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 문화 육성에 선도역 - ‘장흥군민의 상’ 수상
효행 · 서예 봉사, 서예 후학 양성 타의 모범
올해 85세, 20여년 째 역동적으로 서예 봉사
문하생 68명, 35명은 예술활동증명 확인서 받아
(사)한국서예협회 장흥군지부 지부장으로 장흥 서예 문화 발전에 헌신적으로 기여 해 온 서예인 송재(松齋) 이문갑(李文甲, 85) 선생이 ‘2024년 관산읍민의상’(교육문화 부문) 수상에 이어 ‘2024년 장흥군민의 상’(교육문화 분야)을 수상했다.
송재 선생은 지역의 서예문화 육성, 발전을 위해 지난 2007년부터 주민들을 대상으로 무료 서예교실을 운영하는 한편, 지역의 서예인 양성과 서예 활성화를 위해 지난 2011년 (사)한국서예협회 장흥군 지부를 결성한 후 장흥 서예문화 육성, 진흥에 산파역을 다해 왔다.
특히 선생은 정남진장흥물축제, 통일기원 신년 해맞이 행사, 장흥문화원이 주최하는 민속한마당‧달집태우기, 장흥 회령포 이순신 축제 등 지역의 각종 문화행사에서 가훈(家訓)‧기원문 써주기 등 서예를 통한 재능기부 봉사에 적극 참여해 온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 서예 봉사인이다.
궁핍·고난의 삶 이기며 자수성가
봉사 서예인으로 입지하다
지금 시대에 ‘서예 봉사인’이라는 이력도 그렇지만, 선생이 살아온 이력도 참으로 별나고 참담한 역경의 삶이었다. 그 역경을 승리하며 자수성가한 인생이다.
지금이야 명예를 회복, 자랑스럽기조차 하지만 선생이 살아왔을 한국동란 이후 1990년 초반 이전까지는 죄인처럼 숨죽이며 살아 온 동학농민운동가 후예였다. 선생의 증조부 이백호(李栢浩,1844~1895) 선생이 장흥동학농민운동 때 묵촌 집강소 집강으로 활동하였다가 분살 처형되었고, 증조부의 이러한 이력으로 선생도 죄인의 후예로서 용산 재송리 송치에서 외롭고 궁핍한 유소년 시절을 보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학교 수업과정을 제대로 거칠 수도 없었다. 용산초등학교를 간신히 졸업하고 관산읍에서 16세 때부터 철물 보따리 장사를 시작하며 가정의 생계를 돌보았고, 20세 때 결혼한 후에도 여전히 철물가게를 운영하며 생계를 유지했으며, 부인의 적극적인 권유와 지원으로 뒤늦게 늦깎이로 서예를 공부하기 위해 광주 서예학원을 다니면서 비로소 본격적으로 서예와 한문 실력을 쌓으면서 서예인으로 빛나는 꿈을 꽃피울 수가 있었다.
서예인으로 어느만큼 자리를 잡으면서 그가 지역에서 봉사해 온 서예의 재능 기부는 참으로 놀랍다.
지역 서예문화 육성·진흥 위해
서예 재능기부 활발
▶2007년부터 고읍새마을 금고 서예교실 4년간 무보수 지도.
▶2011년부터 정남진 물 축제 기간, 가훈 및 기원문 써주기 참여. 지난해까지 12년째 봉사.
▶2013년부터 정남진 신년 해맞이 행사 가훈 및 기원문 써주기 11년째 무료 봉사.
▶2013년부터 지역 ‘청소년 문화의집’ 서예 지도.
▶2014년부터 장흥문화원 정월대보름 달집태우기 행사 참여, 가훈·소원서문 써주기. 9년째 봉사.
▶2014년부터 2015년까지 2년 동안 관산중학교에서 학생들의 서예 지도.
▶2015년부터 대덕읍 서예동호인을 위해 대덕주민복지회관 주 1회 서예교실 운영.
▶2015년〜2023년. 회진면 서예동호인을 위해 주 1회 서예교실 운영.
▶2015년〜2019년. 장흥교도소 5년간 서예교실 지도.
▶2017년부터 한국말사업고등학교서 서예예술 강사 출강,
▶2018년부터 정남진 토요시장서 월1회 가훈 써주기 봉사.
▶2017년부터 장흥군 노인복지회관. 서예교실(회원 26명) 운영 지도.
예술활동 증명 확인서 받은
공식 예술인 35명 배출
(사)한국서예협회 장흥지부장을 역임하고 있는 송재 선생은 그동안 송재서예연구원에서 회원들의 서예지도에 심혈을 기울여, 초대작가 20여 명을 배출하였을 뿐만 아니라 전남서예대전, 다향미술대전, 입상작가 50여 명,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예술인 예술활동 증명확인서 35명을 배출하기도 했다.
현재 송재 선생은 2010년대 관산읍 시내 정비 사업으로 도로변에 새로운 건축물이 들어서면서 2010년 9월 30일부터 자신의 작업실인 송재서예연구원 바로 옆 상가 2칸(현 시세 60만원 월세 가능)을 서예인들이 마음 놓고 서예를 배우고 공부할 수 있는 서예실을 15년째 제공해오고 있다.
또 2011년, 9월 2일, (사)한국서예협회 장흥지부를 결성했는데, 처음에는 회원 25명으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회원이 76명으로 증가하여, (사)한국서예협회 장흥지부가 명실상부 장흥 서예인의 구심점 역할을 하면서 장흥 서예문화를 선도해가고 있다.
송재 선생은 (사)한국서예협회 장흥지부 창립회장이 된 이래 지금까지 회장직을 맡으며, 실질적으로 장흥서예 문화 육성, 발전을 선도해 가고 있다.
선생은 평상시는 송재서예연구원 겸 후배 서예인을 위한 서예교실에서 회원 및 수강생들에게 무료로 붓글씨와 한자를 가르친다. 대덕읍과 회진면으로 서예지도를 나갈 때는 교통비만 지원받고 출장 서예교육을 시행해 오고 있다.
광주서 학정(鶴亭) 이돈흥(李敦興) 선생에게 사사
유소년 시절, 하고 싶은 일도 많았지만 다른 무엇보다 화선지에서 번져 나오는 발묵과 묵향이 좋았고, 학교의 습자시간이 더욱 기다려졌다고 한다.
송재 선생은 장흥군 용산면에서 태어나 16살에 관산으로 독립해 철물사업을 시작했다. 철물사업도 처음에는 철물 보따리 장사로 시작했다.
결혼을 하고 30대 중반 무렵부터 사업이 안정기에 접어들게 되면서 공부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한문과 글쓰기를 함께 할 수 있는 서예를 선택하게 됐다.
서예를 제대로 공부하겠다는 결심을 굳힌 선생은 광주로 올라가 광주권에서 가장 유명한 학정(鶴亭) 이돈흥(李敦興) 선생에게 사사를 받았다.
처음 1년 동안은 1주일에 한 차례씩 학정 선생을 찾아갔지만 2년째 되면서는 날마다 광주로 출퇴근하며 학정 선생에게 공부를 했다.
당시 관산읍에서 철물점을 운영했는데, 장사는 전적으로 아내(김경애 여사)의 몫이었다. 어쩌다가 가게로 나와도, 등을 떠밀며 방으로 들어가 공부하라며 가게에 나오지도 못하게 했다. 거의 매일처럼 광주로 올라가 서예공부를 하게 된 것도 선생의 의지가 있어서였지만 실제적으로 아내의 내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그동안 수 십 차례 각종 미술대전에 참가, 목민심서 전국서예대전 특선, 전라남도미술대전 서예부문 특선 등 다수의 입상을 차지하였다. 특히 2010년 전라남도 미술대전 추천작가, 2013년 광주광역시 미술대전 추천작가 선정에 이어, 그동안 서예인으로 꿈꿔왔던 ‘2015년 전라남도 미술대전 초대작가’ 선정의 영예와 성과를 얻게 되었다.
그 이후로 목민심서전국서예대전, 성균관유림서예대전, 광주광역시미술대전 등 전국적인 여러 서예전에서 추천작가 및 초대작가로 활동했으며, 2023년 3월 29일에는 한국미술관 우수초대작가상도 수상하는 영예를 차지하기도 했다.
선생은 서예가와 서예 봉사인으로서 활동뿐만 아니고, 옥당마을 개발원, 고읍마을금고 이사, 장흥문화원 이사, 장흥향교 장의, 관산읍 유도회 회장 등 다양한 사회 봉사에도 적극 참여해오 있다.
선생은 지난 1979년 2월에, 모교 용산초등학교 교정에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세워주는 기부행의 모교사랑도 실천했다..
효행 실천에도 앞장
인덕(人德)이 깊어 서예로서 헌신 봉사활동에 전력을 쏟아온 선생은, 효행의 윤리를 철저히 수행해 온 지역의 모범적인 윤리(효행) 실천자이기도 했다.
선생의 65세 때 부인과 사별하고 홀아비 몸이 되었음에도 100세의 모친을 봉양해 왔는데, 모친 봉양 때 모친이 치매에 걸려 있어 5년간 모친의 대소변을 물론 목욕과 식사도 손수 챙겨드리는 등 지극 정성으로 효행을 실천하였다. 선생의 이러한 지극한 효행이 주변에 널리 알려져 장흥향교 전교의 효행상을 비롯, 인천이씨대종회 회장의 효행상을 수상하며 주위에 귀감이 되기도 했다.
송재 선생은 슬하에 4남 2녀를 두었다. 자식들 모두 성장, 혼인하여 남부럽지 않은 가정을 일구었으며, 손자녀들은 서울대학교대학원 수업을 비롯하여 각급 국립대학교에서 우수한 학생으로 재학 중이라고 한다.
서예는 일점 일획(一點一劃)
영혼을 송두리째 내쏟는다
40여년을 서예와 함께 해 온 송재 이문갑 선생.
“서예는 예(禮)이며 법(法)이며 도(道)라고 할 수 있고, 그래서 예로부터 정신수양이며 자기 스스로를 도야하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예술의 근본이기도 했습니다.
컴퓨터, 핸드폰 시대에 무슨 서예냐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홀로 하는 서예는 지극히 자기 성찰이요, 자기 수양이기 때문에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현대인들의 정신적 고독과 외로움을 치유해줄 수 있는 예술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회가 복잡하고 거칠어질수록 서예는 더욱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시대가 속도와의 전쟁 시대이고, 필기구가 없는 시대로 가버렸습니다만, 홀로 붓을 들고 하얀 화선지에 글씨를 써가는 심정 자체가 자기 성찰이요, 자기 수양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서예인은 쉽게 일필휘지(一筆揮之) 하지 않습니다. 글씨는 자신의 모든 것이기 때문에 일점일획(一點一劃)에 영혼을 송두리째 내쏟습니다.”
송재 선생은 타고난 예술적 기질, 솔직하고 따뜻한 인성, 후학들에 대한 헌신성, 풍부한 미술적 식견까지 갖추고 있으며, 행·초와 전·예서에 모두 능하고, 모든 글씨에서 ‘필획(筆劃)이 살아있는 정통 서예인’으로 평가받는다. 여기에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임서(臨書)를 게을리 하지 않는 그의 부단하고 집요한 노력이 오늘날의 송재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올해로 85세. 13년 연하의 본 기자보다 더 건강한 듯 뵈는, 진정한 노익장의 서예인으로 모범을 보이고 있는 선생의 빛나는 서예 인생이 오래도록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출처 : 장흥투데이(http://www.jhtoday.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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