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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열린자료실(DB)628

사진으로 보는 장흥100년사(60p~64p) ●10월 13일 제 8회 신문의 날 행사, 장흥극장에서(1962) ●군청내 공회당에서 열린 대한부인회 조직대회(청내에 공회당이 있었다.) ●장흥군청안에 신축공사중인 공회당 건물, 지금은 헐리고 없다. ●반공웅변대회 ' 반공을 국시로 교육은 반공에서' ●제8회 대통령배 반공웅변대회 장흥예선(1971. 3. 11) ●청소년선도 및 보호의 달 시가행진(장흥읍 건산3구의 장안약방 앞. 1964. 8.1)(동교통 장흥아케이드가 서있다 ●청소년 보호 및 선도행사를 매년 연례행사로 했었다.(자유당 시절) 2019. 5. 28.
사진으로 보는 장흥100년사(54p~59p) ●'통일없는 휴전반대'를 외치고 있다. ●유치국민학교에서 열린 유치면민대회 ●휴전반대 장흥읍민대회(칠거리에서, 대한청년단 장흥군단부 등 참석) ●부녀자들의 휴전반대 (장흥서초등학교에서, 자유당 장흥군당부, 북진통일 국민 총궐기위원회 장흥군 위원회 등 참석) ●칠거리 ●신덕관 앞 ●5.16 후 국시를 반공으로 삼아 잦은 시가행진을 했었다. ●5.16 이후 재건국민운동 본부 장흥군 지부(지부장 김도순) 단합체육대회 ●1960년대에는 '반공', '승공'이 일종의 국시처럼 되어 각종 궐기대회, 행사 등이 줄을 이었고 중고생은 물론 국민학생까지 참여했다. 시가행진은 보통 장흥국교-동동리-경찰서 앞- 남외리- 남국교- 석대바위- 서국교앞- 칠거리- 동교로 이어졌다. ●예양강변과 동교에 운집한 주민, 학생 ●여중고생.. 2019. 4. 23.
사진으로 보는 장흥100년사(48p~53p) ●1951년 5월 14일 대덕면 유지 대표들이 장흥 봉림지구에서 토벌작전에 임하는 대덕지서를 위문 ●사복입은 경찰토벌대 ●6.25가 발발하자 국민방위군을 조직, 지역을 지킨 국민방위군을 움직인 단위 간부들 (앉아있는 사람 좌에서 길민식, 정상섭, 위윤환, 박내현) ●장흥경찰서 앞 도치카. 경찰은 1950년 10월 6일 장흥수복 즉시 장흥읍사무소를 중심으로 성안 일대를 대발로 막았다. ●부산면지서 직원과 전투대원들(1951. 9. 10) ●1950년부터 53년까지 소탕작전중 기습을 당해 전시한 일들이 허다했다. ●읍사무소 뒤뜰의 장례식 ●당시 저편이 이편을, 이편이 저편을 죽여야 하는데 젊은이의 죽엄(주검)이 너무나 애처로웠다. ●1952년 10월경 UN군 장흥진주를 환영하고 있는 군민들(칠거리) ●기양리.. 2019. 4. 22.
사진으로 보는 장흥100년사(42p~47p) ●기마경찰의 입회하에 실시한 장흥읍 향보단 훈련(장흥초등학교에서,1948. 5. 9) ●독립촉성국민회 조직위원회에 기념촬영. 진남용 연설 다수 여성회원 참석 1946 2월 결성된 대한독립촉성 국민회의 조직위원회 장흥군 결성대회 대한독립촉성국민회는 원래 1946년 2월 8일에 조직된 국민운동단체이다. 반탁운동과 미.소 공동위원회의 반대, 좌익의 봉쇄 등의 광범한 운동을 전개하다가 같은해 6월 하순로 개편하여 재발족했다. 총재에 이승만, 부총재가 김구,김규식 등이 추대되었다. ●민주국민당 당원대회, 김정현, 진남용, 고영완, 이자산, 최종민, 최동희, 김영기, 주장오, 곽동식. 주축당원이었다(창랑정에서 1949년) ●1946. 7월 결성된 민족청년단원의 훈련 후 기념사진 조선민족청년단은 1946년 10월 이.. 2019. 3. 26.
사진으로 보는 장흥100년사 (37p~41p) ●1938년 장흥의 경제를 주도했던 상공인들 김대준 장순남 이춘선 김의택 오부장 안부장 노무라 구니고 김남식 박제국 문재환 ●1928(단기 4261) 광주 무덕전 앞, 장흥 각면 행정주무유지 지도자 기념 ●일제시대 장흥읍 위원 일제 강점기에 최하금 행정기관인 邑의 의결기관으로 邑議會를 두었다. 1917년에 面중에서 비교적 인구가 많고 상공업이 발달하여 도시적인 면모를 갖춘 곳을 指定面이라 하다가 1931년 총독부령 제11호로 邑面制를 실시하면서 책임자를 읍장이라고 의결기관으로 邑會가 구성되었다. 근대적인 의미에서 읍의회 구성은 1952년 〈지방자치법〉에서이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기념 축하행렬(木炭車) (1948.8.15 장흥읍사무소 앞} 1945년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이 무조건 항복하자 포츠담 선언데 .. 2019. 3. 25.
사진으로 보는 장흥 100년사(31p~36p) 2. 격동의 현장, 부침하는 인심/ 정치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때, 대덕, 관산, 회진 주민들이 해태를 팔아 성금을 모금하여 제작된 함상전투기. 군부(해군성)에서 엽서로 제작하여 보낸 사진. 1932년 경북도 평의원 문아무개가 육군기 1대를 헌납한 이래 '1군 1기 헌납운동'이 전개되어 강제기부로 돈을 모았고 일제는 중일전쟁 (1937. 7.7 개전)과 태평양전쟁(1941`. 12. 8개전)을 일으키면서 강제모금은 물론 물자 공출까지 실시한다. ●1937년 민심 선도를 목적으로 활동한 연극패 ●태평양 전쟁 때 일본의 홍콩함락 축하 가장행렬을 하며 징병에 참여한 자들의 공훈을 추세기며 징병을 강요했다. 태평양전쟁은 1941년 12월 8일 일본이 미국의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함으로써 일어난 전쟁으로 일본과.. 2019. 3. 22.
사진으로 보는 장흥 100년사(26p~30p) 안양/용산 ●안양면 면소재지(운흥리) 고려시대 안양향이있었던 안양면, 안상면과 안하면이 합하여 1914년 안양면이 되었다. ●용산면 일대(어산,어동,접정 등) 부용산 정기를 품어 안은 용산면,1932년 남상면과 남하면을 합하여 남면이라 하다가 1940년 용산면이라 하였다. 장동/장평 ●장동면 면소재지(배산, 북교리) 보성강의 첫 머리터 장동면, 옛 장택현의 동쪽에 위치해 1914년 현재와 같은 구역으로 장동면이 되었다. ●장평면 면소재지(용강리) 계수, 계천, 장택으로 이어지는 장평면,1936년 장서와 부평을 합하여 장평면이라 하였다. 유치/회진 ●유치면 송정리 일대(면소재지) 천하 삼보림의 하나가 위치한 유치면, 고려시대부터 유치향이 있어 그 이름이 이어진다. ●회진면 회진리(회진만호가 있던 회진성과 .. 2019. 3. 20.
사진으로 보는 장흥100년사(20p~25p) 1. 흐르는 세월, 변하는 풍광 ●1905년도 장흥읍성 동문안 주요시가지. 멀리 장원봉이 감싸고 있으며 지금의 경찰서 자리에는 누대가 보인다. ●1970년대의 장흥 시가지. 위의 사진과 거의 비슷한 지점에서 촬영했는데 70여년전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사자산과 제암산이 외호하고 있는 1960년대의 장흥읍 시가지 전경, 다리건너 우측 중간부분이 지금은 제일 번화가인 중앙로가 되었지만 당시는 허허벌판이었다. ●지금의 장흥시가지. ●1912년경의 장흥읍 모습, 지금의 칠거리에서 경찰서쪽을 보고 찍은 사진이다. ●1936년도 장흥공원을 중심으로 한 주요 시가지 내엔 일본식 건물이 보인다 ●중앙로에서 장흥읍 시가지 관산/대덕 ●관산에서 바라본 관산읍 고려말기까지 장흥부의 치소였다가 왜구침입으로 내륙으로 피난했다가.. 2019. 3.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