰어났다. ‘장흥위씨 삼세효열각(長興魏氏三世孝烈閣)’의 편액, ‘영이루(詠而樓)’ 편액, 수리봉의 ‘망곡서(望哭書)’ 암각문등에서 그가 여러 서체에 능하였음을 가늠할 수 있다. 부산면민이 1930년 건립한 ‘전참봉위공원량선행비(前叅奉魏公元良善行碑)’, 1938년 10월 장흥위씨 습독공파(習讀公派) 문중에서 건립한 ‘회은위원량중건묘각표창비(晦隱魏元良重建墓閣表彰碑)’의 비문에서 살필 수 있듯이 회은 선생은 축적된 가산을 분산해 가난하고 곤궁한 사람을 구휼하였으며, 향당(鄕黨)의 일에도 적극 참여하였다. 이러한 선행으로 참봉에 천거 되었다가 가선대부 공조참판에 승직하였다. 장흥위씨 문중인들은 회은선생이 문중의 제반사에 적극 참여하여 기여한 행적을 널리 칭송하고 있다. 장천재는 물론 연하동 하산재, 평화 다산재, 봉황 운곡재 등 장천문중이 주관하는 여러 곳의 사우와 재각에 사비를 들여 제수용품을 공급했다.

회은 위원량은 1910년(庚戌) 한일합병이 이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수리봉 정상에 올라가 울분을 토로한 뒤 ‘망곡서(望哭書)’ 암각문을 남겼다. 전하는 기록이 없어 단정하기 어려우나, 남다른 우국충정을 지니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1930년 조부 위유권(魏有權), 부친 위계선(魏繼善), 며느리 제주양씨(濟州梁氏) 3세대의 효열비를 세우고, 효열각을 건립하였다. 1937년 장흥위씨의 성지인 회주사(懷州祠)의 강당 백산재(栢山齋)를 중건할 때 장흥부 관아 건물을 해체하여 옮겨지었는데 치성으로 보조하였다. 회은 위원량은 노년에는 수리봉 병풍바위 아래에 송암정(松岩亭)을 짓고 독서와 시서(詩書)를 즐기며 여생을 지내다가 1945년 11월 18일 부산면 구룡마을 자택에서 졸서하였다.

 

[사진자료]

이병연, 『조선환여승람』, 장흥군지

 

회은 위원량선생 초상

 

회은 위원량선생 고택(2010년 철거됨)
회은 현액(설주 송운회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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放湖集(방호집) 저자 金喜祖(김희조) : 국역간행

靈光人 放湖 金喜祖(1680-1752) 文集 : 放湖集 2책

녹양 박경래 선생 (국역전문학자, 서예가)

 

-목차-

발간사 發刊辭/고영천

축간사 祝刊辭/정종순/유상호/김기홍

방호선생문집 해제: 이해준교수

역자서문:박경래

(사)록양고문연구원장, 장평면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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艮庵集(간암집) 저자 魏世鈺(위세옥) : 국역간행

長興人 艮庵 魏世鈺(1689-1766) 文集 : 艮庵集 1책

아양 이병혁 선생 (국역전문학자, 문학박사)

 

-목차-

발간사 發刊辭/고영천

축간사 祝刊辭/정종순/유상호/위계춘

간암선생문집 해제: 홍순석교수

역자서문:이병혁

호남문헌연구회장,문학박사,용산면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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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림사 중창기 증보 수정판 간행

(2001년 간행, 절판, 학계 및 독자의 수요유지)

 

보림사는 문림의향 장흥 뿐 아니라 우리나라 고대 역사의 큰 뿌리라 할 구산 선문 종찰로, 국보와 보물 등 통일신라시대를 상징하는 성보유산이 즐비한 천년고찰이다. 그 같은 법맥은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까지 이어졌다.

보림사 중창 불사 기록을 비롯해 불교 문화사를 알 수 있는 ‘국역 보림사 중창기’ 재판본이 발간됐다. 지난 2001년 발간 이후 20년 만에 재발간되면서 사찰문화사를 비롯한 향촌 사회사 연구의 중요한 사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장흥문화원(원장 고영천)이 발간한 ‘보림사 중창기’는 조선후기 180년간 250여회 불사(佛事)를 세세하게 정리한 일지식 기록이다. 구체적으로 1658년부터 1838년까지 246항목의 내용이 담겨 있다. 각종 건물의 중수나 신축, 단청, 번와, 불상, 부도, 범종, 석탑, 불기, 불화 등을 비롯해 각종 불사 내용과 기문, 그리고 시주, 공사, 화주, 주지 등 참여자의 명단을 적고 있다.

보림사 사적기 국역은 조계총림 방장인 남은 현봉스님이 했다.

아울러 이번 재판본에는 중창기를 자세하게 분석한 ‘조선후기 장흥 보림사중창기의 고찰’(김희태) 논고와 조선 초기 보림사 사적기의 국역해설문, 미국 하버드대 연경도서관 소장 필사본 원본 사진 등을 함께 실었다. 무엇보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1910~30년대 유리건판사진 64장과 함께 보림사 기록, 사진 등이 망라돼 있어 의미가 깊다.이번 발간을 위해 고경 송광사 성보박물관장, 양기수 장흥향토사회장, 최인선 순천대 교수, 최선일 문화재감정위원 등이 힘을 보탰다.

한편 고영천 장흥문화원장은 “‘국역 보림사 중창기’를 학계와 공공도서관 등에 보급해 연구 자료로 활용할 수있도록 하겠다”며 “앞으로도 장흥 문화 역사 관련 고전과 사료를 꾸준히 조사하고 소개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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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한국문학특구포럼 장흥작가 발굴 선정 작품집 ②  윤수옥_섬기며 아끼며 사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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